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학에서는 “사람이 개를 물었다”라는 문장을 반드시 배운다.

개는 사람을 물지만 사람은 개를 물지 않는다. 그러므로 개가 사람을 무는 것은 뉴스가 아니다. 하지만 어느 날 사람이 개를 물었다면 그것은 뉴스가 된다.

백주대낮에 한 남자가 다른 남자를 향해 망치를 휘둘렀다. 요즘 뜨는 동네 서촌에서 10년 전부터 족발장사를 하던 부부, 그리고 뜨는 동네에서 부동산 투기를 위해 건물가격의 거의 대부분을 대출받아 그 건물을 사들인 건물주. 297만원이던 월세를 1200만원으로 올리라는 요구가 전해졌고, 월세를 낼 수 있는 계좌번호는 3개월 동안 알려주지 않았다. 그리고 이어진 건물주의 명도소송. 법은 건물주의 손을 들었고 부부는 하루아침에 불법을 저지른 사람이 되었다.

부부를 돕겠다고 시인, 음악가, 연구자, 시민단체 활동가, 종교인, 성소수자, 채식주의자, 대학생 등 오도 없고 열도 없는 사람들이 모였다. 12번의 강제집행이 있었고, 남편은 손가락 4개가 잘리다시피 하는 부상도 입었다. 급기야 얼마 전에는 새벽 3시에 사람들이 있는 건물을 H빔을 실은 지게차가 들이받았다. 건물주는 부부를 끊임없이 조롱하고 모욕했고, 연대를 하러온 사람들에게도 부지런히 악담을 퍼부었다. 건물주의 아들까지 나서 조롱잔치에 한몫을 더했다. 1인 시위를 하러 건물주의 집을 찾아가던 남편을 보고 건물주는 승리를 선언하며 ‘너희 모두를 고발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남편은 결국 망치를 들고 달려 나갔다.

문제는 우선 제도의 영역에 있다. 현행 상가임대차보호법은 임차인의 권리를 딱 5년 동안만 보호한다. 이조차도 아예 없던 것이 2013년 법 개정을 통해 생겨난 것이다. 그러자 5년이 지난 세입자만을 노려 권리금을 갈취하고 쫓아내는 하이에나들이 생겨났다. 자영업자가 개업 1년을 버티는 것도 버거운 시절에 5년은 장사에 들어가는 수많은 투자금을 회수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그래서 보호기간을 10년으로 늘린 개정안이 미봉책으로나마 해법으로 제시되었다. 그러나 23건의 개정안은 자유한국당의 극렬한 반대 때문에 국회에서 모두 깊은 잠에 빠져 있다.

누군가는 이 사건을 두고 ‘그래도 폭력은 안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에게 쏟아진 모욕과 폭력은 모두 합법이었다. 부부와 연대인들을 폭행하고 조롱했던 이들 중 그 누구도 잡혀가거나 재판을 받지 않았다. 경찰은 멀뚱히 경비를 서고, 오히려 연대인들을 채증했다. 집행관은 건물주가 고용한 사설용역을 방조하고 어떤 폭력행위도 제지하지 않았다. 박원순 서울시장마저 법이 그렇기 때문에 도울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그사이 부부는 자신의 삶은 물론이고 오로지 선의로 자신을 돕겠다며 나선 이들까지 위협당하고 다치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사람이 사람을 때려선 안된다. 사적인 폭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해선 안된다. 하지만 국가와 법과 사회가 모두 등을 돌린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법이 단지 모르는 사람을 골탕 먹이기 위해서 존재한다면, 왜 우리는 계속해서 그것을 존중해야 하는가?

2012년을 기준으로 개인 토지의 55.2%가 상위 1%의 소유이고, 법인 토지는 77%가 상위 1%의 소유다. 상위 10%로 넓히면 둘 다 90%를 너끈히 넘는다. 100명이 살아가야 하는 땅을 10명이 갖고 있고, 그중에서도 1명이 절반을 넘게 가지고 있는 꼴이다. 이미 이것만으로도 초현실적이지만, 재산권을 보호한다는 명목하에 쫓겨나는 사람들을 국가가 방관하고 있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90%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거나 공중부양을 할 수 있는 수가 아니다. 사고파는 사람이 아니라 살고 있는 사람이 주인이 되어야 하고, 무엇보다도 이 극단적인 소유구조 자체를 바꿔야 한다. 국토의 90%를 사유재산이라는 이름의 사실상의 치외법권으로 남겨둘 것이라면, 힘없는 사람들은 지금부터라도 내손에 맞는 망치를 찾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개를 물었다. 매일같이 개에게 물어뜯기던 한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 발버둥을 치던 어느 날, 추방당한 땅에서.

<최태섭 문화비평가 <잉여사회>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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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