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무슨 연유로 이민을 가게 되었는지는 알지 못한다. 다만 이국에서 산 지 오십여년이 흘렀고, 이국의 남자와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아 길렀고, 지금은 모국어보다 현지어가 더 익숙한 상태가 되었달 뿐. 모국에서 온 작가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을 때, 그녀는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고국의 시 하나를 읊어주었다.

한 송이 목화꽃을 피우기 위해 소쩍새는 봄부터 그렇게 울었나 보다. 목화꽃이 아니라 국화꽃일 텐데요? 무슨 국화꽃? 목화꽃이 맞아. 아니 국화꽃이에요. 그럴 리가, 내가 분명히 배웠다고, 학교에서, 교과서에 그렇게 써 있었어, 한 송이 목화꽃을 피우기 위해. 아니에요, 국화꽃이 맞아요. 설마, 왜? 왜 국화꽃이야? 시인이 그렇게 썼으니까요. 목화꽃이어야지, 그렇지 않고서야 소쩍새가 왜 울어, 그만큼 힘들었다는 거 아냐! 여기 살면서 그 시가 얼마나 힘이 됐는데, 아무리 힘들어도, 이 시련이 지나고 나면, 목화꽃이 필 거야, 나는 목화꽃을 피우고 있는 중이야, 그 생각 하면서 지금까지 버텼는데, 국화꽃이면 안되지. 국화나 목화나 꽃을 피우는 건 마찬가지잖아요. 그게 어떻게 같아?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국화랑 솜 만드는 목화랑.

그녀는 끝내 못 믿겠다는 표정이었다. 아니,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았다. 시인이 잘못했네, 목화꽃이어야지 국화꽃이라니. 농담과 웃음으로 논쟁과 사실 확인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사연도 거기서 끝. 목화꽃에 기댄 그녀의 개인적 체험에 대해 몹시 궁금했으나 묻지 못했다. 내내 그녀의 목화꽃을 생각했다. 왜 꼭 목화꽃이어야 했을까. 단지 비슷한 어감에서 비롯한 변형된 기억이었을까. 지금은 꽃집이나 인테리어소품가게에서나 겨우 볼 수 있는 목화. 하얗고 탐스럽고 포근한 목화.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건 거기까지였다.

엄마가 결혼할 때, 내 할머니는 이불 두 채를 해서 보냈다. 할머니 외가 목화밭에 가 솜을 따고, 씨를 일일이 골라내고 솜을 타서, 소창 속싸개와 옥양목 이불 홑청에 비단 껍데기를 앉혀 직접 꿰매 만든 것이었다. 옛날엔 다 그랬다고 엄마가 말한다. 한 채는 예비용으로 장롱 속에 모셔두었다가 손님이 올 때나 한 번씩 내고, 한 채는 신혼 때 잠깐 사용하다가 가벼운 이불과 침대로 대체된 뒤 역시 장롱 속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오랜 세월 장롱 속에서 눌려 있던 요와 이불은, 엄마가 새로 솜을 틀어 보료로 만들어서 내게 주었다. 나는 침대를 사용하는 대신 그 보료 위에서 잔다. 어릴 적에는 동네에 솜틀집이 한둘은 꼭 있어서, 어느 집이 정직하게 솜을 튼다더라, 어느 집이 캐시미어를 섞어 틀어준다더라 하는 정보에 따라, 수년에 한번씩 이불을 싸 짊어지고 솜틀집을 찾곤 했었는데. 그러고 보니 내 보료도 솜을 새로 틀 때가 되긴 했는데, 솜씨 좋은 솜틀집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지. 솜틀집에서 막 도착한 솜의 그 화사하게 푹신한 감촉을 다시 느낄 수 있을지.

영화 <노예 12년> 스틸컷.

목화에 대한 그녀의 심상을 들을 수 없었기에, 대신 같은 연배인 엄마에게 목화밭 추억을 물어보았다. 목화 얘기가 나오자 생기가 돈다. 외가에서 목화를 많이 심었어. 솜 터지기 전에 다래열매도 따먹고 그랬는데, 연한 아기열매를 먹으면 아주 달콤하고 맛있어. 몰래 따 먹지. 따 먹다 걸리면 큰일 나니까. 너무 익으면 딱딱하고, 연한 아기열매로 먹을 만한 걸 골라서, 몰래몰래. 그래서 더 맛있었나? 여름에 명밭무김치는 또 얼마나 맛있게. 무명 밭에 심은 열무로 만든 김치라는 말이야. 왜 그런지는 몰라도 무명 밭에 심은 무가 참 맛있니라. 여름에는 비만 오면 푸성귀가 다 녹아버리는데, 그건 안 그래. 생고추랑 보리밥이랑 같이 갈아서 자작자작하니 김치를 해 놓으면, 아삭하니 시원하니 진짜로 맛있어. 아, 목화솜 얘기를 물어본 건데, 다래 맛과 열무김치 맛 얘기라니, 온통 먹을 생각은 아무래도 유전인가보다. 엄마 먹는 거 말고 솜 얘기 없어? 

목화 날 때 보면, 다른 데서 목화를 사러 온다. 쌍암 사람들은 감이 많이 나니까 감을 지고 오고, 해룡 사람들은 말린 ‘뒤포리’를 지고 오고. 물물교환이지. 목화로 이불도 하고 옷도 해 입고 쌀도 바꿔 먹고. 원래 뽀얗게 예쁘게 퍼진 최상급 목화는 실을 잣고 나머지로 이불을 하는 건데, 네 할머니가 해준 이불은 실을 안 잣고 다 이불솜으로 쓴 거라고, 그러니 얼마나 좋아. 딸내미 혼수라고 신경 써서 그런 거지. 시골에서 누에도 쳤는데, 그걸로 비단 짜서 녹색물 진홍물 들여 끝동 달아 이불 껍데기도 씌웠단다. 고치 실 뽑을 때는 어릴 때 꼭 옆에 붙어 있었잖니. 번데기 얻어먹으려고. 물에 끓이면서 실을 뽑는데, 막 삶아서 먹으니 얼마나 맛있겠니. 아주 고소하고 달지. 징그럽다는 생각도 없었어. 실 뽑는 날은 번데기 먹는 날이다 생각하는 거지. 아, 결국 또 먹는 얘기다. 기승전맛.

목화를 생각하면 나는 이불보다 먼저 <노예 12년> 같은 영화가 생각난다. 흑인, 노예, 남부, 노동. 매질과 같은 단어들. 그리고 흑인연가의 선율이 뒤따라온다. 그것들은 직접경험에 의한 것이 아니라 듣고 배운 바에 의한 이성적인 연상작용이다. 목화에 솜을 붙이고 난 후에야 보료의 직접적인 감각으로 이어진다. 할머니의 엄마가 키우고 할머니가 만들어 내 어머니가 덮고 자다 내게로 넘어온 그 보료로 말이다. 내친김에 엄마에게 ‘국화 옆에서’라는 시를 기억하냐 물었다. 그걸 왜 몰라. 학교 다닐 때 배웠는데. 혹시 목화 아니었어? 무슨? 목화일 리가 있나. 국화는 꽃이고 목화는 이불인데. 꽃을 피워야지 솜을 피운다는 게 말이 돼? 엄마의 깔끔한 정리. 나는 엄마에게 목화는 솜인 게 아니라 다래와 열무김치 아니냐고 물으려다 말았다.

목화를 노래하라 청한다면, 누군가는 다래의 맛을, 누군가는 보료의 감촉을, 누군가는 노예시절을, 누군가는 잃어버린 영화를 읊을 것이다. 그녀에게는, 돌아온 이가 누이인지 오라비인지 봄부터 운 것이 소쩍새인지 뻐꾸기인지와는 아무 상관없이, 피운 꽃만큼은 반드시 목화여야만 하는 사연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이국의 생활을 견디게 했다는 것도. 그러므로 그녀의 잘못된 기억을 굳이 정정해 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시인이 뭐라 읊었든, 그녀는 앞으로도 영원히 목화 옆에 서 있을 테니. 목화와 함께 그녀의 시를 살아갈 터이니. 아, 국화가 아니라 목화였더라면.

<천운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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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