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단편소설은 세계의 단편문학과 비교할 때 눈에 띄는 특징을 지녔다. 그 특징 가운데 하나는 대체로 분량이 길다는 점이다. 신춘문예를 비롯해 문예지의 신인상 응모요강을 살펴보면 20세기 초·중반에는 단편소설 분량이 원고지 60장 내외였는데 이즈음은 대부분 80장 내외 혹은 100장 내외까지도 이른다. 세월이 흐르면서 단편소설의 길이가 조금씩 늘어난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길이가 늘어나면서 달라진 건 작품의 밀도이다. 한마디로 더 단단해졌다. 60장 내외의 소설이 100장 내외까지 늘어났다면 밀도가 옅어지고 긴장이 느슨해져야 하는데 그와는 반대로 한국의 단편소설은 그 어느 때보다 정제되고 꽉 짜인 형태를 보여준다. 이를테면 남정현의 소설을 비롯해 조세희, 윤흥길 그리고 오정희, 이문구의 소설 등은 빈틈이 없어 어떤 문장이든 한 문장만 삭제해도 소설 전체가 흔들릴 만큼 문장들 사이의 인력이 강하다. 그들의 공통점은 문장에 군더더기가 없다는 점인데 기이하게도 이 잘 벼리어진 문장들이야말로 어떤 문장들보다 더 독자의 적극적인 독해를 요구한다.

한국의 단편소설은 세계의 단편문학이 가지 않은 길을 걸어왔다. 단편 고유의 색깔이라 할 수 있는 찰나의 순간 이른바 삶의 결정적인 시기라 할 수 있는 한순간을 의미심장하게 제시하는 방식을 넘어 장편소설에서나 가능할 법한 이 세계의 총체성을 환기시키는 영역에까지 이르렀다.

외국의 단편 가운데에도 한국 단편소설과 유사한 형태를 지닌 작품을 찾아볼 수는 있으나 한국의 단편소설만큼 이런 형태가 보편적으로 광범위하게 수용되고 발전된 예는 드문 듯하다. 다시 말해 한국의 단편소설에는 장편소설에서나 그려질 법한 유장한 인간의 사연이 짓이겨지고 으깨어지고 부서진 채로 멍이 들고 깨져 피 흘리는 채로 담겨 있다. 그 탓인지 보통의 독자라고 할 수 있는 주변의 지인들에게 한국 단편이 세계의 단편과 비교할 때 재미가 덜하고 어렵다는 불평을 이따금 듣는다. 맞는 말이다. 내가 느끼기에도 그렇다. 이런 경우에 내가 언급할 수 있는 건 윌리엄 포크너의 일화뿐이다. 누군가 윌리엄 포크너에게 당신 소설은 한 번 두 번 세 번 읽어도 이해할 수 없노라고 독자들이 불평하는데 이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윌리엄 포크너는 조심스럽지만 단호하게 되묻는다. 네 번 읽으면 안 되겠습니까.

한국작가회의 40주년 대담. 염무웅 선생(왼쪽)과 이시영 선생(오른쪽). (출처 : 경향DB)


올해 11월18일은 한국작가회의가 창립 40주년을 맞는 날이다. 1974년 같은 날 당시의 젊은 작가들은 상상력을 봉쇄시킨 기성의 문학과 질서를 비판하며 자유실천문인협의회를 결성했다. 이 고색창연한 이름에서 시작해 민족문학작가회의를 거쳐 한국작가회의로 불혹을 맞게 된 그이들은 한국 현대사의 한복판을 걸어왔다. 그이들은 대체로 재미없는 사람들이다. 그이들은 술자리에서조차 조금은 서글픈 표정을 짓는다. 하필이면 이 각다분한 한국에 태어나 그것도 작가가 되어 살아간다는 일에 이미 지쳐버린 표정 말이다.

바로 그런 이들이 소리 없이 독재에 맞서 싸웠고 매문에 저항했고 이 세상에 외롭고 쓸쓸하고 억울한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그 사람 곁에서 글을 쓰겠다는 각오로 살아왔으며 더불어 세계문학에서 가장 독보적인 단편소설의 형태를 고안했다. 그럴 수 있었던 건 그이들이 창작의 공간을 무한히 확대했기 때문이다. 그이들은 자신만의 작업실이 아닌 거리에서 음식점에서 일터에서 감옥에서 글을 썼고 그것마저 여의치 않다면 허공에 대고 글을 썼으며 그마저도 어려워지면 사람의 가슴에 글을 썼다. 문학은 사람이 사람에게 건네는 말임을 그이들은 지난 40년 동안 확인해왔다. 그러므로 한국의 문학에 세계문학과 견주어 진정으로 독보적인 무언가가 있다면 바로 그이들이 만들어낸 것이라고 해도 좋으리라.


손홍규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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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