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지난 글에 이어 다시 한번 2030년을 거론하는 데에 거창한 이유는 없다. SF 작가인 제임스 호건이 <가니메데의 친절한 거인>을 집필했던 1978년에 2030년은 충분히 먼 미래였을 것이다. 하지만 2017년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2030년은 흐릿하게나마 예측해 볼 수 있는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미래다. 굳이 소설가의 상상력에 의존하지 않고 현재의 추세를 외삽(外揷)하는 것만으로도 그 대강의 모습을 스케치해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한국에서는 지난 5월에 있었던 대선을 전후로 ‘제4차 산업혁명’ 열병을 앓고 있다. 각계각층에서 ‘제4차 산업혁명과 ○○○’라는 제목의 워크숍, 심포지엄, 강연회 등이 유행이다.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가져올 사회적 파급력에 대한 우려는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예를 들어 스탠퍼드대학교는 2014년에 향후 100년간에 걸쳐 인공지능이 인간의 삶에 미치는 복잡다단한 영향에 대해 탐구하겠다는 장기적인 목표를 내걸고 ‘인공지능 100년 연구’(AI100)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 프로젝트에는 컴퓨터과학 전공자뿐 아니라 인지과학, 철학, 법학, 경영학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여해 5년에 한 번씩 인공지능의 현 단계를 분석하는 연구 패널을 구성하기로 하였다. 2016년 9월에 출간된 보고서 <2030년, 인공지능과 인간의 삶>은 AI100이 내놓은 첫 성과물이다(보고서 전문은 ai100.stanford.edu에서 볼 수 있다).‘한국에서는 왜 이런 일을 하지 않는가’라는 한탄을 늘어놓을 필요는 없다. 그 내용은 이미 한국에도 널리 알려진 것들이 대부분이다. 연구 패널의 위원들은 인공지능의 파급력을 교통, 가정용 로봇, 보건의료, 교육, 저소득층 문제, 공공안전, 고용과 실업, 오락이라는 8개 분야로 나누어 설명한다. 우리도 지난 몇 년 사이에 수없이 들어본 자율주행차, 사물인터넷을 이용한 가정용 기기의 상호연결, 의료용 로봇과 개인 모니터링 장치, 컴퓨터 알고리즘을 활용한 감시의 강화, 인공지능의 도입과 실업 문제 등이 그것이다. 50년, 100년 후의 미래와는 달리 15년 후의 미래는 현재 이미 나타나기 시작한 변화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AI100 보고서의 특징은 테크놀로지가 눈부시게 발전할 미래를 예측하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패널 위원들은 인공지능 기술이 “갑작스럽고 예기치 않은 도약”을 통해서가 아니라 “현존하는 기술에 바탕을 두고 점진적으로 발전”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인류 역사상 일어난 기술 변화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일례로 산업혁명의 원형인 제1차 산업혁명은 증기기관과 방적기의 도입으로 폭발적으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 짧게는 수십 년에서 길게는 한 세기에 걸쳐 서서히 일어났다. 인공지능 역시 도입 과정에서 나타나는 수많은 기술적, 사회적, 법적, 윤리적 문제를 해결해 나가면서 서서히 우리 삶을 변화시킬 것이다. 따라서 최근 한국 사회를 휩쓸고 있는 산업 ‘혁명’ 담론이 비유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인공지능의 확산은 이를 둘러싼 사회의 꼼꼼한 변화를 요구한다. 자율주행차의 확산과 그에 따라 예상되는 다양한 문제들은 이를 잘 보여준다. ‘자율주행차 전방에 갑자기 사람들이 나타났을 때 인공지능이 어떤 판단을 하게 해야 하는가’라는 널리 알려진 인공지능의 윤리적 딜레마가 문제의 전부는 아니다. 자율주행차의 확산으로 세수가 줄어들 지방정부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교통사고의 감소로 기대수명이 유의미하게 늘었을 경우 증가할 의료보험 및 연금 부담은 어떻게 충당해야 하는가? 대규모 실업이 예상되는 택시·대리운전 기사들의 문제는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테크놀로지의 변화는 필연적으로 자원 배분의 문제를 야기하며, 이는 결국 정치적인 해결책을 요하게 된다. 이러한 문제들을 매끄럽게 해결하지 못한다면, 인공지능 기술은 사회적 역풍에 직면할 것이며 기술 발전의 속도 역시 심각하게 저하될 것이다.

인공지능 기술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새로운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AI100 보고서에 제시된 여러 문제들은 이미 1980년대에 개인용 컴퓨터가 확산되는 과정에서, 1990년대에 유전자변형식품을 도입하는 과정에서, 나아가 2000년대에 나노기술을 둘러싼 논란 속에서 여러 차례 논의되었던 안건들과 동일한 구조를 갖고 있다. 한국에서도 2003년부터 과학기술기본법에 근거하여 새로운 ‘이머징 테크놀로지’가 “국민생활에 미치는 영향 및 부작용”을 분석하는 기술영향평가를 실시하도록 되어 있고, 그동안 나노기술, 줄기세포, 기후변화 대응, 빅데이터, 3D 프린팅, 인공지능 등에 대한 보고서가 제출되어 있다. 소위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대응은 바퀴를 새로 발명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갖춰진 제도를 꼼꼼하게 운용하는 데서 찾아야 한다.

그렇다면 기존 제도를 효과적으로 운용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2030년, 인공지능과 인간의 삶>의 정책 권고는 이러한 면에서 독특함을 지니고 있다. 위원들이 제시한 가장 중요한 권고사항은 다음과 같다. “정부 조직 내에 인공지능에 대한 기술적 전문성을 축적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하라. 효과적인 거버넌스를 위해서는 인공지능 기술, 정책 목표, 사회적 가치 사이의 상호작용을 이해하고 분석할 수 있는 전문가가 필요하다.” 보고서에는 “정부 조직”이라고 표현했지만, 통합적 이해와 분석 능력을 지닌 전문가의 필요성은 정부에만 강조될 문제가 아니다. 인공지능이 인류 복지 향상에 효과적으로 이용되기 위해서는 과학 및 공학 연구자와 함께, 그들이 만들어낸 성과를 사회적 가치와 조화시킬 수 있는 전 사회적 역량을 함께 키워나가야 할 것이다.

<최형섭 과학잡지 ‘에피’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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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레시피를 검색하다가 우연히 비거니즘(veganism·채식주의) 사이트에 링크가 되었다. 요리법에 눈이 가기 전에 모니터 화면의 한쪽을 볼 수밖에 없었는데, 스톱워치가 돌아가는 것처럼 숫자들이 정신없이 바뀌고 있는 게 보였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먹거리를 위해 그 순간에도 죽어가고 있는, 정확히 말하면 도살되고 있는 소와 돼지와 닭들의 숫자였다. 그 통계가 세계적인 것인지, 아니면 그 사이트가 운영되고 있는 나라 단독의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너무 놀라서 그만 그 사이트를 닫아버렸기 때문이다. 실시간으로 도살되고 있는 가축들의 숫자는 그야말로 놀라웠다. 순식간에 뼈와 가죽의 무덤이 쌓이고, 또 쌓이는 듯했다. 간혹 도로 위에서 만나게 되곤 하는 가축 운반용 트럭들이 떠올랐다. 마치 짐짝처럼 실려있는 돼지들, 그리고 닭들을 바라보는 건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슬며시 눈길을 피하는 일뿐인데, 여전히 육식을 애호하는 나로서는 고통스러워하는 것 말고 달리 무슨 변명이 있겠는가 싶어서였다.

8월24일 재래닭을 키우는 경북 영천시 도동 이몽희씨의 농장 닭장의 모습. 흙바닥과 모이주머니, 나무로 만든 횃대 등 닭을 위한 공간이 마련돼 있다. DDT 검출로 인해 닭들은 살처분 됐다. 우철훈 기자

한동안 해외에서 외국인들과 한 숙소에 있었던 적이 있었는데, 함께 차려지는 밥상이 흥미로웠다. 열댓명이 앉은 식탁에 내용이 다른 음식이 대여섯가지나 되었기 때문이다. 특정 음식에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사람을 위한 메뉴뿐 아니라 다양한 방식으로 다이어트 중인 사람들을 위해서도 따로 음식이 준비되었다. 이건 지나친 친절과 배려가 아닌가 싶지만, 사실 다이어트에는 미용을 위해 체중을 감량하는 목적만 있는 것이 아니라 먹거리의 윤리, 더 나아가서는 차별과 학대에 저항하는 윤리와 철학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비거니스트들이 엄격한 채식을 하는 이유는 고기보다 선호되는 야채의 맛과 칼로리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다시 한번 더 말하거니와’ 윤리에 관한 문제이다.

한국에서 <죽음의 밥상>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피터 싱어의 책 원제는 <The Ethics of what we eat>이다. 역시 윤리를 강조하는 제목이다. ‘농장에서 식탁까지, 그 길고 잔인한 여정에 대한 논쟁적 탐험’이라는 부제가 붙었는데, 쉽게 짐작이 가겠지만 가축 사육에 관한 불편한 진실이 생생하게 현장 묘사로 채워져 있다. 몇 장면들을 그냥 가감 없이 소개하고자 한다. 사실, 이런 현장 묘사 앞에서는 해석이나 감상이 불가능하다. 고통스럽다, 이외에 무슨 표현이 더 가능한가.

‘닭장 속으로’라고 소제목이 붙어있는 부분이다. 주의 사항이 표기되었다. ‘일부 독자들에게는 불쾌감을 줄 수 있습니다.’ 내가 한 가지 주의 사항을 더 덧붙여야 하겠다. ‘일부 독자들에게는 극도의 고통을 줄 수 있습니다.’

“닭들은 죽기 전까지 삶의 20%를 만성적인 고통 속에서 보내는 유일한 가축이다. 닭들은 돌아다니지 않는데, 너무 밀집된 상태로 사육되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걸을 때 관절이 너무 쑤시기 때문이다. 때로는 척추가 부러지며, 따라서 마비가 온다. 마비 상태에 빠진 닭이나 다리가 망가진 닭은 모이나 물을 먹고 마시지 못하며, 굶주림 또는 갈증으로 죽게 된다.”

“(종계들이 살이 너무 찌면 새끼를 칠 수 없으므로) 종계들에게는 식육용 닭에게 주는 모이의 60% 내지 80%를 적게 준다. 모이를 먹지 못하는 닭은 ‘과다한’ 물을 마시려고 할 것이므로, 물 역시 공급이 제한된다. 그래서 굶주린 종계들은 아무것도 없는 땅바닥을 미친 듯이 쪼아댄다.”

더 잔혹한 묘사들이 이어진다. 그것은 닭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돼지와 소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고통이 너무 심하면 눈을 감아버리게 된다. 눈을 감고 잠시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 있다면, 이걸 외면할까 아니면 대응할까, 고민하는 순간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잠깐의 순간이 다시 한번 ‘고통스러울’것이다.

동물 복지에 대한 주장은 늘 사람 복지도 요원하다는 항변에 가로막힌다. 사실이다. 이 잔혹한 가축 사육 실태는 곧 노예노동이 만연하는 노동시장을 연상시킨다. 하루 1달러도 안되는 돈으로 청바지를 만드는 동남아시아의 소녀들, 열살도 안되는 나이에 채석장에서 돌을 나르고 커피를 따는 아프리카의 아이들. 그뿐만이 아니다. 새우잡이 어선에서 노예노동을 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보다 더한 환경에서 인간 이하의 노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역시 고통스럽다. 그러나 이것은 계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의 문제가 아니다. 한 연장선상에서 바라봐야 할 문제일 것이다.

다시 ‘죽음의 밥상’으로 돌아가자.

“공장식 농법은 전통식 농법보다 싸게 먹힌다는 이유에서 널리 퍼진 것이다. 우리는 실제로 그것이 소비자에게 싼 상품을 제공하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공장식 농업은 더 큰 비용, 그리고 위험을 우리 모두에게 전가하고 있다.”

저비용을 위해 행해지는 가혹한 축산 환경, 농업 환경이 결국 고비용의 위험부담으로 돌아온다는 소리다. 우리가 안전한 계란을 먹기 위해 치러야 할 비용을 생각해보면 쉽게 답이 나오는 소리다. 그것은 안전한 살충제의 문제도 아니고, 정부의 깐깐한 검사 체계의 문제도 아니고, 계사의 환경을 약간이나마 개선하는 문제도 아니라 매우 근본적인 문제로 보인다. 먹는 일의 행복은 먹거리의 안전과 관련이 있고, 그것은 또 먹거리가 생산되는 현장의 안전과도 관련이 있다. 차마, 식용을 위해 죽어가는 것들의 행복한 환경을 말하지는 못하겠다. 그야말로 어불성설일 터이니.

다만 최소한의 것은 챙겨야 하지 않겠나. 다만, 학대라는 말이 이토록 고통스럽지는 않아야 하지 않겠나.

어려서 본 소설이나 동화들 중에는 닭 잡는 장면이 나오는 것들이 많았었다. 그런 시절과 가깝게 살았던 세대이기 때문일 것이다. 마당에서 키우는 닭, 그 닭을 잡기 위해 벌어지는 소동, 소년과 소녀의 경악, 혹은 눈물. 그러나 마침내 따듯한 밥상에 둘러앉은 가족.

이런 풍경을 도무지 접할 가능성이 없는 현대의 식탁이다. 그러나 여전히 따듯하기를 바란다. 안전할 뿐만 아니라 따듯하기를.

<김인숙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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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년 전 강남역과 선릉역 부근에는 꿈과 열정을 가진 젊은 벤처기업들의 사무실이 즐비했다. 젊은이들은 계속 몰려들었다. 밤새 불이 꺼지지 않았던 거리, 우리는 이곳을 테헤란밸리라고 불렀다. 김대중 정권 시절, 정부는 정보기술(IT) 분야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외환위기를 정보혁명 패러다임으로 전환해 위기 극복의 마중물 역할과 IT국가로서 자리매김하는 데 원동력이 된 것도 사실이다. 일부 그 꿈도 이루어졌다. 네이버(NHN)는 그 대표적인 사례다. 여러 논란은 차치하고라도 KBS, SBS 등 공중파와 중앙, 조선 등 매체들이 벌어들이는 수익보다 더 많은 이익을 올린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2017년 강남. 그곳에서는 더 이상 그 같은 꿈과 열정을 가지고 뛰어다니던 젊음은 보기 힘들다. 일부 남아 있는 곳도 있지만 대부분 중심가인 벤처밸리를 떠나 구로동 쪽으로 떠났고 열기가 식은 것도 사실이다. 그들이 남긴 자리는 공무원시험 학원, 토플·토익, 영어, 중국어 학원들이 메꿨다.

우리는 한때 IT강국으로 불렸다. 솔직히 말하면 IT 인프라 강국이다. 나아가 반도체 강국, 하드웨어 아니 스마트폰 하드웨어 강국이라는 게 정확한 표현이다. 세계 100대 소프트웨어에 미국 기업이 70여개를 차지하는 가운데 한국은 전무한 상황이다. 사실 운영체제(OS) 하나 없어 항상 빌려 쓰는 처지다. 미국이 소프트웨어에서 전 세계를 장악하는 이유는 국가 차원의 이노베이션 시스템에서 기인한다. 미국 정부는 대학 및 정부 산하 연구소 등에서 이뤄지는 기초과학과 기술 부문 등에 집중 투자했다. 응용개발 부문은 민간이 맡도록 했다. IT버블 붕괴 후 미국 정부는 IT 분야 기초연구에 정책자금 지출을 확대했다. 당장의 성과보다는 기초과학 육성을 통해 침체를 극복하고 장기적 안목으로 대처했다. 혜안은 맞아떨어졌다. 전 세계 디지털혁명을 주도한 인터넷이 미국 국방성이 건설한 새로운 통신망 알파넷에서 비롯된 것도 미국의 이 같은 시스템 덕이다. 한국의 IT는 10년간의 암흑기 터널을 통과 중이다. 이명박 정권은 환경감시용으로 로봇물고기를 사용하겠다며 국민세금 57억원을 낭비하기도 했다. 박근혜 정권은 창조경제라면서 수조원의 예산을 확보해 창조경제추진단장으로 차은택을 앉히고 국민세금에 빨대를 꽂고 사적으로 편취하는 것을 방관했다. 기초지식도 없는 역량 부족의 인사들을 IT 관련 기관 등에 낙하산으로 내려보내 IT의 시간을 거꾸로 돌리고 있었다. 글로벌 IT 패권을 차지하려는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애플, 페이스북 등이 인공지능, 자율주행, 음성인식, 챗봇 등 저마다 핵심 영역을 꼽으며 발빠르게 한참 물밑 경쟁을 할 바로 그때였다. 미국이나 이스라엘에서 군대가 나서서 최첨단 연구를 하고 방산업체 경험을 바탕으로 뛰어난 기업을 탄생시킬 동안 우리는 비리에 물든 방산업계의 수사를 지켜봐야 했다.

우리와 비슷한 처지의 이스라엘이 전 세계 방산 기술 3위, 인구 대비 나스닥에 상장된 벤처업체 수가 최다라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제 고리를 끊고 다시 시작할 때다.

우리는 4차 산업혁명을 외치면서도 과학이나 기술에 대해서는 경시하는 경향이 있다. IT강국은 그저 구호나 캠페인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IT강국은 소프트웨어 강국을 의미한다. 세상을 소프트웨어가 삼킨다는 말은 그저 메타포에 지나는 게 아니다. 우리가 직면한 중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필요한 게 바로 소프트웨어다. 여전히 변변한 소프트웨어를 갖추지 못하면, 또 OS조차 갖추지 못한다면 다가오는 사회, 4차 혁명에서 주변국가로 전락할 것이다. 남이 깔아놓은 플랫폼에서 수수료를 주고 비즈니스를 하거나 로열티를 주면서 하드웨어를 만드는 IT 3류국으로 추락할 수도 있다. 이제 제반 IT를 둘러싼 생태계가 바뀌어야 하는 것은 물론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 그리고 너무 진부한 이야기지만 미국의 경우처럼 기초과학과 코딩교육 등 장기적인 프로젝트를 통해 인재들을 지속적으로 배출하고 인재에 대해 걸맞은 대우를 해주어야 한다. 실리콘밸리에 세계의 천재들이 몰려드는 것도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IT 기업가 정신이고 문화이다. IT는 기술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IT는 궁극적으로 인간들을 위한 것이며 더 나은 삶을 위한 것이다. 세계 곳곳에서 실리콘밸리를 모방하려는 시도가 실패하는 이유다. 결과물은 어느 정도 따라갈 수 있을는지 모른다. 하지만 실리콘밸리의 기적은 물리적 조건을 넘어선 결과물이다. 실리콘밸리의 핵심은 그 문화에 있다. 유토피안에서 히피까지 모든 성격의 집단이 융합돼 우리가 사는 세상을 보다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한 도구와 서비스들을 개발하는 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23살 때 100만달러, 24살 때 1000만달러, 25살 때 1억달러 재산을 갖게 됐지만 그는 말했다. “돈은 훌륭한 수단이지만 크게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기업, 제품, 직원 특히 내가 만든 제품들이 사람들에게 어떤 가능성을 열어줄 수 있는가 하는 것”이라고. 잡스의 말은 우리가 왜 소프트웨어를 만들고 IT강국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답변이기도 하다.

<최희원 인터넷진흥원 수석연구위원·<해커묵시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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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지마다 잊지 않고 사 모으는 게 있는데 에코백 천가방이다. 도시의 이름이나 어디 서점, 음반점 로고가 새겨진 에코백. <북회귀선>의 헨리 밀러나 <채털리 부인의 연인> 작가 로렌스의 이름이 새겨진 에코백. 길에서 누군가 메고 가는 에코백 가운데 내가 좋아하는 작가나 화가, 가수의 이름과 도시가 새겨진 에코백을 만나면 무지 반갑다. 명품 가죽 가방도 하나쯤 뭐 좋겠지만, 거창하게 지구환경까지 말하고 싶진 않고, 에코백이 건강하고 멋져 보인다. 정성을 다해 직접 손바느질로 에코백을 만들어 들고 다니는 부인들도 있다. 따봉 따봉, 엄지손가락 척~.

요새는 해외 고급 백화점과 서점마다 필수로 에코백 판매대를 두고 있다. 일회용 포장, 비닐을 줄여 보자는 취지일 것이다. 실용성 말고 패션의 지위로까지 높이 올라가는 분위기다. 젊은 치들이 명품 백을 휘두르는 건 별로 곱게 보이지 않는다. 엄마 걸 들고나온 것도 아닐 테고 말이다. 소매치기가 득시글거리는 샹젤리제나 몽마르트역 어디도 아닌데 철심 줄로 친친 감긴 가방을 가슴에 움켜쥐고 다닐 필요까지야. 책 한 권 들어가지 못할 가방을 들고 다니는 것은 무식을 온 천하에 자랑하고 다니는 거나 마찬가지. 젊음의 자랑은 돈이 아니라 건강미와 지성미. 누구는 그것이야말로 섹시미, 야하다고 말했던가.

마광수 교수를 뵌 것은 가수 한대수 사진전으로 기억한다. 하얀 천조각에 아크릴 물감으로 그린 그림이 앞자루에 박힌 에코백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진한 스모키 화장을 한 일행도 수줍은 얼굴이었는데 스치듯 다른 일행들 속에 파묻혔다. 윤동주처럼 창백한 얼굴을 가진 마광수 샘은 학원에서 쫓겨나 감옥이나 외진 식당을 전전하며 지냈다. 그가 들고 다닌 가방 중에 하필 그 에코백의 기억을 내가 지닌 것은 무슨 때문일까. 그 속에 어떤 책과 또 시가 담겨져 있을까 궁금했었다. 다소 커 보이는 상의를 걸친 구부정한 어깨선. 붉은 매니큐어를 칠한 사라를 좋아한다 말했던 눈빛은 누구보다도 솔직했다. 검열을 피해 다급히 적고 또 찢었을 노트에는 같이 ‘콩밥을 먹은 문장들’이 슬픈 나체로 누워 있었겠다. 문학 선생의 에코백을 찢어 콘돔이라도 하나 주운 자들이 내지른 비명들로 세상은 소음천지, 위선의 진풍경이었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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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KIA 타이거즈의 최형우는 리그최고 타자다. 좌타자 최초로 4연속 시즌 100타점을 돌파했다. 전인미답의 4연속 시즌 3할-30홈런-100타점에도 도전하고 있다. 프로입단 15년차인 그는 정규시즌 MVP를 차지한 적이 없다. 1인자의 자리에 한번도 오르지 못한 것이다. 최형우는 지난달 “영원한 2인자로 남겠다”고 했다. 1인자가 되겠다는 꿈을 접었다는 것이다. “솔직히 욕심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영원한 2인자로 좋은 성적을 올리자고 생각하니 오히려 홀가분해졌다.” 그가 편 ‘2인자론’은 새겨들을 만하다.

2인자는 서럽다. 1인자의 그늘에 가려 있기 때문이다. 오스트리아 황제 요제프 2세가 총애한 궁정악장이었던 안토니오 살리에리는 걸출한 음악가였다. 하지만 살리에리는 모차르트의 공연을 보고 난 뒤 절망의 늪에 빠져들었다. 방탕하고 오만한 모차르트에게 ‘천상(天上)의 음악’을 실현할 수 있는 천재성을 부여한 신을 저주하기도 했다. “신은 내게 음악에 대한 열정만 주셨고, 모든 재능은 모차르트의 몫이었다.” 2인자의 설움은 1인자를 향한 적의로 돌변하기도 한다.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파멸시키겠다는 생각을 품게 된 것도 2인자가 겪는 절망감의 표출일 수도 있다.

최지성 전 삼성 미래전략실장이 25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김영민 기자

2인자는 열등감의 포로가 되기도 한다. 30여년간 전두환의 위세에 눌려 지냈던 노태우가 그랬다. 육사 11기 동기였지만 노태우는 전두환의 뒷길만을 좇았다. 전두환에게 인수인계받은 직책만도 육참총장 수석부관, 경호실 작전차장보, 보안사령관, 민정당 총재,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5개나 된다. 민주주의를 짓밟고 헌정을 유린한 1979년 12·12 쿠데타, 1980년 5·18 광주학살 때도 전두환이 앞장서고, 노태우가 뒤따랐다. 노태우가 전두환에게 가졌던 우월감이 있긴 하다. 군사쿠데타로 집권해 ‘체육관 선거’로 대통령에 선출된 전두환과 달리 자신은 국민들의 직접투표로 당선됐다는 것이다. 노태우는 언론인터뷰에서 “만약 내가 (전두환의) 2인자로 행동했다면 대통령이 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전두환은 지난 4월 펴낸 <전두환 회고록>에서 “간접선거로 대통령이 되려 했던 노태우를 수차례 설득한 끝에 직선제 개헌을 수용하겠다는 답변을 얻어냈다. 그때까지도 노태우는 내 그늘에 가려져 있는 2인자 이미지를 벗지 못했다”고 기술했다.

재벌기업 2인자의 말로는 비참하다. 총수의 방패막이가 돼야 하는 게 재벌기업 2인자의 운명이다.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이 그랬다. 마케팅 전문가인 그는 삼성전자 대표이사를 거쳐 2012년 미래전략실장이 됐다. 비서실-구조조정본부-전략기획실-미래전략실로 이름이 바뀌어온 삼성그룹 컨트롤타워의 수장이 된 것이다. ‘이재용의 가정교사’로 불렸던 그는 총수 일가에 대한 충성심이 대단했다. 2014년 이건희 회장이 쓰러지자 수시로 병실을 찾았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작업을 주도했다. ‘실세 중의 실세’라는 세간의 평가가 있긴 했지만 실권은 쥐지 못했다.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 회장의 ‘복심(腹心)’으로 불렸던 소병해 비서실장이나 이건희 회장의 오른팔 역할을 했던 이학수 구조조정본부장과 달리 ‘관리형 2인자’에 그친 것이다.

‘박근혜·최순실 뇌물공여 혐의’로 기소됐던 최 전 실장은 재판과정에서 ‘1인자 전략’을 썼다. 그는 “이재용 부회장은 그룹의 최종 의사결정권자가 아니다”라고 강변했다. 이 부회장도 “식사를 하든 회의를 하든 제가 한 번도 상석에 앉은 적이 없다”고 했다.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를 ‘이재용 바보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이 부회장을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로 만들고, 모든 책임을 최 전 실장에게 떠넘기려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최 전 실장은 재판과정에서 짜놓은 각본이 있는 것처럼 진술했다. 그룹 후계자 예우 차원에서 필요한 정보를 선별적으로 제공해 이 부회장이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미르재단 출연금, 정유라 승마지원 등에 대해선 전혀 몰랐을 것이라고 강변한 것이다. 그는 “책임을 묻는다면 판단력이 흐려진 제게 물어 달라”고 읍소하기도 했다. 하지만 1심 법원은 이 부회장에게 징역 5년, 최 전 실장에게 징역 4년을 선고했다. ‘최지성 1인자, 이재용 바보 전략’이 통하지 않은 것이다.

1인자만 기억하고 대접하는 세상에서 2인자가 설 땅은 좁다. 2인자가 겪는 비애와 좌절은 1인자가 되겠다는 욕심을 버리지 못했거나 ‘일인지상 만인지하(一人之上 萬人之下)’의 자리에서 내려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크기 때문일 수 있다. 높은 곳은 좁고 위태롭지만, 낮은 곳은 넓고 평안하다. 이런 이치를 아는 2인자는 많지 않다. 안분지족(安分知足), 세상의 모든 2인자들이 갖춰야 할 덕목이다.

<박구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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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가 만사’라고 한다. 대통령 인사권의 막강한 힘을 이르는 말이다. 실제 대통령은 장차관, 헌법기관 고위직 등 7000여명의 임면권을 쥐고 있다. 이 말의 본질은 대통령 인사권이 정권 정체성을 상징한다는 데 있다. 그렇다고 역대 정권은 ‘같은 색깔’만 칠하진 않았다.

전략적 고려도 입혔다. 김대중 정부의 김중권 청와대 비서실장과 강인덕 통일부 장관, 노무현 정부의 고건 국무총리와 김희상 청와대 국방보좌관이 대표적이다. 소수정권 한계 극복, 정치적 안정, 우방국 달래기용이었다. 그러나 이조차도 정체성 강화의 우회로였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보안 인사’를 중요하게 여겼다. 낙점한 인물도 언론에 하마평이 오르면 단칼에 지웠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여론 인사’를 선호했다. 마음에 두고 있던 후보 명단을 슬쩍 언론에 흘려 평판이 좋으면 인선을 강행했다. 평이 엇갈리면 민간업체에 여론조사를 의뢰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시스템 인사에 관심이 많았다. 인수위원회 때 5단계 절차를 밟는 장관인사추천제를 도입했고, 집권 후엔 청와대 인사수석 비서관직을 신설해 인사 추천을 전담케 했다. 그전까지는 민정수석이 인사 추천·검증을 도맡았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파격 인사는 ‘속전속결’ 개혁, 김대중 전 대통령의 심사숙고 인사는 ‘역사적 평가’를 중시한 개혁으로 이어졌다. 노무현 정부의 경우 인사 정책만 봐도 균형인사, 인재 데이터베이스(약 12만명) 구축 등 시스템 정치를 구현했다.

위력이든 전략이든 스타일이든 인사는 결국 정권의 방향타이자 대통령의 국정철학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창조론 논란에 이어 뉴라이트 사관 문제 등 '이념논란'이 불거진 박성진 초대 중소기업벤처부장관 후보자가 31일 오후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논란 해명 기자회견에서 질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문재인 정부 인사가 방향을 잃었다. 피우진 국가보훈처장, 강경화 외교부 장관,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을 비롯해 청와대 조국 민정수석, 장하성 정책실장 이름이 발표될 때만 해도 찬사가 쏟아졌다. 특히 김상조 위원장은 기득권층 저항을 고려해 천천히 발표하자는 참모들 제안에도 문 대통령은 조기 인선을 밀어붙였다고 한다.

그러나 박기영·이유정·박성진 후보자가 나오면서 국정철학은커녕 무슨 메시지인지조차 읽히지 않았다. 이해관계 집단은 물론 지지층 반발도 거세졌다. 여권 내에선 다양한 진단이 쏟아졌다. ‘참모들이 대통령 눈치를 본다’ ‘(전방위 평판이 담긴) 국가정보원 존안자료를 거부했으니 이 정도 비용(부실 검증)은 지불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 복심들이 빠져서 손발 맞출 인사를 가려내기가 힘들다’…. 문 대통령은 결국 지난 4일 인사시스템 개선을 주문했다. 인사 원칙과 검증 기준을 구체화하고, 인사 추천의 폭을 넓히라는 내용이었다. 이 기회에 청와대 인사기획비서관실도 신설하고, 임기를 보장해야 할 자리와 대통령 국정철학을 반영해야 할 자리를 구분하는 작업도 필요해 보인다.

그러나 지금은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 오작동 문제가 더 심각하다. 인사가 한 정권의 국정철학을 담는다고 할 때 적어도 인사는 ‘시민 동의’가 중요한 기준이다. 재벌이 아닌 노동자, 전쟁이 아닌 평화, 갑이 아닌 을…. 촛불이 만들고, 시민들이 동의한 문재인 정부의 방향이다. 향후 인사에서 이 틀을 벗어날 경우 대통령이 인사원칙을 분명히 밝히고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 인사원칙(철학)과 다투는 건 이해도, 수용도 가능하다. 박성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 논란이 커지는 것은 청와대 해명 자체가 이를 벗어나도 한참 벗어난 때문이다. 생활 보수, 소시민이라는 논리는 문 대통령의 인사철학도, 원칙도 아닌 ‘희한한’ 변명에 불과했다.

더 보탠다면 인사를 협치의 기반으로 삼길 바란다.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김윤철 교수는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을 공약 이행에만 쓰면 안된다. 인사가 협치의 주요 항목이 돼야 할 때다”라고 했다. 당장 정기국회부터 국회의 계절이다. 대통령 의제를 관철하려면 싫든 좋든 국회의 도움이 필요하다.

<정치부 구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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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어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했다. 두 정상은 단독·확대 회담 후 공동언론발표를 통해 북핵 문제 해결과 극동지역 개발 등 양국 간 협력 방안 등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두 정상이 북한의 6차 핵실험을 강력히 규탄했다”고 강조했고, 푸틴 대통령은 “북핵은 압박과 제재만으로 해결하지 못한다”고 했다. 두 정상 모두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에 반대했지만 해법에서는 차이를 드러냈다.

문재인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6일(현지시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극동연방대학교에서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한·러 정상회담은 다른 때보다 더 주목받았다. 6차 핵실험에 따른 국제사회의 대북한 제재 움직임이 본격화되면서 러시아의 역할론이 커지는 상황에서 열렸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중국과 더불어 대북 국제 제재의 양대 축이라고 할 수 있다. 러시아가 적극 참여하지 않으면 원유공급 중단과 북한 노동자 고용 금지 등은 실효성을 거두기 어렵다. 특히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로 한·중관계가 악화된 상황에서 러시아의 비중은 더욱 커졌다고 할 것이다. 러시아가 최근 북핵에 대한 개입 수위를 부쩍 높이는 것도 이를 노린 것이다.

북핵 문제를 떠나서도 한·러관계는 매우 중요하다. 양국은 지리적으로 매우 가까운데도 불구하고 경제분야 등에서 협력을 크게 진전시키지 못했다. 러시아의 자원개발을 중심으로 한 협력 방안이 몇 차례 논의되는 정도였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한반도와 러시아 극동지방을 연결하는 남·북·러 3각 협력을 강조했다. 북한을 통한 러시아 에너지 자원의 도입 등을 염두에 둔 것으로, 북핵 문제가 풀리면 양국 간 협력 사업이 크게 진전할 수 있다는 뜻이다. 마침 푸틴 대통령도 신동방정책을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북핵 문제는 미·중·러 등 관련 여러 국가들이 모두 추인해야 최종적으로 해결되는 사안이다. 러시아가 담당해야 할 역할이 분명히 있다. 어제 두 정상의 북핵 발언에서 드러났듯 아직 양국 간 견해 차가 크다. 문 대통령의 대북 원유공급 중단 협력 요청에 푸틴은 민간의 피해가 우려된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러시아도 북한의 핵개발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설득할 필요가 있다. 통일기반 조성 차원에서라도 한·러관계는 공고히 해야 한다. 북방도서를 놓고 일본과 갈등 중인 러시아로서도 한국과의 유대 강화가 긴요하다. 어제 정상회담이 새로운 한·러관계의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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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국회 보이콧을 이어가고 있는 자유한국당이 6일 의원총회 뒤 북핵 대책을 주제로 안보토론회를 열었다. 북한의 계속된 핵과 미사일 도발에 대응해 당내에 ‘북핵위기대응특위’도 구성했다. 오후에는 의원 70여명이 전방의 해병대를 찾아 북한 핵실험 도발을 규탄했다. 김장겸 MBC 사장에 대한 체포영장 발부를 이유로 국회를 뛰쳐나왔지만, 장외에서 안보정당의 잰걸음을 보인 것이다.

한국당은 평소 안보 수호 세력을 강조해온 보수정당이자 제1야당이다. 북한의 6차 핵실험으로 초유의 안보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누구보다 위기 대응에 앞장서야 할 입장이다. 초당적 안보협력은 한국당이 여당 시절 틈만 나면 주문했던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한국당은 어제도 그제도 국회를 외면하고 장외로 나갔다. 한국당은 마치 딴 세상에 있는 듯하다.

4일 국회 본회의장 앞 로텐더 홀에서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MBC사장 체포영장 발부 등에 항의하며 국회 보이콧 시위를 하자 더불어민주당 손혜원 의원이 휴대전화로 촬영하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그렇게 감싸고 돌던 MBC 김장겸 사장은 결국 노동청에 자진출석해 조사를 받고 돌아갔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9년 동안 MBC는 왜곡보도에 반발하는 기자·PD 10명을 해고하고 71명 징계, 187명을 부당 전보했다. 악덕 기업주도 감히 엄두내지 못할 악질적인 부당노동행위다. 김 사장으로선 사법기관의 정당한 법집행을 더 이상 피할 명분이 없었을 것이다. ‘김장겸 지키기’에 나선 한국당으로서는 정기국회를 보이콧하며 끌어다붙인 구차한 핑곗거리조차 사라진 셈이다.

그런데도 한국당은 이번 주말 서울 강남에서 대규모 대국민보고대회를 예정대로 강행할 것이라고 한다. 2005년 사학법 개정 반대 투쟁 이후 12년 만의 장외집회다. 홍준표 대표는 “우리가 장외투쟁을 하는 것은 야성(野性)을 키우기 위한 것이다. 앞으로 4년 반 동안 혹독한 겨울을 나기 위해 단련을 해야 하는 그런 시점”이라고 했다. 한국당 의원들의 야성을 키우는 데 안보·민생이 근육강화제로 쓰이는 꼴이다.

야당의 장외투쟁은 압도적인 힘을 가진 여당에 저항할 마땅한 방법이 없을 때 시민에게 직접 호소하는 최후의 수단이다. 그러나 지금은 여소야대 국회다. 진정 공영방송이 걱정된다면 얼마든지 방송법을 보완해 방송을 정상화시킬 수 있다. 안보 대응에 문제가 있다면 국회에서 정부·여당을 질타하고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당이 바깥으로 돌며 하는 일은 안보 강화가 아닌 불안 조장이다. 시민을 안심시키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해도 부족한 상황에 안보 협치는커녕 정부의 발목을 잡고 있으니 이렇게 무책임하고 어이없는 일도 없다. 시민들은 안보마저 정쟁에 이용하는 제1야당에 분노하고 있다. 더는 한국당의 생떼를 받아줄 여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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