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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성남시 판교테크노밸리 환풍구 추락 사고로 다시 우리의 안전의식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애초에 사람이 올라가지 않아야 할 곳에 무분별하게 올라 위험을 자초했다는 비난마저 들리고 있다.

그런데 만약 내가 그곳에 있었더라면 환풍구에 올라가는 일이 생명을 빼앗길 만큼 위험하다고 생각할 수 있었을까?

어디 높은 곳에 올라가 공연을 보았으면 하던 차에 한두 명이 허리 높이쯤의 환풍구에 올라가 있는 모습을 본다면 무심코 따라 올라서지 않았을까?

10여명의 생명을 앗아간 이번 사고의 책임에 대해선 다양한 입장이 있을 수 있겠으나, 건축가의 관점에서 보면 매우 위험한 물건(구조물)이 위험하지 않은 척 그 자리에 있었다는 사실이 문제다.

인간에게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구조물은 스스로 위험하다는 점을 표출하도록 해야 한다. 일반적인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 위험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고 회피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가시철조망이 쳐진 울타리 안에서 가축들은 뛰어넘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가시에 찔리는 위험을 감수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독버섯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독을 품고 이를 적극적으로 알리는 화려한 색상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번 참사의 희생자들에게 환풍구는 약간의 올라서는 수고만 감수하면 무대를 감상할 수 있는 디딤판으로 보였을 뿐이다. 목숨을 위협할 수 있는 위험한 구조물로는 느껴지지 않은 것이다.

거리 등 공공환경에 놓이는 구조물이 위험을 내포하고 있으면서도 시민들에게 위험해 보이지 않는다면 이러한 사고는 언제라도 재현될 수 있다. 위험한 물건은 위험해 보여야 하고, 위험해 보이지 않는다면 그 자체로 안전해져야 한다.

'제1회 DDP 동대문 축제' 개막을 이틀 앞둔 23일 오전 서울시 및 서울메트로 관계자 등으로 구성된 서울시 환기시설 민관합동 점검반이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주변 환풍구 시설을 점검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건물마다 설치되는 환풍구를 다수의 사람들이 올라서도 안전하도록 만들거나 아예 수m씩 높이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환풍구가 놓이는 위치나 크기에 따라 시각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이러한 방법이 부적절하다면 환풍구 스스로 위험을 알릴 수 있도록 디자인하자.

자, 환풍구 덮개를 경사로 설치하면 어떨까. 환풍구가 놓이는 위치를 고려해 한쪽 벽을 더 높여 만든다면 사람들이 올라가는 것이 ‘위험해’질 것이며, 겨우 올라선다 해도 다수의 사람이 머무는 것은 불가능하다. 30도 이상 경사를 두어 환풍구를 디자인한다면 여기에 오르는 일이 위험하다는 것은 어린아이도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위험해 보이는 것은 더 이상 위험하지 않다. 위험한 물건이 안전한 것처럼 보인다면 명백한 잘못이다.

이번 사고의 희생자들이 특별히 안전에 불감하다거나 위험을 무릅쓰고 환풍구에 올라선 것도 아니다. 거리에서 흔히 만나는 위험한 구조물이 그들에게 위험해 보이지 않았을 뿐이다. 이러한 착시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 공공디자인에서 우리가 더욱 세심해져야 할 이유다. 건축가로서 책임을 느끼며 희생자들의 명복을 빈다.


양상현 | 순천향대 교수·건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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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