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흥미롭게 본 광고가 있다. 프로강사이자 프로자취생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LG유플러스의 사물인터넷 광고이다. 누군가의 사연을 바탕으로 했다는 이 광고가 특히 나의 관심을 끈 것은 자취생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이야기 구성 때문만이 아니다.

광고에서 사물인터넷은 타인과의 관계 단절로 사람이 경험하는 쓸쓸함과 허전함, 보살핌의 욕구를 채워주는 기술로 등장한다. 등장인물은 “남들보다 훨씬 일찍 시작해서 모두가 잠든 후에 끝”나는 하루를 보낸 후 어둡고 추운 집으로 들어간다. 몸이 아프지만 딱히 도움을 요청할 사람은 없다. 냉기가 싸늘하고 “쉴 곳이 못” 되는 집을 바꿔준 것은 다름 아닌 사물인터넷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집에 오는 시간에 맞춰 전등과 보일러를 켜고 “나를 맞이할 준비”를 하는 집은 비로소 “밝고 따뜻”한 곳이 된다. 일상적이고 친밀한 대화의 대상 또한 사람이 아닌 인공지능 스피커다. 광고 속 주인공이 “보살핌을 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선택한 것은 가족도, 애인도, 친구도 아닌 기계였던 것이다.

사람 대신 기계를 선택한 것은 광고 속 인물이 간절히 바라던 바는 아닐 것이다. 병원에 갈 시간도 없이 직장 생활을 하는 이에게, 혹은 그런 일자리라도 얻고 싶은 이에게 사람과 깊은 관계를 맺는 것은 애초에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이 광고가 씁쓸한 뒷맛을 남기는 것은 사람이 필요한 자리를 기계라는 차선책이 대신하기 때문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산 광고가 건네는, 사람이 없어도 괜찮을 것이라는 조용한 위로가 따뜻하게만 들리지는 않는 까닭이다.

우리는 사람 없는 미래를 꿈꾸는 것일까?

2040년을 예측한 사람들은 미래에는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 사라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운전하는 사람’이 그중 하나다. 2012년 국제전기전자공학회(IEEE)의 전문가들은 2040년이 되면 사람들은 더 이상 운전면허가 필요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도로 위를 다니는 차량의 75%는 운전자 없이 스스로 운행하는 자율주행차량이 차지할 것이다.

“도로 위를 달리는 모든 차에 사람이 없어지는 때에” 차량의 센서, 교차로의 신호등, 도로 위 카메라는 서로 효과적으로 의사소통을 할 것이다. 사람 없는 도로에 교통사고와 교통체증은 더 이상 없을 것이다. 이때 기계는 사람의 차선책이 아니다.

운전자 없는(driverless) 자동차가 있다면 ‘운전하는 사람’은 없어져야 하는 것이다.

사람 없는 미래가 언제나 희망적으로 그려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꿈꾸지 않는 미래 속 2040년에는 정말 ‘사람’이 없을 것이라는 냉철한 예측도 있다. 2018년 새해 첫날 농민신문은 기획기사에서 ‘사람 없는’ 2040년의 어느 농촌마을의 모습을 묘사했다. “태어나는 아기는 없고, 젊은이는 도시로 떠나고, 노인은 세상을 떠나 인구가 채워질 여력이 없는” 기초지방자치단체 10곳 중 4곳은 사람이 없어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 “읍내 유일한 병원이 문을 닫고 농협들은 군 소재지에 있는 큰 농협으로 통합”된 마을에는 파출소도, 소방서지구대도, 면사무소도, 그리고 “읍내 내 유일한 자장면집도” 결국 문을 닫고 만다. “사람 소리가 사라지고 밥 냄새가 자취를 감췄으니 마을이 온전할 리 없다.” 한 마디로 “폐허다”.

하나 둘 죽거나 떠난 사람들 대신 노인들 곁을 지키는 것은 다름 아닌 기계였다. 바보상자 텔레비전만큼은 왁자지껄하게 켜진 채로 남겨진 노인들에게 “낙이고 벗”이 되어 주었다. 그러니 눈을 맞추고 목소리에 반응하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인공지능 기계만이 사람들에게 타인의 빈자리를 채워주는 것은 아닐 것이다.

“휴지 한 뭉치, 생선 한 토막이라도 사려면 차로 한 시간은 나가야” 하는 노인들의 마을에 사물인터넷이나 자율주행차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인가? 사람 없는 곳에 기계를 보내려는 시도는 종종 있어 왔다. 원격의료가 대표적인 예다. 섬이나 산간 오지, 군부대, 원양 선박, 교정시설 등 의사들이 가지 않으려는 의료 사각지대는 기계들이 대신 가기에 적합한 곳으로 여겨졌다.

2014년 시작한 원격의료 시범사업은 사람 없는 마을의 환자들에게 혈압계나 혈당계, 그리고 전송 장치를 쥐여주고 원격 모니터링 시스템을 앞에 둔 도시의 의사들과 닿게 하려는 시도였다.

그러나 사람 없는 곳으로 보내진 기계들은 사람 없이는 수월하게 작동할 수 없는 기계의 숙명 앞에 모순에 빠진다. 사람을 대신할 기계가 그것을 설치하고 작동하고 고치는 사람을 필요로 한다는 것은 블랙코미디 같은 사실이다. 원격의료를 위해서는 환자가 측정하여 전송한 데이터를 저장하고 관리하는 동시에 현장에서 원격 시스템의 작동을 도와줄 인력이 필요했다.

사람이 갈 수 없는 재난 환경을 대비한 최첨단 로봇도 예외는 아니다. 사람들의 것으로 여겨진 성화 봉송의 영광스러운 역할을 맡은 재난로봇 ‘휴보’가 잠시 균형을 잃고 뒤로 넘어졌을 때 그 등을 받쳐 다시 일으켜세운 것은 로봇을 작동하고 곁에서 지켜보던 엔지니어들이었다. 그러니 사람 없는 마을로 간 똑똑한 기계들이 어떤 모습으로 남게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광고 속 세상에서 나와 돌아본 우리 사회에는 기계보다 환영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물가 상승의 주범이 되어 자판기로 대체되어 버린 최저임금 받는 사람들, 고속 기차를 향해 고개 숙여 인사하는 청소하는 사람들이 그들이다.

자취생의 가족이 된 사물인터넷과 노인의 가족이 된 텔레비전은 사람 없는 미래를 꿈꾸는 것인가? 우리가 꿈꾸는 사람 없는 미래에 ‘사람’은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있는가?

<강연실 과학잡지 에피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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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