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도 군대에 가야 한다?’를 두고 논란이 뜨겁다. 지난달 30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여성 군 의무복무화’ 청원이 올라오면서부터다. 현재 해당 청원에 참여한 인원은 12만1000여명에 이른다.

‘여성의 병역 이행’에 대한 누리꾼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한 누리꾼은 페이스북에 “여성들이 남성보다 부족하고 모자란 게 무엇인가. 모두가 동등하고 존중하는 사회가 되려면 어떠한 방식으로든 여성도 국방 의무에 참여해야 한다”고 찬성론을 펼쳤다. 다른 누리꾼은 “10년 정도 뒤엔 징병 인원이 급감한다는 인구통계 예상이 나와 있다”면서 여성 징병 필요성을 제기했다. 그는 “군 가산점 부여제도를 남녀 모두에게 확실히 적용한다면 ‘군대에 다녀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시당하던 여성들에겐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반대하는 의견도 팽팽했다. 여성들은 대부분 ‘임신·생리·육아’ 등을 미루는 사회구조가 먼저 해결돼야 하는 것 아니냐는 반론으로 맞섰다. 이모씨는 페이스북을 통해 “남녀 간 신체 차이를 논하기에 앞서서 한국 사회가 여성에게 맡긴 ‘역할’들도 고려해야 할 부분 아닌가”라고 말했다.

일부 여성들은 의외로 “가겠다”고 찬성하는 의견을 냈다. 진모씨는 “이럴 바엔 깔끔하게 갈 생각도 있다”면서도 “하지만 ‘우리도 가는데 너흰 왜 안 가’라는 남성들의 반발 심리 때문에 여성이 군대에 가야 한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 군이 여성을 위한 자리를 만들 수 있는지 먼저 자세히 검토해봐야 한다”고 밝혔다.

논쟁의 불똥이 군 내 문제로 튀기도 했다. 정작 남성들도 기피하는 군의 문제점을 개선해야 하는 것이 먼저 아니냐는 주장들이다.

Mik****은 “그 많은 국방예산을 쏟아부었는데 무기도 엉망이고 군 내 복지도 엉망”이라며 “여성 징병을 생각하기 전에 현재 군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고 적었다. 정모씨는 “군에서 소비되는 여성에 대한 배타적인 언어들이나, 여군을 음담패설의 소재로만 쓰는 지금의 군 내 현실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여성 징병을 논하는 것 자체가 시기상조”라고 밝혔다.

<이진주 기자 jinj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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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쯤 열린 철제 정문에 ‘출입금지, 휴교’라고 쓰여 있었다. 미리 알고 갔지만 텅 빈 운동장을 마주하니 실감이 났다. 학교 안으로 들어서자 운동장 주변으로 승용차들이 빼곡했다. 인근 아파트 공사장 관계자들이 세워놓은 것 같았다. 학교 울타리 너머 5층 아파트보다 훨씬 높게 자란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하늘이 맑아서 나무들의 실루엣이 한층 선명하고 늠름해 보였다.

지난 9월2일 토요일 오후, 서울 강남구 개포동 개포주공 1단지 앞 개포중학교. 일군의 작가들이 텅 빈 학교 교실 한 칸을 빌려 ‘재난학교’를 세우고 포럼을 열었다. 나를 토론자의 한 사람으로 불러서 찾아가는 길이었다. 문을 닫은 학교 중앙 현관에 교훈이 그대로 붙어 있었다. 의자 하나 남아 있지 않은 교실 천장에는 영어로 쓴 표어가 덩그러니 매달려 있었다. 폐교 분위기가 물씬했다.

포럼은 2층 3학년 4반 교실에서 열렸다. 이날 사실상 폐교에서 개교한 학교 이름은 ‘재美난학교’다. 아름다울 미(美)자에 학교 설립 정신이 담겼다. 재난학교는 최근 이슈로 떠올라 있는 젠트리피케이션을 포함해 시민이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는 모든 사회적 갈등 상황에 개입하고자 한다. 예술가가 재난 현장에 스튜디오를 설치하고 피해자와 시민의 각성과 연대를 도모한다.

기획자 최소연씨(테이크아웃드로잉 대표)는 “재난은 문화와 예술만이 넘어설 수 있다. 재난 사이에서 아름다움을 읽어낼 수 있다면 재美난 학교가 되어간다”고 말한다. 재난포럼은 이번이 세 번째다. 두 번째는 지난 6월 서울 용산구 한남동 꽃집에서 열렸다. 주인의 무리한 요구에 쫓겨날 처지에 놓인 꽃집에서 열띤 토론을 벌였다. 최씨는 “재난을 스마트폰으로 ‘소비’하는 시대”라며 재난 현장에 직접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스마트폰으로 접하는 영상과 시민의 권리가 침해당하는 현장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접속은 결속이 아니다. 검색이 사색이 아니듯.

개포동은 재건축이 한창이다. 2·3단지에는 타워크레인이 서 있고 1·4단지에는 아직 주민들이 산다. 텅 빈 교실에 스튜디오를 차린 이성민 작가는 개포동에서 자란 원주민이다. 3년 전 귀향했을 때 그는 자신의 기억이 흔적과 만날 수 없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그때부터 혼자 아직 남아 있는 것들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는 개포주공아파트 1단지(5040가구)에 살았거나 살고 있는 사람은 물론, 누구도 눈길을 주지 않아온 ‘살아 있는’ 나무 1만그루에 주목했다.

주민들이 떠나면 30년 넘은 거목들 대부분이 잘려나간다. 사람들의 추억 곳곳에 박혀 있을 1만그루 나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 재건축 관계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도시학자들의 안중에도 나무는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성민 작가는 “우리는 상실에 얼마나 익숙해져 있는가”라며 온라인상에서 ‘개포동 나무 산책 프로젝트’를 전개했다. 이상한 애도였다. 아직 살아 있는 생명에 대한 애도. 이 작가는 “경제 논리로는 답이 안 나올 것”이라며 “작은 질문을 던졌을 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작은 질문이 아니다. 저 질문은 발견이고 경고이며 새로운 시작이다.

발제에 나선 젠트리피케이션 전문가 신현방 교수(런던정경대 지리환경학과)는 우연찮게도 개포중학교 1회 졸업생이었다. 신 교수는 자신도 고향을 상실한 재난 당사자라며 “재건축은 개발 이익을 최대화하는 것으로 못 가진 자를 물리적이고 직접적으로 배제하고 축출하는 구도로 진행된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연구자로서 그간 ‘피해자 인간’에만 관심을 가졌다면서 앞으로 나무와 같은 다른 생명도 연구에 포함하겠다고 다짐했다.

숲 해설가이자 <서울 사는 나무>의 저자 장세이씨는 “나무는 목재가 아니라 엄연한 생명”이라고 말했다. 장씨는 서울의 가로수를 볼 때마다 가로수들이 ‘차라리 죽여달라’고 외치는 것 같다면서 다른 생명들에 겸손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장씨는 ‘나무는 우러르고 풀은 무릎 꿇고 보라’는 경구를 소개한 다음, 주민과 나무를 기억할 수 있는 기념공원을 조성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어 황지훈씨 등 개포동에서 10~30년 거주한 주민들이 ‘장소 상실’에 대한 소회를 나눴다.

나는 토론에서 타자의 처지를 생각하지 못하는 상태가 곧 ‘마음의 재난’이라고 말했다. 세계 최고의 자살률이 말해주듯 도시적 삶 자체, 아니 우리 몸, 우리 내면이 심각한 재난 현장일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지금과 다른 미래를 꿈꿀 수 없다면 우리 모두가 디아스포라(Diaspora)라고 말했다. 그리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진정한 시인이라면 누구보다 먼저 잘려나가는 나무를 아파했어야 하는데, 그간 나는 개발 현장의 나무들에 대해 무심했던 것이다. 정든 장소, 즉 추억을 박탈당하는 것이 얼마나 큰 상처인지에 대해 소홀했던 것이다. 나는 부끄럽고 미안하다고 말했다.

한편으론 고마웠다. 그간 내가 시의 마음으로부터 얼마나 멀어져 있었는지를 재난학교가 환기시켜줬기 때문이다. 재난학교에서 나는 토론자가 아니고 학생이었다. 포럼을 마치고 참가자들은 나무가 우거진 아파트 단지를 걸었다. 나는 오래된 등나무 앞에서 이런 문장을 떠올렸다. ‘나무가 말을 하지 않는 이유는 우리가 말을 걸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을 걸기로 했다. 내 앞에 있는 사람에게, 생명에게. 물론 정치와 미래에게도.

<이문재 | 시인·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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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부산에서 일어난 청소년 폭행사건을 계기로 여러 영역의 전문가들이 언론을 통해 각자의 주장을 펼치고 있다. 이들은 서로 다른 시각에서 ‘소년법’ 폐지, 처벌을 강화하는 쪽으로의 ‘소년법’ 개정, 신중한 대처 따위를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 주장은 대체로 청소년 비행이나 범죄의 처분이나 처벌에 중점을 두고 있다. 비행 청소년의 재활 현장을 묵과함으로써 비행 청소년의 삶을 온전히 망라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소년법’을 놓고 서로 옥신각신하기 전에 최소한 보호처분을 받은 비행 청소년 중 소년분류심사원이나 소년원에 수용되어 있는 아이들의 실상을 냉철하게 살펴보아야 할 터이다. 이 시설이야말로 비행 청소년의 진면목을 보여주고 있어서이다. 

부산의 여중생들이 또래를 폭행해 피투성이로 만든 사건과 관련해 가해 학생들이 2개월 전에도 피해 여중생을 폭행한 것으로 확인됐다. 사진은 가해자들이 피해자를 폭행하고 휴대폰으로 찍는 모습. 연합뉴스

과정이 좀 복잡한데, ‘소년법’에 의해 처분을 받은 비행 청소년은 소년분류심사원과 소년원을 거치며 상담, 교육, 보호를 받는다. 굳이 ‘소년법’에 의하지 않더라도 부모나 각급 학교장의 의뢰로 법원을 거쳐 청소년비행예방센터에서 상담과 교육을 받기도 한다. 비행이 심한 경우에는 아예 소년분류심사원에 수용되어 법원의 심리를 받아야 한다. 경찰이나 검찰이 청소년의 일탈 행위를 범죄가 아닌 비행으로 판단하면 ‘소년법’에 따라 보호처분을 받게 된다. 실제로 이들 청소년은 보호자, 보호관찰소, 아동복지시설, 병원 및 요양원, 소년원에 위탁 및 수용되어 상담과 교육 및 감독을 받거나 사회봉사에 임한다. 특히 소년원 수용은 보호처분에서 가장 무거운 것이고, 소년분류심사원을 거치며 짧게는 1개월 이내, 길게는 2년간 지내며 교육과 보호를 받는다. 바로 이 현장의 상황을 빠뜨린 채 ‘소년법’에 관한 주장이나 논의가 진행되고 있어 몇 가지를 지적하겠다.

첫째, 청소년이 비행으로 처분을 받는 과정에서 관련 기관이나 개인 중에 바르게 대처하지 못한 사례가 적지 않다. 예컨대 형법에 따라 형사처벌을 받아야 할 청소년이 보호처분을 받았다면 이는 경찰에서 시작하여 법원을 거치는 동안 적법하지 않은 뭔가가 연루되었다고 보아야 마땅하고, 이런 청소년을 소년원에서 감당하기에는 불가항력이다.

둘째, 법무부는 비행 청소년을 수용하는 소년분류심사원과 소년원의 시설을 합당하게 갖추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물론 최근 10명 안팎의 인원이 한 방에서 생활했던 것을 3~4인으로 줄여가고 있지만 여전히 이들 청소년에게 절실한 교육과 보호에는 크게 미치지 못하고 있다. 거슬러 올라가 2006~2007년에 전국의 소년분류심사원과 소년원을 구조조정 차원에서 9곳이나 없앴다가 다시 2곳을 재개한 것은 국가가 전혀 비행 청소년의 재활에 관심을 두지 않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셋째, 이들 시설에 근무하는 보호직 공무원이 과연 비행 청소년을 이끌어갈 수 있는 합당한 능력을 갖추었는지 심각히 고민해야 한다. 보호직 공무원을 선발하고, 이들의 근무 여건이나 처우가 합당한지 따져보아야 한다.

사회적으로 중요한 사안임에도 국가가 사후약방문 식으로 어설픈 방안을 전시적으로 마련할 것 같아 걱정이다. ‘소년법’ 논의를 책상머리에서 할 것이 아니라 관련 현장부터 샅샅이 뒤져보아야 한다. 그곳에서 생활하고 있는 청소년들의 처지를 주목하고, 나아가 직원들의 귀한 경험을 귀담아들어 답을 찾아야 한다.

<최옥채 | 전북대 교수·사회복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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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학생을 둔 학부모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 강서구 주민들 앞에서 무릎을 꿇고 큰절까지 했다. “때리시면 맞겠다”며 특수학교를 설립할 수 있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장애학생을 뒀다는 이유로 ‘죄인’이 된 한 엄마는 마이크를 잡고 울먹이며 말했다. “장애아동도 교육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여러분도 부모이고, 저도 부모입니다. 제발 도와주십시오. (특수)학교는 포기할 수 없습니다.” 그러자 한 남성 주민이 “저게 100% 쇼라고! 짜고 치는 고스톱이야”라고 했다. 지역 주민을 대표해 나온 한 여성은 “강서구에는 기피시설이 죄다 모여 있다. 못사는 지역을 생각해달라고 하는데 언론은 ‘님비’라고 하거나 집값 때문에 반대한다고 왜곡보도를 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를 지켜본 장애학생의 아빠는 “(특수학교는) 절대로 혐오시설이 아니다”라고 강변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5일 오후 서울 강서구 탑산초등학교에서 열린 강서지역 특수학교 설립 교육감-주민토론회에서 지역 주민들이 장애인 학부모의 발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5일 서울 강서구 가양동 옛 공진초등학교 자리에 특수학교가 들어설 수 있게 해달라고 지역 주민에게 호소하기 위해 토론회에 참석했던 학부모들은 깊은 상처만 안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기피시설 대신 한방의료원을 설립해야 한다”는 지역 주민들의 반발은 장애학생 학부모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한국 사회의 님비와 장애인 혐오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다. 특히 장애학생 엄마들이 무릎 꿇는 장면을 담은 동영상이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확산되면서 시민들의 공분이 들끓고 있다.

강서구 주민들이 한방의료원 설립을 요구하게 된 불씨는 김성태 자유한국당 의원이 제공했다. 김 의원은 지난해 4·13 총선 때 ‘강서 르네상스’를 내세우며 <동의보감>을 펴낸 허준이 태어난 옛 공진초교 부지에 한방의료원을 설립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옛 공진초교 부지의 소유주인 서울시교육청과는 단 한 차례의 협의도 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보건복지부는 10일 “한방의료원 건립과 관련해 어떤 계획도 갖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한방의료원 설립은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의 말처럼 김 의원이 만들어낸 ‘가공의 희망’이었던 셈이다. 시민들은 강서구 주민들에게 묻고 있다. “장애학생 학부모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과 ‘강서 르네상스’, 대체 뭣이 중헌가.”

<박구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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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구라는 도구가 있어 갈고리처럼 생겼는데, 왜 요구라고 부르는지 물었는데 자꾸

처음부터 있었다고 해. 사전에는 필요한 도구가 要具라는 거지. 이 요구로 무거운

생선궤짝을 찍어 당기면, 경험만 있음 할머니들도 거뜬히 배에서 언 선동오징어

60마리 상자를 옮기지. 이 요구는 길이가 30에서 50센티미터, 1미터 정도로 각각

다른데 그건 일꾼들마다 키와 몸이 다르니, 체형에 맞게 만든다고 해. 허리를

굽히지 않게 하기 위해서지. 허리는 굽히지 말고 무릎만 굽히라고 그러는군. 그러고

보니 공판장이나 어시장에서 이 요구만큼 적절한 도구가 없더만. 이 요구로 자기 발등

이나 무릎을 한 번은 찍어야만 바다가 사람을 받아준다는군. 한번은 이 요구를 들고

바다에 바닷물을 받으러 갔어. 이 요구로 지난날을 모두 찍어버리려 했지. 그리고

누군가에게 물었어. 나는 누구냐고 나의 괴로움은 무엇이냐고. 처음부터 있었다고 해. - 성윤석(1966~)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펜을 들었던 손으로 손에 익지 않은 요구를 사용하는 일, 자신이 쓴 글이 자신을 괴롭히듯 요구가 제 발등을 찍는 일, 그 날카로운 도구로 지난날을 다 찍어버리고 싶은 충동, 그런 경험을 거치고 나서, 어느 날 시적 화자는 요구가 팔에 달린 또 하나의 팔이 되어 있는 걸 발견하지 않았을까? “나는 누구냐고 나의 괴로움은 무엇이냐고” 펜으로 그토록 간절하게 물었던 물음을, 머리와 글이 대답해 주지 않았던 물음을, 팔에 새로 돋은 요구가 대답해 주지 않았을까? 공기처럼 물처럼 “처음부터 있었다고”. 눈과 귀처럼 팔다리처럼 처음부터 몸에 달려 있었다고.

<김기택 |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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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2017년 유엔 특별보고관으로서 집회·결사의 자유 실태 파악을 위해 여러 나라를 방문했다. 그중 한국에서는 역동적인 시민사회와 민주적 가치를 주장하는 대중들로부터 깊은 감명을 받았다. 한국은 저항과 대중행동이라는 활기 넘치는 전통을 지니고 있다. 한국 사람들은 거리로, 권력의 중심부로 나서 자신의 생각을 피력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를 민주적인 의무로 즐겁게 받아들인다.

방한 후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이 전통이 여전히 살아있음을 다시 확인했다. 20주가 넘도록 부패한 정권에 맞서 주말마다 수백만명이 거리를 메웠고, 놀랍게도 이로써 대통령 탄핵을 이끌어냈다. 세계 각국에서 저항해도 소용없다 절망하는 활동가를 만날 때마다 나는 ‘한국을 보라. 민중이 단결하면 힘을 갖게 된다’고 강조했다.

한국 시민사회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 중 하나는 촛불집회에서도 볼 수 있었던 노동조합의 적극적인 역할이다. 많은 나라에서 노조의 힘이 약화하고 있어서 한국 노조의 활약은 특히 인상적이다. 자유시장 근본주의와 함께 가는 세계화는 대기업의 권력을 대폭 확대했고 소수의 손에 부를 집중시켰다. 동시에 기업을 규제하는 국가의 힘과 의지는 훼손되었다. 투자 유치를 명분 삼아 국가가 규제 권한을 스스로 포기하기도 한다. 글로벌 경제 질서의 변화는 노동자들이 집회·결사의 자유 행사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방한 당시 법과 관행에 ‘노조 할 권리’가 가로막힌 사례를 여러 차례 청취했다. 노동3권이 명시된 헌법이 있지만 노동자들이 발 딛고 선 현실은 장밋빛과는 거리가 멀다. 비정규직 노동자들, 특히 하청노동자와 간접고용노동자, 그리고 교사, 공무원, 해고자들은 노조하기 매우 어렵다. 법은 이들의 결사의 자유를 사실상 박탈하고 있다. 사측이 직접 나서 어용노조가 교섭권을 독점적으로 누리는 다수노조로서 민주노조를 대체하도록 협동 작전을 펼친 발레오전장 사례는 충격적이었다.

파업권 역시 매우 제한적이다. 고용 조건에 대한 사안을 넘어서는 문제로는 파업을 할 수 없고, 정부가 “불법 파업”이라고 간주하면 파업 참가자는 업무방해죄로 형사처벌을 받거나 손배소를 당한다.

경제적 조건 역시 나빠지고 있다. 고용불안과 소득불평등이 큰 문제다. 전체 노동자의 절반이 비정규직이고, 이들 노동자의 임금은 정규직 노동자의 62%에 그친다. 정규직 노동자라도 상황이 좋지는 않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지난 10년간 임금인상률은 GDP성장률에 못 미쳤다. 이대로라면 한국 경제는 지속가능하지 않으며 더 악화될 것이다.

노동자와 사용자의 불평등한 관계를 바로잡을 수 있는 집회·결사의 자유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유력한 도구다.

노조 조직률과 단체협약 적용률이 높을수록 소득불평등은 낮아진다. 이것은 고도로 복잡한 과학이 아니다. 그러나 집회·결사의 자유는 한국 사람들이 이를 자유롭고, 왕성하게, 아무런 간섭 없이 행사할 수 있을 때만 그 효과를 발휘한다.

반갑게도 문재인 대통령은 결사의 자유에 관한 ILO 핵심협약 87호, 98호를 비준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부의 역할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한국 방문 보고서에서 강조한 것처럼 국가는 국제인권법이 보장하는 모든 권리의 행사를 촉진할 의무가 있다. 노조 할 권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국가는 “중립적”이어서는 안된다. ‘중립’은 초국적 기업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노동자들의 권리를 짓밟는 것을 관망할 때 정부가 쓰는 단어다. 국가는 집회·결사의 자유를 손쉽고 안전하게 행사할 환경을 조성하는 촉진자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

민주주의의 역사는 짧지만 오늘날 한국은 인권과 민주주의 문제에서 세계의 리더 역할을 하는 나라 중 하나다. 현재 한국의 리더십이 절실하게 요구된다. 세계와 세계 경제가 눈부신 속도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노동권 보호 수단 역시 그만큼의 속도로 빠르게 적응해야 한다. 한국 정부가 앞서 그 길을 이끌기 바란다. 정부가 이 길에서 벗어난다면 한국의 역동적인 시민사회가 나서야 한다.

<마이나 키아이 | 전 유엔 집회결사의 자유 특별보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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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은 항상 자기극대화와 영속성을 지향한다. 그것이 권력의 속성이다. 권력 스스로에 의한 권력의 절제와 분산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권력의 흥망에 관한 인류의 역사가 이를 생생히 증언해준다. 집중된 권력은 항상 부패했으며, 권력이 극대화로 치달을 때 권력의 위세를 시험하기라도 하듯 권력은 예외 없이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유린했다. 따라서 국민의 자유와 권리가 최대한으로 보장되는 자유국가를 이루기 위해 권력의 남용 방지가 최우선적 과제가 된다.

또 이를 위해서 권력으로써 권력을 견제하는 장치들을 만들어야 한다. 이러한 생각을 프랑스의 퇴임 고위법관인 몽테스키외가 18세기 중반에 그의 역저 <법의 정신>에서 정리한 것이 바로 삼권분립론이다. 즉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국가권력을 입법권·사법권·행정권으로 분할하고, 이들 권력을 각각 분리·독립된 별개의 국가기관들에 분산시킴으로써 특정의 개인이나 기관에 국가권력이 집중되지 않도록 하고, 더 나아가 권력상호 간에도 여러 견제장치들을 두어 견제를 통한 균형을 유지하도록 하는 헌법상의 기본원리 말이다. 이러한 고전적 권력분립론을 한층 발전시킨 현대의 ‘기능적 권력분립론’은 ‘국가권력의 분립’을 ‘국가기능의 배분’이라고 보면서 권력분립의 개념 대신에 ‘국가기능의 분할’이라는 개념을 사용하여, 국가기능을 정책결정, 정책집행과 함께 ‘정책통제’ 기능으로 나눈다. 이때 ‘정책통제’의 하나로서 ‘기관 상호 간의 통제’를 중시한다. 즉 현대의 기능적 분립론에서는 같은 행정부 내부에서도 행정권을 분산하고 상호 견제를 할 수 있게 함으로써 ‘기관 상호 간의 권력통제’를 이루는 데에도 방점을 둔다.

결론부터 말해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도입은 검찰에 집중된 수사권과 기소권의 일부를 공수처에 분산함으로써 현대의 권력분립론이 지향하는 기관 상호 간의 권력통제를 이루기 위한 것이라고 믿는다. 헌법의 기본원리들 중 하나인 권력분립원리를 국가의 사정기능 수행과 관련해 구현해 내려는 헌법실천적 제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우리나라 검찰은 수사권, 경찰의 수사에 대한 수사지휘권, 영장청구권, 재판에 넘길지 여부를 결정하는 기소권, 재판에서의 공소유지권, 유죄판결 이후의 형집행권 등 광범위한 형사사법의 사정권한들을 독점하고 있다. 재판권을 제외하고는 모든 형사절차상의 권한들이 검찰에 주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검찰에의 막강한 권한 집중은 세계적으로 유사한 예를 찾아보기 힘들다. 그리고 이러한 집중된 검찰권의 행사와 관련해 우리 검찰은 권력형 비리사건들에서 검사에 대한 인사권을 쥔 대통령이나 여당 권력으로부터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지 못한다는 비난에 시달려왔다. 이러한 정치적 중립성 시비와 관련될 수밖에 없는 전직 대통령,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 판검사 등 고위공직자 및 그 가족의 비리를 수사, 기소할 수 있는 권한을 나누어 가지는 독립기관을 두자는 것이 바로 공수처 아이디어이다. 사정권한의 분산은 검찰과 공수처 간에 선의의 경쟁을 통한 상호 견제를 유도해내고 전체적으로는 사정권한의 합리적인 행사로 이어질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선의의 경쟁은 길게 보면 검찰권력의 지나친 비대화를 막을 수 있고, 정치적 사건에 대한 검찰의 수사와 기소 부담을 덜어 정치적 중립성 시비를 줄이는 데에도 기여할 것이다. 검찰 스스로를 위해서도 유익한 제도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미 1996년 당시 야당인 새정치국민회의가 발의한 부패방지법에 내용으로 들어간 이 공수처 아이디어는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을 거치면서 수차례 법안 발의까지 되었으나 무산되었다. 지금 현재도 3개의 공수처 설치 관련 법안이 발의되어 있고, 법무부도 법무·검찰개혁위원회의 논의를 거쳐 곧 공수처 관련 법안을 만들어 발표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번 정기국회에서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치열한 토론을 통해 바람직한 내용의 공수처법을 만들어 통과시켜야 한다. 공수처는 그 정치적 중립성 확보가 생명이다. 공수처장을 비롯한 공수처 구성원들의 임명에 있어 어느 한 권력이 이를 좌지우지할 수 있게 해서는 안될 것이며, 공수처의 직무수행 과정에서도 독립성을 보장할 세밀한 장치들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검찰에 의한 기존의 지나친 권한 집중상태는 헌법적으로 비정상이다. 공수처 도입은 헌법상의 권력분립원리의 명령에 따라 이러한 비정상을 정상화시키라는 국민들의 당연한 요구를 이행하기 위한 노력의 하나일 뿐임을 국회는 꼭 명심해야 한다.

<임지봉 |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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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에 대한 혼란과 불신이 커지고 있다. 정부가 북핵 도발에 즉흥적 군사 대응으로 일관하면서 대북 원칙을 수시로 뒤집은 탓이다. 특히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를 계기로 지지층과 여권 내부에서조차 실망감을 드러내고 있다. 이러다가 자칫 외교안보 정책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드 논란은 정부 정책 불신의 대표적 징표다. 정부는 박근혜 정부의 사드 배치 과정에 대한 진상규명과 국회 공론화, 전략 환경영향평가를 약속했지만 결과적으로 이 중 어느 것도 지키지 않았다. 환경영향평가 실시 발표 하루 뒤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미사일을 발사하자 ‘우선 배치’로 입장을 바꾼 것이나 사드 배치에 앞서 반대 시민을 설득하는 절차를 생략한 것은 정부 스스로 약속한 것을 저버린 행태다. 사드 배치 후에야 문 대통령이 대국민메시지를 통해 불가피성을 호소했지만 종교·시민단체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즉각적인 배치 철회를 요구했다. 군사적 실효성에 대한 의구심을 해소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민주적 절차 존중 약속도 지키지 않은 정부의 조치를 시민들이 불신하는 것은 당연하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과 부인 리설주가 평양 목란관에서 열린 6차 핵실험 참여 핵 과학자·기술자 초청 축하연회에 참석했다고 10일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연합뉴스

사드 배치 후 한반도 안보상황에 큰 변화가 없다는 점도 정부 불신을 키우는 요인이다. 북한은 지난 9일 예상과 달리 도발하지 않았지만 여기서 도발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북한은 핵보유국 완성을 위해 ICBM 등에서 기술적 보완이 필요한 상황이다. 미국도 B-1 전략폭격기를 동원해 훈련을 실시하는 등 강경 대응기조를 이어갔다. 한반도 안보지형은 한·미·일 대 중·러의 신냉전구도가 점점 뚜렷해지고 있다. 도대체 사드 배치로 한국이 뭘 얻었는지 시민들은 정부에 묻고 있다.

정부가 한반도 문제의 한국 주도, 대북 대화 등 큰 원칙에서 오락가락하고 있는 것은 더 큰 문제다. 타협이나 조정이 불가능한 원칙을 뒤집는 정부를 신뢰할 시민은 없을 터이다. 문 대통령은 그 이유로 ‘엄중한 안보상황’을 제시했지만 원칙과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도 그 못지않은 엄중한 사안이다. 

이런 틈을 타 보수층은 전술핵 재배치와 핵무장론을 제기하고 있다. 자유한국당은 오늘부터 국회에 나가 핵무장론을 요구하기로 했다. 야당의 ‘핵 대 핵’ 주장은 위험하고 군사적 실효성도 없지만 북한의 잇단 도발에 불안해하고 강력 대처를 원하는 시민의 지지를 얻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야당의 전술핵 재배치 및 핵무장론 공세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정부 스스로 북한 도발에 즉흥적 군사 대응을 해온 관행부터 버려야 한다. 엄중한 안보상황 때문에 명분도, 실효성도 없는 사드를 배치해야 한다면 전술핵 재배치나 핵무장 요구 역시 수용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북한이 핵보유국 지위를 눈앞에 둔 지금 한반도 정세는 중대 기로에 놓여 있다. 그럼에도 정부가 외교안보 정책과 운영 기조를 이대로 유지한다면 대내적으로는 혼란과 분열을 면하기 힘들어지고 대외적으로는 북핵 문제의 관객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외교안보 정책 전반에 걸친 총체적 점검이 반드시 필요하다. 큰 틀의 정책 원칙을 재확인하고 대응 기조와 매뉴얼도 재정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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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이 11일부터 국회 보이콧을 철회하기로 했다. 이날 아침 의원총회에서 보이콧 철회를 최종 확정하면 국회는 1주일 만에 정상화한다. 한국당의 보이콧 전격 철회는 당초 예상보다 냉담한 여론 앞에서 명분 없는 장외투쟁을 더 이상 끌고 가기 어려웠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당은 더불어민주당이 작성했다는 이른바 ‘언론장악 문건’에 대한 국정조사 추진을 복귀 명분으로 내걸고 “원내·외 투쟁을 병행할 방침”이라고 했다. 궁색한 설명이다. 국정조사는 국회 복귀를 위한 형식적 명분일 뿐 시민, 언론, 심지어 같은 야당 누구에게도 지지받지 못하는 뜬금없는 장외투쟁에 내부에서조차 회의를 제기한 게 주요인이었을 것이다. 이유야 어쨌든 제1야당의 국회 복귀는 다행스러운 일이다.

한국당은 지난 주말 오후 서울 강남 코엑스광장에서 대규모 장외집회를 열었다. 홍준표 대표와 정우택 원내대표를 필두로 연단에 오른 인사들은 문재인 정부에 대한 원색적인 비판과 비난을 쏟아냈다. 이들의 자극적인 연설에 집회 참가자들은 “문재인을 탄핵하라”는 등의 구호를 연호하기도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즉각 석방과 출당 반대를 외치기도 했다. 박 전 대통령 탄핵 후 대한문 앞에서 탄핵반대집회를 열다가 사라졌던 태극기 부대가 강남에 다시 출현한 양상이었다. 한국당은 15일 대구에서 2차, 그 다음주에는 부산에서 연이어 3차 장외집회를 열 계획이라고 한다. 홍 대표는 “전술핵 재배치와 핵무기 개발을 위한 1000만명 서명운동을 시작하겠다”고도 했다. 보수층을 결집시키고 바닥을 헤매는 지지율을 반전시켜보겠다는 심산이겠지만 이런 시대 퇴행적 행태에 박수를 쳐줄 시민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번주부터 국회는 대정부질문을 시작한다. 외교안보는 물론이고 정치·경제·사회 모든 분야에 난제가 수두룩하다. 한국당은 107석을 지닌 제1야당으로서 따질 건 따지고 제안할 것은 제안하며 존재감을 높일 수 있는 의정을 펼쳐주길 바란다. 국정 발목을 잡는 행태로는 당의 입지만 좁아질 뿐이다. 홍 대표는 청와대가 제안한 문 대통령과 여야 대표 회동에도 조건 없이 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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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닭장 앞에 쪼그려 앉아 있다. 나무판자를 잇대어 만든 작은 문을 열고 새로 온 병아리들을 한 마리씩 살펴본다. 하루 이틀 지나면 병아리들이 닭장에서 나와서 널찍하게 쳐진 울타리 안을 돌아다닐 것이다. 세 아이 모두 밭에 오면 닭장부터 들렀다. 새 병아리를 들이면 더 자주 와서는 병아리를 보고, 낯을 익히고, 그렇게 몇 번 지나서 아이들은 병아리마다 별명 비슷한 것을 붙였다. 시골에 내려와 밭을 마련한 다음, 곧바로 한 것이 밭 한쪽에 닭장을 짠 일이었다. 닭장을 짜고는 얼마쯤 자란 병아리를 구해다가 닭장에 풀어놓았다. 봄에 넣은 병아리가 중닭이 되고, 제법 자라면 어느 때부터 달걀을 하나씩 낳기 시작한다. 그렇게 해서 처음으로 닭이 방금 낳은 따뜻한 달걀을 쥐어 보기도 했다. 며칠 달걀이 모이기를 기다렸다가 식구 수만큼 차면 아침 밥상에 달걀 하나씩을 올린다. 그렇게 닭을 키웠다가 올해는 닭장이 비었다. 봄에 들개들이 닭장을 헤집어 놓았기 때문. 다시 병아리를 구하려고 했지만, 올해 봄에는 조류독감과 구제역 같은 이유로 작은 병아리를 구하기가 어려웠다. 한 해 꼬박 빈 닭장. 그렇게 닭장은 비었는데, 한 해 내내 닭과 달걀 소식이 오르내렸다.

DDT가 달걀과 닭에서 검출된 경북 영천시 도동의 양계농가. 케이지에서 밀식하지 않고 자유롭게 흙목욕을 할 수 있도록 양호한 시설을 갖춘 농가이지만 DDT가 검출되어 토양오염이 의심되는 상황. 우철훈 기자

달걀을 얻으려고 기르는 많은 닭들은 대규모 농장의 좁은 닭장(케이지) 안에 산다. 토막내어 잘려진 프라이드치킨 한 마리가 얼기설기 놓여 있는 종이 상자. 그거 서너 개쯤 쌓아 놓은 부피 안에, 온전한 모습을 한 닭이 서 있다. 아마도 뒤돌아 서기 어려운 작은 샤워 박스 같은 것보다 더 좁은 느낌일 것이다. 하루를 꼬박 그 안에서 보낸다. 사료를 먹고, 똥을 누고, 세상을 둘러보고, 주위의 소리를 듣고, 잠을 잔다. 닭은 날마다 같은 날을 보내고, 달걀을 낳는다.

닭은 온 세계로 보아도 사람이 잡아먹기 위해 기르는 가축과 가금 가운데 압도적으로 숫자가 많다. 마릿수로 보면, 나머지 모든 잡아먹는 새와 짐승의 숫자를 합친 것보다 예닐곱 배쯤 되는 닭을 잡는다는 통계도 있다. 온 세계 사람 숫자에 견주면 한 해에 한 사람이 일여덟 마리 닭을 잡아먹는다. 양념치킨, 혹은 치맥이야말로 한국의 음식이니까, 우리나라도 사정은 별로 다르지 않고. 이어서 들리는 소식은 상자를 조금 더 키운다고도 하고, 닭장 안을 더 깨끗이 한다고도 한다. 약을 뿌리는 방법을 다시 교육시킨다고도 한다.

어디에선가는 디클로로디페닐트리클로로에탄(DDT) 성분이 나왔다고도 했다. 시골에서는 아직도 이것을 마법의 흰 가루로 여기는 할매들도 있다. “무 심궈 먹을 적에는 DDT 좀 뿌려야 해.” 십 년 전 처음 무밭을 가꿨을 때, 서툴기 짝이 없는 젊은이가 안쓰러워서 마을 누군가는 주인 몰래 DDT를 뿌려주기도 했다. 결국 그것은 갈아엎고, 그 자리에는 작은 뒷간이 들어섰다. 그래도 DDT는 사라지지 않는다고 한다. DDT가 뿌려지지 않은 밭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다. 그렇게 죽임을 당한 닭들은 여느 닭하고는 다르게 맨땅을 밟고, 하늘을 보고, 흙에 날개를 비비며 살았다고 했다. 물통 가장자리에 늘어서서 물 한 모금을 먹고, 하늘 한 번 보고, 물 먹고 하늘 보고 그랬을 것이다. 농부는 그렇게 닭과 함께 살았다. 아마도 건강했을 것이다. 닭도 농부도. 

박선미의 책 <달걀 한 개>에는 마당을 헤집으며 장독을 깨기도 하고, 세이레 동안 꼼짝 않고 알을 품기도 하며 살아가는 닭의 이야기가 있다. 어렵사리 달걀 한 개를 얻은 아이가 강 건너 할머니에게 이것을 가져다줄까 하는 대목도 있다. 이제 그런 풍경은 수십 년 전 이야기가 되어서 도무지 이곳에 있었던 일로 믿지 못하는 사람도 있겠다. 우리나라 시장에서는 심지어 흰 달걀마저 구하기 어려운 형편이 되었으니까. 다만 이제는 꼼짝 못한 채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닭과 충분히 더 무해한 화학약품 따위의 도움을 받아, 우리는 달걀 한 개, 두 개가 아니라 달걀 몇 줄, 몇 판 하는 식으로 손에 잡히는 대로 달걀을 재어 두고 사는 복을 누리게 되었다.

<전광진 | 상추쌈 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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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어린 학생들이 벌이는 강력범죄가 늘어나면서 ‘소년법’을 폐지하라는 주장이 등장했다. 정작 보호받아야 할 피해자들은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청소년이란 이유로 법을 악용하는 잔인무도한 가해자들만 보호하고 있다는 것이 이유다. 순식간에 사회적 이슈로 부상했고 몇몇 정치인들은 발 빠르게 개정안을 발의했다. 보호해야 하는 청소년의 나이를 낮추고 처벌을 강화한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얼마 전 구스 반 산트 감독의 영화 <엘리펀트>를 봤다. 미국의 한 고등학교에서 있었던 총기 난사사건을 다룬 영화다. 영화는 여느 날의 일상과 다르지 않았던 그날의 일상 속에서 일어난 끔찍한 사건을 다룬다. 영화적 허구이지만 총기를 난사한 학생은 학교 안에서 괴롭힘을 당하는 아이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모른 척한 교장선생님에게 이렇게 경고한다. ‘다른 애들이 괴롭힘을 당한다고 찾아오면 귀를 기울여라. 자신들처럼 대하지 말라’고. 영화는 ‘왜 이런 끔찍한 일이 벌어졌을까’를 질문한다. 그리고 나와 다르지 않은 ‘악마’를 마주하게 함으로써 ‘악마’라는 존재에 대해서도 질문하게 한다.

영화 <엘리펀트> 스틸컷

정말 아이들이 무서워졌다. 가슴이 철렁하고 어떻게 인간이 저런 일을 벌일 수 있을까, 어떻게 아이들이 저렇게 잔혹할 수 있을까 싶다. 인간에 대한 깊은 회의가 들기도 한다. 언론을 통해 만나는 아이들의 모습은 마치 악마와도 같다. 저 악마들만 퇴치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 같기도 하다. 이런 인식이 ‘소년법’ 논의의 출발일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나는 ‘소년법’ 논의를 보면서 본말이 전도됐다고 느낀다. 그들의 주장처럼 아이들은 몸도 마음도 커졌고 어른 뺨칠 만큼 흉악무도하며 제도의 허점을 이용할 줄 알 정도로 영악해졌다. 그래서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도 질 수 있을 것 같다. 동의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의 책임’ 전에 ‘우리 사회는 그들을 몸도 마음도 어른만큼 커진 존재로 인정했는가?’를 먼저 질문해야 한다.

악마가 된 아이들을 탓할 게 아니라 악마를 만들어내는 사회에 대한 성찰이 먼저다. 우리 사회는 그들을 온전히 인간으로 대한 적이 있는가? 어리다는 이유로 내 말대로, 사회가 시키는 대로 하라고 윽박지르지는 않았나? 네가 뭘 안다고, 판단능력이 부족하다고 선거권을 주기에는 아직은 이르다고 하지 않았나? 왜, 무엇이 아이들을 ‘악마’로, ‘괴물’로 만들었는지를 먼저 질문해야 한다.

이런 질문이 빠진 ‘소년법’ 논의는 헛일이다. 축출, 격리가 답이 아니라는 사실은 우리 모두 알고 있다. 지금은 내 눈앞에 없지만 우리는 어떻게든 연계되고 만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는 어렵지만 공동체 안에서 평화롭게 공존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출발은 모든 존재에 대한 존중이다. 차별이나 배제, 폭력은 타인에 대한 공포와 적대를 만든다. 약자의 편에 서는 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상식이다. 인권이 상식이 되는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우선이다.

마지막으로 미디어에 호소한다. ‘사건 보도’라는 이름으로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영상의 반복 사용이 시청자들, 특히 청소년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에 대해 깊이 숙고하길 바란다. 영화 <엘리펀트>는 사건을 끔찍한 방식으로 재현하지 않으면서도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현실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 못지않게 미디어가 끼칠 영향까지를 고려하면서 전하고자 하는 내용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것. 이 또한 미디어의 사명이다.

<김민문정 | 한국여성민우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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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종로1가 1번지 교보문고는 예사로운 고유명사가 아니다. 대학 진학을 위해 상경한 내게는 서울 구경 중 으뜸가는 장소였다. 서울 거리 풍경이 내가 살았던 소도시보다 더 아름답다고 느껴지지는 않았으나 서점 풍경은 압도적이었다. 책장들 사이에서 헤매곤 했다. 책장 코너가 익숙한 후에는 내 집처럼 드나들었다. 외국 서적 코너에서는 읽을 수 없는 책들의 이미지에 반해,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나라를 상상으로 여행하기도 했다. 독자로서 회고를 늘어놓자는 건 아니다. 나는 출판인이다. 이제 교보와 책이라는 상품을 놓고 대화하고 거래하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교보문고를 세운 대산 신용호 선생의 탄생 100주년 음악회를 다녀온 날. 베토벤 교향곡 9번 연주에 감동받은 가슴을 다독이며 가을밤을 꽤 걸었다. 연주가 시작되기 전, 신용호 선생이 정한 서점 영업 원칙 다섯 가지를 사회자가 조용히 일러주었다.

일, 모든 고객에게 친절하라, 나이 어린 고객에게도 존댓말을 써라. 이, 책장 앞에 오래 서서 책을 읽더라도 그대로 존중하라. 삼, 책을 사지 않고 나가더라도 눈총을 주지 마라. 사, 책을 펼쳐서 필사하고 있어도 그냥 놔두어라. 오, 설령 책을 훔쳐가는 걸 보아도 나무라지 말고 타일러라.

서울 종로 교보문고 독서 테이블에서 시민들이 책을 읽고 있다. 정지윤 기자

36년 전 교보문고 창업 때의 서점 분위기는 지금과 사뭇 달랐을 것이다. 독학으로, 오로지 책으로 세상의 지식을 얻은 신용호 선생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책의 세계가 제도 교육 이상으로 중요하다고 자신했을 터다. 배움에 굶주린 자라면 누구든지 서점에서 맘껏 책을 향유하라고 권유하던 시기였다. 지금 다시 읽는 저 영업 원칙은 순수해서 감동마저 준다. 요즘 서점에는 필사 대신 스마트폰으로 본문을 찍어대는 독자가 있는가 하면, 책을 오랫동안 펼쳐서 구기거나 더럽히는 독자도 있다. 더러워진 책은 그대로 출판사에 반품되어 폐기되는 경우도 있으니, 신용호 선생의 뜻이 세태 속에서 약하게 깜빡거리는 불빛 같다.

교보문고 창업 당시 일화는 신용호 선생의 아호 ‘대산’처럼 크고 웅장했다. 세종로, 가장 비싼 상권에 서점이라니, 모기업인 대한교육보험 관계자들은 임대료를 계산하지 않더라도 서점은 무조건 적자라며 당혹스러워했다고 한다. 그러나 신용호 선생은 서울 한복판에 청춘이 모여들게 하고 독서를 할 수 있게 해야 나라가 산다고 강력하게 밀어붙였다.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책 백화점을 차리는 겁니다. 백화점에 가면 없는 물건이 없지요. 누구나 각자 찾는 책을 접할 수 있게 하자는 것입니다. 물론 외국 서적도 수입해서 팔아야 합니다. 그래서 유치원 학생부터 대학교수에 이르기까지 책을 찾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드나들며 마음대로 책을 들춰 보고, 돈이 없으면 서서 읽고 가는 도서관 같은 책방을 만드는 것입니다.” 선생의 강력한 의지는 독자가 바라는 서점의 본보기를 마련했다.

모든 각자가 찾는 책, 다양한 책을 보여주고 싶어했던 교보문고는 학술 서적이나 전문 서적 공간도 자리 잡고 있어서 모두에게 크나큰 개인 서재가 되어주었다.

그 교보문고에 요즘 출판인들의 한숨이 닿고 있다. 매대 상당수를 판매자인 서점이 자연스럽게 책을 진열한 것이 아니라 공급자인 출판사가 돈을 내고 자사의 책을 홍보하는 것으로 활용하기 때문이다. 우리 출판사도 매대를 산 적이 있다. 심지어는 다른 출판사들이 먼저 매대를 예약하는 바람에 구입할 수 없어서 섭섭해하기도 했다. ‘교보 매대 건’이라고 속칭되는 문제에 대해서 나는 전혀 자유롭지 못하다. 그게 서점 광고, 마케팅의 하나라고 생각한 때도 있었으니까. 일이 크게 불거진 지금은 생각을 다잡지 않을 수 없다. 책은 역시 내용과 취향으로 선택받을 때 가장 아름답다.

책이라는 매체의 변화와 독서 패러다임이 바뀌면서 저자의 글쓰기, 출판사의 역할, 서점의 판매 방식도 모두 달라지고 있다. 교보문고만큼은 변해선 안 된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대산 선생의 탄생 100주년을 기리는 것은 그 정신이, 그 이름이, 그 상징성이 너무도 크고 아름답기 때문이 아닌가. 나는 아직도 책 본연의 힘을 믿던 그 옛날의 교보를 기억한다.

교보문고는 창업 당시에도 ‘적자’가 걱정되던, ‘책을 판매하는 곳’이다. 문화의 장으로 발전하고 우뚝 선 곳, 그런 교보가 문화적인 가치를 훼손하지 않고 변화하는 방식, 공급자인 출판사와 상생하는 방식은 없는 것일까, 새로운 독자가 느는 것, 그 답이 가장 정확한데, 우리는 어떻게 해야 그 답에 이를 수 있을까. 책은 돈으로 산다고 해도 사람 마음을 돈으로 사기 힘들다지 않나.

<정은숙 | 마음산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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