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가장 안정적일 때는 정박한 상태인데, 배는 정박하라고 만든 게 아니라 항해하라고 만든 것입니다. 흔들림을 두려워한다면 인생을 너무 아깝게 사는 것이니 흔들리고 부딪치더라도 또 도전하길 바랍니다.”

2017년 12월27일, 문재인 정부와 각 지역에서 활동하는 150여명의 청년들이 대면한 자리에서 정부 대표로 이낙연 국무총리가 건넨 말이다. 그날의 주제는 청년이 겪고 있는 문제와 그들이 제시하는 정책적 대안을 정부가 직접 묻고 듣는 것이었다. 앞선 기조발언에서 이 총리는 인생을 항해에 비유하며 삶의 자세를 조언했다. 핵심은 ‘노력’과 ‘도전’이었다. 그러나 그가 부딪쳐보라고 권유하는 파도는 어디에서부터 생겨났나. 그 파도에 매번 휩쓸리고 있는 것은 누구인가. 시시각각 방방곡곡에서 잔물결 정도로 취급되던 불공정과 불평등이 결국 돛단배 하나 겨우 끌어안고 있는 청년들에게 파도의 크기로 덮치고 있지 않은가.

그가 말하는, 부딪치면 잠시 흔들리고 말 파도란 어떤 청년에겐 첫 면접 탈락이라는 취업 실패일 수도, 첫 고시원이라는 주거빈곤의 경험일수도, 첫 소액 대출이라는 부채의 굴레일 수도 있다. 그나마 공정하다 믿었던 공기업의 94%가 채용비리를 저지르고, 전·월세상한제 없는 부동산 시장에서 을의 입장으로 집을 구해야 하고, 대출 규제를 푸는 것이 청년을 향한 최선의 복지인 바다에서는 풍랑을 즐길 수 없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억겁의 노력과 끝없는 도전정신이 삶의 필승법으로 치부되었다. 그러나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공식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다시 말하자면 ‘공정한 출발선과 원칙이 없는 상태에서 하는 노력은 결과를 배신한다’. 이러한 삶의 새로운 공식을 이해하지 못한 이들은 당사자의 노력이 부족했을 뿐이라며 개인에게 떠넘기고 만다. 이런 시대에 불공정과 불평등, 불통이라는 파도 앞에 인생을 한 번 던져보라는 말은 그저 무책임한 언사일 뿐이다.

삶이 벅차 견딜 수 없을 때 토해낸 하소연에 ‘힘내’ ‘넌 할 수 있어’식의 메마른 응원보다는 말없이 건네주는 소주 한 잔, 속을 든든히 채워주는 밥 한 그릇에서 더 큰 위로를 얻을 때가 있다.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는 청년들에게 메마른 응원을 건넸다.

“가보면 길이 있어요. 미리 가보기도 전에 좌절하거나, 비관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지금 청년에게 할 말은 좌절하더라도 함께 노력하고 도전하자는 것이 아니다. 삶의 머나먼 여정을 시작하자마자 맛봐야 하는 것이 무기한 비정규직과 6평짜리 월세방, 2000만원의 부채라면 청년의 좌절과 비관은 기우가 아니라 당연한 결과다. 마치 인생을 아직 덜 살아봐서 뭘 모른다며 젊은이들에게 인생을 가르치려 했다면 그것은 기만이다. 청년에게 직접 문제와 정책적 대안을 묻고 대답을 들으러 왔다면 그들을 동료로 받아들이고 협치하겠다는 자세를 보여줘야 했다. 이제 청년을 빈곤 포르노 속에서 소비해가며 복지나 정책을 시혜하겠다는 자세는 버리고 생애주기에서 마주해야 할 고질적이고도 불평등한 사회구조를 어떻게 바꿔 나갈 것인지에 대해 함께 논의할 동료로서 마주하자.

<민선영 | 청년참여연대 공동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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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