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의 고꾸라진 나무는 땅심이 좋지 않음을 말해주네. 하지만 길 가던 사람들은 나무가 구부러져 볼품없다고만 흉보네. 바다에 떠 있는 근사한 요트보다는 어부의 찢긴 그물이 내 눈에 들어오네. 나이가 사십이 되자 소작농의 아내는 허리가 휘었다네. 나는 그 굽은 몸에 관해 노래하네. 아리따운 아가씨의 따스한 가슴은 외면한 채 말이네. 나도 사과나무에 피는 꽃을 제목으로 시를 쓰고 싶다네. 하지만 얼토당토않은 아무개의 연설에 분개하는 일에 마음이 앞서가네. 나를 책상으로 당겨 앉게 하고 시를 쓰게 하는 것은 역시 노여움이라네.”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라는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저 총총한 시. 우리는 굵직굵직한 분란과 소요를 겪으면서 가까스로 예까지 살아왔다. 때마다 분노하고 사랑하면서 헤쳐온 길. 그러면서도 한편 “달새의 머리는 온통 달에 대한 생각만으로 가득차 있다네. 비의 새는 온통 다음번 비가 언제쯤 내릴까 하는 생각뿐. 우리가 온 생애를 바쳐 사랑하는 그는 누구인가?” 인도의 시인 카비르가 들려주던 ‘애초의 시’를 내 작은 가슴에 품은 지도 오래되었다. 자연에 깃들여 살면서 한껏 ‘자연주의’가 될 수 없었던 노릇은 우리 시대 시인의 동일한 운명일까. 돌보지 않으면 방안 곳곳 쥐구멍이 생기는 것처럼 이내 마음 하나 챙기기도 쉽지가 않은 세월인데, 어두운 골목을 바라보면 눈물만 한가득이 된다. 내 배만 채운다고 해결될 수 없는 이 허기와 갈증. 다닥다닥 붙은 고시원에서 숨져간 이웃들의 사연엔 손이 다 떨렸다. 이뿐만 아니라 유치원 때부터 행여 한 아이라도 외롭거나 가난하지 않기를 바라는 부릅뜬 국민들의 눈과 노여움. 아이들의 웃음만 말고 아이들의 눈물도 엿볼 줄 아는 시인들이 많아져야겠다.

세계 상위층 부유함을 누리고 사는 우리들. 얼마나 더 경제가 성장해야 원이 풀릴지. 이십대 자녀가 더는 쑥쑥 키가 자라지 않는다며 한탄하는 어리석은 부모나 마찬가지. 많이 가지는 일보다 잘 나누고 사는 법을 터득해야 할 때다. 이웃을 사랑하면서, 오로지 사랑으로 혁명하는 방법은 정녕 없는 걸까. 오늘도 분노하고 사랑하면서, 달새와 비새처럼 간절한 마음으로 먼 산을 바라보았다. 노을보다 붉은 단풍이 번진 먼 산을.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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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