외계인의 대대적 침공으로 인한 인류 멸망 직전의 순간, 학생 스무 명과 어른 한 명이 남아 있다. 1분이 지나지 않아 어른도 숨을 거둘 것이다. 장차 인류의 대를 이을 이 어린 친구들에게 어른은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을까? 미국의 물리학자인 리처드 파인만은 “이 세상 모든 것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하겠다고 자못 비장한 어투로 다짐했다. 맞는 말이다. 세상은 결코 사라지지 않으면서 끊임없이 서로 충돌하는 100가지가 조금 넘는 원자로 구성되었다. 그 중 몇 가지는 우리에게도 익숙하다. 금, 산소, 수소, 우라늄 등이 그런 원자들이다. 하지만 금이 있고 원자를 안다고 해서 어린 학생들이 전기를 만든다거나 곡식을 수확하지는 못하겠거니 생각하니 파인만의 저 ‘일갈’도 다소 맥 빠지는 느낌이 든다. 내가 마지막 남은 어른이라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당장 먹고사는 데 별 도움 안되지만 파인만처럼 나도 폼 재는 말 한마디쯤은 할 수 있을 것 같다. “생명은 전자의 흐름일 뿐이다”라고. 사실 화학(chemistry)이 듬뿍 가미된 저런 말을 한 사람들은 꽤 많다. 비타민C를 발견해서 노벨상을 수상한 헝가리의 과학자 얼베르트 센트죄르지가 아마 처음일 것이고 <생명이란 무엇인가>를 쓴 오스트리아의 물리학자 에르빈 슈뢰딩거도 필시 저런 얘기를 했을 것이다. 전자는 원자를 구성하는 핵심적인 부품이다. 하지만 전자가 항상 원자에 붙박이로 고정되어 있지는 않다. 잠시 원자를 떠날 수도 있고 다른 원자들과 공동으로 소유될 수도 있다. 이런 식으로 전자가 움직이는 이유는 원자들도 잠시나마 안정을 꿈꾸기 때문이다. 전자를 잃어야 속 편한 원자가 있는 반면 기를 쓰고 전자를 갈구하는 원자도 있다. 전자를 대하는 원자들의 태도를 분류한 것이 바로 저 유명한 멘델레예프의 주기율표이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고등학교 때 주기율표를 달달 외워야 했던 별로 달갑지 않은 기억을 가진 사람들은 많겠지만 산소가 전자를 보면 사족을 못 쓴다는 사실을 떠올리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녹이 슬었다는 말은 산소가 철에서 전자를 하나 뺏어갔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산소는 어디에서 왔을까? 화학적 과정을 통해 산소가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전 지구를 녹슬게 만들고도 대기의 20%를 차지할 만큼 다량의 산소를 만든 것은 남세균이라 불리는 세균과 그의 친척인 조류 및 식물이다. 여기에 굳이 사족을 달자면 산소는 빅뱅이나 은하계의 탄생과 결부되지 않은 채 오롯이 생명체만이 만들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원자다. 산소가 생명체의 존재 증명이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식물이나 조류는 무엇을 가지고 산소를 만드는 것일까?

바로 물(H2O)이다. 물은 수소와 산소라는 두 종류의 원자가 결합한 물질이다. 반농담조로 ‘일산화이수소’라 불리는 물에서 전자를 뽑아내는 쉽지 않은 일을 남세균은 그예 해냈다. 지구 전체 역사에서 한 획을 긋는 순간이었다. 눈에도 보이지 않는 작은 세균이 물에서 전자를 뽑아내는 장치를 발명해 낸 것이다. 이 세균은 나중에 조류나 식물의 세포 안에 들어와 한 식구가 된다. 생물학 교과서에서 세포의 내부공생이라고 불리는 사건의 결과였다. 남세균의 도움으로 이제 조류나 식물도 물을 깨서 확보한 전자에 태양에서 도달한 에너지를 버무린 다음 곧이어 이산화탄소를 거의 모든 생명체의 주식인 포도당으로 바꿀 수 있게 되었다. 광합성이라 불리는 이 과정의 불가피한 부산물이 산소(O2)였다. 우리는 식물이 만든 포도당과 산소가 없으면 단 한순간도 살아갈 수 없다.

간략하게 정리하면 식물은 물을 깨서 산소를, 그와 동시에 이산화탄소를 고정해서 포도당을 만든다. 이렇게 만들어진 산소와 포도당은 정확히 반대의 과정을 거쳐 원래 상태로 순환된다. 종속 영양 생명체 구성원인 우리 인간이 매일 수행하는 소화나 호흡의 실체가 바로 그것이다. 우리 몸을 구성하는 37조개의 세포는 주로 포도당을 깨서 그것의 원래 형태인 이산화탄소로 바꾸는 일을 수행한다. 이렇듯 질서 정연한 상태의 탄소인 포도당을 무질서한 이산화탄소 가스로 만드는 과정에서 확보한 에너지는 근육을 움직이거나 책을 보고 배운 사실을 기억하는 데 사용된다. 흔히 우리가 아데노신삼인산(ATP)이라고 부르는 에너지 통화(currency)가 이러한 활동을 매개한다. 한편 우리가 호흡한 산소는 세포 안에서 물을 만드는 데 쓰인다. 전자를 게걸스럽게 쫓아다닌 산소가 전자와 수소이온을 품어 결국 물이 되는 것이다. 물에서 나와 포도당에 안착한 전자는 우리가 에너지를 뽑아내는 과정에서 빠져나와 전자 전달계라 불리는 장치를 지나간다. 세포 내 발전소라고 하는 미토콘드리아에서 쉬지 않고 일어나는 일이다. 전자 전달의 최종 결과물이 바로 ATP와 물이다. 이렇듯 물에서 나온 전자는 물로 되돌아간다. 물에서 물로 흐르는 전자, 그것이 생명이다.

<책읽기의 괴로움>이란 책에서 평론가 김현은 프랑스 철학자 바슐라르의 육성을 이렇게 우리에게 전달했다. “인간은 행복하게 숨 쉴 수 있도록 태어났다. 그러니 숨을 잘 쉬는 것을 어떻게 포기할 수 있겠는가?” 이를 생물학으로 풀어보면 어떻게 될까? 세포 안 미토콘드리아 발전소에서 원활히 흐르는 전자가 안전하게 산소를 만나 물로 변하는 생물학! 이것이 곧 세포의 목표이자 포기할 수 없는 우리의 행복한 숨쉬기다.

김홍표 |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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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