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씨는 심을 땐 구덩이에 쇠똥거름을 담뿍 준다. 발아 시기에는 해충을 이겨내도록 잎사귀에 재를 툭툭 뿌려주지. 가을이면 샛노란 호박마차를 탄 신데렐라가 어김없이 찾아온다오. ‘검은 재를 뒤집어쓴 소녀’란 뜻의 신데렐라. 호박공주라고 불러도 되겠다. “신데렐라는 어려서 부모님을 잃고요. 계모와 언니들에게 구박을 받았더래요. 샤바 샤바 아이샤바 불쌍한 신데렐라. 샤바 샤바 아이샤바 왕자님은 언제 만날까.” 아이들은 신데렐라 동요를 부르며 고무줄놀이를 즐긴다.

계모와 언니들은 착한 신데렐라를 왜 괴롭혔을까. ‘구박을 받았더래요, 불쌍한 신데렐라’가 아니라 ‘사랑을 받았더래요, 행복한 신데렐라’… 이런 스토리였다면 얼마나 좋아.

눈 내리는 밤, 노란 호박죽을 끓여먹으면 노란 보름달처럼 속이 다스워질 거야. 우린 이토록 정겨운 호박에다가 서양에선 악마 얼굴을 새겨 넣고 촛불을 밝힌다. 크리스마스가 명절이 되었듯 요샌 핼러윈데이가 젊은이들의 축제. 반짝거리는 유리 구두처럼 환한 쇼윈도. 호박 등불을 밝힌 가게마다 유령 무도회가 밤새 열릴 것만 같아라.

이맘땐 이른 무도 덥썩 캐고 고구마도 풍년. 단감도 살찌게 먹는 시기. 무를 날로 깎아먹으면 방귀를 밤새 뀌게 된다. 일본에서 방귀를 가장 많이 뀌는 사람은 ‘아까끼고 또껴’씨. 천하의 짠돌이 구두쇠 ‘무라까와 쓰지마’와 ‘도나까와 쓰지마’ 형제들은 조선의 홍시 하나 남겨두는 마음, 그 넉넉한 마음을 꼭 배우길. 감나무 꼭대기에 남긴 감들이 주렁주렁. 밭주인의 넉넉한 인심을 느끼게 한다. 밭둑에 줄줄이 호박, 이달 하순엔 배추도 캐서 김장을 담그게 될 게다. 싸리울을 넘나들던 산비둘기도 논에 버려진 낱알을 부지런히 쪼아먹으면서 겨울 채비를 서두른다.

별똥 하나가 적막을 긋고 가는 오밤중. 나는 호박이 조르라니 앉아 있는 부엌을 오지게 바라본다. 달빛을 흠뻑 머금은 호박이 스스로 빛을 뿜고 있어라. 샤바 샤바 아이샤바 불쌍한 신데렐라, 호박마차를 타고 집으로 갈 시간. 눈물은 뚝. 이제는 왕자님과 겨우내내 행복하길.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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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