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에 이루어진 남북 정상의 역사적인 만남으로 동토의 땅 한반도에도 봄이 오고 있다. 어렵게 찾아온 천재일우의 기회이니만큼 이 불씨를 잘 살려나갈 지혜를 민관이 함께 적극 모색해야 한다. 필자가 오랫동안 관여해 온 아시아-아프리카 작가 연대가 이 불씨를 살리는 데 의미 있는 공헌을 할 것이라 믿는다.

아시아-아프리카 연대의 원형은 1955년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반둥회의에서 구축되었다. 반둥회의는 냉전으로 인해 세계를 동서로 양분하던 흐름에 대한 아시아-아프리카식 저항이었다. ‘아시아-아프리카 문학열차 21’은 20세기의 반둥회의가 남긴 유산을 한편으로는 계승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극복하자는 취지를 담고 있다.

‘아시아-아프리카 문학열차 21’은 아프리카의 최남단 케이프타운에서 출발해 최북단 카이로까지 종단한다. 거기서 아시아가 시작되는 아라비아반도로 건너가 팔레스타인에서 인도 아대륙 그리고 동남아시아와 인도차이나를 거쳐 한반도까지 내달린다. 문학열차의 이 이동 궤적 안에는 과거 영국이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효율적으로 착취하기 위해서 고안한 3C(케이프타운-카이로-캘커타) 지역이 포함된다. 유럽의 후발 제국 독일을 이끌던 비스마르크의 3B(베를린-비잔티움-바그다드) 지역은 물론이다.

문학열차는 아시아-아프리카 각 대륙의 분쟁지역에 멈추어 서서 해당 지역의 대표 의제들을 논의한다. 남아공의 케이프타운에서는 인도양과 대서양의 만남, 해양문명과 대륙문명의 만남,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만남이라는 주제로 집단지성의 향연을 펼친다. 이 세 가지 주제는 모두 케이프타운의 역사적 배경과 연관성을 갖고 있다. 아시아-아프리카 작가들의 논의 과정에서 한반도가 귀담아 들을 만한 이야기들이 쏟아질 것이다.

다음으로는 아프리카 대륙 전체의 수도라 일컫는 요하네스버그로 향한다. 여기서는 전 세계의 뜨거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아프리칸 르네상스’와 ‘아프리카합중국(United States of Africa)’에 관한 흥미진진한 서사를 소개한다. 그리고 콩고의 킨샤샤로 간다. 열대의 엘도라도라 불리던 곳이 어떤 과정을 거쳐 식인종이 사는 ‘암흑의 핵심’(조지프 콘래드의 소설 제목)으로 둔갑하게 되었는지 살핀다. 이를 통해 분단된 남과 북이 서로를 ‘뿔 달린 도깨비’로 희화화하게 된 주술의 시간을 이해하게 된다. 문학열차는 나머지 분쟁 지역도 모두 동일한 방식으로 내달려 최종적으로는 한반도의 비무장지대에서 멈춘다. 그곳에서 반둥 이후 아시아-아프리카가 지난 70년 동안 옹골차게 응축하여 농익혀 온 평화의 메시지를 전 세계에 타전한다.

문학열차 21은 한국판 문화신작로를 만들기 프로젝트이다. 21세기의 한국이 의미 있는 세계화를 추진하기 위해서 어떤 방식으로 아시아 및 아프리카와 연대를 도모해야 하는가를 (인)문학적으로 고민하고 있는 기획이다. 한국판 문화신작로는 중국의 일대일로와 미·일이 주도하는 인도-태평양 모델과 다르다. 제국(帝國)적 중심을 추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힘이 센 특정 국가가 중심이 되고 힘이 약한 나머지 나라가 들러리를 서는 연대의 틀은 과거를 답습하는 낡은 틀이다. 한국판 신작로는 아시아-아프리카의 나라들, 곧 제국(諸國)들이 공히 수평적으로 연대하는 틀을 발굴해가고 있다. 이는 머지않아 세계시민주의 혹은 사해동포주의의 철학을 모범적으로 담아낸 이상적인 한 전범의 역할을 튼실히 수행할 것이다.

<이석호 | 카이스트 대우교수·(사)아프리카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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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