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어떻게 보내셨습니까?” 연말이면 이 같은 질문에 성실한 답변을 작성해야 할 것 같은 강박에 빠진다. 개인적으로는 작년보다 나은 한 해였다. (이 또한 오래가지 않겠지만) 생애 가장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한철을 보냈고, 금융자본주의에 한쪽 무릎을 꿇은 뒤 (상대적) 주거안정성을 확보했으며, 사랑에 빠졌다…가 얼른 빠져나왔다. 수도승처럼 애욕, 집착, 번뇌에서 거리를 두고 살자고 다짐했다. 수도승 생활은 2년을 채우지 못했다. 일전의 연인들과 다른 환상을 보여주는 사람이 나타났고, 금세 매료되어버린 것이다. 자신의 좁은 세계에 침잠하며 끝없는 우물을 판 끝에 비대한 자의식의 글이나 영화를 선보이는 예술가형 인물과 만난 적이 많았고, 창작의 과정 동안 주변인을 감정적으로 학대하는 일을 보고 겪으며 환멸을 느꼈는데, 그는 달라 보였다. 개인의 욕망보다 사회적 변화를 위해 투신하는 모습이 강인하고 멋져 보였다.

사랑에 빠지면 그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된다고들 한다. 나 역시 그의 눈으로 세상을, 스스로를 응시했고, 언젠가부터 죄책감을 느끼게 됐다. 나의 사사로운 ‘소시민적’ 욕망들이 새삼스러워진 것이다. 나는 기분 좋은 상태를 유지하도록 스스로를 돌보는 것을 일상의 가장 중요한 과제로 여긴다. 무례해서 불쾌함을 느끼게 만드는 인간들과의 접촉을 최소화하려 애쓰고, 맛있는 것 먹고 아름다운 풍경을 눈에 담는 감각적 충족감을 중시하고, 흥미로운 서사창작물을 탐닉한다. 이것은 내가 기분 좋은 상태를 유지해야 타인에게 마음 쓸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는 믿음과도 이어져 있다. 그렇게 확보된 마음의 공간 덕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내게 다가오는 고통의 사연들에 공감할 수 있는 것은. 예를 들어 나의 소셜미디어 뉴스피드에는 고용 보장 및 단체협약 보장을 외치며 이토록 추운 날씨에 굴뚝 위에 올라 버티고 있는 사람들, 권력의 눈치를 보며 진단서를 작성한 바 있는 병원장의 퇴진과 의료공공성을 요구하며 투쟁하는 서울대학병원 노동자들, 법의 허점을 적극 이용한 폭력적인 강제철거에 저항하다 손가락이 잘리고 생살이 찢긴 궁중족발 사장 등 동시대 사람들의 고통이 생생하게 줄을 잇는다. 이런 소식을 접할 때 기업 입장에 이입하여 노동조합을 무턱대고 비난하거나, 건물주 입장에 빙의하여 세입자가 ‘을질’한다고 비난하는 일은 너무 쉽기에 의식적으로 경계한다. 당사자의 절박한 투쟁에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하고 억울함과 서글픔을 헤아려보며 어떻게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응원의 마음으로 추이를 지켜보는 정도마저 ‘노력’해야 할 수 있는 것은, 대다수가 고통을 겪으며 생존을 이어갈 수밖에 없는 팍팍한 한국사회의 현실 때문일 테다.

그나마도 뉴스피드에 올라오는 소식에 ‘좋아요’나 ‘슬퍼요’, ‘화나요’를 클릭하며 멀찍이서 걱정하는 데에 그칠 때가 많다. 실체 없는 걱정의 ‘마음’이 얼마나 도움이 될까 싶고 무언가 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 들썩이다 일회성 소액 후원을 하거나 관련 굿즈를 구매하거나 관련 문화행사에 참여하기도 하지만, 그것도 스스로의 일상을 지키고 난 뒤 여유가 남을 때의 일이다. 그렇기에 ‘일상’이라는 것이 오로지 투쟁하고 외로운 이들의 곁을 지키는 일인 사람을 사랑하며 가슴이 철렁했던 것이다. 내가 잘못 살고 있는 것인가?

그러나 인간은 잘 변하지 않는다. 나와 다른 사람이어서 끌렸지만 정확히 그 이유로 견디지 못하게 되어버렸고, 나는 지금도 소시민적 일상을 산다. 앞으로도 나는 이렇게 비겁하게 살아남고 더 섬세하고 뜨겁게 시대와 불화하는 사람들은 이르게 세상을 떠나버리는 것은 아닐까 두렵다…는 이야기를 지면에 쓰고 나니, 너무 감성이란 것이 터져버렸나 싶지만 너그러이 봐주십시오. 연말이지 않습니까? 찬바람이 싸늘하게 두 뺨을 스치면 ‘끝’이라는 감각이 주는 비일상성에 휘말리니까. 또 지금 우리는 실제로도 많은 이별과 상실을 경험하고 있으니까.

우리 모두가 더 이상의 슬픔도 고통도 외로움도 없이 남은 한 해를 맺기를. 부질없는 소망이겠지만 전해본다.

<최서윤 <불만의 품격>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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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