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가야, 봄이 왔다.” 1915년 4월11일, 독일의 여성 미술가 케테 콜비츠의 일기는 이 한 줄이다. 그 전 해인 1914년 10월30일의 일기도 한 줄로 쓰였다. “당신의 아들이 전사했습니다.”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던 해 열 여덟 살이었던 아들은 케테와 남편 카를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원입대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결국 아들의 뜻을 꺾지 못하고 남편과 함께 아이의 입대를 승낙했던 밤, 그녀는 이런 일기를 남겼다. “저녁에는 나와 카를 둘뿐이었다. 울고 울고 또 울었다.”

“아버지들에게 특히 말하고 싶은 제 의견이 있다면 자식을 설득할 수 없다는 걸 꼭 좀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제 생각에 어떤 남자도, 부인 포함 일생 동안 단 한 사람도 설득하지 못하고 죽습니다. 근데 내 자식을 내가 어떻게 해 볼 수 있다고, 만들 수 있다고 믿거든요?”

성소수자 부모 모임 회원인 이모씨, 전숙경씨, 홍정선씨(왼쪽부터)가 지난 7일 전북 전주에서 열린 퀴어문화축제 행사장에서 성소수자를 상징하는 무지개 목걸이를 걸고 밝게 웃고 있다. 이재덕 기자

최근 포털사이트 다음에서는 성소수자들의 삶을 가족의 관점에서 다룬 책을 출간하기 위한 스토리 펀딩 프로젝트 ‘성소수자 자녀를 둔 부모들의 이야기’가 진행 중이다. 이곳에 게시된 게이 아들을 둔 아버지의 인터뷰를 읽으며 나는 케테와 그 남편이 아들을 말릴 수 없었던 밤을 생각했다.

케테 콜비츠의 아들이 참전한 것은 본인의 선택이고, 성소수자가 되는 것은 선택이 아닌 타고난 것이라 두 아들을 동일선상에서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전쟁이든, ‘증오를 자랑스러워하는 사람들이 있는 세상’이든 위험 속으로 걸어 들어가야 하는 자식을 보며 “내 자식을 내가 어떻게 해 보려는” 필사적인 노력을 벌인다는 점에서 부모들의 모습은 닮았다.

내 자식을 어떻게 해볼 수 있다고 믿지만 사실은 할 수 없는 것. 그것은 성소수자 부모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태교부터 시작해 대학입시까지 아니, 그 이후에는 자식의 결혼에까지 자기 바람을 기준으로 아이에게 좋은 삶을 살게 해주려는 게 대부분의 한국 부모들이 벌이는 악착같은 분투다. 그러나 아이들이 부모 뜻대로 자라지 않는다는 것, 결국은 아이가 태어난 모습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 긴 시간이 지난 뒤에야 깨닫는 자식 키우기의 이치다.

그런 점에서 성소수자의 부모들이 겪는다는 여섯 단계의 변화과정은 성소수자가 아닌 자녀를 둔 부모들도 자식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데 거울로 삼을 만한 지침이다(‘성소수자 부모모임’ 홈페이지 참조).

아이가 성소수자인 것을 알았을 때 부모의 첫 반응은 ‘충격’이다. 세상이 무너진 것같이 느낀다. 2단계는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라는 부정의 단계다. 아이의 바뀐- 사실은 부모만 모르고 있었던- 모습이 언젠가는 달라질 것이라고 도리질을 한다. 3단계는 죄책감이다. 자식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했을 때, “내가 죄가 많아서…”라는 한탄은 얼마나 많은 부모들이 토해내는 신음인가. 4단계는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라는 악다구니를 아이에게 쏟아내는 시간이다. 5단계는 결단이다. 아이를 인정할 것인지, 더는 그 문제를 얘기하지 말자며 입을 닫든지, 끊임없이 불화할 것인지 갈림길에 서게 된다. 어렵지만 6단계인 참된 받아들임에 이르는 부모들이 있다. ‘성소수자인 내 아이가 문제가 아니라, 성소수자를 차별하는 사회가 문제다’라는 자각을 갖고 아이 편에 서는 것이다. 한 인간이 자존감을 갖고 살아가는데, ‘네가 너여도 괜찮다’는 부모의 지지보다 더 큰 격려가 있을까.

21년 전 신생아실에서 처음 아이를 받아 안은 뒤 아이를 덮는 겉싸개 하나도 제대로 다시 여미지 못해 쩔쩔매던 순간, 나는 어느 누구도 부모 될 준비가 되어서 부모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할 수 있으면 피하고 싶지만 아이가 아프고 다치고 실패하며 자라가는 과정을 겪어내면서 모든 부모는 서서히 부모로 성장한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들에게 적대적인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자식들 옆에 선 성소수자 부모들은 부모 됨을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치열하게 살아내는 사람들이다. 더불어 이 시대를 살아가는 부모로서, 부모가 되어간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퍼뜩퍼뜩 내 자신에게 되묻게 하는 그이들에게 감사한다.

<정은령 | 언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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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