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하는 모임에서 벌어진 일. 각자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해 고백하는 시간을 가졌단다. “손가락을 잘라야 할 성싶네요. 도박에서 헤어나질 못해요. 부인 몰래 많은 돈을 잃었습니다.” “나는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고 삽니다. 입만 열면 거짓말이에요. 오늘도 사실 거짓말하고 이 자리에 왔어요.” “나는 요즘 누구를 사랑하고 있어요. 배우자가 알면 둘 다 살아남지 못할 거예요.” 마지막으로 한 사내가 말했다. “나는 남의 말 하는 걸 좋아한답니다. 그것도 배나 부풀려서 말이죠. 이 자리가 파하면 동네방네 다니면서 떠들 일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흥분이 되네요.” 

사람들은 모였다 하면 남의 말 하길 좋아한다. 그만 한 재미도 없겠지만, ‘카더라 통신’에다가 ‘주관적인 오해’도 적지 않다. 시골사람들은 순박해서 최소한 뒤통수를 치지는 않는다. 양동이 가득 톱밥을 떠 난로에 집어넣고 불을 쬐는 시간. 오늘은 무슨 이야기를 나누면 좋을까.

소설가 임철우의 <사평역>에선 역장이 톱밥을 ‘바께스’째 부어놓고 이야기를 주거니받거니 한다. “첫눈 얘기, 지난 농사와 물가에 관한 얘기, 얼마 전 새로 갈린 면장과 머잖아 읍내에 생기게 된다는 종합병원까지 화제는 이어진다. 처음엔 역장과 농부가 주연이었지만 차츰 여자들도 끼어들게 된다. 그들 중 음울한 표정의 젊은 사내만이 끝내 입을 열지 않은 채로다. … 톱밥 난로의 열기가 점점 강하게 퍼져 오르고 있다.” 데모를 하다 유치장에 잠깐 갇히고, 그 후 학교에서 퇴학을 당한 대학생 청년. 젊은 날 내 모습 그대로여서 이 소설을 한참 사랑하였다. 소설엔 미친 여자도 등장하는데 기차를 타고 떠났다가 또 돌아오기를 반복한다. 그녀는 오늘 막차를 타지 않았고, 역 대합실에서 곤한 잠을 자고 있는 중이다.

겨울채비로 장작개비를 쪼갰다. 시꺼먼 연탄을 닮은 강아지, 아버지 고향이 시모노세키인 시바견 블랙탄도 놀러와 거들어 주었다. 시바 시모노세키. 무슨 욕 같아라. 남의 흉한 말, 남 얘기는 개한테나 들려주련다. 난롯가에 빙 둘러앉은 뒤엔 덕담부터 건네자. 또 ‘앞으로의 삶’에 대해 고민을 나눠보자. 우리에게 있어 진정 귀중한 시간은, 앞으로의 삶일 테니까.

<임의진 목사·시인>

'일반 칼럼 > 임의진의 시골편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디언 기우제와 첫눈  (0) 2018.11.08
샤바 샤바 아이샤바  (0) 2018.11.01
앞으로의 삶  (0) 2018.10.25
점순이  (0) 2018.10.18
굴뚝 연기  (0) 2018.10.11
단감과 맨드라미  (0) 2018.10.04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