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소중한 경찰 한 분을 어이없게 잃었다. 고인의 유족과 동료들에게 깊은 애도를 전한다. 훈련받고 무장한 경찰마저 중증정신질환자에게 이런 일을 겪는다면 일반 시민의 불안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무조건 격리해야 한다는 목소리엔 분명 편견의 영향이 있지만 국민들의 안전에 대한 정당한 요구에는 대책을 제시해야 한다.

물론 이번 사건이 정신질환과 관련이 있는 것인지는 좀 더 조사가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경찰의 조사에 따르면 조현병으로 입원한 경력이 있었고 이미 한 명을 폭행하여 사망에 이르게 한 전력이 있으며, 퇴원 후 노모와 생활하며 최근 약을 먹지 않으면서 증상이 악화되었다고 보도되고 있다. 이러한 보도가 사실이라면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다. 재발과 타해 등을 막을 수 있는 여러 보건복지 정책이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시행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치료 중인 환자의 위험성은 매우 낮지만 중증정신질환의 특성상 병식이 부족한 경우가 많고 외래치료는 흔하게 자의로 중단된다. 사회가 이를 해결할 시스템을 갖췄는가, 모든 책임을 보호자에게 맡겨놓는가가 운명을 결정한다.

선진국이었다면 이미 타해의 병력이 있는 환자라면, 당연히 외래치료명령제의 대상이 되어 집에서 ‘퇴원 후 사례 관리’나 ‘지역사회의 적극적 치료서비스’를 받게 된다. 퇴원 후 사례 관리는 입원 병원의 의료진이 집을 찾아가서 상담하고, 약을 거부하면 한 달 이상 장기지속형 주사제를 투여하는 것으로 건강보험 서비스 항목이다. 이는 미국, 유럽은 물론 대만에서도 20년 전부터 시행하고 있다. 미국의 지역사회 적극적 치료서비스는 중증환자 100명당 정신과 의사, 정신건강 간호사 및 사회복지사 10~15명이 팀을 구성해 방문하여 입원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런 서비스 덕에 중증정신질환의 재발과 입원율은 매우 낮다. 혹시라도 거부하면 지역사회 응급팀이 출동하고, 필요하면 경찰과 연계하여 지정 병원에 입원시켜 안전을 확보한다. 더 놀라운 것은 많은 정신장애인이 이런 서비스의 동료 상담가로 정당한 대가를 받고 직접 참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정신질환이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 부끄럽지 않은 사회가 된다. 또한 정신과 환자를 조기에 발견하고 대처하기 위한 인식 개선 교육도 활발하다. 심폐소생술을 배우듯 학교와 직장, 지역사회에서 정신질환이 무엇인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에서 자·타해 위험이 있는 경우 지속적인 치료를 강제하는 외래치료명령제는 법조문으로만 존재하고 실행단위가 불명확해 시행 건수가 거의 없다. 중증환자가 퇴원한 이후에는 지역사회에 사례 관리를 제공하는 정신건강복지센터뿐으로, 이들을 돌볼 사회복지시설이 부족하고 의료진이 고위험군의 가정을 방문하여 투약과 스트레스 관리를 돕는 의료서비스는 전무하다. 보건복지부가 올해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커뮤니티케어에도 정신질환의 문제는 포함되어 있지만 병원과 지역사회의 중간 시설인 중간집에 대한 것 외에는 눈에 띄는 대책이 없고 커뮤니티케어를 지원할 건강보험 개선방안은 언급조차 없다.

국민소득이 3만달러대에 진입하면서 정신건강에 대한 국민의 관심과 인식은 높아져왔고, 현 정부 100대 국정과제에 정신건강전달체계 개선, 자살 예방, 재난 정신건강, 치매 등 4가지가 포함되었다. 한국형 자살 예방 게이트키퍼 교육은 전국에서 56만명이 받았고 자살을 줄이기 위한 언론지침을 언론인과 전문가들이 함께 만들고 지키려 노력해왔다. 치매국가책임제가 시행되고 국가재난트라우마센터도 올해 발족했다. 그런데 유독 중증정신질환에 대한 대책과 서비스는 별반 변화도, 개선책에 대한 발표도 없다.

미국에서 중증정신질환에 대한 적극적인 서비스가 마련된 것은 1970년대 탈수용화가 시작된 이후 중증정신질환과 관련된 충격적 사고를 몇차례 경험한 뒤였다. 중증정신질환자 중 타해를 저지르는 환자는 극히 소수이며 전체 환자의 범죄율은 일반인보다 낮다. 중증정신질환의 특성을 이해하고 보호자의 부담을 줄여주고 이들이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커뮤니티케어 시스템을 만들 것인가, 아니면 또 정신질환자를 비난하며 격리하여 결국 이들이 숨게 만들고 치료와 지원을 받는 길을 막을 것인가? 이대로라면 아픈 사람을 나쁜 사람으로 만드는 시스템이다. 더 이상 아픈 사람을 비난하지 말고 나쁜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 이는 의료, 복지와 함께 국민 안전 차원에서도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다.

<백종우 |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신보건이사·경희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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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