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국무총리께.

지난 8월29일 국무회의에서 “홀트아동재단(복지회) 등을 포함해 우리 아이들을 입양해주는 해외기관에 정기적으로 감사편지를 보내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하셨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저는 입양제도 개선을 위해 일했던 사람으로서, 사석도 아닌 국무회의에서 하신 말씀을 접한 뒤 참담함을 금할 수 없어 이 글을 씁니다.

총리께서는 ‘감사할 줄 아는 국가 이미지’를 주자고 하셨습니다. 그럴 만한 일이면 마땅히 그래야지요. 지난해 해외입양된 아이는 334명. 예전보다 줄긴 했으나 저출산을 걱정하는 판국에 하루 한 명꼴로 해외입양을 보냈습니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가장 오래 해외입양을 보내왔고, 지금도 OECD 회원국 중 해외입양을 보내는 유일한 나라입니다. GDP 규모 세계 12위인 나라에서 친생부모가 버린 아이들 300여명을 사회가 거두지 못해 여태 해외로 보냅니다. 이게 감사할 일입니까?

게다가 ‘입양해주는 기관’에 감사하자고 하셨지요. 국가가 아닌 민간기관이 입양을 맡는 게 한국 입양제도의 가장 큰 문제인데, 여기에 감사하자고 하시니 아연할 뿐입니다. 2012년 입양특례법 개정으로 최종 단계에서 법원이 허가하는 모양을 갖추었으나 여전히 입양 절차의 시작은 민간기관에 맡겨져 있습니다. 한국이 1991년 유엔 아동권리협약을 비준하면서 채택을 유보해 여태 국제사회에서 비판받는 항목이 있습니다. 입양 과정을 공공기관이 책임져야 한다는 21조 (a)항입니다. 입양을 보내면서 이 조항 채택을 유보한 나라는 세계에서 한국뿐입니다. 해외입양 과정에서 인신매매를 방지하기 위한 헤이그 국제아동협약에도 한국은 아직 가입하지 않았습니다. 이게 감사할 일입니까? 

정부가 책임지지 않아 팔려가듯 해외로 입양 간 아이들은 종종 생사의 위기에 놓입니다. 2014년 초 세 살배기 입양아 현수를 폭행해 숨지게 한 미국인 양아버지는 심한 정신적 장애가 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미국 국내입양이었더라면 기준 미달로 허가받지 못했겠지만 해외에서 온 현수에겐 다른 기준이 적용된 것이죠. 그뿐 아닙니다. 가정법원이 입양허가를 시작하기 이전에 미국에 입양된 한국 아이들은 입양부모가 따로 시민권 취득 절차를 밟지 않으면 무국적 상태에 놓였습니다. 한국 정부도 해외입양을 보내는 순간 자동으로 아이들의 국적을 박탈했습니다. 입양이 민간기관들 사이에서 이뤄지다보니 정부가 책임을 지지 않은 것이죠. 그렇게 무국적자가 된 해외입양인 2만여명 중 한 명인 김상필씨는 한국에 돌아와 자신에 대한 기록을 찾다 실패하자 지난 5월 결국 한 아파트에서 몸을 던졌습니다. 이게 감사할 일입니까?

흔히들 해외입양이 6·25 직후 전쟁고아를 대상으로 했다고 생각하지만, 해외입양은 한국 경제 초고속 성장기인 1980년대에 가장 많았습니다. 그 대다수는 미혼모의 아이들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여서 지난해 입양된 아이들의 92%는 미혼모의 자녀입니다. 왜 그럴까요. 저는 결혼한 부모와 자녀로 구성된 ‘정상가족’의 틀을 벗어나면 입양을 통해 아이에게 ‘제대로 된’ 가족을 찾아주는 게 더 좋다는 인식, 즉 강력한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에 그 혐의를 둡니다. 정상가족의 순수함을 훼손했다고 여겨지는 미혼모들의 가슴에 주홍글씨를 찍어온 탓에 지금까지 그 많은 미혼모 자녀들의 해외입양이 진행됐던 것이지요.

미혼모 자녀를 입양으로 몰아가던 관행은 과거 서구 사회에서도 있었습니다. 2013년 호주 정부는 무지막지한 입양으로 “어머니에게서 아이를 분리하도록 강요했던 정책과 관행들이 그들에게 평생 고통을 남긴 것”에 대해 공개 사과했습니다. 한국에선 누구도 사과하지 않았습니다. 미혼모와 해외입양인들의 오래된 고통으로 남아 있을 뿐입니다.

이제 부끄러운 역사인 해외입양은 중단돼야 합니다. 정부가 우려하는 저출산 극복을 위해서라도 미혼모에 대한 차별을 걷어내고 가족의 형태와 무관하게 모든 부모가 아이를 돌볼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합니다. 국내입양에서도 입양 절차의 시작부터 끝, 그 이후까지 정부가 책임져야 합니다. 입양과 관련하여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감사’가 아니라 과거에 대한 사과와 마땅한 공적 책임을 지는 것임을 총리께서 다시 한번 헤아려주시기 바랍니다.

<김희경 인권정책연구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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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H컴퍼니 강훈씨가 유명을 달리한 지 이제 한 달여 지났다. ‘망고식스’ 대표로 알려진 그의 죽음에 이제야 애도를 표한다. 대형 프랜차이즈 외식업계 경영자들을 힐난하곤 했는데 내가 황망할 지경이었다. 하여 나도 침묵으로 애도 기간을 지켜야 했다. 강훈 대표의 죽음은 ‘갑’의 죽음이었다는 점에서 더욱 큰 충격이다. 한때는 ‘커피왕’, 커피업계의 ‘미다스의 손’으로 불리던 그의 성공신화는 카페를 열려는 사람들에게는 교과서였다. 그의 리즈 시절은 1998년 외환위기의 폐허 위에 ‘할리스’라는 커피점을 열어 성공시키면서부터다. 바로 ‘카페베네’의 전문경영인으로 명성을 쌓았고, ‘망고식스’라는 디저트카페 브랜드를 2011년 열면서 정점을 찍었다. 대형 연예기획사와 손을 잡아 연예인을 투자자로 끌어들였다. 드라마 주인공들은 망고식스에서 사랑을 고백하고 이별하고 재회했다. 주조연급 출연자는 망고식스의 사장으로 나오기까지 했다.

대형 프랜차이즈들은 기반을 다진 뒤 사업을 확장하는 방식이 아니라 처음부터 투자자를 끌어들이고 목표 가맹점수를 정해놓고 공격적으로 가맹 영업을 한다. 해외진출도 초기부터 추진한다. 그래야지만 ‘커피왕’에게 ‘현금왕’들이 붙어주기 때문이다. 한국의 내로라하는 프랜차이즈의 경영방식은 내실을 다지기보다 투자라는 이름의 빚으로 처음부터 무조건 크게 확장시키는 방법을 택해왔다. 결국 이 빚이 유능한 사업가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처음엔 참신하지만 카피 제품은 금방 쏟아져 나온다. 재투자를 받기 위해 서브 브랜드를 만들었지만 이미 포화 상태인 시장에서 본사도 경영자도 질식 상태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여기 또 한 죽음이 있다. 을의 죽음이다. 한때 미스터피자의 가맹점주였던 이종윤씨는 본사 갑질의 실체를 증언해온 사람이었다. 그리고 비슷한 처지의 점주들과 ‘피자연합’이라는 협동조합형 프랜차이즈를 설립한 장본인이다. 갑도 없고 을도 없는, ‘피자대동세상’을 꿈꾸면서 말이다. 미스터피자를 운영하면서 빚을 많이 지고 있었지만 그간 쌓은 피자 만들기 노하우와 견실성을 밑천 삼아 의욕적으로 추진한 ‘피자연합’. 대안 프랜차이즈로 이름도 알려지던 차에 복병은 미스터피자였다. 정우현 회장의 엽기적 갑질은 널리 알려져 있어 지면을 낭비하지는 않겠다. 다만 미스터피자를 떠난 자유인 이종윤씨를 끝까지 쫓아 철저하게 응징을 한 정우현 회장의 근성만은 높게 사줘야 할 것 같다. 현대판 추노질이었다. 정우현 회장은 가맹점을 ‘가족점’이라 불러왔고 그에겐 ‘통치권’이란 것이 있었다. 임직원들의 고견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의적으로 판단하여 발동하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그리 불렀다. 일례로 미스터피자의 계열사인 ‘마노핀’의 커피값을 900원으로 내려버리라는 긴급조치 같은 것 말이다. 그 통치권에는 자신의 영지를 벗어나 탈출한 노비를 추노하라는 명령도 있었다. ‘가족점’이란 말은 무색했다. 노비는 가족이 아니라 소유물이므로. 그는 가부장도 아닌 봉건영주였을 뿐이다.

몇 달 새 프랜차이즈라는 사다리의 꼭대기와 바닥의 죽음을 동시에 봐야 했다. 무엇이 잘못된 걸까? 누구나 꿈꾸던 사다리 꼭대기인데. 불행히도 사다리의 각도가 너무 직각이었다. 게다가 튼튼한 벽에 받쳐놓지도 않았다. 커피, 망고주스, 피자라는 단단한 벽체 위에 사다리를 걸쳐 놓은 것이 아니라 물량공세, 공격적 가맹점 모집과 쥐어짜기, 결정적으로 ‘먹튀 자본’이라는 암막커튼에 기댄 무대소품에 가까운 사다리였다.

두 죽음에 깊은 애도를 보낸다. 당신들은 스스로 죽은 것이 아니다. 이는 사회적 죽음이다.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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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곳에서 옷을 벗으면 감기에 걸리고, 2017년의 서울에서 돈이 없으면 우울증에 걸린다. 무얼 먹고 살아야 하나를 어제오늘 점심을 굶은 채로 고민한다. 불멸의 이순신이 지킨 나라에 불면의 이십대가 안녕히 살아가신다.”

대학생들의 인터넷 익명 게시판에서 본 글이다. 음식이 넘쳐나는 세상에 결식 대학생이라니 낯설게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끼니를 걸러야 할 정도로 궁핍한 삶에 대한 글은 종종 눈에 띈다. 등록금과 생활비 때문에 어떤 학생들은 한 학기 학교를 다니려면 한동안 휴학을 하고 돈을 벌어야 한다. 어떤 학생들은 고된 살림살이에 지쳐 쉬고 싶지만 하루빨리 졸업하고 가족을 부양해야 하기에 휴학도 할 수 없다. 해외여행이나 교환학생이 당연시되는 것만으로도 상처다. 돈벌이 때문에 학업에 지장이 생기고, 취업준비도 마음껏 할 수 없다. 이른바 ‘스펙’을 쌓는 데도 돈이 필요하다. 같이 밥을 먹고 술을 마시며 타인과 친분을 쌓는 문화에선 움직이면 돈이다. 가난은 학업, 취업준비, 연애, 교우관계를 모두 방해한다.

부모의 철저한 관리와 후원을 받으며 자란 학생들이 경제적으로는 물론 심리적으로, 지적으로 자립하지 못하는 경우에 대한 우려는 익숙하다. 그런가 하면, 다른 한편엔 누구의 보호도 받지 못한 채로 혼자 학비와 생계를 해결해야 하는 학생들도 있다. 대학생이면 성인인데 당연한 일일 수도 있지만, 문제는 어떤 식으로든 학비를 지원받지 못하는 대학생이 학비와 생계를 해결하며 공부까지 하기엔 현실이 너무 벅차다는 점이다.

1인 가구로 살든, 형편이 어려운 부모와 같이 살든 청년들의 빈곤은 가령 노인 빈곤보다는 덜 눈에 띄고, 사회적으로도 덜 주목받는다. 청년들 중 특히 취업기회를 아예 얻지 못하거나 빈곤 직업군을 전전하는 초·중·고등학교의 퇴학, 자퇴생들의 빈곤은 심각하다. 그러나 빈곤 청년들 중엔 분명 대학생도 있고(중위소득에 이르지 못하는 빈곤층 비율이 10%를 웃돌고 대학 진학률은 80%에 이르는 것을 감안해 보라) 그들에게도 빈곤은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다. 학비 조달은 엄청난 부담이다. 취업도 어려운데 빚을 지고 졸업해야 하니, 사회인이 되면 숨통이 트인다는 보장이 없다. 영구빈곤의 공포에 짓눌린다. 빈곤 청년들의 피로,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절망감은 쉽게 표면화되지 않고, 이들은 통계에 잘 잡히지 않는다. 가난을 멸시하는 사회가, 가난만으로도 지친 젊은이들에게 가난을 숨기는 노력까지 요구하기 때문이다.

경제성장에 제동이 걸린 사회에서 계층 상승의 가능성은 크게 줄어든다. 양극화가 공고해지면서 경제적 지위와 상징적 특권은 세습된다. 재벌가는 물론 의사, 판사의 자녀가 의사, 판사가 되고, 교수 자녀가 교수가 되며, 심지어 연예인의 자녀가 연예인의 자녀라는 사실만으로 연예인이 된다. 경제력이 곧 정보력, 문화권력이고, 정보력과 문화권력은 경제력을 유지하기 위한 자산이자 무기로 활용되기 때문이다. 출생이 삶의 큰 부분을 결정짓는 일종의 신봉건사회로 회귀한다.

개인이 이룰 수 있는 것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청년들은 냉소적이다. 개인의 힘으로 가난을 벗어나기 어려운 사회를 물려주었으면서도 여전히 개인에게 가난의 책임을 돌리는 기성세대의 자가당착은 죄스러울 따름이다. 이제 가난은 견디면 이겨낼 수 있는 불편이나, 정신을 풍요롭게 하는 젊은 시절의 통과의례가 아니다. 경제적 불평등은 재화뿐 아니라 인간적 가치와 명예의 불평등을 고착시키고, 가난은 배고픔뿐 아니라 존중받지 못하는 삶에 대한 수치를 유발한다. 궁핍과 수치를 함께 견디는 피로가 자존감 상실, 무력감, 불면증, 우울증으로 이어지지 않기는 어렵다.

이번주 대학교들 대부분이 가을학기 개강을 맞이했다. 하지만 가난 때문에 새 학기를 맞지 못한 청년도 있다. 며칠 전 전남의 한 저수지에서 발견된 모녀는, 대학생 딸의 학비를 마련하지 못해 애를 태우다가 등록금 납부 마감일에 함께 생을 마감했다고 알려졌다. 죽음은 가난한 청년들에게 낯선 선택이 아니다. 학생들의 휴학 신청을 전자결재하면서, 이 학생들 각각의 형편과 사정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끼니를 걱정하며 냉소와 자조 속에 하루하루를 버틴다면, 매계절, 매학기를 가까스로 넘기며 살아간다면 푸를 수도 없고, 봄기운도 내뿜을 수 없는 그 이십대는 이미 청춘이 아니다. 고령사회를 걱정하고 인구절벽, 저출산을 걱정하면서도 우리는 비좁은 고시원과 반지하 단칸방 속 위기의 청년들을 어떻게 도와야 할지 모른다. 공무원 채용인원 증가는 어쩌면 해줄 수 있는 가장 작은 일이다. 가난이 강요하는 궁핍과 수모에서 유일한 탈출구로 죽음을 생각하는 “불면의 이십대”. 청년들의 가난은 혹독하다.

<윤조원 고려대 교수·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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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가 31일 대학수학능력시험 개편을 1년 유예하기로 했다. 절대평가 확대를 골자로 한 수능 개편안은 폐기하고, 원점에서 재검토한다. 현재 중학교 3학년은 현행 체제에서 수능을 치르고, 개편된 수능은 중학교 2학년이 응시하는 2022학년도부터 적용된다. 김상곤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사회적 합의가 충분치 않았다는 지적을 받아들여 수능 개편을 유예하고, 내년 8월까지 대입제도 개선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늦었지만 당연한 결정이다. 교육부는 졸속적인 수능 개편안 발표로 학교 현장의 혼란과 갈등만 키웠다는 비판을 받아도 할 말이 없게 됐다.

김상곤 교육부장관이 3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2021학년도 수능 개편 계획을 1년 유예한다고 발표한 뒤 회견장을 나가고 있다. 김영민 기자

교육부는 지난 10일 수능 개편안으로 영어와 한국사에 더해 통합사회·통합과학, 제2외국어 등 4개 과목을 절대평가하는 1안, 전 과목을 절대평가로 전환하는 2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2개 안에 대해 “어느 쪽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양비론이 비등했다. 1안은 국어·수학·탐구 등 상대평가 과목으로의 쏠림과 사교육 풍선효과를 막을 수 없고, 2안은 수능 변별력 약화에 따른 학생부종합전형의 비중이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다. 4차례의 권역별 공청회에서도 “제3의 수정안을 마련하거나 수능 개편을 미뤄야 한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하지만 교육부는 “더 이상의 절충안은 없다”며 양자택일을 강요했다. 게다가 수능 개편안은 수학의 가·나형을 남겨두면서 문·이과 통합이란 ‘2015 개정 교육과정’의 취지마저 퇴색시켰다. 고교 체제 개편과 내신 성취평가제, 고교학점제 추진을 어렵게 한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몸통인 교육과정에 맞춰 꼬리인 수능이 바뀌는 게 아니라 수능이 교육과정을 뒤흔들 수 있는 상황이 초래된 것이다.

교육부는 대입제도 개선이란 큰 그림을 제시한 뒤 수능 개편안을 내놓았어야 했다. 특히 불공정·깜깜이·금수저 전형으로 비판받는 학종에 대한 개선책 없이 수능만 절대평가하겠다는 것은 수술이 필요한 환자에게 항생제만 투여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학종에 대한 불신을 걷어내려면 학생부에서 경시대회와 소논문, 자격증·인증 기재란을 없애고, 교과영역 비중을 높여야 하는데도 교육부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었다. 아무리 취지가 좋은 정책이라도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하면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교육부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땜질식 개편이 아닌 교육개혁의 가치를 공유하면서 근본적인 대입제도 개선안 마련에 주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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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무 국방장관이 미국의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및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의 연쇄 회담에서 전술핵 한반도 재배치 문제를 공식 거론했다. 송 장관은 핵잠수함 도입의 필요성도 제기했다. 그러나 전술핵 재배치와 핵잠수함 도입은 보수층이 북핵 문제로 한계에 부딪힐 때마다 꺼내들었던 비현실적이고 위험한 카드다. 정부가 그간 국제사회와 함께 기울여온 북핵 문제의 평화로운 해결 노력을 송두리째 부정한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문재인 정부마저 위험한 역주행을 시작한 것인지 묻고 싶다.

송영무 국방부 장관이 취임 후 첫 미국 방문을 위해 29일 오전 인천공항을 통해 출국하고 있다. 송 장관은 30일 워싱턴DC 미국 국방부 청사에서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과 회담을 한다. 연합뉴스

소형 핵무기를 의미하는 전술핵은 수십년간 주한미군에 배치돼 있었으나 1991년 철수했다. 미국의 핵무기 감축 선언과 남북의 한반도 비핵화 선언이 계기였다. 따라서 이제 와서 전술핵을 재배치하는 것은 한반도 비핵화 선언을 무력화하고, 북한에 핵개발 명분을 제공하겠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전술핵 재배치는 북핵 억지력을 높이는 게 아니라 오히려 동북아에 핵개발과 군비경쟁을 가속화하는 자해행위에 가깝다. 게다가 한국은 미국으로부터 핵우산 보호를 받고 있다. 정부의 입장도 전술핵 재배치 반대다.

핵은 핵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공포의 균형’ 발상 자체가 비현실적이다. 적대국가 간에 핵무기를 보유하면 평화가 찾아오는 게 아니라 첨단화, 정교화 경쟁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핵개발의 원인인 적대감을 해소하는 것이 유일하고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북한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에 대비해 핵잠수함이 필요하다는 주장 역시 무모하다. 핵잠수함은 한반도의 좁은 해역을 감안할 때 불필요할 뿐 아니라 중국 등 주변국을 자극할 게 뻔하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송 장관의 발언이 무력시위 맞대응 등 정부의 대북 대처가 점점 강경해지는 상황에서 나왔다는 점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전술핵 재배치를 검토하는 방안을 제시한 것도 마음에 걸린다. 국방부는 송 장관 발언 직후 “야당과 언론에서 그런 요구를 하고 있다고 미국에 전한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그 해명이 더욱 의혹을 불러일으킨다. 왜 야당의 의견을 양국 국방장관 회담 의제로 삼았는지 설명이 되지 않는다. 평화를 추구한다는 정부가 전술핵 도입 문제를 미국 국방부 장관과 논의한 것 자체가 심각한 자가당착이다. 정부는 한·미 사이에 무슨 얘기가 오가고 있는지 당장 진실을 밝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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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도심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을 석방하라는 우익단체들의 집회와 행진이 열렸다. 그들의 행진과 구호 음악은 지난 탄핵정국에서 보았던 스타일 그대로였다. 군가를 따라 부르며 군복, 군화, 군모에 검은색 ‘라이방’을 쓴 노령의 참가자들이 여전히 대열의 전위에 선다. 이들의 외침은 자신들의 입장에서는 절실했지만, 백주대낮에 군가와 군복을 입은 분들을 아직도 도심에서 봐야 하는 시민들의 표정이 곱지 않다. 사운드와 비주얼이 이제는 정말 지겹다는 표정들.

지난 8월30일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재판을 받기 위해 법원으로 들어갈 때, 입구에서 군복을 입고 그에게 거수경례를 하는 노령의 우익단체 회원이 방송 카메라에 잡혔다.우익 어르신의 경례에 가벼운 미소를 지었던 원세훈은 국정원법,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법원에서 4년 실형을 선고받고 다시 법정 구속이 되었다. “헐, 범죄자에게 거수경례를?”

우익은 우리 사회에서 어느새 공포의 대상에서 혐오의 대상으로 변해버렸다. 냉전 시기 반공교육에 혈안이 되어 빨갱이를 색출하라는 우익단체들은 과거에는 반공주의 이데올로기의 포비아를 생산하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2000년대 후반 우익 단체의 회원들이 군복 입고 가스통 들고 도심에 나와서 자해 퍼포먼스를 하던 시절만 해도 우익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이명박·박근혜 정부 동안 강화된 우익들의 집단적 행동들은 공포의 대상이 아닌 혐오의 대상이 되었다. 왜 우익들은 공포가 아닌 혐오의 대상이 되었을까?

가장 먼저 언급할 수 있는 것은 시각적인 불편함이다. 가령 태극기 집회나 동성애 반대 집회에 동원되는 단체 중에서 기독교 우익단체들이 벌이는 퍼포먼스는 이데올로기적 ‘키치’의 극단을 보여준다. 한복을 입고 북춤을 추며 찬송가를 부르다가, 하얀 발레복을 입고 차이콥스키의 ‘백조의 호수’의 음악에 맞춰 춤추는 이들의 퍼포먼스는 ‘친미와 반북’ ‘기독교와 반공’이 이상야릇하게 혼합된 시각적 민망함을 보여준다. 빨갱이와 동성애자를 동일한 적대세력으로 묶어서 이들의 악령을 쫓아내려는 예식을 치르는 장면들이 종로에서 시청에서 행해질 때, 사람들은 이 시각적, 청각적 어이없음으로 인해 공포심리보다는 혐오심리를 갖게 된다.

우익의 주체들은 상식과 이성의 의지를 기각시키고, 목적을 관철시키기 위한 극단적 수단과 방법을 동원한다. 우익의 개체수가 늘어나면서 이익을 위한 충성경쟁이 극단적인 방법으로 나타난 것이다. SBS 방송사 앞에서 김제동을 종북 좌파로 규정하고 퇴출을 요구하며 확성기로 생떼를 쓰는 엄마부대 회원들, 서울도서관을 음식 쓰레기더미로 초토화시켜버리고, 편의점 종업원과 지하철 승객들에게 반말과 욕설을 내뱉는 태극기집회 참가 할아버지들, 단식 중인 세월호 유가족들 앞에서 치킨과 피자를 시켜먹으며 폭식투쟁을 하는 일베 회원들은 이제 공포의 주체에서 혐오의 주체로 이행한다. 동원되는 수단과 방법이 ‘이념의 전쟁’에서 수행할 수 있는 수준과 도를 넘었기 때문이다. 그들 내부의 치졸한 권력 싸움들, 돈으로 묶인 동원된 주체들과 의도된 퍼포먼스, 냉전의 감옥에 갇혀 있는 그들의 신념과 행동의 표현들은 혐오의 감정을 더욱 증폭시킨다.

혐오의 주체로 변해버린 우익은 어떤 점에서 불편한 연민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그들은 평생을 남을 혐오하면서 살았다. 그들은 동시대에 함께 살아온 국민들을 빨갱이, 전라도놈, 밥하는 여자, 외국인새끼들로 혐오하면서 살았다. 혐오 행위는 생존의 본능이자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위협의 전략이다. 혐오의 대상이 되어버린 우익의 자화상은 어떤 점에서는 ‘혐오의 거울’이 반사된 자신의 모습이다. 혐오하는 자의 혐오는 그래서 본질적이며, 역사적 존재의 소멸을 ‘순간을 대하는 히스테리’로 반응한다. 혐오의 행위를 과잉되게 재생산하는 우익의 심리는 역으로 역사적 주체의 소멸에 대한 자기공포심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우리는 역사적 우익의 소멸의 순간을 위해 ‘소돔과 고모라’ 같은 그들의 혐오를 지켜볼 따름이다.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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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25일 신고리 5·6호기 공론조사가 시작되었고, 공사 재개에 대한 찬반 논쟁도 뜨거워지고 있다. 경제성은 신고리 5·6호기 건설의 정당화에 동원되는 가장 강력한 명분이다. 그러나 경제성은 안전성을 전제로 한다. 생명을 잃는다면 돈이 소용없듯이, 안전성이 없으면 경제성도 의미가 없다. 한데 찬반 양측은 신고리 5·6호기의 안전성에 대해 입장이 정반대다. 공사 찬성 측은 한국형 3세대 원자로 APR1400을 채택한 신고리 5·6호기는 안전성 측면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며, 특히 방사성물질의 외부 누출을 막아줄 콘크리트 격납건물은 규모 7.0의 지진에도 견디며 손상 확률은 100만년에 1번 미만이라고 주장한다. 공사 중단 측은 아무리 안전하다 해도 원전의 중대 사고는 여전히 발생 가능하며, 체르노빌과 후쿠시마에서 보듯이 그 결과는 누구도 감당할 수 없는 재앙이라고 주장한다.

8월 28일 오전 울산시 울주군 서생면 한수원 새울원자력본부 입구에서 서생 주민들이 피켓을 들고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의 현장 방문을 막고 있다. 연합뉴스

어떤 주장을 따라야 할까? 먼저, 원전 사고는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잊지 말자. 그렇다면, 신고리 5·6호기의 안전성 예측에 현재 운영 중인 원전의 실태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올해 초, 영광의 한빛 1·2호기, 울진의 한울 1호기, 고리 3호기의 격납건물 내벽철판에서 부식이 발견되더니, 한빛 4호기에선 무려 120여곳에서 부식이 발견되었다. 철판 두께가 60%나 줄어든 곳도 있었다. 또한 격납건물 콘크리트 외벽 58곳을 조사했더니, 57곳에서 깊이 18.7㎝, 높이 1~21㎝의 구멍이 확인되었다. 두께 6㎜의 철판과 120㎝의 콘크리트로 만든 격납건물, 보잉 707 항공기가 날아와 충돌해도 끄떡없고, 사고가 나도 방사성물질의 외부 누출을 막아준다던 최후의 방호벽에 녹이 슬고 구멍이 뚫린 것이다.

하지만 부실의 끝은 여기가 아니었다. 이번엔 한빛 4호기 증기발생기에서 길이 110㎜, 폭 40㎜의 망치형 금속물질과 길이 10.5㎜, 폭 7㎜의 계란형 금속물질 등 이물질 4개가 발견되었다. 이 쇳덩어리들은 20년간 증기발생기 속 두께 1㎜의 수많은 세관들과 충돌하며 세관에 충격을 주었을 것이다. 세관의 파손은 방사성물질의 누출로 이어지는 중대 사고의 원인이다. 이 같은 원전의 현실 앞에서, 신고리 5·6호기의 안전성 주장은 민망할 뿐이다.

원전의 안전을 위협하는 또 다른 심각한 문제는 은폐와 조작으로 점철된 한수원의 원전 운영 행태다. 2012년 고리 1호기 전원소실 은폐, 2013년 신월성 1·2호기와 신고리 1·2·3·4호기의 제어케이블 시험성적 자료 위조, 같은 해 한빛 2호기 증기발생기의 정비서류 조작, 2014년 신고리 1호기 재가동 전 냉각수 누출 사고 은폐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한수원은 이번 한빛 4호기의 금속 이물질도 JTBC의 보도 후에야 시인했다. 한수원의 파행적 운영은 원전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원자력안전위원회의 방만하고 느슨한 감독과 규제도 영향을 미쳤다.

신고리 5·6호기의 안전성을 호언장담하던 원자력 전문가들은 한빛 4호기의 실태에 대해선 침묵한다. 콘크리트 방호벽 내부의 철판부식, 외벽의 구멍, 금속 이물질은 자신들의 전문 영역과 상관없다는 것인가. 그렇다 해도, 이것들 모두 원전의 안전을 치명적으로 위협한다. “사고가 난다고, 자동차나 비행기를 없애지는 않는다. 원전 사고도 마찬가지다.” 원자력 전문가들이 탈원전 주장을 반박할 때 자주 사용하는 말이다. 정말 그렇다면, 자동차와 비행기가 대도시를 오가듯, 수도권을 비롯한 대도시 주변에도 원전을 짓고 가동해야 맞다. 냉각수야 바다 대신 한강, 금강, 낙동강에서 구하면 될 일이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을 그들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원전 사고는 자동차나 비행기 사고와 전혀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 원전의 현실은 원전에서 안전을 구할 수 없다고 말해준다. 원전 말고 안전! 현실이 우리에게 주는 분명하고 상식적인 가르침이다.

<조현철 신부·녹색연합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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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초가 주는 의미는 실로 다양하다. 육상선수 우사인 볼트에게 60초란 100m를 6번 완주할 수 있는 넉넉한 시간이다. 2012년 런던올림픽을 기념하여 맥도날드에서 실시한 ‘도전 60초 서비스’도 있다. 메뉴 주문 후 음식을 전달받기까지 60초를 넘기면 고객에게 상품권을 증정하는 행사였다. 60초 내로 일을 마쳐야만 하는 아르바이트생의 고충은 당연지사였다.

2017년 대선을 앞두고 주요 후보들은 60초 방송 광고를 선보인다. 다음 광고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최선을 다해도 이길 수가 없는 경기. 백 번을 다시 뛰어도 이길 수가 없는 경기. 결승선은 같지만 출발선이 다른 그런 경기가 있습니다.’ 차별을 암시하는 광고에 등장하는 인물은 바로 심상정이다. 출발선의 차이를 좁혀 노동이 당당한 나라를 만들겠다던 심상정은 6.2%의 지지율을 기록한다. 200만명이 넘는 유권자가 심상정을 내일의 대통령으로 선정했다.

정재은 감독의 영화 <태풍태양>은 출발선이 다른 청춘을 위한 영화다. 주인공 소요는 인라인스케이트 초보자이다. 어느 날, 빚더미에 오른 부모는 외아들인 주인공을 놔두고 해외로 사라진다. 고등학교 생활에 심드렁해진 주인공. 그에게 입시공부란 남의 나라의 이야기다. 소요는 공원에서 인라인스케이트를 능숙하게 타는 무리와 마주친다. 그들은 인라인스케이트 세계대회 출전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아스팔트 위에서 시간을 보낸다.

소요는 출발선이 다른 대한민국을 살아가야 하는 10대의 상징이다. 오로지 경쟁에서 이겨야만 학생 대접을 해주는 각박한 사회에서 주인공은 인라인스케이트라는 공간으로 이동한다. 후반부에서 보란 듯이 세계대회에 출전하는 소요의 모습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차라리 외롭지만 넉넉한 표정으로 운동 자체를 즐기는 청춘이었다면 어땠을까.

<태풍태양>의 압권은 듀스의 ‘여름 안에서’가 60초간 흘러나오는 장면이다. 노래와 함께 춤을 추는 주인공과 그가 우상처럼 따르는 두 명의 남녀. 그들은 또래와는 다른 색깔의 자유를 선택한다. 소요는 말한다. ‘여름 해는 길고 우린 한가하다. 우리는 지나간 일을 반성하지도 않았고, 내일을 걱정하지도 않았다.’

이제 심상정의 두 번째 60초를 말할 차례다. 그녀는 JTBC 대선후보토론회에서 손석희 사회자에게 1분 찬스를 요청한다. 모든 후보가 꺼려 하는 동성애에 관한 의견을 피력하기 위해서였다. 그녀는 동성애는 이미 존재하며, 누가 찬성하고 반대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당당하게 주장한다. 모두가 차별 없이 인권과 자유를 누리게 하는 것이 대통령의 역할이라는 부언을 위해서 아낌없이 60초를 소비한다. 물론 심상정은 박빙의 승부를 다투는 유력 대선주자는 아니었다. 그 때문에 득표의 확장성을 고려한 유력 후보자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다양한 소신 발언이 가능했다. 게다가 심상정의 정치노선을 공격하는 게 득표에 유리하지 않다는 여타 후보의 전략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유권자는 그녀만의 올곧은 정치적 소신과 인간적인 태도에 마음을 움직였다.

정치인 심상정은 여야를 막론하고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 2004년 정치부 기자 및 초선 의원이 뽑은 최고의 한국 정치인, 2005년 국회의원 의정활동 평가 우수의원, 2006년 국회 선정 입법 및 정책개발 최우수의원으로 이름을 올린다. 심상정은 강력한 콘텐츠를 가진 인물이다. 그녀는 노동운동으로 다진 넓은 시야와 공부하는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를 장착하고 있다. 통합진보당 분당사태를 제외하고는 비교적 일관성 있는 정치노선을 걸었던 부분도 눈에 띈다.

‘한 번의 성공을 위해 수백 번 넘어지는 친구들에게 이 영화를 바칩니다.’ <태풍태양>의 마지막 자막 문구이다. 방송에서 보여준 심상정의 60초는 어떤 의미였을까. 그녀는 알고 있었다. 승부보다 가치 있는 비주류의 삶이 존재한다는 것을. 그녀는 이해하고 있었다. 자신의 작은 실천이 수백 번 넘어져야만 하는 민중에게 든든한 힘이 된다는 것을. 나는 그녀의 아름답고 빛나던 60초를 기억한다.

이봉호 대중문화평론가 <음란한 인문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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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이 기아자동차 노동자들의 정기상여금과 중식비를 통상임금으로 인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1부(권혁중 부장판사)는 31일 기아차 노조 소속 2만7437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청구소송에서 회사는 노동자들에게 3년치 4224억원의 밀린 임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법원의 결정을 환영한다. 이번 판결은 기업의 왜곡된 임금체계에 개선이 이뤄지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기아자동차 근로자들이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해 달라며 회사를 상대로 낸 소송의 1심 선고가 내려진 31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일부 승소 판결을 받은 기아차 노조원들이 기자회견을 하고있다. 기아자동차 노조 관계자들이 31일 서울중앙지법에서 통상임금 소송 일부승소 판결이 나오자 박수를 치고 있다. 이준헌 기자

통상임금이 문제가 되는 것은 특근과 야근 수당 산정의 기준이기 때문이다. 이번 판결은 상여금과 중식비 등이 정기적이고 일률적·고정적으로 지급되는 임금인 만큼 통상임금에 포함되는 것이 정당하다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근로기준법 제56조는 연장·야간·휴일근로에 통상임금의 50% 이상을 가산해 지급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기아차는 정기상여금 등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는 방법으로 노동자들의 연장·야간·휴일근무 수당을 줄였다. 다만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통상임금과 관련해 회사 경영이 매우 어려운 상태인 경우 통상임금으로 인한 추가 수당 요구는 인정될 수 없다는 등의 이른바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 기준을 마련했다. 재판부는 기아차 노동자들의 요구가 회사에 경영상 중대한 어려움을 주거나 기업 존립을 위태롭게 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재계는 이번 판결이 기업들의 경영난을 가중시킬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일면적인 판단일 뿐이다. 재계는 노동자의 권익향상이 기업의 경쟁력 확보와도 직결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기아차는 “현 경영상황은 판결 금액 자체도 감내하기 어려운 형편”이라며 항소의 뜻을 밝혔다. 항소 여부는 당사자의 권리지만 언제까지 노동자들을 쥐어짜면서 기업을 경영하겠다는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노동자들의 요구는 일한 만큼 규정대로 임금을 달라는 상식적인 것이다. 회사가 노동자에게 잔업이나 특근을 시키지 않으면 정기상여금의 통상임금 인정 여부에 관계없이 추가 비용은 한 푼도 발생하지 않는다.

한국의 평균 노동시간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멕시코에 이어 두 번째로 길다. 1인당 2069시간으로 OECD 평균보다 305시간이나 많다. 일자리 확충으로 경제에 선순환을 일으키기 위해서라도 노동시간 단축이 필요한 상황이다. 통상임금은 초과근로를 방지할 수 있는 유일한 법적 장치이다. 이번 판결이 기업의 그릇된 관행에 쐐기를 박고 노동자가 땀 흘린 만큼 정당한 몫을 인정받는 계기가 돼야 한다. 법원은 향후 노동자들이 제기한 유사 소송에서도 기업의 경영난을 엄격하게 판단해 노동자의 권리가 훼손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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