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유독 어려워했던 말이 있는데 그건 바로 “쌀사다”와 “쌀팔다”이다. “쌀사다”는 쌀을 팔아 돈으로 바꾼다는 뜻이고 “쌀팔다”는 돈을 주고 쌀을 산다는 뜻이다. 사전에도 등재되어 있지만 이미 나부터도 쓰지 않는 말이 되었으니 내 부모 세대 어른들의 언어에만 남아 거의 폐어가 되어버린 말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에 나는 이 말을 많이 들었고 더러 내 입으로 내뱉기도 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어색한 데다 종종 “쌀사다”를 돈을 주고 쌀을 산다는 뜻으로 “쌀팔다”를 쌀을 팔아 돈으로 바꾼다는 뜻으로 잘못 쓰기도 했다. 그러니 결국 그 말은 내 말이 아니었던 셈이다.

그 시절에 내가 손꼽아 기다리던 날 가운데 하나가 닷새마다 돌아오는 장날이었다. 장날이 공휴일과 겹치면 어머니가 나를 시장에 데려가주지 않을까 싶어 잔뜩 기대에 부풀었고 매번은 아니었지만 서너 번에 한 번쯤은 어머니를 따라 시장에 갈 수 있었다. 시장으로 가는 길이 순탄하지는 않았다. 하루에 대여섯 번 다니는 버스를 놓치지 않으려면 시간을 잘 맞추어야 했고 가는 데 한 시간 오는 데 한 시간씩 걸렸으며 비포장 길을 덜컹거리며 달리는 버스에 앉아 있노라면 멀미가 나고 기운이 쏙 빠지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시장 초입에 이르러 버스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언제 멀미가 났느냐 싶게 발걸음이 가벼워지는데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으나 기름집에서 퍼져 나와 시장의 골목을 물들인 고소한 참기름 냄새부터가 가슴을 간질이는 거였다. 이제 두어 시간만 꾹 참고 어머니를 졸래졸래 따라다니면 호떡과 도넛 같은 주전부리부터 시작해 짜장면까지 먹을 수 있을 테니 신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시장에 도착해 어머니와 맨 먼저 들르는 곳은 단골 싸전이었다. 어머니는 집에서 가져온 쌀자루를 저울에 올려놓고 이 사정 저 사정 다 알던 싸전 주인과 신경전을 벌였는데 마침내 싸전 주인의 손에서 어머니의 손으로 얼마간의 돈이 건네지면 누구라 할 것 없이 밑졌다는 표정을 짓곤 했다.

그 돈으로 어머니는 장을 보았고 내게 호떡이나 도넛을 사주었으며 마지막 의식이라도 치르듯 버스 정류장 근처의 중국집에 들러 짜장면을 한 그릇씩 먹는 거였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 오르면 아쉬움도 없지 않았으나 포만감 덕에 대체로 행복했던 것 같다. 그런 기분이었기에 어머니의 쓸쓸한 표정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장바구니를 발치에 두고 차창 밖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얼굴에 깃든 우수가 나로서는 기이할 뿐이었다.

세월이 흐른 뒤 돌아보면서 그 시절에 내가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어머니의 머뭇거림들, 양품점이나 미용실이나 화장품 가게처럼 어머니의 마음을 사로잡았을 곳들은 들르지 못한 채 오직 가계에 소용되는 물목들을 갖춘 상점들만 다니면서, 그것도 한 푼이라도 더 적게 들고 더 좋은 물건을 찾아 발품을 팔아야 했던 어머니의 심사를 조금은 헤아릴 수 있었지만 무엇보다 자주 떠올리게 되는 건, 장날 아침이면 어머니가 그날 구입할 물목들을 헤아리고 비용을 셈한 뒤 필요한 쌀을 사려면 쌀을 얼마나 가져가야 할지를 결정하거나 이번에 쌀사면 다음번에 쌀팔 일이 생기는 건 아닌지를 걱정하는 모습이었다. 내게는 그 말이 어리둥절할 만큼 어렵기도 했거니와 그 어려운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당신이 신기하기도 했다.

‘쌀’이라는 말에 쌀의 의미도 있고 돈의 의미도 있다는 건 나도 알았다. 그러나 서로 다른 의미를 지닌 이 말을 한 문장에 아울러서 쓸 수 있으려면 쌀이 곧 돈이고 돈이 곧 쌀이지만 쌀은 돈이 아니고 돈은 쌀이 아니라는 걸 체득하고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쌀과 돈 앞에서 절망해 본 사람들만이, 쌀과 돈 앞에서 피눈물을 흘려 쌀이 쌀인 동시에 돈이고 돈이 돈인 동시에 쌀임을 너무 잘 알아 잠든 동안에도 잊은 적 없는 사람들만이 자연스럽게 쓸 수 있는 말인 듯하다. 삶이 깃든 모든 언어가 피멍이 든 것처럼 보이는 이유도 그래서인 듯하다.

<손홍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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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