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돌이’ ‘호순이’ 시대에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올림픽을 떠올리면 지긋지긋하다. 86 서울 아시안게임과 88 서울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러야 하는 것이 마치 내 또래가 태어난 역사적 숙명인 줄 알았다. 공책을 비롯해 모든 문구류에 언제나 오륜기 같은 올림픽 심벌이 새겨져 있었다. 요즘말로 하면 나름 ‘올림픽 굿즈’였던 셈이다. 올림픽 성공 개최를 기원하는 포스터 대회부터 합동체육 율동 음악도 김연자의 ‘모이자, 모오오이자, 아침의 나라에서’라는 후렴구가 지겹게 반복되는 ‘아침의 나라에서’였다. 그런데 30년 만에 또 올림픽이라니. 엄청난 돈이 들어가고 자연 훼손에 더해 최순실 게이트에 휘말리기까지 한 평창 동계올림픽이 탐탁지 않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하지만 평창 올림픽에 북한이 참가하겠다고 선언하면서 오랜만에 남북관계에 숨통이 트였다. 선수단과 취재진, 그리고 북한 ‘걸그룹’으로 우리에게 알려진 ‘모란봉악단’ 참가도 예상되니 이래저래 흥행카드 몇 장을 한국에 선물한 셈이다. 평범한 생활인으로 살면서 ‘통일’이란 문제를 깊게 고민하며 사는 것도 아니고 북핵 실험 같은 극단적인 소식이 들려오면 걱정보단 짜증이란 익숙한 감정이 올라오곤 한다. 통일 포스터가 아니라 반공 포스터를 그렸던 우리는 그 시절에서 얼마나 걸어 나왔을까.

1985년 큰 수해가 있었다. 천변 지척이었던 우리 동네에도 물난리가 났다. 그해 아주 낯선 일이 벌어졌는데 대체로 늑대나 이리로 그리곤 했던 ‘김일성’이 남한 수해 복구 지원을 한다며 쌀과 옷감을 보내온 것이다. 상습 수해지역인 우리 동네에 북한 옷감이란 것이 흘러들어 왔다. 새마을지도자 역할을 열심히 하던 아버지 덕분이었던 듯하다. 다소 난감한 꽃분홍색의 나일론 천이었는데 아마도 한복용 옷감이었을 것이다. 옷을 지어 입을 수는 없어 엄마는 가장자리에 오버로크를 쳐서 밥상 보자기를 만들었다. 그런데 북한 옷감 좀 구경하자며 이웃 아주머니들이 오셔서 그 천을 조금씩 얻어 갔다. 그해 지독한 수해 끝에 남은 것은 북한산 꽃분홍 밥보자기였다. 기성복을 사서 입던 시대이니 사실 북한산 옷감에 어떤 용처가 있었겠는가. 그래도 남측은 흔쾌히 그 선물을 받았고 적대적인 남북관계에 어느 정도 숨통이 트였다는 후일담을 들었다. 선물이란 것이 본래 그렇잖은가. 딱히 쓰임새가 있는 것이 아니라 주고받는 그 행위와 태도 자체에 의미가 있어서 선물이다.

농민운동 조직인 ‘전국농민회총연맹’ 소속 농민들은 남북관계가 꽉 막힌 상황에서도 통일쌀 농사를 지어왔다. 정부미로 부르던 ‘통일벼’가 아닌 정말 통일을 염원하는 ‘통일쌀’이다. 농사를 지어 북한에 쌀을 보내자는 취지의 공동 농사다. 2000년부터 2007년까지 매년 평균 40만t의 쌀을 차관 형식으로 북한에 지원하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북한에 쌀을 보내지 못했다. 그래도 농민회 소속 농민들은 매년 ‘통일 모내기’를 하며 남북대화를 촉구해왔다. 수확된 쌀이 북한 인민 전체의 식량을 책임질 정도의 양은 아니지만 ‘쌀’이라는 강력한 민족의 상징이 더 중요하다.

하지만 남한 농민들이 북녘 동포들에게 쌀밥 한 그릇을 꼭 선물하고 싶은 그 마음조차 닿지 못한 지 10년째다. 그래서 이번 남북대화를 계기로 ‘통일쌀’을 선물할 수 있다면 좋겠다. 명절에 남녘은 떡가래를 뽑아 떡국을 끓이고 중부지방은 떡만둣국을, 북녘은 만둣국을 먹는다 들었다. 이 통일쌀로 떡을 뽑아 올라가겠으니 이북 만두를 빚어 내려오면 좋겠다. ‘통일 떡만둣국’ 한 그릇 먹을 수 있는 설날이 어서 오기를. 아! 그 밥상에는 꽃분홍 밥상 보자기가 제격이겠다.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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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