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산답사기>라는 책이 있다. 1997년에 초판이 발행된, 아주 오래된 책이다. 적어도 내가 갖고 있는 책은 그렇다. 그 책의 내용은 더욱 오래되었다. 실은 ‘더욱’이라는 말이 무색할 터인데, 국내의 명산들을 답사한 기행문이 실린 이 책의 저자들이 고려시대의 이곡부터 한말의 최익현까지, 그야말로 수백년의 역사를 오고 가기 때문이다. 새해의 첫날에 내 오래된 책장에서 이 책을 꺼내든 것은 한 해를 시작하는 날에 산에 오르지는 못하더라도 산을 바라보는 마음이라도 되었으면 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한 해가 바뀐다는 건 하루가 바뀌는 것에 지나지 않는 거라고 생각해도, 그 하루가 지나 또 역사가 된다. 기왕이면 새해 첫날에 오래된 시간들과 만나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여기기도 했을 것이다. 게다가 산이야기가 아닌가. 산을 높이 올라본 적은 없지만, 산을 오르는 느낌은 어렴풋이 알 것도 같다고 생각한다. 아니, 알고 싶다고 생각한다.

민족문화추진회 편찬으로 되어있는 이 책에는 15편의 기행문이 실려있다. 백두산부터 북악산 관악산까지. 두류산부터 가야산 한라산까지. 조선시대, 혹은 고려시대 사람들에게 여행이라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을 거라는 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교통수단의 불편뿐만 아니라 제도상의 문제도 그러했을 것이다. 일반 백성들에게 경계를 벗어나는 일은 법적인 문제였다. 조선시대에 자신의 전 재산을 풀어 기근에 빠진 사람들을 구호했던, 제주의 여자 상인 만덕은 그 보상을 묻는 왕에게 금강산을 보고 싶다고 했다고 한다. 당시 제주도민은 관의 허락 없이는 섬을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만덕은 여자였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섬 전체를 구원할 정도로 대단한 여인이었다 하더라도 여행은 또 다른 문제였다. 좋은 곳을 구경하고, 삶의 여유를 즐기는 일을 넘어서서 그건 경계를 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 경계에 서서 세상을 바라보고 자신을 돌아보는 일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바로 그 찰나의 순간이 세상을 변혁하고 자신을 바꾸는 순간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책에 실린 몇 구절들을 가감 없이 소개한다. 영조 시대에 대제학을 지냈던 서명응의 백두산 기행문 중 일부다.

“나항을 거쳐 긴 골짜기를 지났다. 15리 사이에 수목이 하늘 높이 솟아 햇빛이 들지 않는다. 그밖에도 꺾여 누운 나무와 불에 타 넘어진 나무들이 길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으며, 드러난 뿌리들이 엉켜 마치 병풍을 두른 것 같고 용이 서린 듯하다. 사람을 시켜 도끼로 나무를 베어 길을 내게 한 후, 몸을 움츠리면서 나아가는데도 말이 자빠지고 넘어지는가 하면 사람의 발도 푹푹 빠진다.”

백두산을 차를 타고 가본 적은 있지만 내 발로 그 산을 헤쳐 올라가본 적은 없다. 그래서 이 생생한 묘사에 가슴이 뛴다. 이 글은 또 이렇게 이어진다.

“여기서부터는 새가 보이지 않고 이따금 꾀꼬리가 관목 위에서 우는데 남방의 새와 비슷하게 촉박한 소리를 낸다. 범이나 표범 같은 짐승은 없고, 다만 곰, 사슴들이 여름을 만나 더위를 피해 백두산 아래로 왔다가 겨울이 되면 다시 남쪽으로 간다. 담비와 박쥐는 어느 때나 있다. 그래서 담비 잡는 사람이 나무에다 구멍을 뚫어 물에다 띄워놓으면 담비란 놈이 물을 먹으러 그 나무를 타고 오르내리다가 구멍에 빠지면 잡는다.”

이렇게 풍성한 자연의 묘사는 사실 그 풍경보다 그 한가운데에 있는 사람, 그 인물의 자연에 대한 경외로 이어진다. 이 사람은 이 깊은 산속, 이 위대한 자연의 한복판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서명응이 이때 백두산 기행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백두산이 그의 유배지 근방에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그는 유배 도중에 잠시 짬을 내 백두산을 올랐다는 얘기다. 오늘날의 상식으로는 잘 이해가 안되는 일이기는 하지만, 서명응의 남달랐을 감회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짐작이 가기도 한다. 신성한 산이 그의 소원을 들어주었는지, 산에서 내려오자마자 그는 유배가 풀렸다는 소식을 듣는다.

두류산 기행문을 쓴 세조와 성종 시대의 성학자 김종직은 산을 오른 일행 중에 누가 원님인가를 묻는 승려에게 이렇게 답을 한다.

“내가 불을 쬐려 하면 다른 사람도 아궁이를 다투고, 내가 앉으려 하면 다른 사람도 자리를 다툰다는 말과 같이 친숙하게 지내고 싶네. 이제 그대가 한 늙은이를 만났으니 누가 원님인 줄을 어찌 알겠나.”

장자에 나오는 한 구절을 인용한 말이라고 한다. 수백년의 세월을 거치면서 산도 어느 정도는 모습을 달리하였을 것이고, 사람의 흔적도 달라졌겠지만, 그 산속에 머물렀던 어떤 순간들은 역사 속에 남아 뒷사람들에게까지 이렇게 전해진다. 물론 이와는 다른 일화도 있다. 어떤 태수는 하도 찾아오는 손님들이 성가신 나머지 사람들이 보고 싶어하는 명문이 적힌 바위를 깨부숴버렸다는. 그런데도 그 흔적은 산과 바위에 남아 그 일화를 적은 남효온은 말한다.

“그러나 그 글씨 획은 마멸되지 않아 읽을 수 있다.”

책장에 오래 꽂혀있던 책을 펼쳐보니 밑줄을 그은 부분들이 여러 군데 보인다. 그 책을 처음 읽었던 20년 전에 그었던 것도 있고, 그 후에 그은 것도 있을 터이다. 원래 책에 밑줄을 긋는 습관이 거의 없는데, 이 책에만 유독 그리하였던 건지 모르겠다. 신기한 내용 때문에 그어놓은 것 같은 밑줄도 보인다.

북한산 기행문 중에 나오는 구절인데, 보광사의 승려들이 모두 무예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으며 방 안에 창, 칼, 화살들을 모두 간직하고 있더라는. 이덕무의 기행문에 나오는 글이다.

오늘날과는 다른 이야기들, 그러나 산은 여전히 거기에 있다. 지나간 해와는 다른 새해의 하루하루, 그러나 변하지 않는 것들은 여전히 변하지 않은 채 교훈을 일깨운다. 새로운 계획들을 세우고, 작심삼일이 될지 작심세시간이 될지 모를 각오들을 다지다가 다시 책 속의 밑줄 그은 부분들을 본다. 오래된 책 속에 오래된 내가 있고, 그보다 더 오래된 역사 이야기가 있다. 오래되었으나 오늘날에도 변함없이 되새겨야 할 이야기들이다. 새로운 각오도 각오겠으나, 늘 거기에 있으나 성심껏 이루지 못했던 일들에 대해 생각해본다.

<김인숙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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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