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공동정범>은 용산참사 이후 살아남은 철거민들이 어떻게 상처와 싸우며 살아가는지를 담아낸 다큐멘터리 영화다. 한 사람 한 사람 아픔의 종류와 정도, 그것에 대처하는 방식이 달랐다. 영화가 던지는 묵직한 물음을 생각하느라 당시엔 마음 한쪽에 담아뒀지만, 갈수록 오롯하게 커지는 장면이 있다. 바로 주인공 중 한 분인 김주환씨가 거주하는 옥탑방이 등장하는 장면이다. 2013년 1월 출소한 이후 그는 심각한 후유증을 겪었다. 머리에서부터 귀 안으로 벌레가 기어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 계속돼 에프킬러를 뚝뚝 흘러내릴 정도로 귀에 뿌려대곤 했다. 술을 마셔도 가슴이 너무 답답해 밖으로 나가 30분 동안 고함을 지르기도 했으며, 만취 상태에서 택시기사와 싸우고 경찰서에 끌려가 웃통을 벗다가 수갑이 채워지기도 했다.

영화 <공동정범> 스틸 이미지

점점 혼자 사는 옥탑방 안으로 고립되는 그의 주변으로 식물들이 하나둘씩 늘어났다. 처음엔 아무것도 할 게 없으니 뭔가 소일거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화초를 기르기 시작했다. 화초들은 곧 텔레비전 위에까지 올라갈 정도로 실내를 꽉 채웠고, 창밖 옥상엔 2열, 3열로 줄지어서 자라고 있었다. 그는 화초가 좋은 이유에 대해 말했다. “살아 있는 거, 배신 안 하는 거, 이건 내 손만 타면 좋아라 하고 잘 크잖아. 그리고 말을 못해서 좋고. 잠자거나 할 때 조용하게 있고 싶을 때는 정말 좋거든.”

식물은 생명이다. 살아 있는 것 그 자체가 위안을 준다. 흙을 밀어내고 움트는 새싹, 자고 일어나면 한 마디씩 자라 있는 모습은 식물이 살아 있는 생명체라는 진실을 알려준다. 손을 대면 그 생명감이 내 몸에 옮겨오는 기분이 들었을까. 한때 동지였지만 갈등을 빚고 반목하는 것이 사람이다. 식물은 이런 관계의 불안에서 사람을 해방시킨다. 식물과의 관계에서 사람이 상처받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배신 안 하는 것이라는 그의 말이 의미하는 바다. 무엇보다 그를 위안해준 것은 식물이 말을 못하는 점이다. 말은 아마 그에게 칼이나 총 아니었을까. 말은 너무나 깊숙하게 인간을 찌른다. 생각을 어지럽히고 의심하고, 분노하고, 좌절하게 만든다. 식물의 세계엔 소리가 없다. 그 대신 새와 벌과 인간이 날아든다. 벽을 보고라도 뭔가를 얘기하고 싶은 인간이 말을 걸기 딱 좋은 게 식물이다.

최근 반려식물이라는 말이 많이 들려온다. 반려동물에 대한 우리의 지극한 애정으로 미루어 짐작해볼 때 식물을 반려로 삼는다는 것은 화단을 가꾸는 이상의 무언가가 인간과 식물 사이에 싹트고 있다는 이야기다. 부르기 쉬운 이름을 붙여주고, 이름표도 만들어 옆에 꽂아준다. 매일 한 번 이름을 불러준다. “잘 잤어?” 하고. 생물학적 체계에서 꽃기린은 빨간색 꽃이 피고 날카로운 가시가 있으며, 잘 죽지 않는 기르기 쉬운 화초다. 어떤 꽃기린도 이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며 동등한 만큼 개체적 차이는 존재할 수 없다. 그러나 이 꽃기린에 이름을 붙여주면 단번에 ‘유일한 무엇’이 되어버린다. 그런 내 친구가 함께 계절을 보내며 훌쩍 자란 모습을 보여줄 때 남다른 동질감이 생겨난다.

물과 햇빛, 잘 통하는 공기가 식물이 바라는 모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유지하지 못해 많은 식물을 키우다가 죽인다. 겨울이 지나가고 나면 빈 화분이 많이 생긴다. 식물을 키우는 것은 매일 식물을 살피는 일이다. 식물은 빛깔과 윤기와 탱탱함으로 말한다. 쭈글쭈글함과 축 처짐과 고개 숙임으로 말한다. 그 말을 듣는 연습이 되어야 식물과 살 수 있다. 생명의 본질은 대화다. 꽃은 벌과의 대화이고, 뿌리는 물과의 대화다. 물을 주고 창을 여닫고 화분 위치를 옮겨놓는 것이 대화다.

과거엔 이런 일이 일도 아니었다. 집과 마을이 자연과 연결돼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식물들이 섬처럼 자란다. 많은 반려식물이 집집마다 있지만 이것들은 연결돼 있지 않다. 이 연결성이 생명에겐 중요하다. 반려식물이 죽지 않으려면 이웃집에 친구가 생겨야 한다. 서로 만나지 못해도 인간과 인간이 식물을 소재로 대화를 나눠야 한다. 그래야 연결성이 생기고 연결성은 인간의 주의력도 향상시킨다. 나는 길거리를 지나다가 식당 같은 곳 담벼락에 나와 있는 화분들의 옹기종기한 모습을 보면 그것을 가꾼 사람의 삶이 보이는 것 같아서 잠깐씩 발길을 멈추곤 한다.

식물과의 대화가 간절했던 김주환씨는 어떻게 지낼까. 그의 근황이 궁금해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전혀 나오는 것이 없다. 그는 잘 살고 있을까. 그의 식물들은 안녕할까. 그의 옥상이 식물들로 가득 차서 ‘공동정범’이었던 그의 동료들이 빨리 억울함을 풀고 삼겹살 파티를 한 번씩 열 수 있는 루프톱 공동정원이 되었으면 좋겠다.

<강성민 | 글항아리 대표>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