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범근은 매일 서울 대학로에 나온다. 부동산투자회사 ‘공공그라운드’가 인수한 옛 샘터 사옥 내에 다른 스타트업과 사무실을 공유하고 있다. 스물한 살의 그는 철저히 10대 후반~20대 초반의 눈높이에 맞춰 뉴스를 전달한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는 게 그의 신념이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새해 처음 발행된 기자협회보는 ‘독자 누군지도 모르고…그 사이 독자는 언론에 등 돌렸다’는 기사를 실었다. “그동안 언론은 독자를 대변한다고 목청껏 부르짖었지만 정작 ‘우리 독자’가 누군지 잘 모른다. ‘독자를 위해서’라는 공허한 구호 뒤에 숨어 언론이 말하고 싶은 주장과 의견만 날랐을 뿐이다. 종이신문을 찍고 뉴스가 전파를 타면 볼 사람들은 다 볼 것이라고 자신했다.” 표현이 심한 감은 있지만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 짬뽕 먹으며 적폐청산이 뭔지, 짜장 비비며 방송파업 왜 하는지
· 이슈들 쉽게 풀어주는 동영상 제작

“타깃층이 뭘 알고 뭘 모르는지 끊임없이 생각하는 태도가 본질이라고 봐요. ‘설마 이것도 모르겠어?’ 싶을 때도 모른다고 전제하고 설명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1997년생이 말했다. 얼얼했다. 그가 태어나기 일곱 해 전부터 나는 기자였다.

국범근(21). 미디어 스타트업 ‘쥐픽쳐스’의 자칭타칭 ‘최고존엄’.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휴학 중. 페이스북과 유튜브에서 시사 이슈를 다루는 ‘쥐픽쳐스’, 사랑과 성을 다루는 ‘젤리플’ 채널을 운영한다. 모두 ‘십말이초(국범근이 10대 후반~20대 초반을 일컫는 말)’가 타깃이다. 페이스북 페이지에 가보면 ‘어린-어른 연착륙 커뮤니티 플랫폼’이란 소개말이 걸려 있다. 쥐픽쳐스의 핵심 상품은 ‘이슈먹방’과 ‘인생은 실전이야’다. 이슈먹방은 “파편적 정보만 돌아다녀 혼란스러운 이슈를 하나로 묶어 배경과 맥락의 이해를 돕는”(국범근 설명) 동영상 콘텐츠다.

‘적폐청산이 뭐야? 국정원 적폐 총정리’ 편에서 국범근은 짬뽕을 먹으며 적폐청산을 설명한다. “적폐? 누적된 폐단! 즉 전부터 있어왔던 잘못을 바로잡는다는 거야. 만약 어떤 원룸에 개히키코모리 혼모노가 들어와서 방에다 간장 뿌리고 이러면서 1년 가까이 청소를 안 했다고 해보자. 다음 세입자가 그 방에 들어와서 살려면 어떻게 해야 되겠어? 청소기 돌리는 수준이 아니라 리모델링 수준으로 방을 싹 다 갈아엎어야 되겠지?” 식이다. (※개히키코모리 혼모노에서 ‘개’는 강조 의미의 접두사이며, 히키코모리 혼모노는 은둔형 외톨이로 몰입정도가 심해 주변에 피해를 주는 ‘덕후’를 가리킨다.)

‘쥐픽쳐스’가 만든 ‘6월 항쟁 한 방에 정리! 1987 보기 전에 봐야할 영상’. ‘먹방’ 컨셉으로 제작됐다.

지난해 9월 게시한 ‘MBC 파업문제 한방에 정리’ 영상은 쟁반짜장 먹방으로 시작한다. “요즘 무한도전 안 해서 TV 볼 게 없네. 응? 뭐 MBC 파업인가 그거 때문에 그런 거 아니냐고? 솔직히 파업은 뭔지 알지? 몰라…? 아 ㅇㅋㅇㅋ… 파업은 일하는 사람들이 어떤 걸 이뤄내기 위해서 일부러 한꺼번에 일을 멈추는 거야.” 7분짜리 영상은 페이스북과 유튜브를 합친 조회수가 110만을 넘었다. ‘4차 산업혁명 한 번에 이해하기’는 조회수 35만, ‘<1987>보기 전에 6월 항쟁 알고 가자’는 23만을 넘어섰다. ‘인생은 실전이야’는 학교에서는 안 가르쳐주지만 실생활에선 필요한 ‘리빙 포인트’를 일러준다. 지난 4일 올린 ‘술 먹기 시작한 친구들에게 필요한 개꿀팁들’은 나흘 만에 36만을 찍었다.

· ‘사안을 너무 단순화한다’ 비판엔 “어차피 모두를 만족시킬 순 없다”
· 젊은 미디어 대표의 당찬 신념

“십말이초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관심이 없는 게 아니에요. 관심을 갖더라도 어려우니까, 진입장벽이 높고, 어디서부터 어떻게 알아가야 될지 모르겠고, 미디어는 불친절하고…. 연예인 얘기만 좋아하고 연성 뉴스에만 관심 가질 거다, 이런 인식은 편견이에요.”

- 이슈먹방에서 반말을 쓰고 비속어도 나오던데요.

“존댓말 하다보면 뭔가 무게 잡게 되지 않을까 싶었어요. 비속어는 의미를 강조할 때만 써요. 항상 맥락을 고려합니다.”

- 반말에 대한 반응은 어떤가요.

“반반이에요. 신선하다는 쪽도 있고, 어떤 분들에겐 재수 없게 보일 수도 있겠죠. 그런데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으니까요.”

- 사안을 지나치게 단순화한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수박 겉핥기라고 비판할 수 있는데요. ‘정말 몰랐던 건데 쉽게 설명해주니 좋다’ 이런 반응도 있으니까요.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죠. 제 역할은 기성세대와 십말이초 사이에 징검다리를 놔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는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다시 얼얼했다.)

‘10대에게 뉴스 읽어주는 남자’ 국범근 쥐픽쳐스 대표가 서울 대학로 ‘공공그라운드’내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했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국범근은 고교 2학년 때 교내 UCC(사용자제작콘텐츠) 대회에 참가해 2등상을 탔다. 영상을 통해 많은 사람과 소통하는 재미를 알게 됐다. 한마디로 “필 받았다”. 페이스북 페이지를 만들었는데 처음엔 유머 영상 위주였다. 구글 뉴스랩 펠로십 1기를 수료한 뒤 2016년 시사콘텐츠 ‘범근뉴스’를 시작했다. 지난해 미디어 전문 액셀러레이터 ‘메디아티’로부터 4000만원을 투자받았다. 스타트업을 출범시키며 법인 대표가 됐다. 정체성의 혼란이 왔다. “사업자등록증도 있고, 따박따박 사업소득세도 내고, 직원 월급도 주고…얼추 형식은 소꿉놀이하듯 갖췄는데…정작 무슨 콘텐츠를 만들고 팔아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영화 <택시운전사>가 돌파구가 됐다. 친구들이 ‘재밌고 감동적이고 많이 울었는데…’ 하면서도 역사적 맥락에 대해선 잘 모른다고 했다. 5·18광주민주화운동의 배경과 맥락을 쉽게 알려주는 콘텐츠를 만들었다. 반응이 좋았다. 나침반을 얻었다. ‘10대가 세상을 바라보는 자기만의 관점을 가질 수 있도록 돕자.’

· “법치 가르치지만 실현 막는 학교… 학생들, 세상과 단절됐다 성인 돼”
· “그 공백 교육·미디어가 메워줘야”

국범근은 고3 때도 <역사란 무엇인가> <전환시대의 논리> 같은 책을 읽었다. 선생님들은 고3이 공부나 할 것이지 그런 책을 왜 읽느냐고 타박했다. “참 아이러니죠. 저는 공부한다고 이런 책을 읽는 건데…. 그분들이 말하는 공부란, 자유한국당에서 이야기하는 자유민주주의처럼, 원래 의도에서 한참 벗어난, 일신을 위한 스킬 연마로 돼있는 거죠….”

고2 때는 이런 일도 있었다. 하복이 너무 불편하다는 학생들 원성에 학교 측에서 생활복을 따로 만들어 입도록 했다. 문제는 교내에선 생활복을 입더라도 교문으로 등교할 때는 하복을 입고 들어오라는 원칙이었다. 2학년 때 학급회장이던 그는 대의원회에서 문제를 제기했다. 대의원회에서도 고치자는 데 의견을 모아 학교 측에 건의했다. 적용은 차일피일 미뤄졌다. 전교회장과 함께 교장 선생님을 찾아갔다. 몇 마디 하지도 않았는데 교장은 역정을 냈다. 감히 학생들이 교장에게 질문하고 주장하고 도전하느냐는 태도로 찍어 눌렀다. “학교에서 법치를 가르치고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배우면 뭐해요…. 민주적으로 결정이 됐는데도 실현이 안되잖아요. 그때 학교에 다닌 친구들의 기억 속에 민주주의나 법치가 어떻게 남아 있을지 생각해보세요.”

지금의 학교는 ‘정치적 무균지대’를 만드는 데 집착해 근대적 시민을 길러내는 데 실패하고 있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학교에선 입시공부만 하라면서 세상과 분리, 단절시켜 놓죠. ‘지금은 몰라도 돼. 대학 가면 다 알게 되니 신경쓰지 말고 공부만 해’ 합니다. 사회를 학습해야 할 시기를 세상과 단절된 채 보냈는데, 성인이 되면 갑자기 책임감을 요구받아요. 왜 주인의식을 갖고 참여하지 못하느냐는 타박도 듣죠. 그 공백이 심각해요. 공백을 해소해줄 수 있는 곳이 교육과 미디어인데, 둘 다 잘 메꿔주지 못하고 있어요.”

콘텐츠 제작자로서의 국범근은 친절, 맥락, 인과관계 같은 표현을 즐겨 쓴다. “십말이초의 니즈(needs)를 잘 긁어주는 친절한 미디어가 부족해요. 저도 처음엔 영상 분량이 5분 넘어가면 큰일 나는 줄 알았어요. 길어서 아무도 안 볼 거다 생각했는데…. 친절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어서 자꾸 길어져요. 이슈먹방은 기본이 7분 정도 돼요. 길면 10분 넘어가는 것도 있어요. 그래도 사람들이 봐요. 중요한 건 얼마나 퀄리티 있는 정보를, 얼마나 타당한 인과관계로 묶어내느냐 같아요. 그런 훈련이 된 사람이 좋은 전달자라고 생각해요.”

올드미디어 종사자가 물었다. “십말이초는 왜 신문을 안 읽나요?” “굳이 볼 이유가 없어서죠.”

다시 물었다. “젊은 독자를 새로 확보하는 일은 사실상 포기해야 할까요?” “어떻게 전달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친절함’을 견지하면서 새로운 접근방식을 시도해보면…. 십말이초가 기성언론에 특별히 반감이 있어 소비 안 하는 게 아니거든요. 소비할 수 있게 만들어주면 소비할 겁니다.”

김민아 논설위원이 쓰는 ‘후 스토리’에서 ‘후’는 who(누구)·後(뒤편)·厚(두터움)를 모두  뜻합니다. 화제의 인물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이슈의 뒤편과 속내를 두루 살필 것입다.                                                                                                        

<김민아 논설위원 ma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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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