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세 남성이 응급실로 왔다. 새벽 인적이 드문 곳에서 목을 매다 행인의 신고로 119를 통해 구조되었다. 다음달 고시원비를 내야 하는 사람이었다. 다리를 다쳐 일을 못하면서 통장 잔고는 비어있었고 돌볼 가족이 없었다. 생명사랑위기대응센터 사례관리자들, 의료사회복지사들과 지원 방안을 알아보았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자살 시도는 긴급복지 의료비 지원대상에서 제외되어있다. 다행히 정신건강복지센터를 통해 치료비를 지원받을 수 있었다. 수소문 끝에 ‘바보의 나눔’ 재단에서 생계지원을 받았다. 집희망주거복지센터의 도움으로 임대주택을 확보했다.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죽음뿐이라 믿었던 분에게 새로운 희망이 생길 수 있었다.

우리나라 자살은 OECD 국가 중 1위, 1년에 1만3513명의 생명의 문제이다. 1년 사망자 20명 중의 한명꼴로 사망원인이 자살인 나라이다. 자살시도는 대개 사망자의 20~40배 발생한다. 이분들의 사연은 눈물겹지만 그렇다고 아주 특별한 사람도 아니다. 상당수는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지원해도 위기를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낮은 우울증 치료율도 한몫한다. 우울증에 지배된 뇌는 모든 것을 어둡게 본다. 이 상황을 벗어날 길은 자살밖에 없다는 잘못된 결론을 도출하게 한다. 이제 전 사회적 대처가 필요한 시점이다.

첫 번째로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중앙심리부검센터의 조사에 따르면 자살자의 93%는 경고신호를 보냈지만 주변에서는 81%가 이를 사전에 알아차리지 못했다. 이분들의 책임이 아니다. 무엇이 자살의 경고신호라고 우리 사회가 알려준 바 없다. 특히 사회복지사, 경찰, 공무원, 의료인 등 자살고위험군을 발견할 위치에 있는 분들이 이 교육을 반드시 수료할 수 있어야 한다. ‘보고듣고말하기 표준자살예방교육’은 5년간 35만명이 수료했지만 아직 턱없이 부족하다. 자살예방교육을 학교, 직장, 지역사회에서 활성화할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둘째로 자살위험에 몰린 사람들을 지원해야 한다. 자살은 위기상황에 대한 의료, 복지, 사회, 법적 서비스 안전망의 부재 그리고 연결 실패에서 발생한다. 위기 지원의 확대와 함께 고위험군을 찾아 서비스와 연결시킬 전문가가 필요하다. 응급실에서 시도자를 지원하는 생명사랑위기대응센터가 전국에 42개 있지만 아직 시범사업이다. 일본에선 작년부터 의료보험에서 급여화하여 전국 병원에서 연결과 지원이 가능하게 했다.

셋째로 국가적 차원의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지난 한달간 산후우울증과 관련된 산모와 아이의 안타까운 소식이 매주 보도되었다. 유독 20대에만 여성의 자살률이 남성을 넘어선다. 그런데 저출산대책에는 수십조원이 투여되지만 산후우울증 대책은 보이지 않는다. 영국과 미국에서는 산후우울증 특별법을 만들고 방문을 통한 조기 발견과 지원서비스를 구축했다. 일본은 지난 10년간 자살률이 30% 감소하였다. 83명의 국회의원 모임이 자살로 내몰리지 않는 사회를 명시한 법적 기반을 만들고 자살예방종합대책본부를 내각부에 두어 전 부처가 참여하는 정책을 시행했기 때문이다.

우리도 더디지만 변화는 시작되었다. 2011년 자살예방법이 제정되고 처음으로 자살이 감소하기 시작하였다. 문재인 정부 100대 국정과제에 생명존중과 자살예방이 처음으로 포함되었고 자살예방과도 신설될 예정이라는 소식도 들린다. 자살은 충분히 예방할 수 있는 문제이다. 자살을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의 문제로 바라보는 철학의 변화가 선행되고 전 부처와 민관을 함께 움직일 컨트롤타워가 설치되어야 한다. 이러한 변화의 시작점은 법개정이며 국회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전체 사망 원인 중 5%인 자살 문제에 5%만이라도 국회와 정부, 그리고 사회가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기를 바란다면 그것은 지나친 기대일까?

<백종우 한국자살예방협회 사무총장·경희의대 교수>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인사(人事)는 대통령이 국민과 소통하는 상징적인 ‘창(窓)’이다. 직접 현장을 찾는 소통도 있지만, 그 정권의 성격과 국민에 대한 태도를 보여주는 인사는 더욱 중요한 소통 장치일 수 있다. 이처럼 인사는 국정철학이 표출되는 첫 통로다. 실상 민주화된 정부에서 대통령의 가장 근본적인 권한은 인사권과 예산권이다. 인사로 비전을 펼쳐보이고, 예산으로 구체적 실행을 뒷받침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4일 “인사원칙과 검증의 구체적 기준을 마련해주기 바란다”며 참모들에게 ‘인사시스템 개선’을 당부했다. “지금까지 인사를 되돌아보면서…”라는 말처럼 조각 인사의 소회를 담은 당부였다. 안경환 법무장관 후보자부터 이유정 헌법재판관 후보자까지 5명이 낙마한 성적표에 불만족과 당혹감이 배어든 토로로 들렸다.

문 대통령이 인사의 어려움을 토로한 것은 대통령으로서가 처음은 아니다. 노무현 정부때인 2006년 5월 그가 민정수석까지 3년여 청와대 생활을 접고 자연인으로 돌아갈 때 일이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마음 편하게 기자들을 만난다”며 홀가분한 모습으로 대화를 이어가던 문 대통령은 ‘인사’ 이야기를 꺼냈다. 요지는 인사검증을 해보니 지도층의 도덕성 문제가 생각 이상으로 심각했고, 기준대로라면 쓸 인재가 없다는 것이었다. 조심스레 기준을 좀 더 현실화·정교화할 필요가 있다는 고언도 따랐다. 인사와 검증은 그의 심중에 남은 오랜 그늘인 것이다.

최근 문재인 정부 1기 말미 인사들을 보면 인사의 창은 ‘탁’하다. ‘인사 실패-논란-변명-낙마’로 이어지는 ‘고집 인사’의 모습이 어른거린다. 초기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피우진 국가보훈처장처럼 선명한 메시지를 담은 인사로 정권의 비전과 환호가 만나던 ‘사이다’ 같은 소통의 창은 더 이상 아니다.

촛불로 탄생한, ‘소통(疏通) 정부’를 자임한 문재인 정부도 인사의 저주는 피하진 못한 셈이다. 지도층의 취약성 때문인지, 정권의 ‘사심’ 때문인지는 따져볼 부분이 많다.

인사 내용만큼이나 인사의 이미지를 결정짓는 것은 그 인사가 일그러졌을 때 이에 대처하는 권력의 태도다.

박성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를 둘러싼 논란은 두 가지로 집약된다. 우선 문재인 정부 국정철학과 맞냐는 의문이다. 그 연장선에서 ‘뉴라이트 탕평’ 비판처럼 ‘도대체 인사철학이 뭐냐’는 반발이 생겨난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청와대의 기묘한 논리다. 소위 ‘생활보수’란 신조어와 ‘소시민’ 속에 담긴 해명의 부적절함, 사려깊지 못함이다. 전혀 논리적이지도 않다. ‘생활보수·소시민’이 생활에 바빠 역사·정치관이 부족할 수 있다는 변명인지 모르나, 그것이야말로 국민과 정치를 이간질하고 시민들을 우매하게 보는 권력자의 논리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여권에서조차 갖은 뒷말만 만들어진다. ‘도대체 누가 추천했나’라는 타박이 동기일 터인데 ‘부경파(부산·경남파)’부터 ‘양산파(경남고 인맥)’ 추천설까지 난무한다. 물밑 인사암투의 그림자마저 어른거린다. 지지층이 동요하는 것은 이런 것들이 모두 불길한 신호로 보이기 때문이다.

징후들은 더 있다. 결국 낙마로 끝났지만 이유정 후보자를 둘러싼 논란에서도 불길함은 감지된다. 이 후보자가 낙마한 마지막 순간까지 청와대 반응은 “불법·위법은 없었다”는 것이었다. 후보자 명예에 대한 배려이고, 그를 대신한 ‘억울함’의 표현일 수 있다.

하지만 진정 억울함은 1년 반 동안 주식으로만 12억원의 수익을 올리는 현실을 봐야 하는 서민들 몫일 것이다. 그것도 투기가 아닌 투자로 봐야 하는 박탈감이다. 이 후보자의 낙마는 ‘코드’였기 때문이 아니다. 바로 국민들이 인사권자와 공직자들에게 요구하는 ‘도덕감정’에 반했기 때문이다. ‘법’이라는 동문서답은 박탈감만 키운다.

인사의 적절성을 따지는 기준은 몇 가지다. 자질과 경험이 업무와 부합하는가. 생각과 가치가 주권자들 기대와 맞는가. 또 삶이 국민 일상의 감정과 어긋나지 않는가이다. 이에 반하는 것은 정확히 말하면 국민들이 정의라고 생각하는 것에 반하는 것이다.

인사의 창에 조금의 얼룩도 없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완전무결함은 이상일 뿐이다. 하지만 방향이 정반대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더구나 그것을 전임 정부가 그랬던 것처럼 실수를 실수로 인정치 않는 완고함으로 미봉하려 한다면 사정은 더욱 달라진다. 그 경우 주권자들은 문재인 정부 인사에서 빠진 것은 ‘정의’라고 느끼게 될 것이다.

그래서 ‘시스템 개선’ 주문으로 끝맺은 문 대통령의 조각 인사 결산에 착잡함이 남는다. 진짜 성찰과 개선은 당장의 일그러진 것을 바로잡을 때 시작되기 때문이다.

<김광호 정치 에디터>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수십년 전 내가 공부했던 베를린 공과대학은 바이마르 시대와 제3제국 시기 나치의 아성이었다. 100여명에 달하는 과학기술자들을 몰아내는 데 나치 학생과 교수들이 앞장섰고, 전쟁 중에는 무기 연구로 히틀러에 충실히 봉사했으며, 학교 안에 우크라이나에서 끌고온 강제노동자 수용소까지 두고 이들을 부려먹었다. 전쟁이 끝난 후 영국군은 이를 교정하기 위해 베를린공대 학생들에게 인문교양을 수강하도록 했지만, 나치에 부역했던 과학기술자들은 유용하다는 이유로 여전히 교수와 연구자로 대학에 남을 수 있었다. 내가 학생과 조교로 몸담았던 화학부에서는 화학무기 연구에 남다른 흥미를 보였던 골수 나치 게르하르트 얀더가 1961년 은퇴할 때까지 오랫동안 학부장을 지내기도 했다. 이렇게 과학기술자들은 오직 유용하다는 이유로 비교적 관대한 처분을 받았다. 그 결과 연합국은 나치 과거에 상관없이 이들을 수천명 이상 자기 나라로 ‘모셔’갔고, 독일에 남은 사람들은 큰 어려움 없이 요직을 차지할 수 있었다.

박성진 중소벤처기업부 초대 장관 후보자가 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 기자실에서 가진 간담회에서 후보자로 지명된 소감을 밝힌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과학기술자들의 정치적 성향에 상관없이 유용성에만 주목하는 것은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오히려 다른 나라보다 더 강한 것 같다. 그리고 이 경향은 독재정부나 민주정부 모두 차이가 없다. 다른 점이라면 독재정부는 애국심을 부추기고 꽤 큰 보상을 내걸면서 유용성을 활용하려 했다면, 민주정부는 반민주, 반지성 성향을 가진 과학기술자를 ‘생활보수’, ‘다양성’, 종교의 자유, 일만 잘하면 된다 같은 면죄부성 말로 정당화해줌으로써 활용하려 한다는 것이다.

과학기술의 유용성을 강조하는 것은 그것의 도구적인 성격에만 주목하는 것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얼마 전 정부로부터 면죄부를 받은 창조과학자가 속한 집단도 과학기술을 도구로 취급한다. 이들에게 과학은 성경의 창조를 증명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그러므로 과학 중에서 이 증명에 장애가 되는 것은 부정해야 할 것이 된다. 진화론, 빅뱅이론, 천체물리학, 지질학, 고생물학은 성경의 창조과정을 부정하기 때문에 배격되어야 한다. 그러나 통계역학이나 엔트로피 이론, 오래전에 폐기된 대격변설은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져 창조를 증명하는 데 활용된다.

그런데 창조과학이 배격하거나 받아들이는 과학이론들은 취사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들은 모두 수천년에 걸친 인류의 지적 노력의 결과로 얻어진 것이고, 그 발달과정 속에는 우주, 자연, 생명에 대한 깊은 사유가 담겨 있으며, 서로 연관되어 있어 홀로 떨어져서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들 과학이론을 분리할 수 있는 것으로 보고 입맛에 맞는 것을 취사선택하는 창조과학은 과학 속에 깃들여 있는 사상과 철학을 제거하고 단순한 도구로 취급하는 반지성적 활동이다. 반지성은 생활보수가 아니라 근본보수와 연결된다. 수천년에 걸쳐서 발달해온 과학은 열린 지성의 산물이다. 오류가 드러나면 인정하고 고치면서 발달해왔던 것이다. 반면에 창조과학은 걸림이 되는 것은 철저히 배격하고 유용한 도구만 찾는 닫힌 활동이다. 근본보수도 마찬가지로 성찰과 반성이 들어가기 어려운, 닫혀 있는 태도이다. 창조과학이 근본보수와 연결되기 쉬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생활보수라는 표찰을 부여받은 창조과학자가 이승만과 박정희를 찬양한 것도 우연이 아닌 것이다.

우리 정부가 과학기술을 단순한 도구로만 보지 않고 오랜 시간에 걸친 사유의 결실로도 보는 눈이 있었다면, 근본보수로 나아가기 쉬운 창조과학자에게 중책을 맡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적폐청산에는 과거 정부의 범죄적 성격의 활동뿐만 아니라 과학기술을 도구로만 보았던 태도도 포함되어야 할 것 같다. 독재시대부터 지속되어온 이러한 태도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과학기술혁신본부장 임명 파동이나 뉴라이트 창조과학자의 장관 임명 같은 일이 또다시 일어날 것이다.

<이필렬 방송대 교수 문화교양학부>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북한 6차 핵실험과 예상되는 추가적 도발에 세상이 떠들썩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핵·미사일 분야 기술을 더 이상 고도화하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며 “실제적이고 강력한 조처”를 다짐했습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북한과 거래하는 어떤 나라에 대해서도 미국과 무역을 중단할 수 있다며 압박 수위를 높였죠. 이번 실험을 “고립무원 속에서 김정은의 광기 어린 핵무기 집착”쯤으로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 하지만 이는 사태를 왜곡해 목청 높이기에만 좋을 뿐 해결에 아무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해결은 올바른 인식에서 시작합니다. 첫째, 그 동기입니다. 아직도 북한 의도에 의아함을 표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북한 핵무기에 불안감을 느낀다면 답을 이미 알고 있다 하겠습니다. 1990년대 초 주한미군 전술핵 철수 때까지 북한은 코앞에서 미군 핵무기를 마주했었고 지금껏 인류 역사상 최강이라는 미군과 대치하고 있습니다. 미군은 태평양 전역을 둘러싸고 있고 실전 배치된 핵탄두만 1400여개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 군사비 지출의 거의 반을 쓰는 나라가 미국입니다. 북한 핵무기에 우리가 불안하다면 미국 군사력에 북한은 훨씬 불안한 겁니다.

북한은 지난 6일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6차 핵실험을 축하하는 평양시군민 경축대회를 열었다고 7일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행사에는 김영남·황병서·박봉주 등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을 비롯해 수소탄 개발자 등이 초청됐다. AFP 연합뉴스

미국은 북한 정권처럼 공격적이지 않다고요? 이라크 후세인 대통령은 한때 미국 중동 정책 교두보였지만 2003년 미국 침공으로 후세인은 처형당했습니다. 이에 겁먹은 리비아의 지도자 카다피는 핵무기를 포기하고 서방과의 교류확대에 나섰죠. 하지만 내란이 일어나자 미국은 카다피 정권을 공격했습니다. 카다피도 처형당했습니다. 힘과 무력만이 정권 안정에 필수적이라는, 미국이 신봉하기도 하는, 현실주의 이론에 딱 들어맞죠.

북한 김씨 왕조가 무슨 생각을 했을지 안 봐도 훤합니다.

둘째, 북핵에 대한 대응입니다. 정권 안정에 사활이 걸린 핵무기를 포기할 리가 없죠. 이런저런 경제 제재가 논의되고 있지만, 그 무용함은 북한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이미 잘 드러나 있습니다. 북한 대외무역의 거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은 정권 2기 준비에 여념이 없습니다. 게다가 북한을 흔들어 생길 실이 득보다 훨씬 큼을 알고 있죠. 설사 중국이 석유 금수 조치를 공세적으로 취하더라도 북한 인민만 괴롭히고 말 공산이 큽니다. 이런 상황에서 서구 주도의 경제봉쇄는 탱크에 화염병 던지기로 끝날 겁니다.

무력행사는 득은 작고 불확실하지만 실은 혹독하고 명확합니다. 외과 수술하듯 핵시설만 도려내는 폭격은 성공할 확률이 극히 낮습니다. 성공해도 북한이 확전의 길로 갈 공산이 크죠. 폭격이 성공하고 확전이 안돼도 북한 내 혼돈, 중국 개입 등 그 결과는 한반도 일대의 혼란일 겁니다. 이제 북한은 미국과 한국이 어떻게 말하건 핵보유국입니다. 게다가 미국 서부까지 사정권 안에 있죠. 무력행사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여기저기서 혼돈과 흥분에 가득 찬 말들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그럴 수밖에요. 말이라도 하지 못하면 체면이 떨어지니까요. 유권자들한테 약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곧 미국은 현실을 직시하게 될 겁니다. 벌써 미국은 주판알 튕기기를 시작했죠. 농산물 관세 철폐를 포함한 자유무역 협상을 재개하고 수십억달러어치 무기를 사라며 한반도 위기를 기회로 삼고 있습니다. 샌프란시스코를 내주고 서울을 살릴 리 없는 미국은 북한과의 협상테이블에 앉을 테고 북한의 요구, 즉 주한미군 철수와 북한 인정을 상당 부분 들어주게 될 겁니다. 싫어도 대안이 없으니까요. 

그 미래는 애써 부정해도 옵니다. 시간문제죠. 이는 한국에 도전이자 기회가 될 겁니다. 중·미 수교에 완전 제외된 대만이 될 수도 있고, 통일을 주도한 독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당장 발 벗고 나서서 정치적 해법을 준비해야 합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생존, 통치 방식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미국을 설득해 한국전쟁을 종식하고 평화체제로 전환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북한의 불안도 완화되고 남북의 평화적 공존이 가능합니다. 싫어도 할 수 없습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남태현 미국 솔즈베리대 교수·정치학>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며칠 전 국회 연설에서 추미애 민주당 대표가 19세기 말 미국의 사상가 헨리 조지를 언급한 이후 때 아닌 헨리 조지 소동이 일어났다. 추미애 대표는 한국의 토지, 부동산에서 발생하는 불로소득 문제가 심각하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헨리 조지가 주장했던 지대세 혹은 토지가치세의 아이디어에서 배울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과문한 탓인지 모르나 한국의 정당 대표가 국회 연설에서 헨리 조지를 입에 올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닌가 한다. 한국의 망국병인 토지투기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보유세 강화가 필요하다는 추미애 대표의 주장은 지극히 타당하며, 정곡을 찌른 것이므로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망국병이 고황에 이르도록 정치인과 경제관료들은 변죽만 울리고 있었는데 모처럼 핵심을 짚은 정치인이 등장했으니 이제 서민들의 얼굴에도 햇살이 비치려는가.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가 6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런데 이 연설이 나가자마자 조선일보에서는 추미애 대표와 헨리 조지를 싸잡아 공격하고 있다. 중앙일보는 그전부터 이미 토지 보유세를 반대하고 있었다. 이들 한국을 대표하는 보수 언론은 사설과 칼럼에서 학자와 여론을 등장시켜 보유세 강화에 어깃장을 놓고 있는데, 그 논리가 지극히 허약하고 사실에 바탕을 두지 않은 비판이라 마치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돈키호테를 보는 것 같다. 과연 헨리 조지의 저서 <진보와 빈곤>을 읽어봤는지 의심스럽다.

이들 보수 언론의 헨리 조지 공격은 하나부터 열까지 오해와 왜곡으로 가득 차 있다. 헨리 조지를 가리켜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반하는 인물로 묘사하는데, 이것은 백을 흑이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헨리 조지야말로 모든 독점과 불로소득에 반대했던 친자본주의, 친시장경제 사상가이기 때문이다. 20세기 친자본주의, 친시장경제의 챔피언을 꼽으라면 단연 미국 시카고대학의 밀턴 프리드먼 교수다. 이 사람은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고, 그의 제자들이 수도 없이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으니 시장경제를 논하는 데 밀턴 프리드먼은 최고 권위자라고 불러도 좋다. 프리드먼은 이렇게 말했다. “오래전 헨리 조지가 주장했던 토지가치세는 이 세상 세금 중 가장 덜 나쁜 세금(the least bad tax)이다.” 원체 세금을 싫어하는 시장만능주의자인 프리드먼이 이렇게 말했다는 것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이 세상 세금 중 가장 우수한 세금이란 뜻이다. 효율에서 보나, 공평에서 보나 토지가치세를 따라올 세금은 없다. 토지 보유세의 우수성을 증언해준 경제학자가 바로 보수 학자들과 보수 언론이 총애하는 밀턴 프리드먼인데, 한국에서 꽤나 발언권을 행사하는 수많은 그의 아류들은 기를 쓰고 토지 보유세를 반대한다.

또 조선일보에서 인용하는 어떤 사람은 헨리 조지를 가리켜 토지 국유화 혹은 토지 몰수를 주장한 것으로 말하는데, 억지라도 이런 억지가 없다. 헨리 조지가 토지가치세를 주장한 이유는 자본주의가 사유재산에 바탕을 두고 있고, 토지 사유에서 발생하는 불평등과 부조리가 심각하지만 이미 오랜 세월 확립된 토지 사유제를 부정할 수 없기 때문에 토지 국유화나 토지 몰수라는 과격한 방법 대신 토지가치세라는 점진적이고 합법적이며 친시장적인 대안을 제시한 것이다.

토지가치세를 제대로 매기기만 하면 여러 가지 좋은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토지, 부동산에서 발생하는 불로소득이 대부분 사라지므로 그 자체 불평등을 대폭 축소시킬 것이고, 더 이상 부동산 투기에서 이득이 없으므로 사람들이 생산적 활동으로 눈을 돌려 소득증대, 경제성장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부동산 투기를 해봤자 제로섬 게임에 불과하며, 국민소득은 한 푼도 늘어나지 않는다. 한쪽에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폭리를 취한 부동산 부자들이 있다면 다른 쪽에는 집세 인상으로 고통받는 집 없는 서민이 있다. 평생 제조업해봤자 남는 건 없고, 땅값 오른 이득밖엔 없다는 말이 유행어가 돼버렸다. 나라가 이래서야 되겠는가. 비생산적 부동산 투기 게임 때문에 불평등만 커지고, 성장을 저해해온 것이 해방 후 한국의 역사다. 그래서 부동산 투기는 한국의 망국병이다.

이제는 망국병을 치료하고 나라의 틀을 바꾸어야 한다. 부동산 투기를 종식시켜 불로소득의 근원을 차단하고, 국민에게 생산적 활동을 권유하는 최선의 방안이 바로 헨리 조지가 오래전 주장했던 토지 보유세다. 한국을 토건국가로 만든 소위 토건족들은 ‘세금폭탄’ 등 말도 안되는 온갖 이유를 갖다 붙여 종부세를 반대하더니 기어코 위헌 판결을 끌어내는 데 성공했으나 먼 훗날 역사는 보유세가 정당했음을 선언할 것이다. 헨리 조지의 사상이 실현돼야 할 나라가 있다면 바로 지금의 한국이다. 오래전 사상이라고 과소평가하지 마라. 진리 중에는 만고불변의 진리라는 게 있다.

<이정우 경북대 명예교수·경제학>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부산 여중생들의 폭행 사건으로 미성년자의 범죄를 엄벌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청와대 홈페이지에서 진행 중인 소년법 폐지 청원에는 나흘 만에 25만명이 서명했다. 사사건건 반목하던 여야 의원들도 청소년 범죄 처벌 강화에는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청소년 범죄가 저연령화, 흉포화하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바른정당 김세연 정책위의장은 “미성년자라도 특정 강력범죄에 대해서는 처벌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피해 학생과 그들 부모의 심정을 모르는 바 아니다. 시민들이 받은 충격도 엄청나다. 그러나 청소년 범죄에 대한 처벌 강화가 과연 대안이 될 수 있는지 진지하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부산의 여중생들이 또래를 폭행해 피투성이로 만든 사건과 관련해 가해 학생들이 2개월 전에도 피해 여중생을 폭행한 것으로 확인됐다. 사진은 여중생 2명이 피해자를 폭행하는 모습. 연합뉴스

여중생들의 범죄는 잔혹했다. 후배를 철골 등으로 때려 피투성이로 만든 뒤 인증샷을 찍어 친구들에게 돌렸다. 피해 학생은 머리와 입안이 찢어진 채 피를 흘리며 거리를 배회하다 행인의 신고로 겨우 병원에 이송됐다. 가해 학생들은 2개월 전에도 피해 학생을 폭행했다고 한다. 이와 비슷한 또래 폭행 사건이 강릉에서도 있었다. 가해 여고생들은 폭행 장면을 영상통화로 생중계하고, 채팅방에 피해자 사진을 올려놓고 “못생겼다”며 조롱했다. 가해자들은 일말의 죄책감도 없이 “페이스북 스타가 되겠다”는 등의 황당한 얘기를 주고받았다. 엽기적이었던 인천 초등생 살인사건의 범인도 10대 소녀들이었다. 도대체 여중·여고생들이 왜 이런 끔찍한 행동을 저지른 것일까. 10대 시절을 폭력과 악몽 속에서 보낸 이들의 트라우마는 치유될 수 있을까.

아이는 어른의 거울이다. 청소년들을 보면 기성세대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보인다. 물질주의가 기승을 부리는 기성사회, 나와 생각이 다르면 적으로 간주하고 추잡한 말과 글로 상대를 공격하는 어른들의 일상은 10대 소녀들의 범죄와 닮은꼴이다. 장애인과 동성연애자, 양심적 병역 거부자 같은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에게 한국 사회의 강자와 다수자들이 그동안 어떻게 해왔는지 생각해보면 아이들에게 결코 책임을 떠넘길 수 없다. 아이들이 사회에서 보고 배운 폭력을 학교나 자신들만의 공간에서 휘두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국회는 잔인한 범죄를 저지른 청소년에 대해서는 성인과 마찬가지로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방향으로 소년법 등의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기성세대의 자기기만이다. 엄벌한다고 해서 청소년 범죄가 줄어든다는 보장이 없고, 오히려 사건의 본질을 감출 우려가 높다. 문제 청소년이 나타날 때마다 사회에서 영원히 격리시키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되리라 기대하는 것처럼 비현실적이고 무책임한 발상도 없을 것이다. 특히 민주당 이석현 의원이 대표 발의한 형법, 소년법,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특강법) 등 3개 법안의 개정안은 충격적이다. 이 법안은 형법에서 처벌 대상인 ‘형사 미성년자’의 최저 연령을 현행 만 14세에서 12세로, 소년법에서 소년부 보호사건 심리 대상의 범위를 현행 만 10~14세에서 10~12세로 낮추는 것이 골자다. 이 법안에 따르면 초등학생도 사형시킬 수 있다. 사형제 폐지를 공약으로 내건 문재인 정부에서 여당이 이런 법안을 낸다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사형제 찬반 문제를 떠나 폭력적 발상을 한다는 사실 자체가 놀랍다.

한국의 10대들은 감당하기 어려운 짐을 진 채 신음하고 있다. 살인적인 입시경쟁으로 장시간의 학습을 강요당하고 하루하루를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가정과 학교에서 버림받은 청소년들은 정처 없이 거리를 떠돌면서 이와는 정반대의 삶을 살고 있다. 이른바 ‘청소년 문제’는 어른과 사회, 가정과 학교가 낳은 것이다. 정치권의 소년법 개정 추진은 기성세대가 반성과 성찰 없이 모든 책임을 청소년에게 떠넘기는 행위에 불과하다. 지금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감옥과 형벌, 사형이 아니라 대화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왜 이렇게 됐는지 알고 있는가.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정부가 어제 경북 성주의 주한미군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기지에 잔여 발사대 4기를 추가 반입했다. 국방부는 “고도화되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으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고 밝혔다. 또 “향후 적법한 절차에 따라 사드 부지에 대해 일반 환경영향평가를 엄정하게 실시한 뒤 그 결과를 반영하여 최종 배치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했다. 이로써 발사대 6기에 미사일 48발로 구성된 1개 사드 포대가 완전 배치돼 본격적인 작전운용에 들어갔다. 정부의 용어로는 ‘임시배치’이지만 사드 포대 배치 완료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추가 배치된 사드 발사대 4기가 7일 경북 성주군 소성리 기지에 반입된 뒤 설치되고 있다. 국방부와 주한미군이 7일 경북 성주군 소성리 미군기지에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잔여 발사대 4기와 배치 보강 공사를 위한 장비를 반입하고 있다. 정부는 임시배치라고 밝혔지만 이날로 1개 사드 포대가 완전 배치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강윤중 기자

문재인 정부의 첫 외교안보 조치라고 할 수 있는 사드 배치는 오류의 연속이었다. 우선 사드의 전략적 효용성이 확인된 바 없다. 유사시 북한의 공격에 가장 취약한 수도권을 방어할 수 없는 것이다. 후방의 미군 시설 및 증원전력의 보호가 주목적이지만 한국의 핵심 시설 및 전력 방어에 결정적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드는 또 미국으로 날아가는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중간에서 요격할 수도 없다. 상승하는 과정이나 대기권 밖 비행 단계가 아닌 종말 단계에서 중·고고도로 낙하하는 미사일을 맞춰 떨어뜨리는 무기체계이기 때문이다. 사드로는 한국도 지키지 못하고, 미국 본토를 향하는 미사일도 잡지 못한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최근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와 6차 핵실험 후 급히 배치를 결정했다. 마치 북한 미사일 및 핵실험 같은 도발을 막을 수 있는 무기처럼 인식하도록 한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사안의 본질에서 벗어났음을 알 수 있다.

사드 배치는 또한 중국에 대한 지렛대도 완전히 놓치는 결정이다. 중국의 격렬한 반발에서 알 수 있듯이 한·중관계를 회복하기는 더욱 어렵게 됐다. 또 전략적 모호성으로 중국의 이해를 구하려는 문 대통령의 복안도 물건너갔다. 이제는 속수무책으로 중국의 보복을 당할 처지가 됐다. 북핵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중국의 동력도 결정적으로 약화될 수 있다. 중국이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인정하고 비핵화를 위한 노력에 완전히 손을 떼는 일이 초래될 수도 있다는 비관적 전망까지 나온다.

문 대통령은 정부 출범 초기 사드 배치에 대해 박근혜 정부의 배치 과정에 대한 진상 규명과 국회 공론화, 전략 환경영향평가 등 세 가지를 약속했다. 그러나 이 중 어느 하나도 지키지 않았다. 진정 사드가 북한의 핵·미사일에 대해 일말의 효용이 있다면 사전에 시민들을 상대로 배치 필요성을 설득했어야 한다. 그런데 국방부는 사드 배치 전날에야 발사대 4기 반입 계획을 통보했고, 미군은 새벽에 발사대를 성주에 배치했다. 사드 반입에 반대하는 시민들을 막은 채 군사작전하듯 배치를 강행했다. 환경영향평가를 제대로 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도 않았으면서, 또다시 환경영향평가 결과를 반영해 최종 결정하겠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박근혜 정부와 하등 다를 바 없다는 시민들의 볼멘소리가 나오지 않을 수 없다. 결국 문재인 정부는 오락가락 대응에 외교안보 전략 부재만 노출한 채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한 채 사드 배치라는 결론에 다다른 셈이다.

이번 사드 배치 과정은 노무현 정부 초기 이라크 전투병 파병 결정을 연상케 한다. 그때도 노 대통령은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고육지책’이라며 시민 다수가 반대하는 파병을 결정했다. 노무현 정부 실패의 서막이었던 파병 결정을 경험한 문 대통령이 사드 배치를 서두른 것을 이해할 수 없다. 사드 배치는 북핵 문제 해결이 아닌 또 다른 문제의 시작이다. 다행히 환경영향평가 후 최종 결정이라는 장치가 남아 있다. 사드 배치의 전략적 효용성과 중국과의 관계를 재점검해야 한다. 사드 배치를 멈추고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를 견인하면서 한반도 정책에 대한 주도권을 회복할 전략을 만들어내야 한다. 강대강의 대증적 대응으로는 결코 북핵 문제를 풀 수 없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코리아 패싱’이 아닌 ‘배싱 노스 코리아(bashing North Korea)’ 시즌이다. 북한이 6차 핵실험을 감행하자 국제사회는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북한 때리기에 나섰다. 당장이라도 북한이 국제사회에서 고립될 것처럼 보인다. 언론은 당국자 이름은 슬그머니 뒤로 감춘 채 김정은을 정조준한 참수(斬首)작전까지 여과 없이 보도하고 있다. 관련 부대까지 창설한다고 하니 김정은 제거작전을 단순히 공포 마케팅쯤으로 가볍게 넘길 일도 아닌 듯싶다. 비슷한 사례가 없지 않다.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과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의 최후 모습들이 그랬다.

하지만 김정은이 자신의 목을 따려는 군사작전을 두려워했다면 핵실험은 애당초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버지가 갑작스레 사망(2011년 12월17일)한 이후 권력을 움켜쥔 김정은은 무려 핵실험을 네 차례(2013년 2월, 2016년 1월, 2016년 9월, 2017년 9월)나 실시했다. 핵무장만이 정권을 ‘지속가능하게’ 하는 마법의 해결사임을 파악한 것이다. 김정은은 이렇게 ‘한반도 비핵화’를 비웃듯이 내동댕이쳤다. 2루를 밟고서 내친김에 3루를 돌아 홈으로 돌진하려는 김정은이 자발적으로 2루로 되돌아갈 가능성(핵포기)은 매우 낮다. ‘폭풍질주’ 김정은에게 핵포기를 기대하는 것이야말로 ‘낭만적 사고’이다. 대신에 문재인 정부로서는 3루 베이스 코치(중국)가 달려오는 김정은에게 크게 손을 흔들면서 3루에만 머물거나, 아니면 2루로 되돌아가라는 신호만 강력하게 해주기를 기대할 뿐이다. 한국과 일본, 그리고 미국 대도시에 북한 핵무기가 떨어질 확률을 정확하게 계산하기는 쉽지 않지만 과거보다 확률이 높아진 것은 분명한 사실이기에 하는 말이다. 하지만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로 이마저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그렇다면 ‘절대무기’로 불리는 핵무기를 물리적으로 억지하는 방법은 선제공격을 당하고서도 2차 공격(최소 억지력)까지 가능한 핵무기를 확보하는 일이다. 남녀노소 절대다수가 휴대폰을 거의 손에서 놓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이 이러한 능력을 북한처럼 비밀리에 확보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미국이 이스라엘과 파키스탄에 그랬던 것처럼 한국의 핵무장 시도를 묵인하지도 않을 것이다.

국제사회의 예견되는 제재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권이 공개리에 핵무장을 하겠다고 선언할 정치, 경제, 사회 환경을 마련할 수가 있을까. 핵무장 공론화를 통해 국내적 합의(숙의 과정)를 이끌어 낼 1마력의 동력조차 마련되어 있지 않은 게 현실이다. 이념적 분란만 초래할 것이 분명하다. 한국은 따라서 헤징을 점진적으로 제고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 경로이다.

그동안 핵무기를 보유하려는 동기(안보 위협, 국가 위신, 국내 정치 등)에 대한 연구가 다수를 이루었다면 이에 못지않게 핵무기 기술 또는 무기화 경로에 대한 포괄적 정책 연구도 중요하다. 현재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거나 핵무기를 가지려 했던 국가들의 경로가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김정은 정권의 핵 위협에 상응하는 대칭적 핵무장 주장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자칫 현재의 헤징 단계에서 전술핵 도입을 포함하는 핵무장으로 이어지는 도중에 예기치 않은 군사적 충돌이 발생할 확률이 결코 낮지 않다.

따라서 핵무기를 가지려 했던 여타 국가들이 종국적으로 선택한 경로까지 포함해서 비교연구가 올바르게 이루어진다면 우리가 추구해야 할 핵무장 좌표가 어디쯤 매겨져야 할 것인지가 합리적으로 도출될 것이다.

<이병철 평화협력원 핵비확산 센터 소장·북한학 박사>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사서 자취방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진만이 전봇대를 가리키며 정용을 불렀다.

“이것 좀 봐봐.”

정용은 힐끔 전봇대를 바라보았다. 싼 이자, 신축 빌라 분양 같은 광고지 사이에 누군가 방금 붙이고 간 것 같은 깨끗한 전단지 한 장이 나부끼고 있었다.

 

- 집 나간 고양이를 찾습니다.

이름: 미나(2살) 노랑둥이. 눈은 호박색. 사고로 인해 꼬리가 짧음.

미림아파트 7단지에서 실종.

사례금 100만원

 

“이게 뭐?”

정용은 다시 돌아서려 했지만, 진만이 그의 팔을 잽싸게 잡았다.

“사례금이 백만 원이나 된다고.”

전단지에는 사례금 아래 ‘가족 같은 고양이입니다. 꼭 찾을 수 있게 도와주세요’라는 문구도 적혀 있었다.

“백만 원이든 천만 원이든 그게 뭐? 주인도 못 찾는 걸 우리가…”

정용이 퉁명스럽게 말하자, 진만이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와 은밀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 그거 몰랐구나? 나 이거 전문가야.”

말을 하는 진만의 눈빛은 근래 들어 가장 진지해 보였다. 일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정용과 진만은 그날 밤부터 바로 아파트 주변 수색에 들어갔다. 화단에서부터 지하 주차장까지, 정용은 진만을 따라 에어컨 실외기 주위나 주차된 자동차 바퀴 근처를 건성건성 살폈다.

“진짜 집 나간 고양이를 찾아본 적 있는 거야?”

“말도 마.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 좋아하던 여자애가 있었거든. 걔가 고양이를 키웠는데…”

진만은 지하 주차장 배수구 근처에 플래시를 비춰가며 ‘미나야, 미나야’ 작은 목소리로 불러댔다.

“걔네 할머니가 약간 치매기가 있었나 봐. 자꾸 집 밖으로 나가면서 문을 열어놓고… 그러니 고양이가 가만히 있었겠어? 그 고양이를 내가 매번 찾아줬다는 거 아니야.”

“그럼, 그 여자애하고도 잘 됐겠네?”

“걔가 고양이를 찾아주면 도통 집 밖으로 나오질 않아서…”

진만은 말끝을 조금 흐렸다.

“그건 그렇구… 어떻게 그렇게 고양이를 잘 찾았던 거야?”

“간단해. 겁먹은 고양이처럼 생각하면 되는 거야. 겁먹는 거는… 그건 내가 전문가니까…”

첫날, 그들은 새벽 네 시까지 미림아파트 주위를 수색하다가 철수했다. 둘째 날에는 오후 여섯 시부터 고양이를 찾아다녔는데, 진만은 그 전에 동네 다이소 매장에서 쇠로 된 고양이 포획틀을 사오기도 했다.

“백만 원이면 새 고양이를 사고도 남지 않나?”

정용이 혼잣말처럼 구시렁거리자 진만이 바로 말을 받았다.

“가족이라고 생각하니까… 돈이 문제가 아닌 거지.”

정용은 잠시 침묵했다.

“너는 실종되면 가족들이 찾을 거 같아? 사례금 얼마나 걸 거 같아?”

“나? 나는… 나는 아마… 고마워할 걸…”

그들은 그 뒤로 서로 말이 없었다. 계속 ‘미나야, 미나야’ 화단 쪽을 살피면서 부르기만 했다. 술 취한 남자 한 명이 지나가다가 그들을 보고 ‘미나는 이제 없어, 이 자식들아! 떠난 여자라고!’ 하면서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그들은 말없이 그 남자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셋째 날 밤 열 시 무렵 그들은 아파트 단지 뒤편, 야산과 이어진 체육 시설 근처 경계석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고양이 한 마리를 발견했다. 전단지 사진에서 본 것처럼 등 주위에 노란색 털이 나 있는 작은 고양이였다. 무작정 고양이를 향해 달려나가려던 정용을 진만이 막아섰다.

“겁먹은 애들한테 달려가면 더 숨어버려. 그럼 영영 못 찾는다고.”

진만은 고양이와 눈을 마주치지 않은 채 최대한 조심조심 경계석 근처로 다가가 천 원짜리 소시지가 놓인 포획틀을 내려놓았다. 그러곤 오금 펴기 기기에 앉아 가만히 그쪽을 바라보았다.

“계속 이러고 있어야 하는 거야?”

정용이 묻자 진만이 말없이 고개만 끄덕거렸다. 그들은 계속 포획틀을 바라보며 자리를 지켰다. 별이 많은 밤이었다. 차라리, 그냥 아르바이트를 하고 말지, 정용은 그렇게 생각하다가 마음을 바꿔 먹었다. 고양이만 잡으면 세 달 치 자취방 월세를 한꺼번에 버는 셈이었다. 제발 조용히 포획틀로 들어가 주렴, 고양아. 그래도 넌 가족이 애타게 찾는 몸이잖니… 우리는 가족이 피하는 몸이란다… 정용은 까무룩까무룩 졸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고양이가, 노란둥이가, 포획틀 안으로 걸어 들어간 것은 새벽 네 시 무렵이었다. 진만이 포획틀을 향해 뛰어나가는 것을 보고 그제야 정용도 정신을 차렸다. 고양이는, 놀라고 겁먹은 표정으로 얌전히 포획틀 안에 웅크리고 있었다.

새벽 네 시였지만, 진만은 포획틀을 든 채 바로 전화를 걸었다.

“고양이 찾으신다는 분이죠?”

“네? 고양이요? 무슨 고양이요?”

전화를 받은 것은 사십 대 초반의 여자였다. 목소리는 잔뜩 잠겨 있었다.

“저희가 방금 그 고양이 찾았습니다. 바로 데려다주려고 하는데…”

수화기 너머 여자는 잠시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곤 이내 말을 꺼냈다.

“저기요, 그 고양이 다시 풀어주세요.”

“네?”

“다시 풀어주시라구요. 그거 우리가 일부러 놓아준 고양이예요.”

진만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정용을 바라보았다.

“아니, 그게 분명 전단지에는 사례금도 있고 해서…”

“그거 그냥 우리 딸 아이 때문에 적어 놓은 거예요… 우린 이제 고양이를 키울 여력이 안 돼요…”

“저기 그래도 저희가 며칠 밤을 애써서…”

진만이 무슨 말을 더하려는 순간, 저쪽에서 먼저 전화를 끊었다. 진만과 정용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다가 가만히 포획틀에 웅크리고 있는 고양이를 내려다보았다. 고양이는 까딱까딱 포획틀 안에서 졸기 시작했다. 너는 누구냥? 정용은 고양이에게 그렇게 묻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기호 소설가·광주대 교수>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살충제 계란’ 파장 속에서 누구든 이런 질문을 하지 않았을까?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지켜야 하는 보건 당국이 독성화학물질을 만들어 내거나 사용하는 기업 혹은 농장과 결탁을 하고 있다면?” 누구든 했을 법한 질문이다. ‘양심’에 따라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 언론이라면 마땅히 해야만 하는 질문이었고. 영화 <공범자들>을 만든 최승호 PD가 집요하게 MB(이명박 전 대통령)를 잡고 늘어지며 하는 대사처럼 “언론이 질문을 못하면 나라가 망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행히도 그렇게 묻는 언론이 있었고 그 언론이 꼽은 최고의 전문가는 조심스럽게 ‘예스’나 다름없는 답을 내놓았다. 서울대 약학과 정진호 교수는 박근혜 정부의 민정수석실에서 관리했다는 살충제 계란 문제에 대해 정확히 이렇게 말했다.

“현재 발표되고 있는 인체의 유해성에 대해서 급성독성이라는 게 뭐냐면 단기간 많은 양에 노출되는 거거든요. 그 시나리오가 자꾸만 유해하다 안 하다 하는데 사실은 크게 의미가 없습니다. (중략) 제 생각에는 정부 부처는 시끄러울 수 있는 문제를 피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니터링을 적극적으로 해 보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거든요.” 이해한다. 그렇게 소극적으로 말할 수밖에 없는 그의 사회적 위치와 상황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대답은 내게 분명히 “예스”라고 읽혔다.

그 ‘예스’라는 희미한 신호음과 함께 읽기 시작한 책이 있다. <죽음의 식탁>이라는 책이다. 마리 모니크 로뱅이라는 프랑스의 한 공영방송 기자 출신 다큐멘터리 제작자가 지난 수십년간 암, 백혈병, 알츠하이머, 파킨슨병, 불임, 자가면역질환 등의 질병이 비약적으로 늘어난 이유를 조사하기 위해 프랑스, 독일, 미국, 인도, 칠레 등 10개국에서 50명의 과학자, 활동가, 규제기관 대표들과 인터뷰해서 쓴 책이다. 2년간의 방대한 조사와 끈질긴 추적 끝에 저자는 밭이나 농장에서 쓰는 농약, 살충제부터 식품에 들어가는 첨가제와 플라스틱 용기까지 우리 일상에 만연한 독성화학물질이 바로 그 많은 질병의 주요 원인임을 알려준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독성화학물질은 스스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들에겐 발이 없고 마땅히 신을 만한 신발도 없고, 자동차가 없으며 차표도 물론 없다. 인간에게 가서 인간을 무너뜨리고 싶은 의지나 야망도 당연히 있을 리 없다. 다만 인간의 건강이나 환경보다 이윤을 중시하는 기업과 규제기관의 논리가 있을 뿐이고, 그 논리로 잘 먹고 잘사는 대기업과 과학자, 규제기관의 기만과 속임수가 있을 뿐이다. 그로 인해 세상은 어디나 구석구석 독성화학물질과 그로 인한 갖가지 질병이 만연한 곳이 됐고.

세상에, 그래도 아무 문제 없단다. 많이 먹으면 나쁘지만 안 죽을 만큼 조금씩 먹기 때문에 괜찮다는 논리다. 그게 ‘살충제 계란’에 대한 정부의 논리고, 대한의사협회의 논리다. 하지만 왜 정부와 전문가가 괜찮다고 하는 독극물의 ‘일일 섭취허용량’ 개념을 비웃으며 하등 이로울 것이 없는 미량의 독을 우리에게 허용하여 결국 “위험을 감수하는 것은 소비자이고, 그 이익은 기업들이 가져가게” 되어 있는 것이 현재의 체계라고 했던 영국인 교수 에릭 밀스톤의 말이 계속 귓속에 쟁쟁하게 울리는 것인지.

그렇다면 이 사태를 어찌해야 한다는 말인가? 당분간 계란 섭취를 피하는 건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나는 물론 내 가족을 두고두고 괴롭히는 재앙에 가까운 질병을 피할 수 있다면 앞으로 계속 안 먹고 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없다. 계란 하나 안 먹는다고 우리 일상에 만연된 그 많은 먹거리의 위험과 질병에서 면제되는 건 아니라는 얘기다.

어떤 면에서 <죽음의 식탁>보다 훨씬 충격적이었던 피터 싱어의 <죽음의 밥상>이 처음 출간됐을 때 생각이 난다. 그때는 경제적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업형 농장의 횡포와 이를 숨기거나 묵인하는 이들에 대한 분노도 컸지만 그보다는 동물들에 대한 미안함이 컸다. 이전까지 인간의 식탁에 오르는 동물들이 사육되고 도축되는 과정에서 얼마나 잔인하고 비윤리적인 상황에 처하는지 몰랐던지라 어마어마한 충격 속에서 지금껏 아무 생각 없이 육식을 값싸게 즐긴 나 자신을 반성하기에도 벅찼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안된다. 피터 싱어의 <죽음의 밥상> 출간과 광우병 사태 이후 나 자신을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이 윤리적 소비에 대해 생각했고 조금 더 비용을 치르더라도 유기농 혹은 친환경이라는 딱지가 붙은 먹거리를 선택하는 이들이 조금씩 늘어났지만, 친환경 인증에 대한 신뢰는 되레 조금씩 배신당했고 세상은 조금씩 더 나빠졌다.

이제는 정말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까지 유기농 채식주의자가 되지 못한 나는 혼자 그렇게 산다고 상황이 나아질까 비관한다. 그 편이 제일 속 편하니까. 그러면서 문재인 정부에 물어보고 싶다. 국민이 원한다면 농약이나 독극물에 가까운 화학약품을 철저하게 금지하고 기업이 사회적·환경적 비용을 기꺼이 감수하는 등의 시스템적 개혁에 앞장설 수 있는 거 아니냐고? 그토록 지지율이 높은 국민의 정부라면 그럴 수 있는 거 아니냐고? 그 누구도 아닌 국민된 자격으로 물으니 국민에 의해 탄생한 문재인 정부는 답하길 바란다, 오버.

<김경 칼럼니스트>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