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게 밴 땀 냄새와 손때는 5년의 세월과 사람들의 흔적이다. 

서울 광화문역 지하 1층 5·6번 출구를 향해가는 길목에 있는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폐지 광화문공동행동(광화문공동행동)’ 농성장. 국가가 책임져야 할 18명의 영정과 살아있는 이들의 숨결로 지켜온 광화문 농성장이 오는 5일 철수를 앞두고 있다.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폐지’는 한국 사회 복지제도의 적폐를 겨눈다. 가난의 책임을 가족에게 지우며 빈곤 사각지대를 낳는 악순환, ‘폐 끼치기 싫어 죽음을 택하게 하는’ 부양의무제. 의학적 기준으로 장애 범주와 유형을 나누고 등급을 매겨 서비스를 차등·제한하여 ‘주어진 만큼만 살라’는 장애등급제. 모욕의 경험, 모순적이게도 국가는 복지제도로 인간다운 삶을 모욕한다.

2012년 8월21일, 광화문공동행동은 제도 폐지를 촉구하며 농성에 돌입했다. 장애인과 가난한 이를 위한다는 제도가 국가행정과 예산에 맞춘 삶을 강요하는 폭력임을 폭로하였다. 권리로써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라는 싸움이었다.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폐지 공동행동 회원들의 농성장 맞은편에 사망한 장애인들의 영정 사진이 놓여 있다. 김영민 기자

그러나 비를 맞으며 집회를 끝내고 광화문역 지하로 이동하는 이들에게 국가는 폭력으로 답했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이 이동하지 못하도록 전기를 끊어 승강기와 에스컬레이터를 정지시켰다. 이동수단이 묶인 장애인들은 계단을 기거나 휠체어와 몸이 들려서 지하로 내려갔다. 기는 이, 이를 보조하는 이, 지켜보는 이의 몸은 땀과 눈물과 비로 범벅되었다. 절규 같은 구호로 분노를 쏟으며 스티로폼과 깔개로 지새던 밤이 지나고, 천막을 치고 서명판이 펼쳐졌다. 

그 후 농성장은 일상이 되었다. 서명 용지를 채우고, 휴지통을 비우고, 사수 일정을 짜고, 1인 시위와 집회도 하고, 연대투쟁도 결합했다. 할 수 있는 건 다 해본 지난 5년은 힘 있는 한 사람이 아니라 저마다의 사연과 얼굴 다른 이들이 몸으로 쓴 연대의 역사다.

정부는 반드시 약속을 지켜라. 정부의 ‘제1차 기초생활보장 종합계획(2018~20년)’의 국민기초생활보장계획은 2018년 10월 주거급여에서 부양의무자 기준이 폐지되고, 의료급여와 생계급여는 노인과 중증장애인이 포함된 가구에 한해서만 2022년까지 단계적 폐지를 밝혔다. 평균 급여액 8만원가량인 주거급여 폐지가 생색내기 정책이 되어선 안되며, 완전 폐지되어야 한다. 

장애등급제는 3차 시범사업 결과를 바탕으로 개편안을 만들어 2019년에 단계적으로 폐지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러나 등급제를 대신하는 ‘종합 판정 도구’도 예산확보 없이는 빛 좋은 개살구다. 2017년 복지부 장애인정책국 예산은 1조9000억원인데, 이는 정부 총예산 대비 0.4%, 복지부 전체 예산 대비 3.4%다. 부족한 예산은 이름만 바꿔 생색내기 한정된 서비스가 되어, 권리의 통제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8월25일 농성장을 찾은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장애등급제 폐지 및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을 통한 중증장애인의 지역사회 독립생활 지원, 탈시설, 지역사회 중심으로 장애인 정책 방향 전환, 부양의무자 기준 단계적 폐지”를 약속했다.

기억해 주시라. 산 자와 죽은 자가 함께 인간의 권리를 위해 싸웠던 광화문농성장, 여러분이 참여했던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폐지 100만 서명운동’을 말이다. 농성장 철수는 투쟁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투쟁의 시작이다.

<이진희 | 장애여성공감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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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미세먼지 감축 대책의 일환으로 지난 6월 한 달 동안 노후 석탄발전소 중 전국 8기(충남 4기)의 가동을 중단했다.

환경부와 국립환경과학원은 지난 7월25일 충남지역 40개 지점에서 미세먼지 농도를 실측한 결과 지난 2년 평균치보다 15.4% 낮아졌으며(26→22㎍/㎥), 대기 모델링 결과 석탄발전소 가동중단에 따른 저감효과는 충남 전역에서 1.1% 낮아지고, 최대 영향지점에서는 3.3% 낮아졌다고 발표했다.예년과 비교해 미세먼지가 15.4% 감소했는데, 발전소 가동중단 효과만 분석하면 1.1% 감소했고, 최대 3.3% 준 곳도 있다는 사실상 개선효과가 거의 없다는 애매한 발표였다. 정부의 미세먼지 대책의 주요 정책이고 내년에도 가동중단이 예정되어 있는데 이번 환경부 발표는 몇 가지 면에서 대단히 유감스럽다. 충남 지역에서 정밀하게 측정하여 믿을 만한 분석 결과를 발표했을 것으로 믿었기에 황당하기까지 하다.

서울환경연합 회원들이 정부의 미세먼지 근본 대책을 촉구하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첫째, 환경부에 정보공개를 청구하여 답변받은 자료에 의하면 겨우 3개 지점을 측정한 결과로 충남 지역의 미세먼지 농도 변화를 산출했다. 더구나 지난 2년 평균치 산출 시 2015년의 경우는 단 한 곳의 측정자료만 활용하였다.

둘째, 더 놀라운 것은 표본 표집이다. 농도 변화를 산출한 세 지점은 각각 천안시 성황동과 세종시 신흥동, 세종시 아름동이다. 즉 보령화력에서 멀리 떨어진(70㎞ 안팎) 곳으로 가동중단 효과를 가장 적게 받는 세 곳을 선정한 셈이다. 이 세 지점이 충남을 대표한다니. 거리별로 더 많은 지점을 선정했어야 한다.

셋째, 농도 변화 산출이 이렇게 엉성하다면 발전소 가동중단 효과를 산출해냈다는 모델링 결과도 신뢰가 가지 않는다. 엉터리 자료를 입력했으면 엉터리 자료가 나왔을 것이므로. 비교기간에는 미세먼지 농도에 영향을 주는 기상 조건도 비슷하고, 중국발 미세먼지의 영향도 적은 시기이며, 다른 오염원의 배출량이 크게 감소했을 리도 없으므로 15.4% 개선효과 대부분은 발전소 가동중단 효과여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예상과 달리 발전소 가동중단 효과는 1.1%에 불과하고 14.3%는 다른 요인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 14.3% 감소 요인을 밝혀야겠지만 환경부는 ‘다른 오염원의 영향 감소, 국지적 기상여건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너무나 막연한 설명을 내놓았다. 모델링이 엉터리임을 자인한 셈이다.

환경부는 다음과 같은 보도자료를 냈어야 정직한 발표가 된다. ‘올해 6월 한 달간 충남 천안과 세종의 세 지점 미세먼지 농도 실측 결과, 지난 2년 평균치보다 15.4% 낮아졌으며, 미세먼지 농도에 영향을 미치는 기상조건이 예년과 비슷했기 때문에 미세먼지 개선효과의 상당 부분은 노후 석탄발전소 가동중단에 의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환경부는 이번 발전소 가동중단과 관련하여 신뢰도가 떨어지는 연구로 ‘미세먼지가 감소했지만 발전소 가동중단 효과는 거의 없다’라는 결론을 내린 셈이다. 국민은 환경부가 환경 가치를 우선시하고 다른 부처들이 지속가능한 정책을 펴도록 영향력을 행사하길 기대한다. 이런 역할을 하기 위해 신뢰도 높은 연구는 필수이다.

<신현기 | 당진환경운동연합 공동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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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이 지난 주말 긴급 의원총회를 열어 MBC 김장겸 사장에 대한 법원의 체포영장 발부를 “언론 탄압”이라고 규정하고, 정기국회 전면 보이콧을 선언했다. 홍준표 대표는 “MBC 사장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걸고 투쟁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당은 4일로 예정된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임명동의안 표결은 물론이고, 오는 12~13일의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 인사청문회 등도 거부하기로 했다. 또 청와대를 항의 방문하고 김 사장 강제 연행에 대비해 의원들이 비상 대기에 들어가기로 했다고 한다. 소가 웃을 일이다. 전임 정권에서 언론 탄압 선봉에 섰던 한국당이 자신의 ‘주구(走狗)’였던 김 사장을 구하기 위해 언론 자유 운운하고, 국회를 볼모로 삼고 있으니 자가당착(自家撞着)이 따로 없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1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긴급 최고위원회의에서 김장겸 MBC 사장에 대한 체포영장이 발부된 것과 관련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 사장에게 체포영장이 발부된 것은 그의 언론 활동 때문이 아니다. MBC의 부당노동행위를 조사하는 노동 당국의 출석 요구에 수차례 불응한 탓이다. 주지하다시피 김 사장은 박근혜 정권을 비판한 자사 기자와 아나운서, 프로듀서 등을 저성과자로 낙인찍고, 스케이트장 청소 등 비제작 부서로 발령냈다. 심지어 이 같은 인사가 법원에서 부당전보로 판결이 나자 해당자를 원직 복귀시킨 뒤 다시 부당전보하는 막가파식 인사를 했다. 그러면서도 공영방송 사장 지위를 이용해 노동 당국의 조사를 거부해 왔다.  

한국당이 김 사장을 감싸는 것은 말이 안된다. 하물며 김 사장에 대한 체포영장 발부를 빌미로 국회 일정을 거부한 것은 국민을 우롱하고 대의민주주의를 부정하는 행위이다. 만에 하나 한국당이 김 사장 건을 계기로 보수 결집을 시도한다면 오히려 고립의 위기에 처하게 될 것이다. 부당노동행위를 저지른 사업주에게 체포영장이 발부됐다는 이유로 국회가 파행돼야 한다면 국회는 1년 내내 문을 열 수 없다. 고용노동부 자료를 보면 근로감독관이 노동관계법 위반으로 발부받은 체포영장 건수가 지난해만 1459건이다. 김 사장도 더 이상 분란을 일으키지 말고 노동부 조사에 성실히 응해야 한다. 떳떳하다면 조사를 피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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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어제 기어코 6차 핵실험을 감행했다. 지난해 9월9일 5차 핵실험 이후 1년 만에, 그리고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모색하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넉달 만에 핵실험을 한 것이다. 북한은 핵실험 3시간 뒤 조선중앙TV를 통해 “대륙간탄도로켓(ICBM) 장착용 수소탄 시험에서 완전 성공했다”고 주장했다. ICBM 시험발사에 이은 북한의 6번째 핵실험 도발로 한반도 정세는 중대 국면을 맞이했다.

북한의 핵실험으로 인한 인공지진 규모는 5.7이다. 폭발위력이 지진규모 5.04(10㏏)였던 5차 핵실험의 5~6배에 달하는 것이다. 진짜 수소탄의 폭발위력 100㏏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그동안의 핵실험 중 폭발력이 가장 강했다. 북한은 ICBM급 ‘화성-14형’에 탑재할 수소탄 핵탄두를 개발했다고 주장하면서 관련 사진까지 공개했다. 이 때문에 당국도 인공지진 규모로 미뤄 수소탄 실험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북한이 수소탄을 완성하지는 못했지만 수소탄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핵 기술을 최고 수준으로 진전시키고 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또한 북한은 핵탄두 소형화 등 핵무장화 마지막 완성 직전 단계에 도달했을 가능성이 높다. 1993년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위협 이후 25년 만에 핵 무장을 완성하기 일보직전까지 온 것이다.

4일 새벽 동해안에서 육군의 지대지 탄도미사일인 현무를 발사하고 있다. 합동참모본부는 이날 "우리 군은 오늘 새벽 일출과 더불어 공군 및 육군 미사일 합동 실사격훈련을 실시했다"며 "북한의 6차 핵실험에 대한 강력한 경고 차원"이라고 밝혔다. 이어 "사격에는 육군의 지대지 탄도미사일인 현무와 공군의 장거리 공대지미사일을 동해상 목표 지점에 사격을 실시해 명중시켰다"고 설명했다. 연합뉴스

그러나 북한의 핵실험은 비핵화·탈핵 흐름에 역행하고 한반도를 위시해 평화를 원하는 전 세계 시민들의 뜻을 거스르는 망동이다. 문재인 정부의 평화적 해결노력도 북한은 철저히 묵살했다. 김정은 정권 하나의 보위만을 위해 전 세계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볼모로 핵도박을 강행하는 북한을 강력히 규탄한다. 북한은 국제사회의 경고를 무시하고 자기 일정표에 따라 움직인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북한은 그동안 핵개발의 명분을 미국의 핵위협에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제 그런 주장은 명분을 잃었다. 북한의 핵개발 수준은 자위적 차원을 넘은 지 오래다. 공세적 도발의 주체가 북한인 것은 어떤 논리로도 덮을 수 없는 사실이며, 피해자인 양 행세하는 것도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혈맹이라는 중국도 핵개발에 극구 반대하고, 북핵에 관한 한 북한을 두둔하는 나라는 한 군데도 없다. 한국 정부마저 등을 돌리면 북한은 기댈 곳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고립무원 속에서 김정은의 광기 어린 핵무기 집착이 계속되는 한 국제사회가 어떤 제재와 압박을 가해도 북한은 항변할 수 없다. 북한은 당장 도발을 중단하고 국제사회가 내민 손을 잡아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가안전보장회의 전체회의를 긴급 소집한 뒤 미국의 전략자산 전개 등 단호한 대응을 천명했다. 한·미 양국 합참의장은 전화 통화를 하고 가장 빠른 시간 내에 군사적 대응 방안을 준비해 시행하기로 합의했다. 북한은 한반도에 전운의 그림자를 드리우는 도발로 어떤 것도 얻어낼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인민의 희생을 강요하며 핵개발에 몰두하는 정권이 오래갈 리 없다. 북한이 핵무장 완성에 이르려면 핵탄두 대기권 재진입 기술 등 마지막 관문을 넘어야 한다. 남은 시간이 길지 않은 만큼 미국, 중국 등 관련 당사국들은 북한의 폭주를 멈출 실효성 있는 카드를 만들어내야 한다.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특단의 대책이 화급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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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지인이 옆 사무실에 출판사를 차렸다. 이름을 ‘바틀비’로 지으려 한단 얘기를 들으니 ‘필경사’에 대한 예전의 궁금증이 떠올랐다. 필경(筆耕)이란 다른 사람의 글을 옮겨 적는 필사를 직업으로 삼는 것을 말한다. <모비딕>으로 유명한 허먼 멜빌의 단편소설 속 등장인물인 바틀비의 직업이 필경사였다.

작중 그의 행동이 특이함에도 작가는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다. 그래서 다양한 해석들이 나오는데 ‘자본주의에 대한 저항’으로 풀어가는 경우도 있고, 작중인물들을 분석하여 사무직이 등장하면서 나타나기 시작한 ‘새로운 병증’에 대해 고찰하는 경우도 있다. 주거문제에 관심이 많은 사람에게는 ‘당시 뉴욕의 월세는 소득에 비해 얼마나 비쌌을까?’라는 궁금증을 품게 한다. 바틀비는 사무실에서 기거하는 홈리스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가 일하던 변호사 사무소에서는 필경사들에게 100단어당 4센트를 지불하였다고 한다. 평균적으로 5초에 1단어를 쓸 수 있다고 가정하면 필사 6시간 정도를 가정하여 하루에 2달러 정도 벌었을 것이다. 한 달 꼬박 일하면 50달러 정도 벌 수 있는 셈이다. 하지만 바틀비는 “나는 그 일을 하지 않는 편을 택하겠어”라면서 창밖의 벽을 보며 백일몽에 빠져드는 것이 일상이었으므로 훨씬 수입이 적었을 것이다.

19세기 중반 뉴욕에서 제일 저렴한 하숙비는 한 달에 15달러 정도였다는 기록이 있다. 필경사로 쉬지 않고 일해서 벌 수 있는 소득의 30%에 해당한다.

소득대비임대료(RIR·Rent to Income Ratio)가 25%를 넘어가면 주거비 부담이 무겁다고 본다. 필경사는 아무리 노력해도 가장 질이 낮은 하숙방도 어렵게 구해야 하는 처지였던 셈이다. 그가 사무실을 거처로 삼는 게 어쩌면 당연하다.

주변을 둘러보면 집이 아닌 사무실, 공장 구석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다. 고시원이나 찜질방 신세를 지는 경우는 너무 흔하다. 찜질방도 이용하기 어려우면 결국 노숙을 하게 된다. 이런 사례들이 늘어나는 이유는 소득에 비해 주거비용이 높기 때문이다. 80만원 남짓 벌어 40만원짜리 고시원에서 지내는 경우도 있다. 사회보장제도나 주거복지라는 개념도 없었던 19세기 뉴욕과 다를 바 없는 우리의 상황이 씁쓸하기만 하다.

몇 년 전부터 이런 주거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민사회와 여러 지자체에서 주목하고 있는 대안이 사회주택이다. 당사자들이 힘을 모아 스스로 주택을 마련해보자는 움직임이다. 지난 10년간 정부가 주거문제 해결에 무관심했던 것에 대한 자구책이다. 여러 주택협동조합이 결성되는 성과도 있었다. 하지만 당사자만의 힘으로 주거문제를 해결하는 게 쉽지 않다. 지자체에서 ‘사회주택조례’를 만들어 지원을 하는 경우도 있으나 좀 더 효과적으로 다듬어 나갈 필요가 있다.

현재 서울주택도시공사에서 공사 차원에서 적극적인 지원을 할 수 있는 사회주택모델을 만들기 위한 연구용역을 진행 중이라고 한다. 자세한 내용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으나, 공공임대 사업에 사회주택 개념을 연계하여 공동체와 수요자가 직접 건설에 참여하고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주택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공동체를 중심으로 건설되고 관리되는 사회주택이 실현되면 현장의 여건과 주민의 목소리를 반영한 도시재생을 이루는 주요 수단이 될 수 있다.

바틀비가 사무실에서 기거하는 걸 알게 된 변호사는 사무실을 옮긴다. 거처를 잃고 부랑자가 된 바틀비는 교도소에서 곡기를 끊고 생을 마감한다. 만약 사회주택에서 서로 소통하고 아옹다옹하기도 하며 생활하였다면 그도 태도를 바꾸고 삶을 이어가지 않았을까? 쉽지 않지만 사회주택을 포기하기 어려운 또 다른 이유이다.

<강세진 | 새로운사회를여는 연구원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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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야당은 빈곤의 악순환에 깊이 빠져들고 있다. 오랜 기간 그 쳇바퀴에서 헤어나오지 못할 것이다. 몰락을 인정하지 않고, 다시 설 것이라는 근거 없는 낙관이 그들의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는 한 그렇다.

망하지 않았다는데, 왜 버림받았는지 반성을 할 턱이 없다. 억한 심정 탓에 남의 흠만 크게 보인다. 반등의 출발점이 성찰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들 앞에 놓인 ‘어둠의 터널’은 끝을 헤아리기 어렵다.

그들은 “모든 게 박근혜 때문”이라고 착각한다. 박 전 대통령을 쫓아내고 친박근혜계 일부를 정리하면 고생 끝이라는 자유한국당의 헛된 기대는 거기서 나온다. 박 전 대통령 출당을 핑계로 호시탐탐 한국당 복귀를 노리는 바른정당 절반의 의원들 생각도 같을 터다. 물론 박 전 대통령과 친박 청산은 필요하지만 그게 다는 아닐 것이다. 박근혜 그늘에서 10년간 단물을 빼먹었던 그들은 국민들에게 국정농단 공범일 뿐이다. 박 전 대통령은 감옥에라도 갔지만 이들은 벌을 받지도, 참회하지도 않았다. 몇 사람 정리해도 여론은 안 돌아선다.

특히 한국당과 민심의 거리는 지구에서 안드로메다만큼이나 먼 것 같다. 지난달 24~25일 국회의원·당협위원장 연석회의에선 맨얼굴이 보였다. “한국당이 부활하기 시작했다”는 홍준표 대표의 궤변에 뒤이어 등장한 홍문표 사무총장은 “돈 없고, 조직 없고, 정권 빼앗겼다”고 했다. 대표는 당이 부활했다는데, 당 살림을 책임지는 사무총장은 파산을 선언한 것이다. 당 홍보책임자는 “홀딱, X됐다”며 무질서 드라마를 코미디로 끝냈다.

요즘 한국당 분위기는 어수선하다. 당 지도부인 최고위원회의 수준은 한참 떨어진다는 말이 들린다. 중앙정치 경험이 없는 원외에 극우성향 인사들로 채워지다 보니, 현실 인식이나 발언 내용이 한심하다는 것이다. 극우보수들로 채워진 혁신위원회가 주도한다는 쇄신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다.

머리가 그런데, 비대한 몸통이 잘 굴러갈 리 없다. MBC를 망가뜨린 김장겸 사장에 대한 체포영장 발부를 언론파괴 공작이라며, 정기국회 보이콧까지 결정한 것은 비웃음을 살 것이다. 명백한 증거가 있는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국정농단을 두고 “집요한 보복”이라고 우기는 것도 마찬가지다. 자신들이 올린 담뱃값을 다시 내리자며 ‘서민감세’를 주장하는 뻔뻔함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현실이 암울하고, 출구가 안 보일수록 빠지기 쉬운 것이 집단최면과 과대망상이다. 이런 병적 징후를 보이는 집단은 현실을 외면한 채 듣고 싶은 말만 듣고, 만나고 싶은 사람만 만난다. 홍 대표가 “연말이면 과거 지지층이 회복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모습이 딱 그렇다. 홍 대표가 극우인 류석춘 연세대 교수를 혁신위원장에 앉힌 것도, 그로부터 듣기 좋은 말만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보수개혁을 내세웠던 바른정당은 비틀거리고 있다. 절반에 이르는 의원들이 박 전 대통령 출당을 고리 삼아 한국당에 돌아갈 것이란 소문으로 어수선했던 터에, 당 대표 금품 수수 논란이 불거졌다. 지난 대선 때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을 데려오기 위한 ‘떴다방’을 만들기 위해 한국당을 떠났던 다수 의원들은 오히려 몰락을 반길지 모른다. 수구보수와 결별하겠다며 몸부림쳤던 일부 의원들이 떠오르지만, 안타깝게도 이게 현실이다.

이런 난장판에서 보수야당들이 내놓은 해법은 고작 통합이다. 박 전 대통령도 정리수순으로 접어들었으니, 통합으로 일어설 일만 남았다고 이들은 생각한다. 하지만 흉한 것들끼리 합치면, 꼴도 보기 싫은 흉물이 될 수 있다. 한국당과 바른정당이 어떤 형태로 합치든 두 배로 보기 싫은 모습이 될 것 같다.

최근 <쫓겨난 사람들>이란 책을 읽으면서 맥락없이 보수야당을 떠올렸다. 미국에서 네번째로 가난한 도시라는 밀워키의 도시 빈민들이 잘못된 주거정책 등의 이유로 살던 집에서 반복적으로 퇴거되는 등 가난과 불평등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세밀하게 담은 책이다. 구조적 모순에 신음하는 책 속 빈민들에게 죄송스럽지만, 이 책을 보수야당과 연관짓게 된 것은 ‘퇴거’라는 말 때문이었다.

책 속 빈민들은 열악한 주거환경으로 쫓겨나기(퇴거)를 반복하는데, 보수야당이 이런 악순환에 빠졌다는 데에 생각이 미친 것이다. 집권당에서 야당이라는 작은 집으로 쫓겨났지만, 곧 극우정당이라는 단칸방으로 밀려나고, 이대로라면 거리에 나앉을 수도 있다는 예감이 들었다.

모든 반등의 출발점은 성찰이다. 왜 이 꼴이 됐는지 생각하고, 잘못에 대한 진지한 용서를 구하라. 보수통합이라는 어설픈 정치공학으로 덮으려 한다면 정치권 보수들의 추락은 끝없을 것이다.

<이용욱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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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가 천천히 구름을 되새김질하고 있는 시골길.

감자밭 감자가 시골 소년의 알통처럼

소리 없이 굵어가고,

명태 꼬리 두어 개 삐죽이 내민 짐 보퉁이를

시골 여인이 머리에 이고 가는 길.

 

길가 풀섶 둥지에서는 들새가

제 체온으로 데울 만큼의 알을 낳아

따스히 품고 있다.

달콤한 햇볕 아래서

보리앵두는 빨갛게 익어간다.

 

일부러 해찰을 하듯 날아다니며

나비는 풀꽃마다 꽃가루를 옮기고,

소나기를 머금은 구름은 머얼리서

느리게 천둥소리 피워 올린다.

 

신발을 벗어버린 내 맨발은

붉은 황토흙이다.

맨발 아래서 질긴 질경이풀처럼

생명 있는 것들이 꿈틀거린다.

 

내 뜨거운 손을 저무는 해에 얹으면

해 그림자 길게 깔리는 시골길

길 따라 내 삶도 천천히 익어간다.

 -이준관(1949~)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시에서 햇볕과 풀냄새와 벌레 소리 익어가는 냄새가 난다. 종아리 걷고 고무신 신고 걸으면 다리에서 산으로 들로 쏘다니던 어린 시절이 깨어날 것 같다. 그때 다니던 길들이 핏줄 따라 세차게 돌 것 같다. 하도 많이 다녀서 지도가 새겨진 발바닥은 어느 길로 가야 하는지 다 알고 있으리라.

어린 시절 다니던 길은 이제는 거의 바뀌었거나 없어졌다. 황토색이 눈을 씻어주고 풀냄새가 허파와 내장을 씻어주는 흙길. 들숨 날숨 한번에 몸속을 여러 번 돌고 나가는 오솔길. 지금은 기억에 남아 겨우 연명하고 있다. 그래서 이 시골길의 아름다움은 생생할수록 안타깝다.

<김기택 |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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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벼락처럼 떨어지자 여름이 게 눈 감추듯 사라져버렸습니다. 흩날리는 봄꽃 속에 새 정부가 출범한 지 어느덧 4개월. 그동안 새 정부는 어려움 속에서도 국민들이 원하는 많은 일을 추진해왔습니다. 불철주야 정부를 진두지휘하는 대통령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일부 과학기술 관련 인사는 실패였습니다. 박기영 교수와 박성진 교수의 고위직 지명은 과학기술자들에게 큰 실망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이에 대한 청와대의 해명이 나올 때마다 실망은 좌절로 바뀌고 있습니다. 이번 인사 실패가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과학기술에 대한 새 정부의 철학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마저 듭니다.

과학기술은 누적적으로 발전합니다. 어제의 실험결과를 바탕으로 오늘의 실험을 이어가고, 다른 연구자의 결과를 바탕으로 다음 연구를 계획합니다. 지뢰밭을 지나갈 때, 앞사람이 안전하다고 꽂아놓은 표시를 뒷사람이 밟고 가는 것과 비슷합니다. 빨리 가기 위해서 거짓표시를 꽂는 사람에게 관용은 있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아무리 공(功)이 크더라도 연구결과 조작에 연루된 사람은 과학계에 발붙일 수 없습니다. 과학계에서 황우석 교수는 이미 존재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창조론 논란에 이어 뉴라이트 사관 문제 등 '이념논란'이 불거진 박성진 초대 중소기업벤처부장관 후보자가 8월 31일 오후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논란 해명 기자회견에서 질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혹시라도 청와대에서 ‘누구나 과(過)는 있게 마련이고 일만 잘하면 그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면, 그는 과학의 본질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조작은 과학에서 조금의 관용도 받을 수 없는 범죄입니다. 과학기술계는 구호를 앞세우고 필요하다면 거짓도 서슴지 않는 불도저형 리더십보다 과학을 제대로 아는 정직하고 소통하는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과학은 의심에서 출발합니다. 의심에 대해 가설을 세우고 물질적 증거를 모아 결론을 내리는 것이 과학입니다. 태양이 정말 돌고 있을까 의심했던 갈릴레오는 별의 운동 자료를 모으고, 이를 바탕으로 지구가 돈다는 결론에 이릅니다. 미리 결론을 내려놓고 그것에 결과를 억지로 끼워 맞추는 것은 과학이 아닙니다.

창조과학은 성경에 있는 문자 그대로의 내용을 입증하기 위해 과학을 끼워 맞춥니다. 이것만으로도 이미 과학은 아닙니다. 과학으로 신을 입증하려는 것이 제대로 된 기독교신앙인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 내용은 조악하다 못해 황당한 수준이라 여기서 논할 가치조차 없습니다. 문제는 이들이 창조과학을 과학이라 주장하며 그 세를 넓히기 위해 조직적으로 행동해왔다는 점입니다. 2012년 이들의 청원으로 교과서에서 진화론이 빠질 뻔했던 사건이 있었습니다. 다행히 생물학계의 개입으로 문제는 해결되었지만, 이 사건이 과학저널 네이처에 소개되며 한국이 국제과학계의 조롱거리가 되었습니다.

박성진 후보는 한국창조과학회의 이사를 맡았던 핵심인물입니다. 청와대가 그를 비호하며 내놓은 해명은 “개인이 가진 종교는 공직자로 임명하는 기준이 될 수 없다. 신앙은 검증 대상이 아니다”입니다. 하지만 창조과학은 종교가 아니라 과학의 문제입니다. 저는 박성진 교수가 ‘신에 의한 세상의 창조’를 ‘믿어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신에 의한 세상의 창조’를 ‘과학’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역사 속에서 사이비과학의 폐해를 수없이 보아왔습니다. 20세기 초 구소련에서는 과학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트로핌 리센코가 스탈린의 총애로 과학계 지도자가 됩니다. 그는 반(反) 마르크스주의 이론이라며 유전자의 존재조차 믿지 않습니다. 결국 그의 엉터리 정책으로 소련의 농업은 붕괴합니다. 최근 미국에서는 일부 사이비과학 추종자들이 백신접종을 거부하여, 박멸되었던 홍역이 귀환하는 비극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창조과학과 같은 사이비과학은 과학에 대한 심각한 위협입니다. 미국 국립과학원은 창조과학은 과학이 아니라고 못 박았습니다. 그런데 창조과학의 핵심인물이었던 사람이 과학기술 관련 부처의 장이 된다면 이것은 그 자체로 코미디입니다. 저는 제가 지지하는 정부가 세계적인 웃음거리가 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김상욱 | 부산대 교수·물리교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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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권의 무너진 ‘적산(敵産)가옥’ 위에서 출발한 문재인 정부. 몇 달이 지났을 뿐인데 긴 항해를 거친 듯하다. 개인적으로 나는 ‘더 이상 잘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자진사퇴를 불러온 몇몇 인사의 경우, ‘진보 지도층’의 생각지 못한 면모를 보았을 뿐, 완벽한 정부는 없다.

특히 대통령 개인의 인간적 매력과 가치관이 현 정권의 엔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원전 사안에 대한 입장은 놀라울 정도다. 세월호, 5·18,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등 고통받는 이들을 대하는 그의 위로와 공감 능력은 ‘상처받은 치유자(wounded healer)로서 최고 통치자’라는 모델을 제시했다. 우리는 알고 있고, 잊을 수 없다. 그 역시 사랑하는 친구를 잃었다는 것을.

‘경남도민일보’는 문재인 정부의 3중고를 ‘야당, 추미애, 탁현민’으로 꼽았었다(7월11일자, 인터넷판). 국민의당이 대선 당시 제보 조작 사건을 이유미씨의 단독 범행이라고 주장하자 추미애 대표가 “머리 자르기”라고 발언, 막말 논란을 겪을 때다.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문재인 정부의 ‘2중고’가 있다면, ‘적폐(특히 MB세력)’의 효과적 정산(正算)과 열렬한 지지층인 이른바 ‘문빠’로 인한 중간 지지층 이탈이다.

하지만 전자는 조사, 처벌 대상이므로 골칫거리가 아니라 국정 그 자체다. 문제는 후자다. 이들의 집단행동은 ‘홍위병’으로 오해(?)받을 만큼 과격하고 이해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개혁세력이 이들로 인해 언로가 막히고 자기 검열에 갇힌다면? ‘문고리 3인방’은 어디에나 있을 수 있다. 나부터 ‘문재인 팬덤’ 때문에 두려움과 피로를 느낀다. 되도록 현실 정치에 관한 글을 쓰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나 이번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에 대한 청와대 청원 사건은 도저히 지나칠 수 없다.

그간의 상황을 정리해보자. 정현백 장관은 인사청문회 당시 탁현민 행정관에 대한 입장을 요구받았고 “그의 여성관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며, 대통령에게 경질을 건의하겠다”고 답변했다. 청문회를 주도했던 김삼화 국민의당 의원은 오랫동안 인권변호사로 활동해온 전문가다. 8월22일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은 국회운영위원회에서 “대통령의 인사권이 존중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정 장관께서는 (탁 행정관에 대해) 듣는 소리를 충분히 잘 전달해 주셨다”고 발언했다. 28일, 정현백 장관은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사퇴 의견을 전달했지만, 무력했다”고 말했다.

이후 청와대 홈페이지의 ‘국민청원 및 제안’ 게시판에는 “정 장관이 대통령의 인사권에 개입하고 자신의 권한인 양 호도하며 (중략) 망동을 거듭하고 있다, 탁 행정관을 흔들지 말라”면서 장관 경질을 요구하는 청원이 올라왔다. 이 글은 ‘베스트청원’으로 분류되었다.

일부 언론은 “기이한 청원”(‘허핑턴포스트코리아’), “부적절한 처신이나 책임을 이유로 장관 사퇴를 요구할 수는 있어도 논란의 인물 해임을 건의한다는 이유로 장관을 경질하자는 국민 청원은 드문 일이다. 장관의 ‘충언’에 ‘재갈’을 물리겠다는 심사가 아니라면 이해하기 어렵다”고 논평했다(서울신문 사설).

두말할 것도 없이, 정현백 장관은 여성가족부 수장으로서 당연한 업무를 수행했다. 국가인권위원회와 여성가족부는 물론이고, 한시적이었지만 2005년 출범했던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와 같은 부처는 정부(GO) 내부의 비정부기구(NGO) 역할을 위해 만들어진 기관이다. 국가인권위원회와 여성가족부는 본래 임무가 청와대를 포함, 국정 전반의 인권과 성 인지(性 認知) 의식을 감시, 교육하는 것이다. 준(準)정부기관(Semi-GO)으로도 불린다. 이들이 다른 부처와 갈등을 빚는 것은 필연이며, 이는 일을 잘하고 있다는 증거다.

장관이 국민과 야당의 입장을 대통령에게 전달한 것이 해임 사유라니…. 그런 상황은 발생하지 않겠지만, 문제는 이번 청원의 발상이다. 나는 ‘이니 팬덤’과 ‘팩트’, 상식, 원칙을 놓고 논쟁할 능력이 없다. ‘사랑’은 토론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연은 다소 복잡하지만 대통령의 외모를 문제 삼은 ‘한겨레21’ 표지 사건,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반찬 부실”에 대한 문자, 트위터 폭탄 등 그동안 온갖 웃지 못할 황망한 사건들이 줄을 이었다. 이들은 ‘우리 이니’에 대해 조금이라도 부정적인 언급을 하는 이들에게 인신공격과 “자유한국당 프락치”라는 식의 비난을 퍼붓는다(아무리 ‘돼지발정제’를 모의했던 이가 대표인 정당이라고 해도, 자유한국당은 제1야당이며 그들을 지지하는 국민이 있다).

한국 사회에 팬덤 문화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1990년대. 서태지, H.O.T, 젝스키스의 팬들은 스타의 이미지가 나빠지지 않도록 함께 불우이웃을 돕는다든가 공연장을 청소했다. 그러나 지금 ‘이니 팬덤’은, 같은 지지자들에게도 욕설을 퍼붓는다. 근본적인 문제는 정치인에 대한 무조건적 지지다. 국가 운영에 이처럼 위험한 사태는 없다. 다른 사회에서는 ‘국론분열’을 넘어 내전으로 확대되기도 한다.

나를 포함해서 ‘문빠’는 지난 ‘10년 정권’에 절망한 이들이다. 동시에 이 현상은 출구 없는 글로벌 자본주의의 폭주가 두려운, 마음 둘 곳 없는 이들의 집단 광기다. 현 정부의 지지율에는 이처럼 슬픈 광기가 포함되어 있다. 그렇다면 서로 ‘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어야지, 자기 불안을 같은 처지의 사람들에게 표출하는 ‘~빠’ 문화는 함께 살아갈 방도가 아니다. 나는 이 어처구니없는 청원 앞에서 분노보다 우리가 많이 초라하다고 느낀다.

<정희진 | 여성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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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기 좋은 날씨다. 하늘도 파랗고 날씨도 제법 선선해졌다. 모처럼 자전거를 꺼내 한강변을 달린다. 페달을 밟으며 상쾌한 맞바람을 즐기는 것도 잠시, 곧 쩌렁쩌렁한 트로트 음악이 귀를 때린다. 자전거에 달린 스피커로 자신의 애청곡을 불특정 다수와 공유하는 아저씨 라이더들 되시겠다. 등산하다가 스피커족을 만나면 더 난감하다. 당사자에게는 아름다운 음악일지 모르겠으나, 원치 않는 청중으로 포획된 주변 사람들은 이 소음으로부터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음악소리가 사라질 때까지 앉아서 쉬든지, 아니면 빠른 발걸음으로 앞서 나가는 수밖에 없다. 스피커를 뺏어 내동댕이치는 방법도 있지만 다른 종류의 더 큰 소음이 만들어질 수도 있기 때문에 효율적이지 않다.

누구에게는 음악이 누구에게는 소음이기 때문에 갈등이 생기고 시비가 생긴다. 층간소음 때문에 살인까지 벌어지는 현실이다. 사람들이 특별히 민감해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소음의 편재’로 인해 소음에 대한 사회적 저항성이 더 낮아졌다고 보는 편이 옳다. 지하철을 타면 심심찮게 야구중계나 게임 효과음이 들리고, 택시를 타면 한꺼번에 두세 개 틀어놓은 내비게이터 안내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대학교 앞에서는 예수 믿고 천국 가라는 소리가 휴대용 앰프를 통해 우렁차게 울려대고, 집 앞 골목에서는 신선한 과일이 왔다거나 안 쓰는 전자제품을 수거한다는 무한반복 녹음 음성이 들려온다. 늦은 저녁 식당에 가면 술기운 탓에 음량 조절이 안되는 손님들이 홀을 채우고 있고, 서둘러 문 밖으로 나가면 헤드셋을 장착한 내레이터 모델들이 새로 나온 화장품을 무료로 써보시라고 외치고 있다.

소음이 개인적 불쾌감의 수준을 넘어 사회적 생산성을 저해하는 이유는 정상적인 의사소통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소음은 당연히 커뮤니케이션을 방해하고, 사람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잉여성’을 강화한다. 정보이론의 정전으로 불리는 클로드 섀넌의 <커뮤니케이션의 수학적 이론> 내용의 일부이다. 전화할 때 주위가 시끄럽거나(환경적 잡음) 통신상태가 불량해서(기계적 잡음)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면 같은 말을 반복함으로써 의미 전달을 확인할 수 있고, 딴생각에 잠겨 강의를 건성으로 듣는(심리적 잡음) 학생에게는 소리를 질러 주의를 환기시킨 다음 다시 정상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할 수 있다. 거꾸로 생각하자면,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지만) ‘완벽한’ 커뮤니케이션 상황이라면 잉여성은 필요하지 않다. 일상적 대화에서도 잉여성은 50% 정도라고 한다. 시끄러운 술집에서 “뭐라고?”와 “못 들었어?”를 반복하는 이들의 대화에서는 잉여성이 80%쯤 될지도 모를 일이다. 개인 간의 대화만이 아니다. 집단이나 조직 간의 커뮤니케이션에도 소음은 존재하고, 이를 이겨내기 위해서는 집단적 잉여성이 작동되어야 한다.

현대사회의 일상에서 소음으로부터 해방되는 일은 불가능해 보인다. 휴가 때 조용한 산사나 숲을 찾아 단 며칠이라도 생소한 적막의 안온함을 느껴보는 것이 고작이다. 아니면 소음으로 소음을 이기는 방법이 있다. 소위 ‘백색소음’이라 불리는 편안한 소음에 귀를 맡기는 것이다. 파도 소리, 바람 소리, 시냇물 흐르는 소리, 낙엽 밟는 소리 등이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심리적 안정을 위한 갖가지 소음들, 이를테면 귀를 후비는 소리, 도란도란 잡담 소리, 달그락거리는 소리 등을 모아 녹음한 일명 ‘ASMR’이 인기를 모으기도 했다. 종일 불쾌한 소음에 시달린 나의 귀를 위해 잠자리에 누워 누군가의 귀 후비는 소리를 듣는 현실이야말로 소음 편재의 시대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개인의 정신적·육체적 건강을 위해서, 그리고 공동체의 건전한 생산성을 위해서라도 도시의 일상에서 소음이 줄어들기를 기대한다. 아마도 적절한 법적, 제도적 보완도 필요할 것이다. 건축 승인을 위한 기준이 65㏈(데시벨)이지만 실제로는 80㏈이 넘는 아파트가 여전히 있다니 말이다. 하지만 그보다는 모든 소리가 청각 공해일 수 있다는 공감대부터 형성되기를 기대한다. 남들보다 소리가 커야 한다는 강박이 없어지기를 기대한다.

르네상스 이후 글과 책, 그리고 문자적 이성이 인간 생활을 지배했다면, 21세기에는 영상과 소리, 그리고 직관적 통찰이 그 자리를 대신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교과서 대신 테드(TED) 강의를, 백과사전 대신 유튜브를 보고, 음성비서 기기들을 집에 들여놓기 시작했다. 차를 타면 내비게이터 소리를 듣는 것이 어색하지 않듯이, 곧 가정 내에서는 ‘아마존 알렉사’나 ‘구글 어시스턴트’의 목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점점 더 시끄러워질 것이다. 귀가 쉴 시간은 점점 줄어들 것이다. 각자 조금씩 애쓰지 않는다면 우리의 집단적 불쾌지수는, 그리고 커뮤니케이션 ‘잉여성’ 지수는 쭉쭉 올라가 하늘을 찌를지도 모를 일이다.

<윤태진 |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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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책은 지식을 전달했다. 잘 정제된 역사적 시공간 탐색이나 어떤 특정한 사회현상을 계열화, 이론화하여 보여주었다. 이러한 지식 전달행위는 언어의 힘을 과시하는 일이기도 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삶의 중요한 작동원리를 언어화시켜내는 것, 이것이 인문학적 지식행위의 핵심이었다.

그런 일은 오랜 노력과 체계적 연습을 통해 획득될 수 있고 그 노력의 대부분은 관련 지식의 습득과 조립이었다. 자기 안에 책을 쌓아 숲을 이뤄야 했다. 돈을 축적해 부자가 되는 것과는 좀 다른, 지식을 축적함으로써 인간은 지식인이 될 수 있었다. 다양한 앎의 부호들이 아름답게 네트워킹된 정신세계는 한 개인의 큰 자산이었다. 반딧불이들이 사방에서 켜져 어둠을 뚫고 길을 만들어내는, 축적된 지식을 도구로 삼아 어둠을 항해하는 인간의 내면세계는 고독한 오디세이 그 자체였다.

낡은 이야기가 되겠지만 책 혹은 인문학의 아우라가 형성된 지점이 이곳이다. 지식의 축적과 축적된 지식들이 상호 연마되고 마모되어 세련된 형식이 탄생했다.

그리고 그 형식은 즐김과 유희의 대상이었다. 때론 공유와 계몽의 도구였고 말이다. 한 계층이 지식을 독점하던 때도 있었고, 계층 상승열이 지식욕과 맞물려 지식 블록들의 세 대결을 연출하기도 했다. 그사이에 사회는 발전을 거듭했다. 독서는 자기계발의 날카로운 도구가 되었다.

그런데 이런 지식 축적의 모델은 유비쿼터스 시대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다. 이제 인간들은 외장하드가 딸린 컴퓨터와 비슷하다. 손만 뻗으면 지식이 있어 쌓아둘 필요가 없다. 오류가능성도 이편이 오히려 낮다.

자신의 축적된 지식체계만을 내세우는 인간은 꼰대가 되어버렸다. 지식의 축적은 이제 전혀 세련된 형식이 아니다. 아는 척이 촌스러운 일이 된 시대에 지식인은 추구할 모델로서의 매력을 상실했다.

이런 시대에 떠오르는 새로운 가치가 있으니 바로 경험이다. 이제 책은 지식을 전달하는 매체로서 존재하는 시간보다, 경험을 제공하는 매체로 존재하는 시간이 더 많아진 듯하다. 책이 제공하는 경험이란 무엇인가? 극단적으로 말하면 북스테이다. 머물다 가는 공간이다. 사람들은 책을 읽고 지식을 축적하기보단, 그 책에 집약된 특정 시기의 트렌드나 심리코드를 경험함으로써 소비한다. 바로 이 차이다.

그런 책들이 모인 서가는 지식의 창고가 아니라 경험의 전시장이고 추억의 앨범이다. 좀 더 새롭고 진귀한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콘텐츠는 조직되고 꾸며진다. 편집과 마케팅도 그런 기조 위에서 전개된다. 다양한 저자와 독자의 만남도 그 경험의 충일감을 높이기 위한 것이고 대중은 이것에 쉽게 빨려든다. 예전엔 축적이 우선인 장르와 경험이 우선인 장르가 나뉘어 있었지만 이제 그 경계는 흐릿해졌다. 나를 만나지 못하면 무식해지리라는 조바심은 책의 표정이 될 수 없게 되었다. 거의 모든 책이 나랑 한번 사귀어보자고 독자를 유혹한다.

지식의 축적과 새로운 이론은 과학 영역에서 이뤄진다. 이론을 만들어낼 때 축적도 의미가 있는 법이다.

인문학도 끊임없이 질문하고 새로운 이론을 만들어내지만 그 나물에 그 밥 아니냐는 매몰찬 시선 속에서 곧 사그라든다. 다만 질문과 문제제기만은 유효하다. 얼마나 기존 정보에서 문제로 잘 모아내는가, 혹은 문제가 아닌 것을 문제화시키는가에만 대중은 민감하게 반응한다. 가치연쇄의 재구축은 활발히 진행된다는 뜻이다.

물론 지식의 축적이 그 동력은 아니다. 문제제기와 행동이 전면에 나서고, 무한 전파력을 갖춘 네트워크서비스에서의 동의와 확산이 뒤따른다. 지식은 이러한 곳곳의 게릴라전에 동원되는 용병의 신세다. 세속 도덕의 체계라는 본대를 때리지는 않는다.

거칠지만 이 정도가 요즘 내가 느끼는 지식과 경험의 새로운 방정식이다. 이 틈바구니 속에서 책을 기획하고 펴내는 일은 격렬하게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다. 지식의 축적이 옳고 경험의 소비가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기획의 유동성이 너무 커졌고 보란 듯이 출판업을 하기엔 기회비용 또한 만만치 않아진 시대에 대한 푸념이다.

경험 제공을 위해 공감 발견력이 중요해졌으니 출판이 서비스업이 돼버렸다는 느낌도 있다. 이것이 불만스럽기만 한 것은 아니다. 위기와 변화는 흥미롭고 흥분되는 일이다. 다만 어디로 흘러갈지 알 수 없을 뿐. 아 비선형적이고 공시적인, 어지러운 경험의 시대여, 호모 익스피어런스들이여!

<강성민 | 글항아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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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인기 예능프로그램 MBC <라디오스타>에 출연한 방송인 김구라씨와 김생민씨를 놓고 ‘서민 비하’ 논란이 뜨겁다. 최근 ‘생활비 절약’을 주제로 한 팟캐스트를 해 인기를 얻고 있는 김생민씨(44)에 대해 김구라씨(47)가 ‘짠돌이’ ‘자린고비’라는 등의 표현으로 비하했다는 비판이 시청자들 사이에서 들끓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가 된 방송은 지난달 30일 방영된 ‘염전에서 욜로를 외치다’ 편이었다. 이날 패널로 초대된 김생민씨 등은 실생활에서의 돈 씀씀이와 절약 습관을 얘기했는데, 김구라씨가 이를 직격한 것이 화근이 됐다. 그는 “짜다고 철든 건 아니다” “생활습관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김생민씨를 비꼬기도 했다.

방영 이후 SNS는 뜨겁게 달아올랐다. 한 누리꾼은 트위터에 “김생민씨의 일상이 우리 일상과 흡사한데 그 일상을 조롱거리로 삼는 것이 화가 났다. 매일매일 일찍 일어나 출근하고 그걸로 얻은 수입을 쪼개서 지출하고 저축하는 게 뭐가 웃긴가?”라고 말했다. 다른 누리꾼은 “ ‘비싼 커피 마시지 마라’ ‘택시 타지 말라’고 잔소리를 하시면서 한 푼 두 푼 모으시는 우리 엄마가 생각났다”며 “김구라씨가 조롱한 건 나와 내 부모, 내 친구들”이라고 했다. 김씨의 발언이 자신의 실제 생활을 폄훼했다고 느낀 사람들이 분노를 터뜨린 것이다.

제작진을 비롯해 당사자인 두 사람이 모두 사과를 하고 해명을 했지만 쉽사리 화는 삭지 않았다. 시청자들은 김구라씨의 ‘라디오스타 퇴출 요구’ 인터넷 청원까지 했고, 3만명이 넘는 누리꾼이 서명에 나섰다.

논란이 점점 커져 김구라씨에 대한 감정싸움으로 치닫기도 했지만 일부에선 제도와 사회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게 나왔다. 트위터리안 ‘rbe****’은 “근본적으로 너의 인생이 안 풀리는 게 커피값을 안 아껴서가 아니라 낮은 최저임금과 저질 노동문화 때문이라는 말도 해야 한다”고 적었다. ‘guin****’은 “사회가 성실하게 하루를 채워나가는 사람들에게 더 높은 평가를 해줬으면 좋겠다. 근면성실한 삶을 사는 서민이 존중받는 세상이 오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홍두 기자 ph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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