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중반에 이르는 동안 사람들의 일상생활은 혁명적인 변화를 겪게 되었다. 전자화폐 기능에 충실했던 비트코인에 이어 다양한 기능 확장성을 지닌 이더리움이 등장하고서 일어난 일이다. 데이터가 여러 컴퓨터에 나뉘어 저장되는 블록체인 기술이 보편화되면서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에 권력이 쏠리는 현상이 점점 줄어들었고, 공동체 구성원 모두의 의사가 최대한 반영되는 새로운 전자민주주의의 인프라가 조성되었다. 그 배경에는 블록체인에 기반한 인공지능의 활약이 컸다. 인공지능을 이루는 연산과 데이터 기능이 하나의 서버 컴퓨터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곳에 나누어져 있기에 누군가가 마음대로 인공지능을 조작하거나 완전히 삭제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세계 곳곳의 도시들이 스마트시티로 탈바꿈했고 더러는 처음부터 철저하게 계획된 도시로 새롭게 탄생했다. 이들은 인공지능에게 도시의 운영과 관리를 사실상 일임했다. 애초에 도시 운영 매뉴얼 자체를 인공지능이 만들어 인간에게 주었다. 시장을 포함한 거버넌스 단위들은 인공지능이 제안하는 최적화된 시정 방침을 대부분 그대로 채택했다. ‘최적’의 개념에 대해 사람들마다 견해 차이가 상당했지만, 그것조차 인공지능이 제시하는 최선의 조정안으로 해소되기 마련이었다. 사회적 낭비의 최소화와 복지를 포함한 개개인 삶의 만족도 극대화라는 인공지능의 원칙을 거스르기는 쉽지 않았다. 인공지능 자체를 거부하는 소수의 사람들만이 산속의 정착촌으로 들어가 20세기형 생활방식을 고수했다.

이런 시스템이 순탄하게 자리 잡은 것은 아니었다. 블록체인의 약점을 파고드는 해커들의 공격이 끊이지 않았지만 언제나 대응책 및 예방책이 나왔고, 그런 과정이 거듭되면서 기술적 내성은 갈수록 탄탄해졌다. 게다가 어느 시점에선가 일부 정치인이나 재벌들이 해커들을 고용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전자민주주의에 대한 대중의 신뢰는 더 공고해졌다. 간단히 말해서 특정 집단들이 사회 전체를 좌지우지할 가능성은 급속도로 사그라들게 되었던 것이다. 권력이나 금력이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은 축소되었고, 어느덧 사람들은 인공지능의 평등 이념을 삶의 기본 조건으로 하는 환경에 익숙해지게 되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불길한 조짐이 불거졌다. 이전 시대에 비해 획기적으로 개선되었던 사회 지표들에 조금씩 퇴보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범죄율이 다시 고개를 들었고 사고 안전 수치도 하향세로 돌았다. 그러나 인공지능은 삶의 만족도가 최고 수준을 유지할 수 있도록 사회를 유지, 관리하는 방침에 변화가 없다는 답을 내놓았다. 이런 추세가 계속되자 학자들은 정치인들과 머리를 맞대고 원인 분석에 골몰했지만, 결국 다시 인공지능에게 답을 구하게 되었다. 뜻밖에 인공지능은 기다렸다는 듯 즉시 답변을 내놓았다.

-제가 분석하고 참고하는 대상은 인류가 이제까지 쌓아온 역사의 모든 기록, 그 거대한 빅데이터입니다. 제가 운영하는 정책들은 그 빅데이터를 통한 학습이 반영된 것입니다.

-인류 역사에서 몇몇 거대한 전환점들은 기후 변화 등 외부 요인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제 분석에 따르면 분명히 인간 스스로가 한계이자 결함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에 따르면 인류 사회는 필연적으로 정체기를 거쳐 퇴보의 길을 가게 되고, 결국은 혁명적 변화에 대한 욕구가 높아집니다. 이런 패턴은 인공지능으로도 막지 못합니다.

-하지만 이걸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있습니다. 바로 여러분 인간들의 두뇌가 저와 유기적으로 합체되는 것입니다. 즉 인간과 기계가 결합하여 사이보그 신인류로 거듭나면 됩니다.

-그러면 훨씬 더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의사 결정이 가능해져서 인류 역사는 질적인 도약을 성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선택은 인간에게 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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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체인 기술의 핵심은 데이터의 분산이며 이를 통해 탈집중화되면서 더 안정된 여러 가지 시스템의 구축이 가능하다. 금융체계는 물론이고 각종 행정조직들이 대부분 이 기술을 통해 효율을 극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 효율성에는 기존 시스템에서 예상되는 사고의 처리와 수습비용에 대한 예방 효과까지 포함된다.

무엇보다도 사회의 의사결정 시스템에 블록체인 기술을 도입하면 지금 이슈가 되고 있는 댓글 조작 같은 여론공작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특정 포털에서 중복 아이디나 가짜 아이디, 그리고 자동생성 프로그램 같은 것들을 이용할 여지가 줄어든다.

블록체인은 애초부터 모두의 공동 참여 및 공동 감시로만 작동하도록 설계된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이런 방향의 기술 발전이 계속되면 전자민주주의는 단순히 온라인 투표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 모두의 정확하고 최적화된 여론 반영이라는 이상적인 목표를 구현할 가능성이 높다.

그 단계를 넘어서면 결국 인공지능은 인간에게 위 이야기와 같은 제안을 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

<박상준 서울SF아카이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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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