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 윤이상의 고향 통영 앞바다에서 건진 싱싱한 문어로 만든 냉채.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유학시절 즐겨 먹었을 스위스식 감자전, 김대중 대통령이 애호했던 신안군 가거도의 민어와 해삼초의 궁합 민어해삼편수, 정주영 회장의 소떼로 잘 알려진 충남 서산목장 누렁소로 만든 한우숯불구이, 노무현 대통령 생가가 있는 봉하마을에서 오리농법으로 지은 찰진 봉하쌀, 그리고 직접 평양에서 요리사를 모셔와 장만한다는 옥류관 냉면. 듣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 음식들. 남북정상회담장을 달뜨게 할 만찬상.

이곳 남도에선 친구들을 만나면 점심때 뭘 먹었냐부터 성큼 묻는다. 딸이 시집을 가면 가장 걱정하는 것이 시가는 도대체 뭘 먹고 사니였다. 반찬만 알면 모든 살림을 짐작할 수 있었으니까. 맛난 음식을 가리켜 ‘게미가 있다’라고 했다. ‘게미’란 곰삭은 깊은 맛을 의미한다. 게미 있는 맛은 기름에 튀긴 달달한 음식이나 혀끝에서만 요동치는 음식 맛이 아니다. 봄이면 쑥을 한줌 뜯어 넣고 야들야들한 보리 순을 뜯어설랑 홍어 내장과 함께 끓인 홍어애국을 먹었다. 코가 뻥하니 뚫리고 입안 천장이 홀라당 벗겨지는 맛. 한번 게미 입맛에 빠지면 호남선 열차에 자주 올라타게 될 테다. 북조선 동무들도 헤어날 수 없게 될 이 게미 수렁.

하얀 국물에 둥둥 뜬 수육과 향긋한 파향을 호물호물. 밭에서 막 뜯은 상추, 부추, 쑥갓으로 쌈을 해서 입꼬리가 찢어지게 아그작아그작. 어디 음식점을 가나 건너편에서 벌어지는 이런 풍경. 어느새 나도 그중의 한명이 되고 만다. 나는 낙지 요리에 환장하고 오리고기도 즐기는 편. 쇠고기는 남이 사줘도 눈치를 좀 봐야 한다. 선의는 돼지고기까지이며, 쇠고기는 잘못 먹으면 속탈이 무섭지. 돼지고기는 사주면 얻어먹어도 무방하지만 오리고기는 제 발로 찾아다니라는 옛말이 있다. 광주엔 오리탕 골목이 유명하다. 인근 담양에도 맛집이 두어군데 있다. 오리고기보다 미나리나 쑥을 더 먹게 된다. ‘남도의 5미’라는 한정식, 보리밥, 김치, 오리탕, 떡갈비가 담양에 다 있다. 언젠가 평양 동무들이 우리 동네에 찾아오면 내가 한턱 쏴야지. 간첩은 빼고잉.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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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