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시대 교육이 중요하다고 외치면서 교육 정책과 교실 상황은 왜 거꾸로 가는 것인지요.” 엊그제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폴 김 교수(스탠퍼드대)가 한국 교육에 던진 일갈이다. 정답 맞히기를 훈련하는 교육이 아니라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해결해가도록 도와주는 교육이 필요한데, 우리의 현실은 반대로 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깊이 수긍하면 할수록 점점 더 조여오는 답답함을 어찌할 수 없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답답함은, 이 문제를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다는 데에서 비롯된다. 매우 잘못된 줄은 알겠는데 이젠 누구 탓을 할 수도 없을 만큼 고질이 되어 버렸고 해결의 실마리는 요원해 보인다. 학교도 정부도 대안을 내지 못하는 가운데 부모들은 자녀가 시험 잘 보기만 바랄 뿐이다. 하지만 학창 시절 몇 년 바짝 공부한 밑천으로 평생이 보장되던 때는 이미 지나갔으며, 안정적인 직장을 구해 본들 정년 이후 몇십 년을 더 살아야 하는 시대다. 더구나 가까운 미래조차 알 수 없을 만큼 우리 주변은 급변하고 있다. 이 답답함을 온전히 인정하고 우리의 출발점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 폴 김 교수가 강조한 ‘부모 교육’의 시급성에 주목하게 되는 이유다.

“자녀는 좋은 스승을 찾아 교육시키면서 정작 자신은 스승에게 배우려 하지 않는 것이 문제다.” 1200년 전 한유(韓愈)의 말이다. 그가 말한 스승은 일정하지 않고, 배움의 시기 또한 제한이 없다. 나이나 직위와 상관없이 의문을 해소해주고 분야에 따라 비전을 제시해줄 수 있는 이가 있으면 언제든 스승 삼는 것이다. 관건은 스스로 던지는 질문이 끊이지 않는지에 있다.

창의적인 질문을 던지며 남들과 다른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아이로 키우기 위해서 교육 시스템과 네트워크를 어떻게 바꿔나가야 할지 공동의 지혜를 모을 때다. 다만 배움이 우리 자신에게 무슨 의미인지 되묻는 일이 병행되지 않는다면, 여전히 이 답답함의 사슬을 끊기 어려울 것이다. 결과만 중시하는 교육에서 행복은 결과를 이룬 순간 잠시 머물다 갈 뿐이다.

지속적인 행복은 대상과 시기를 제한하지 않는 배움의 과정에서 누릴 수 있다. 배움에 의한 ‘나’의 변화를 끊임없이 추구하는 눈으로 자녀를, 우리의 교육을 다시 생각해 보는 것. 여기에서 실마리를 찾아가야 하지 않을까.

<송혁기 |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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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