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7일 대한출판문화협회(회장 윤철호)와 한국출판인회의(회장 강맑실)는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예산 낭비적인 사업을 일방적으로 진행한다”는 공동성명서를 발표하고, 이기성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장 퇴진을 재차 압박했다. 두 단체는 지난 7월에도 “이기성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장은 즉각 퇴진하고,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는 진흥원을 정상화하라”는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이기성 원장은 지난 정권에서 임명된 인사다. “출판을 진흥이 아닌 통제의 대상으로 간주하던 박근혜 정부 시절 ‘출판 통제’의 일환으로 임명된 인사”, 즉 구인물이란 게 퇴진을 주장하는 단체들의 얘기다. 한편, 문화계 블랙리스트 등으로 문제가 됐던 한국문화예술위원회·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의 사표는 도종환 문체부 장관 취임 직후 수리된 바 있다.

두 단체는 첫 번째 공동성명서에서 이 원장이 “출판진흥기금 조성, 공공도서관 도서구입비 증액, 저작권법 개정과 판면권 문제, 도서구입비 세제 혜택, 송인서적 문제 등 시급한 출판 현안에 대해 아무런 문제의식도 활동도 의지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각종 예산 낭비, 원장과 특수관계에 있는 사업에 대한 편파적 지원 등으로 하는 일마다 구설에 오르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부 예산 집행권을 바탕으로 민간 출판단체들이 벌여온 출판 교육사업을 무력화하는 등 진흥원이 출판 발전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두 단체의 공동성명서에 나오는 내용을 시시콜콜 다 알 수야 없지만, 진흥원의 주요 사업 중 하나인 ‘우수출판콘텐츠 제작지원’(이하 ‘제작지원’)에 대해선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그만큼 할 말이 있다는 얘기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아르코문학창작기금’이 오리무중인 데다 진흥원의 각 분야 저자 및 출판사에 대한 제작지원 사업이 그야말로 로또 수준으로 전락해 버렸다는 느낌을 받아서다.

지난 6월 말 진흥원이 발표한 2017년 제작지원 선정작은 63편이다. 응모작은 선정작의 40배쯤인 2508편으로 알려졌다. 이를테면 응모작의 고작 2.5%쯤만 선정하는 제작지원인 셈이다. 말이 좋아 지원이지 그쯤 되면 신춘문예나 문학상에서 당선작으로 뽑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가히 로또 수준의 제작지원이라 할 만하다.

제작지원 사업 목적은 ‘우수출판콘텐츠 발굴’과 ‘출판 내수 진작’이다. 일단 2508편 응모작 중 고작 63편을 선정한 것은 ‘우수출판콘텐츠 발굴’은 될지 몰라도 ‘출판 내수 진작’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고작 63편 발간이 얼어붙은 출판시장에 아연 활기를 띠게 하리라 생각하는 출판인이나 저술가도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제작지원은 인문교양·사회과학·과학·문학·아동 등 5개 분야의 ‘기간 내 도서로 발간 가능한 원고 또는 기획안’을 응모받아 선정작에 각 1000만원(출판사 700만원, 저자 300만원)을 지급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고작 63편 선정은 예산이 6억3000만원에 불과함을 의미한다. 출판된 책을 일정량 구입·지원하는 ‘세종도서’ 사업이 있다곤 하지만, 어느 한 분야만이 아니고 인문교양·사회과학·과학·문학·아동 등 출판 전반에 대한 정부 주도의 활성화 사업이 그 정도라면 대기업 메세나보다 못하지 않나?

더 의아한 것은 올해의 확 줄어든 예산이다. ‘우수출판콘텐츠 제작지원’이란 이름으로 사업을 실시한 2014년부터 2016년까지 3년 동안 해마다 예산은 14억원으로 140편씩 선정됐다. 블랙리스트 여파로 예산이 반토막 이하가 되었는지 자세히 알 수 없지만, 그만큼 제작지원이 로또 수준으로 전락한 것은 분명하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선정에서 탈락한 2445편의 저자들이 가질 자괴감 내지 상실감이다. 탈락을 계기로 더 분발할 저자도 있겠지만, 많은 지원자들이 ‘내 글은 아무것도 아니란 말인가’ 하는 자괴감 내지 상실감으로 술깨나 마신다면 그것이 정부가 할 일은 아니다. 그야말로 로또 수준으로 전락한 제작지원의 예산 확대와 지원 방식이나 규모 등 전반적 개선책이 시급하다.

<장세진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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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가 되면 나오는 기사를 ‘달력기사’라 한다. 기념일 관련 달력기사도 많지만 그중 명절 달력기사의 역사가 가장 유구하다. ‘추석 물가 비상’ 같은 보도 말이다. 추석이란 말을 빼고 거기에 ‘설날’을 집어넣어도 무방하다. 지역의 언론사들은 하나같이 군수나 시장을 중심으로 하는 명절 물가관리대책반을 꾸린다는 천편일률의 기사를 보도한다. 여기에 대통령이나 총리, 장관급 정도의 중량감 있는 관료가 나서서 명절 물가 안정과 치안에 만전을 기하라고 지시한다. 때로는 시장을 한 바퀴씩 돌면서 사과나 배를 들었다 놨다 하기도 한다. 대통령의 부인이 전통시장에 출현해서 장을 보기도 한다. 이전 정부의 독신 여성 대통령은 명절마다 친히 직접 시장에 나가서 장을 보기도 했지만 비서들 손에 넘겨진 까만 비닐봉지들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좀 지겨운 반복이어도 명절에 막상 빠지면 허전한 성룡 영화 같은 익숙한 풍경이다.

올 추석엔 배추가 문제다. ‘금치’란 말은 식상한지, 배추 한 포기를 사려면 ‘배춧잎 한 장(1만원짜리 한 장)’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추석을 앞두고 김치를 담그려 하는데 너무 올라 걱정이라는 주부의 인터뷰는 필수다. 포장김치 회사들은 배추값 때문에 원가 상승의 부담이 커서 팔수록 손해라며 하소연한다. 그런데 왜 배추값이 폭락할 때는 포장김치 회사를 취재하지 않는 것일까? 그때는 아마도 고추값이 폭등했을 터이다. 오래도록 명절 물가 상승의 주범으로 지목된 것은 농산물이었다. 그 원인으로는 봄부터 이어진 가뭄과 폭염, 그리고 이어진 늦장마나 병충해가 거론된다 혹은 곤파스, 불라벤 같은 태풍이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닥쳐와 작물에 ‘직격탄’을 때려서다. 올해처럼 태풍이 없을 때는 우박이라도 한 번 휩쓸고 지나가 농산물은 반드시 명절 물가 상승의 주범이 되어야만 한다. 

유독 올해만 그런 것도 아니다. ‘추석 물가’ ‘명절 물가’라는 검색어로 신문을 찾아보니 1965년부터 2017년까지 한 해도 빼놓지 않고 비상사태다. 군부독재시대 땐 물량을 잡고 있다가 추석 때 비싸게 푼 유통업자를 구속시키는 패기를 종종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농촌경제연구원에서 9월에 발표한 올해 ‘주요 농축산 품목별 추석 출하 및 가격 전망’을 보면 과일과 채소 출하량 증가로 가격이 작년 및 평년보다 낮을 것으로 예측됐다. 축산물 공급은 작년보다 감소했지만 이는 소비 부진에 따른 것일 뿐이다. 살충제 계란 여파로 계란값은 여전히 바닥세다. 설날에는 너무 올라버린 계란값 때문에 계란 없이 전 부치는 비법을 전하기도 했건만. 지금 배추·무 가격은 평년보다는 높아도 작년 이맘때보다는 낮다. 산지에서 물량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고 날씨도 그럭저럭 받쳐주어서다. 게다가 올해 재배량 확대로 김장철 배추값 폭락에 대한 우려가 나올 정도다.

소비자물가 품목에는 농수축산물과 식음료, 그리고 공공요금과 각종 서비스요금이 들어가 있다. 그중에서 가장 만만한 게 농산물이다. 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아주 낮다며 동네 바보친구 취급하다가 왜 명절 때만 되면 17 대 1의 싸움에서 이기고 돌아온 일진이 되어 있을까. 아무리 올라 봐라. 배추값이 무섭나? 애들 학원비가 무섭지. 돼지고기값이 무섭나? 2년 만에 오른 전셋값 4000만원이 나는 제일 무섭다.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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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리스트 제프 벡은 1985년 신작 앨범을 발표한다. 무려 4년 만에 등장한 음악적 결과물이었다. 기자가 물었다. 왜 그리 오랫동안 음반제작을 하지 않았느냐고. 제프 벡은 태연스럽게 답변한다. 유럽여행을 하면서 무명 기타리스트의 연주를 길거리와 연주장에서 유심히 살펴보았는데, 자신보다 기타를 잘 치는 음악가가 수십 명에 달했기에 절치부심하는 시간이 필요했다고.

2001년 세상을 떠난 비틀스 멤버 조지 해리슨. 그는 뛰어난 창작능력에도 불구하고 폴 매카트니와 존 레넌이라는 쌍두마차가 버티는 그룹에서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드러내지 못한다. 이후 솔로 음반을 통해서 그동안 보여주지 못했던 역량을 마음껏 펼친다. 그는 음악가인 동시에 종교인이자 평화주의자로 거듭난다. 1971년 조지 해리슨은 뉴욕에서 기아에 허덕이던 방글라데시인을 위한 자선공연을 펼친다.

피아니스트 시모어 번스타인은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모진 학대를 당한다. 그는 피아노 꿈나무 양성을 통해서 자신의 상처를 치유해 나간다. 고통의 객관화에 성공한 것이다. 90살의 나이에도 세상에 기여하고 싶다는 피아니스트의 일갈이 인상적이다.

소개한 음악인은 모두 자기검증이라는 불편한 진실게임과 마주했던 인물이다. 유명인사에게는 명예라는 족쇄가 파파라치처럼 따라다닌다. 그들에게 명예란 대중의 기억으로부터 잊혀지는 날까지 감당해야만 하는 통과의례이다.

한편 영화 <대부2>에서는 청부살인 혐의에 시달리는 마피아 두목 마이클 콜레오네가 등장한다. 그는 청문회장에서 자신은 살인과 무관한 사회사업가라고 말한다. 이후 자신의 변호사와 합작하여 군부대에서 보호 중인 살인사건의 증인을 자살에 이르게 만든다. 게다가 자신을 해치려 했던 친형을 부하를 시켜 암살한다. <대부3>에서 마이클 콜레오네는 이러한 범법행위가 가족의 행복을 위해서였다는 궤변을 늘어놓는다.

마이클 콜레오네 역시 자기검증을 실천했던 인물일까. 그렇다는 의견에 한 표를 던진다. 그는 <대부1>에서 마피아 두목의 자리를 물려받는 존재로 등장한다. 1세대 마피아 두목이던 돈 콜레오네는 막내아들이 폭력의 세계로 빠져드는 상황을 원치 않았다. 결국 마이클 콜레오네는 자신의 판단과 의지로 마피아의 세계에 입성하고, 이를 유지하기 위해 배타적 자기합리화를 반복한다.

여기서 두 가지 형태의 자기검증을 엿볼 수 있다. 소개한 음악가의 자기검증은 유명인과 개인의 삶을 분리하는 가치재로 쓰여진다. 제프 벡의 자기검증은 음악적 진보라는 방향타로 작용한다. 시모어 번스타인과 조지 해리슨의 그것은 사회와 인류에 기여하는 동력으로 화한다. 이들의 자기검증은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긍정적인 방향타를 제시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

반대로 마이클 콜레오네의 자기검증은 철저하게 반사회적인 결과를 낳는다. 그는 자신의 형제와 동료를 살해하면서까지 마피아 보스라는 상징물에 집착한다. 대부는 이 세상에 못 죽일 인간이란 없다고 자조한다. 영화에서 등장하는 형태의 죽음은 현실에서도 수없이 목격할 수 있다. 권력투쟁의 역사에서 억울하게 유명을 달리한 이들의 죽음이 바로 그것이다.

정신적 육체적 살인을 자행하는 권력자의 자기검증이란 억지 합리화의 수단에 불과하다. 총칼을 앞세워 언로를 틀어막았던 20세기의 흑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본격적인 신자유주의 시대의 통치방식은 조금 다르다. 총칼을 뒤로 숨긴 채, 진실을 말하려는 자의 밥줄을 끊어버리는 경제적 살인을 자행한다. 내용만 다를 뿐 올바른 형태의 자기검증을 무시한 악의적인 처사임이 분명하다. 

개인을 넘어선 집단의 비뚤어진 자기검증 또한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다수결이라는 미명하에 벌어지는 소수자에 대한 무시와 차별을 고민해야 할 시간이다. 정상적인 자기검증의 과정에서는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하는 상황과 직면해야만 한다. 시모어 번스타인과 마이클 콜레오네. 그들의 노년기는 욕망을 해석하는 시각에서 극단적인 대비를 이룬다. 자기검증의 현상학은 21세기에도 변함없이 진행형이다.

<이봉호 대중문화평론가 <음란한 인문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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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가 자행한 공작정치의 증거가 무더기로 쏟아져 나왔다. 그 규모와 내용이 상상을 초월한다. 국가정보원과 경찰을 동원해 야당 소속 지방자치단체장들을 사찰하고, 공영방송을 장악하기 위해 임직원들의 동태를 감시했다. 총선에 불법 개입하고, 문화계 블랙리스트 보고를 받은 정황도 드러났다. 그런데도 이명박 전 대통령은 사과 한마디 없이 “안보가 엄중하고 민생이 어려운 시기에 국익을 해치는 일”이라고 적반하장으로 나왔다. 문재인 정부의 전임 정권 적폐청산 작업은 “퇴행적 시도”라고 규정하고,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이 전 대통령의 뻔뻔함에 소름이 돋는다.

[장도리]2017년 9월 29일 (출처:경향신문DB)

더불어민주당 적폐청산위원회가 공개한 문건 중 국정원 작품으로 보이는 ‘야권 지자체장의 국정운영 저해 실태 및 고려사항’ 보고서를 보면 8개 광역 시·도지사와 23개 구청장 등의 신상과 동향이 자세히 적혀 있다. 예컨대 안희정 충남지사에 관해서는 “정부의 대북정책 비판 활동을 주도하고, 가로림만 조력발전소 건설사업 반대해 찬반주민의 갈등 격화를 초래했다”고 적혀 있다. 문건은 기획재정부와 감사원 등을 통해 불이익을 줘서 안 지사 같은 지자체장을 제압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2011년 9월27일에 작성된 ‘KBS 관련 검토사항’ 보고서에는 김인규 당시 KBS 사장 등의 교체를 검토하되,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에게 시켜야 한다고 했다. 하나하나가 형사처벌감이다. 

2012년 4월에 치러진 총선에서 ‘친이명박 체제’를 꾸리기 위해 관권이 동원된 정황도 있다. 2011년 12월 공직기강비서관실이 작성한 ‘대통령실 전출자 총선출마 준비 관련 동향’ 문서를 보면 “대통령실 전출자 11명이 내년 총선 출마 준비 중이다. 이들에 대한 동향파악 및 지역 민원과 애로사항을 취합·청취할 대통령실 내 지원창구를 설치해 총선 전까지 한시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적혀 있다. ‘대통령실 전출자’ 중 한 명이 당시 정무수석인 정진석 자유한국당 의원이다. 최근 정 의원이 ‘댓글정치의 원조는 노무현 정부’라며 이명박 정부 방어에 적극 나서는 이유를 이제 알 것 같다.

국정원과 사이버사 댓글작업 등으로 이명박 정부가 대선에 불법 개입한 혐의에 관해서는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다. 비위 의혹이 추가로 제기되고 범죄 증거가 나온 이상 검찰 수사 확대는 필수적이다. 검찰은 좌고우면할 것 없다. 민주주의와 헌법을 우롱한 이명박 정부 공작정치의 진상을 규명하고 엄벌해야 한다. 이 전 대통령도 국민에게 죄상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해야 한다. 그것이 국익을 위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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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의 핵심 국정과제 중 하나인 도시재생 뉴딜사업이 지난 7월4일 국토교통부 내 ‘도시재생사업기획단’이 출범하면서 본격화되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출범식에서 소위 ‘따뜻한 도시재생’을 강조했다. ‘따뜻한 재생’이란 아마도 젠트리피케이션의 재난을 막겠다는 뜻이지 않을까 싶다. 도시재생 사업을 하다보면, 주변 부동산 가치가 상승하고 자연스럽게 임대료도 상승해 임차인들이 쫓겨나는 상황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낡은 도시를 재생하면서도 젠트리피케이션의 재앙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없을까?

기본적으로 도시재생과 젠트리피케이션의 관계는 상호 모순적이다. 도시재생은 어떤 점에서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억제하려는 공공 도시 정책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도시재생은 불가피하게 젠트리피케이션을 피해갈 수 없다. 도시재생은 도시의 경관과 과거의 흔적을 지우는 거대 개발 정책을 극복하는 대안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재생으로 인한 부동산 가치의 상승과 지역개발 논리를 완전히 억제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젠트리피케이션도 공간의 고급화로 부동산 가치를 극대화하기 때문에, 태생적으로 도시재생의 공공적 원리에서 벗어나려는 본성을 가진다. 그것은 부동산 가치를 높일 수 있는 문화적 전환을 통해 시각적, 미적인 효과를 전유하고자 애를 쓴다. 처음에는 예술인들에게 호의를 베푸는 척하다가 나중에 그 장소가 유명해지면 예술인들을 배척하고 쫓아내려는 이중적 태도를 가진다. 홍대 앞, 경리단길, 성수동 수제화거리, 통영 동피랑 마을 등. 이것이 소위 문화 명소가 가지는 맹점이다. 도시재생으로 새롭게 생성된 문화적 공간이나 공공장소에서의 시각적 조형물들은 역설적으로 젠트리피케이션을 심화시키는 미적인 토대를 제공해준다.

그런 점에서 도시재생과 젠트리피케이션이 교차되는 지점에 문화는 중요한 위치에 있다. 문화의 자원은 도시재생의 공간 활성화에 있어 중요한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하고, 반대로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한 부동산 가치 상승의 기폭제가 되기도 한다.

사실 젠트리피케이션의 개발 논리에 완전히 포섭되지 않으려는 예술인들의 저항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한남동 테이크아웃드로잉의 저항이 그러했고, 공덕동 경의선 공유지 늘장의 저항이 그러하다. 문화적 자원과 예술의 미적 감수성은 오히려 도시 젠트리피케이션에 저항하거나 그 확산을 억제하는 대안으로 작용할 수 있다. 도시를 미적으로 아름답게 만들면서도, 그 문화적 가치가 부동산 가치로 환원되지 않는 길 말이다. 문화적 역량을 가진 주체들이 어떻게 행동하는가에 따라 문화는 도시재생의 대안적 장으로 전환될 수 있다. 문화와 예술은 반드시 젠트리피케이션의 촉매제 혹은 희생양으로만 끝나지 않을 것이다. 젠트리피케이션의 문화적 전환은 ‘공간의 고급화’를 위한 자본의 전략일 수도 있다. 하지만 부동산 자본의 확장을 막을 수 있는 저항의 가능성도 내장하고 있다. 기획부동산 자본과 상업 시설들이 도시를 지나치게 착취하지 못하도록 예술가들이 도시공간 속에서 버틸 수만 있다면, 문화와 예술은 젠트리피케이션을 억제시키는 최전선이 될 수 있다. 예술인들이 연대하여 문화적 게토와 유토피아를 만드는 것이다.

문화적 자원을 도시재생 활성화의 수단으로만 보지 않았으면 한다. 문화적 투자는 도시재생으로 인한 투기 과열의 사회적 비용을 사전에 상쇄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젠트리피케이션에 맞선 예술인들의 저항이 번번이 좌절하는 것은 ‘따뜻한 도시재생’을 위한 강력한 부동산 억제 정책이 없기 때문이다. 막대한 개발이익의 상당부분을 환수한다거나, 임대료 상승의 상한선을 둔다거나, 임차인에게 장기적으로 살 권리를 부여한다거나, 문화예술의 자원들을 일종의 공유지 형태 안으로 수용한다거나 하는 극적인 정책이 필요하다. 이러한 억제 정책이 수반된다면, 문화는 ‘따뜻한 도시재생’의 대안이 될 것이다.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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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한 종편 방송의 <사서 고생>이라는 프로그램이 벨기에에서 인종차별을 당하는 연예인의 모습을 방영한 것이 얘깃거리가 되었다. 동양인 비하 발언과 태도가 폭력적 충돌로 이어지기 직전에 제작진이 개입해서 당황스러운 상황은 마무리되었지만, 시청자들의 분노가 인터넷 매체들에 쏟아져 나왔다. 일부 시청자는 모욕적인 장면을 그대로 내보낸 제작진을 비판했다. 하지만 그 장면은 잊기 쉽고 잊고 싶은 사실을 상기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차별은 견딜 수 없이 쓰라리다는 것. 그리고 자리가 바뀌고 관계가 바뀌면 누구나 차별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

차별은 우리가 국외에서 경험하는 낯선 불의일 뿐 아니라, 우리가 타자에게, 서로에게 저지르는 낯익은 폭력이기도 하다. 너무 익숙해서 인지하지 못할 수도 있다. 국회 대정부질문 등에서 일부 야권 의원들이 최저임금을 외국인 노동자에게 차등 적용하는 법안의 필요성을 논의했다는 보도는 듣는 이를 아연실색하게 한다.

그런 법 개정을 제안하는 정치인들은 타국에서 단지 외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등적 임금을 받아야 한다면 납득할 수 있을까. 외국인 최저임금 차등지급이 법제화된다면, 성별이나 출신 지역에 따라 임금을 차등지급하자는 논리도 반박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법은 힘, 자산, 신분에서 우위에 있는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을 억압하고 착취하지 못하게 하는 보호장치이다. 근로기준법, 최저임금법, 고용 및 직업차별에 관한 국제협약 등이 국적, 신분을 이유로 차별해선 안된다고 명시하는 이유다. 차별을 금지하는 법은 필요하지만 법이 차별을 제도화해선 안되는 것이다.

대법원장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나온 “왜 소수자 보호만 강조하느냐”는 질문 또한 의아하긴 마찬가지다. 이 질문은 “강자로 규정되는 사람에 대한 법의 불평등, 역차별”에 대한 우려로 이어졌다. 하지만 강자의 수호를 대법원장에게 요구하는 것은 합당한가. 그리고 실질적, 상징적 권력을 가진 강자에 대한 역차별이라는 것은 정의상 가능하지 않다. 장애인 인권의 보호가 비장애인에 대한 역차별일 수 없으며, 흑인, 동양인에 대한 차별금지가 백인에 대한 역차별일 수 없고, 성소수자의 인권 신장이 이성애자에 대한 역차별일 수 없는 것이다. 역차별을 부르짖는 반론은 이미 누리고 있는 다수 강자의 독점적 편의와 특권을 소수자, 약자와 나누어 갖지 않으려는 저항이다.

누구나 약자가 될 수 있다. 차별, 무시가 초래하는 고통에 취약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이 보편적 취약성은 모든 인간을 동등한 존재로 서로 연결해 준다. 공동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이 보편적 취약성에 대한 인정과 존중이다. 타인에 대한 차별을 합리화하는 순간 나에게 가해지는 차별에 맞설 방도는 사라진다. 불균등한 권력관계의 제도적 모순에 근원적으로 접근하는 대신 나의 불안정한 우위를 유지하기 위해 타인을 끌어내리는 행위, 특권을 나눠 갖는 ‘피해’를 피하기 위해 약자의 인권을 무시하거나 침해된 인권에 무관심하기를 선택하는 행위는 사회를 지옥으로 만든다.

<사서 고생>에서 부당한 상황이 더 심화되었더라면, 영어를 할 줄 알고 체격도 좋은 박준형씨가 그저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을 것이라고 상상해본다. 그러나 동등한 인간으로 대우받지 못하면서 말할 수도, 싸울 수도 없는 처지라면 어떨까. 그런 처지가 수년씩, 수십년씩 계속된다면? 강요된 수치심, 불안감, 분노가 몸과 마음의 건강을 해치고 병이 될 것이 당연하다. 사회적 약자가 겪는 고통은 말할 수 없을 때 훨씬 더 깊어진다. 차별, 소외, 고립, 착취, 불안 속에서 여성, 빈곤층, 장애인, 이주 노동자, 하청 노동자, 성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가 제도와 구조로 인해 받게 되는 아픔은 그 사회의 건강 혹은 불건강의 척도다.

김승섭 교수의 최근 저서 <아픔이 길이 되려면>은 말하지 못하고 싸우기 어려운 약자들의 질병과 고통에 대한 치밀하고 섬세한 분석을 통해 우리가 얼마나 아픈 사회에 살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학교에서 받는 따돌림에 대해 말하지 못하는 다문화가정의 청소년, 성희롱을 당하면서도 도움을 청하지 못하는 여성들, 몸이 아플 때도 성과에 대한 평가 때문에 일하는 노동자들, 유해한 산업시설을 떠맡게 된 가난한 마을의 주민들은 가장 아픈 사람들이다. 국가의 방관 속에서 재난에 희생된 이들과 유가족, 가까스로 살아남았어도 특혜 의혹에 움츠려야 하는 생존자들은 말할 것도 없다.

건강은 인권의 문제와 직결된다. 이들의 불건강은 약자를 볼모로 이윤추구, 기득권 독점을 위해 경쟁하는 우리 사회의 병적 구조의 반영이다. 아픔에 취약한 우리는 모두 이 사회가 강제하는 불건강과 불평등한 아픔에 대해 연대적 책임을 진다.

<윤조원 고려대 교수·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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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7일 공개한 ‘2013~2017 공정거래위원회 출입·방문기록’에 따르면 이 기간 중 공정위를 찾은 대형 로펌 김앤장법률사무소의 직원이 3168명에 이른다. 주말과 공휴일을 빼면 하루에 2.6명꼴이다. 법무법인 세종·광장·태평양·율촌·화우 등 방문직원은 610~794명에 달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대기업에서는 삼성전자 직원 618명이 공정위를 찾은 것을 비롯해 주요 대기업 직원 수백명이 방문했다. 재판관과 유사한 권능을 가지고 있는 공정위 직원을 만나는 것은 재판에 영향을 주는 것과 같은 불공정 행위다. 중소기업 직원은 공정위 직원을 한 번 만나기도 힘든 반면 대기업과 로펌 직원들은 사랑방 드나들 듯했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김앤장 등 대형 로펌에 공정위 출신이 50명 이상 포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공정위 직원을 만나 대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공정위와 대형 로펌 간 커넥션 의혹은 끊이지 않았다. 공정위의 담합제재가 이뤄지면 가장 재미를 보는 곳이 법무법인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대기업도 예외는 아니다. 최근 5년간 공정위 4급 이상 퇴직자 20명 가운데 13명이 대기업 임원으로 갔다. 이들의 역할도 전관으로서 후배 공정위 직원을 만나 부탁하는 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 상황에서 공정한 업무처리를 바라는 것은 무리다.

공정위는 뼈를 깎는 각오로 신뢰받는 기관으로 거듭나겠다며 ‘공정위 신뢰제고 방안’을 어제 발표했다. 투명성을 높이고, 내부통제를 강화하는 한편 직무 관련자와 외부인 간의 사적인 접촉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기로 했다. 재취업 심사대상을 4급에서 조사부서의 5~7급으로 확대하는 방안도 내놓았다. 하지만 여전히 대기업·로펌 직원과의 접촉 여지는 남겨두었다. 그리고 4급 이상의 재취업 심사가 요식행위로 전락한 이상 대상을 확대한다고 해도 실효성을 기대하기 힘들다.

공정위는 재작년에도 시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겠다며 ‘사건처리 절차 3.0’이라는 개혁안을 낸 적이 있다. 지금이 그때보다 나아진 것이 무엇인지 오히려 묻고 싶다. 공정위는 이번 셀프개혁안으로 과거 공정경쟁을 훼손하는 잘못에 대해서는 눈감고 넘어갈 요량인 것 같다. 말뿐이 아니라 과거 적폐청산 의지를 실천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그래야 신뢰받는 공정위로 바로 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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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리 5·6호기 공론화가 순탄하지 않다. 탈원전에 대한 일부 언론의 편향·왜곡 보도, 한국수력원자력과 정부출연연구기관의 부적절한 관여, 시민대표참여단의 지역·연령별 선발기준 논란 등으로 공정성 문제가 불거져왔다. 안전, 경제, 환경 등의 의제에 대해 건설 중단과 재개 양측이 제시하는 팽팽하게 대립되는 주장도 어려움을 더해준다. 건설 중단 측이 활성단층의 존재, 세계 최대의 원전 밀집지역, 비상대피 구역 내 382만명의 지역주민을 거론하며 안전에 심각한 우려를 표하면, 재개 측은 세계 최고의 핵발전 기술과 안전성을 믿으라 주장한다. 점진적 에너지전환이 가능하다고 하면, 전기요금 폭탄을 각오하라고 한다. 재생에너지산업이 창출할 양질의 수많은 일자리에는 탈원전으로 인한 대규모 실업 사태로 맞받는다.

모두가 중차대한 사안들이지만, 누구 말이 옳은지 판단하기란 쉽지 않다. 물론, 어딘가에 진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양쪽 주장 모두 예측이라, 미래가 현실이 될 때까진 입증이 불가능하다. 그때까지 양쪽 모두 자기주장을 계속할 수 있다는 말이다. 시민대표참여단도 양쪽 주장을 듣고 숙고와 토론을 하겠지만, 판단은 쉽지 않을 것이다. 기울어진 데다 앞이 잘 보이지 않는 혼탁한 운동장에서 공론화가 진행 중이다. 이런 식의 공론화로, 신고리 5·6호기에 관한 결정의 사회적 수용성을 높일 수 있을지 우려된다.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는 방사능 대량누출 사고가 일어난 지 6년이 흘렀지만 그대로 방치돼 있다. 원자로의 폐연료봉 때문이다. 사람이 즉사할 정도의 강력한 방사선을 내뿜는 폐연료봉은 내부 상황 파악을 위해 투입된 로봇조차 작동불능 상태로 만들었다.  원전은 우라늄 핵분열 때 나오는 열을 사용해 물을 끓이고 여기서 생긴 증기로 터빈을 돌려 전기를 만든다. 원료로 사용된 우라늄은 폐연료봉 형태로 핵폐기물이 된다. 사고 당시 후쿠시마 제1원전에는 폐연료봉 1만925다발이 있었다. 이를 다 꺼낸다고 해도 영구적으로 처리할 곳이 없다.

다행히, 너무나 명백한 사안이 하나 있다. 바로 사용후핵연료다. 핵발전소 가동에는 핵연료가 필요하고, 일단 가동하면 사용후핵연료가 배출된다. 신고리 5·6호기도 마찬가지다. 사용후핵연료는 순간의 피폭으로도 치사율 100%인 치명적인 고준위핵폐기물이며, 최소 10만년 동안 세상에서 완전히 분리, 차폐되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매년 700t 이상 배출되는 사용후핵연료는 원전 부지 내의 임시저장소에 보관된다. 임시저장소의 예상 포화연도는 월성원전 2019년, 한빛 2024년, 한울 2026년, 고리 2028년이다. 사용 가능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현재 영구저장소는 우리나라는 물론 세상 어디에도 없다. 한마디로, 대책이 없다. 이상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팩트’들이다.

‘10만년’은 인간이 가늠할 수 없는 시간이다. 현생 인류의 출현이 대략 3만~4만년 전이다. 더구나 ‘완전’한 분리와 차폐는 ‘불완전’한 인간에겐 불가능한 요구다. 사용후핵연료의 실체는 원전이 인간에게 어울리지 않는, 인간이 책임질 수 없는 설비라고 알려준다. 고준위핵폐기물이 나오는 한, 사고가 없다 해도 ‘안전한 핵발전소’는 없다. 100년도 못 사는 인간이 왜 10만년을 걱정하느냐고 타박하려는가? 하나 조금만 달리 생각해보자. 100년도 못 사는 우리가 10만년 동안이나 위험천만한 그런 쓰레기를 세상에 남겨서야 되겠는가. 게다가 이 10만년엔 우리의 현재도 포함된다. 사용후핵연료는 미래 세대만이 아니라 우리의 안전과 직결된 문제다. “잠시 머물고 지나가는 자리에 우리 자신과 미래 세대의 삶에 영향을 끼칠 파괴와 죽음의 자국들”을 남겨서는 안된다(프란치스코 교황, <찬미받으소서>). 눈앞의 편리와 이익을 위해 미래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외면할 것인가? 미래 세대에 대한 무책임은 오늘 우리에 대한 무책임으로 현재화된다. 세월호와 가습기 살균제 참사는 사회적 무책임의 참담한 결과다. 지금 당장 편리하자고 우리가 감당 못할 위험을 묵인하는 핵발전도 예외일 수 없다.

대안이 없다면 또 모르겠다. 하지만 탈원전으로 가는 나라들은 대안이 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그 대안을 구현하기 위해 함께 고민하고 노력하는 것이 윤리적이고 지혜로운 태도가 아닌가. 미래 세대만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위해서라도, 핵발전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을 외면하지 말자. “우리 후손들, 지금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어떤 세상을 물려주고 싶습니까?”(<찬미받으소서>)

<조현철 신부·녹색연합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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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

탱크전을 다룬 미국 영화 <퓨리>에서는 날아온 포탄이 탱크에서 튕겨나가는 장면이 몇차례 나온다. 탱크가 파괴된 줄 알고 환호했다가 반격당하며 당혹해하는 배우들의 일그러진 표정이 인상 깊었다. 탱크에 특수 장비가 부착된 것은 아니다. 포탄이 다른 물체에 부딪쳐 튕겨나가는 도비탄(跳飛彈) 현상일 뿐이다. 성벽 외부를 사선으로 쌓는 축성기법과 2차 세계대전 시기의 경사장갑 탱크 등장은 이 현상을 유도하기 위한 것이다. ‘도탄 사격’ 전략도 있다. 전쟁 영화 <밴드 오브 브라더스>에선 미군 병사가 사각에서 날아온 도탄 사격에 부상당한다.

송영무 국방부 장관이 국군의 날을 앞둔 28일 오전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아 참배하고 있다. 연합뉴스

도비탄 현상은 탄환이나 포탄이 바위나 대나무 등 주로 딱딱한 물체에 부딪쳤을 경우 발생한다. 이를 막기 위해 흔히 군부대 사격장 주변은 총탄이 튕겨나가지 않도록 입자가 고운 마사토로 조성한다. 도비탄 현상은 물에서도 발생한다. 물수제비를 연상하면 된다. 특히 바닷물은 상당히 밀도가 높아 반탄력이 상당하다. 군부대가 많은 전방지역에서는 도비탄 현상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지난 4월 경기 포천에서는 미군 사격훈련에 의한 도비탄으로 추정되는 총탄 2발이 민가 주변 목장에 떨어져 주민 대피소동이 벌어졌다. 군 복무 시절 기관총 예광탄 사격을 해본 사람들은 이 현상을 경험했을 것이다.

지난 26일 강원도 철원 육군 부대에서 진지공사 후 부대로 복귀하던 병사 한 명이 머리에 총탄을 맞아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병사는 사격훈련이 진행 중인 인근 군부대 사격장을 지나던 중 사고를 당했다. 병사의 몸에서는 사격장에서 사용된 K-2소총탄과 같은 탄환이 발견됐다. 군은 도비탄으로 추정했으나 유족은 의문을 제기한다. 시신에서 발견된 탄환이 찌그러지지 않고 온전한 상태이므로 도비탄일 수 없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북한 소행 주장도 나온다.

의문은 조사를 해야 풀리겠지만 군의 안전시스템이 고장난 것만은 분명하다. 사고 당일 사격장 인근에는 경계병들이 있었지만 숨진 병사 일행을 제지하지 않았으며 인솔 장교도 별일 없을 것으로 보고 이동을 계속했다고 한다. 총탄에는 눈이 없다. 안타까운 사고 원인은 도비탄이 아니라 군의 안전불감증이다.

<조호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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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부터 한가위 연휴가 시작된다. 길게는 10일 동안이나 이어진다.

설날과 더불어 최대의 민속 명절을 맞는 한반도는 어느 때보다 군사적 긴장이 팽팽하다. 모두가 안타까워하고 염려한다. 국제사회의 경고에도 북한은 핵·미사일 도발을 강행한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거친 ‘말폭탄’을 주고받는다. “유치원에서 아이들이 싸우는 것 같다”(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는 국제사회의 비아냥도 잇따른다. 서로의 정치적 셈법이 시민들의 불안감, 공포를 자극한다는 날선 비판도 쏟아진다.

밤이 깊으면 새벽이 가까이 있다고, 극한 상황 속에서 대화 자리는 만들어진다고 위안한다. 하지만 우발적 충돌, 황당한 전략적 오판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높다. 문재인 정부는 “한반도에서 다시 전쟁은 안된다”고 강조한다. 그래야만 한다는 공감대도 단단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전쟁은 안된다는 다짐 속에 고향길에 나선다. 예년처럼 민족적인 대이동이다. 한국교통연구원은 명절 연휴 동안 전국 예상 이동인원이 3700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추산한다. 국내외 여행길도 있겠지만 대다수는 고향으로 향한다.

바쁘다는 핑계로 만나지 못한 부모 형제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안부를 물으며 덕담을 나눈다. 먼저 살아간 조상들에게 다 같이 정성 들여 장만한 음식들로 제례를 올린다. 묘소를 찾는다. 밤이 되면 어릴 적 친구들이 하나둘 느티나무 아래 모여든다. 술잔을 나누며 북한과 미국의 대치, ‘코리아 패싱’도 걱정할 것이다. 적폐 청산과 경제를 둘러싼 의견이 오가고, 청년들의 일자리에 노후 염려까지 이어진다. 서로의 팍팍한 삶을 위로한다. 전형적 한가위 풍경이리라.

한가위는 그 유래를 <삼국사기>에 기록된 신라시대의 ‘가배’에서 찾으니, 1500여년의 세월 동안 이어졌다. 시대나 삶의 양식에 따라 형식과 내용은 달라졌다. 하지만 풍성한 수확을 기뻐하며 자연과 신과 조상들께 감사드리고, 서로의 살아감을 보살피는 본질은 여전하다. 우리만이 아니다. 저 먼 고대부터, 사람이 살아가는 그 어디에서든 한가위 취지와 비슷한 의례의식이 전해진다. 중국의 중추절, 일본의 오봉절을 비롯해 미국 등의 추수감사절 같은 게 대표적이다.

시공을 넘어 인류 보편적이다. 인간은 누구나 신화 속의 한 장면처럼 하늘에서 뚝 떨어지거나, 땅에서 쑥 솟은 극적인 존재가 아니다. 아버지와 어머니, 어머니와 아버지의 아빠와 엄마, 그 엄마와 아빠의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렇게 대와 대를 잇는 속에 내가 존재하고 있어서다.

얼굴도 모르는 고조부의 무덤 위에 자라난 잡초를 뽑아내며 문득 나의 존재를 알아채는 게 한가위다. 고향에서 보내는 시간은 어쩌면 자신의 존재 의미를 살펴보는 시간이다. 폴 고갱처럼 ‘우리는 어디서 왔으며, 우리는 무엇이며, 어디로 가는가(Where Do We Come From? What Are We? Where Are We Going?)’라는 존재론적 질문을 던질 수 있다. 그러곤 자신이 길고 질긴 뿌리와 이어졌음을 깨닫는다. 그 뿌리를 인식한다면 삶을 허투루 살아가기 힘들다. 내 혼자가 아니라 자식이며 형제자매이고, 부모라는 사실, 나아가 만물이 얽히고설킨 인드라망임을 알면 몸과 마음을 가다듬게 된다.

나의 뿌리가 있다는 것, 뿌리에 대한 인식은 든든한 ‘빽’이다. 삶이 나를 속일 때 기댈 수 있는 언덕이다. 부평초처럼 떠도는 게 아니라 질경이처럼 밟혀도 다시 일어나는 존재가 될 수 있다. 그래서 귀성길은 자신의 존재를 재인식하는 깨달음의 길이다.

최근 민속 명절의 쇠퇴, 전통의 붕괴를 비판하는 견해도 많다. 명절 연휴에 고향대신 해외여행을 떠나거나, 전통적 의례의식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안타까워할 수 있지만 시대와 생활양식이 바뀌면 전통도 변할 수밖에 없다. 어쩌면 변하는 게 당연하다.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이 정밀하게 고찰했듯, 우리가 전통이라고 알고 있는 것도 시대에 따라 만들어지고 발명되기 때문이다. 실제 남녀의 이혼이나 재혼·재산상속에 있어 고려시대만 해도 평등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남녀차별은 조선 중후기 들어 본격화되지 않았는가.

전통적 격식을 따져 의례의식을 치르는 것, 의례의식보다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고 정을 나누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것 모두 의미가 있다. 저마다 자신의 뿌리를 새삼 인식하고, 자신의 존재를 다시 한번 살펴볼 수 있는 한가위라면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의미가 충분하지 않을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 같은 풍성한 연휴를 보내기를 기대한다.

<도재기 국제·기획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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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4당 대표가 27일 청와대에서 만찬 회동을 했다. 문 대통령 취임 후 여야 지도부와의 회동은 세 번째다. 문 대통령은 “안보 문제만큼은 여야와 정부가 함께 힘을 모으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국민들께 희망이 되고 경제에도 큰 힘이 될 것”이라고 했다. 야당 대표들의 처방과 해법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우리 외교팀 내부의 혼선까지 겹쳐지니 더 불안한 것”이라고 말했다. 주호영 바른정당 대표 권한대행은 “촘촘한 다층 미사일방어망을 구축해 우리의 안전을 지키는 것이 급선무”라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 추미애(앞줄 왼쪽에서 세번째)·국민의당 안철수(둘째줄 세번째)·정의당 이정미(앞줄 왼쪽에서 다섯번째) 대표, 바른정당 주호영 대표 권한대행(둘째줄 네번째) 등이 27일 만찬 회동 후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위기관리센터를 방문해 권영호 위기관리센터장의 설명을 듣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대통령과 여야 대표는 안보 위기에 초당적 대처를 다짐하며 5개항의 공동발표문을 채택했다. 한반도에서 전쟁은 결코 용납할 수 없으며 북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한다는 원칙 등이 담겼다. 여야가 안보 위기에 한목소리를 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합의다. 대통령과 정당 대표 간 공동발표문 채택은 2년6개월여 만이다. 이들은 회동 이후 대통령의 안내를 받아 예정에 없던 청와대 위기관리센터를 함께 방문하기도 했다.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감이 최고조인 상황에서 대통령과 여야 지도부가 손잡고 ‘안보 협치’의 모습을 보여준 건 시민들의 불안을 불식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런 자리에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만이 “청와대 쇼에 들러리를 설 수 없다”며 끝내 불참한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이날 회동에서는 외교안보 현안 외에도 여·야·정 상설 국정협의체를 조속히 구성한다는 데 뜻을 모았다. 문 대통령은 인사 문제에도 유감을 표명했다. 여·야·정 국정협의체는 지난 5월 대통령과 여야 원내대표들의 회동에서 신설하기로 합의했지만 지금까지 단 한번도 열리지 못했다. 그만큼 신뢰가 쌓여 있지 않기 때문이었다. 잠깐의 만남으로 꼬인 문제가 다 풀릴 수는 없겠지만, 여야 대표가 자주 만나 대화를 나누는 것 이상의 좋은 정치는 없다는 점을 이번 회동은 여실히 보여줬다. 모름지기 정치는 상대와의 타협이며, 만남을 통해 이뤄지는 법이다.

지금은 나라 안팎 상황이 매우 어렵다. 소모적 정쟁으로 시간을 보낼 만큼 그렇게 한가한 때가 아니다. 안보 위기는 언제 군사적 충돌이 일어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일촉즉발이다. 경제·사회 등 모든 분야에 매듭을 풀어야 할 난제들도 수두룩하다. 국내외 상황이 어려울수록 여야 정치 지도자들은 각자 입장과 공통분모를 확인하면서 거리를 좁혀 나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번 회동이 그동안 막힌 부분을 뚫고 여야 간 소통과 협치의 틀을 만들어가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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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P씨는 흥겨운 보사노바 재즈 공연을 보고 있었다. 이윽고 마지막 곡이 끝나자 피아니스트가 객석을 돌아보며 말을 건넸다.

- 감사합니다. 이제 일어나실 시간이군요.

그와 동시에 P씨는 눈을 떴다. 침대에서 일어나 머리밴드를 벗어 들고는 흐뭇한 미소를 머금은 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밴드를 사용한 지 이제 사흘째. 그의 인생에서 가장 상쾌한 기상 시간을 맞은 것도 사흘째이다.

밴드 한쪽에는 두께가 2㎜ 정도 되는 작고 납작한 패널이 붙어 있다. 이번에 새로 출시된 알람용 머리밴드 역시 이 에너지팩을 전원으로 쓴다. P씨는 새로운 장난감이 생긴 어린애처럼 그 팩을 계속 쓰다듬으며 손에서 놓을 줄을 몰랐다. 이 작은 팩은 지금 전 세계에 조용한 혁명을 일으키고 있는 중이다. 20세기부터 꾸준히 연구 개발되던 대체에너지, 즉 태양전지, 풍력, 지열, 조력 등은 일부 장점에도 불구하고 비싼 원가, 산업후진국에서는 쉽사리 엄두를 내기 힘든 초기 투자비용, 낮은 에너지효율과 같은 여러 문제가 쉽사리 풀리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걸림돌들을 한 달음에 넘어서며 새롭게 등장한 것이 바로 ‘생체전력’이었다.

생체전력이란 말 그대로 살아 있는 동식물의 몸 안에서 발생하는 전기력을 뜻한다. 그러나 생체전력이 낼 수 있는 에너지는 매우 불안정하고 양도 적었기 때문에, 20세기만 해도 과일에 전극을 꽂아 그 에너지로 전자시계를 가게 하는 정도의 아이들 장난감 같은 물건만 나왔을 뿐이다. 그러나 전자공학과 나노기술의 발달은 모든 전자제품들의 소요전력을 점점 감소시켰다. 그에 더해서 배터리 기술도 발전을 거듭하여 휴대전화는 이제 한 번 충전하면 보름씩 지탱할 정도가 되었다. 이렇게 소형화, 고효율화의 두 방향으로 진화하던 전기전자공학이 어느 순간 생체전력과 만나게 된 것이다.

인류의 에너지혁명은 바로 생체전력, 정확히 말하자면 인체전력의 활용으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예전에는 우리가 일상생활의 걷고 뛰고 움직이는 활동에서 발생하는 운동에너지를 활용하자는 정도의 차원이었지만, 이제는 가만히 있어도 몸 안에서 항상 발생하고 있는 미세 전기에너지를 축전할 수 있는 에너지팩이 개발된 것이다. 불안정한 인체전력을 일정한 형태로 변환해주는 마이크로인버터의 개발도 동시에 이루어지면서 생활에 이용되는 거의 대부분의 소형 전자제품들은 별도의 전원이 없이 생체 에너지팩으로 가동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국가 전체의 전력발전량에서 무시 못할 비중으로 잉여분이 꾸준히 증가하는 중이다. 물론 에너지팩이 광범위하게 보급되고 또 인체에 부작용이 없다는 점이 완전히 검증될 때까지는 아직 시간이 좀 걸릴 것이다. 그러나 낮은 단가로 대량생산되는 에너지팩은 빈부에 상관없이 누구나 하나 이상씩 장만하는 데 큰 부담이 없었다. 그야말로 ‘에너지 복지’가 완벽한 실현을 향해 가는 중이었다. 인류 문명에 새로운 전환점이 왔다는 사람까지 있었다.

P씨는 출근을 위해 거리로 나섰다. 그동안 천연가스로 움직이는 버스를 이용해왔지만 오늘부터는 새로 개통된 무인경전철을 탄다. 정시에 맞춰 운행되던 버스 노선은 어제를 마지막으로 없어졌다. 천연가스버스는 나름대로 장점이 있었지만 전용도로가 필요하다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녹지를 포함한 주변 환경을 강제로 단절시키고 세상을 차도와 차도가 아닌 곳으로 양분할 수밖에 없는 존재인 것이다.

사실 이웃들 간에 꽤 심각한 논쟁이 벌어졌었다. 승용차 같은 소형차량들은 진작 전기자동차로 바뀐 만큼 버스도 전기용으로 바꾸면 되지 않겠냐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도로면적을 대폭 줄이고 녹지의 비중을 늘리자는 쪽이 우세했다. 결국 도로는 왕복 2차로만 남기기로 합의가 되었다. 새로 개통된 경전철은 공중에 매달린 채 운행되는 모노레일이다.

전철을 움직이는 전력은 태양열과 풍력 등이 혼합된 다중소스 타입이었다. 전국 각지마다 운행하고 있는 경전철들은 지역맞춤형 에너지 설계가 되어서, 어떤 지역에선 바이오매스에서 얻은 에너지로 발전을 하기도 했고 바다와 인접한 지역 중에는 조력발전으로 전력을 끌어오는 곳도 있었다.

집에서 정거장까지 상쾌한 수풀 내음을 맡으며 걸어간 P씨는 이웃들과 반가운 인사를 나누면서 전철에 올랐다. 그러고는 좌석에 앉아 소리 없이 지나가기 시작한 창밖을 바라보며 상념에 잠겼다.

‘언젠가는 숲속의 나무들에게 직접 에너지를 받을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옛날 만화에서 보았던 장면을 떠올리면서 미소를 지었다. 이 나무 저 나무를 자기 몸과 연결해서 직접 에너지를 받던 외계인이 있었다. 인간들에게 쫓겨 녹초가 되었던 그 외계인은 그런 방법으로 원기를 차린 다음 자기 별로 돌아갔다.

다른 생물들을 괴롭히지 않고 서로 에너지를 나누어 주고받는 식으로 순환이 이루어질 수 있다면, 그야말로 진정한 에너지 유토피아가 아닐까.

P씨는 아직 모르고 있었지만, 이미 세상엔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나날이 늘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에너지 혁명의 진짜 모습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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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위와 같은 발상은 양날의 검이다. 20세기부터 각종 전기전자 제품을 대량 소비하게 된 인류는 평생 동안 다양한 파장의 전자파에 노출되는 삶을 살고 있다. 그 영향이 여러 세대에 걸쳐 어떤 모습으로 드러나게 될지 아직 명확하게 결과가 나온 연구도, 데이터도 없다. 아마도 호모사피엔스에 어떤 생물학적 변화, 혹은 환경에 적응한다는 의미에서 진화의 새로운 양상이 나올지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이런 전자기적 환경이 인류 문명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운명이라는 사실이다.

<박상준 서울SF아카이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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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홍수 및 산사태 피해로 인한 시에라리온의 처참한 모습이 언론을 통해 보도됐다. 2014년 에볼라 바이러스 전염으로 국민 4000여 명을 잃은 시에라리온의 아픔이 재현된 듯하다. 국제사회의 도움으로 에볼라 사태는 종식되었지만 시에라리온은 여전히 에볼라가 남기고 간 피해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에볼라로 부모를 잃고 남겨진 고아들, 극심한 빈곤과 같은 상황들은 쉽게 짐작해봄 직하다.

하지만, 3년이 지난 지금 시에라리온에는 조기 임신과 방임으로 인해 어려움에 놓인 여아들의 사례가 특히 급증하고 있다. 에볼라 사태 동안 국가 전체의 사회 시스템이 마비되었고 극심한 빈곤과 배고픔은 여자아이들을 조혼과 성매매로 내몰았다.

올해 초, 시에라리온의 수도 프리타운의 슬럼가에서 만난 14세 빈타(가명)는 2살배기 남자아이의 엄마이다. 에볼라로 부모를 잃고 친척들에 의해 모르는 남자에게 강제 조혼을 당했다. 무책임한 남편은 결혼 6개월 만에 집을 나갔고 빈타는 수도로 올라와 시장에서 상한 과일과 야채를 주워 팔아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빈타에겐 돌아갈 학교도, 가족도 없다. 좁은 단칸방에서 그 어떤 도움과 지원도 없이 홀로 아이를 돌보고 있다. 에볼라는 빈타의 부모만 감염시킨 것이 아니라 빈타의 인생까지 병들게 만들었다. 에볼라 바이러스 확산은 종식되었지만, 에볼라는 얼굴을 바꾼 채 여전히 아이들 앞에 있다.

이렇듯 재난 상황은 여자아이들에게 더 큰 위기로 다가온다. 사람들은 보통 가난한 나라에 닥친 재난 속에서 가장 큰 피해는 아동들과 여자들의 몫이라고 한다. 여아들은 여자로서 그리고 아동으로서 이중고를 겪을 수밖에 없다. 유엔 조사에 따르면 재난 상황에서 여자아이들의 조혼율은 급증한다. 학업을 중단할 확률은 남자아이들보다 2.5배 높다고 한다. 한 연구에 따르면 시리아 내전 상황에서 요르단 여아들의 조혼율은 20% 증가했고 자연재해가 빈번한 지역의 여아 조혼율은 유독 타 지역보다 높다고 한다. 비교적 최근인 네팔 대지진 때의 상황도 마찬가지이다. 영국 가디언은 3000여 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신두팔촉 등 지방의 여아들이 도시 아이들보다 성매매 위험에 더욱 노출돼 있음을 경고한 바 있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은 이러한 어려움에 놓인 여아들을 위해 케냐, 시에라리온, 방글라데시, 네팔 등 다양한 국가에서 ‘아동보호’ 및 ‘교육’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아동보호를 위한 지역 아동보호 메커니즘 구축, 교육 기회 제공, 여아와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하는 권리 교육 등을 통해 조혼, 강제 임신과 같은 악습을 막고 양질의 교육을 통해 아동이 자신의 삶과 사회를 변화시키는 주체로 성장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전 세계의 수많은 여자아이들이 차별과 착취로 인해 고통받고 있다. 여아의 권리를 보호하고 환경을 개선하는 일은 길고도 어려운 여정이다. 개인, 지역사회, 정부 그리고 국제사회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한다. 국제사회는 SDGs(지속가능발전목표) 수립을 통해 특히, 여아 보호를 위한 노력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여전히 가야 할 길은 멀다. 오는 10월11일 ‘세계 여아의 날’을 맞아 ‘말랄라 유사프자이’를 떠올려 본다. 탈레반의 여학생 교육 금지를 비판하다 총격테러로 죽을 고비를 넘기고 그 고난을 여성 인권 신장을 위한 활동으로 이겨내고 최연소 노벨평화상을 받은 그녀를 떠올리며 그래도 희망은 있음을 생각해본다. 멀고도 보이지 않는 길이지만, 그 희망의 첫걸음이 우리의 관심임은 분명하다.

<신유나 초록우산어린이재단 해외사업본부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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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16일 타이베이에서 <옥중19년> 중국어판의 출판기념회가 있었다. 출소한 지 27년 만의 일이다. 중국 독자들에게 내 책이 읽힌다는 것은 큰 기쁨이다. 벌써 한 세대 전의 독재시대 한국 정치범감옥에서의 투쟁이 젊은 중국 독자들에게 무슨 소용인지 모르겠지만, <옥중19년>이 나의 개인적인 경험을 넘어, 제국주의의 동아시아 침략·지배의 역사, 특히 해방 후 냉전과 분단의 역사 속에서 이루어진 국가폭력이라는 동아시아의 보편적인 정치현상이기도 하고, 국가보안법과 보안관찰법이 아직도 살아있는 한국의 현재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대만에서 장쥔홍(張俊宏)씨로부터 오찬 초대를 받았다. 장씨는 1979년 당시 잡지 ‘미려도(美麗島)’의 편집장으로, 대만 민주화의 물꼬를 튼 ‘미려도’ 사건의 핵심인물로 반란죄로 12년형을 받았다. 그는 5년 후에 출소해 민진당의 창당 사무총장, 당대표 대리, 네 번의 입법위원(국회의원)을 지낸 대만 정계의 거목이다. 그러나 여러 가지 스캔들도 있었고, 일국일제도, 동아시아 공동체 등의 주장으로 민진당 주류에서 멀어지고 ‘외톨이(孤鳥)’ 소리를 들은 지 벌써 10년이다.

그는 만나자마자 미국과 북한의 핵 대치로 세계는 멸망의 위기에 처하고 있으며, 평화가 지금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했다. 평화를 위해서는 우선 큰 나라도 작은 나라도 평등하게 다루어져야 하며, EU처럼 동북아 공동체를 만들어 국가 간의 갈등을 해소해야 한다고 역설하면서, 강한 자가 약한 자를 함부로 하고 큰놈이 작은놈을 속이는 것이 평화의 길이 아니며, 북한에 핵무기를 포기케 하려면 먼저 미국이 무력 위협을 하지 말아야 하며, 핵무기는 생사의 위기에 직면한 북한의 자기보존을 위한 마지막 무기라고 했다. 북한도 전 세계의 모든 나라들처럼 안전과 번영을 원하고 있는데, 제재강화는 북한의 번영의 길을 뺏어버린다. 남북한은 언젠가 통일할 것이며, 상호통상을 강화하여 사람의 왕래를 증대시켜야 한다고도 한다. 장씨는 ‘동아시아 평화선언’을 내고, 전면적 핵 금지와 유엔의 통일적 관리를 호소하고, 만약 유엔에 능력이 없다면 먼저 대만과 한국의 민간단체가 공동협조로 평화선언을 추동하고, 전 세계에서 인터넷 투표를 실시하여 세계평화를 위하여 핵무기를 전면 통제할 것을 호소하자고 했다. 이 제안은 대만의 한 민간인이 제기한 것이며, 현실성이 약하지만, 한반도 평화문제를 동아시아 민간인도 매우 우려하고 있으며, 약자와 소수자의 관점에서 북한을 이해하려고 한다는 면에서 흥미롭다.

대만신문 ‘중국시보’에서 여론조사를 하고 있다. “트럼프가 북한, 이란 등 4개국의 지도자를 ‘불량배’, ‘악당’이라고 매도했는데 진짜 악인은 누구일까요?”, “대만은 유엔 회원국이 아닌데 대북 제재에 동참해야 할까요?”이다. 투표는 진행 중이지만, 앞 설문에서 1위는 압도적으로 트럼프(71.5%)이며, 2위가 김정은(13.9%), 3위가 IS의 지도자(10%)로 나온다. 후자의 설문에는 90%가 필요 없음이고, 필요함은 10%에 지나지 않는다. 이 결과를 보편화시킬 수는 없지만, 직접 미국의 풍압을 받지 않는 곳의 민심 동향을 시사한다고 볼 수 있다.

그와 대조적인 것이 아베 정권이다. 유엔 연설이 북한 비난과 강경 제재 주장으로 일관되어 “모든 선택이 테이블 위에 있다”는 트럼프의 말을 전폭 지지한다면서 평화를 논해야 하는 유엔에서 무력 공격을 가장 노골적으로 시사했다. 일본에 요즘 ‘해산 바람’이 불고 있다. 아베가 이달 28일에 국회를 해산하고 11월22일에 총선을 실시한다고 했다. 내각을 개조한 지 한 달도 채 안되는데, 당돌한 국회해산은 자민당 내부에서도 ‘대의 없는 해산’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야당의 내분과 분열의 틈을 탄 ‘약자 괴롭히기 해산’, 사학재단 비리 의혹에 얽힌 아베가 국회에서의 추궁을 피하기 위한 ‘적전도주 해산’ 등 비난이 비등하다. 선거 쟁점으로 소비세나 개헌문제를 내걸고 있지만, 북핵 미사일 위기가 고조하고 있어서 대북(강경)정책에 대한 국민의 신임을 물어야 한다는 구실을 내세우고 있다. 아베가 위기를 선동해놓고 그 안보위기로 국민을 겁박하는 자작자연이다. 세계에서 오로지 아베만이 인종주의자, 여성차별주의자인 트럼프의 ‘미친 정치’에 충성을 다 하는 척하면서 호가호위하고 전쟁 위기를 증폭시키고 일본의 군과 전쟁의 합법화에 골몰해왔다. 한국은 이들을 믿고 ‘한·미·일 동맹’을 신주처럼 모시고 있어도 되는 것인가?

문재인 정부는 유엔에서 가장 강력한 대북 압력을 주장하면서 미·일의 뒷북을 칠 뿐, 평화 의지나 자주성을 부각하는 독자성도 동창성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800만달러의 대북인도지원 결정에 대해 아베로부터 훈계조로 견책을 받아 “인도지원과 정치는 별개”, “실시 기일 미정”이라는 변명에 시종하고 있다. 진정 인도지원이라면 떳떳하게 지금 바로 실시하면 된다. 생색내면서 줄듯 줄듯 안 준다면 상대를 능멸하고 약 올리는 결과밖에 안 된다. 문 대통령이 “석유 공급을 끊어달라”고 하다가, 푸틴 대통령에게 오히려 “인민생활에 피해가 간다”고 타이름을 받는 창피한 일이 있었다. 남에게 같은 겨레를 괴롭혀달라는 부탁은 입이 찢어져도 해서는 안되는 말이다. 어느 아둔한 참모가 보좌하는지 모르나, 지금 북한은 사생 결단으로 핵미사일 개발에 매달리고 있는데, 평화를 보장받기 전에는 아무리 압력을 가해도 포기할 리가 없다. 정부는 제재니 압력이니 하는 헛발질을 그만하고, 진정 한반도에서의 전쟁을 저지하고, 한반도 평화실현의 운전대를 잡으려면, 트럼프에게 “전쟁도발을 그만하고, 북한과 대화하고,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직언해야 한다. 그것만이 이 지역을 전쟁위기에서 구해내는 유일한 방법이다. 또한 정부가 어떤 정책을 취하든, 대만의 장씨 말마따나 시민들은 “전쟁반대!” “군사대치 중지! 즉시 대화!” “동아시아 비핵화, 평화!”를 외치고 스스로 평화를 지켜야 한다.

 

※미려도 사건 : 세계인권선언일인 1979년 12월10일, 대만 가오슝(高雄)에서 잡지 ‘미려도’가 주최한 시위에서 경찰과 충돌이 일어나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하고, 주최자 8명이 투옥된 사건이다. 가오슝 사건이라고도 불린다.

<서승 리쓰메이칸대 코리아연구센터 연구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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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는 참여정부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했다. 정부는 서울 강남 재건축 아파트 가격이 꿈틀거리자 즉각 시장에 개입했다. 노무현 정부 당시 부동산 정책 실패 경험과 이에 대한 반성이 본능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검찰 개혁도 과거와 사뭇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윤석열 검사를 서울중앙지검장에 임명하고 검찰 내 ‘우병우 사단’을 솎아내더니 올해 정기국회 법안 통과를 목표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신설을 밀어붙이고 있다. 속전속결·전광석화라 할 만하다. 경제 분야에서는 ‘재벌 저격수’로 불리는 김상조 교수를 공정거래위원장에 발탁해 프랜차이즈 본사의 갑질을 단속하는 등 이미 적지 않은 성과를 냈다. 북한의 핵 실험 같은 대형 악재 속에서도 문재인 대통령이 60~70%의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는 비결일 것이다.

교육부가 대학수학능력시험 개편을 1년 유예한다고 발표한 지난달 31일 서울의 한 중학교 학생들이 복도를 지나가고 있다. 수능이 개편되는 시기가 2022학년도로 미뤄지면서 지금의 중학교 2학년생들이 개편된 시험을 치르는 첫 세대가 됐다. 연합뉴스

그러나 교육 개혁은 답답하고 더디기만 하다. 교육의 본령과 거리가 먼 사건·사고 뒷수습에 허둥대는 모습이 참여정부 당시 교육 난맥상을 떠올리게 한다. 2021학년도 수능 개편안은 두 개의 미흡한 방안을 내놓고 학생·학부모들의 선택을 강요하다 결국 백지화하고 결정을 1년 뒤로 미뤘다. ‘죽음의 트라이앵글’ 논란과 정부 입시안에 반대하는 고교생들의 시위가 있었던 2005년 상황과 비슷하다. 기간제 교사의 정규직 전환 등을 놓고 양분된 교직 사회는 노무현 정부 첫해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시행을 두고 전교조와 교총이 반목하던 것과 닮은꼴이다. 교육 당국의 무능과 무사안일이 부른 ‘교원 임용 절벽’ 사태는 여전히 답이 없고, 사립유치원 집단 휴업은 막판에 가까스로 멈췄지만 언제라도 터질 수 있는 교육계의 화약고가 됐다.

이런 상황인데도 김상곤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김 부총리는 교육 사령탑으로 취임한 지 50일이 지났지만 아직 교육부 진용조차 꾸리지 못했다. 교육부 1급 5개 직위 중 3개가 공석 또는 직무대행이다. 김 부총리가 교육부 관료들에게 벌써부터 휘둘리고, 청와대와 소통이 안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김 부총리는 교육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위원회에 기획관리실장 ㄱ씨를 참여시켰다. ㄱ씨는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주도하지 않았더라도 간접적으로 지원하거나 암묵적으로 동의한 인물이다. 조사를 받아야 할 사람이 조사 주체로 임명된 것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교육부에서 1급 실장과 청와대 비서관으로 승승장구하다 퇴직한 ㄴ씨가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행정관으로 근무한 연줄을 이용해 현 정부에서 중책을 맡을 것이라는 소문도 있다. 김 부총리는 취임사에서 “불평등하고 서열화된 교육시스템을 바꾸고, 민주주의의 신념과 공존의 가치를 내면화하는 교육 생태계를 구축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김 부총리가 참여정부의 전철을 답습하지 않고 교육 개혁을 이끌기 위해서는 교육 수장으로서 입지를 확고히 하는 것이 급선무다.

문재인 정부 교육분야 최고 의사 결정기관인 국가교육회의의 앞날도 순탄해 보이지 않는다. 국가교육회의는 교육혁신·인적자원개발·교육자치 등 교육의 거시적인 부분은 물론이고 수능 개편안, 특목고·자사고 폐지 같은 미시적인 사안까지 모든 교육 현안을 다룬다. 국가교육회의에서 정책을 결정하면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을 통해 집행하는 구조다. 이런 국가교육회의의 사무처 역할을 하는 ‘국가교육회의기획단’의 단장으로 기자 출신 ㄷ씨가 사실상 내정됐다고 한다. 서울시교육청 공보담당관을 1년6개월 한 것이 교육 관련 경력의 전부인 ㄷ씨는 문 대통령의 부산 인맥으로, 정권 실세의 대학 동문이다.

당초 예상과 달리 문 대통령은 국가교육회의 의장을 맡지 않기로 했다. 대통령이 발을 빼고 ‘낙하산’에 의해 운영되는 문재인 정부 국가교육회의가 인사 난맥과 지도력 부재로 제풀에 쓰러진 노무현 정부 교육혁신위의 복사판이 될 가능성이 있다.

사람의 일이든 나라의 일이든 ‘결정적 시기’가 있다. 두뇌 발달은 태어나서 36개월까지가 결정적 시기이다. 이 기간에 부모나 사회로부터 격리되면 그 이후 아무리 노력해도 온전한 지능을 갖출 수 없다. 개혁의 결정적 시기는 정권 초반 6개월이다. 늦어도 내년 지방선거 전에는 가시적인 성과를 내야 한다.

시민들은 교육 양극화를 해소하고 한국 교육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명령하고 있다. 문 대통령과 김 부총리를 비롯해 조희연 서울교육감과 이재정 경기교육감 등 교육 관련 주요 정책 결정권자들도 모두 개혁 성향의 인사들이다. 광장의 촛불이 ‘드림팀’을 만들어준 것이다. 두 번 다시 오기 어려운 교육 개혁의 호기다. 이번에도 실패하면 교육 개혁은 영영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오창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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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년 전에 프랑스 사람 무슈 달로와요는 제 살던 동네에 처음 빵집을 열었는데 이제는 전 세계에 빵집이 생겨났다. 이름값을 할라치면 달로 와요 달로 오시랑께요, 달나라까지 뻗어나갈 기세렷다. 이름이 예쁜 빵집엔 시선이 먼저 모아진다. 아이들처럼 빵을 좋아한다. 요샌 무화과 쨈이 제철이고, 봄여름엔 딸기 쨈. 구운 식빵에 쨈을 발라 커피나 생과일 주스랑 먹으면 허기가 가시고 금세 배가 빵빵 남산이다. 즐겁고 간단한 요기에 이만한 먹거리가 또 없다.

읍내나 대도시로 나가야 빵 구경을 할 수가 있다. 면소재지엔 없는 게 많은데, 그중에 빵집도 하나. 유기농 재료로 구워 만든 건강한 빵을 맛보려면 더 멀리 도전해야 한다. 좋은 빵은 은수자나 된 것처럼 숨어 있다. 백조가 사는 호수마다 푸드 트럭, 간이 빵집이 있어 햄버거 핫도그 도넛 여름엔 아이스크림, 그리고 음료를 사먹을 수 있던 곳. 지난여름 영국 각지를 여행하면서 백조의 호수 빵집들이 부러웠다. 호숫가 의자에 앉아 빵을 나눠 먹는 연인들. 두려움을 잊은 백조는 부스러기라도 뭐 없나 뭍으로 성큼 올라오기도 했다. 은하수 모든 별들도 호수에 같이 살고 있었는데, 배때기가 뚱뚱한 백조가 물북을 치며 뛰어들면 새까만 밑바닥으로 몸들을 숨겼다. 한반도를 수시로 선회비행하며 검은 죽음의 폭탄을 뽐내고 있는 죽음의 백조 폭격기. 미군 폭격기 별명을 ‘죽음의 백조(swan of death)’라 누가 처음 붙였는지 모르겠지만, 백조들이 노니는 평화로운 호숫가 공원의 풍경을 아는 사람들에겐 정말 치를 떨게 하는 이름이라 싶다. 도대체 어떤 세력들이 부추기고 원하길래 이 푸른 가을 하늘에다 시꺼먼 폭격기를 그려 넣는 걸까. 백조는 다 어디로 가고 저 시꺼먼 악령들이 부리를 쪼으며 설쳐대는 걸까.

버킷 리스트 중에 하나가 차이콥스키의 <백조의 호수> 발레 공연을 보는 일이다. 빵으로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극장에 앉아 발레리나의 백조 춤을 감상하는 밤을 꿈꾼다. 백조의 호수 빵집에 앉아 늘 보던 진짜 백조들의 춤. 그와 사뭇 다른 풍경일 게다. 익숙한 음악도 흐를 테고 말이다. 손을 잡고서, 당신과 함께라면 좋겠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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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적 의미의 재현은 묘사, 상징, 구성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어떤 대상의 현존을 전제로, 그것을 다시 보여주는 것을 의미한다. 동시에 재현이란 단어에는 ‘다시 나타나다 혹은 다시 보여주다’라는 뜻도 내재되어 있다. 재현은 표상이기도 하다. 주체와 대상 사이의 지울 수 없는 거리를 상정한 후, 주체가 대상에 대해 갖는 인식이 다름 아닌 ‘표상’이다. 그러니까 재현이란 ‘이미 있는 것을 다시 있게 하는 것이고 보았던 것을 다시 보여주는 행위’이다. 따라서 그것은 존재하는 대상을 연상하게 하고 추측하게 해준다. 즉 재현이라는 말에는 현상에 대한 부정, 그리고 현상 뒤의 어떤 실체나 본질에 대한 믿음이 내포되어 있다. 더불어 그것은 항상 부재를 환기하는 안타까운 상실감의 정서를 간직하면서 진행된다. 재현적 회화는 보이는 외계의 대상을 극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데서 출발한다.

그러나 그것이 결국 대상의 모방으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림으로 보여지는 것은 화면 밖의 사물과 유사한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거기서 출발하여 더 멀리 간다. 조형적 재현이 유사를 내포할 수 있지만 그러나 닮았다는 것이 전적으로 재현으로만 귀착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재현에 의해 전적으로 흡수되거나 점령당하지 않는 것이 바로 그림의 세계이지 않을까? 서구의 전통회화는 눈에 보이는 외부세계를 강박적으로 재현하려 했고 이후 현대미술은 그러한 전통을 해체한 결과 즉물적인 사물로 귀결되어 종내 미술이 사라지는 아이러니를 초래했다. 반면 우리 전통회화에서 재현이란 단지 눈에 보이는 가시적 존재의 닮은꼴에 머무는 것만은 아니었다. 아니 그것은 오히려 큰 의미가 없는 일이거나 가당치 않다고 보았다. 그림은 가시적 세계에서 비가시적 세계를 보여주는 일이라고 여겼다. 그런 기운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 그림이었던 것이다. 망막에 전적으로 의지한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접한 세계의 기운을 통감각적으로 전달하려는 시도, 어쩌면 현상학적인 체험을 시각화하려는 시도가 아니었을까?

최근 한국 화단에 새삼 재현 회화, 이른바 극사실 회화가 번성하고 있다. 미국에서 1970년대 대두된 포토리얼리즘과 한국에서도 197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를 풍미했던 극사실주의가 지금 왜 다시 부활하고 있을까? 혹자는 손의 기능이나 묘사력에 의존하면서 이루어지는 이러한 그림을 두고 회화의 복원 내지는 손의 회복 같은 거창한 의미로 포장하고 있고 작가들 또한 이러한 수사를 자신의 작업 알리바이로 삼고 있다.

우선 새로운 환영주의로 재편되고 있는 이 회화는 인터넷과 멀티미디어의 첨단화와 대중화의 결과로 보인다. 이른바 ‘디지털 미디어 환경의 회화적 분열’ 현상이 그것이다. 대부분 화가들이 모니터를 통해 습득한 이미지 정보를 조합하는 것으로 회화를 구성하고 있기에 정작 현실은 지워지고 매체가 생산한 이미지들과 그 이미지를 재조합하는 현재적 상황을 가지고 세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물은 캔버스가 아니라 일종의 ‘스크린의 확장’으로 보인다. 이른바 ‘시뮬라크라’가 회화를 잠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회화는 무척 공허하다. 따라서 오늘날 극사실적인 회화는 대부분 주어진 사물의 표면을 기계적으로 묘사하는 선에서 머물고 있다. 감정을 지우고 서늘하게 대상의 피부에 육박해 관능적으로 표면에 집착한다. 매끈하고 선명하며 오로지 표면밖에는 없다. 언어와 개념을 지우고 그저 사진처럼, 스크린처럼 그리고 예쁘고 감각적인 사물의 표면만을 정교하게 묘사하는 것은 어쩌면 의미를 대신하는 집요한 그리기인데 여기서 그 집요하고 지루한 묘사는 일종의 권태로움의 반영이기도 하다. 감각적인 사물과 기호들을 가지고 유희하는 일이자 그것들과 한 몸으로 접속되는 이 회화는 매우 자폐적인 그리기이자 동시에 그러한 삶을 정확하게 반영한다. 담론과 주제를 지워버리고 그저 그린다는 사실, 그림 그리는 행위 자체에 몰입하는 단조로운 그리기일 수 있다. 미술·회화가 무엇인지, 재현이 또 무엇인지 등에 대한 진정한 고민을 밀어낸 자리에, 현실이 사라진 장소에 단지 오늘날 시각 환경이 되어버린 스크린을 닮은 그림을 그리고 있거나 그저 그림을 지속하고 있다는 행위 자체를 미술·회화로 대신하고자 하는 욕망만이 대신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를 다소 편하게 제공해주는 것이 지금의 극사실주의 그림의 저간에 짙게 깔려있다고 생각한다.

<박영택 경기대 교수·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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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재정부는 27일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하는 국가경쟁력 평가 결과 한국이 26위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한국은 2008년 역대 최고인 11위까지 올라갔다가 매년 순위가 하락하고 있다. 2014년 26위로 밀린 뒤 끌어올리지 못하고 4년째 제자리다. 분야별로 보면 물가·국가 저축률·재정 건전성·국가신용도 등을 종합한 거시국제환경(2위)과 도로·철도·항만·철도의 질 등 인프라(8위)부문에서는 높은 수준의 경쟁력을 확보했다. 하지만 노동시장의 효율성(73위)과 금융시장의 성숙도(74위)에서 크게 뒤지며 국가경쟁력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세계경제포럼도 “한국의 국가경쟁력이 선진국으로는 드물게 하락세를 나타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발표에서 주목되는 부분 가운데 하나는 뒤처진 노동시장의 효율성이다. 특히 이를 구성하는 항목 가운데 노사 간 협력(130위)과 정리해고 비용(112위)에서는 세계 최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지난해 노사정위원회의 붕괴로 재계와 노동계의 대화채널이 사라지고, 주요 사업장에서의 파업이 반영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최하위권을 기록하고 있는 점은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더 큰 문제는 그동안 우위를 보였던 한국의 혁신역량이 점차 약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번 발표에서 혁신역량을 반영하는 ‘기업혁신’의 순위는 18위로 나타났다. 2009년 11위에 올랐던 것과 비교하면 시들고 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더구나 한국을 뒤쫓는 국가들의 무서운 상승세를 볼 때 두렵기까지 하다. 2012년과 2017년 사이 기업혁신 순위를 보면 한국은 16위에서 18위로 내려앉았지만 중국과 인도, 인도네시아 등은 몇 계단씩 급상승하고 있다.

이번 세계경제포럼의 발표가 박근혜 정부 때의 조사결과이고, 경제상황에 대한 설문 인식조사라는 점에서 일정한 한계가 있다. 하지만 한국 국가경쟁력의 개선점에 대해서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정부는 어제 두 가지 처방전을 내놓았다. ‘한국형 고용안정-유연 모델’로 노동시장의 역동성을 강화하겠다는 것과, 혁신성장을 통해 우리 경제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겠다는 것이다. 규제완화와 벤처창업활성화 등을 통한 성장도 함께 추진하겠다는 의미로 들린다. 혁신을 통한 성장은 당연하다. 다만 이 과정에서 재벌개혁 등 개혁추진이 물타기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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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에서 대북 특사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어제 문재인 대통령의 4당 대표 초청 청와대 만찬에서 “북한에 특사를 보내 핵과 미사일 도발 중단을 요청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북한과 미국 양쪽에 동시 특사를 파견하자는 의견을 냈다. 앞서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도 미국의 대북 특사 파견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반도 위기가 일촉즉발인 상황에서 대북 특사를 보내 대화의 물꼬를 트자는 것이다. 정부는 이들의 주장을 진지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27일 오후 청와대 상춘재에서 여야 4당 대표와 만나 손을 맞잡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바른정당 주호영 대표 권한대행,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 문 대통령, 국민의당 안철수·정의당 이정미 대표. 청와대 사진기자단

역대 정부는 한반도 정세가 경색될 때마다 대북 밀사나 특사를 파견해 남북관계를 관리해왔다. 남북 간 험악한 대결이 이어지던 박정희 정권 시절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은 북한을 방문해 ‘7·4남북공동성명’을 끌어냈고, 임동원 국가정보원장은 여러 차례 방북해 남북정상회담 성사와 남북관계 증진에 기여했다. 미국의 경우 1994년 북핵 1차위기 때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방북해 김일성으로부터 남북정상회담 약속을 얻어냈다. 성공 사례가 많은, 흔치 않은 대북정책 수단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특히 대북 특사가 평화로운 시기보다 위기 국면에서 더욱 빛을 발했던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물론 대북 특사 시기 상조론도 존재한다. 북한의 핵개발 저지를 위한 압박과 제재에 집중해야 할 시점에 대화 카드를 꺼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핵개발 중단이나 협상을 통한 해결 의사를 비치기 전에 특사를 보내면 큰 성과를 보기 어려울 것이란 주장도 나온다. 대북 특사 파견을 위해서는 북핵 문제를 둘러싼 미국과의 조율과 실무 물밑 접촉 등 외교적인 사전 준비가 필요한데, 북·미 간 감정이 악화된 상태에서 그것이 과연 가능하겠느냐는 문제 제기도 일리 있다. 특사를 파견해 북핵 위기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기 어려운 현실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나 전쟁 직전의 상황에 소통 채널마저 꽉 막힌 한반도 정세를 결코 그냥 둘 수 없다. 북한과 미국 최고 지도자들 간의 막말 위협이 언론 매체를 여과없이 오가며 위기가 가중되고 있는 현실을 제어할 장치가 절실하다. 대북 특사를 통해 최소한 위기가 더 심화되지 않도록 관리하고 통제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중요한 진전이다. 북핵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서는 말이 아니라 적극적인 실천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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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는 우리 사회 거의 모든 분야에서 소위 ‘적폐청산’을 활발하게 추진하고 있다. 대북·통일 정책도 예외가 아니다. 통일부는 최근 ‘정책점검 TF’ 활동을 사실상 종료하면서 외부 전문가들로 이뤄진 ‘정책혁신위원회’를 출범시켰다. 통일부는 정책혁신위원회가 정책점검 TF의 활동 결과를 토대로 과거 정부의 대북정책 결정 과정 및 결과를 점검하고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해 연말까지 ‘정책혁신방안’을 내놓을 것이라고 했다. 지난 과오를 바로잡고 개선하겠다는 통일부의 의지에는 격려를 보내지만, 몇 가지 우려 사항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정책혁신위원회’와 ‘정책점검 TF’라는 명칭이 본래 취지에 부합하는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촛불혁명의 주체인 국민들은 적폐청산을 통해 대한민국이 ‘나라다운 나라’로 환골탈태하기를 바라고 있다. 많은 국민들은 국가정보원이 ‘적폐청산 TF’를 구성해 과거의 잘못을 가려내고 책임을 묻고 다시는 잘못된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조치하는 모습에 박수를 보내고 있다. 명칭이 갖는 함의가 작지 않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혁신위’를 통해 지난 정부에서 잘못 시행된 것들을 개선하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통일부에 있는지 우려되는 것이 사실이다. 허심탄회하고 투명하게 자기를 던져야 새로운 발전을 기약할 수 있다.

혁신위 업무는 여러 요인에 의해 왜곡·잘못 시행된 것을 면밀히 파악하여 재발하지 않도록 조치하는 것이다. 그런데 진실이 사실대로 밝혀지지 않고는 올바른 시정을 할 수 없는 것이다. 혁신위 위원들은 시민사회와 학계 등에서 전문성을 인정받는 인사들이다. 혁신위 위원들은 정책결정 및 추진과정을 통해 문제점들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다. 관계 기관·인사들과의 문의·토의 내용을 비롯해 관련 자료를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 이 부분에서 외부 전문가들이 직접 참여하였던 공무원들을 능가하기는 쉽지 않다. 외부 전문가들뿐만 아니라 그 사안에 직접 관여했던 인사들이 혁신위에 참여하여 함께 논의할 수 있는 장(場)이 마련되어야 한다.

대북·통일 정책은 역사와 민족, 나아가 우리의 미래와 직결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관장하는 통일부는 이번 일에 비상한 각오로 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어디서부터 남북관계가 잘못되기 시작했는지, 이렇게 되는 과정에서 규정을 잘 지켰는지, 왜곡은 없었는지, 정치적 이용에 급급하지 않았는지 세밀하게 점검해야 한다. 특히 이른바 ‘3대 경협 사업’으로 불리며 한반도 평화와 남북한 상생의 상징이었던 금강산관광 사업과 개성공단 사업이 왜 이 지경이 됐는지, 재개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는 않았는지 등을 꼼꼼하게 따져봐야 한다. 여기에 필요한 조사는 철저하게 이뤄져서, 똑같은 잘못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통일부 직원들은 지난 잘못을 바로잡는 과정에 적극적으로 협조해야 한다. 자신이 관련됐던 사안이기 때문에 잘못이 드러날 경우 불이익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혁신위의 활동에 협조하지 않는다면 역사와 민족 앞에 죄를 짓는 것이라는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이번에 희생을 감내하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면, 새로운 대북·통일 정책이 수립되더라도 이미 떠난 국민들의 마음을 다시 얻을 수 없을 것이다. 혁신위 위원들도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이는 정책 개선·발전을 모색하는 단순한 용역사업이 아니다. 10년 가까이 남북관계 단절 상태가 장기화되고 있다.

통일부는 이번 기회에 대북·통일 정책의 주무 부처로서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확고한 위상을 정립해야 한다.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 이 기회를 의미있고 소중하게 활용해야 한다. 예를 들어 아직도 남북대화에 타기관 관계자가 소속을 변경하며 참여하는 행태가 바람직한 것인지, 회담 행사 운영을 통일부가 아닌 다른 기관이 주도하는 게 올바른 것인지 등이다. 또한 남북군사회담을 국방부가, 남북경제회담을 경제부처가, 남북농업회담을 농수산 관련 부처가 주도하려 하는 것이 제대로 된 것인지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대북·통일 정책을 관장하는 컨트롤타워로서 통일부가 전반적인 대북정책 및 남북대화를 주도하는 가운데 관계 부처가 협력하는 체계가 확고하게 마련돼야 할 것이다.

통일·대북 정책의 주관부서와 창구는 명실공히 통일부이다. 이것이 명확히 정립되지 않으면 남북관계 발전에 많은 장애가 조성될 것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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