잎사귀마다 붉은 분칠. 담장 넝쿨도 발개져서 멀리서 보면 마치 집이 불난 듯 보여. 북쪽으로 삼십분쯤 가면 내장산 단풍 숲. 예까지 길게 늘어선 단풍나무들은 집성촌에 모여사는 친척들 같아.

여긴 동물원이 아닌 식물원. 기린처럼 목을 길게 늘이 뺀 나무들. 잎들 떨어지면 나무들은 추워 솜눈 이불을 뒤집어쓰겠지. 첫눈이 나리면 세상은 검거나 희거나 모노톤 흑백의 산천. 불바다 불산이 타고 나면 잿가루 같은 눈이 내릴 테고, 단풍잎들 낙엽이 되어 층층 묻히면 어디라도 무덤산.

산불조심 깃발을 앞세운 국유림 관리소 직원들의 홍보 차량이 동네를 한 바퀴 돌고 간다. 개들도 알았다고 컹컹. 야옹이도 알았다고 용용. 건조한 날씨에 바람이라도 거칠면 산불이 번질까 덜컥 겁부터 생긴다. 서울도 평양도 해마다 단풍으로 불바다. 단풍 들면 어디나 불바다.

그런 불바다 말고는 무서운 불소식. 불벼락 전쟁놀음도 한심한 소란 소동. 프랑스 투르 지방의 성자 마틴은 그랬다네. “나는 그리스도의 병사라네. 그러니 무기를 들고 싸울 수 없지.” 전쟁과 불화의 십자군 기독교만 있는 게 아니라네.

정의와 평화가 수놓는 폭죽 가을 잎사귀들. 펑펑 터지는 가을밤 유성우. 오줌으로 따발총을 갈기면서 아이들은 이 강산에서 즐거웁게 자라나야지. 불바다 불산 가을단풍도 한 시절이렷다.

우리 인생 눈 깜짝하면 흰 머리칼. 겨울 되면 펭귄만 좋은 일. 펭귄도 겨울 추위가 좋아 극지방에 모인 게 아니라지. 싸우기 싫어 멀리멀리 도망친 거라지. 천적 원수가 없는 곳. 얼음바다 얼음산.

감나무마다 불처럼 번진 붉은 홍시. 별 폭죽 팡팡 터진 홍시에 불새들과 날벌레가 달라붙어 주린 배를 채운다. 산밭에 단감이 제법 많이 열려 일삼아 따야 하는데, 날마다 내일로 미루는 게으름. 새들과 싸우지 않고 살 수 있는 건 나나 저나 욕심부리지 않기 때문이네. 새들은 주머니도 창고도 없지. 나도 태풍 없는 풍작, 과하다 싶은 축복에 데면데면 엉거주춤 그러고 있는 중.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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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