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눈들이 사람 눈처럼 또랑거리는 ‘봄봄’. 산수유는 벌써 노랗게 피었다. 하늘에서 내려온 별들이 아침에도 돌아가지 않은 게 꽃이란다. 나무마다 별꽃이 피어 이쪽 말로 ‘버큼(거품)’ 같아. 부풀어 오르다가 쭉 가라앉으면 다음엔 풀들이 땅별을 덮으며 차오르겠지. 쑥 캐던 할매들은 신문지 한 장 바닥에 깔고서는 멍 때리고 앉아 봄바람을 쐰다.

막심 고리키의 에세이집 <가난한 사람들>엔 이런 얘기가 있다. “신문은 구독 안 합니까?” “그딴 걸 왜 봅니까. 뭐 찻집에 가면 들춰보긴 하죠. 언제는 진격했다더니 또 퇴각했다고 말을 바꾸고.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우리 동네 한 녀석이 있는데 그놈 별명이 바로 ‘신문’입니다.” 그래도 시골에선 신문지가 꼭 필요하다. 활자가 아니라 그냥 종이로라도 말이다. 예전엔 들밥을 먹을 때 펼쳤고, 들불을 놓을 때도, 물건을 싸거나 보관할 때 여러모로 요긴했다. 아이들은 딱지를 접고, 종이 모자로 쓰고, 두툼하게 겹쳐 야구 글러브를 만들었다. 도배할 때 초벌로 신문지를 붙이기도 했다. 아예 쇠죽 쑤는 허드레 방 같은 데는 신문지가 벽지를 대신했다. 해묵은 소식을 끌어안으면서 설설 끓던 쇠죽방. 어릴 적 친구는 엎드리면 벽이 신문지였다고 했다. 사설을 읽고 자란 덕분인지 신문사 동네에서 밥벌이를 삼고 지낸다. 신문의 정기를 받았다고나 할까.

굴착기를 앞세운 4대강 강행 때부터 국정농단까지 커다란 제목들. 신문보기가 두렵기조차 했다. 수고한 분들 덕분에 무사히 올림픽도 마쳤고, 봄바람이 살랑거리는 남북한 소식은 반갑기도 하지만 말이다. 언젠가 남북정상회담 장면이나 헌법 제1조를 머리기사로 담은 경향신문 지면 같은 건 방바닥에다 깔고 짜장면을 먹기엔 숭고하고 거룩하기까지 했다. 그런 신문지는 버리지 못하여 어디 책꽂이 잡지 근방에 개켜져 있을 것이다. 반면에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고, 아궁이에 던져 넣고 싶은 신문지도 있다. 그런 신문사들은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한다는 그놈 별명에 다름 아니겠다. 재벌기업과 유착하여 혈맹을 과시하는 신문들, 추잡한 형님 선배님들의 신문. 그런 신문지는 저 밭에 할매들 궁둥이에서 납작 찌그러지길.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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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