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정의를 말하기 어려워지는 시대를 살고 있다. “각자의 몫을 각자에게(suum cuique)”가 정의의 출발점이라고 하지만, 고도 산업사회에서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정당한 분배의 기준과 방식을 정하기는 쉽지 않다. 현실의 사안들을 두고 각각의 분야와 사례에 따라 정의를 향해 섬세하게 조율해 가는 과정을 지속해 나가는 수밖에 없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지난 9월 초, ‘대학강사제도개선협의회’의 합의안이 발표됐다. 2011년 국회를 통과한 개정법률이 4차례나 유예된 건 여러 이견이 좁혀지지 않아서였는데, 이번엔 강사대표, 대학대표 및 국회 추천 전문가 등이 처음으로 합의안을 마련함으로써 이후 국회 의결과 정부 법령 개정 등의 절차가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대학교육의 중추를 담당해온 강사들에게 그 역할에 합당한 교원으로서의 지위와 처우를 보장해 줘야 한다는 명분은 너무도 자명하다. 대학의 일원으로서 만시지탄의 부끄러움을 절감한다. 지혜를 모아 반드시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내야 할 것이다.

다만 이번 개정안에는 심각한 문제의 소지가 있으며, 그 우려가 대학에서는 이미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이 안이 완충 장치와 예산 지원 없이 졸속으로 시행될 경우, 많은 강사들이 자리를 잃는 결과가 예상된다. 개정안의 취지와는 달리, 소수가 3년의 시한부 안정을 부여받는 대가로 다수가 그나마 해오던 강의를 빼앗길 공산이 크다. 등록금을 동결하고 교육부의 지원과 규제 시스템에 길들어 있는 대부분의 대학들로서는 선택지가 별로 없다. 쌓아놓은 적립금을 풀면 되지 않느냐고들 하지만, 매년 나가는 인건비성 경비로 사용할 수 있는 자금은 매우 제한적인 것이 현실이다. 결국 강의 수를 줄이고 전임교수 시수를 늘려서 강사를 최소화하는 길로 내몰리는 구조다. 특히 인문학의 경우 이는 학문후속세대 육성과 결부되어 있다. 신규 진입이 어려운 형태의 강사제도가 고착되면 교학상장의 강의를 통해 역량을 키우고 이를 주요 경력으로 삼는 신진 연구자들의 앞길이 막히며, 국내 대학원의 생태계에까지 근본적인 위협을 가할 것이다.

당사자인 강사들도 명확하게 인지하지 못하는 가운데 엄청난 구조 조정의 해일이 밀려오고 있다. 선한 의도가 반드시 선한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다. 다시, 정의는 무엇인가.

<송혁기 |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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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