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여중생 폭행 사건을 두고 소년법 개정 논란이 갑론을박을 다투던 무렵 SNS에서 인상 깊은 글을 읽었다. 사건이 일어난 지역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이가 가난과 좌절이 어떻게 아이들을 일탈시키는가에 대해 개인적인 경험을 토대로 쓴 글이었다. 가난과 소외 속에 풀 데 없는 울분을 폭력으로 터트리는 것밖에 배우지 못한 아이들에게 엄격한 처벌만이 과연 옳은 답인가에 대한 질문이 있었고 그보다는 내재된 울분과 에너지가 폭력이 아닌 다른 것으로 발산될 수 있도록 문화적, 예술적, 교육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더 타당하지 않느냐는 제안도 들어 있었다.

대부분이 공감했으나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가난한 애들은 그래도 된다는 말이냐는 오독도 있었고, 어쨌거나 지은 죄는 나이에 상관없이 처벌을 받는 게 옳다는 정의파도 있었고, 그 동네 그렇지 않다고 왜 없는 이야기를 지어내서 멀쩡한 동네를 흠 있는 동네로 만드느냐며 지역 이미지를 우선 걱정하는 이들도 있었다.

나는 조금 엉뚱한 생각을 했다. 처벌 규정이 약한 소년법이 청소년 범죄를 가중시키고 있다면 그보다 강력한 처벌규정이 적용되는 성인들의 사회는 현재 어떤 상황일까. 처벌이 보다 강력하고 엄격한 만큼 안전하고 평화로워야 마땅할 텐데 딱히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물론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납득할 수 없는 판결도 더러 있고, 그런 이유로 성인들의 범죄에 대한 처벌 규정도 더욱 엄격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많고 어떤 판결에는 나 또한 흥분해서 더욱 강한 처벌을 원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의구심이 생긴다.

어느 정도의 강력한 처벌이라야 사회가 안전해지는 걸까. 처벌의 수위와 사회의 안전이 정비례하는 거라면 역사상 가장 강력한 처벌 조항이라고 할 수 있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방식의 함무라비 법전이 존재하던 시대는 그렇다면 역사상 가장 태평성대여야 했던 것 아닐까. 딱히 그랬던 것 같지는 않다. 수위를 높인 형벌이, 비할 바 없이 가혹한 징계가 있다면 그로 인한 두려움으로 범죄를 축소시킬 수도 있지만, 역으로 그 어떤 가혹한 형벌도 두려워하지 않는 무소불위의 범죄 집단을 만들어낼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유명무실한 처벌 규정이 범죄에 대한 담대함을 기르고 있는 것도 문제지만 강력한 처벌만으로 문제의 싹을 자를 수 있다는 믿음에도 선뜻 동의하게 되지는 않는다.

공이 어디로 튈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교화는 그래서 필요한 장치고 제도일 것이다.

누군가의 죄를 벌하는 데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죄, 그 자체에 대한 벌이 있을 것이고, 다른 하나는 죄를 지은 자가 어떤 벌을 받는지를 공공연하게 알림으로써 유사 범죄를 예방하는 효과를 기대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소년법이 개정되어야 한다면 처벌의 경중에만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그 처벌이 교화 혹은 예방에 어느 정도의 현실성과 실효성을 가지고 있는지도 동시에 검토해봐야 할 것이다.

가해자를 선처하자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가해자를 만들어내는가에 대해 고민하고 또한 무엇으로 잠재적 범죄 가해자를 예방할 수 있는지도 함께 고민해봤으면 좋겠다. 따지고 보면 함무라비 법전은 내가 당한 피해만큼의 보복을 허락하는 법전인 동시에 내가 입은 손해 이상의 가해는 할 수 없도록 하는 법이기도 했다.

법질서는 다수의 공분을 가라앉히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의 안녕과 안전을 위해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피해자들을 위한 구제 대책도 법적으로 검토되고 보완되었으면 좋겠다. 피해자들의 입장에서 가해자에 대한 응당하고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며 분노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원하는 만큼의 처벌이 이들의 범죄 피해 상황을 바로 구제해주지는 않는다. 이들을 위한 치유와 재활 프로그램도 함께 고민했으면 좋겠다. 안전한 사회란 상처받지 않는 사회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상처가 회복 가능하도록 도와주는 사회이기도 하다고 믿는다.

<한지혜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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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