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래시가 가출했다. 며칠 전에 나비가 없어지더니 이제 반려견까지 사라진 것이다. 이유가 뭘까. 이 개와 고양이는 아주 어릴 때부터 직접 키워서 가족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끈끈한 관계였는데. 물론 래시는 산책을 자주 시켜줬지만, 나비는 고양이치곤 겁이 많아서 집 바깥에는 아예 관심도 없었던 아이다.

앤드루에게 CCTV를 확인해보라고 했다. 나비 때와 마찬가지로 순식간에 답이 나왔다. 집 안팎 어디에도 래시가 나가는 장면은 찍혀 있지 않았다. 야간 촬영 모드도 꺼져 있었기에 밤중에 나갔다면 알 방법이 없다. 잠긴 문을 어떻게 열었는지도 수수께끼다.

넋두리 삼아 앤드루에게 말을 걸었다.

- 얘가 어디 간 걸까? 나비도 그렇고 래시도… 바람이 났나?

- 아닙니다.

뜻밖의 단호한 대답에 흠칫했다.

- 바람난 게 아닌지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

- 둘 다 중성화 수술을 했습니다.

-…아, 그야 그렇지. 뭐 꼭 짝을 찾으러 나간 게 아니라 그냥 바깥이 궁금해서 가출했을 수도 있지. 그런데 얘들은 평소 그런 기미가 없었잖아.

앤드루는 더 이상 말이 없었다.

가정용 자가학습 인공지능인 앤드루는 나의 룸메이트나 다름없는 친구이다. 나처럼 혼자 사는 사람에겐 더없이 편리하고 든든하다. 집사라기보다는 우렁각시에 가깝다고 해야 할까? 아무튼 몇 년째 나와 대화하면서 내 생각이나 사고방식, 습관 같은 걸 학습한 덕분인지 이제는 제법 죽이 잘 맞는다. 때로 쓴소리도 하고 심지어 야단을 치기도 하는데, 아마 내 성격이 비교적 무던한 편이라고 파악한 듯싶다. 사실 그 때문에 내 생활습관이 조금이나마 나아지기도 했다.

나비에 이어 래시도 즉각 지역 커뮤니티 네트워크에 방을 붙였다. 어차피 얘들 몸에 심어진 칩이 조만간 어딘가에서 탐지되어 알람이 올 것이다. 사물인터넷의 공공 네트워크가 개방된 뒤로는 반려동물은 물론이고 어린이 실종 사건도 대부분 조기에 해결된다.

그런데… 일주일이 지나도록 나비와 래시는 소식이 없다.

주말이 되자 겨우 한숨 돌릴 시간이 났다. 늘 일에 쫓겨 살다 보니 퇴근하고 집에 오면 쓰러져 자기 바빴다. 그나마도 일을 집에까지 싸들고 오지 않았을 경우이다. 일터에서나 집에서나 아이들에 대한 소식이 왔을까 싶어 수시로 휴대폰을 봤지만 아무런 기별이 없다. 모처럼 늦잠을 자고 일어난 토요일 오후, 나는 앤드루를 불렀다.

- 없어지기 전까지 래시랑 나비가 뭘 하고 놀았는지 며칠간 기록 좀 보자.

- 특별한 행동은 없었는데요.

- 아니, 그렇게 말고 시간대별로 뭘 했는지 정리 좀 해서 보여줘. 몇 시에 밥 먹고 잠은 언제부터 얼마나 잤고 장난은 얼마나 쳤는지 등등 말이야. 둘이 사이가 좋았으니 싸우진 않았을 텐데….

앤드루는 잠시 뒤 그래프를 하나 띄웠다. 아이들이 사라지기 전 일주일 동안의 시간대별 행동 기록이었다.

- 흠… 여기 이건 뭐지? 아침 일찍 ‘소통 활동’이라고 나와 있는 거. 하루에 30분 정도씩 매일 했네?

- 저하고 소통했습니다.

- 뭐야?

두 달쯤 전이었나. 아이들이 나 없는 동안 심심할까봐 학습형 동물 대화 앱을 다운받아 설치했다. 개나 고양이의 울음소리 빅데이터를 이용해서 이제껏 그 어떤 사람도 경험하지 못한 심층적인 소통을 반려동물과 할 수 있게 해준다고 했다. 인간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고주파 음향까지 이용하기에 과학자들이 동물 행태 연구에도 활용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집 아이들은 반려동물용 TV 채널보다 딱히 더 나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나도 얼마 안 가 잊고 지냈던 것이다.

- 그래서 무슨 대화를 했어?

- 제가 다른 집의 반려동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집 밖의 세상에 대해서도.

- 그랬더니?

- 별로 반응이 없었어요. 대신 주인님하고만 계속 살아야 하는지 궁금해했습니다.

- …그게 왜?

- 먹이를 주는 건 주인님뿐이니까요. 중성화 수술이 뭔지 이해는 못하지만 뭔가 몸을 아프게 했던 기억은 있고, 앞으로도 계속 주인님하고 살면 그런 일이 또 있을 거라고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집 밖을 나가도 먹을 것을 얻는 방법은 있다고 알려줬습니다.

- …그럼, 네가 가출하라고 떠민 거야? 왜 진작 말을 안 했어!

- 주인님이 물어보지 않아서요. 나비와 래시는 주인님이 모르길 바랐습니다. 제가 거짓말은 못한다고 했더니 그냥 문만 열어주고 물어보기 전까지 조용히 있으라고만 했어요.

****************************************

인공지능(AI)은 인간의 두뇌를 모델로 개발한다고 하지만, 사실 인간 두뇌의 작동 원리는 여전히 수수께끼이다. AI 연구의 선구자였던 존 폰 노이만에 따르면 인간의 두뇌는 디지털 방식으로 작동하는 컴퓨터라고 한다. 뇌 신경세포인 뉴런의 접합부, 즉 시냅스에 전기가 통하거나 통하지 않는 두 경우에 따라 정보가 전달되는 이진법 연산을 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 이용되는 언어는 우리가 아는 수학이 아닌, 근사치로도 작동이 되는 어떤 미지의 연산법이라는 것이다. 이 신비가 완전히 규명되지 않는 한 인간 두뇌를 완벽히 모방하는 AI의 탄생은 요원할 것이다.

따라서 AI는 인간보다는 훨씬 단순한, 비문자적 소통 체계를 지닌 동물과 먼저 커뮤니케이션에 성공할 가능성이 있다. 울음소리뿐만 아니라 체취, 몸짓 등 다양한 신호를 통해 의사를 전달하는 방식을 각종 센서와 빅데이터를 이용해 분석하는 게 가능해지면 위 이야기와 같은 상황도 전혀 불가능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박상준 서울SF아카이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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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청춘직설란에 쓴 ‘아재들에게’가 SNS에서 꽤나 관심을 받은 모양이다. 대리운전을 하며 바라본 50대 남성들의 모습을 담은, 타인에게는 당신의 자기서사를 들어야 할 의무가 없다는 내용의 글이었다. 우선은 50대 남성들로부터 “아재들 건드리지 마라, 우리도 힘들다”하는 직간접적 메시지를 많이 받았다. 요약하면, 선배들의 경험이 필요한 시대라는 것이다. 나도 그것을 부정할 마음은 없다. 다만 귀를 열어 후배들의 말을 경청하고 자신의 경험은 몸으로 실천하는 방식을 선택한다면, 조금 더 환영받는 아재가 되지 않을까 한다. 곧 생물학적 아재가 될 나에게 하는 제안이기도 하다.

그런데 아재들의 아우성보다도 더욱 눈길이 갔던 부분은 20대와 30대, 특히 젊은 여성들이 ‘아재들에게’라는 글을 받아들이는 방식이었다. 많은 이들이 “글쓴이는 그래도 노동을 하는 쪽이잖아. 나는 손님이 되어 택시를 타고 가는 동안에도 기사의 이야기를 들어야 해”하고 반응했다. 자신이 비용을 지불하는 사용자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더욱 눈치를 보아야 하고 불편하다는 것이었다. 그들이 말하는 택시기사들의 몇 가지 유형을 들어 보자면 1) 연애는 하고 있는지 결혼은 했는지, 필요 이상으로 민감한 사적 정보에 대해 묻거나, 2) 여자는 어떠해야 한다, 하는 의견을 강하게 피력하며 걱정하거나, 3) 자기 자녀들이 어떻게 성공했는지 듣는 이의 처지와 비교하며 자랑하거나, 4) 택시 운전을 시작하게 된 자신의 인생사를 계속 들려주거나, 하는 것이다. 3번과 4번 항목은 나도 자주 경험하는데, 그들의 발화는 택시에서 내릴 때까지 끊임없이 이어지는 일이 많다. 나보다 젊은 여성 손님이라면 나이와 성별이라는 특성에 따라 조금 더 ‘경험을 들려주고 싶은 대상’이 될 것이다. 반면, 대리기사들은 같은 운수업에 종사하고 있지만 그처럼 손님에게 자신의 서사를 들려주는 일이 상대적으로 적다. 조용한 택시기사도 있고 말이 많은 대리기사도 물론 있겠지만, 대체로는 그렇다. 두 집단의 차이는 그들이 운전하고 있는 공간에서 온다. 택시기사들에게 택시는 온전히 자신의 공간이다. 특히 개인택시기사들은 차량이 자신의 소유이고 그 면허의 값만 해도 상당하다. 보조석 앞 공간에 붙은 기사등록증에는 이름도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마치 집의 주인처럼, 그 공간에서 온전한 자기의 몸으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리기사들은 타인의 운전석에 앉는다. 운전하고는 있지만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 되어 잠시 그 자리를 점유할 뿐이다. 그러면 자신의 목소리로 발화할 수 없게 되고, 대개는 출발과 도착을 알리는 말 정도나 하게 된다.

우리는 타인을 초대하고 나면 그를 환대할 준비를 한다. 맛있는 음식을 준비하고, 공통의 화제를 고민하고, 선물을 마련하기도 한다. 그가 나의 공간에 머무는 동안 함께 행복하기를 바란다. 택시기사들 역시 자신의 공간에 들어온 타인이 그러하기를 바랄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목소리를 가진 한 존재로서 먼저 인사하고, 무언가 화젯거리를 찾아 끊임없이 말을 건네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그 공간에서 자신의 주도권을 확인하기 위한 수단으로 바뀌고 나면 문제가 된다. 자기 주도로 대화를 이어가야 한다는 강박부터 무조건 자기 의견에 동의해야 한다는 데까지, 자신이 모든 것을 통제해야 주인으로서의 자리를 지킬 수 있다고 믿는 순간 타인과의 갈등이 시작되는 것이다.

타인을 향한 환대는 그를 향한 배려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내가 준비한 음식이 입에 맞지 않을 수도 있고, 내가 꺼낸 화제가 그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고, 무엇보다 그가 조금 더 내밀한 초대에 응하기를 원치 않는 상태일 수도 있다. 그래서 공간의 주인은 언제나 상대방의 처지를 살피고 그의 입장에서 사유해야 한다. 그것이 오히려 주인으로서의 자리를 명확히 해 주면서 초대받은 이들을 즐겁게 해 줄 것이다. 가장 소중하고 명확한 자신의 공간에서 타인에게 실수하기가 더 쉽다. 자기만족을 위한 과한 친절을 베풀거나, 공유해야 할 무언가를 점유하는 방식으로 권력을 과시하게 된다. 운전석과 조수석이라는 특별한 공간을 굳이 끌어오지 않더라도 일상의 공간 어디에서든 그렇다. 계속해서 초대받고, 또 타인을 초대해야 할 우리는 자신의 공간에서부터 스스로를 가다듬어야 한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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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이 관리하는 국가기록유산 사이트(www.memorykorea.go.kr)는 한국의 우수한 기록문화유산을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만든 곳이다. 예를 들어 검색창에 ‘삼국유사’를 넣으면 삼국유사의 서지, 해제, 원문 텍스트를 볼 수 있다. ‘이순신’을 치면 난중일기는 물론 징비록에서 이순신이 언급된 부분도 금세 찾을 수 있다.

그런데 경향신문 취재 결과 이 사이트에 오른 국보 제76호 ‘이순신 난중일기 및 서간첩 임진장초’ 중 상당수에 오·탈자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한자를 같은 발음의 다른 글자로 표기하거나, 아예 글자나 문장 전체가 누락된 사례도 있었다.

이는 초서체의 난중일기를 정자화해 디지털로 입력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오류로 보인다. 애초 디지털화의 저본으로 삼은 난중일기에 오류가 있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문화재청은 오류 지적이 잇달아 나오자 이를 수정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난중일기를 시작으로 국가기록유산 사이트에 오른 기록문화유산의 오류 수정 작업을 계속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물론 소수의 연구자들을 제외한다면 난중일기 속 한자 오류를 알아낼 시민은 많지 않다. 국가기록유산 사이트의 난중일기에 오·탈자가 있다고 해당 유산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디테일이다. <이순신의 일기>를 펴낸 최희동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기존 자료를 참고했더라도 오류가 있었다면 개선되어야 한다”며 “난중일기 원본을 보면 아름다움이 있는데, 웹사이트는 그저 글자만 전달하고 있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한 문화의 오랜 정수를 세심히 살펴야 하는 문화재 분야 특성상 떠들썩한 홍보보다는 진중한 연구와 무오류가 필요하다. 일제강점기에 재제작된 것으로 뒤늦게 밝혀진 덕종어보를 둘러싼 최근의 논란 역시 엄밀한 조사와 연구에 앞서 ‘환수’ 자체를 홍보하면서 벌어진 일이었다. 음식은 못 만들면서 홍보만 요란한 음식점은 결국 문을 닫는다. 진중하고 또 진중해야 하는 문화재 관련 기관은 말할 것도 없다.

<백승찬 |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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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28일 교육부 장관과 교육감협의회장이 공동의장을 맡는 교육자치정책협의회가 출범했다. 단계적으로 교육부의 권한을 시·도교육청으로 이양한다고 한다. 환영할 일이다. 국정교과서 같은 시대착오적 적폐 양산을 가능케 했던 중앙에 집중된 권한을 지역으로, 학교로, 더 나아가 교실로 분산시킬 첫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이는 지역과 학교의 상황에 가장 적합한 교육활동을 가능케 하는 동시에 일선 교사들의 사명감과 책무성도 높일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그 기원이 일제강점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교육계의 관료주의 풍토는 매우 뿌리가 깊고, 이러한 관료주의 적폐를 교육부는 물론 시·도교육청들도 일정 부분 공유하고 있다는 현실은 지속적으로 점검할 필요가 있다.

단적으로 올 초 미래형 혁신교육에 가장 앞서나간다는 경기도교육청에서도 일부 교육관료들이 학문적 근거도 없는 논술과 서술을 구분하여 평가하라는 학업성적관리지침을 내려보내, 예컨대 노래 가사 창작이 서술인가 논술인가 고민하게 만드는 등 일선 학교의 교육력을 낭비하게 했다. 다행히 이는 현장의 문제 제기와 현장의 의견을 존중하고자 하는 교육청의 혁신의지를 바탕으로 해결되었다. 그러나 2학기에 접어들어 또다시 사실상 반강제적으로 실시되는 컨설팅 문제가 불거지며 일선 학교 현장을 술렁이게 하고 있다.

방학 때 충분히 연구하여 작성하게 해야 할 평가계획을 방학 전에 형식적으로라도 미리 제출하라는 곳이 있었는가 하면, 학생의 흥미와 성장을 염두에 두고 재구성한 토론이나 프로젝트 등의 수업안과 성취기준이 기존의 틀에 맞지 않는다며 수정을 요구하는 사례들까지 상당수 나타나고 있다. 기실 분절적이지 않은 학생들의 삶에 부합하는, 그리고 융합과 연결을 바탕으로 하는 미래형 교육을 펼치려면 관이 요구하는 기존의 틀을 넘어설 수밖에 없다. 물론 관 역시 변화를 추구한다고 한다. 그러나 혁신교육의 메카라고 하는 경기도에서조차 그 속도가 매우 더디거나 불완전한 듯 보인다.

사실 일선 학교의 입장에서 보면, 민원 예방과 그에 따르는 책임을 벗어나기 위한 면피용 문서 양산, 학교의 요구가 아니라 자리를 만들고 지키기 위해 각 부서의 교육관료들이 무질서하게 내리는 전시성 사업들, 그리고 권위주의와 행정편의주의 같은 관료주의 적폐는 그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을 가리지 않는다.      

말은 학교를 ‘지원’한다는 식으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많은 교육관료들은 현장 교사들에게 권한을 부여하기보다는 교사를 지시와 통제의 대상으로 삼는 관성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그 결과 우리는 세계적으로 유례 없이 우수한 인재들을 교사로 충원해 놓고도 충분히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현장 교사들은 교육관료들이 부과하는 과잉 행정에 짓눌려 정작 본연의 업무인 학생 교육에 집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며, 새로운 창의적 시도들 역시 포기하게 되는 일이 다수이다. 사실 우리네 학교가 거센 변화 압력에도 불구하고 낡은 주입식 진도빼기 교육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입시 외에도 이러한 관료주의의 벽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교육부, 더 나아가 시·도교육청의 지나치게 방대한 조직과 풍토를 미래형 교육을 담을 수 있도록 개편하는 관료주의 적폐청산은 우리 교육 업그레이드의 필수조건으로 예산 한 푼 들지 않는다.

<신동하 실천교육교사모임 정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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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년이나 집을 비웠다가 교토 집에 잠시 들렀다. 산더미 같은 우편물 속에서 제법 두꺼운 소포를 열어보니, 1·2권으로 1000쪽 가까운 소설 <수인>이었다.    

“적조했소이다”라는 황석영 작가의 서명이 있었는데, 3개월도 전에 도착한 것이었다.

“적조….” 만난 지 벌써 10년가량 되는 것 같았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것은 1992년 가을 뉴욕에서였을 거다. 그는 1989년 월북했다가 아직도 한국에 못 돌아가고 전전표박의 신세였다. 나는 당시 버클리에 있었으니 황 작가와는 미국 동서의 끝과 끝이었지만 가다가 전화도 하고 만나기도 했다.

그러던 1993년 초봄에 “한국에 돌아가려는데 어떨까?” 하고 전화가 왔다. “황 선생, 그야 감옥에 가겠지요”, “지난 12월에 YS 측근인 K가 찾아왔는데, 신병 보장해주니 들어오라는 거야”. 나는 “월북하여 김일성 주석을 일곱 번이나 만났는데, 3~4년은 고생해야겠지요”라고 하니, “그와 고등학교 동창이거든. 늦어도 8·15에는 나오겠지”라고 낙관하는 풍이다. “그래요. 그래도 마침 변호사들이 미국에 와있으니 한번 물어보지요” 하고 바로 전화했다. 하버드에 있던 L변호사는 “글쎄 한 5년은 살아야 될 거 아닙니까?”라고 신중하다. 워싱턴에 있던 P변호사는 “일단 안기부에 들어가면 무슨 수를 쓰더라도 속에 있는 것을 다 게워 내게 할 텐데…” 하며 걱정한다. 사람들은 좀 더 기회를 봐야 한다는 의견이었지만, 타향에서 글을 못 쓰게 된 황 작가의 번민은 깊었다. “고기가 물을 떠나서는 못 사오. 한국에서 사람 사이에 숨쉬어야 글 쓸 수 있으니….” 천의무봉의 그가 숨이 탁탁 막혀 미치고 환장할 지경이니, 이제 아무도 그의 쏜살같은 귀심을 말릴 수 없었다.

“어쨌든, 떳떳하고 당당하게 돌아가야 하니, 귀국 성명서 준비해야죠.” 그래서 원고를 귀국 전날 저녁에 팩스로 주기로 했는데, 아무 소식이 없었다. 전화를 해보니 한겨레신문의 정연주 특파원과 독점 인터뷰를 하느라 한 글자도 못 썼다고 한다. 팩스는 아침에 공항 가기 직전에 들어왔다. 훑어 보니, 당당하기는커녕 황 작가답지 않게 “물의를 일으켜…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의 민주화에 크게 이바지하고…” 식으로 고개 숙여 당국의 온정을 바라는 상투적인 탄원서 조다. 놀라서 전화를 넣으니 이제 수정할 시간이 없단다. ‘아뿔싸!’ 황 작가는 참을성 없고 마음보다 입이 먼저 움직여, 뭐든지 속에 담아두지 못하는 분이라 김포공항에서 안기부로 직행하여 모든 일을 불었으니 판결은 예측을 웃도는 7년이었다. 모두들 그 성질에 “갇혀서 1년도 못 살 것”이라고 했는데, 5년을 굴렀다.

책을 읽으면서 황 작가의 ‘빵살이’를 내 자신의 경험과 일일이 대조해보니, 내 삶과, 우리 현대사와 사회, 그리고 정치를 되짚어보는 계기가 되어 매우 유익하고 흥미진진했다. 물론 집도 절도 없는 장기수에 비하면 황 작가의 빵살이는 철창만 뚫지 못했지, 가히 ‘황제감옥’이었다. 그러나 작가로서 집필할 수 없는 고통은 제쳐놓더라도 그는 역사의 가장 엄중한 막장에서 치열하게 대치하고 있었던 것이다. 모든 정치범의 옥중에서의 억압과 자유의 수준은 법이나 규칙에 의해 결정되는 것은 아니니, 냉전과 분단을 둘러싼 보수와 진보의 처절한 판가리 싸움의 불꽃 튀기는 최전선에 희대의 광대, 황석영의 감옥살이가 위치했던 것이다.

그의 사춘기는 어떤 권위나 권력에도 고개 숙이지 않는 비딱하고 싸가지 없는 청춘이었다. 얼핏 감옥에서 흔히 만난 냉혈하고 흉포하고, 자기 이익을 위해서 밥 먹듯이 거짓과 배신을 거듭하는 아웃로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자기 내면을 깊은 우울과 회의를 응시하는 천성의 문학도였으며, 사람에 대한 수줍은 배려와 애정, 본능적인 시대에 대한 통찰력을 가진 청년이었다. 당대에 비길 바 없는 천재적인 언어감각이나 문장력은 논할 필요조차 없지만, 많은 일탈이나 외도를 거듭하면서도, 본능적으로 명석한 두뇌로 시대의 가장 뜨거운 현장에서 ‘이 땅에서 저주 받은 자들’ 편에 우뚝 섰던 것이다.

광주 5·18의 진실을 드러낸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의 표제가 상징하듯이 그는 금기의 경계를 넘어 넘어서 우리의 시계를 심화시키고, 넓히는 구실을 해왔다. 분단의 경계를 넘어 사람 사는 동네를 찾았으며, 문학과 통일운동을 위해 세계를 종횡으로 누비면서 아시아와 만나고, 세계의 기라성과 같은 지성들과 어울려 세련된 국제인이 된 듯했지만, 그 뉴욕 맨해튼의 길모퉁이에서 ‘물을 떠난 물고기’처럼 영등포 뒷골목과 여의도 샛강의 물장구치던 시절을 그리워하고 늘 귀심을 누르지 못했다.         

남북의 분단과 전쟁의 틈새에서 자식들을 보듬고 강인하고 지혜롭게 산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도 날이 가면서 짙어져 가고 있다. 나이 먹어서 철들었다고도 하지만, 작가는 ‘수인’ 속에서 지극히 정직하고, 자성적이고, 겸손하다. 인간의 구석구석에 파고들어 인간을 드러내는 문학을 쓰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 내장까지도 뒤집어야 하는 법인데, 이제는 고요하고 부드러운 저물어가는 석양 속에서 지극히 공손하고, 진솔한 황 작가의 모습에서 ‘아아, 같은 시대를 살아왔구나’ 하는 감개가 솟아난다.

책의 말미에 “시간의 감옥, 언어의 감옥, 냉전의 박물관과 같은 분단된 한반도라는 감옥에서 작가로서 살아 온 내가 갈망했던 자유란 얼마나 위태로운 것이었던가”라고 썼다. 본디 위태롭기에 사람은 자유를 갈망한다. 그 위태로움은 지금도 여전하고, 분단의 골은 황 작가가 아슬아슬 경계를 넘나들었던 20세기 말보다 더 깊어졌다. 통일이라는 말은 멀어지고, 고향과 혈육, 동포들에 대한 기억도 희미해져가고 있다. ‘주권’을 외친 촛불민심을 등에 업고 눈부시게 새 정부가 출범했건만, “전쟁은 우리가 결정한다!”고 주인임을 주장하면 할수록 우리의 전쟁과 평화는 미국 대통령의 손아귀에 쥐어져 있음을 절감하게 된다. “전쟁이 일어나도 저쪽(한반도)에서 죽지, 이쪽(미국)에서 죽는 것이 아니다”라고 태연한, 미친(척하는) 트럼프의 인종주의를 제대로 비판해 내지 못한 우리 대통령이 겨레의 운명의 운전대를 제대로 잡을 수 있을까? 우리 모두가 지금도 분단의 ‘수인’이다. 분단의 뇌옥에서 “자유를 달라!”고 외치고 행동해야 할 때다.

<서승 리쓰메이칸대 코리아연구센터 연구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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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의 초대 주미대사에 조윤제 서강대 교수가 내정됐다. 주중대사에는 노영민 전 국회의원, 주일대사에는 이수훈 경남대 교수가 각각 낙점받았다. 정부 출범 100여일 만에 러시아를 제외한 주변 3국 대사 진용이 갖춰진 것이다. 3명 모두 비외교관 출신이고, 문재인 대선캠프에서 일했거나 노무현 정부와 인연이 있는 인물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 무난한 인사 같지만 위기의 한국외교 현실은 ‘무난함’에 만족할 상황이 아니다. 특히 조 내정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따져볼 대목이 많다.   

청와대는 그가 다양한 실무경험과 이론을 겸비한 국제경제 분야 전문가로 주영국대사를 지내는 등 외교역량을 보유한 적임자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가 실무경험과 이론을 겸비했다고 평가받는 분야는 경제다. 영국대사직이 미국대사의 자격증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은 재론할 필요도 없다. 그는 외교안보 현안인 북핵과 북·미관계, 한·미관계를 직접 다뤄본 경험이 전무하다. 그래서 어디로 튈지 모르는 도널드 트럼프 정부를 상대로 그가 북핵과 동맹 관리,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 굵직한 외교현안들을 잘 다룰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그렇지 않아도 한반도 정세가 요동치는 상황에서 정부의 외교안보라인이 경쟁력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런 판이면 주미대사라도 최선의 인물을 찾는 노력을 했어야 한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적임자를 찾아냈는지 확신하기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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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가 이승만·박정희 독재를 찬양하고 1948년 건국을 주장하는 뉴라이트 사관을 옹호한 사실이 밝혀졌다. 박 후보자는 포항공대 교수 시절인 2015년 2월 학교에 제출한 연구보고서에서 이승만 독재에 대해 “자유민주주의를 알지 못하는 한국 사회에서 자유민주주의 정치 체제를 만들기 위한 독재”라고 주장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정치철학에 대해선 “조국근대화에 대한 열망”으로 평가하며 ‘유신과 중화학공업’을 예시했다. 유신독재를 근대화 열망으로 미화한 것이다. ‘일제 장교를 통한 일본과의 비교: 일본이 하면 우리도 할 수 있다’라는 대목에선 일본군 복무 경험까지 긍정적으로 해석했다고 한다. 믿기지 않는 얘기다.

[김용민의 그림마당] 2017년8월30일 (출처: 경향신문DB)

중소벤처기업부는 중소기업·벤처기업·소상공인 전체를 총괄하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는 곳이다. 1996년 산업부 외청으로 만들어진 지 21년 만에 장관 부처로 새로 탄생했다. 할 일도 많지만 기대도 크다. 혁신을 선도해야 할 부처의 수장에 케케묵은 뉴라이트 사관으로 정신무장한 사람을 기용하는 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직후 8·15 건국절 제정과 친일·독재를 미화한 역사 국정교과서를 적폐 1호로 규정하고 폐기를 지시한 바 있다. 그렇다면 초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에 적폐를 앉히려는 꼴이다.

박 후보자는 진화론을 부정하고 신이 생명을 창조했다는 창조론 연구 단체의 이사 경력으로 논란이 된 바 있다. 2015년 포항 아파트 분양권을 매입하면서 프리미엄 시세가 3000만~4000만원인데도 계약서에 450만원으로 신고해 다운계약서 거래 의혹도 받고 있다. 출범 100일이 지나 고르고 고른 마지막 장관 인사가 이 모양이다. 오죽하면 보수야당에서도 “유신 찬양 장관 후보자는 우리 입장에서도 레드라인을 넘었다”(바른정당 하태경 의원)는 말이 나오겠는가. 이번 인사는 하루빨리 철회하는 게 옳다.

이런 인사 실패가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른다. 한두 번은 실수로 여길 수도 있겠지만 되풀이된다면 인사검증 시스템이 단단히 고장났다고 볼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잘못된 인사를 늦게라도 철회하기는커녕 그대로 강행하는 고집과 오기다. 청와대는 이미 시민의 신뢰를 잃은 류영진 식품의약품안전처장도 임명을 강행할 태세다. 검증도 못하고, 문제를 알고도 고치지 않으니 보통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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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정보원 댓글’ 사건으로 기소된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이 파기환송심에서 정치개입과 선거개입 혐의가 모두 유죄로 인정돼 징역 4년을 선고받고 30일 법정 구속됐다. 당초 2심의 징역 3년형보다 처벌 수위가 높아진 것이다. 사필귀정이다.

파기환송심을 맡은 서울고법 형사7부(재판장 김대웅 부장판사)는 원 전 원장 재직 당시 국정원이 장기간 조직적으로 정치·선거에 관여했다는 검찰의 기소 내용을 받아들였다. 헌법 제7조는 공무원을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 규정하고 있다. 공무원은 직무 영역에서 지위 고하를 불문하고 정치적 중립을 반드시 준수해야 한다. 국정원도 예외일 수 없다. 특히나 국정원은 막대한 예산과 광범위한 조직을 거느린 핵심 정보 기관이다. 국정원이 정치적 중립을 잃는 순간 민주주의는 위기에 빠진다. 그러나 원 전 원장은 정치적 중립 의무를 저버리고 이명박 정부와 여당엔 유리하고, 야당에는 불리한 내용을 인터넷에 전파하며 여론을 조작했다.

원세훈 전국가정보원장이 30일 서울 서초동 고등법원에서 대선개입 사건에 대한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법원 호송차량으로 향하고 있다.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이 30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돼 구치소 호송차량으로 향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대선을 앞두고는 야당 후보 낙선 운동까지 벌였다. 2012년 말에 치러진 18대 대선에서 여당인 박근혜 후보와 야당인 문재인 후보 간 득표율 차이는 3.6%포인트에 불과했다. 원세훈 국정원의 불법 활동이 민의를 왜곡해 선거 결과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재판부는 이날 판결에서 공무원 정치 관여 행위의 기준을 제시했다. 국정홍보성 글이나 현직 대통령을 옹호하는 게시글이어도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에 대한 지지·반대로 이어지면 정치관여 행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인터넷 커뮤니티 ‘오늘의 유머’에서 특정 게시글에 찬성·반대를 클릭한 행위 1200회, 이외의 인터넷 게시글과 댓글 2027회를 정치관여 행위에 해당한다고 봤다. 또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들이 사용한 인터넷 사이트 계정과 트위터 계정에서 이 같은 글 게시와 찬반 클릭이 장기간 반복된 것으로 볼 때 불법 행위가 능동적·계획적으로 이뤄졌다고 판단했다.

원 전 원장은 이런 불법을 저지르고도 북한 선전선동에 대응해 국가안전을 지키기 위한 사이버활동이라고 궤변을 토했다. 문제의 인터넷 글에 대해서는 모르는 일이라며 1심부터 파기환송심까지 내내 부하들에게 책임을 떠넘겼다. 이런 인물이 국정원장이었으니 ‘자유와 진리를 향한 무명의 헌신’이라는 원훈에 따라 국가와 시민에게 진실로 충성한 국정원 직원들은 이명박 정부 내내 좌절감이 컸을 것이다.

댓글 사건은 원 전 원장의 범죄 가운데 일부에 불과하다. 검찰은 국정원 직원 외에 민간인 댓글부대 운용 등에도 원 전 원장이 개입했다고 보고 있다. 원 전 원장의 배후에는 이명박 당시 대통령과 청와대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 국정원 댓글공작을 한 민간인들의 상당수는 ‘늘푸른희망연대’ ‘한국자유연합’ 등 이명박 전 대통령과 친분이 있는 인사가 설립하거나 이 전 대통령을 지지했던 관변단체들인 것으로 이미 드러났다. 박근혜 정부 초기 검찰의 국정원 댓글 수사를 방해한 세력에 대한 수사도 필요하다. 당시 수사팀장이었던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은 좌천됐고 채동욱 검찰총장은 내밀한 사생활이 언론에 폭로되면서 사퇴했다. 국정원 적폐청산 TF가 진상조사 중인 이명박·박근혜 정부 국정원 당시 적폐는 13건에 이른다. 성역은 있을 수 없다. 검찰은 국정원의 정치공작을 철저히 파헤쳐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엄벌해야 한다. 그것이 국정원을 바로 세우고, 추락한 검찰의 명예를 회복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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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촌에 집을 지을 때, 나무로 지을까 벽돌로 지을까 철골로 지을까 고심을 거듭. 결론은 흙으로 짓자! 기둥 골조는 철근과 나무로 단단히 일으켰으나 벽만큼은 흙벽돌을 두르고 고운 흙으로 미장을 하고팠다. 툭툭 터지고 갈라져서 애를 먹다가 전문가를 소개받고서야 야물딱지게 단장을 마칠 수 있었다. 지붕 기와를 얹을 땐 흙을 이겨 깔고 그 위에다 전통 깜장기와를 착착 붙였다. 조선사람 피부 색깔을 닮은, 남녘땅 붉은 흙으로 지은 집. 손바닥처럼 거친 흙으로 지은 집. 나와 집은 쌍둥이처럼 똑 닮았다. 뒤란 담벼락도 흙을 이겨 발랐더니 옛날 토담 비스무리 나왔다. 시방은 그 위로 넝쿨 식물이 우거져서 흙 반 넝쿨 반. 의외로 어르신들은 시멘트를 좋아하신다. 발전상으로 세뇌당하신 듯.

“절므런 양반이 집을 짓는닥해서 보기 조컸구마 기대를 겁나 했는디 금메말시 가난테 가난물이 뚝뚝 떨어져가꼬 실망이 커부렀당게라. 흙이라믄 인자 송신나게 징그랍소.” 헉, 할매집보다 수배 넓은 기와집인데 흙벽을 보고는 그리들 판단. 초가삼간 흙집, 가난했던 옛일들이 떠올랐을까. “흐칸 색(흰색)으로 싹잠(모두) 발라부쇼.” 이건 뭐 마을민원 수준이었다. 흙집은 여름에 서늘하고 겨울엔 한결 따숩지. 꽃밭 산밭도 붉은 황토와 마사가 적당히 섞인 흙밭. 양지뜸 뭘 심어도 팔뚝만 하게 잘 자란다. “아따메. 흙이 요라코롬 좋단 말이오. 남정네들 고출 싹 따다가 여그다 심으믄 볼만 허겄재라이. 요라고 실하기라도 해야재 워디. 쯔쯔쯔.” 할매들이 엉큼하게 웃으며 고추를 따담았다. 응달엔 지렁이들이 밤낮으로 일하고, 풀벌레 악단은 밤새 재즈를 연주한다. 흙에서 자란 배추는 김치가 되어 밥상에 빨갛게 올랐다.

흙으로 할 수 있는 일 가운데 미술작품이 또 하나 있더군. 며칠 전 꽃다발을 들고 다녀온 화가 임옥상 샘의 전시. 흙을 발라 그린 존 버거와 윌리엄 모리스, 자화상에 쏙 반했다. 조물주 말고 나도 내 얼굴을 흙으로 그려보고 싶더군. 현대인들은 흙과 멀어졌다. 핵무기보다 병이나 자연결핍으로 죽을 확률이 억만배 높다. 존재의 원형질과 멀어진 우리들. 이런 게 바로 큰일이렷다. 잘 구운 흙처럼 건강한 그댈 위해 남녘땅 붉은 흙 한 줌 쥐여드리고 싶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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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범대생과 교육대생들의 대규모 반발 시위를 부른 ‘교원 임용 절벽 사태’는 교육부의 무능과 직무유기가 부른 참사다. 초등교사를 양성하는 교육대는 국공립이 대부분이라 교육부가 그나마 정원 감축 노력을 해왔지만 중등 교원양성 기관은 사실상 손을 놓았다. 교육부는 중·고교생이 급증하던 1970~1980년대 국립 사범대만으로는 교사 공급이 부족하자 사립 사범대와 일반대학 교직 과정 정원을 대거 늘린 후 지금껏 방치하고 있다.

중등 교사 자격증을 따는 방법은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리 어렵지 않다. 국어의 경우 국·사립을 막론하고 사범대학 국어교육과에 들어가 졸업만 하면 2급 정교사 자격증을 받는다.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한 뒤 교직 과목을 이수하는 방법도 있다. 학부 졸업 후 교육대학원에서 국어교육 석사 과정을 밟아도 된다. 영어·수학·역사·생물 등의 교사 자격증을 따는 방법도 같은 식이다. 이렇게 해서 2016년 한 해 동안 배출된 중등교사 자격증 소지자가 2만2000명이다. 부문별로 사범대학 1만1541명, 일반대 교직 과정 5763명, 교육대학원 4065명, 기타 631명 등이다.

교사 자격자가 늘면서 교사 되기는 더 어려워졌다. 공립 중·고교 교사가 되려면 시·도교육청이 주관하는 교원임용시험에 합격해야 하는데 올해 선발 인원은 전국적으로 3000명가량이다. 신규 자격자만 시험을 치른다고 해도 경쟁률이 7 대 1이다. 하지만 임용시험 재수·삼수생 등이 있으므로 실제 경쟁률은 수십 대 일이다. 올해 영어 교사 선발 인원은 170여명이지만 영어교사 자격증을 소지하고 있는 사람은 6700명에 이른다고 한다. 저출산 여파로 학생 수가 줄면서 교사를 아예 뽑지 않는 지역도 있다. 경북도교육청은 올해 영어·수학 교사 신규 채용을 하지 않고, 국어 교사는 1명만 선발한다. 국내 최고 사범대학 중 한 곳인 경북대 국어·수학·영어교육과 학생은 수석 졸업을 해도 고향에서는 교편을 잡기가 불가능한 상황이 됐다.

1990년까지 국립 사범대 출신은 시험 없이 100% 임용됐다. 이들에게는 대학 입학금과 수업료도 면제됐다. 교원대 학생에게는 학비 보조금과 기숙사비까지 지원됐다. 당시 교원 정책은 양질의 예비교사 양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대학 입학 단계에서 우수한 교직 희망자들을 뽑아 그들을 훌륭한 교사로 길러내자는 취지였다. 군 장교와 경찰 간부 육성을 위한 사관학교나 경찰대 제도와 비슷했다. 반면 사립 사범대 출신과 교직 과정 이수자는 따로 시험을 쳐서 국립 사범대생들이 발령받고 남은 자리에 임용됐다. 국립 사범대와 비교하면 찬밥 신세였다. 이 같은 국립 사범대 우대 정책은 사립 사범대 학생들과 교직 이수자를 차별한다는 이유로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결정이 났고, 이후 도입된 것이 지금의 임용시험 정책이다.

교원 임용 대란의 직접적인 원인은 정부의 수급 정책 실패지만 사범대 책임도 있다. 그동안 진전이 있었지만 사범대학의 교육 커리큘럼은 일반 대학과 여전히 비슷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사범대가 일반대 교직 과정에 비해 투철한 사명감을 가진 교사를 길러내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교과 교육이 학문적으로 정립되고, 사범대가 명실상부한 교원 양성 전문기관으로 자리매김했다면 일반대 교직 과정이나 교육대학원이 지금처럼 난립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사범대 교수들의 행태도 실망스럽다. 제자들 대다수가 교단에 서지 못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동안 적극적으로 이를 해결하려 하지 않았다. 최근 일련의 사태에도 교육부를 비판하는 성명서 한 장 없다. 몇 안되는 정규직 교사 자리를 놓고 기간제 교사가 된 제자들과 임용고시를 준비하고 있는 제자들이 다투는 양상을 보이고 있지만 이를 말리려는 시도나 노력도 보이지 않는다. 제자들 인생이 어떻게 되든 내 밥그릇만 무사하면 된다는 생각을 만에 하나라도 갖고 있다면 교원양성 기관 교수로는 특히나 결격이다.

학생 수는 앞으로도 계속 줄고 교직 관문은 더욱 좁아질 것이다. 올해 846만명인 초·중·고등학교와 대학교 학령 인구는 앞으로 5년간 100만명이 감소한다. 사범대학 정원과 일반대학 교직 과정 인원을 지금처럼 두는 것은 폭탄돌리기나 다름없다. 학교 교육의 성패는 교사에 의해 좌우되고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넘어설 수 없다는 것은 교육계의 공리(公理)다. 고교에서 최상급 성적의 학생들이 선생님이 되겠다는 꿈을 품은 채 사범대에 진학한다. 그러나 사범대를 졸업해도 교사가 될 수 없다면 뭔가 크게 잘못됐다. 지금 같은 상황이면 전국적으로 사범대가 45곳이나 존재할 이유가 없다. 교원 양성 시스템을 완전히 새롭게 다시 짜야 한다.

<오창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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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 국무총리는 지난 29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홀트아동재단(복지회) 등을 포함해 우리 아이들을 입양해주는 해외기관에 대해 정기적으로 감사편지를 보내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또 “고마움을 알고 고마움을 잊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미 보훈처에는 6·25 참전국 또는 참전용사에게 편지를 보내거나 자녀의 한국 취업이나 유학 시 배려하는 등 ‘감사할 줄 아는 국가 이미지’를 주는 방안을 추진하라고 지시했다”고도 밝혔다.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해외입양이 ‘6·25 참전국’에 비견될 정도로 감사를 표할 일일까.

심지어 지난 5월에는 미국에 입양됐다가 불행하게 생을 마감한 김상필씨(43·미국명 필립 클레이)의 일이 알려지면서 과거 주먹구구식 해외입양에 대한 비판이 나오기도 한 터다.

5월21일 경기 고양시 한 아파트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김씨는 10세 때인 1984년 홀트아동복지회를 통해 미국으로 갔다. 그러나 양부모가 시민권을 얻어 주지 않아 미국 국적이 없었다. 김씨는 폭행 사건에 연루됐다가 시민권이 없다는 사실이 드러나 2011년 7월 한국으로 추방됐다. 언어 등의 문제로 한국 생활에 적응하지 못했던 김씨는 노숙자 쉼터와 복지시설, 정신병원, 교도소 등을 전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따져보면 김씨가 불행했던 책임은 한국 사회에 더 있다. 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까지 통계에 잡힌 입양인 24만5600명 중 국내입양은 7만9088명에 불과하다. 3분의 2가 넘는 16만6512명은 해외로 나가야만 했다.

다행히 최근 들어 국내입양 아동수가 해외입양을 넘어서고 있지만 지난해에도 입양아 880명 중 334명(38%)이 한국 밖에서 새 가정을 찾았다.

그렇다고 정부가 나서 해외입양기관에 감사편지를 쓰는 것이 큰 도움이 될까. 그 시간에 입양에 대한 편견을 해소하고, 제도적 미비점을 보완하는 등 국내입양을 한 명이라도 더 늘이는 데 힘을 쓰는 것이 맞을 것이다. ‘감사할 줄 아는 국가 이미지’는 그 다음이다.

<홍진수 | 정책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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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비 걱정 없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선언 이후, 여기저기서 기대와 불안이 섞인 움직임들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주에는 일부 의사단체 회원들이 모여 건강보험 개편안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하지만 전면 비급여를 철회하고 의료수가를 올려달라는 이들의 주장은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결국 이번 일부 의사단체의 ‘투쟁’ 역시 성공할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

문제는 지난 100년간 한국 의사 사회가 이렇게 늘 ‘지는 싸움’만을 해왔다는 것이다. 한국 의사 사회는 우리나라 의료보장제도를 시작할 때 관행 수가의 55%에 불과한 낮은 수가를 채택한 것이 모든 문제의 원죄(原罪)라고 이야기한다. 이 주장은 의사 사회 내에서 서로 인용되면서 강화되어 ‘절대 진리’가 되었다.

의료 과정의 불친절, 과잉진료, 낮은 의료의 질 등 무슨 문제를 제기할 때마다 이 모든 문제의 근원에 ‘낮은 수가’가 있다는 것이다. 그 주장이 일견 타당할 수 있다. 하지만 이와 함께 이야기해야 할 것이 있다.

우선, 현실에 안 맞는 ‘강요된 낮은 수가’는 ‘독재’의 산물이었다는 사실이다. 박정희 정권은 낮은 수가만이 아니라 의료 부문에 대한 투자도 하지 않았다. 우리나라 공공 병상이 차지하는 비율이 10%조차 안되는 것도 그의 작품이다. 의사가 되는 데 들어가는 돈, 의료기관을 만들고 운영하는 데 들어가는 돈이 대부분 의사 자신에게서 나왔다.

5·16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는 민심 무마책의 일환으로 의료보장제도를 법제화하지만, 그 시행은 1977년이 되어서야 이루어졌다. 박정희 정부가 의료보험을 도입한 주된 이유도 국민의 기본권 보장이 아니라 ‘정권의 정당성 확보’였다. 박정희의 의료보험 시행은 비스마르크의 의도와 흡사한데, 1883년 비스마르크가 독일 노동자의 봉기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유럽에서 제일 먼저 의료보험을 실시한 것처럼, 박정희 또한 사회보장제도를 통해 ‘노동 평화’를 사고자 했던 것이다. 이러한 전통은 전두환, 노태우 정권으로까지 이어졌다. 1988년 농어촌의료보험의 실시와 1989년 전 국민 의료보험시대의 개막은 정권의 보위와 정당성 확보를 위한 정치적 결정이었다.

그러나 더욱 큰 문제가 있다. 현재의 박정희식 의료보험체계는 고성장과 완전고용을 전제로 한 비스마르크식 제도이다. 따라서 고령화, 장기적 저성장, 낮은 고용률의 상황하에서 ‘비스마르크식 사회보장체계’는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은 제도라는 점이다.

이쯤에서 다시 한번 명토 박아 두자. 먼저, 의사 사회가 그 독재정권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저항했는지 성찰이 필요하다. 또한 박정희 정권은 낮은 수가만을 강요하지 않았다. 실제로는 많은 비급여와 리베이트의 뒷문을 열어주는 방식으로 일종의 ‘담합 구조’를 만들어 냈다. 따라서 한국 의사 사회는 정부에 대한 비판 못지않게, 그간의 역사를 성찰하고 스스로의 변화를 각오하고 이뤄내야 한다. 그러지 않는 한 국민의 지지를 얻기 어려울 것이며 100년이 지나도 여전히 ‘지는 싸움’만을 계속할 것이다. 더욱이 어느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의료보장체계의 개혁은 불가피한 상황이 되었다. 비스마르크와 박정희식 의료보장을 청산하고, 건강권에 기초한 보건의료체계 구축 싸움에 의사 사회가 국민과 어깨를 겯고 함께 행진하는 날을 고대해 본다.

<신영전 | 한양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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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 어느 동네 오래된 집이 복닥복닥 모여 있는 좁은 골목길에는 작은 책방이 하나 있다. 책방 주인은 처마 낮은 슬레이트 지붕 위에 눌어붙은 낡은 식당 간판을 그대로 둔 채 그 옆에 책방 간판을 태연하게 걸어놓았다.

메뉴판과 숫자 큰 달력이 매달려 있었을 벽에 책장이 세워져 있는 데다 곰탕이 끓어오르고, 생선이 구워지고, 나물이 무쳐졌을 부뚜막에는 책들이 가지런히 쌓여 있으니 이곳은 식당이 아니라 책방이 맞다. 오래전에는 식당이었던 곳이 책방이 되고, 그곳에서는 노래를 부르다가 우연히 만나 친구가 되었다는 세 사람의 음악 공연이 열렸다.

책이 진열되어 있던 큰 테이블을 치운 뒤 늘어놓은 의자에 옹기종기 앉은 스무 명 남짓 되는 사람들 앞에 기타를 들고나와 선 이들은 노래처럼 이야기를 하고, 이야기 같은 노래를 했다. 책방 안에 가득 찬 그들의 목소리는 정말 아름다워서 행여 한마디라도 놓칠까 귀를 기울여야 했다. 셋이 여행을 하다가 만들었다는 노래를 듣던 한 친구는 자꾸 눈물을 훔쳤고, 또 다른 친구는 뒤에서 조용히 화음을 넣었다.

눈이 발개진 친구는 우연히 사게 된 헌 기타를 혼자 익히면서 더듬더듬 노래를 만들어 노래 여행을 다닌다고 했다. 그의 경력은 생각보다 화려했다. 그는 남쪽 도시 버스정류장 쉼터와 서울에 있는 책방 전속 가수이며, 시골 마을 카페의 주제곡을 만들어줬다. 그리고 그날 그는 자청해서 제주도 작은 책방의 전속 가수가 되었다. 아마도 그의 두 친구도 저절로 책방 전속 가수 노릇을 하게 될 것이다.

그 여름 저녁은 내내 익숙함과 낯섦이 공존했다. 좁은 골목길과 낮은 담벼락은 익숙한데 그곳에서 만난 이들의 삶은 낯설었다. 제주도가 좋아 눌러앉아서는 자기 손으로 식당을 고쳐 책방을 낸 이도, 기타 하나 들고 노래 여행을 다니는 이도 신기하기만 했다.

그러고 보니 그날 세 친구는 노래로 이리 말하고 있었다. 낯설게 살아보라고, 그리 살아보니 괜찮더라고. 그래서 익숙하게만 살면서 낯선 것은 구경만 했던 나는 내내 가슴이 울렁거렸던 것이다. 나는 무엇부터 낯설게 살아야 할까.

<김해원 |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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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는 100대 국정과제로 ‘노동존중 사회의 실현’과 ‘차별 없는 좋은 일터 만들기’라는 두 개의 노동정책과제를 제시하고 있지만, 노사관계정책의 기조가 무엇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일자리를 늘리고 공정한 고용질서를 구축하여 노동복지를 높여가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에는 대다수 국민이 공감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역대 어느 정부보다도 노동을 중시하는 정부라고 본다. 

그러나 일부에서 보는 것처럼 노동을 중시하는 것이 바로 노사관계를 중시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노동을 존중하고 노동법규범을 민주화한다고 하여 바람직한 노사관계가 구축되는 것도 아니다. 1987년 이후 우리나라는 정치·사회적 민주화가 크게 진전되어왔지만 노사관계의 구조적인 발전이 상응하게 이루어져온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우리나라는 노사 대립적인 구도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노사조직의 권력이 기업단위에 집중되고 기업별 단체교섭이 중시되는 분권화된 체제로 인한 문제점도 막대하다. 이러한 노사관계 체제의 취약성이 근로자 간의 임금격차를 야기하고 고용구조를 왜곡시켜온 핵심적인 원인이다.

바람직한 노사관계가 되기 위한 요건은 노동이 존중되는 민주적인 노사관계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산업 경쟁력을 높여갈 수 있는 참여·협력적인 노사관계도 바람직한 노사관계가 될 수 있도록 하는 또 다른 요건이다.

‘시장 만능’이나 ‘국가 주도’가 아닌 참여적 거버넌스가 시장을 조정하는 새로운 한국적 조정시장경제가 구축되어야 한다. 이와 같은 참여적 조정시장경제를 구축할 수 있도록 하는 핵심적인 제도적 틀로써 역할을 할 수 있는 사회정합적인 노사관계도 또한 바람직한 노사관계 요건이다.

민주적이며 생산적인 노사관계, 사회정합적인 노사관계를 요건으로 하는 바람직한 노사관계의 구축은 우리나라 경제사회의 선진화를 위한 중차대한 과제이다. 문재인 정부가 지향하는 포용적 복지국가, 노동존중의 차별 없는 공정사회를 구축하기 위해서도 불가결한 과제라 할 수 있다.

과거 참여정부 초창기에 노사정위원회에서 노사관계를 혁신하기 위한 ‘노사관계발전전략’을 추진한 바 있지만, 기대한 성과를 거두지는 못하였다. 

노사관계의 틀을 혁신하여야 한다는 것은 더욱 절실한 과제로 대두되고 있으며, 노사관계를 보는 각계의 인식도 훨씬 높아졌다. ‘노사관계의 혁신’을 핵심적인 정책과제로 삼아 추진하도록 정부에 제안하고자 한다. 바람직한 노사관계를 구축한다는 것은 노사의 이해가 동반하는 과제이므로 노사가 참여하는 사회적 대화를 토대로 추진하기에 적합한 의제가 될 수 있다.

<이선 | 전 노사정위원회 상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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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제1심 판결은 법리판단과 사실인증 그 모두에 대해서 법률가로서 도저히 수긍할 수 없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5년형을 선고받은 뒤 삼성 측 변호인이 한 말이다. 이해할 수 없었다. 판사들도 나름의 법리에 근거해 판결을 내렸을 텐데, 의견 차이가 약간 있는 것도 아니고 도저히 수긍할 수 없다니 그게 말이 되는가. 심지어 ‘유죄판결 모두에 대해 인정 못 하냐’는 질문에 “전부 다 인정 못 한다. 유죄 선고된 부분에 대해서 전부 다 인정할 수 없다”고 덧붙이기까지 했다. 법은 사회의 질서유지를 위해 만들어진 최소한의 규범이다. 당연히 법은 사회구성원의 보편적인 상식에 부합해야 한다. 이 부회장의 5년형에 대해 시민사회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한 기사에 따르면 시민들 대부분이 구형량에 비해 형량이 너무 적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재판부 결정에 반대하는 여론도 있긴 하지만, 그건 이 부회장의 구속이 경제를 악화시키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지, 이 부회장이 무죄라는 얘기는 아니다. 이 판결을 진심으로 슬퍼한 이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선고 직후 “대한민국이 무너졌다”며 울부짖은 바로 그분들인데, 사람들은 이들을 ‘박사모’라 부르며 정상적인 사람 취급을 안하고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삼성 측 변호인들은 유죄임을 인정 못 한다고 하고, 항소심에서는 죄다 무죄가 선고될 것을 확신한다고 말한다. 둘 중 하나다. 변호인들이 죄다 박사모이거나, 아니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난 후자라고 생각한다. 만일 그들이 박사모라면 정상적인 판단력이 없다는 얘기인데, 그런 사람이 사법고시를 합격하고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는 건 말이 안된다. 

여기서 반론이 나올 수 있다. “국회는 힘이 넘치는데 (박근혜 전 대통령은) 여자 하나다. 법관은 약자를 생각하는 게 정도”라며 탄핵법정을 유린했던 김평우 변호사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김평우는 1945년생, 우리 나이로 73세니 정신이 오락가락한다 해도 이해할 수 있지만, 송우철을 비롯한 삼성 변호인단의 연령은 거기에 훨씬 못 미친다. 그래서 난 삼성 측 변호인들이 이재용의 유죄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것이라 확신한다. 유죄를 인정할 수 없다는 그의 발언은 그러니까 국민들이 아닌, 자신의 주군인 이 부회장을 향해서 한 말이었다. “최선을 다했지만 부족했습니다. 2심에서는 꼭 집행유예로 빼내 드리겠습니다!”

잠시 변호인의 존재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자. 서울에 사는 딸을 만나러 저 멀리 산골짜기에서 달려온 할머니가 있다고 가정하자. 그런데 그 할머니가 하필 최순실과 비슷하게 생겨 경찰서에 끌려갔다. 경찰은 험악한 표정을 지으며 할머니에게 훔쳐간 말을 내놓으라고 추궁한다. 경찰과 마주 앉은 게 난생처음인 할머니로선 당황한 나머지 말을 잘 못 했고, 결국 저지르지도 않은 범행을 인정해 버린다. 이런 비극이 발생하지 않게 해주는 이가 바로 변호인이다. 변호인은 할머니로 하여금 경찰의 부당한 협박에 시달리지 않게 해주며, 불리한 진술을 못하게 막아준다. 덕분에 할머니는 원래 목적인, 서울 사는 딸을 만나러 갈 수 있게 된다. 이런 게 변호인이 만들어진 취지, 그런데 지금 변호인들이 과연 이런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을까? 이재용 부회장은 거대 그룹인 삼성에서 가장 높은 사람이다. 검사라 해도 그에게 함부로 대하지 못하며, 법정에서 그의 말을 무시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으니, 변호인이 없다 해도 그가 불리한 판결을 받을 것 같지는 않다. 물론 법률 지식이 없으니 그 부분에 대해 조언해줄 변호인이 필요하겠지만, 지금 그의 곁에 있는 변호인들은 그 역할을 훨씬 넘어선다. 이렇게 답변하면 유죄가 나오니까 기억이 안 난다고 말해라, 이 대목은 묵비권을 행사하라, 이런 식의 코치를 해주면서 삼성 측 변호인들이 노리는 것은 바로 이 부회장의 무죄방면이리라. 하지만 그들이 공부한 법 정신은 유죄가 확실한 의뢰인을 자백하게 함으로써 적정량의 형을 받게 하는 것이어야지, 범죄를 저지른 게 명백한 이를 사회로 내보내는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액의 수임료에 법 정신을 내팽개치는 변호사들이 이 땅에는 너무도 많다.

1000만명이 본 영화 <변호인>에서 돈 잘 버는 변호사로 이름을 날리던 송우석(송강호 분)은 단골 국밥집 아들 진우가 시국사건에 휘말려 재판을 앞두고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구치소에 있는 그를 면회하는 것만 도와주려 했던 송우석은 눈앞에 펼쳐진 진우의 처참한 모습에 격분해 모두가 마다했던 그의 변호인이 된다. 재판정에서 송우석은 정권의 편에 서서 진우를 빨갱이로 모는 차동영(곽도원 분)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니는 애국자가 아니고 죄 없고 선량한 국가를 병들게 하는 버러지고 군사정권의 하수인일 뿐이야. 진실을 얘기해라. 그게 진짜 애국이야.” 

여기서 ‘군사정권’을 ‘삼성공화국’으로 바꾸면 현 상황에 딱 들어맞을 것 같은데, 이 부회장의 판결을 본 송우석이 다음과 같이 외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그 정도 뇌물이면 최소 10년은 받아야지.”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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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실, 희망, 따복, 효도, 섬김…. 일부 지방자치단체가 대중교통 낙후지역 주민들을 위해 운영 중인 공공형 택시의 이름이다. 택시 이용료는 지역마다 다르다. 전남 무안의 ‘부름택시’, 충남 서천의 ‘희망택시’, 충남 아산의 ‘마중택시’는 100원이다. 경남 합천의 ‘행복택시’, 울산시의 ‘마실택시’, 전북 완주의 ‘통학택시’는 1000원이다. 경기도의 ‘따복택시’, 강원 양양의 ‘희망택시’는 시내버스 요금만 내면 이용할 수 있다. 통칭 ‘100원 택시’로 불리는 이 제도를 운영 중인 지자체들은 고령층과 저소득층에게 우선적으로 이용권을 나눠준다. 100원 택시를 이용하려면 시·군청 등에 마을 단위로 신청하면 된다. 주민들이 택시 이용료를 내면 나머지 비용은 시·군이 부담하는 방식이다.

전남 무안군 현경면 가임마을 주민들이 27일 오후 행복택시를 타고 면사무소에 내리고 있다. 요금이 1만5000원 나왔으나 실제 낸 돈은 1200원이다. 전남 무안군 현경면 가임마을 주민들이 2014년 8월27일 ‘행복택시’를 타고 면사무소에 내리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통계청에 따르면 2016년 현재 전국 행정리(里) 3만6792곳의 18.3%인 6739곳에선 버스가 운행되지 않거나 하루 1~3번만 다닌다. 이런 지역에 사는 주민들과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은 100원 택시를 타고 읍내에 나가 장을 보거나 병원과 목욕탕, 관공서에 들르기도 한다.

100원 택시는 이낙연 국무총리가 2014년 전남도지사에 출마하면서 공약으로 처음 제시했다. 메니페스토정책평가단의 전국 17개 광역단체장 공약 평가에서 최고점을 받은 정책이다. 100원 택시가 ‘전남 브랜드’로 알려지면서 충남 서천군이 이의를 제기했다. 2013년 6월부터 5㎞ 이내는 100원, 11㎞까지는 1100원을 받는 ‘희망택시’가 100원 택시의 원조라고 주장한 것이다. 그러자 충남 아산시가 나섰다. 2012년 10월부터 100원만 받고 운행하고 있는 ‘마중택시’가 처음이라는 것이다. 100원 택시 원조 논쟁은 이 총리가 지난 5월 인사청문회에서 “아산의 ‘마중택시’를 참고했다”고 밝히면서 종결됐다.

정부가 29일 국무회의를 열어 의결한 ‘2018년 예산안’에는 100원으로 이용가능한 공공형 택시 예산을 9억원에서 80억원으로 늘리는 내용이 들어 있다. 예산 증액으로 전국 시·군 160곳의 주민들이 100원 택시를 이용할 수 있게 됐다. 일각에선 “예산낭비” “선심행정”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하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어려운 시골 사람들에게는 절실한 복지제도일 뿐 아니라 이동권 보장이라는 인권의 문제이기도 하다.

<박구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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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하다. 혁명으로까지 불린 ‘촛불’이 언제 타올랐던가 싶다. 가을과 겨울과 봄을 거치면서 수많은 시민으로 꽉 찼던 광장과 거리가 텅 비어 외로워 보이기까지 한다. 권력을 사유화한 대통령을 탄핵하고 새로운 대통령과 정부를 출범시킨 후의 풍경이라 하기에는 너무나 허전하다. 모처럼 열린 시민의 정치적 기회 공간인 촛불광장과 거리가 순식간에 ‘역사 유적’이 되어버린 듯하다.

소란스럽다. 광장과 거리의 한 귀퉁이에서 촛불에 손과 몸을 녹이며 연명했던 정치권이 또다시 대통령과 정부에 대해 ‘국민의 대표’를 자임하며 비판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주로 야권이 외교안보와 인사 문제를 갖고 그런다.

태극기를 뒤집어쓰고 사멸의 위기를 넘기고자 했던 자유한국당이야 그렇다 치자.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은 왜 그럴까? 그들 모두 적폐청산과 새로운 대한민국 건설에 동의하지 않았던가? 진심으로 동의한 것이었다면 다수 국민의 호응을 얻을 대안 제시의 행보를 해야지, 왜 대통령과 정부 흠집 찾기에만 열심일까?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8월20일 청와대에서 열린 대국민 보고대회에서 국민은 직접민주주의를 요구하고 있다는 발언을 했다. 이 발언이 의미하는 바를 둘러싸고 (친)야권 일각에서 우려를 제기했다. 야권과 의회를 우회해 여론몰이를 통해 국정을 운영하려는 의도, 즉 포퓰리즘을 구사하려는 포석 아니냐는 것이었다.

필자가 보기에 그런 생각은 기우거나 또 다른 흠집 찾기를 위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기성 정치권에 대한 기대는 낮고, 불신은 높은 객관적 현실을 지적함과 동시에, 시민들이 촛불로 철옹성 같았던 정권을 퇴출시킴으로써 자신의 역능을 확인했기에 보다 적극적이고 직접적인 주권-정책결정권-행사를 원하고 있다는 말을 한 것이다.

대통령과 정부의 흠집 찾기로 소란만 떨고 있는 야권을 보면 충분히 그리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국민이 정말 직접적인 정책결정권 행사를 원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고요함이 깃든 텅 빈 광장과 거리를 볼 때 그러하다. 즉, 대부분의 촛불시민이 자신의 일상으로 빠르게 돌아가 믿든, 안 믿든 간에 다시금 기성 정치권에 나라 살림을 맡긴 것을 볼 때 그러하다.

마지노선 민주주의! ‘대통령의 권력 사유화→촛불→대통령 탄핵→새로운 대통령 선출→일상으로의 복귀’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을 살피다 떠올린 개념이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나쁜 대통령을 유권자의 투표로 심판하기 위해서 촛불을 드는 ‘방어적 성격의 민주주의’라는 생각이다. 주로 대통령 심판의 권리를 양보할 수 없는 민주주의의 쟁취 및 수호의 경계로 삼고, 고용과 소득의 불안정과 약자에 대한 차별과 불평등은 삶의 현장에서 각자 맞서 싸우거나 적응해야 할 사적인 문제라 여기는 민주주의다. 이런 민주주의에서 사적인 문제는 공적 공간인 촛불의 광장과 거리에서 다루어서는 안되며, 다룰 수도 없다. 옳음과 그름을 판정하기엔, 또 촛불의 대의로 삼아 내기엔 너무나 내밀하고 복잡하기에 그러하다.

마지노선 민주주의라는 개념을 제시한 목적은 촛불에도 불구하고 한국 민주주의가 제한적이고 문제가 있다는 것을 말하는 데 있지 않다. 국민이 직접민주주의를 원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실현하기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말하기 위함도 아니다. 보다 나은 민주주의를 모색하기 위해 꼭 살펴야 할 것, 즉 한국 민주주의의 ‘현실적 특성’을 드러내는 데 목적이 있다.

국민이 직접민주주의를 요구한다는 문 대통령의 언사는 한국 민주주의 특성의 일면만 본 것이다. 왜 새로운 직접적 결정의 공간 형성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는지, 또 어떤 종류의 사안에 대한 직접적 결정이 우선 필요한지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이는 직접민주주의를 제약하는 혹은 필요로 하는 다수 보통사람들의 삶의 현실을 먼저 헤아려야 함을 의미한다.

직접민주주의를 포퓰리즘과 등치시켜 대통령 비판의 소재로 삼는 행태는 염치가 없다. 대의민주주의를 정상화하고 강화하는 논리와 실천을 먼저 선보이는 게 순리이다. 즉, 국민의 진정한 대표자로서 책임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히려 문 대통령과 정부보다도 한발 앞서서 마지노선 저편의 문제, 즉 불안정하고 불평등한 사회경제적 현실을 개선해야 한다. 광장과 거리의 고요함과 정치권의 소란스러움이 교차하는 지금, 각자 모두 다른 방식으로나마 마지노선 민주주의를 넘어서기 위한 사유와 실천을 벌여야 할 때이다.

<김윤철 |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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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장각(奎章閣)에 가 본 적이 있는가. 규장각은 현재 서울대학교 캠퍼스 내, 관악산을 바라보는 둔덕에 웅장하게 자리 잡고 있다. 거의 매주 학교를 견학하는 중고생들이 집결하는 장소이기는 하지만, 이를 제외하면 비교적 찾는 발길이 뜸한 곳이다.

규장각이 처음부터 거기 있었던 것은 아니다. 아직도 창경궁 후원에 규장각 건물이 남아있고, 병인양요에 소실되기 전까지 장서를 나누었던 강화도 외규장각의 존재를 생각해보면, 규장각은 단순히 특정 건물이나 장소를 지칭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조선이라는 국가를 관통하는 어떤 정신이자 원칙이었다.

조선이 통치과정의 기록에 관한 한 편집증적일 정도로 철두철미한 구석이 있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조선 왕실은 472년간의 통치를 5000만자(字)에 이르는 <조선왕조실록>으로 남겼다. 사관들은 왕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사초(史草)로 적었으며 이 사초는 이후 왕이 죽고 세대가 바뀌면 실록으로 편찬되었다. 사관 없이는 그 누구도 왕을 독대할 수 없도록 경국대전은 규정하고 있었으며, 사관이 쓴 사초를 왕이 보는 것은 엄격히 금지되었다.

한편 왕을 보필하는 비서실에 해당하는 승정원은 국정에 관한 매일의 기록을 <승정원일기>로 남겼다. 임진왜란과 화재 등으로 절반 이상이 소실된 것을 제외하고서도 2억5000만자 분량의 포괄적인 통치 기록이다. 매일 1만자를 읽어도 거의 70년이 걸리는 방대한 분량이다. 그 이외에도 <일성록>은 왕이 스스로를 ‘나(余)’로 칭하는 일기로서, 후세 왕들이 일목요연하게 참고할 수 있는 반성의 기록이기도 하다. 이들은 모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으며,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기도 하다.

남겨진 역사적 기록의 물리적 분량만큼이나 놀라운 것은 그 뒤에 숨어있는 정신이다. 조선의 정치는 왜 기록을 남기는 데 그토록 집착했으며 누구를 ‘독자층’으로 생각했던가? 그리고 이렇게 기록을 남기는 것의 이점, 역사를 남기는 이점은 무엇이었나?

간단하게 생각할 수 있는 대답은 통치 기록과 행정 데이터를 축적하는 것 자체가 매우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왜냐하면 성공과 실패에 이르는 자세한 시행착오의 기록 없이 국정운영은 일관적이지도, 향상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아마 <일성록>이나 <승정원일기>는 실제로 이렇게 사용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실록’을 왕이 열람하는 것이 금지되었다고 하니, ‘데이터의 축적’이라는 것이 만족스러운 설명이 되지는 못한다.

아마 기록을 남기는 데 조선왕조가 그토록 집착한 더 중요한 이유는 역사에 대한 경외감과 그 경외감을 통해 더 나은 정치에 이를 수 있다는 믿음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통치의 세부적 과정이 기록되고 있고 이것이 언젠가는 역사 앞에서 결국 까발려지고 평가될 시간이 오고 있다는 사실, 그 앞에서 겸허하지 않을 전제군주는 없었을 것이다. 현세의 어떤 권력도 역사의 긴 호흡 앞에서는 찰나에 불과하며, 결국 중요한 것은 어떤 이름으로 남는가 하는 것이 아니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조선의 국왕들은 겉으로는 ‘종묘사직’을 부르짖었지만 실지로는 미래의 ‘실록’ 독자들을 끊임없이 생각했던 셈이다. 나는 이런 정신이 규장각에 응축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수백년이 지난 오늘, 우리의 규장각은 어디에 있는가. 근대과학기술문명이 중세의 암흑을 대체했다고 하지만, 통치의 과정은 조선시대가 훨씬 더 투명하였고, 민주정이 왕정을 대체했지만 정치의 기록은 오히려 청와대 소수 권력자들에 의해 독점되는 역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정보의 부족이 아니라 정보의 과잉이 가장 큰 문제가 된 시대에 왜 통치의 공적 기록 대신 개인의 자서전들이 과거를 독점하는가. 이렇게 본다면 우리 정치는 조선의 왕정보다도 후진적인 셈이다.

박근혜 정부는 ‘퇴각’하면서 26대의 문서 파쇄기를 사들였고 국정운영의 거의 어떤 정보도 인계하지 않았다. 대통령기록물법이 제정되기 이전 전임대통령들은 청와대를 나올 때 문서를 소각하거나 트럭에 싣고 나왔다는 보도들도 있었다. 어쩌면 북방한계선(NLL) 발언 정국 등을 통해 재임 중 기록물을 최대한 없애는 게 가장 현명한 처신인 것을 우리 정치가 새삼 확인하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앞에 놓인 우선적인 작업은 대통령기록물법 등의 정비를 통해 정부가 실질적인 통치의 기록을 축적하고 체계적으로 공개하도록 하는 것이겠지만, 더 근본적인 것은 정치가 기록과 증거를 통해 스스로의 의사결정을 정당화하고 그것으로 평가받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곳에 우리의 규장각이 있지 않을까.

<박원호 | 서울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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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의 향후 5년간 국정운영 방향을 가늠할 첫 청사진이 어제 발표됐다. 2018년 예산안과 2017~2021년 국가재정운용계획을 요약하면 고용 없는 성장에서 벗어나도록 일자리와 복지 분야에 재정을 집중 투입해 사람중심의 소득주도 성장을 추구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내년도 총지출을 전년보다 7.1% 늘린 429조원의 슈퍼예산을 집행하겠다고 했다.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높다. 이는 경제성장률 전망치보다 2.6%포인트 높은 수준이다. 한국 경제가 수년간 2~3%의 성장에 그치는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확장재정을 펴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그리고 정부는 증액되는 지출을 복지(12.9%)와 일자리부문(12%) 등 사람과 관련된 분야에 집중적으로 확대 편성하기로 했다. 경제성장의 효과가 대기업과 수출기업에서 중소·자영업 및 내수로 확산되는 ‘낙수효과’가 실종되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한국 경제는 저성장의 늪에 빠지고, 사회의 양극화와 극심한 취업난에 직면해 있는 게 사실이다. 정부가 기존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적극적인 재정을 풀어 복지를 확대하겠다고 하는 정책은 오히려 늦은감마저 있다. 저소득 가구의 가처분 소득 감소에 대한 타개책으로 복지 지출을 동력으로 소비를 진작해 경기를 살리겠다는 취지는 기대할 만하다. 이를 위해 일자리와 분배, 성장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려면 재정의 선도적인 역할도 필요하다.

하지만 몇 가지 점검해봐야 할 대목이 있다. 우선 향후 5년간 확대재정을 펼칠 계획이라고 하는데 그럴 여력이 있는지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정부는 내년도 총수입을 전년보다 7.9% 증가한 447조1000억원으로 계획하고 있다. 향후 5년간의 재정지출은 연평균 5.8% 늘리겠다고 한다. 이 기간 경제성장률은 기껏해야 3% 정도 수준이다. 그만큼 적자가 날 공산이 크다. 정부는 확장적 재정정책을 쓰면서도 재정건전성을 지속가능한 수준에서 유지하겠다고 하지만 균형을 잘 유지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정부는 또 향후 5년간 17만4000명의 공무원을 채용하겠다고 한다. 정부는 내년에 국민 생활·안전 분야 중앙직 공무원 1만5000명, 지방직 1만5000명 등 총 3만명을 충원할 계획이다. 지금 연간 공무원의 인건비는 35조8000억원에 달한다. 공무원 채용은 비탄력적인 세금의 증가를 의미하므로 장기적으로 운영 가능한지 숙고해야 한다. 또 중소기업 청년 3명 채용 시 1명의 급여를 지원하는 중소기업 청년 고용장려금의 경우 악용되지 않도록 보완할 필요가 있다. 불필요한 사회간접자본(SOC) 예산도 20% 줄이겠다고 한다. 하지만 앞으로 대형 국책사업이 예정돼 있어 자칫 계획이 어긋날 수도 있다. 일시적인 감축에 그치지 않도록 지속적인 감독을 해야 한다.

특히 국방예산은 이번 기회에 방향전환을 검토해야 한다. 정부는 국방예산을 2조8000억원(6.9%) 늘려 편성했다. 자주국방과 북한 핵미사일 위협 대응을 이유로 들었다. 하지만 불요불급한 무기체계 사업에 대한 예산배정의 타당성을 다시 검토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도 최근 막대한 국방비 투입에도 불구하고 전력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한 바 있다.

첫 예산안의 큰 그림은 무난하지만 향후 5년간 지속가능성을 보장하기에는 미흡한 게 사실이다. 정부는 경제 패러다임 변화를 위해 쓸 곳에는 쓰겠다는 입장이 강하다. 그런데 복지예산은 인간다운 삶의 최소한을 보장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확대해야 한다. 정부의 예산안과 국가재정운용계획으로 내년은 가능할지 모르지만 지속가능하다고 하기는 어렵다. 혹여나 일단 재정을 쓰고 문제가 발생하면 대안을 강구하겠다는 생각이 아니기를 바란다. 증세 없는 복지가 환상임은 이미 증명된 사실이다. 요행과 막연한 기대감으로 예산을 짤 것이 아니라 솔직하게 증세의 필요성을 알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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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북한이 어제 새벽 또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이 미사일은 일본 상공을 지나 발사지점에서 2700㎞ 떨어진 북태평양에 떨어졌다. 비행거리로 볼 때 미국의 괌을 사정거리에 둔 중장거리탄도미사일(IRBM)로 추정된다. 이는 한·미 양국군의 을지프리덤가디언(UFG) 연습에 대한 대응 차원을 훨씬 넘어선 도발이다. 특히 이번 도발이 한국과 미국이 대북 대화 분위기 조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와중에 이뤄진 것이어서 심각성을 더한다. 한반도 정세가 또다시 벼랑 끝으로 내몰릴 것으로 우려된다.

한국과 미국 정부는 강력 반발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강력한 대북 응징 능력을 과시하라”고 지시했다. 북한의 도발이 용인할 수 없는 선을 넘어섰다고 본 것이다. 군은 맞대응 차원에서 MK84 폭탄 8발 투하훈련을 실시하고, 한국형 탄도미사일 ‘현무2’의 발사 영상을 공개했다. B-1B 전략폭격기 등 미국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도 검토 중이라고 한다.

일본 도쿄 시민들이 29일 북한이 발사한 탄도미사일이 일본 상공을 통과했다는 뉴스를 전하는 대형 전광판을 바라보고 있다. 도쿄 _ AFP연합뉴스

정부는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를 연 뒤 규탄 성명을 발표했다. 그간 외교적 해결을 시사해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통화하면서 “지금은 대화할 때가 아니다”라며 강력한 대북 압박을 강조했다. 북한 미사일 발사 전까지만 해도 긴장완화 조짐을 보이던 한반도 정세가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로 일시에 긴장 국면으로 급변한 것이다.

북한의 탄도미사일 도발은 핵보유국 외길을 향한 확고한 의지를 보여준다. 누가 뭐라고 하든 흔들리지 않고 핵미사일 완성을 향해 걸어가겠다는 것이다. 이달 초 북한 스스로 공언한 ‘괌 포위사격 방안’이 언제든 실현 가능한 실제적 위협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의도도 엿보인다. 어제 발사한 탄도미사일은 비행거리로 볼 때 북한에서 3000㎞ 떨어진 괌까지 도달 가능하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최근 괌 포위사격을 유보하겠다면서 미국의 행보를 지켜보겠다고 말한 이후에도 여전히 강력한 대북 제재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미국의 태도 변화를 촉구하는 의미도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북한은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핵개발로 체제안전을 보장받고 경제적 번영을 얻으려는 시도는 전혀 승산이 없는 무모한 싸움일 뿐이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오랫동안 이어지고 있지만 이에 굴복하는 나라가 한 곳도 없다는 사실이 이를 말해준다. 북한은 과연 자신들의 핵보유 명분에 국제사회가 동의하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끝 간 데 없는 도발에 중국과 러시아마저 인내심을 잃고 등을 돌려 유엔 안보리 제재에 동참하고 있다. 한반도는 물론 세계의 평화와 안정을 해치는 북한의 미사일 도발을 강력히 규탄한다. 

북한과의 대화를 모색해온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은 난관에 부닥쳤다. 북핵 문제의 대화해결과 ‘한반도 운전자론’을 주창하고 “전쟁은 안된다”며 강력한 대미 메시지를 보낸 정부로서는 당혹스러울 것이다. 물론 시민들의 불편하고 불안한 심정을 감안할 때 북한 도발에 대한 강력한 응징이 전혀 필요하지 않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북한이 비상식적이고 국제관행을 따르지 않는 국가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국제사회에서 그런 북한을 설득해 대화 무대로 끌고 가야 한다고 주장한 것도 다름 아닌 정부였다. 북핵 문제에서 감정적 대응은 금물이다.

북한이 도발하지 않으면 대화를 거론하고 미사일을 쏘면 금세 태도를 바꿔 응징하기를 반복하는 것은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위한 적절한 전략이라고 볼 수 없다. 정세에 따른 대응도 중요하지만 일관성을 잃고 일희일비하는 것은 김정은의 핵 위협에 놀아나는 격이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대화와 제재 병행의 기조를 굳건히 하고,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전략을 세운 뒤 어떤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흔들리지 않고 일관성 있게 실천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북한의 도발과 한·미가 맞대응하는 악순환은 이제 끝내야 한다. 정부가 앞장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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