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은 길모퉁이 피어난 들꽃 같은 사람이다. 와글와글 쏟아지는 빗속에서도 눅눅해진 종이에다 시를 적는다. 백야로 하루가 길면 긴 시간만큼 시를 쓴다. 종이가 떨어지면 나무 그늘에다가도 쓰고, 예수처럼 흙 마당에다 쓰고, 모래사장에다도 시를 쓴다. 코끼리떼 돌고래떼 구름에다가 시를 쓴다. 병든 자여 내게로 오라고 말한 고물장수도 금방 시를 쓸 수 있다. 뱀 장수도 이제 그만 뱀을 잡고 시를 써라. 첫 사람 아담과 하와가 한국인이었다면 선악과는 먹지 않고 몸에 좋은 뱀을 잡아 드셨을 거라는 얘기. 그렇다면 기독교는 태어나지 않았을 거야. 힛~.

빙하의 나라 아이슬란드를 한 바퀴 도는 일정을 해보고 있다. 이 나라에선 빙하를 요쿨이라 부른다. 호수 위에 빙하가 가두어져 기이한 형상이다. 헝클어진 머리칼이 쏟아지듯이 소낙비가 불쑥 내리기도 하고, 아무리 숙부드러운 바람이라도 뛰던 말들조차 휘청한다. 한국에서 싹쓸바람 태풍에 이골이 난 사람이라 나는 끄떡도 않아.

담쌓고 벽치던 사람도 이곳에 와보면 정말 뭔 짓을 하고 사는지 뉘우치게 된다. 대다수가 도시에 살고 시골엔 인적이 드물다보니 여행자를 보면 무턱대고 반갑다. 겨우 밥풀이나 떼는 구입장생이라도 커피와 빵을 아낌없이 나눈다. “더 깊이 들어가고 싶다. 새 둥지에 이곳의 땅을 담아 그걸 먹을 수 있다면 접시의 반만 먹은 뒤 밤새 편안히 잠을 자리라.”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의 소설가 엘리자베스 길버트가 인도의 아쉬람을 기억하며 쓴 시가 이 땅에서도 유효하다. 외로운 곳에서야 더 깊이 들어갈 수 있고, 더 깊이 아끼게 되는 법.

어촌엔 등대가 밤을 밝힌다. 당신이 보고 싶으면 등대의 불빛을 보면 된다. 누군가 밤새 사람을, 사랑을 지켜주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속이 뭉클해진다. 시인이 당신의 사랑을 대신하여 밤새 연시를 써 내리는 것처럼. 삶이 아무리 차갑고 황폐해도, 퉁명스럽고 무뚝뚝한데도 방실거리는 미소와 같은 등불이 남아 있다. 내일도 두렵지 않은 것은 등대가 있기 때문. 등대 같은 당신과 등대 같은 시인이 있기 때문이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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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