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는 종종 다쳐서 돌아왔다. 첫날부터 야산으로 나들이를 갔다가 밤송이에 손바닥을 찔려 돌아왔는데 이런 일에 능숙한 어린이집 선생님이 핀셋과 바늘로 가시 대부분을 뽑아주었다. 그렇다 해도 눈으로 보기 어려운 작은 가시 두어 개는 피부과에서 처치를 받아야 했다. 덩굴에 쓸려 자잘한 상처를 안고 돌아오는 날도 있었고 때로는 우리 아이가 다른 아이를 넘어뜨려 그 아이의 치료에 필요한 소소한 약품들을 사주어야 하는 날도 있었다.

다행히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만큼 크게 다친 적은 없지만 지난가을의 일은 아직도 생생하다. 가족들과 어울려 야외음악회에 간 날이었다. 잔디밭에 자리를 깔고 앉아 음악회를 관람하는데 아이는 신이 나서 내 등과 머리에 올라타고 박수를 치고 노래를 따라 불렀다. 두 손목을 잡고 얼러주는데 아이가 갑자기 팔이 아프다며 얼굴을 찌푸렸다. 아이는 왼손으로 오른손목을 살짝 붙잡고 있었다. 아무래도 오른쪽 손목에 문제가 생긴 듯했다. 하필이면 그 자리를 모기에 물려 손목이 부은 건지 모기 물린 자국이란 그런 건지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건드리면 아프다고는 했으나 울거나 떼를 쓰지는 않아서 괜찮으려니 했으나 처형네에 도착해 두어 시간이 지나도 똑같은 자세로 손목을 어루만지기에 안되겠다 싶어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을 옮겨 다니는 우여곡절 끝에 아이가 손목을 다친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오른쪽 팔꿈치가 탈골한 거였다. 의사는 아이의 팔을 붙잡고 간단하게 팔꿈치뼈를 맞춰주었다. 아이에게 물으니 괜찮다고 했다. 이제 아프지 않다고 했다. 인대 손상이나 골절과 같은 심각한 상태가 아니어서 마음이 놓였고 방금까지도 얼굴을 찌푸렸던 아이가 환하게 웃어 안심이 되었다.

그러나 그날 이후로 나는 아이의 그 손 모양이 눈에 어른거렸다. 오른쪽 손을 달래기 위해 왼손을 살풋 얹은 듯한 모양새였고 아이에게는 그것이야말로 다른 무엇보다 위로가 되어주는 것 같았다. 오른손을 달래는 왼손. 스스로를 달래는 아이. 거기에는 비장하다고도 할 법한 무언가가 있었는데 이처럼 우리는 오래전부터 결국 자신을 위로할 수 있는 최선의 혹은 최소의 방법은 자신에게 기대는 것임을, 우리가 살아가며 겪는 고통과 불안을 견디는 일이 우리 자신에게 속한다는 걸, 설령 부모라 해도 그다음일 수밖에 없다는 걸 보여주는 듯했다. 돌아보니 나도 어린 시절에 무던히도 다쳐서 집에 돌아갔다. 손바닥, 무릎, 정강이가 까져서 돌아오기 일쑤였고 십여마리 벌에 쏘여 돌아와 부모를 깜짝 놀라게 한 적도 있었다. 나이를 먹을수록 그런 일은 드물어졌고 어른이 되어서는 그런 일은 거의 없게 되었다. 그리고 대신 마음을 다쳐 돌아오는 일이 잦아졌다. 다리를 다쳐 절뚝거리며 돌아오지 않게 되었으나 마음을 다쳐 마음을 절뚝거리며 집으로 돌아오는 저녁이면 몸은 멀쩡하지만 나처럼 마음을 다친 채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눈에 보인다. 퇴근 시간 무렵의 길거리에서 귀가를 서두르는 사람들,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피곤한 얼굴로 차창에 비친 자기 얼굴을 보거나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는 사람들. 오른쪽 손을 달래기 위해 왼손을 살풋 얹을 힘조차 없어 보이는 사람들.

아이 역시 나이를 먹을수록 몸을 다쳐 집으로 돌아오는 일은 점점 드물어질 테고 대신 마음을 다쳐 돌아오는 저녁이 많아지리라. 몸이 멀쩡해도 마음이 아프다는 걸 짐작은 할 수 있겠지만 마음을 어떻게 다쳤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을 것이므로 결국 마음을 치유하는 일도 전적으로 아이에게 속하고 말 것이다. 아이는 혼자 고통과 불안을 감내해야 하고 이 모든 걸 홀로 감당해야 할 것이다. 그러다 보면 아이도 알게 되겠지. 같은 방향으로 걷거나 스쳐지나가는 사람들을 비롯해 같은 지하철이나 버스를 탄 사람들 모두 저마다의 고통과 불안을 안고 견디는 중임을. 타인의 오른손에 나의 왼손을 살풋 얹어 서로에게 기대는 일의 아름다움도.

<손홍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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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