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어제 국회에서 시정연설을 마친 뒤 여야의 대표·원내대표·정책위의장과 회동했다. 박 대통령이 국회로 가 여야 대표를 만나기는 지난해 9월 국가정보원의 대선개입 의혹을 두고 3자 회동을 가진 이후 13개월 만이다. 국정 운영의 실질적인 주체들이 각종 현안과 국정 과제를 두고 기탄없는 대화의 장을 마련했다는 것은 나름 의미가 있다. 대통령과 여야 지도부는 이날 회동에서 다뤄진 내용을 15개 항목으로 정리해 발표했다. 여야 정책위의장의 합동브리핑에 따르면 “새정치민주연합 지도부가 주로 말하고, 박 대통령은 경청했다”고 한다. 야당과의 소통에 담을 쌓다시피 한 박 대통령이 모처럼 야당의 입장을 들으려는 자세를 보인 건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15개 항에 달하는 발표문은 서너 가지를 빼고는 대통령과 야당이 교환한 요구사항을 정리한 수준이다. ‘새해 예산안의 법정 시한 처리’ ‘세월호 관련 3법 이달 말 처리’ 정도가 구체성을 띤 합의다. 해마다 정쟁에 발목이 잡혀 세밑까지 ‘예산 전쟁’을 벌인 걸 감안하면 ‘예산안의 법정 시한 내 처리’를 합의한 것은 성과다. 나머지 현안들에 대해서는 대통령과 야당 지도부가 서로의 입장을 주고받는 선에 머물렀다. 새정치연합 문희상 대표는 전시작전권 전환 연기, 사이버 사찰 대책 등을 주문하고, 박 대통령은 경제활성화법안과 호주·캐나다와의 FTA 비준안 조속 처리를 강조한 식이다. 공무원연금 개혁 등 쟁점 현안에 대한 이견도 좁히지 못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29일 국회 시정연설 후 귀빈식당에서 열린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오른쪽)와 새정치민주연합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왼쪽) 등 여야 지도부와의 회동에서 웃음꽃을 피우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출처 : 경향DB)


뜨거운 현안인 개헌 문제 등을 둘러싼 ‘거짓 브리핑’은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긴다. 당초 공식 발표에서는 “개헌 논의는 없었다”고 했다. 당내 반발이 일자 새정치연합은 뒤늦게 “개헌과 관련해 많은 얘기가 있었지만, 여당의 요청으로 발표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실제 회동에서 문희상 대표는 개헌 필요성을 길게 설명했고, 박 대통령은 듣기만 했다고 한다. 그대로 전달했으면 될 일이다. 말을 바꾸며 허둥지둥한 야당도 한심하지만, 다분히 ‘대통령 심기’를 고려해 개헌 얘기를 ‘마사지’한 새누리당 지도부의 초라한 대처가 더 꼴사납다.

박 대통령은 회동을 하기 앞서 행한 국회 시정연설에서 경제살리기를 역설하며 경제 관련 입법과 공무원연금법의 연내 처리를 당부했다. 국회 선진화법으로 야당의 협조 없이는 어느 법안 하나 처리하기 어렵다. 생산적인 정치를 위해선 야당과의 적극적인 소통과 대화가 필수적이다. 박 대통령과 여야 지도부의 어제 회동이 협력과 대화의 정치를 복원하는 디딤돌이 되기를 기대한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박 대통령이 야당의 일리있는 견해, 합리적 요구를 마냥 외면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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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