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술은 사람이 사람을 돌봐주는 참 아름다운 행위라 생각한다. 위급한 사람의 생명을 구할 때면 절로 감탄이 나온다. 개인적으론, 가족이 입원했을 때 주치의의 헌신적 진료를 기억한다. 병실을 오가는 다른 의사들 역시 혼신을 다했다. 가끔 병원에서 환자들이 의사에게 꽃다발을 주는 장면도 보았다. 그 고마움을 어찌 다 전할 수 있으랴.

그러다 의사가 완전히 다른 이미지로 다가올 때가 있다. 지난 일요일 의사집회에서 열변을 토하는 의사협회 지도부의 모습이 그러하다. 우리는 일반 시민과 다른 특권인이라고 과시하는 듯하다. 솔직히 나의 느낌이 그렇다.

“하나를 내어주고 둘을 내어주다가 결국 모든 것을 내놓으라고 하는데 무엇이 두렵습니까? 더 잃을 게 없는 자들은 두려울 게 없습니다.” 의사협회 회장이 회원들에게 집회 참여를 독려하며 보낸 서신의 일부이다. 누구든 이 정도로 절박함을 호소한다면 마음으로 공감해야겠지만, 난 오히려 거북하다. 하루하루 어려운 여건에서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에겐 기가 찰 표현이다. 묻고 싶다. 정말 잃을 게 없으신가?

얼마 전 의협 집행부가 ‘더 뉴 건강보험’이란 제목의 문서를 공개했다. 의협이 제안하는 건강보험 개혁안인데, 민간보험을 축소하고 건강보험을 강화하자는 다소 획기적인 내용이다. 이를 위해선 건강보험 재정을 확충하자며 국고지원금 확대, 유해 상품에 대한 건강부담금 신설 등 구체적 방안도 제시했다. 반가웠다. 내가 바라는 건강보험 개혁의 방향과 비슷했으니.

그런데 이해할 수 없는 주장이 뒤따른다. 비급여의 급여화를 반대한단다. 건강보험의 낮은 보장성이 광범위한 비급여에서 비롯되기에 건강보험을 강화하자면 비급여를 급여로 전환해 환자의 본인부담금을 낮춰야 하는데도 “현행 비급여 항목의 대폭 존치”를 요구한다. 정말 나의 논리체계에선 따라가기 어려워 묻는다. 비급여를 놔두고서 어떻게 건강보험 보장성을 늘릴 수 있는가?

더 실질적 논점으로 들어가자. 왜 의협은 비급여의 급여화를 반대하면서도 건강보험 강화와 재정 확충을 강조하는 걸까? 의사 일부에서도 의구심이 제기되자 마침내 의협 회장이 회원에게 보낸 서신에서 속내를 실토한다. 재정투입 증가를 통한 수가 정상화! 건강보험 강화를 명분으로 재정을 확보하고, 이를 토대로 수가를 인상하자는 구상이란다. 모두가 예상했던 목표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 대부분의 병·의원은 사적 기관이다. 병·의원의 운영을 위해선 비용이 보전돼야 하고 수익도 필요하다. 일단 비급여의 급여화는 의사 수입을 감소시킬 것이다. 기존 거품이 제거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재인케어는 비급여의 급여화로 인한 수입 감소를 현행 급여진료 수가를 인상해 보전해준다는 원칙을 세웠다. 사실 시민단체의 입장에선 그리 내키지 않는 원칙이다. 사람들이 의사라는 직업을 선망하는 이유에는 고소득도 포함되는데, 문재인케어는 현행 수준을 보장하겠단다. 과연 우리 사회에서 의사의 적정 수입은 어느 정도여야 할까? 시민들은 차마 이 질문을 꺼내지 않는다. 비급여의 급여화가 원활하게 진행되기를 바라기에 수입 보전 원칙에 시비를 걸지 않는 거다. 그래서 물어야겠다. 의사들도 이 정도에서 타협해야 하는 것 아닌가?

진료권도 핵심 논점이다. 현재 비급여 진료는 전적으로 의사 재량에 속한다. 이후 급여로 전환되면 의사들은 진료비 청구를 위해 진료내역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제출해 심사를 받아야 한다. 자신의 진료를 같은 전문가가 들여다보는 게 불편할 수 있다. 나아가 과도하게 심사해 진료비를 삭감할 거라는 우려도 가질 수 있다.

이해한다. 정부와 의사 사이 불신의 골이 깊다면 더욱 그럴 수 있다. 그렇다고 비급여의 급여화 자체를 반대하는 건 논리도 명분도 취약하다. 어찌해야 할까? 의료 이용자인 시민들과 협력해 이 우려를 푸는 게 정공법이다. 시민들은 비급여의 급여화를 통해 과잉진료가 사라지길 바라지만 필요한 진료까지 침해받는 건 결코 원하지 않는다. 환자에게 요청되는 진료를 심사평가원이 인정해주지 않는다면 그건 환자 건강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적절한 진료권에 대해선 의사와 시민의 이해가 같다는 의미이다.

시대의 변화를 직시하자. 나라다운 나라, 병원비 걱정 없는 대한민국을 열망하는 촛불시민에게 비급여의 급여화는 너무도 당연한 개혁이다. 더불어 의사들은 수입이 보전되고 진료권도 존중받는 길이 있다. 의사들이 강조하는 진료과별 수가 균형, 필수의료 지원 등도 함께 추진하면 되는 일이다. 헌신적으로 환자를 돌보는 의사들을 기억하기에 거듭 묻는다. 이제 시민들과 손잡지 않겠는가?

<오건호 |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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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