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A가 사람 B에게 묻는다. “C라는 사람 알아?” “응, 알아.” 사람 A가 재차 묻는다. “잘 알아?” 사람 B가 대답을 주저한다. 그 모습을 보고 사람 A는 사람 B가 사람 C를 잘 안다고 확신한다.

사람 B는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는 사람 C를 안다고 말하는 데 아무 거리낌이 없다. 사람 C에게 물어봐도 사람 B를 안다고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사람 C를 잘 안다고 말하기는 왠지 어렵고 불편하다. ‘잘’이라는 부사가 가져다주는 무게 때문에 사람 B는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사람 C와 알고 지낸 지 5년이 훌쩍 넘었지만, 단순히 긴 시간 동안 교류했다고 해서 그 사람을 잘 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문득 ‘잘’이라는 단어는 간편하면서도, 그만큼 쉽게 써서는 안되는 말처럼 느껴졌다. 안다고 말할 때는 부담 없을지 몰라도, 잘 안다고 표현할 때는 모종의 책임감이 생겨난다.

사람 B는 잠자리에 누웠지만 좀처럼 잠들지 못한다. 어떤 사람을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 얼굴과 이름을 아는 사이? 연락처를 주고받은 사이? 때때로 간단한 안부를 물을 수 있는 사이? 오랜만에 만나도 서슴없이 악수할 수 있는 사이? 그렇다면 어떤 사람을 잘 안다는 것은 또 무엇일까. 허심탄회하게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이? 투정을 부려도 되는 사이? 장점은 기꺼이 칭찬해주고 결점도 어느 정도는 받아들일 수 있는 사이? 사람 B의 눈앞에 두 사람이 걸어가는 장면이 펼쳐진다. 두 사람은 한 발 한 발 앞으로 걸어가고 있다. 한참을 바라보고 있으니 두 사람이 하나의 점으로 겹쳐 보이기 시작한다. 눈을 감았다 떴더니 하나의 점이 다시 두 개가 되어 있다.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서로에 대해 제대로 몰랐던 사람 둘이 각자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며칠이 지나고 사람 A와 사람 B는 다시 만났다. 이번에 먼저 입을 연 건 사람 B였다. 사람 B는 사람 A에게 사람 C에 대해 잘 안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누군가를 잘 안다고 말하는 데는 확신이 필요하고 잘 안다는 것에 대한, 그리고 잘 안다고 말한 데 대한 책임감도 생기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담담한 목소리였지만, 그 안에서 단단한 힘이 느껴졌다.

사람 A는 놀랐다. 그가 아는 사람 B는 어떤 자리에서나 적응을 잘하는 사람이었다. 사교성이 좋고 인기도 많았다. 사람 B가 다른 사람들에게 다가가 격의 없이 얘기하는 모습을 무수히 목격하기도 했다. 자신이 이때껏 알아온 사람 B는 그런 사람이었다. 사람 B가 누군가에 대해 얘기할 때 조심스러워한다는 사실을 사람 A는 처음 알았다. 사람 A는 혼잣말했다. “사람은 역시 어려워.”

사람 A는 문득 하재연의 시 ‘한 사람’을 떠올렸다. 이 시는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나는 길게 누워 있는 섬 위의 저녁 구름에/ 서린 분홍 같은 것이었다가// 조금씩 시간이 흘러 이렇게/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람 A의 혼잣말은 계속되었다. “우리는 처음에 모두 길게 누워 있는 섬이었을 것이다. 가만 바라보니 섬 위의 저녁 구름이었을지도 모른다.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니 구름에 서린 분홍 같은 것이었다.” 모르는 사이일 때, 사람은 사람에게 그저 ‘어떤 사람’이다. 어떤 사람과 만났다고 해서 그 사람을 절로 알게 되는 것은 아니다.

신뢰가 쌓이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고 서로를 이해하겠다는 마음 없이 유대감은 형성되지 않는다. 이해의 과정에 오해가 끼어들지도 모른다. 그렇게 어떤 사람은 ‘사람’이 되었다가 마침내 ‘한 사람’이 된다. 한 사람이 되면, 다른 누구도 그 사람을 대신할 수 없다.

사람 A는 휴대전화를 열고 연락처 버튼을 누른다. 연락처들이 쏟아져 나온다. 살면서 이들과 어떤 식으로든 스쳤을 것이다. 스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번호를 주고받기 위해 어색하게 말도 몇 마디 주고받았을 것이다. 사람 A는 앞으로 ‘사람’을, 나아가 ‘한 사람’들을 주변에 많이 만들겠다고 다짐한다.

군중이 고독한 이유는 수많은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어서다. 잠시 한곳에 모였지만 곧 뿔뿔이 흩어질 거란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그들은 서로를 알 기회도, 잘 알 기회도 얻지 못한다. 군중에서 고립되지 않기 위해, 아니 군중 속에서 끝끝내 한 사람만은 지키기 위해, 사람 A는 사람 B에게 전화를 건다.

<오은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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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과 계절 사이를 지나고 있습니다. 낮과 밤의 낯빛이 사뭇 다릅니다. 뜨겁고 따갑던 햇살이 물러서자 바로 서늘해집니다. 밤이 깊어지니 한기까지 몰려듭니다. 창문을 반쯤 열어 둔 탓입니다. 닫아야 하겠습니다. 다시 엽니다. 창문을 닫으니 차가운 기운은 막히나 세상의 소리도 끊어집니다. 학교가 숲속에 있는 것은 더없이 고마운 일입니다. 창문만 열어두면 자연입니다. 더군다나 오늘 밤이 마지막일지 모를 소리를 견딜 만한 추위와 바꿀 수는 없습니다. ‘소쩍, 소쩍’.

소쩍새 어미(왼쪽 사진)와 새끼.

‘소쩍새’ 하면 떠오르는 시가 있습니다. “한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로 시작하는 미당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입니다. 시로 인해 이름은 익지만 모습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소쩍새는 이른 봄 우리나라를 찾아와 여름을 지나며 번식을 하고 가을에 떠나는 올빼밋과의 여름철새로 천연기념물 제324-6호입니다.

숲에서 소쩍새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는 시기는 4월 중순입니다. 소쩍새가 우리나라를 찾아오는 때입니다. 정말 밤새도록 웁니다. 짝을 찾는 소리입니다. 실제 번식은 5월 하순 즈음 시작하니 짝을 찾는 간절한 소리는 한 달 넘게 이어지는 셈입니다. 소쩍새의 번식은 딱따구리의 번식과 맞닿아 있습니다. 소쩍새는 대체로 딱따구리의 둥지에서 번식을 치르기 때문입니다. 딱따구리 둥지가 비어야 소쩍새는 번식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5월 중순에서 하순에 걸쳐 딱따구리가 번식을 마치고 둥지가 비면 숲에서는 전쟁이 벌어집니다. 딱따구리가 번식을 마치고 둥지가 비는 날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친구들이 많다는 뜻입니다. 소쩍새 또한 그중 하나입니다.

딱따구리의 번식 둥지는 암수가 교대를 하며 지킵니다. 번식이 진행 중일 때 둥지를 빼앗기 힘든 까닭입니다. 그러다 번식이 끝나면 각자의 길을 갑니다. 어린 새와 암컷은 둥지를 떠납니다. 수컷은 여전히 번식 둥지를 사용하지만 잠만 잡니다. 어두워지면 둥지로 돌아와 잠을 자고 이른 아침이면 먹이활동을 나섭니다. 낮에는 둥지가 비어 있는 셈입니다. 둥지를 오래 지킬 수 없습니다. 기껏해야 사나흘입니다. 어둠이 내리면 딱따구리 수컷은 어김없이 잠을 자러 오지만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누군가 벌써 자리를 잡고 있는 탓입니다. 더군다나 고개를 넣어 둥지 안을 살피다 화들짝 놀라며 물러선다면 이미 둥지 안에는 버거운 상대가 버티고 있다는 뜻입니다. 둥지의 새로운 주인은 소쩍새일 경우가 많습니다.

소쩍새는 ‘소쩍, 소쩍’ 또는 ‘솟쩍다, 솟쩍다’ 소리를 냅니다. 소쩍새가 ‘솟쩍다, 솟쩍다’ 소리를 내면 풍년이 든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풍년이 들 터인데 지금 쓰는 솥이 작다는 뜻으로 말입니다. 그런데 하룻밤에도 ‘소쩍, 소쩍’ 울다가 ‘솟쩍다, 솟쩍다’로 바꿔 울기도 하니, 신뢰도는 떨어집니다.

소쩍새를 비롯한 야행성 조류의 번식 일정을 관찰하는 일은 조금 버겁습니다. 낮에는 둥지 밖으로 고개 한 번 내밀지 않다가 밤에만 둥지를 나서서 활동하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흘러 소쩍새가 딱따구리의 둥지를 빼앗은 지 꼭 40일째가 되는 날입니다. 둥지가 무척 부산합니다. 조명을 비추지 않아 제대로 보이지는 않지만 둥지를 지키는 암컷에게 수컷이 연신 먹이를 나르고 있습니다. 부화입니다. 맹금류의 경우 둥지는 암컷이 지킵니다. 둥지 밖에서 경계를 서는 일과 부화가 일어난 후 어린 새의 먹이를 구하는 일은 수컷이 맡습니다. 암컷은 둥지 안에서 수컷이 전해 주는 먹이를 받아 어린 새에게 나눠 먹입니다. 소쩍새가 알을 품는 기간은 약 25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알은 다섯 개 정도로, 하루에 하나씩 낳으니 산란 기간은 5일로 잡으면 되겠습니다. 10일이 남습니다. 이는 산란에 앞서 미리 둥지를 차지한 기간으로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3주가 또 그렇게 흘렀습니다. 드디어 어린 새가 둥지 밖으로 고개를 내밉니다. 세상이 궁금한 모양입니다. 어린 소쩍새는 낮에도 둥지 밖으로 고개를 내민다는 점이 어미 새와 다릅니다. 그리고 어린 새가 스스로 고개를 내밀 정도로 크면 둥지의 공간이 좁아져 둥지를 지키던 어미 새는 둥지에 함께 있지 못하고 밖으로 밀려 나옵니다. 소쩍새가 딱따구리의 둥지를 빼앗은 지 꼭 60일째입니다.

어린 새가 고개를 내밀기 시작하면 주위를 꼼꼼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둥지가 가장 잘 보이는 곳 어딘가에 비좁은 둥지를 떠난 엄마 새가 숨어서 경계 근무를 서기 때문입니다. 아, 보입니다. 허투루 보면 절대 찾을 수 없는 곳입니다. 아빠 새는 둥지에서 뚝 떨어진 곳에 숨어 있어 찾기 쉽지 않습니다.

어린 새는 주로 밤에 둥지를 떠납니다. 어린 새가 둥지를 떠나기 시작하면 어미 새는 어린 새를 둥지에서 가까운 안전한 곳으로 안내합니다. 이미 둥지를 나선 어린 새가 있고, 아직 둥지에 남은 어린 새가 있다면 어미 새는 둘 다 잘 볼 수 있는 곳에 자리를 잡습니다. 그러다가 어린 새가 모두 둥지에서 벗어나면 둥지 주변을 완전히 떠나 더 깊은 숲으로 사라집니다.

가을 문턱입니다. 쑥부쟁이, 구절초, 산구절초, 개미취, 벌개미취, 산국, 감국을 비롯하여 들국화라 부르는 국화과 식물이 들녘과 산자락을 따라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고 있습니다. 봄부터 들렸던 소쩍새 소리는 오늘도 반쯤 열린 창문을 따라 흘러듭니다. 소쩍새와 국화는 실제 아무 상관이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이 가을, 국화 한 송이가 피어난 것이 그냥 핀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오랜 간절함이 쌓이고 또 쌓여 이루어졌다는 생각만큼은 붙들고 싶은 요즈음입니다.

<김성호 | 서남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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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들어 탈원전 및 탈석탄 정책에 따라 재생에너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이런 관심에 비해 한국의 재생에너지 사용 비중은 낮은 편이다. 한국전력에서 발간한 ‘2016년 한국전력통계’에 따르면, 2016년 전력 발전량 54만441GWh 중 수력을 포함한 재생에너지 발전량은 2만5570GWh로 약 4.7%다. 세계 전력생산에서 재생에너지의 비중은 2015년 기준 23.7%이다.

코스타리카는 자국 내 전기 수요를 재생에너지만으로 100% 충당했던 기간이 있을 정도로 재생에너지가 발달된 나라이다. 일관된 정책 기조가 한몫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코스타리카는 수자원이 풍부해 수력이 차지하는 비중이 70%를 훌쩍 넘는데도 불구하고 1996년 이래 풍력 에너지 개발을 꾸준히 진행, 2015년에는 풍력 에너지가 자국 내 전력 발전량의 9%를 넘기기도 하였다. 에너지원을 다양화하기 위한 노력을 20년 이상 해온 것이다.

한국은 2001년 2월에 수립된 ‘대체에너지 기술개발·보급 기본계획’ 이래 5년 주기로 ‘신·재생에너지 기술개발 및 이용·보급 기본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올해 말까지 수립할 제8차 전력 수급 계획에서는 신재생에너지를 전력 계통 발전원에 처음 포함키로 결정하는 등 재생에너지 보급과 확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일관된 정책 기조이다. 전력 발전소는 많은 비용이 소요되는 국가 기반 시설로 한번 구축된 이후에는 돌이키기 어렵고, 잦은 정책 변화는 국가적 자원 낭비를 초래할 수 있다. 일관된 정책하에 재생에너지가 확대되기를 기대해본다.

<배진우 | 카이스트 기술경영전문대학원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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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개헌특위 주관 전국순회 개헌 국민대토론회가 진행 중이다. 최대 쟁점은 권력구조 개헌이다. 토론과정을 관통하는 공통 지향점은 권력구조의 ‘분권-협치’다. 그런데 권력구조는 선거제도와 기능적으로 맞물린다. 따라서 권력구조의 분권-협치는 다수제 혹은 비례제 등 선거제도 유형에 따라 크게 영향을 받는다. 어떤 권력구조도 그 자체만으론 분권-협치를 결코 담보하지 못한다. 이런 관점에서 권력구조의 분권-협치 기제는 비례대표제의 종속변수다.

미국 대통령제는 연방제-양원제의 강력한 견제를 받는 ‘권력분점형’이지만, 승자독식의 단순 다수 선거제가 촉발하는 민주-공화 거대 양당 간 양극적 갈등과 의회-대통령 충돌로 입법 지연·실패, 국정 마비가 발생하곤 한다. 그래서 사회주의 몰락을 예측했던 미국 스탠퍼드대 후쿠야마 교수는 무늬만 ‘견제-균형’의 대통령제이지, 사실은 다수제-양당정치로 인해 서로 발목을 잡는 ‘거부권 정치(vetocracy)’로 전락했다고 경고한 바 있다. 한편 제왕적 대통령제를 설계한 한국 ‘1987년 헌법’처럼, 브라질 ‘1988년 헌법’은 제왕적 대통령제를 용인했다. 예컨대 사전 의회 동의가 필요 없는, 선제적 입법권과 입법의제 설정권을 뜻하는 긴급포고권 등을 발동할 수 있다. 그래서 미국 주류 정치학자들은 최악의 제도로 혹평했다. 그럼에도 브라질의 제왕적 대통령제는 분권-협치 기제를 내장한다.

즉 개방형 비례제-대선결선제-이념블록다당제-(좌우)연립내각-연정대통령을 통해 마치 비례대표제-내각제처럼 작동한다.

프랑스의 소선거구제-분권형 대통령제는 여소야대의 경우 국민 직선 대통령(외치)과 의회 선출 총리(내치) 간의 거대 양당 동거정부로 국정 주도권이 총리에게 넘어가는 내각제에 근접하는 반면, 대통령과 총리가 같은 당일 경우 조각권 등 국정을 주도하는 대통령제에 근접한다. 그러나 2000년 ‘대통령 임기 5년’ 개헌에 따른 대선·총선 주기 일치로 인해 동거정부 출현 가능성은 차단됐고, 이에 따라 프랑스의 여대야소 대통령은 현 마크롱 대통령에서 보듯 총리와 국회를 통제하는 사실상 ‘민선 황제’급의 슈퍼 대통령으로 등극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반면 핀란드 ‘대통령 우위 분권형 대통령제’(2000년 개헌 이전)의 분권-협치 작동은 비례대표제를 통해 일상화됐다. 핀란드 비례대표제는 전통적으로 득표율·의석률의 30%를 상회하는 지배정당을 불허한다. 따라서 좌우 이념블록 교차의 정당연합이 제도화된다.

권력독점의 정부 제도는 통념과 달리 의회의 다수파에게 권력을 몰아주는 내각제다. 영국의 소선거구제+내각제, 일본의 ‘소선거구제-비례대표 병립제’+내각제인 경우 다수당이 행정부·입법부를 통째로 장악하는 집권당 독재-제왕적 총리가 등장한다. 야당은 국정 비판·반대의 자유만 있지, 협치의 파트너가 아니다. 대조적으로 노르딕·게르만 국가들의 비례대표제-내각제는 어느 정당도 구조적으로 과반 의석을 획득할 수 없어 정책·입법연합-정부연합을 강제한다. 특히 마이너 정당의 협력 없이는 단독 정부 구성이 어려운 메이저 정당 간 경쟁구도에서 역설적으로 소수정당이 국정 균형추 역할을 수행하며 의회-행정부 협치를 주도한다. 나라에 따라 편차는 있지만 입법 효율성은 80~90%다.

결론적인 함의는 명료하다. 비례대표제는 정당 간 수평적 권력분점의 연정협치(coalitional governance)에 의해 매개되는 다양한 정부연합 유형, 의회-행정부 협치로 이어지는 합의제 ‘포용정치’를 유인한다. 비례대표제 없는 권력구조가 분권-협치 기제로 작동하기를 기대하는 건 어쩌면 환상일지 모른다. 그렇다면 비례대표제 이외의 선거제도 개혁은 개악이고, 특정 권력구조의 택일적 개헌 논쟁은 무의미하다. 선거제도는 ‘주춧돌’이고, 정당체제는 ‘기둥’이며, 권력구조는 ‘지붕’에 불과하다. 주춧돌이 부실하면 지붕은 무너질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래서 달랑 지붕만 바꾸는 식의 개헌은 절대로 올바른 접근이 아니다. 분권-협치의 권력구조는 비례대표제와 가장 친화적·순기능적으로 연동한다. 권력구조 개헌 디자이너들이 정교하게 천착해야 할 지점이다.

<선학태 | 전 전남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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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다른 사람과 나누지 않고 혼자 다 갖는 게 ‘독점’,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듣지 않고 혼자 모든 일을 처리하는 게 ‘독재’, 다른 사람들은 다 틀렸고 자기 혼자만 옳다고 믿는 게 ‘독선’, 다른 형제 없이 하나뿐인 자식이 ‘독자’다. 그러니 ‘독립’이란 본래 주변에 다른 사람 없이 혼자만 서 있다는 뜻이다. 중국인들이 사용하는 중국어사전은 독립을 “혼자만 서 있음. 혹자는 남에게 의존하거나 예속되지 않는 관계를 가리킴”이라고 정의한다.

몇 해 전, 소규모 학술 세미나에 일본에서 번역의 역사를 전공하는 학자 한 사람이 참석했다. 어떤 사람이 그에게 물었다. “independence를 독립으로 번역한 이유가 뭡니까?” 사람을 허탈하게 만드는 대답이 돌아왔다. “지금 생각하면 자립으로 번역하는 게 나았을 텐데, 당시 일본인들은 한자의 미세한 뉘앙스 차이를 잘 몰랐던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모국어가 아니니까요.” 순간 중국인들이 그 번역어를 역수입해 간 이유는 무엇일까라는 의문이 들었으나, 그에게 묻지는 않았다. “혹시 다른 아시아 국가들은 다 엎드려 있는 상태에서 혼자만 일어서겠다는 의지가 작용하지는 않았을까?”라고 혼자 생각하고 말았다.

나는 일본인들이 만들어 중국으로 역수출한 번역어 중 최고의 걸작은 낭만(浪漫)이라고 생각한다. 굳이 글자 그대로 해석하자면 ‘물결이 이리저리 일렁임’ 정도 될 텐데, 일본인들이 romance에 상응하는 단어로 만들어낸 신조어였다. 이와 거의 비슷한 뜻을 가진 한자어로 풍류(風流)가 있었음에도 왜 굳이 신조어를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 단어는 한자 문화권 전체로 퍼져 나가 중국인 중에도 이 단어가 중국 고전에서 유래한 것인 줄 아는 사람이 많다.

일본인들이 유럽 세계와 조우하기 훨씬 전에 ‘성경’을 접했던 중국인들은 the God에게 천주(天主)라는 이름을 붙이는 데에는 별로 망설이지 않았다. 그들은 자기들과 다른 유럽인의 우주관은 용인했지만, 천하관의 차이는 어떻게 해도 극복할 수 없었다. 천주의 독생자에 상응하는 한자어 ‘천자(天子)’는 이미 세속에서 절대적 권능을 행사하는 황제의 몫이었다. 그들은 부득이 발음도 비슷하고 땅을 감독하는 자로 해석할 수도 있는 ‘기독(基督)’이나 발음만 비슷할 뿐 아무런 의미도 없는 ‘야소(耶蘇)’라는 단어를 만들어 대응시켰다.

얼마 전 한국 언론들이 미국 대통령 트럼프가 SNS에 쓴 짧은 문장을 줄줄이 오역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1주일에 10시간 이상씩 10년 넘게 영어 공부한 사람들이, 그것도 평균 수준 이상인 사람들이, 영어사전을 옆에 두고도 오역을 한다. 그러니 아무런 사전 지식도, 참고할 문헌도 없이 처음 외국어와 맞닥뜨린 사람들은 어땠을까?

최초의 번역은 자기들의 언어와 결합한 지식으로는 들여다볼 수 없는 혼돈의 세계와 교류하는 일이었다. 교류 수단을 얻기 위해서는 자기 문화 전체와 상대 문화 전체를 맞대면시켜야 했다. 둘 사이에서 일치하는 것들을 찾아 대응시키고, 비슷한 것이 있으면 변형시키며, 없는 것은 창조해야 하는 버거운 일이었다. 이 일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알려는 의지를 총동원해야 했으나, 그래도 완벽한 결과를 얻을 수는 없었다. 대통령, 장관, 목사처럼 격에 안 맞는 단어들이 만들어졌는가 하면, 가방, 구두, 돈가스처럼 상대도 모르고 자기들도 모르는 단어들까지 발명되었다.

유럽인들이 전 지구를 무대로 해상활동을 개시한 15세기 말부터, 일본과 중국에서는 유럽인들의 언어를 통해 유럽인들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본격화했다. 19세기 말에 이르러서야 서구세계와 접촉한 조선은 이 점에서도 후발 주자의 이점을 톡톡히 누렸다. 일본인과 중국인들이 대응시킨 단어들을 가져다 쓰기만 하면 되었으니. 그러나 한국 문화 전체를 놓고 보자면 결코 다행스러운 일이었다고는 할 수 없다. 번역할 기회를 잃은 탓에, 한국인들은 자기 문화 전체를 성찰하고 서구 문화 전반을 주체적으로 관찰할 기회도 잃었다.

19세기 말까지 유럽과 미국에서 유래한 신문물에 대한 한국인의 지식 세계는 중국 번역어와 일본 번역어의 공동 지배하에 있었으나, 20세기 이후에는 일본이 이에 대한 지배권마저 독점했다. 한국인들은 일본인들이 일본어로 번역한 글을 그대로 읽거나, 일본어를 한국어로 번역하는 가벼운 수고만 하면 되었다. 1980년대 초중반까지 100년 가까운 시간 동안, 한국인들은 별 문제의식 없이 이 편리함을 누렸다.

그런데 이 뒤로 일본 번역어를 매개로 한 간접 번역이 줄어들었다고 해서 번역어를 창조하려는 의지가 커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번역어 만들기를 포기하거나, 우리말의 ‘미세한 뉘앙스 차이’를 모른 채 번역어를 만들고는 억지로 유포시키려는 경향만 강해진 듯하다.

이런 현상을 잘 보여주는 단어가 근자에 횡행하는 ‘혐오’다. 우리말 어감으로는 ‘징그럽거나 끔찍하거나 더러워서 싫어함’에 해당할 텐데, 이 단어 하나에 증오, 분노, 불신, 공포, 멸시, 경시, 비하, 조롱, 심지어 숭배의 의미까지 다 구겨 넣는 게 당연한 일처럼 되었다. 일본과 중국에서는 혐오, 불신, 공포, 차별로 나누어 번역하는 단어들도, 한국에서는 ‘혐오’로 통일돼 있다. 같은 단어에 다른 뜻을 담다 보니 상호 이해의 폭이 넓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소통에 장애가 생긴다.

공자는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말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했다. 같은 말에 다른 뜻을 담는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세상이 평화롭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게다가 자기 문화 전반에 대한 깊은 성찰 없이 남의 문화에서 탄생한 단어를 함부로 번역하는 것은, 자기 문화에 대한 무지를 심화하는 일이다.

국립국어원에서든 지식사회에서든, 올바른 번역어를 찾거나 만들기 위해 분발했으면 한다.

<전우용 |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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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속담은 사촌이 새로 산 땅에 똥거름 선물을 주기 위해 어서 배가 아파야 하는데, 라는 훈훈한 미담이라는 얘기가 인터넷상에 종종 보입니다. 하지만 이 속담이 쓰이는 모두를 살펴보면 절대 그럴 리 없습니다.

남이 잘되면 시기하고 질투하는 마음이 생기기 마련이라는 이 속담에는, 남이랄 수 없는 친척이지만 안 보면 남인 사이, 아버지 형제들의 자식이자 같은 촌수끼리인 사촌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옛 경제력의 상징, 땅이 나오죠.

부모·자식 간이 아닌 다음에야 형제 간에도 경쟁과 시기가 생기는 법입니다. ‘부모는 자식이 잘났다 하면 기뻐하고 형은 동생이 잘났다 하면 시기한다’라는 속담이 있고, ‘갈모형제’라고 해서, 비 올 때 비싼 갓을 적시지 않으려 기름종이를 주름 접고 고깔처럼 만들어 갓 위에 덮어씌우는 갈모로, 형이 동생보다 옹졸함을 일컫는 말도 만들어집니다. 갈모의 밑(동생)이 넓게 펴질수록 상대적으로 그 꼭지(형)는 더욱 작아 보이듯, 동생이 잘나갈수록 부모 눈에 차지 못한 형은 동생을 시기하기도 할 겁니다.

형제 간도 이러한데 그보다 먼 사촌이 잘나간다면 과연 기쁜 마음이 들까요? 사촌이 잘되어봐야 내게 돌아올 이익은 없는데 말입니다. 그럼에도 친척이다 보니 소식을 안 들을 수 없습니다. 그것도 멀리 풍문으로 듣는 것이 아니라 친척들의 입을 통해 바로 곁에서 듣게 됩니다. 내가 못 나갈수록 비교되는 것 같아 속은 더욱 쓰립니다.

명절 때면 자식 둔 형제 간에 자식 자랑이 유난합니다. 내 자식이 이번에 어디 들어갔다, 요즘 얼마를 번다 등등. 듣는 형제도 제 자식 못난 것 같아 씁쓸한데 그 조카는 마음이 오죽할까요. 자식 자랑은 팔불출이라지만, 형제와 조카의 마음 상하는 줄 모르고 명절 자랑에만 여념 없는 이가 어쩌면 진짜 팔불출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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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박○○ ○○대 자소설-1’. 올해도 이 파일 이름을 보았다. 학생부 전형에서 상당 비중을 차지하는 자기소개서를 검토해 달라는 학생들 파일명에는 해마다 ‘자소설’이 있다. 스스로 자신을 소개하는 글이 신뢰성을 잃은 데 대한 자괴감의 반영이다. 학생들이 자소서 파일 이름을 자소설이라 칭하는 현실 이면에는 한국입시의 혼탁함이 엄존한다. 학생부 전형은 생활기록부와 자기소개서를 바탕으로 고교생활 3년간의 활동과 이를 통해 얻은 지적, 도덕적 성장을 평가한다. 그러나 예민한 연구나 각종 활동, 즉 재현은 평가 기준으로 우리에게 낯설다. 우수학생의 능력으로 수용되기에 정서적 거리가 존재한다.

입시상담을 하다보면 충분한 내신 성적을 갖추었음에도 자소서를 작성하는 학생부 전형 지원을 부담스러워하는 학생들이 다수다. 이 부류 학생들은 대체로 자기 지식이나 능력을 드러내기보다 앉아서 공부하기를 즐기는데, 특목고에 비해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흔히 보인다. 이들은 자신의 생활기록부를 뒤져 별것 아닌 활동을 부풀리거나 타인이 자신을 잘 봐 줄 것으로 기대하면서 글을 쓰는 행위를 몹시 싫어한다. 수동적일 수 있으나 정직한 학생들이다. ‘내가 받은 교내 상도 여러 명이 함께 받았으며, 전공 관련 활동도 없고, 독특한 실험이나 연구 활동도 없는 만큼 내신만으로 지원하기 어렵다. 자기소개서 샘플을 봤는데, 나는 그렇게 쓸 수 없다. 두드러진 게 없다. 어쩌란 말이냐.’

결과적으로 그들 대부분 현실에 쫓겨 자소서를 쓴다. 이런 형편을 감안해 자소서를 작성할 때 화려한 신데렐라 스토리가 불필요함을 여러 차례 주지시킨다. 그래도 힘들어 한다. 어린 시절부터 자기 감정을 표현하는 행위에 익숙지 않은 데다 특정 활동의 부각을 과장으로 보는 정서적 거부감 때문이다. 설득하는 과정은 어렵다. 특히 합격 가능성을 높이려 원치 않는 학과로 방향을 바꿀 경우 해당 학과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며 손을 놓는다. 그럴수록 생활기록부를 탈탈 털어 해당 학과에 대한 충성도를 부각시키려 노력한다. 책상 앞에 버티고 앉은 학생을 어르고 달래 만들어 나간다. 이 과정은 몹시 힘들지만 학생이 거짓된 스토리를 원하는 경우보다 정신적 부담이 훨씬 적다. 그러나 여전히 찜찜하다. 이걸 왜 해야 하나.

우리 문화를 돌아보자. 자기 의견에 반하는 표현을 했다고 연예인이 ‘블랙리스트’에 오른다. 여전히 수능이나 고시가 입시 공정성의 핵심이라고 믿는 사람들도 다수다. 이 시험들은 읽고 문제 푸는 게 전부다. 입시 역시 그 나라의 문화에 맞아야 수용될 텐데, 활동과 느낌 진술로 구성된 자소서 문항을 보면 이질감을 지우기 어렵다. ‘너 프랑스어 하니?’라는 질문에 ‘응, 나는 6주 배웠고 그만큼은 해’라고 응수하는 미국인에 비해 한국인은 12년 영어를 하고도 ‘너 영어 잘해?’라는 질문에 ‘조금’이라고 답한다. 겸양과 침묵이 미덕인 나라에서 재현과 홍보는 정서적으로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

학생부 전형은 장점이 많다. 그러나 교과과정이나 수업 모델의 개선 없이 학생들이 양질의 활동을 할 가능성은 낮다. 교실에 앉아 수학 문제를 풀고, 국어 독해의 오류를 점검하는 학생이 여전히 많다. 성실이 성공의 토대라고 믿는 이들에게 학생부 전형은 그럴싸한 활동으로 자신을 포장한 결과로 비칠 것이다. 자소서의 문제를 정밀하게 진단해야 할 시기다.

<정주현 | 논술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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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연설을 잘한다. 취임사나 5·18 기념식 연설은 감명 깊었다. 적절한 언어 구사, 논리와 감성이 잘 버무려진 글에 진정성이 깃든 태도와 목소리가 강한 울림을 주었다. 문 대통령의 유엔 순방에서 가장 눈에 띈 것도 총회 기조연설이었다. 사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 완전 파괴’를 거론했기 때문에 문 대통령이 연설에 어떤 메시지를 담을까 궁금했다. 염려하는 분위기도 있었다. 그런데 뚜껑을 열어보니, 준수했다.

문 대통령은 연설에서 균형 잡힌 언어로 다자주의와 평화를 말했다. 은연중이지만 연설문 곳곳에 미국의 군사행동에 반대한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감정적으로 미국 우선주의와 전쟁과 압박을 강조한 트럼프와는 확연히 달랐다. 트럼프를 자극하지 않는 방식을 구사한 것도 인상적이었다. 유엔이 표방하는 평화를 강조하면서 북핵의 평화적 해결을 호소한 대목이 특히 절묘했다. 트럼프가 좋아하는 로널드 레이건의 평화론을 동원한 것도 세심한 안배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오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72차 유엔총회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맨 앞줄의 북한 외교관들(왼쪽)이 문 대통령의 연설을 지켜보고 있다. 유엔본부 _ 연합뉴스

보수 야당들은 한·미 공조에 도움이 안되는 연설이라고 비판했지만 공연한 매타작일 뿐이다. 지금은 언제 한반도 전쟁이 벌어진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정세가 험악하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은 이명박·박근혜 대통령처럼 미국이 하자는 대로 복창하기만 하면 문제없던 시절의 정상회담과는 근본부터 다르다. 한국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 앞에서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 자체가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하물며 지금 미국의 대통령은, 북한 완전 파괴를 입에 올리는 ‘미스터 불확실성’ 도널드 트럼프 아닌가.

여기까지 문 대통령의 유엔 데뷔는 성공적이었다. 그런데 한·미 정상회담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트럼프 대통령께서 대단히 강력한 연설을 해줬는데, 저는 그런 강력함이 북한을 반드시 변화시킬 것으로 확신한다”는 모두발언이 문제였다. 문 대통령이 전쟁은 안된다고 연설한 직후 열린 정상회담에서 트럼프의 ‘북한 완전 파괴’ 연설을 높이 평가한 것이다. 트럼프는 이에 만족해하며 친근감을 표시해 회담 내내 화기애애했다고 한다. 정상외교에서 의례적인 덕담은 관행이지만 문 대통령의 발언은 덕담 수준을 넘어선 것이다. 트럼프의 연설 메시지는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이다. 정부의 대북정책은 양보나 협상의 대상이 돼서는 안된다. 외교적 립서비스 대상으로는 더더구나 적절치 않다. 

이를 모를 리 없는 문 대통령이 이를 비판하기는커녕 칭찬한 것은 이해가 안된다. 국가 수반으로서의 자존심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트럼프를 자극하지도 않는 발언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러지 않고 트럼프의 연설을 평가한 데서는 이명박·박근혜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문 대통령의 단순 실수라거나 의도를 오해한 것이라고 할지 모르겠다. 그렇지 않다. 전조가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연설 직후 청와대는 “국제사회와 유엔이 당면한 평화와 안전 유지와 관련한 주요 문제에 대해 확고하고 구체적인 입장을 표명한 것”이란 논평을 냈다. 논평이라면 평가가 있어야 할 텐데 이 문장 어디서도 찾을 수 없다. 미국을 의식한 나머지 평가를 피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이에 ‘6·15 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는 “주권과 평화를 지켜야 할 정부가 미국에 굴종하는 굴욕적이고 한심한 태도의 극치”라고 강력 비난했다. 이를 계기로 대미 굴욕외교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한 언론인의 “평화를 위해서라면 미국이 기라면 기고 짖으라면 짖어야 한다”는 페이스북 글에 트럼프 연설 논평이 마중물 역할을 했다. 6·15남측위의 청와대 비판 수위는 지나쳐 보이지만 비판 자체는 일리가 있다.  

북·미 간 대치가 심화되면서 어느 순간부터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는 길을 잃었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큰 그림을 제시하고 돌발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그 틀 속에서 일관성을 잃지 않고 전략적 대응을 하는 대신 즉흥적 대응만 하고 있다. 한·미동맹에만 의존하는 자세도 지나치다. 전쟁을 막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세부터 문제다. 전 세계로부터 혹평을 받은 트럼프 연설에 대한 높은 평가도 이런 기조 속에서 나온 것이다. 하지만 위기 대응을 핑계로 남북관계 원칙을 훼손한다면 추후 기회가 온다 해도 운신의 폭이 좁아질 수밖에 없다. 핵잠수함 등 첨단무기 도입과 ‘세컨더리 보이콧’ 등 적어도 한반도 평화나 대북기조에서는 불가역적 조치를 최대한 자제할 필요가 있다. 

문재인 정부는 지금 ‘전쟁’을 치르고 있다. 전쟁 방지와 한반도 평화가 목표일 것이다. 그런데 겉으로 드러난 행적만 보면 무조건적인 미국 추종밖에 없다. 정부에 묻는다. 어느 쪽이 진짜 얼굴인가.

<조호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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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의 한 여관에서 일어나 아침식사를 하러 가는 길. 제법 쌀랑해진 날씨에 목덜미가 시큰해지더니 두툼한 긴팔 옷이 그리워졌다. 야외주차장으로 연결된 샛길에 꽃 몇 송이가 흔들흔들 서 있다. 육상선수처럼 헐레벌떡 어디로 뛰어가는 듯한 꽃들을 보면서 선뜻 이런 작문을 했다. 매미소리 끊기자 코스모스 피는구나.

지난주 벌초하러 고향 갔다가 초등학교에 가보았다. 개구쟁이들이 떠난 운동장은 쑥부쟁이, 명아주, 방동사니 등 심심하게 놀고 있는 풀들의 차지였다. 길가에 그 많았던 코스모스는 어디로 갔을까. 도자기 공장으로 변한 교사를 보는데 추억의 한 자락이 떠올랐다. 완대초등학교는 거창읍에서 40여리. 내 어머니 머리에 쌀 이고 거창장으로 갈 때 두 시간이나 잡아먹던 거리이다. 햇빛이 풍부해 사과농사를 많이 하는 동네--남에서 북으로 꼽으면 막터, 오무, 새터, 오류골, 완대, 돗골--의 아이들이 이 학교에 다녔다. 한 학년에 한 학급이었지만 쉬는 시간이면 이야기꽃과 먼지로 운동장이 자욱했다. 이맘때쯤의 어느 날 따뜻한 햇볕을 찾아 모여 놀다가 한바탕 말싸움이 벌어졌다. 어느 동네가 최고냐고. 다들 고만고만했지만 어린 마음이야 그러지를 못해 제 동네 자랑하느라 마구 핏대를 올렸다. 하지만 돗골 아이들 한마디에 모두들 꼬리를 내려야 했다. “야, 씨바, 누가 서울에서 가장 가깝노!”

이제는 폐교가 된 완대초등학교. 그땐 부산으로 전학 간다고 좋아라 방방 날뛰었는데 지금은 이 학교를 졸업하지 못한 게 두고두고 후회스럽다. 울퉁불퉁 자갈길에서 쌀쌀맞은 아스팔트로 포장한 도로를 달려 서울로 가는데 선뜻 이런 문장이 이마를 때린다. 학교가 폐허되니 코스모스도 사라졌구나.

파주출판단지의 사무실에서 나와 자유로를 타고 북쪽으로 달리면 임진각 조금 못 미친 곳에 코스모스 꽃밭이 있다. 내 고향에서 사라진 꽃들도 이곳으로 몽땅 전학을 왔나 싶을 정도로 눈에 넘친다. 꽃은 어쩌자고 코스모스인가. 코스모스는 우짜자고 이런 이름인가. 출발총성을 기다리는 마라톤선수들처럼 술렁이는 코스모스를 보면서 내 어린 시절 등하굣길에 동무해준 꽃들을 불러보았다. 코스모스, 국화과의 한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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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가 기업의 ‘쉬운 해고’를 가능하게 하고, 임금 등 노동조건을 후퇴시키는 데 악용해온 양대 노동지침이 공식 폐기됐다.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은 25일 전국기관장 회의를 열어 “사회적 공감대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된 양대 노동지침을 폐기한다”고 밝혔다. 박근혜 정부가 지난해 1월 전격 발표한 양대 노동지침은 ‘공정인사 지침’과 ‘취업규칙 해석 및 운영에 관한 지침’을 가리킨다.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일종의 ‘가이드라인’ 역할을 하면서 노동자들을 옥죄어온 양대 노동지침의 폐기는 노동적폐 청산을 위한 첫걸음으로 평가할 만하다.

근로기준법은 사용자가 정당한 이유 없이 노동자를 해고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노동자가 질병·부상·구속 등으로 일할 수 없거나 회사가 긴박한 경영상의 위기로 인력을 감축해야 하는 경우 등이 ‘정당한 이유’에 해당한다. 하지만 노동부는 지난해 1월22일 발표한 ‘공정인사 지침’에 업무·근무성적 부진 등도 ‘정당한 이유’가 될 수 있다고 규정했다. 법이나 판례로 저성과자 해고를 원칙적으로 금지해왔는데 노동부가 ‘쉬운 해고’의 길을 열어준 꼴이다.

취업규칙은 채용·인사·임금 등에 관한 사내규칙이다. 근로기준법은 노동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취업규칙 변경은 노조나 과반수의 동의를 얻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도 노동부는 지침으로 노동자에게 불이익이 돌아갈 취업규칙을 변경할 수 있도록 했다. 박근혜 정부는 공공기관에 임금피크제·성과연봉제 도입 등을 밀어붙이면서 취업규칙 지침을 적극 활용했다. 기업들의 저성과자 낙인찍기와 부당해고도 줄을 이었다.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7월 저성과자로 분류된 직원 3명을 부당해고하기도 했다. 민주노총·한국노총 등 노동계는 양대 노동지침 폐기를 요구해왔다. 특히 한국노총은 노사정위원회를 탈퇴하면서 노사정 대화가 중단된 바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양대 노동지침 폐기를 대선공약으로 제시했고, 김영주 장관도 인사청문회에서 이를 구체적으로 약속했다.

양대 노동지침의 폐기는 노동자의 기본적인 권리 보장을 위한 당연한 조치다. 이를 계기로 노사정위원회가 즉각 복원돼 노동존중사회 실현을 위한 대화의 물꼬가 트이길 기대한다. 아울러 정부는 행정권력의 노동법 파괴와 노조 무력화에 제동을 걸고, 노동시간 단축과 통상임금에 대한 잘못된 행정해석도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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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장거리 전략폭격기 B-1B 랜서 2대와 F-15C 전투기 6대가 지난 23일 밤 동해의 북방한계선(NLL)을 넘어 북한 쪽 동해 공해상에서 3시간가량 날았다. 강원도 고성 동쪽 200여㎞ 떨어진, 말 그대로 북한의 코앞까지 근접해 비행했다. 미 전략폭격기가 1953년 휴전 후 처음 NLL을 넘은 가장 공세적 위협작전이었다.

이번 비행은 미군의 대응에 변화가 있음을 보여준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 등 특별한 도발이 없는데도 미국이 전략무기를 전개했다는 점이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유엔총회 연설에서 북한을 ‘완전 파괴’할 수 있다고 한 것을 뒷받침하면서, 군사적 옵션이 말뿐이 아님을 과시하기 위한 것이다.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최근 미 전략무기의 한반도 작전 방식이 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한반도에 출격한 미 전략무기는 한국군과 연합해 작전을 펼쳐왔다. 그런데 이번 미국 괌에서 출격한 전략폭격기는 오키나와 미군기지에서 이륙한 F-15C 전투기 편대의 호위를 받았다. 공중급유기를 동원해 자체 급유까지 했다. 한국군과 한반도 내 미 공군기지의 역할은 전혀 없었다. 지난달 31일 북한의 화성-12형 발사 때도 미국은 장거리폭격기, 스텔스 전투기, 공중급유기 등을 함께 출동시켰다. 유사시 한국군과 한국 내 기지의 도움 없이 작전할 수 있다는 뜻이다.

청와대와 국방부는 어제 “전폭기 출격은 한·미 간 충분한 사전조율이 있었고, 긴밀한 공조하에 이뤄졌다”고 했다. 그러나 최근 미국 측은 단독 군사행동 가능성을 언급해왔다. 송영무 국방장관은 최근 국회에서 지난달 을지프리덤가디언(UFG) 연습 때 미군 폭격기가 군사분계선에 근접하지 말도록 요구했다고 밝힌 바 있다. 미군 단독 작전의 배경에는 한국 정부의 대응이 유화적이라는 불만의 표시도 섞여 있다는 것이다. 어제 국가안전보장회의(NSC)도 미군의 작전에 북한이 반발할 조짐을 보이자 서둘러 개최했다고 한다. 한국의 의사에 반해 미군 전략무기가 북한을 상대로 단독 작전에 나섰다면 보통 일이 아니다.

이번에는 넘어갔지만 북한이 미국의 위협에 자극받아 맞대응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만에 하나 무력 충돌이 벌어진다면 재앙이 발생할 것이다. 해상과 공중에서의 우발적인 충돌이 심각한 교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런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한국군 개입 없이 미 전략무기가 한반도에서 단독으로 작전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한민국 동의 없이 누구도 군사행동을 결정할 수 없으며, 한반도에서 다시 전쟁은 안된다”고 했다. 정부는 이런 사태를 두 번 다시 허용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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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를 앞둔 시점에 정치보복 논란이 뜨겁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발언을 빌미로 자유한국당 정진석 의원이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욕되게 하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고, 김경수 의원을 필두로 더불어민주당이 강력 반발하자 정 의원은 “국가정보원이나 국가정보기관이 정치보복을 하지 말자는 것”이 적폐청산이라고 재반박했다. 김 의원은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관이고, 정 의원은 이명박 청와대의 정무수석이었다. 그러자 추미애 민주당 대표는 “정치보복 프레임에 속지 않을 것”이라고 일갈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아들 건호씨가 자유한국당 정진석 의원을 ‘사자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하기 위해 25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들어서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다른 한편으로 리얼미터가 발표한 문재인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도는 사상 최저치인 65.6%로 나타났는데, 이는 같은 기관의 조사에서 최고치였던 82.3%와 비교하면 16.7%포인트 하락한 것이다. 넉달 전 지지층의 5분의 1 정도가 빠져나간 셈인데, 주로 빠져나간 사람들은 5060세대, TK와 PK 일부, 주부·자영업자·무직자 등으로 박근혜와 자유한국당의 핵심 지지층이었던 사람들이다. 문재인 정부의 행보가 실제로 정치보복인지 아닌지를 떠나, 길고 긴 추석 연휴 동안 다섯 가구 중 한 가구의 명절 밥상머리에서는 적폐청산한다는 새 정부의 행태가 지난 정부와 다를 게 뭐가 있냐는 얘기들이 오갈 것이다. 사실 여부를 떠나 이런 이야기가 오가는 것 자체가 빈사상태의 자유한국당에는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러면 자유한국당은 도대체 무엇을 놓고 정치보복이라 주장하는 것일까. 대뜸 국정원을 언급하는 것으로 보아서는 현재 수사가 진행 중인 국정원 여론조작 사건을 말하는 것일 게다. 수사의 칼날이 박근혜 정부를 넘어 이명박 정부에까지 겨눠지자 지난 정부도 아니고 지지난 정부까지 ‘터는’ 것은 ‘치사’하다는 감정에 호소하는 것이다. 필자 또한 정치보복에 적극 반대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것이 정치보복일까? 과거에 당한 것을 되갚아주고 싶은 보복의 감정이 있느냐 없느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수사하고 처벌해야 할 실제의 범죄행위가 있었느냐 없었느냐, 만약 있었다면 전직 대통령이라는 점 때문에 생각할 수 있는 정치적 관용의 한계를 넘었느냐 그렇지 않았느냐가 핵심이다.

정치적 현안과 관련해서 온라인 빅데이터를 분석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안다. 박근혜가 당선된 2012년 18대 대선에서 얼마나 어마어마한 수의 ‘알바’가 활동했고 그들이 정치적 공론장을 얼마나 심각하게 망쳐놓았는지를. 그들의 활동이 선거결과를 뒤바꾸어 놓았는지 여부를 확증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그들이 부정적인 의미에서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이 나라의 정치적 공론장을 파괴했다는 점이다. 당시 분석가들은 온라인 빅데이터를 분석하며 계속해서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이 정도의 규모로 이렇게 체계적으로 활동하려면 잘 갖추어진 조직과 엄청난 예산이 필요할 텐데, 그걸 제공하는 자들은 누구일까? 짐작은 가지만 증거는 없었다. 이제야 조금씩 드러나는 진실을 보면 역시나 그 짐작이 맞았었다. 이명박 정부의 국정원을 비롯한 국가기관이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행위에 세금과 조직을 제공했고, 그들의 활동은 그 당시 청와대와 연결되어 있었다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국가를 수호해야 할 제1의 책임을 가진 대통령이, 청와대가, 국가기관이 국민의 세금을 가지고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데 썼다면 헌법 위반이고, 선거법 위반이고, 국정원법 위반이다. 보복의 감정이 있건 없건 수사하고 처벌할 수밖에 없는 중대한 범죄행위이고, 정치적 관용의 한계를 훌쩍 뛰어넘는 사안이다. 그러니 정치보복 운운은 도무지 어불성설이다.

그러면 이것은 정치보복이 아니라고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정치보복 프레임에 말려들지 않으면’ 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아무리 정치보복이 아니라고 설명해도 여전히 빠져나간 5분의 1은 정치보복이라 생각할 것이다. 실제로 대통령이 국정수행을 잘 못하고 있다고 응답한 사람들이 제시한 이유들 중에 정치보복은 3~4위를 오가는 중요한 이유이다. 정치보복이 아닌데, 그 프레임에 빠지면 안된다는 것도 알고 있는데, 그래도 자꾸만 그 프레임에 발목을 잡힌다.

그 이유가 뭘까. 나는 문재인 정부가 ‘적폐청산’과 ‘촛불정신’ 이외의 다른 정치동력을 찾아내지 못한 데에 그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두 가지가 지나간 시대의 정의를 바로 세우는 것이라면 비어있는 것은 다가오는 시대의 비전에 접근해가는 정치이다. 적폐청산이 새 시대의 비전에 접근해가는 불편부당한 과정임을 설명할 수 있을 때, 누구도 감히 정치보복을 입에 담을 수 없을 것이다. 밀월의 시간은 끝나가고 성적표를 받을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비전을 세우는 것도 아직 지지율이 높을 때 가능한 일이다.

<장덕진 | 서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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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말로는 못할 것이 없다. “우리 국문과 교수들이 소설을 안 써서 그렇지, 쓰면 연수씨보다 훨씬 잘 쓸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해요.” 소설가 김연수에게 어느 국문학과 교수가 했다는 말이다. 인터뷰집에서 김연수는 써야만 쓰는 것이라고 했다. “가장 중요하고 결정적인 것은 간절함인데, 그 간절함(은) 반복적인 행동으로 나오는 일이겠죠.” 그리고 “재능은 큰 도움이 안되는 것 같아요. 우리가 서른 살까지 산다면 결정적이겠지만, 대부분은 오래 살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무의미해지죠”라고 했다.

상상력조차도 꾸준함에서 나온다고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말했다. 1982년 이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달리고 있는 그이다. “그저 묵묵히 시간을 들여 뛰어간다. 장편소설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다. 계속 이어가는 것 리듬을 끊지 않는 것. 이것이 장기적인 작업에서는 중요하다.” 무라카미는 에세이를 쓰는 이유도 비슷하게 설명한다. “나는 글자로 써보지 않으면 어떤 사물에 대해 제대로 생각하기 어려운 사람이다.” 누구라도 반복하지 않으면 프로가 되지 못한다.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가 22일 오전 서울 서초동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김 후보자 임명동의안은 21일 문재인 대통령이 지명한지 31일만에 국회를 통과했다. 연합뉴스

김명수 대법원장은 후보자로 발표되고 기자들에게 말했다. “저는 31년5개월 동안 법정에서 당사자들과 호흡하며 재판만 해온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어떤 수준인지, 어떤 모습인지 이번에 보여드릴 것으로 기대합니다.” 두 가지 속내를 전달하고 싶었을 테다. 법원행정처 경험이 없다는 비판에 대한 답변, 평생을 재판만 해온 95% 판사들에 대한 응원이다. 이 말에는 사실 이유가 있다. 재판을 잘하려면 재판을 오래 해야 한다는 당연한 명제가 법원에서는 부정되어 왔기 때문이다.

김명수 후보자가 발표되자 행정처에서 일한 전·현직 판사들은 노골적이고 조직적으로 반발했다. 기자를 만나서도 스스럼없이 후보자의 경력을 깔보았고, 사고를 치고 법복을 벗은 처지에 사법부의 미래를 개탄했다. “(청와대가) 사법부를 행정조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1948년 정부 수립 이래 가장 혁명적인 조치.” “도대체 법원이 어떻게 되려고 이러나.” 행정처 출신들은 스스로도 이렇게 본다. “우리 행정처 판사들이 재판을 안 해서 그렇지, 하면 당신들보다 훨씬 잘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행정처 출신 판사 가운데 재판을 잘하는 사람들이 있다. 가령 강일원 헌법재판관의 재판은 폭포가 떨어지듯 정확하고 신속하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이 무난하게 끝난 것도 그의 공이다. 또 다른 행정처 출신인 특허법원 김환수 수석부장판사 재판은 사람의 마음부터 어루만진다. 영어로 심리를 주재하는 실력파이지만 당사자의 긴 얘기를 마음으로 듣는 겸손한 판사다. 무람하지만 내 주례 선생인 김앤장 변호사도 행정처 출신의 그런 판사였다.

하지만 몇몇 좋은 결과가 있다고 해서, 일반적인 현상을 부정하지는 못한다. 재판을 오래 하지 않았어도 깔끔하게 하는 사람이 있지만 어디까지나 예외다. 오히려 이 판사들이 재판에만 집중했다면 더 좋은 재판을 했을 테다. 사법시험에 붙은 판사들의 능력은 비슷하다. 그렇다면 재판을 오래 한 사람이 잘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그런데도 사법관료들은 “하급심을 아무리 오래 해도 대법원 재판은 다르다. 미국에서도 곧바로 대법원장이 되지만 종신제라 다르다”며 버틴다. 

일본을 대표하는 화가 가쓰시카 호쿠사이가 걸작 <후가쿠 36경(富嶽三十六景)>을 내놓은 게 일흔이 넘어서다. 여든아홉에 임종을 앞두고 그는 “하늘이 내게 수명을 다섯 해 더 준다면, 진정한 화공이 될 수 있을 텐데”라고 했다. 유럽까지 뒤흔든 천하의 호쿠사이도 이렇다. 물감이 아닌 사람을 상대하는 재판은 죽을 때까지 해도 제대로 하기가 어렵다. 25일 업무를 시작한 김명수 대법원장에게 주권자인 국민이 여섯 해를 주었다. 이 시간 동안 약속을 지켜야 한다.

31년 동안 재판만 한 사람의 실력을 보여줄 때다.

<사회부 | 이범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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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얘기로 SNS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자유한국당 정진석 의원이 지난 2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부부싸움 끝에 권양숙씨가 가출하고, 노 전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라는 주장의 글을 올리면서다.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관’으로 불리는 더불어민주당 김경수 의원이 “사과도 안 받겠다. 법적 책임을 지시면 된다”고 강경 대응에 나섰고, SNS에도 비판 여론이 쇄도했다.

누리꾼들은 먼저 정 의원의 글에 ‘고인을 두고 너무하는 것 아니냐’고 성토하는 반응을 보였다.

iulo****는 트위터에 “유가족의 가슴을 또 한번 아프게 하고 현 정권에도 전혀 도움 되지 않는 백해무익한 언변”이라며 “정치인으로서 부끄럽지 않나요?”라고 썼다.

김모씨는 “이미 모두 드러났듯이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국가정보원과 검찰을 동원한 정치적 살인 의도가 분명히 있다고 보여진다”며 “그것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전 정권 죽이기였다. 이제 그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다.

논란은 하루 만에 정치권을 중심으로 일파만파 커졌다. 민주당 의원들도 SNS를 통한 설전에 가세했고, 법적 대응 방침을 잇따라 밝혔다. 누리꾼들의 비판도 가열됐다.

하지만 정 의원은 다음날 다시 “돌아가신 노 전 대통령이나 가족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고 유감을 표명했다”며 “‘노 전 대통령의 비극적 결심이 이명박 대통령의 정치보복 때문이었다’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서 올린 글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러자 누리꾼들은 그의 두 글에 대해 음모론까지 제기하고 나섰다. 치밀한 정치적 계산에 따라 때 아닌 ‘노 전 대통령 사인 문제’를 들고 나왔다는 것이다.

권모씨는 페이스북에 “정 의원이 친노·친문이라는 주적 개념을 정리하고 자유당 내 친박·낀박·비박 등을 묶고자 하는 계산이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siu****는 “이 대통령의 청와대 정무수석 출신인 정 의원이 ‘MB’로 겨누어지는 비판 여론에 대해 ‘정치보복’이라는 프레임으로 물타기를 하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진주 기자 jinj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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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례없는 긴 추석 연휴를 앞두고 있다. 10월2일이 공휴일로 지정되면서 기쁨의 함성도 들리지만 쉬지 못함으로 인한 탄식 소리도 들린다. 하지만 누구보다도 슬픔에 빠지는 사람은 결식의 위험 가운데서도 아무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아이들이다. ‘요즘도 굶고 다니는 사람이 있어?’하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보건복지부의 아동급식현황에 따르면 아동·청소년의 약 3.4%, 35만명이 결식을 경험하고 있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집밥’의 따뜻한 추억을 경험하기 힘든 아이들이 이렇게도 많은 것이다. 이 아이들에게는 학교나 지역아동센터의 급식이 전부다.

그래서 월드비전과 후원자들이 뭉쳤다. 긴 연휴 동안에도 아이들이 결식하지 않도록 추석 키트를 만들기로 했다. 키트에는 조금이나마 추석을 추석답게 보낼 수 있도록 온갖 정성들이 채워졌다. 음식은 물론이고 마음을 담은 메시지도 함께 전달된다.

월드비전은 2000년부터 영양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아침에는 수업 전 학교에서 ‘아침머꼬’로 조식을 지원하고, 저녁에는 가정에서 식사를 할 수 있도록 봉사자들이 정성스럽게 만든 도시락을 지원하고 있다. 오랜 영양지원 사업으로 배운 사실이 있다. 아이들에게 지원하는 식사는 단순한 ‘밥 한 끼’가 아니라는 것이다. 후원자와 봉사자의 도움으로 지원되는 식사는 어른들의 관심과 사랑이다. 아이들은 식사뿐만 아니라 그 관심과 사랑을 함께 먹고 있는 것이다. 이번 추석도 후원자들의 마음이 잘 전달되어 아이들의 몸은 물론이고 마음도 든든하게 채울 수 있는 풍성한 연휴가 되길 기대한다.

<전영순 | 월드비전 국내사업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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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는 최근 몇 년간 시흥 캠퍼스 조성사업을 둘러싸고 심한 내홍을 겪고 있다. 서울대 학생들은 시흥캠퍼스 건설을 반대하면서 지난해 10월부터 올 3월까지 5개월에 걸쳐 서울대 역사상 가장 긴 본부 점거농성을 벌였다. 올 3월 초 학교 측이 학생들의 농성을 강제 해산했지만, 5월 초 학생들은 2차 본부 점거농성을 강행하는 등 갈등이 지속되었다.

이처럼 시흥캠퍼스 사업을 둘러싸고 서울대에서 갈등이 지속되고 있는 주요 이유는 관악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새로운 캠퍼스를 조성하는 것이 교육적, 학문적으로 필요하고 타당한지에 대한 충분한 검토와 공개적 논의 없이 시흥캠퍼스 사업이 졸속적으로 추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시흥캠퍼스 사업에 대한 학생들의 반발도 이러한 맥락에서 발생한 것이다. 하지만 시흥캠퍼스 사업의 문제점과 그 추진과정의 비민주성을 비판하던 학생들에 대해 서울대 본부는 진정성 있는 대화를 하기보다는 징계와 처벌을 앞세운 강압적 태도와 권위주의적 대응으로 일관했다. 지난해 10월부터 지속된 서울대 본부와 학생들 사이의 갈등 원인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여러 어려움을 겪은 끝에 지난 7월 초 서울대 본부와 농성 학생들 사이에 ‘서울대 시흥캠퍼스 문제 해결과 신뢰 회복을 위한 협의회’ 구성이 합의되고, 학생들은 본관 점거를 해제했다. 그러나 이후 대화과정에서 본부는 시흥캠퍼스 조성사업에 대한 학생들의 문제제기와 비판에 대해 책임 회피성 답변과 권위주의적 태도로 일관하여 진정한 대화를 어렵게 했다. 더구나 대화 기간 중에는 징계를 유보해 달라는 학생들의 요구를 외면하고 대화협의회에 참가한 학생들을 포함해 무려 12명의 학생에게 무기정학과 유기정학의 중징계를 내렸다.

대화협의회 구성을 위한 사전 논의과정에서, 성낙인 서울대 총장은 대화협의회가 구성되고 학생들의 본관 점거가 해제되면 학생들에 대한 형사고발을 취소하고 징계 최소화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중징계 처분을 내리고 말았다. 대화의 상대방을 징계해놓고 제대로 된 대화가 가능하겠는가. 결국 지난 8월 초 대화협의회는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한 채 끝나고 말았다.

서울대 본부의 학생들에 대한 중징계는 시흥캠퍼스 문제의 평화로운 해결을 어렵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그 부당함 때문에 학내외의 반발도 불러오고 있다. 지난 9월5일 학생들이 낸 징계처분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이 받아들였다. 학생들에 대한 서울대의 징계가 절차적 문제를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징계의 수위가 과도하게 높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로 인해 교육기관으로서 서울대의 명예는 큰 손상을 입게 되었다.

군사정권이 무너진 이래 서울대에서 이렇게 많은 학생이 중징계(무기정학 8명, 유기정학 4명)를 받은 일이 없다. 일부 지나친 언행이 있었을지 몰라도 농성 학생들의 행동은 어디까지나 대학다운 대학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지 맹목적이거나 파렴치한 불법 행위는 아니었다. 서울대 본부가 진정으로 학내의 갈등을 해결하고 싶다면, 지금이라도 학생들에 대한 부당한 징계를 철회해야 한다.

<박배균 | 서울대 교수·사범대 지리교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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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말. 제1야당 원내대표가 대법원장 후보자와 관련해서 국회에서 한 말이다. “후보자는 지난 2012년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장을 역임하면서 성소수자 인권을 주제로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발제자들이 동성애 차별금지법 제정 등을 요구했다.” 후보자의 적격 여부를 밝히기 위해 근거로 삼은 말인데 여기서 도출한 결론이 이해가 안 된다. 정우택 원내대표에 따르면 ‘그러므로’ 김명수 후보자는 부적격이라는데, 나로서는 성소수자 인권을 주제로 한 학술대회와 대법원장 부적격이라는 말 사이에 놓인 ‘그러므로’를 납득할 수가 없다.

보통의 논쟁에서 추론이 문제 되는 경우는 별로 없다. 근거에서 추론으로 나아가는 과정은 누구나 동의하는 규칙을 따르기 때문이다. 누군가 ‘소크라테스는 인간이다. 그러므로 죽는다’라고 말했다면, 결론을 부정하기 위해서는 소크라테스가 인간이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근거가 된 사실에 동의함에도 거기서 확신을 갖고 추론한 결론을 이해할 수 없다면 어찌해야 할까. 누군가 ‘오바마는 흑인이다. 그러므로 이 버스에 탈 수 없다’라고 한다면, 우리로서는 어안이 벙벙해질 따름이다. ‘그러므로’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가 다른 시대,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유감스럽게도 민주당은 후보자가 동성애자를 옹호하지 않았다고 방어했다. ‘그러므로’가 아니라 근거가 된 ‘사실’을 부인하는 쪽으로 나아간 것이다(‘그러므로’ 민주당도 우리 시대의 정당인지 확실치 않다).

범죄성이 짙은 말도 있다. 이채익 의원이 인사청문회에서 했다는 말이다. “성소수자를 인정하게 되면 동성애뿐 아니라 근친상간 문제나 소아성애, 시체상간, 수간까지 비화가 될 것이다. 인간의 파괴, 파탄이 불 보듯 뻔하다.” 그런데 5년 전 스웨덴에서는 몇몇 사람들이 동성애를 비난하는 전단지를 돌리다 체포되어 유죄선고를 받았다. 전단지에는 동성애가 비정상적 성애이고, 사회에 파괴적 영향을 미치며, 에이즈에 책임이 있다는 식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스웨덴 법정은 성적 지향을 이유로 일군의 사람들에 대한 적대를 조장했다며 징역형(집행유예)과 벌금형을 선고했다. 아무런 합리적 근거도 제시할 수 없던 이들은 ‘표현의 자유’를 호소하며 유럽재판소에 청원했다. 그러나 유럽재판소는 이들의 표현이 “필요 이상으로 공격적이고” “편견에 사로잡혔다”며 스웨덴 법정의 판결에 동의했다.

실제로 네덜란드, 벨기에, 스페인, 캐나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스웨덴, 노르웨이, 포르투갈, 프랑스, 영국, 브라질, 미국, 멕시코 등 많은 나라들이 동성결혼을 합법화했다. 이들 나라에서는 자기 머릿속 더러운 상상을 현실인 것처럼 외치는 사람들을 교정이 필요한 범죄자로 간주한다.

편견을 주입하는 말도 횡행하고 있다. 자유한국당 대변인은 논평에서 “동성애 교육이 특정 교사들에 의해 학교현장에서 버젓이 행해지고 있다”며 서울의 한 초등학교 영어교사가 “‘퀴어’(queer) 축제 영상을 보여주었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대구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섹슈얼리티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교사가 되도록 노력하고 커밍아웃을 할 수 있는 학급이 되도록 계기를 마련하겠다는 내용의 성교육을 했다”며 비난했다.

그런데 초등학생들에게 퀴어 축제 영상을 보여주고 섹슈얼리티의 다양성을 존중하도록 교육하는 것이 왜 문제인지 알 수가 없다. 퀴어 축제는 세계 각국에서 벌어지는 축제이고, 한국 축제에는 여러 나라 대사관들도 참여하며 올해부터는 국가인권위원회도 참여한다. 교육자라면 아이들에게 ‘퀴어’라는 말의 역사가 보여주는 인류의 부끄러운 편견과 그 편견을 깨기 위한 성소수자들의 분투를 알려주어야 하는 게 아닐까. 전희경 대변인은 이것이 “특정한 성적 지향을 학생들에게 주입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내 생각에는 그 반대다. 오히려 특정한 성적 지향만을 ‘정상’인 것처럼 믿어온 무지와 편견을 반성하고, 우리의 좁은 두개골 안에 아이들의 미래가 갇히지 않도록 열어주는 것이 교육자의 책무일 것이다.

신성모독처럼 들리는 말도 있다. 국내 최대 기독교 교단의 총회 결정이다. 이 총회에서는 성소수자 인권을 위해 노력해온 목사에 대해 ‘동성애 지지’와 ‘차별금지법 제정에 앞장섰다’며 성경에 위배되는 이단성을 지녔다고 결의했다. 성소수자 인권을 돌보는 것이 신에 대한 불경인지 신적인 사랑의 실천인지 나로서는 고개가 갸웃할 뿐이다.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 청문회 때도 그랬다. 공학자였던 그는 신앙인의 관점에서 지구의 나이는 6000년이라고 했다. 자신의 자아를 신앙인과 공학자로 따로 관리하는 모습도 딱했지만, ‘지구 나이 6000년’이 어떻게 신에 대한 경건이 될 수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글자만을 숭배하니 그것을 기록한 시대의 사고 속에 신을 가두어두는 꼴이 아닌가.

종이와 잉크를 숭배하는 이들로부터 신의 말씀을 지키고자 했던 스피노자는 이렇게 말했다. ‘선을 추구하는 신’보다 ‘무심한 신’이 진리에 가깝다고. ‘선’에 대한 제멋대로의 규정을 ‘신’에게 덮어씌우느니, 그런 것에 무심한 신이 차라리 신에 가깝다는 것이다. 에피쿠로스도 그렇게 말했다. 진정 불경한 사람들은 자신의 견해를 신에게 덮어씌우는 사람들이라고. 신을 자신들의 수준으로 떨어뜨려 놓은 사람들 말이다. 요즘 성소수자에 대한 이런저런 말을 듣고 있다 보면 6000년 전 빚어져서 에덴동산 밖으로 한 번도 나가본 적 없는 사람들을 만난 느낌이다.

<고병권 |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고려대 민연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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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학교 다니면서 교실에서 잠을 자지는 않았다. 밤에 잠을 충분히 잤을 뿐 아니라, 교실에서 잠을 자는 것을 학교 선생님들이 가만히 두지 않았다. 호통과 날아드는 분필 등 다양한 장치가 수업시간에 잠을 자거나 딴짓을 하는 것을 허락지 않았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비인간적인 인권유린이라고 해야 할까? 그래도 끊임없이 딴짓을 추구하기는 했다. 수업시간에 도시락을 까먹고 야한 책도 돌려 보았다. 한 반에 70명씩이나 시루의 콩나물처럼 바글바글했지만 젊음이 모여 있던 그곳에는 생기가 있었다. 기운들이 부딪쳐서 싸움도 일어나고 에어컨도 없는 교실에서 여름을 나면서 서로의 땀 냄새를 공유해야 하는 처지였지만 좀비들이 모인 것처럼 싸늘한 기운이 느껴지는 일은 거의 없었다. 공부든, 친구든, 아니면 딴짓이라도 재미난 일이 얼마나 많은데 학교에까지 와서 잠을 잘 시간이 없었다.

요즘, 고등학교 수업시간에 잠을 자지 않는 학생은 한 손으로 꼽을 정도라고 한다. 선생님들은 아무도 깨우지 않고 잠을 자지 않는 학생들만을 상대로 입시에 관련된 정보를 전달하고 있다고 한다. 학교에 다녀온 아이는 학교에서 하루에만 영화를 세 편이나 봤다고 한다.

교실은 이런 상황인데 교육과 관련된 정책은 입시와 관련된 이야기들만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도 공부를 하고 있는 아이들이라도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지만 나는 여전히 관심 밖에 놓인, 재미와 의욕을 상실한 녀석들이 너무 걱정스럽다. 명문 대학교에 진학한 아이조차도 수업시간 내내 좀비처럼 앉아 있다가 시험 이야기만 나오면 눈을 반짝이며 급하게 휴대폰을 꺼내 교수가 칠판에 쓴 것을 허겁지겁 찍는다는 친구의 이야기에 등골이 서늘했다. 이들이 살아갈 사회가 혹여 지금의 고등학교 교실처럼 황량하지는 않을지, 걱정을 하고 있다.

출판 현장에서 일을 하면서, 교육 현장의 아이들을 깨우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관심을 두고 있는 프로젝트가 몇 개 있다. 그중 하나는 재미없는 암기 과목으로 알려져 있는, 혹은 오해받고 있는 ‘역사’ 과목에서 가르치는 내용과 방법을 바꾸는 것이다. 역사란 무엇인가? 살아남은 과거의 기록 중에서도 중요하고 믿을 만한 기록을 골라 절차에 따라 검증해 현재적 관점에서 엮어내는 옛날이야기다. 지금껏 우리가 배워 온 역사는 단정적으로 서술되어 있고 일방적으로 객관적인 정보를 주는 것처럼 포장되어 있다. 교과서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재미를 담았다는 교양 역사서나 교양 만화도 예외는 없다. 거기에 효율적인 학습과 수월한 학습을 위해 정보의 양을 조절해 뼈대만 남기다 보니 역사책의 이야기들은 죽어 있다. 죽은 이야기를 우화 삼아 가르쳐 주려는 교훈은 왜 그렇게 많은지. 메시지가 내용을 압도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학문적으로 낡은 이야기와 과도한 메시지가 교사와 학생들을 잠재우기 일쑤다.

역사를 배워서 무엇을 할 것인가로 질문을 바꿔본다. 지금의 역사 수업에서, 역사책에서 배울 수 있는 사실들은 알아두면 좋지만 간단한 검색으로 확인할 수 있는 사실들이 너무 많다. 만약 역사학자라면 굵직한 사실들과 자잘한 사건들을 엮어 머릿속에 넣어 두는 것이 필요하겠지만 보통 사람이라면 역사 공부를 통해서 사실들을 암기해 그 지식을 자랑할 일은 별로 없다. 교실에서 교사와 학생들이 마치 스스로가 역사학자인 것처럼, 역사적 주제를 이해하고, 관련된 사료를 탐색하며, 잠정적인 결론을 내고 이야기를 만드는 작업을 경험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건조한 사료와 사실들에 살과 피를 주어 입체적인 이해를 주려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시골 마을에서 조선시대 보건소를 발견했다고 하자. 이것은 같은 시기 서구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선진적인 기관이다. 실제로 발견된 것은 그 자리와 발굴된 도구 몇몇뿐이다. 이미 잘 알려진 조선시대의 진료소에서 갖추었던 장비를 이 자리에서 발견된 도구들과 섞어서 배치를 해 본다. 이제, 지리적으로 이 위치가 전국적인 행정망 속에서 어떤 위치였는지 파악하고 의료 네트워크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었을지 가늠해 본다. 이 과정에서 탐구, 분석, 결론을 내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주어진 사료와 사실들을 두고 비판적으로 판단할 능력을 키우면 역사를 왜곡하거나 역사를 이용해서 대중을 동원하는 비극에 저항할 수 있는 시민을 키워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무엇보다도 머리와 함께 손발을 움직여야 가능한 능동적인 수업 과정을 통해 아이들을 무기력에서 건져내고 싶다. 이것만으로 될 일은 아니지만, 여러 방향에서 다양한 시도를 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주일우 | 이음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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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에 따라 객석에 앉기 전 준비물이 달라진다. 코미디·액션·SF처럼 재밌는 영화에는 달콤 짭조름한 팝콘과 콜라가 필수다. 혼자 보러간 예술영화는 진한 커피 한 잔이 어울린다. 때론 주머니 속에 남몰래 티슈를 준비하게 하는 영화들도 있다. <아이 캔 스피크>는 팝콘을 먹다가 티슈를 꺼내게 했다.

‘프로민원러’ 나옥분(나문희) 할머니는 8000건의 민원 신고로 구청 직원들 사이 ‘도깨비 할머니’로 불린다. 어느날 이곳에 깐깐한 원칙주의자 9급공무원 박민재(이제훈)가 전근을 온다. 자신의 일터기이도 한 봉원시장을 순시하며 매일 민원 거리를 찾아내 신고하는 옥분. 그의 최대 민원 건은 재개발로 철거를 앞둔 시장 상가건물의 훼손을 막고 부당함을 고발하는 것이다. 새 구청직원 민재의 등장으로 여기에 사적인 민원이 덧붙여진다. ‘영어 배우기.’ 수업에 민폐를 끼친다며 영어학원에서 쫓겨난 옥분은 어느날 영어 잘하는 민재의 모습을 발견하고 영어를 가르쳐달라고 사정한다.

그러나 옥분이 신고한 산더미 같은 민원들로 가뜩이나 불만이 많던 민재는 부탁을 들어주지 않는다. 백과사전(encyclopedia), 생태학(ecology), 위도(latitude), 경도(longitude)…. 민재가 낸 단어시험에 80점을 받아야 청을 들어주겠다고 약속한다. 영화를 보며 속으로 단어 철자를 떠올려보는데, 80점 쉽지 않다. 옥분은 75점에 그치고 만다.

우여곡절 끝에 옥분과 민재는 학생과 영어 선생님이 된다. 두 사람은 우정을 나누는 친구처럼, 저녁 밥상에 함께 앉는 가족처럼 그런 관계가 된다. 하지만 옥분이 왜 그렇게 영어를 배우려 하는지 진짜 이유는 민재 역시 신문을 보고 알게 된다. 한평생 함께 일해온 시장 사람들조차 전혀 몰랐던 옥분의 과거는 무엇일까. 열세 살 소녀 옥분이 감당해야 했던 60여년 전 끔찍한 역사는 “잊으면 지는 거니께” 말하며 꺼내놓는 빛바랜 사진 한 장과 함께 드러난다.

영화 <아이 캔 스피크> 스틸 이미지

물론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옥분이 미 워싱턴 의회에서 “아이 캔 스피크”로 시작하는 증언 장면이다. 우리가 끊임없이 말하고 기억해야 하는 역사는 이렇게 친근한 옥분 할머니의 모습으로 다가와 진실을 밝히고 기억하자고 말한다. 이 영화의 미덕이다.

아직 진정한 사과를 받지 못한 일본 위안부 문제를 비롯해 우리 사회는 당장 말해야 할 것들이 넘쳐난다. 최근에 개봉해 관심을 모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택시운전사>, MB 정권과 박근혜 정권의 언론탄압을 그린 <공범자들> 등이 쏟아져 나온 것도 우연이 아니다. MB정권 4대강,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공영방송 장악 사태, 사법부 적폐,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태, 세월호 참사, 국정원의 각종 정치개입과 믿기지 않는 공작들까지….

특히나 국정원과 관련해 드러나고 있는 사실들에선 할 말을 잃을 정도다. ‘소리 없는 헌신, 오직 대한민국 수호와 영광을 위하여’라는 원훈을 내건 국정원이 직원을 시켜 시민들이 부여한 권력과 시간, 돈을 갖고 블랙리스트에 오른 배우의 누드사진을 합성해 인터넷에 유포하고 비판여론을 조작하는 댓글작전까지 폈다는 데 참담함마저 든다. 그사이 고통의 세월을 보낸 많은 사람들의 숨겨진 사연들이 하나둘씩 말하여지고 있다.

그러나 각 분야에서의 진상조사를 통한 적폐청산을 두고 “한풀이식 정치보복” “결국은 분열과 갈등만을 남길 뿐” 운운하며 논점을 흐리고 물타기 하려는 사람들도 분명 있다. 누군가는 “쓸데없는 국가적 소모전”으로 전락시키기도 한다. 정치적 안위와 기득권 지키기 말고 그들에게 중요한 것이 있을까 싶다. 진실을 밝히려는 시대적 당위와 요구에 ‘정치보복’이나 ‘국가적 소모전’을 갖다 붙이는 것은 가당치 않다.

얼마 전 대정부질문에서 국무총리가 답변해 화제가 된 “최순실 국정농단의 큰 짐을 떠안은 것을 저희들도 불행으로 생각합니다”를 곰곰 생각해보면 우리는 ‘불행’인 동시에 ‘다행’인 시대를 맞았다. 그동안 감춰지고 왜곡된온갖 문제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끄집어내 얘기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명명백백히 밝혀내 법의 심판대에 세워야 할 문제들에 대해서는 정면승부해야 한다. 역사 문제를 비롯해 세대를 아울러 오래도록 기억해야 할 것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두고두고 얘기하자. 우리는 말해야 하고 진실을 밝혀내야 한다. 바로잡고 또 기억해야 한다. 옥분 할머니의 말처럼 “다음 세대에 짐을 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당장은 힘이 들고 발걸음이 더뎌지더라도 그동안 묻혀 있던 말들을 쏟아내야 한다. 영화 말미 비로소 활짝 웃는 옥분 할머니처럼 우리도 ‘위 캔 스피크(We can speak)’.

<김희연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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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암산 줄기 중계본동 비탈길을 오릅니다

좁아지고 넓어지고 늘어나고 줄어드는 길을 따라

발자국들이 오르내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연탄들도 뜨끈뜨끈하게 오르고 있습니다

손이 던지는 대로 연탄은

포물선을 그리며 가파르게 돌을 넘습니다

연탄 리어카는 난방관처럼 돌아다니면서

흩어지고 도망가는 길들을 모으고 있습니다

각진 길의 주름이 접히고 펴집니다

발자국이 건반 같은 돌계단을 내려오고 있습니다

까치발 구두를 신은 여자들이 휘어진

길을 다듬고 있습니다

돌은 냄새나는 도랑 위에 징검다리를 놓습니다

고드름도 등고선처럼 오르내립니다

주름으로 채워진 지붕이 눈보라에 주저앉았다가 일어섭니다

비바람이 두드리고 습기가 갉아먹습니다

처마에서 녹아드는 골함석이 이처럼 쑥쑥 빠집니다

까치들의 울음소리가 지붕의 골을 메웁니다

햇살이 빨대처럼 지붕을 빨아먹다가 구멍을 냅니다

뻥 뚫린 곳은 숨구멍입니다

(……)

 - 이명우(1959~ )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달동네 골목길은 달동네 사람들의 삶처럼 굴곡은 많지만, 구불구불 오르락내리락 리듬을 타며 움직이는 맛이 있다. 아코디언의 주름처럼 늘어나고 줄어들며 넓어지고 좁아지며 걸음을 연주하는 음악이 있다. 직선과 속도가 없는 이 길을 지나가면, 관절이 쑤시는 무릎도 사연이 많은 이삿짐도 강추위를 견딜 무거운 연탄과 김장배추도 모두 가락은 슬프고 박자는 신나는 음악이 된다. 낡아가고 허름해지면서 이야기는 많아지고 애환은 깊어져서 길은 점점 더 구성진 노래가 된다. 늦은 밤이 되면 취기에 흥이 난 노래가 이 길처럼 마음껏 비틀거리며 갈지자로 구불거리며 올라올 것 같다.

<김기택 |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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