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에 드라마로 히트를 쳤던 이 제목이 가끔 떠오를 때가 있다.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라니, 이 질문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와는 어떻게 다른가. 톨스토이는 사람은 궁극적으로 타인에 대한 사랑으로 살아간다고 강변했지만, 내가 보기에 남녀 할 것 없이 사람은 ‘일하며 사랑하며’ 살아간다. 그런데도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질문이 문제적이라면 그것은 일반 ‘사람’과는 다른 어떤 삶의 지형 속에 놓여있음에 대한 문제의식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물음을 제출해야 했던 과거 여성의 삶은 대체로 ‘남자’ 혹은 ‘사랑’을 중심으로 논의되었다. 이는 가족을 중심으로 한 여성의 일과 사랑이 대체로 남자라는 운명에서 파생되었기 때문이다. 최근에 조선희의 <세 여자>를 읽으면서 내가 궁금했던 것은 과연 조선 최고의 신여성이자 코뮤니스트였던 단발랑의 이 세 여자가 이전까지 여성에게 강제된 ‘남자라는 단 하나의 운명을 벗어나 자신의 삶을 개척하고 살았는가’이다. 이 관점에서 세 명의 이력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첫째, 주세죽. 그녀는 함흥에서 태어나 음악선생이 되기 위해 상해로 유학을 떠난다. 그녀는 박헌영을 만나 결혼하고 공산주의자가 되지만, 모스크바에서 박헌영의 단짝인 김단야와 재혼하고 크질오르다로 강제이주당하는 등의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가 결국 1953년 생을 마친다.

둘째, 강경의 유복한 집안의 외동딸인 고명자는 이화학당을 다니다가 김단야와 사귀고, 모스크바로 유학을 떠났으며 경성에 돌아와 사회주의 운동을 하다가 전향하여 친일행로를 걷다가 한국전쟁 중 사망한다.

셋째, 허정숙은 고베 유학을 거쳐 상해에서 경성으로, 모스크바와 뉴욕, 타이베이, 남경, 무한, 연안, 태항산, 연안을 거쳐 평양에서 최고 권력을 누리다가 아흔의 나이로 사망한다. 허정숙의 생은 무장항일투쟁 전력에서 알 수 있듯 단순하게 보자면 투철한 공산주의자이자 독립운동가의 생이지만, 그 면면은 동선만큼이나 복잡하고 역동적이다. 가령 ‘조선의 콜론타이’라 불렸던 허정숙의 남편 혹은 파트너가 여러 번 바뀐다든가 일본, 미국, 대만 등지에서 유학하고 연안에서 항일운동을 하는 등의 엄청난 행보가 그러하다.

얼핏 보면, 이 셋 중에 남자와 별개로 자신의 운명을 주체적으로 살아낸 것은 유일하게 허정숙이라 할 수 있다. 주세죽은 박헌영과 김단야라는 혁명가를 뒷바라지하거나 의존하는 헌신적 여성상이었다는 점에서, 고명자 또한 김단야의 행보와 함께하다가 이후 전향 등의 나락을 걸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단적으로 이 셋 중에 허정숙만이 누구의 아내나 애인이 아니라 자신의 이름으로 역사에 남았으므로. 그러나 어찌 보면 허정숙의 저 독립적인 행보에는 아버지 허헌이라는 절대적 운명이 어른거리고 있다. 조선 최초의 변호사 중 하나이자 조선 공산주의의 후원자로 또 동아일보 사장과 북한 최고인민회의 의장, 김일성종합대학 총장까지 지냈던 허헌의 존재가 아니었더라면 과연 그녀가 자신의 삶을 찬란한 궤도에 놓을 수 있었을까. 그랬기 때문에 그녀는 다른 두 명과 달리 비극적 역사에 희생되지 않고, 역사라는 호랑이에 올라탈 수 있지 않았을까.

개인적으로는 특히 평양에서의 허정숙의 삶에 의구심이 든다. 이 작품에서 남로당을 비롯한 소련파, 연안파 등이 숙청당할 때 허정숙의 태도는 회의적이면서도 방관적이다. 첫 번째 남편인 임원근이 형무소에 있을 때 송봉우와 재혼한다든가, 미국 유학을 떠나고 하는 것도 그렇지만 박헌영, 최창익, 임화, 이태준 등이 숙청당하고 김일성 1인숭배체제가 진행되는 동안, ‘그녀는 과연 어떤 주체였을까’라는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이 의구심은 어쩌면 작가가 허정숙의 행보에 무의식적으로 반발하면서 변명의 시선을 얹고 있기 때문에 발생했을지도 모른다.

안타까운 것은 이 작품에서 그려진 세 여자의 삶이 그다지 주체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것은 세 명의 내면적 동력이 좀 더 핍진하게 묘사되지 못했던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어떤 누구도 주체일 수 없었던 저 폭군의 역사에 그 원인이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흥미로우면서 끝내는 참담했던 것은, 작가가 애정을 가지고 그려나갔던 숱한 혁명가들이 속절없이 역사의 격랑에 희생당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 거대한 무력감을 어찌할 것인가. 남성이라는 단 하나의 운명을 열고 나가면 더 폭압적인 역사라는 운명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세 여자>를 읽으면서 느낀 새로운 지점이다.

<정은경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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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내셔널지오그래픽 TV에서 ‘이슬람국가(IS)’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시리아 내전이 어떻게 촉발되었고 이후 어떻게 전개되었는지에 대한 현장보고였다. 철저히 미국의 관점에서 만들어진 영상이지만 사태의 진행과정을 이해하는 데에는 큰 무리가 없었다. 전쟁의 참혹함이야 누구나 알고 있지만 시리아 내전만큼 처절하고 복잡한 내전은 유례가 드물다. 시리아 내전은 2011년 ‘아랍의 봄’에서 촉발되었다고 한다. 한 고등학교에서 아이들이 벽에다 ‘독재자 물러가라’고 낙서를 한 것이 빌미가 되었다는데 그것은 아마도 극적인 뉴스를 만들어내기 좋아하는 기자들의 작품일 가능성이 많다. 사건을 조작했다는 것이 아니라 특정 일화를 끄집어내어 기승전결을 가진 사건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아랍의 봄’ 자체가 미국이 뒤에서 사주한 음모라는 견해도 있다. 어느 쪽이 원인인지 확인할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내전이 장기화하면서 엄청나게 다양한 투쟁 주체들이 생겨났고 이를 후원하는 외부세력 또한 그만큼 많아졌다는 것이다. 피아 구별이 안될 정도로 복잡한 전쟁마당은 결국 미국과 러시아의 힘겨루기 사이에 ‘이슬람국가’가 끼여 있는 구도로 진행되고 있다. 이 내전으로 인해 지난 6년 동안 시리아 인구의 절반이 ‘난민’으로 전락했고 50만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집안싸움을 해결하려고 외세를 끌어들였는데 집이 그만 거덜나고 만 것이다.

 

타산지석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시리아 내전을 보며 다음 같은 공식을 이끌어낼 수 있다. 첫째, 먹이가 있는 곳에 내부 갈등이 있으면 반드시 이를 이용하려는 외부세력이 존재한다. 둘째, 내부 갈등의 수준이 높을수록 외세가 이를 이용하기 쉬워진다. 셋째, 외세를 한번 끌어들이면 혹독한 대가를 치르지 않는 한 이를 다시 물리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넷째, 외세가 많이 개입할수록 내부 갈등은 더욱 깊어진다. 다섯째, 어느 한 외세가 압도적이지 않는 한 갈등은 결코 해소되지 않는다. 여섯째, 폭력적 갈등의 시간이 길어져 더 이상 투자에 대한 이익이 나올 수 없음이 확실해질 때에야 갈등 봉합을 모색하기 시작한다. 불행하게도 지금 한국은 이러한 공식이 적용될 수 있는 가장 유리한 땅이 되어가고 있다. 일단 남한 내부의 갈등과 남북 간의 갈등이 한국전쟁 이후 최고 수준에 올라있다.

시리아 내전이 휴전을 모색하고 있는 사이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뜨거운 곳은 단연 한반도이다. 북한이 개발했다고 주장하는 장거리 핵미사일 때문이다. 이에 대해 남한이 독자적으로 핵을 가지거나 미국의 전술핵을 들여와야 한다는 주장이 연일 터져 나오고 있다. 신문과 방송에서는 제멋대로 전쟁 시나리오를 써대고 있지만 핵전쟁의 예측만큼 불확실한 것도 없다. 아직까지 인류는 핵을 가지고 싸워본 일이 없기 때문이다. 일본의 경우는 패배가 확실한 상태에서 종지부를 찍는 의미로 핵폭탄을 썼을 뿐 핵전쟁은 아니었다. 사람들은 핵전쟁이 벌어지면 초장에 전쟁이 끝날 것으로 예측하지만, 내가 보기엔 절대 그렇지 않다. 핵폭탄으로도 잠재울 수 없는 내부 갈등이 있기 때문이다. 일단 남한 땅에는 1000년 동안 지속되고 있는 호남과 영남의 지역갈등이 있고, 100년 권세를 누리고 있는 친일파 문제와 70년 된 분단 갈등이 있다. 전쟁이 벌어지면 남쪽은 우파와 좌파, 자주파로 나누어진 위에 지역 및 종교 간 갈등이 더해지고 여기에 외세까지 개입하여 매우 복잡한 분파가 만들어질 것이다. 북한 역시 일당독재라지만 드러나지 않은 다양한 분파들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 시리아도 처음엔 독재자 ‘바사르 알 아사드’에 대항하는 반독재 세력만 있었으나 외세가 개입하면서 수많은 분파들이 생겨나 나중엔 누가 누구를 반대하는지 알 수 없을 정도가 되어버렸다. 

만약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경우 지난 전쟁과 집회·시위에서 보여준 한국인의 기질로 보아 시리아 내전의 잔인함 정도는 애들 장난으로 여겨질 것이다.

이런 추측을 하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아프고 가슴이 답답하다. 전쟁을 준비하고 예상하기 전에 우리는 먼저 전쟁이 누구에게 이익이 가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만약 전쟁이 가까워졌다면 지난 70년간 누려왔던 분단에 의한 이익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뜻이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전쟁’과 ‘FTA 재협상’ 카드를 동시에 꺼낸 것은 전쟁을 해야 할 만큼 경제가 어려워졌다는 고백이다. 북이 핵미사일에 집착하는 것도 북의 경제가 재래식 전쟁을 수행할 능력이 안되기 때문이다. 만약 이 판단이 옳다면 전쟁을 피하는 해법은 나와 있는 셈이다. 미국과 북한이 상호불가침조약(북·미 평화협정)을 맺고 그 대신 북은 핵을 포기하는 것이다. 이 경우 미국은 북·미 대결에서 얻는 이익이 줄어들기 때문에 남한은 그에 대한 보상으로 FTA에서 미국에 대폭 양보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이 그림은 전쟁을 피하기는 하지만 남한 민중의 희생이 너무도 큰 데다 대미 종속이 더욱 심화되고 만다. 그래도 이 길을 갈 수밖에 없는 이유는 핵을 가진 북과 어떤 의미있는 대화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된다면 남한의 ‘멕시코화’가 급속하게 진행되겠지만 이는 비핵국가 북한과의 경제협력을 촉발하는 압박요인이 될 것이다.

상황이 아무리 어려워도 ‘전쟁불사론’이나 ‘핵무장론’ 같은 무책임한 발언을 함부로 해서는 안된다. 다시 말하지만 한반도의 전쟁은 지금까지 인류가 겪은 모든 전쟁을 뛰어넘는 참혹한 전쟁이 될 것이다. 한국은 FTA를 미끼로 미국으로 하여금 북과 평화협정을 맺도록 유도해야 한다. 미국과의 불리한 경제협정이 국내 정치의 불안요소가 되겠지만 이는 중국과 북한, 러시아와의 경제교류를 통해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황대권 | 생명평화마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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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속 300㎞ 이상의 강풍을 동반한 허리케인 ‘어마’는 대서양에서 관측된 가장 강력한 허리케인으로 기록되었다. 바부다를 시작으로 쿠바를 거쳐 카리브해의 섬들에 터치다운하면서 다소 약화되기는 했지만, 생마틴섬 전체 건물의 95%에 피해를 입힌 어마의 위력을 목도한 미국 플로리다는 재빠르게 주 역사상 최대 규모의 대피령을 내려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4급 허리케인으로 상륙해 한 장소에 최고 1000㎜가 넘는 비를 뿌린 ‘하비’가 텍사스주 휴스턴을 강타한 지 2주가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 발생한 5급 허리케인이다. 9월6일부터 8일까지는 어마를 기준으로 서쪽의 ‘카티아’와 동쪽의 ‘호세’까지, 3개의 허리케인이 동시에 존재하는 희귀한 장면이 연출되었다. 그뿐 아니다. 허리케인 하비가 휴스턴을 강타하고 있을 때 남아시아에서는 몬순의 호우가 비정상적으로 쏟아져 인도와 네팔, 방글라데시에서 1200명 이상이 사망했다. 이렇듯 이곳저곳 예기치 않게 출몰하는 자연재해를 두고 누군가 말했다. “지구가 무섭다.”

AP연합뉴스

허리케인, 태풍, 사이클론 등으로 불리는 열대성 저기압은 지구의 에너지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적도에서 고위도 지방으로 한꺼번에 많은 열을 이동시키는 대기의 움직임으로, 지구 시스템을 유지하는 메커니즘의 하나이다. 그러나 연례적으로 발생하는 기상현상이 재앙으로 발달한 까닭을 추적하면 지구가 아닌 인간의 그림자가 아른거린다. 2014년부터 작년까지 3년에 걸쳐, 지구는 기상 관측이 시작된 이래 기록된 연평균 최고기온을 매년 갈아치웠다. 미 국립해양대기국(NOAA)에 따르면 2016년 지구 표면의 평균 온도는 1981~2010년의 30년 평균치에 비해 0.45~0.56도 높았다. 엘니뇨의 영향이 수그러질 것이라던 올해에도 지구 곳곳에서 일간 최고기온의 경신이 잇따랐다. 대서양과 멕시코만 해역의 이례적으로 따뜻한 바닷물이 허리케인의 강력한 에너지 원천이 되는 다량의 열과 수분을 공급했다. 해수면 상승도 피해를 키웠다. 허리케인 하비에 의해 최소 230억달러의 재산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추산되는 텍사스주 갤버스톤의 경우 1년에 6.6㎜ 이상 해수면이 올라차고 있다.

이러한 온난화와 해수면 상승의 근본적인 원인으로는 화석연료의 연소로부터 발생하는 온실가스가 지목된다. 그러나 허리케인과 같은 자연현상이 사회적 재난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그저 온실가스의 증가로 설명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재해의 규모를 천문학적으로 증대시키는 주요한 요인은 기후변화와 해수면 상승 시나리오에 대비하지 않는 사회 시스템이다. 허리케인 하비를 재앙으로 만든 것은 갤버스톤을 비롯해 홍수 시 범람하는 저지대에 무분별하게 건축허가를 내 준 휴스턴시의 난개발, 지난 수십년간 크고 작은 침수를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개선하지 않은 허술한 재난경보체계 등 구조적 문제들이었음이 드러나고 있다.

해수면 상승은 남의 일이 아니다. 인천, 마산, 부산 등지에서 이미 ‘마른 침수(sunny day flooding)’가 관찰된다. 마른 침수란 비가 오지 않아도 조석 간만의 차가 큰 사리 기간 만조에 의해 바닷물이 내륙까지 들어오는 상습 침수 현상을 뜻한다. 해수면 상승으로 마른 침수를 겪는 날이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은 자명하다. 조차가 큰 시기에 태풍이 발생하면 재해의 규모는 훨씬 커진다. 이미 높아진 해수면에 집중호우가 겹치면 물은 갈 곳을 잃고 차곡차곡 쌓인다. 2016년 태풍 ‘차바’가 부산에 상륙했을 당시 바닷물이 방파제를 가뿐히 넘어 주거지구로 밀려들던 장면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앞으로는 더욱 자주 목도하고 경험하게 될 것이다.

허리케인 어마로 강제대피령이 내려진 마이애미의 연안 지역은 매립으로 만들어진 인공섬들이 산재하며 과도하고 집약적인 개발이 이루어져 재해에 특별히 취약하다. 간척과 매립으로 상당한 자연해안이 완충지대 없는 인공해안선으로 대체되었을 뿐 아니라 바닷가에 바짝 닿은 수변도시 개발 계획이 도리어 늘고 있는 우리나라는 어떨까. 우리의 연안은 해수면 상승과 보다 강도 높고 빈번해질 연안 재해에 얼마나 대비되어 있는가. 혹은 다가올 재해의 규모를 도리어 키우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실상 무서운 존재는 지구가 아니라 경제적 수익만을 추구하고 제도적 태만을 방치하는 사회일지 모른다. 자명한 미래를 간과하면 자연재해는 인재가 될 수밖에 없다.

<최영래 | 플로리다인터내셔널대학교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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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어마

지난해 대입 수시전형에서 서울권 모 여대 인기 학과의 학생부교과전형 합격선이 내신 1.4등급이었는데 학생부종합전형으로 합격한 학생들 중 내신 3등급 후반대의 학생이 있었다. 학교 내신 등급에 익숙지 않은 분들을 위해서 35명 한 학급을 기준으로 한 등수로 변환하자면 학생부 교과전형으로는 1등이 어렵게 합격하는 학과에 학생부종합전형으로 10~12등 내외의 학생도 합격했다는 의미다. 이 결과를 두고 3등급대의 학생이 일반고 출신이 아닌 자사고나 특목고의 학생이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러나 확인해 보니 경기도의 평범한 일반계 고교의 학생이었다. 이뿐만 아니다. 요즘 입시에서는 이런 사례가 손으로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이런 결과는 이전에도 있었다. 지방의 한 유명 사립대 언론관계 학과에 내신 6등급의 학생이 합격하고, 상위권 명문대 경영학과에 산골마을 고등학교의 3등급 중반의 학생이 합격했다. 이때도 이 학생들의 출신 고등학교가 화제였다. 아니나 다를까 인터넷 입시 사이트들에서는 특별한 환경을 갖고 있는 학생들이라는 설이 유력하게(?) 나돌기도 했지만 역시 모두 억측이었다.

최근 들어 지방의 신흥 명문고들이 뜨고 있는 지역이 늘어나고 있다. 수능이 대세를 이루던 때에는 각 지역의 공부 잘하는 학생들을 싹쓸이했던 지역의 전통 명문고들이 입시에서 탁월한 결과를 만들었지만 요즘은 변변한 사교육 기관도 없는 평범한 변두리 학교들에서 깜짝 결과를 만드는 경우가 다반사다. 다만, 과거 명문고들은 서울대의 합격자로 명문대라는 이름을 차지했지만 요즘의 지역 명문고는 중상위 대학에 합격하는 학생들의 비율을 비약적으로 높여서 신흥 강자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물론 이런 성공사례라고 해도 절대 숫자로 따지면 서울 강남지역이나 자사고, 특목고들의 합격자 수와 비교할 바가 아니다. 하지만 평범한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학생들과 함께 노력해서 꿈을 이루고 있는 것이니 그 내용적인 가치로는 오히려 더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지역들에서는 그동안 천수답식 입시를 치러 왔다고 자조적인 이야기를 하는 선생님들이 많았다. 하늘이 비를 내려주기만을 바라는 농사처럼 특별한 두뇌를 갖고 있는 인재가 태어나거나, 외지에서 유입된 공부 잘하는 학생이 있어야 입시 결과가 좋아진다는 것이었는데, 이제는 그런 걸출한 인적자원이 공급되지 않아도 선생님들이 의미 있는 성과를 직접 이끌어 낼 수 있기에 더 이상은 천수답 방식에 의존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다수다.

어제부터 2018학년도 수시원서 접수가 시작되었다. 지난 주말에는 각 학교마다 고3 담임선생님들은 물론이고 진로지도와 관계있는 선생님들은 모두 출근해서 마치 평일처럼 북적거렸다. 막무가내로 상향지원을 하겠다는 제자를 설득하고, 적성이나 평소의 진로 방향에 맞춘 진학지도를 하느라 고등학교 선생님들의 휴일은 반납된 지 오래다. 어떤 언론은 지난여름 이후 원서 접수를 앞두고 휴일에도 학교에 몰려와 하루 종일 진을 치고 있는 학생들의 모습이 그다지 달갑지는 않다는 기사를 출고하기도 했다. 물론 일부 문제 있는 모습도 보이지만 대다수는 평범하게 노력하는 학생들과 선생님들의 모습이니 아낌없이 박수를 쳐줘도 좋을 것 같다. 모든 입시생들과 선생님들의 건투를 빈다.

<한왕근 | 교육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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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입시

문경 주흘산의 한 옆구리인 부봉(釜峰)은 험한 암벽산이었다. 산세가 엎어놓은 솥을 닮아서 저런 이름을 가졌을 것이다. 내 젊은 날의 퇴적지인 부산(釜山)에 기대어 왠지 쉬운 산행일 것이라고 막연한 기대를 했다. 하지만 보통 악산이 아니어서 유격을 방불케 하는 각종 몸동작을 요구하였다. 늦은 점심을 위해 찾아든 수안보의 한 식당은 산나물을 잘 차려낸다는 곳이었다.

간판에서부터 구수한 냄새가 폴폴 나는 식당은 특이한 게 하나 있었다. 참나물, 삼지구엽초, 고사리, 취나물, 쐐똥, 어느리…. 정갈하게 담아낸 접시마다 나물의 이름이 일일이 적혀 있지 않겠는가. 많은 식객들의 젓가락이 거쳐 간 접시에 박힌 나물 이름들. 솥을 거쳐 나와 모양을 잃은 나물은 그게 다 그것 같지만 이렇게 이름을 알고 먹는 나물은 더 맛이 있었다. 한 방울의 맛도 새지 않고 고스란히 입안으로 들어와 혓바닥이 장구를 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또 이런 뜻밖의 맛을 즐길 수 있느니, 이처럼 추가 주문을 고급스럽게 하는 것이었다. 죄송하지만 여기 미역취 좀 더 주시겠습니까?

생물다양성교육센터에서 이끄는 9월 탐사지는 설악산이었다. 설악의 기운으로 번들거리는 산은 가을 정취가 이미 물씬했다. 성질 급한 어느 나무는 단풍의 기색을 역력하게 드러내고 있다. 돌아드는 바위마다 바위떡풀이 벌떡벌떡 일어나 붙어 있고, 금강초롱꽃도 나의 언어를 벗어난 경지의 색감으로 환히 피어 있다. 그리고 어느 한 모퉁이를 돌았더니 수줍게 맞이하는 노란 꽃, 미역취였다.

밥상에 둘러앉듯 몇 사람이 둥그렇게 서서 미역취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하였다. 참 단아하군요. 청초하기가 이를 데 없어요. 나물을 무치면 미역 냄새가 난다고 합디다. 잎을 삶으면 미역처럼 미끌미끌하다고 해요. 먹는 것에서 시작했지만 마무리는 깔끔하게 했다. 오늘 아침에 막 피어난 것 같군요. 일행이 떠나고 혼자 남아 사진을 몇 방 더 찍었다. 나로선 미역취 앞에서 미역취 나물 생각이 아니 날 도리가 없었다. 올봄 내가 먹은 미역취의 손녀뻘쯤 되는 설악산의 미역취 앞에서 속되게 입맛을 다시 한번 다시면서. 미역취,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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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미역취

어머니가 무릎을 꿇었다. 아이가 다닐 수 있는 학교를 제발 짓게 해달라며.

지난주 봤던 한 컷의 사진은 일주일이 지나도 여전히 마음 한쪽을 아리게 한다. 서울 강서구에 추진 중인 특수학교 설립 얘기다. 지난 7월 토론회를 가졌지만 무산됐다. 이번에도 이견을 좁히지 못하자 어머니들이 아예 무릎을 꿇어버렸다. 2019년 3월 계획대로 개교하려면 이달 중에는 설계공모 심사를 마치고 내년 3월에는 공사를 시작해야 한다. 어머니들은 절실했을 것이다. 동영상을 찾아봤다. 무릎을 꿇은 어머니 앞에 일부 사람들이 “쇼하지 말라”고 외쳐댔다. 화면으로 보는 나도 눈물이 나는데, 그 자리에 있는 어머니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장애아를 뒀다는 이유만으로 평생 죄인처럼 살았을 어머니들이다.

지난 5일 오후 서울 강서구 탑산초등학교에서 열린 강서지역 특수학교 설립 교육감-주민토론회에서 한 참석자가 ‘특수학교 먼저’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강서구 주민들도 반대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들어보니 국립한방의료원이 들어설 것으로 기대했다고 한다. 강서구는 <동의보감>을 편찬한 허준이 태어나 성장한 곳이다. 자유한국당 김성태 의원의 공약이라고 했다. 강서구에는 다른 장애인 시설이 많다는 주장도 한다. 서울시 8개 구에는 아직 특수학교가 없다는 주장도 편다. 강서 주민의 소외감도 일리는 있다. 다만 이는 서울시내 25개 구끼리 비교했을 때다.

지방과 비교하면 특수학교 꺼리기는 명함을 내밀기 어렵다. 울산 울주군은 신고리원전 5·6호기를 짓고 있다. 이미 부산과 울산은 세계에서 원전이 가장 많은 도시다. 인근 340만명은 사고가 나면 피난조차 어렵다. 여기서 만든 전기를 서울로 보내기 위해 밀양에는 송전탑을 세웠다. 북한 미사일 위협을 막는다며 경북 성주에는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를 들였다. 안보를 위해 제주 강정에는 해군기지가 들어섰다. 대부분 고령이었던 지역민들의 엄청난 반대는 아랑곳없었다. 이들 지역에 원전, 송전탑, 사드, 미군기지 대신 특수학교를 짓게 해달라고 했더라면 어땠을까.

사실 강서구 주민들만 유별난 게 아니다. 특수학교 설립은 서울 전역에서 환영받지 못했다. 지난 15년간 설립된 특수학교는 단 한 곳뿐이다. 다들 내놓고 말을 안해서 그렇지 이유는 하나다. 땅값이다. 땅값에 관한 한 서울은 참 탐욕스럽다. 지방의 웬만한 아파트를 팔아도 서울 전세가 쉽지 않게 된 지금도 서울은 배고프다. 15년 전 상경해 처음 살았던 곳이 화곡동이었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다세대주택들 간 나름 인심도 좋았다. 

최근 가본 화곡은 많이 변해 있었다. 마곡지구의 영향이라고 했다. 재개발된 아파트들은 7억~8억원을 넘어서고 있었다. 그 변화가 강서 사람들을 바뀌게 했을까.

끝내 특수학교 설립이 중단된다면 강서구의 집값은 오를까? 아닐 것이다. 주민들이 얻을 것은 별로 없어보인다. 악화된 여론 속에 서울시교육청이 소유한 ‘학교용지’가 한방병원용으로 전용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강서는 ‘인심 험악한 동네’로 오랫동안 회자될 가능성이 크다. 명분도, 실리도 잃는 셈이다.

그래서 제안해본다. 역발상을 해보자고. 모두가 꺼리는 특수학교를 적극 유치하는 쪽으로 말이다. 장애아동을 위한 편의시설을 대폭 확대하고, 주민들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공간으로 특수학교를 짓는 것이다. 그리고 명칭은 ‘허준학교’로 하자. 몸이 불편한 아이들을 위한 교육시설은 몸이 아픈 백성들을 위해 <동의보감>을 편찬한 허준의 정신과 맥이 닿아있다.

장애아들도 어울려 잘살 수 있는 마을. 이런 곳이라면 집값도 오르지 않을까? 당장 나부터 세종을 떠나는 날, 그런 강서를 다시 찾아갈 것이다. 수준 높은 시민들이 사는 지역이라면 아이들 키우기도, 어르신을 모시기도 좋다. 그런 동네, 상상만 해도 탐이 난다. 강서 주민들은 부디 재고해 주시라.

<경제부 박병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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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9 대선에서 2위를 했던 홍준표 후보는 자유한국당 대표로 정치에 복귀했다. 3위 안철수 후보도 국민의당 대표로 돌아왔다. 4위 유승민 후보도 바른정당 차기 비대위원장으로 거론되고 있다. 대선 넉달 만에 선거에서 경쟁했던 유력 후보들이 모두 제1, 제2, 제3야당 대표로 돌아와 정치를 함께하고 있거나 전면에 나설 참이다. 한국 정치사상 초유의 일이다. 과거엔 대선에서 지면 유권자의 뜻을 헤아리며 성찰의 시간을 갖고 새로운 도약을 모색했다. 이젠 초등학교 반장 선거에서 떨어진 것처럼 아무렇지 않은 일이 됐다.

 

홍준표 대표는 원외다. 원외 대표는 힘이 없다. 김장겸 MBC 사장 지키기를 위한 국회 보이콧은 원외인 홍 대표의 당내 입지를 굳히는 데 활용됐다. 문재인 정부와 정면대결함으로써 문 대통령과 일대일 대결 구도를 구축하는 것이다. 박근혜·이회창·김대중 같은 강력한 ‘야당 대통령’이 목표다. 홍 대표는 고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1억원을 받은 혐의로 대법원 재판에 계류 중이다. 1심 유죄, 2심 무죄였다. 만에 하나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되면 그의 정치생명은 끝이다. 그는 지금 강해야 살 수 있다. 홍 대표는 보이콧을 결정한 의총에서 “지지율 걱정도 있지만 우리는 밑바닥에 와 있다. 더 이상 떨어질 곳도 없다”고 했다. 당뿐 아니라 자신의 처지를 푸념한 것으로도 들린다.

공영방송 장악 저지는 허울뿐이다. 세계 어느 공영방송이 뉴스 시청률 5%에 신뢰도 최하위인 데가 있겠는가. MBC는 공영방송이랄 것도 없다. 김장겸은 대여투쟁의 신호탄이었다. 홍준표는 김장겸이 아니라 뭐라도 대여투쟁의 꼬투리를 잡았을 것이다.  

홍준표의 한국당은 사안이 무엇이든 반대 아니면 취소, 거부다. 청와대 회동 거부, 여·야·정 협의체 거부, 원내교섭단체 연설 거부, 여야 대표 만찬 취소, 인사 반대, 부동산·증세·복지 정책 반대…. 관성적 반대를 하다보니 공관병 갑질로 옷 벗은 육군 대장마저 “좌파단체가 군 장성을 여론몰이로 내쫓았다”고 감쌌다. 그에겐 여론을 거꾸로 보는 재주가 있는 것 같다. 홍준표는 ‘김영삼 키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87년 직선제 개헌 추진 당시 주변에서 100만명 서명운동을 제안하자 “그걸 누가 세어 보겠노”라며 1000만명으로 올리라고 했다. 핵무장 1000만 서명운동은 YS 흉내내기다. 홍준표의 야심은 제2의 YS가 되는 것이다.

흔히 시민들의 이념 성향은 보수 40%, 진보 30%, 중도 30%로 구성돼 있다고 한다. 이런 분포도는 큰 의미가 없다. 이젠 이념이 아니라 가치다. 현실은 정의 80%, 정의에 대한 반발 10%, 무관심 10%로 바뀌었다. 한국당은 정의에 대한 반발 세력 10%에 기대고 있다. 친박과 극우, 재벌과 초고소득자다. 제1야당이 시민이 아닌 특정 소수세력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불행이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총선에서 여소야대 4당 체제가 이뤄졌다. 군사정권 시절이었지만 여야는 5공 비리와 지방자치제 시행, 5·18민주화운동 등 난제를 하나하나 해결했다. 법안 처리율은 81.1%였다. 당시 평민당 원내총무를 맡아 김윤환 민정당 원내총무와 협상에 나선 김원기 전 국회의장은 “역지사지(易地思之) 정신에 입각해 야당이 과도한 힘을 앞세워선 안된다고 생각했다. 여당의 지위와 역할을 존중했다. 야당이 합리적인 정책과 대안을 많이 냈다”고 회고했다. 20대 국회의 현재까지 법안처리율은 17%다. 야당 복도 따로 있는 모양이다.

정치인은 시민의 눈높이에서 볼 줄 아는 상식이 필요하다. 상대를 적이나 동지로 대하는 사고로는 곤란하다. 홍 대표는 대선 패배 직후 페이스북에 이렇게 썼다.

“한국당은 정의와 형평을 상실한 이익집단이었기 때문에 청·장년들의 지지를 상실했다고 본다. 정의와 형평은 그들이 추구하는 최고의 가치이다.”

정확한 진단이다. 그런데 달라지지 않는다. 한국당은 주도 세력도, 정책도 그대로다. 정의롭지 못하고, 형평을 지키지 못하고, 합리적이지 못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도 주지 못하고 있다. 신진세력에 문호를 개방하지도 않는다. 이대로라면 지지를 회복하기는 난망이다. 친여보수언론의 프레임 짜기는 과거처럼 쉽게 먹혀들지 않을 것이다. 촛불이 증명해줬다. 시민들은 “3년(2020년 총선)이 너무 멀다” “다음 국회의원 선거에서 보자”고 아우성이다. 당장 내년 지방선거에서 한국당 간판은 수도권에서 보기 힘들 수도 있다. 2014년 지방선거에서, 2016년 총선에서 새누리당 의원들은 무릎 꿇고 절하고 읍소했다. “한번만 더 기회를 주세요” “도와주세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바꾸겠습니다”. 2018년에도 또 기회를 달라고 할 것인가.

<박래용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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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홍준표

“만약 미얀마 최고위직에 오른 정치적 대가가 침묵이라면 그 대가는 너무나 가혹하다”(데즈먼드 투투), “뉴스를 볼 때마다 미얀마 로힝자 무슬림들의 고통을 보는 내 가슴은 찢어진다”(말랄라 유사프자이). 남아공의 투투 대주교와 파키스탄의 유사프자이는 각각 1984년과 2014년 노벨평화상 수상자다. 두 사람이 한목소리로 비판하는 이는 1991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이자 ‘미얀마 민주화운동의 상징’인 아웅산 수지(75)다. 우호적이던 외신들도 비판 일색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수지를 “몰락하는 유산을 가진 손상된 우상”이라고 비난했다. 토론토스타는 “부끄러운 위선”이라고 했다. 온라인에서는 그의 노벨상을 박탈하자는 청원운동이 진행 중이다. 하루 만에 전 세계에서 40여만명이 참여했다. 왜 수지는 하루아침에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에서 비난의 대상이 됐을까.

 

수지를 곤경으로 몰고 간 일은 ‘로힝자족 박해 사태’다. 무슬림인 로힝자족은 유엔이 규정한 ‘세계에서 가장 박해받는 소수민족’이다. 이들은 지난달 말부터 군부와 과격 불교도 민병대의 폭력과 방화에 못 견디고 방글라데시로 탈출하고 있다. 그 수가 30만명에 가깝고, 사망자도 1000명에 이른다고 유엔은 추산한다. 2015년 총선 승리 후 지난해 봄부터 최고 실권자인 국가자문역을 맡고 있는 수지는 지난 5일 터키 대통령과의 전화통화에서 이번 사태를 언급했는데, 그것이 화근이었다. 그는 이번 사태를 “거대한 오해의 빙산의 일각”으로 보며 ‘가짜뉴스’로 취급했다. 이 같은 인식은 그의 신념과 상반된다. 그는 2012년 21년이나 늦어진 노벨상 수락연설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헤어져 환영하지 않는 사람들과 살도록 강요받는 것”을 말할 수 없는 고통이라고 했다.

오랜 가택연금 속에서도 우아함을 잃지 않고 민주화운동을 이끌어 마하트마 간디와 넬슨 만델라에 비유됐던 수지. 어쩌면 그도 현실 정치인으로서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투투의 지적대로 권력의 대가가 침묵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권력을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이 그것을 휘두르는 자들을 부패시킨다.” 자신의 신화가 몰락하는 전환점에 선 수지가 되새겨야 할 자신의 말이다.

<조찬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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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힘은 막강하다. 언론에 등장하면 곧바로 어떤 식으로든 해결되거나 결정이 난다. 여론이 형성되고 사회적 이슈가 되면 순식간에 입법부도 움직이고 행정부도 굴복한다. 때로는 사법부도 흔들리는 것처럼 보인다. 언론은 실로 제4의 권부다. 


10대 청소년들의 무자비한 폭력장면이 신문과 방송을 타더니 소년법 폐지 입법청원이 청와대 홈페이지를 뒤덮었다고 한다. 몇 십만이라고 한다. 여기저기서 청소년 폭력사건이 봇물 터지듯 밝혀지고 분노한 여론은 소년법과 형법 개정을 촉구한다. 비록 나이 어린 청소년이라고 하더라도 잔혹한 범죄를 저질렀다면 자유형의 상한을 올려서 엄하게 처벌하거나 무기징역 또는 사형이 가능하도록 소년법을 개정하라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형사처벌할 수 있도록 형사미성년자의 나이를 낮추라는 목소리도 커졌다. 급기야 여야 정치권이 나서서 불안한 시민을 안심시키고 공분을 잠재우기 위해서 법을 개정하려는 움직임이 구체화되고 있다. 법무부 장관도 소년법 개정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범죄가 터질 때마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강성화 형사정책이다. 단죄하고 사회로부터 격리하라는 언론과 여론의 요구에 굴복하여 엄벌주의로 가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은 절대 가해자가 되지 않을 것이고, 혹시 피해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응보감정은 되살아나고 무관용의 형사정책을 원하는 것이다. 그래서 범죄의 처벌과 예방에 관한 형사정책이 방향을 잃고 일관성 없이 언론과 여론에 끌려다닌다. 가감 없는 선정적 보도가 여론을 형성하고 표를 의식한 정치권은 처벌법으로 안전을 약속하는 패턴이 지속되고 있다. 이제 형벌을 만병통치약이자 사회갈등의 최우선 수단으로 여기게 되어 사회적 이슈가 생길 때마다 형법을 개정하고 형사특별법을 제정하고 양형기준을 상향하는 것이다. 정치권도 이해가 맞아떨어지는 일이다. 국가예산에 부담을 주지 않고 정치가 국민의 안전을 위해 무엇인가 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에 돈 들지 않는 입법에 매달리는 것이다. 일관된 형사정책에 따른 입법이 아니라 유권자를 의식한, 여론에 부응하는 임시방편적 입법이다. 그러다 보니 처벌 법률과 범죄구성요건 사이에 부조화와 불일치가 발견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과연 수많은 형사처벌법 입법으로 범죄는 줄어들었는가. 청소년범죄가 줄어들 수 있을 것인가. 법이 만능이고 강력한 처벌만이 능사인가. 그렇다면 벌써 범죄는 예방되고 줄었어야 한다. 자유형의 상한이 15년에서 30년으로 상향조정되고 양형기준은 날로 강화되었지만 강력범죄는 줄어들 기미가 없다. 전자발찌도 채웠지만 성범죄자의 재범은 여전하다. 청소년에게는 형사처벌에 의한 범죄억제효과가 별로 없기 때문에 형사책임 연령을 낮추면 처벌받는 아이들만 늘어나게 된다. 범죄자로 낙인찍히는 청소년만 증가한다. 강력한 형벌로 교도소에 가두어두고 교정과 교화에 힘쓰지 않으면 재범률은 감소되지 않는다. 지금도 소년교도소는 포화상태다. 청소년범죄의 재범률은 성인보다도 높다. 형량을 높여 처벌하고 사회로부터 격리시켜 가두어두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의미다. 당장은 범죄가 잠잠해지고 사회적 공분도 누그러지겠지만 곧 강력범죄는 발생하기 마련이다. 영원히 가두어둘 수 없는 한 사회성을 상실한 청소년이 성인이 되어 출소하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범죄의 유혹에 빠져 재범을 저지르게 된다. 지금도 무수히 많은 청소년이 지옥 같은 가정과 학교를 등지고 거리에서 방황하고 있다. 범죄의 온상이 되어버린 가출팸을 찾는 아이들이 수만명으로 추산된다. 가정폭력에 물들어 스스로 폭력 청소년이 되어 버린 아이들도 수없이 많다. 그들과 어울리다 폭력이 일상이 되고 또래와 어울리다가 집단적으로 생계형 절도나 폭력범죄를 저지르고 성매매도 강요당하고 있다. 그들을 그대로 방치하고 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교도소로 보내는 형사정책이야말로 후진국형이다. 


청소년 범죄자의 처벌과 격리는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원인을 찾아내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처방과 대책이 필요하다. 형벌을 가하고 사회로부터 격리하는 형사정책은 최후수단이어야 한다. 청소년 범죄에서는 더욱 그렇다. 교육과 보호가 우선이어야 한다. 그들이 범죄나 악행으로 내몰리지 않도록 경제정책, 교육정책, 사회정책, 복지정책이 필요하다. 전통적으로 교육기능을 수행하는 가정, 학교, 교회가 바로 서야 한다. 경쟁으로 내몰리고 어디에서도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지 못한 청소년은 범죄의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다. 흔들리고 무너진 가정, 공동체 의식이 사라진 학교와 교회의 자리에 경쟁심과 이기심이 자리하는 한 청소년 범죄는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하태훈 |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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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이 만능이고 처벌이 능사인가  (0) 2017.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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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소년법

염치가 없다. 북한이 6차 핵실험을 하자, ‘오천만 핵인질’ 사태라고 대통령을 비난하는 정당은 성찰해야 한다. 지난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네 차례의 핵실험이 있었다. 그런데도 근본적 대응없이 ‘통일대박’을 말한 사람들이 누구였나?


하지만 지금이 중요하다. 현실이 엄중하다. 남들의 염치없음을 더 이야기할 여유조차 없다. 지금 문재인 대통령은 높은 지지율에도 불구하고 백척간두에 서 있다. 나는 그렇게 본다. 심각한 위기이다. 외교안보에서의 정체성 위기이다. 그의 정부는 외교안보에서 박근혜 정부와 달라야 한다. 그리고 성공해야 한다. 


보통의 시민에게 서울 하늘에 핵무기가 터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다면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국가를 함께 운영하는 정치인들이 공포를 부추기거나 이용한다면 매우 무책임하다. 가장 무책임한 사람은 전술핵 배치 가능성을 말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다. 그는 일본과 한국에 전술핵을 배치해서, 자체 방위를 맡기고 주일미군과 주한미군을 철수하면 방위비를 절약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일본과 한국에 전술핵이 배치되면 대만도 핵무장을 할 것이다. 동북아는 핵무기가 없는 나라가 없게 된다. 핵무기 집중지역이 된다. 트럼프의 전술핵 배치는 어떠한 핵무기도 비핵보유국의 직접 또는 간접 관리에 놓이게 이전해서는 안된다고 규정한 핵확산금지조약 위반이다. 더 큰 모순은 전술핵 배치는 북의 핵무장을 정당화시켜주고 용인한다. 북핵 문제를 북핵 용인으로 해결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북핵은 안된다. 사드에서도 트럼프는 한국의 민주주의를 존중하지 않았다. 아무리 미국이 한·미상호방위조약 4조에 따라 무기배치권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리고 주한미군지위협정 2조에 의해 땅을 제공받을 권리가 있더라도, 한국은 민주주의 국가이다. 과연 사드가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라 미국이 배치할 수 있는 무기에 포함되는지, 어느 지역의 토지를 제공하는 것이 타당한지, 그리고 그 지역 시민들의 민주주의 권리를 어떻게 절차적으로 보장할지는 한국에 권한이 있다. 박근혜 정부에서의 성주 땅 제공 결정은 이러한 민주주의 원칙을 저버렸다. 


아직 파국은 아니다. 전쟁 외에 대안은 있다. 한국이 갖는 최소한의 자율성이라도 최대한으로 증폭해야 한다. 북한 핵무기가 평화를 가져올 수 없듯이 사드도 평화의 수단이 아니다. 한국이 전략적 자주성을 보여주어야 한다. 사드를 단순히 ‘임시배치’라고 설명해서는 안된다. 그 근거를 국민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소파 협정에 의하면 미국의 동의가 없이는 성주 사드 땅을 반환받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시배치’라고 설명하려면 한국이 환경영향평가 결과에 따라 사드를 철거할 법적 권한이 지금 있어야 한다. 어떤 식으로라도 임시배치라는 설명의 근거를 만들어서 보여주어야 한다. 전술핵도 마찬가지다. 일단 들어오더라도 한국이 철거하라고 하면 미국이 말을 들을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한국이 전략적 자주성이 없다면 운전자로 보지 않을 것이다.


다른 대안은 없다. 국민에게 어떤 경우에도 대화 없이는 그 어떠한 해결책도 마련할 수 없다고 말해야 한다. 이를 양보라고 비난받는 것을 걱정할 여유조차 없다. 대화는 언제나 필요하다. 대화 없이는 해결할 수 없음은 상식이다. 상식을 말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이 상식을 국민에게 말하지 않았다. 새 정부는 달라야 한다. 그것이 정권의 정체성이다. 


다른 대안은 없다. 남에게 변화를 요구하려면 자신도 변화할 준비를 해야 한다. 유엔의 제재로는 북핵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북의 6차 핵실험이 던지는 질문은 무엇인가? 한국과 미국이 진정 북한에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최종적인 행동을 달라는 것이다. 우리는 너무도 오랫동안 북한의 변화를 말했다. 그 변화의 의미는 북한의 절멸인가 아니면 북한의 발전인가? 전자라면 전쟁을 준비해야 한다. 후자라면 체제인정을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오천만 핵인질’이라는 염치없는 비난을 할 때가 아니다.


<송기호 |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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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이 국회에서 11일 부결됐다. 임명동의안 가결에는 출석 의원 과반의 찬성이 필요했으나 찬성 145명, 반대 145명으로 2표가 부족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김 후보자를 헌재 소장에 지명한 것이 지난 5월19일이다. 헌재는 한국의 민주주의와 시민의 기본권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이다. 국정을 농단한 박근혜 정권을 몰아내고 평화적으로 정권교체가 이뤄진 것은 헌재가 제 역할을 다한 덕분이다. 그런 기관의 수장을 결정하는 임명동의안을 야당의 발목 잡기로 지금껏 시간을 끌다가 작금의 사태에 이르렀으니 참담하기 그지없다.

 


헌재 소장 임명동의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한 것은 헌정 사상 처음이다. 김 후보자 임명동의안이 부결된 것은 김 후보자의 성향이 진보적이라는 이유로 보수야당 의원들이 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김 후보자는 2014년 12월 헌재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 때 재판관 9명 중 유일하게 반대 의견을 냈다. 2015년 5월 헌재가 전교조를 법외노조로 만든 근거인 교원노조법 조항이 합헌이라고 결정할 때도 김 후보자는 해당 조항이 해직 교사의 자주성과 단결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할 수 있다며 반대 의견을 냈다. 철 지난 색깔론도 우습지만 소수 의견을 냈다는 사실을 결격 사유로 주장한 것도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이번 부결로 박한철 전 소장 퇴임 이후 역대 최장을 기록하고 있는 헌재 소장 공백 사태는 계속될 수밖에 없게 됐다.


국민의당 등 일부 야당 의원들은 이날 표결 직전까지도 김 후보자 임명동의안 찬반 여부를 박성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 류영진 식품의약품안전처장, 탁현민 청와대 행정관 등의 문제와 연계하겠다는 뜻을 밝히며 정략적 발상에 빠져 있었다. 법률의 위헌 여부를 심사하고, 대통령 탄핵 등을 결정하는 최고 헌법재판기관을 일개 장관과 청와대 행정관 인사 문제와 결부시킨 것이다. 이런 식이라면 앞으로도 헌재 소장 임명은 쉽지 않고, 국정도 안정되기 어렵다. 그럼에도 야당은 부결 결과에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야당이 아무리 국회를 지배하고 있다고 해도 논리도 명분도 없이 힘으로 국정을 발목 잡는 것은 너무나 뻔뻔한 일이다. 이번 사태로 야당의 미래는 더욱 어두워질 것임을 알아야 한다.


이번 부결 사태에는 문재인 대통령과 여당의 책임도 결코 가볍지 않다. 문 대통령은 김 후보자를 지명한 뒤 국회 임명동의안 통과를 위한 노력을 충분히 하지 않았다. 여당 역시 대통령 지지율만 바라보며 야당 의원들을 적극적으로 설득하지 않았다. 집권세력의 이런 자세로는 개혁을 기대하기 어렵다. 정부와 여당은 이번 정기국회에서 검찰·국정원 개혁, 방송개혁, 증세, 건강보험 확대 등 각종 개혁 입법을 추진할 예정이다. 정부와 여당은 민생과 적폐청산을 위해 필요한 법안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보수야당은 정치 보복이라거나 국가 재정을 허약하게 할 포퓰리즘 법안이라며 맞서고 있다. 


이런 대립을 해소하려면 문 대통령과 여당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진정한 협치의 길로 나가야 한다. 감정적 대립으로 치닫는 정국 상황을 방치했다가는 개혁도 물거품이 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청와대가 “무책임의 극치, 반대를 위한 반대로 기록될 것”이라며 야당을 직접 공격하는 것은 적절했다고 보기 어렵다. 야당의 태도는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청와대 책임도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청와대는 야당과 진지한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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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가 어제 열렸다. 박 후보자는 뉴라이트 역사인식부터 창조과학회 활동, 도덕성 문제까지 갖가지 의혹이 불거지면서 자질 논란이 증폭됐다. 이번 청문회는 박 후보자에 제기된 의혹에 그의 해명을 듣고 장관 자격이 있는지 검증하는 자리였다. 그런데 야당은 자진사퇴를 압박했고 여당의 분위기도 냉랭했다. 그만큼 박 후보자가 심각한 자질 문제를 안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 청문회를 통해 박 후보자에 대해 오해가 풀리거나 해명된 것은 거의 없다. 그는 뉴라이트 활동과 관련해 청문회에서 “실체를 잘 몰랐다”고 발뺌했다. 하지만 그의 주변에서는 “그가 확고한 신념을 갖고 주변을 설득할 정도”였다고 증언한 바 있다. 역사관 논란에 대해 ‘역사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생활 보수’ 운운했으나 이는 오히려 공대 출신 과학자들로부터 공분을 일으켰다.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는 “과학기술자는 역사관도 필요없는 도구적 존재가 아니다”라는 성명서를 냈다. 또 그는 성경의 창조론을 과학으로 인정하는 한국창조과학회 이사로 활동한 사실이 드러나자 “진화론을 존중한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모든 분야가 진화론의 노예가 됐다”고 발언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이뿐만 아니다. 아파트 다운계약서 작성, 군대 복무기간 단축, 논문 표절, 위장전입, 보육기업의 주식수수, 현금 3000만원 셀프 포상 등 의혹도 제기됐다.


이번 인사청문회에서 박 후보가 낙제점이라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그의 역사인식, 도덕성, 문재인 정부의 인사원칙 위배 등 어느 것 하나 문제되지 않는 게 없다. 그런데 박 후보자는 사퇴요구에 대해 “의원의 평가에 맡기겠다”며 버티겠다는 생각이다. 자격이 되지 않는 박 후보자를 임명하는 것은 과학계에 대한 모독이며, 문재인 정부의 개혁 의지에도 합당하지 않다. 그는 국사를 논하고 결정하는 국무위원의 자격이 없다. 정부는 인사원칙을 다시 바로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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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전술핵 재배치론이 안보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자유한국당은 어제 전술핵 재배치를 위한 1000만 온라인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당초 찬성입장이던 바른정당 외에 국민의당에서도 필요성에 공감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미국에서도 검토발언이 잇따르고 있다. 백악관 고위관계자가 전술핵 재배치 검토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는 미 언론보도가 나온 데 이어 존 매케인 미국 상원군사위원장도 긍정적 검토 발언을 내놓았다. 


한반도 전술핵 재배치론이 활기를 띠는 데는 청와대의 불분명한 태도가 큰 영향을 미쳤다. 전술핵 재배치 발언이 나올 때마다 “정부는 검토한 적이 없다”는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 사실상 논의를 키웠다. 전술핵 재배치를 반대한다면 송영무 국방장관이 한·미 국방장관회담에서 의제도 아닌 전술핵 재배치를 거론했을 때 강력 경고했어야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송 장관은 파문이 일었는데도 국회에서 또다시 재배치가 소신이라고 주장했다. 청와대와 공감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행동이다. 청와대가 전술핵 재배치론을 은근히 부추겼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반도 전술핵 재배치론의 근거는 ‘공포의 균형’이다. 남한 핵무장을 통해 북한의 핵억지를 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대북 원유제공 금지 등을 담은 유엔 안보리 표결을 앞두고 중국과 러시아를 압박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전술핵 재배치로 북한의 핵개발 의지를 막을 수 없다는 건 재론의 여지가 없는 일이다. 오히려 한반도 비핵화 원칙을 깨뜨리고 동북아 핵경쟁을 촉발할 게 뻔하다. 북핵 문제는 해결하지 못하면서 새로운 안보 갈등만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전술핵 재배치론은 기존의 북핵 대응 구도를 뿌리째 흔든다. 대화를 통한 해결을 포기하고 핵 대 핵으로 맞서자는 것이기 때문이다. 과거 수십년간의 비핵화 노력도 무위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과연 북핵을 평화적으로 풀 의지가 있는지 정부에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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