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말이를 엄청 좋아한다. 김을 넣어 쫄깃해진 계란말이 한 조각. 봄소풍과 가을 운동회 때 맛보던 음식. 계란탕도 못지않게 좋아한다. 거기다 하얀 쌀밥 한 숟갈, 깍두기 몇 조각 넣으면 계란 비빔밥. 간호사였던 누나랑 잠깐 자취를 했던 때가 있었는데 석유곤로에 올려서 찐 계란탕. 퀴퀴한 자취방에 맛난 훈기가 올라왔다. 미대를 나와 미술학원을 운영하던 꺽다리랑 연애를 한참 할 때였는데, 훗날 매형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셋이서 종종 밥상에 둘러앉았다. 지금 같았으면 짜장면 값 뜯어내 얼른 밖에 나갔을 텐데(자리를 비켜드렸을 건데) 계란말이 계란탕이 너무 맛있어서 미안 쏘리.

아버지는 넓은 목사관 뒤뜰에다 닭과 오리를 키웠다. 마당엔 지렁이들이 살고 냇물엔 물풀이 가득. 닭은 타조처럼 키가 크고 오리들은 거위만큼 뚱뚱하게 자랐다. 오리들도 닭처럼 알을 낳았다. 그런데 알이 하얗고 굵었다. 삶으면 계란보다 맛나다. 오리알 요리도 종종 맛을 봤는데 입에 넣을 때마다 오리가 꽉꽉 울어서 미안했다. 오리는 애교 많은 친구다. 뒤뚱거리며 걷는 것도 귀엽고 입주댕이도 노란 립스틱을 발라 재미있다. 물장구를 칠 때는 정말 부지런해. 날개는 있으나 마나지만 물갈퀴 발목 하나는 야무져서 물에 빠져 죽을 일은 없다. 땅을 두 발로 걷던 오리가 물에 들어가면 편안하게 앉아 헤엄을 치는 건 참 신기하다.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풍자 산문 <코이너씨 이야기>. 오리를 닮은 코이너씨에 실긋 웃게 된 장면. 코이너씨가 냇물에서 물놀이를 하는데 갑자기 물이 들이찼다. 근처에 구조선이 있나 둘러보는 사이 턱밑까지 물이 차올라 버렸다. 코이너씨는 희망을 버리기로 했다. 냅다 물가로 헤엄을 치기 시작했다. 희망을 버려야 산다는 싱겁디싱거운 이야기.

비좁은 철창에 갇힌, 한없이 불쌍한 닭과 오리들 이야기는 마음 아프다. 오리알만 한 눈물이 뚝뚝. 그 옛날 청정한 냇물과 마당은 남아 있지도 않다. 허우적거리다 제 힘으로 헤엄을 치게 된 선각자들도 매우 드물다. 이 총체적 난국의 세계에다 둔 희망을 버릴 때 비로소 모두가 살길이 열리지 않을까.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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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