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일선에 등용된다면 무엇부터 하겠느냐는 제자 자로의 질문에 공자는 “그야 당연히 이름부터 바로잡아야지!”라고 답했다. 공자 사상의 핵심 가운데 하나인 ‘정명(正名)’의 출처다. 정책 하나에 많은 이들의 생사가 오갈 수 있는 것이 정치다. 그 긴박한 현안들을 앞에 두고 기껏 이름을 바로잡는 일이 무슨 의미를 지닐 수 있을까?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몽상가의 답변이다.

1725년 조덕린이라는 인물이 영조에게 상소문을 올렸다. 학문 수양, 인재 선발, 백성 보위에 최선을 다하고, 사심이 아닌 공공의 도리를 실현하라는 등의 열 가지 건의가 담겨 있었다. 그리 새로울 것 없는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이 상소문으로 인해 조덕린은 일흔이 다 된 나이에 함경북도 종성으로 유배되었으며, 사후에도 극심한 공격을 당하다가 결국 순조 3년인 1803년에 관작이 추탈되고 말았다. 치열한 정쟁의 살얼음판 위에서 우여곡절 끝에 이제 막 왕위에 오른 영조에게 ‘정명’을 언급했기 때문이다.

왕에게 왕다워야 함을 강조하는 것은 자칫 정통성을 흔드는 의도로 비칠 여지가 있다. 반대파 인사들이 집요하게 문제 삼은 것은 바로 이 지점이었다. ‘정명’은 유가에서 보편적인 사상이지만 현실 권력을 상대로 했을 때는 도전으로 읽힐 수 있다. 이름이 정치권력에 의해 부여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정의사회 구현’을 표방한 정권이 얼마나 불의한 일을 자행했는지 이제는 누구나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시 그 ‘정의’가 실질에 부합하지 않는 이름임을 주장하는 것은,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었다.

공자의 답변을 들은 자로가 “어이구, 선생님 정말 실정을 모르시네요”라고 답답해하며 내뱉자, 공자는 말했다. “이름을 바르게 해야 진의가 잘 전달되고, 진의가 통해야 정책이 성사되며, 그런 뒤에 교육문화가 융성하고 형벌이 적절하게 시행되는 법이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모르게 된다.” ‘공정’거래위원회 간부가 은퇴 후 대기업 자리를 보장받는 나라, 금융 ‘감독’원이 행정부와 이해당사자들에게 휘둘리는 나라, 사법 독립의 수장 ‘대법원장’이 재판을 거래했다는 의혹을 받는 나라다. 실질과 다른 이름들이 대놓고 횡행하는 것이 현실이라면, 그런 사회에 필요한 것은 용감한 몽상가다.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송혁기 |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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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