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벙첨벙 개울을 지나 집으로 오는 길엔 장바구니 가득 아이스크림. 냉동고에 넣어두고 생각나면 꺼내먹을 작정으로다가. 커피 마니아 고종황제는 아이스크림도 맛보았을까. 물뼉다구라는 옛 이름은 재미있다. 설탕물을 얼려서 먹을 때 물뼉다구라 했다던가. 언젠가 요코하마에 갔을 때 바샤미치 거리를 구경했다. 일본은 개항과 함께 아이스크림을 처음 만나게 되는데, 일본 최초로 가로수길에 가스등이 설치되고 가게에선 아이스크림도 팔았단다. 한 곳에서 벚꽃 아이스크림이란 걸 먹어봤다. 하도 조그만 컵에 담아주어 혀끝만 잠시 얼얼하고 황홀했다. 우리도 개항하면 떠오르는 인천이나 부산으로 아이스크림이 상륙한 것은 언제일까. 초콜릿, 콜라와 함께 아이스크림은 서양문물을 대표한다. 시골엔 아이스크림 가게가 없으니 서울 가면 일부러 찾아가 사먹게 되는데, 우와! 탄성을 지르면서 촌놈 호강을 해본다.

나 어려서 께끼 장수라고 있었다. 아이스께끼 통을 짊어지고 다니며 동네 아이들을 홀리던 사람. 동화 속에 나오는 ‘피리 부는 사나이’ 같았어. 졸졸 따라다니는 아이들을 꼬리로 달고 동네를 한 바퀴 돌고선 탈래탈래 빈 통으로 고개를 넘어갔지. 여름이면 내내 그를 기다렸다. 폴 세잔의 그림 ‘과일 접시가 있는 정물’은 여름에 꼭 맞는 풍경화. 툇마루나 대살을 엮은 평상에서 가족들과 수박이나 참외, 딸기 같은 제철 과일을 집어먹으며 여름을 났다. 거기다가 께끼라도 하나 입에 물게 되면 전율할 만큼 행복했지. 정말 행복이란 거창한 무엇이 아님을 더 말해 무엇하랴. 녹아 흐를까봐 혀로 살살 단속을 해가면서 께끼를 음미하던 날의 소박한 기쁨. 께끼 장수가 사라진 뒤로 내 소박한 기쁨도 한 가지 사라지고 말았다.

에어컨을 아무리 펑펑 틀어도 시원하지 않은 시절이어라. 손쉽게 구할 수 있게 된 아이스크림은 여름의 별미가 아니게 되어버렸다. 다시는 만날 수 없는 께끼 장수. 미루나무 신작로를 따라 걸어오던 그를 마중 나가던 아이들도 함께 사라지고 없다. 아이스께끼! 아이스께끼! 골목에서 나던 그 소리. 문득 환청이 되어 들리는 듯해라.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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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