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노인이 랑미용실 문 앞에서 숙자 씨를 부르고 있다. 쪽문을 흔들며 숙자 씨. 발끝을 들어 창살 사이로 고개를 빼며 숙자 씨. 숙자 씨는 대답이 없다. 숙자 씨를 부르는 억양에서 특별히 위급한 사정 같은 건 묻어나지는 않는다. 나물 뜯으러 가자고 동무네 집을 찾아온 시골 처녀의 음색이다. 좀 놀아보자고 찾아왔는데 왜 대답을 안 하느냐며 조금은 서운한 음색.

숙자 씨는 지금 그 집에 없을 것이다. 개인사정으로 당분간 문을 열지 않는다는 안내문을 보았다. 기한이 훨씬 지났음에도 문은 여전히 굳게 닫혀 있었던 것도 기억한다.

숙자 씨일지도 모를 랑미용실 여자를 본 것은 지난여름이었다. 긴 머리 여자의 실루엣을 그려넣은 낡은 미용실 간판이 정겨워 걸음을 멈췄다. 열린 문 드리워진 발 사이로 내부가 살짝 보였다. 로프를 말고 보자기를 둘러쓰고 앉은 할머니. 낡은 비닐 소파와 낮은 탁자와 그 위에 알록달록 조화를 꽂은 꽃병. 별것도 아닌데 가슴이 따뜻해졌다. 그래서 한동안 일부러 그 길을 왔다 갔다 하며, 걸음을 늦추고 그 안쪽을 훔쳐보곤 했다. 때론 조용히 음악만 흘러나올 때도 있었는데, 그러면 발걸음을 멈추고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처럼 괜히 먼 곳을 바라보며 가만히 서 있다가 오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발을 올리며 나오던 여자와 딱 마주쳤다. 앞치마 주머니에 빗과 가위가 꽂혀 있지 않았어도 누가 봐도 미용사일 것만 같은 여자. 여전히 풍성하고 윤기를 잃지 않은 머리칼을 한 갈래로 느슨하게 땋아 묶은 머리모양. 주름이 지기는 했지만 뽀얀 얼굴. 정확한 나이를 가늠할 순 없어도 참 예쁘게 늙은 여자인 것만은 선명했다. 잠깐 마주쳤을 뿐인데 그녀의 모습을 떠올리면 절로 미소가 드리워졌다. 그 후로 몇 번 더 스치듯 만난 적이 있는데, 그때마다 머리모양이 달랐고 옷매무새는 곱고 단정했다.

숙자 씨가 주택가 골목 쪽방을 개조해 미용실을 만들고 그 위에 간판을 달던 순간을 가늠해 보았다. 그날 숙자 씨의 등에는 남자아이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지는 않았을지. 업고 있던 애가 유치원에 가고 초등학교를 다니는 사이, 조금씩 입소문이 나면서 보조미용사를 둘 정도로 바빠지지는 않았는지. 시험 삼아 아들애의 머리꽁지에 염색을 해 주지는 않았는지. 그 남자애는 엄마의 미용 집게핀들을 훔쳐다가 반 여자애들에게 나눠주지는 않았는지. 늘 그곳에서 파마를 하던 옆집 여자는 어디서 잘 살고 있는지. 멀리 이사를 간 후에도 숙자 씨의 불고데 솜씨가 그리워 전철을 갈아타고 여전히 랑미용실을 찾는 이가 누군지. 그러다 보면, 오래전 엄마가 미용실을 하며 생계를 꾸려갔던 내 친구의 얼굴이 떠오르기도 하고, 시내에 있는 미용실에서 머리를 자르겠다던 내 손을 잡아끌고 기어이 자신의 단골 미용실에 데려가 앉히던 내 엄마의 손길도 떠오른다.

숙자 씨를 부르는 노인의 목소리가 한동안 이어지다 끊어졌다. 갑자기 숙자 씨의 옷 위로 둘러졌던 허리보호대가 생각났다. 그렇게 단정한 여자가 옷 위에 드러내놓고 두른 보호대라니 의아했었더랬다. 그제야 숙자 씨가 어디 아픈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큰 병이 나서 자리보전하고 누운 것은 아닌지. 이렇게 긴 기간 동안 문을 닫은 적은 없었는데. 겨울 들어 부쩍 많이 들어오는 부고들이 생각나는 걸 퍼뜩 지워버렸다.

노인이 사라지고 난 뒤, 나는 미용실 간판 아래 서서 마음속으로 숙자 씨를 불러보았다. 숙자 씨, 숙자 씨. 한번쯤 숙자 씨에게 머리를 맡겨보고 싶었는데. 다른 할머니들에게 해주듯 새카맣게 염색을 해달라고 청하려고 했는데. 숙자 씨, 숙자 씨. 문득 숙자 씨를 부르던 노인의 이름이 명자 씨일 것만 같았다. 명자 씨는 내 어머니의 이름이다.

명자 씨는 지금 인천에서 짐수레를 끌고 이리로 오고 있는 중이다. 수레 안에는 시골에서 보내온 계란 몇 판이 들어 있을 것이다. 오지 않아도 된다는데도 굳이. 지난 며칠 동안 탈이 나서 앓아 누워 있었으면서도, 몸이 조금 가벼워졌다고 집을 나섰다는 것이다. 집에서 놀고 있으면 몸이 더 아프다면서. 달리 말릴 방도가 없었다. 말렸어도 기어이 집을 나섰을 것이다. 명자 씨는 지난 사십여 년가량 일을 쉰 적이 없다. 가내수공업을 하던 아버지 덕분에 이십여 년을. 그 작은 공장을 물려받은 아들 덕분에 십여 년을. 그리고 느닷없이 식당을 시작한 딸 덕분에 지금까지. 온 가족이 돌아가며 차례로 명자 씨의 노동력을 착취한 셈이다. 그렇게 가족 옆에서 일을 하며 보조를 하는 동안, 이십대의 젊은 엄마는 이제 칠십 노인이 되었다.

명자 씨와 함께 일한 지 일 년. 이제 명자 씨는 주방에 들어서자마자 능숙하게 자신의 영역을 담당한다. 제일 먼저 토마토 소스를 만들고, 파슬리를 다듬고 빻아서 파슬리 소스를 만들고, 구운 파프리카의 껍질을 벗겨 용기에 담아 오픈 준비를 한다. 가지요리는 명자 씨 담당. 해물요리는 손질은 명자 씨가 요리는 내가 한다. 주방의 효율을 위해 자연스럽게 나누어진 역할이지만, 명자 씨는 이제 그냥 도움을 주는 엄마가 아니라 주방의 한 파트를 담당하는 사람으로서의 자부심이 생겼다. 그래서 내 손이 놀고 있을 때도 가지요리 주문이 들어오면 반드시 명자 씨가 담당한다. 명자 씨는 이제 주방보조가 아니라 제1주방장이다.

명자 씨가 오늘도 짐수레를 끌고 집을 나서는 이유도 그것 때문일 거라고 애써 생각하며 죄책감을 한쪽으로 미뤄두었다. 이럴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마을버스에서 내릴 명자 씨를 마중 나가 짐수레를 받아오는 것이다.

랑미용실을 지나 골목을 나서는데, 한 노인이 내 앞에서 무언가를 가리키며 큰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하. 웃음소리가 그렇게 호탕하고 명쾌할 수가 없었다. 우스워 죽겠네, 아이고 웃겨라. 입 밖으로 웃는 속내를 다 드러내면서 하하하. 물을 수밖에 없었다. 뭐가 그렇게 웃기냐고. 그녀가 대답했다. 저것 좀 봐 하하. 꽃보다 예쁜 너래. 나보고 꽃보다 예쁘다니 하하하하. 그녀가 가리킨 곳에 꽃집이 있었다. 꽃집의 이름은 꽃보다 예쁜 너. 그 순간 세상이 환해졌다. 나도 따라 웃었다. 하하하하 그래 꽃보다 예쁜 너로구나. 오늘은 명자 씨를 위해서 꽃을 한 송이 사야겠다. 그리고 언젠가는 숙자 씨를 위해서도.

<천운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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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