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저마다의 소리를 품고 있다. 1990년대 후반 베를린 유학 시절, 거리 곳곳에서 우연히 접한 심금을 울리는 노래나 연주는 칙칙한 날씨에도 그곳 생활을 견디게 한 힘이었다. 지하철역이나 카페, 관광지나 극장 앞에서 마주친 이름 모를 음악가들이 전해 준 행복. 물론 아바도와 베를린 필이 들려줬던 잊지 못할 말러 9번 교향곡까지, 20년 전 살았던 베를린이라는 도시는 내게 이런 음악적 경험들로 기억된다.

예술 체험이 공연장이나 미술관에서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일상의 공간에서 맞닥뜨린 낯선 음악이 잠시 다른 세상을 맛보게 할 수도 있고, 그 찰나의 경험이 때론 삶의 활력이 되기도 한다. 전통적인 연주회장을 벗어나 색다른 장소에서 벌어지는 공연에 눈길이 가는 것은 그 때문이다. 북촌일대 한옥이나 갤러리에서 클래식과 재즈가 흘러나오는가 하면, 몇 년 전 국악앙상블 ‘불세출’은 종로구의 이색적인 공간들(옥인상영관·은덕문화원·보안여관)에서 도심 속 풍류방 문화를 선보이기도 했다. 쇠락하던 철공소 골목에 모여든 젊은 예술가들에 의해 특유의 감성을 지닌 곳으로 탈바꿈한 문래 창작촌의 크고 작은 공간에서도 실험적인 사운드와 퍼포먼스 공연이 열리곤 한다.

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왼쪽에서 두번째)가 7월 5일 오후(현지시간) 독일 베를린 가토우 공원묘지에 있는 윤이상 선생 묘지 앞에 동백나무를 심고 참배한 뒤 윤 선생 제자들과 이야기하고 있다. 베를린 _ 서성일 기자

최근 윤이상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서울 도심 곳곳에서 울려 퍼지고 있는 ‘프롬나드 콘서트’ 역시 도시의 소리풍경을 풍성하게 만든다. 문화역서울284, 윤동주문학관, 서울로7017, 복합문화예술공간 행화탕, 다시세운광장 등에서 쉽게 접하기 힘든 윤이상 음악을 문학·힙합·국악 등과 접목해 선보이고 있다. 특히 청운동 시인의 언덕에서 열렸던 ‘100년의 예술가, 윤이상×윤동주’ 공연은 시와 연극, 음악이 함께하며 주말 가족 단위 관객들에게 특별함을 선사했다. 밤하늘을 쳐다보며 귀뚜라미 소리와 어우러진 음악을 듣고 있자니, 작년 가을 지리산 ‘화엄음악제’의 잊지 못할 순간이 떠올랐다. 깊은 산사에서 달빛 아래 듣는 음악소리는 도시에서는 접할 수 없는 참으로 경이로운 경험이었다. 음악을 듣는다는 건 청각만이 아니라 인간의 온 감각이 총체적으로 작동하는 행위임이 분명하다.

1960년대 말 캐나다 작곡가 머레이 셰이퍼가 제창한 ‘사운드스케이프’(소리풍경)라는 용어는 바로 그런 상황을 포착하기 위해 나온 말이다. 셰이퍼는 만드는 것만큼이나 주위 소리를 잘 ‘듣는 것’이 중요함을 인식한 음악가였다. 1950년대 초 존 케이지도 ‘4분33초’라는 침묵 음악을 써서 음악으로 가려졌던 일상의 소리, 존재하나 주목받지 못했던 주변 소리에 귀 기울일 것을 역설한 바 있지만, 셰이퍼는 인간과 소리 환경의 문제를 사회적으로 공론화했다. 점차 심해지는 소음공해에 대처하기 위해 그는 삼라만상의 소리를 예민하게 들음으로써 일상의 환경과 생생하고 풍부한 관계를 맺을 필요가 있다고 여겼다. 그래서 어린이와 성인을 위한 ‘듣기 훈련’ 프로그램을 만들고, 유네스코와 정부의 지원을 받아 도시의 소리풍경을 연구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자신이 살던 밴쿠버의 소리풍경을 음반으로 남기기도 했다. 청각을 통해 자신을 둘러싼 현실을 지각하고 인식하게 만들려 한 그의 문제의식은 이후 음향생태학과 환경운동으로 이어졌고, 도시 디자이너나 사운드 아티스트에게도 영감의 원천이 되고 있다.

요즘 우리는 주변의 소리를 차단하고 살아간다. 현대인들에게 필수품이 된 이어폰은 자신이 원하는 음악을 듣기 위한 도구이자 동시에 외부로부터 스스로를 차단하고 원치 않은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한 장치이기도 하다. 그만큼 소리 환경이 열악하다는 반증일 터. 난무하는 소리들 가운데 정작 가까이 있는 것들은 무심히 흘려버린다. 한번쯤 귀를 열고 주변의 소리에 관심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윙 돌아가는 컴퓨터 소리, 이웃의 발자국 소리, 교실에서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 공사장 굴삭기 소리, 다양한 내연기관의 소리, 풀벌레와 새소리….

소리를 듣기 위해선 고요함이 필요하지만, 그 고요함 위에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한 소리들이 펼쳐질 수도 있다. 가을의 문턱에 접어든 요즘, 살고 있는 곳의 소리풍경을 만끽하며 소소한 즐거움을 누려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이희경 | 한예종 강사·음악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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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대 우리 국민들이 진심으로 수용한 도덕률은 아마도 ‘한 등 끄기 운동’이 아니었을까. 한 등 끄기는 절약이라는 덕목으로서 소중한 자원이자 고상한 가치였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가 중화학공업을 일으키는 기적을 성취케 한 원동력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에너지 절약은 다른 공급자원에 비하여 경제성과 잠재량의 측면에서 우위에 있다. 그뿐만 아니라 절약은 다른 에너지원과 달리 갈등의 소지도 없고 이념적 논쟁의 여지도 없으며 오히려 가장 기술혁신적인 분야이다. 한 마디로 ‘한 등 끄기’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성공적인 슬로건이자 수급안정의 일등공신이었다. 그 결과 우리나라의 가정부문은 OECD 에너지사용량의 절반에 불과한 소비행태를 보이고 있다. 진짜 착한 국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지난 수 년 사이 절약이라는 슬로건이 사라졌다. 여름철 지속적인 폭염, 누진제 완화 등에 기인하여 에너지절약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 우리 사회도 풍부한 에너지의 권리를 만끽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변화는 국민복지의 증대라는 측면에서 자연스러운 흐름일 수도 있지만 그간의 절약과 저소비라는 소중한 공감대가 약화되는 상황도 초래했다. 절약은 단순히 물리적인 전력수급 안정 이상의 사회적 가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런 현상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최근 사회적으로 미래 에너지믹스의 선택을 둘러싼 논쟁이 뜨겁다. 이러한 논쟁은 노후 석탄발전소 운전중지, 신규 석탄발전소 건설 취소, 원전 신규 건설 취소 등 신정부 에너지공약의 실천에서 비롯된 것이다. 특히, 신고리 원전 5·6호기 건설 계속 여부를 판단할 공론화는 이러한 논쟁을 더욱 촉발하고 있다. 또한 기후변화대응은 파리협약 2차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 제출을 전후하여 구체적인 규제로 다가올 것이다. 결국 원자력과 석탄의 감소가 불가피한 상황인 것이고 그 대체재로서의 가스와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언급이 많아지고 있다. 이러한 에너지 공급원 전환과 함께 에너지믹스는 수요를 줄여서 확보해야 할 자원 자체를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 게다가 효율향상을 통한 수요관리는 발전소 추가 건설보다 훨씬 비용효과적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수요관리는 에너지 비용을 절감하고 기술 혁신을 촉발하며 관련 산업계의 경쟁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 또한 이를 통해 보다 나은 환경으로 개선해 나가며 그만큼 우리 사회의 갈등이 줄어들 수 있다.

절약은 가장 고전적이면서 효과적인 전력수급 안정의 자원이다. ‘한 등 끄기’ 운동을 다시 한 번 시작해보자. 다만 예전과는 다른 방식으로의 접근이 필요하다. 단순히 아끼고 줄이는 절약의 차원을 넘어 효율향상을 통한 좀 더 적극적이고 기술혁신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특히 강력한 기술규제를 정교한 기술혁신과 연동시키는 방법론의 변화가 필요하다. 우리나라 백색가전의 국제적인 경쟁력도 아주 오래전 효율등급제와 최저효율제라는 기술규제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제는 단순 가전기기 효율화에서 벗어나 4차 산업혁명의 흐름과 연계시키는 작업이 필요하다. 전력인프라는 가장 보편적인 유비쿼터스 인프라이다. 우리나라의 전력망을 4차 산업혁명의 플랫폼으로 활용할 수 있다면 어느 나라보다 빠르게 혁신을 달성할 수 있다. 에너지 전환시대를 맞아 에너지 저소비는 명제이다. 다시 한 번 에너지 저소비를 최고의 미덕으로 되살려보자.

<김창섭 | 가천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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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 가방을 둘러멘 여자아이가 숨 가쁘게 달려오다 내 옆에서 걸음을 늦추며 숨을 몰아쉬었다. 미술 학원에 다녀오는 길이라고 했다. 영어, 중국어, 피아노, 발레 학원도 다닌다길래 힘들지 않으냐고 묻고 보니 머쓱했다. 어른들은 선행 학습을 하지 않으면, 남다른 것을 하나라도 더 배우지 않으면 절대로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에 떨며 아이들을 집 밖으로 내몰았고, 아이들은 그 두려움이 진실이라고 믿은 지 오래되었다.

우리 사회의 사교육은 복된 미래를 줄지 모르는 토테미즘이다. 제단 앞에 바치는 양에게는 어떤 기대도 없이 오로지 신의 전지전능함만을 바랐던 이들처럼 어른들은 불안할 적마다 보다 용한 선생과 밝은 앞날을 보장하겠다는 학원을 찾아 나선다.

오늘은 미술 학원, 내일은 피아노 학원과 중국어 학원에 가야 한다는 아홉 살 아이도 이미 그 두려움을 알고 있는 것이다. 아이는 힘들지 않으냐는 의례적인 질문에 의젓하게 대꾸했다.

“이제 익숙해져서 괜찮아요. 그런데 중국어 학원은 다 3, 4학년이에요. 2학년은 저밖에 없어요.”

아이 표정을 봐서는 언니 오빠들과 나란히 공부하는 게 자랑스럽다는 것인지, 나이 먹은 이들을 따라잡는 게 어디 쉽겠냐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토요일에는 발레 하나만 해도 돼요.”

아이는 그 말을 하면서 빙긋 웃었다. 마치 세상 사는 게 다 그런 거 아니냐는 듯. 나는 앞서 걸어나가는 아이의 뒤꽁무니를 쫓으면서, 블라인드 채용으로 불안감에 휩싸인 취업준비생들 중에는 승마나 펜싱을 배우는 이들이 있다는 신문기사를 떠올렸다. 그 기사를 본 누군가는 요즘 출퇴근할 때 말을 타냐면서 객쩍은 소리를 했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그것이 두려움 때문이란 것을. 말도 좀 탄다고 하면, 칼도 좀 휘두를 줄 안다고 하면 아니 두려움에 그 정도 비용을 치를 수 있는 사람이란 것을 보여주면 생존할 수 있지 않을까, 자신을 믿어준 적 없는 사회에서 자신을 믿어본 적 없는 이들은 믿음을 사려고 값을 치러야 한다. 바삐 걷는 아홉 살 아이의 뒷모습이 애잔하다.

<김해원 |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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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여중생 폭행 사건이 국민적 공분을 사면서 흉포하고 잔인한 10대들의 범죄에 대해 엄중한 처벌을 요구하는 여론이 들끓고 있다.처벌 위주의 형사정책이 범죄 예방에 미치는 실질적 효과 여부는 논외로 하더라도, 소년법 폐지 같은 다소 감정적인 대응은 현실 직시를 통한 구체적 대안이라고 볼 수 없다. 청소년기의 비행은 본인에게서만 원인을 찾을 수 없고, 찾아서도 안되기 때문이다.

반복적인 비행을 하는 범죄소년들은 쉽게 흥분하고 공격적이며, 거짓말을 반복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을 속이는 사기성이 있다. 대체로 무책임하고 다른 사람의 물건을 훔치는 것에 대해 합리화하며 반사회적인 행동을 반복한다. 이러한 성격장애는 충동성이나 공격성 같은 선천적 기질의 영향도 있지만, 유년 시절의 트라우마나 학대, 가정폭력 등 환경 결핍요인이 원인인 경우가 많다. 범죄소년의 가정은 한부모 가정이나 경제적 빈곤으로 인해 교육 주체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입시경쟁에 바쁜 학교는 문제 학생 폭탄 돌리기를 통해 책임을 회피하고, 배금주의를 숭배하는 일부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유흥업소 출입, 모텔 혼숙, 장물 취득 등의 비행하위문화를 제공한다. 아이들이 공감 능력과 죄의식을 상실하고 범죄를 반복하는 데는 사회공동체의 기능 상실과 해체가 주된 원인으로 작용한다.

미래의 성인범죄로 인해 발생할 막대한 사회적 비용의 일부로 범죄소년들을 교정·교화하여 학교와 사회로 돌려보내는 일은 국가의 책임이다. 이러한 보호처분의 내실화를 위해 보다 많은 시설과 전문 인력이 필요하지만, 발상의 전환을 통한 국민적 공감대가 더욱 절실하다.

<최원훈 | 법무부 범죄예방정책국 주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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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사법개혁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감과 요구가 그 어느 때보다 높은 것 같다. 필자 역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법조인으로서 새 정부의 개혁과제 중 가장 관심있게 지켜보는 분야이기도 하다. 과거에도 지금과 같이 사법개혁에 대한 요구와 시도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90년대 초부터 수차례에 걸쳐 그 필요성이 역설되면서 사법개혁이 추진되었지만, 그때마다 각 권력기관들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히면서 좌초되었고 제도 자체의 근본적인 개혁은 성과를 내지 못했다. 기존의 사법개혁은 검경의 수사권 조정, 검찰의 기소독점주의, 전관예우 근절 등에 많은 초점이 맞추어져 있지만, 사법개혁에 가장 중대한 줄기가 되어야 하는 것은 배심제의 확대 도입이라고 생각한다.

현재에도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에 관한 법률에 따라 국민참여재판이라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으나, 대상 사건을 형사 합의부 관할 사건(재판관 3인이 재판부를 구성하는 사건으로 주로 중대사건들이 이에 해당한다)으로 제한하고 있고, 피고인이 이를 원하지 않거나 재판부의 배제 결정이 있는 경우에는 그나마도 시행하지 않는다.

또한 배심원들이 고심해서 평결을 내리더라도 그 평결과 양형에 관한 의견은 권고적 효력을 가질 뿐 법적 구속력이 없어 재판부는 그 평결에 따라 판결해야 할 의무가 없다. 뿐만 아니라, 검찰이 그 판결에 항소라도 하게 되면 항소심 재판부가 그 결과를 달리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바꿔야 할까? 사법부가 국민의 신뢰와 존경을 회복하는 일은 그 권력을 내려놓고 이를 국민에게 돌려주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배심제를 형사 단독재판에도 확대하고 배심제의 평결과 양형 의견에 법적 구속력을 부여하도록 해야 한다. 법관은 단지 재판이 공정하게 진행되게 하는 심판 역할에 충실해야 하고, 세부적으로 작성된 양형기준표에 따라 광범위한 재량의 여지를 줄여야 한다. 그리고 배심원의 평결에 의한 무죄판결의 경우, 검찰의 항소를 제한하여 이중위험의 금지(같은 죄로 두 번 기소당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리)를 도입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신진욱 |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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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쏟아지는 비와 따가운 햇살 아래 446.44㎞를 묵묵히 걷는 사람들이 있다. ‘부랑인’으로 낙인찍혔던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들이 부산 주례동 형제복지원 터 앞부터 청와대까지 22일 동안 국토대장정을 벌이고 있다. 이들은 외친다. “우리를 왜 가두었는가? 특별법 제정으로 형제복지원 진상을 규명하라!”

행진을 시작하기 전, 피해 생존자 한종선씨가 나를 찾아와 감기약, 진통제, 해열제를 챙겨 갔다. 여덟 살 어린 나이에 열한 살 누나와 함께 끌려간 한종선씨는 84-10-3618이다. 1984년 10월에 3618번째 입소한 ‘부랑인’이란 뜻이다. 그는 2012년 여름, 국회의사당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여 형제복지원의 민낯을 다시 세상에 알리고 망각의 벽을 깨뜨렸다. ‘84-10-3618’이란 숫자가 아니라 ‘한종선’이란 인간으로 살고 싶다고 절규했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사회정화사업이라는 이름 아래 86년 아시안게임, 88년 서울올림픽을 목표로 해서 국가가 밀어붙인 것입니다. 전국의 공권력이 움직였기에 가능했던, 대한민국의 어두운 역사입니다. 형제복지원의 기억이 저로 인해 다시 파헤쳐지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잘 알지만, 제가 할 수 있는 다른 일은 없었습니다. 이제 저희들이 트라우마 없이 살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프레모 레비가 증언했듯, 유태인들도 수용소에 끌려가면 이름 대신 왼쪽 팔뚝에 문신으로 헤프틀링(포로) 번호를 새겼다. 레비의 왼쪽 팔뚝에 새겨진 ‘174517’은 그의 묘비명이 됐다. 아우슈비츠도, 형제복지원도 끌려가면 머리를 빡빡 깎인다. 레비의 표현처럼 ‘머리카락도, 명예도 이름도 없이, 날마다 구타당하고 추접하게 사는’ 인간 이하의 존재가 되는 것이다. 숫자가 된 사람은 짓밟고 학대해도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는 ‘물화된 존재’일 뿐이다. ‘한국판 아우슈비츠’로 불리는 형제복지원의 수용자들도 이름 대신 78-374, 82-2222 등 숫자로 불렸다.

형제복지원은 사회복지시설이라는 간판을 달고 1975년부터 1987년까지 12년간 운영됐다. 1975년 ‘부랑인’을 선도한다는 명목으로 고아·장애인뿐 아니라 밤늦게 역에서 TV를 보는 사람, 술 취해 거리에서 자는 회사원도 주민등록증이 없으면 연행해서 수용했다. 형제복지원은 12년 동안 1만8000여명, 많을 때는 한꺼번에 3146명이나 수용했다.

이들은 사람이 아니라, 정부 보조금을 따내기 위해 상품처럼 분류되는 숫자에 불과했다. 이렇게 해서 박인근 원장이 챙긴 정부 보조금은 1987년 한 해에만 무려 20억원이었다. 불법 감금된 수용자들은 하루 10시간의 강제노역에 시달렸다. 저항하면 굶기고, 구타하고, 심지어 살해하여 암매장했다. 형제복지원 서류로 밝혀진 공식 사망자만 최소 513명인데, 대부분은 굶어 죽거나 맞아 죽었다니 생지옥이 따로 없었던 것이다. 시신 중 일부는 300만~500만원에 의과대학 해부 실습용으로 팔려나갔다.

6월항쟁 30년, 원생 35명의 집단 탈출로 형제복지원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지 30년이지만 ‘숫자로 남은 사람들’은 잊히고 있다. 가해자인 박인근 원장은 특수감금죄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았고, 수감 중에도 사우나를 하는 호사를 누리며 횡령죄로 2년6월의 징역을 사는 데 그쳤다. 박 원장과 그의 가족들은 수백억원대 재산을 소유하고 형제복지원의 이름만 바꿔 사회복지법인을 최근까지 운영했다. 반면 피해 생존자들은 여전히 정신적·육체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국가폭력의 진상은 여전히 규명되지 않았다.

독재정권에 맞서 싸운 사람들은 민주인사로 대접받았지만, 그 독재하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온 형제복지원 생존자들은 문전박대를 당했다. 독재정권은 민심을 얻기 위해 부랑인 청소나 범죄 척결을 단골로 써먹었다. 이 국가폭력의 희생자들은 세월호 유가족,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5·18민주화운동 유가족과 마찬가지로 고통과 아픔을 위로받을 권리가 있다. “가축처럼 새겨진 기억 속의 숫자를 떨쳐내고 사람답게 살고 싶다!” 이들의 외침에 언제까지 귀를 막을 것인가? 우리는 형제복지원 사건을 모르는 게 아니라, 알기를 거부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리하여, 독재정권이 저지른 비인간적인 인권 유린에 ‘묵시적 공범자’가 되고 있는 게 아닐까? 그래서 6월항쟁 30주년, 다시 민주정부가 들어선 지금, 구조되었으나 여전히 ‘가라앉은 자’인 형제복지원 생존자들이 그 먼 길을 걸어야 하는 게 아닐까?

국토대장정 8일차인 오늘, 이들은 성주군청에서 농소면 사무소까지 25.95㎞를 걷는다. 이들은 ‘육체적·정신적으로 괴롭고 힘들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국토대장정을 이어간다. “형제복지원 사건의 진상이 조속히 규명되도록 돕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약속을 떠올리며 환하게 서울로 걷고 또 걷는다.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국토대장정 후원계좌> 우리은행 이은애 1002-557-424264

<강용주 | (재)진실의힘 이사·아나파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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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 이후 보릿고개를 겪은 세대들에게 C레이션에 대한 기억은 새롭다. ‘국방색’ C레이션 상자의 포장을 벗길 때마다 새로운 맛의 세계가 펼쳐졌다. 그래서 선우휘는 소설 <불꽃>에서 “어린애 같은 경탄. 원더풀 C레이션”이라고 말했는지 모른다. C레이션은 전쟁 필수품이었다. 황석영은 월남전을 다룬 소설 <탑>에서 “우리는 헬리콥터가 떨군 이틀분의 C레이션과 탄약을 받고, 길게 늘어진 로프에 시체를 달아 매어올렸다”고 했다. C레이션은 미군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보급되는 ‘전투식량’이다. 미군의 전투식량은 크게 A, B, C, D 등 네 가지다. A레이션은 냉장이나 냉동식품으로 현장에서 요리해 제공하는 것. B레이션은 진공포장된 상태에서 현장에서 요리되는 것. C레이션은 즉석에서 먹을 수 있는 것. D레이션은 간식류를 말한다. 이제 C레이션에 대한 열광은 없다. 전투식량에 묻어 있는 과거 향수를 느끼고 싶거나, 별난 맛을 보려는 이들이 찾을 뿐이다.

그런데 전투식량이 다시 관심을 끌고 있다. 경주 지진의 충격이 가시지 않았는데 북핵 파장까지 겹치며 생존 물품에 관심이 높아진 것이다. 온라인에서는 비상시 행동요령, 생존법 등 정보가 공유되는가 하면 비상식량, 라디오, 휴대용 전등과 같은 재난대비 비상용품 구입이 늘고 있다. 북한의 6차 핵실험 이후 재난용품 매출이 급증했다고 한다.

개그우먼 강유미씨가 유튜브에 올린 ‘전쟁가방 샀어요’라는 동영상은 수십만건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강씨는 방독면을 쓴 모습과 함께 자신이 구입한 재난용품을 모은 이른바 ‘생존배낭’을 소개했다. 23만원을 주고 구입했다는 배낭에는 진공포장 비빔밥, 미니구급함, 정수필터 등이 들어 있다. 생존배낭은 고열량 비스킷·통조림·생수 등 비상식량과 칼·손전등·라이터와 같은 생활용품, 바람막이·담요 등 보온장구와 조명탄·야광봉과 같은 통신장비로 구성된다. 몇만원에서 수십만원까지 다양한 상품이 나와 있다.

생존배낭은 오지체험이나 서바이벌체험 등에 관심이 있는 일부 사람들에게 국한된 물건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생존을 위해 관심을 갖는 실제 상황이 되고 있다. 시대의 서글픈 자화상이 아닐 수 없다.

<박종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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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1987년 6월항쟁 30년과 1997년 외환위기 20년이 된다. 여러 매체들에서 6월항쟁 30년을 기리는 기획이 제법 진행됐지만, 외환위기 20년을 돌아보는 기획은 드문 편이었다. 외환위기가 1997년 10월 이후에 본격화됐기 때문에 다음 달부터 외환위기 20년을 평가하는 기획들이 이어질지도 모르겠다.

외환위기가 우리 사회에 미친 영향은 넓고 깊었다. 6월항쟁이 민주화 시대를 열었다면, 외환위기는 신자유주의 시대를 가져왔다. 이 신자유주의 시대의 경제·사회모델은 흔히 ‘97년체제’라 불린다. 체제(regime)란 경제와 사회가 조응된 관계를 말하며, 특히 물적 기반인 축적체제를 중시한다. 체제의 관점에서 볼 때 외환위기를 계기로 하여 우리 사회는 정부가 발전을 선도하는 ‘전통적 발전국가’의 61년체제에서 발전국가의 요소와 신자유주의의 요소가 혼합된 ‘신자유주의적 발전국가’인 97년체제로 변화했다.

97년체제가 갖는 주요 특징은 세 가지였다. 첫째는 신자유주의 발전전략이다. 외환위기 이후 김대중 정부는 구조조정·규제완화·노동시장 유연화 등 신자유주의 정책을 신속하게 추진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처방한 이 신자유주의 전략은 단시간 안에 경제위기를 벗어나게 했다. 하지만 동시에 국제 금융자본의 영향력 확대, 비정규직 노동자의 증가, 사회 양극화의 강화 등 새로운 문제들을 낳았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가 발생하기 전까지 지구적 차원에서 무한경쟁·적자생존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가 절정을 구가했기에 우리 경제 역시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부과하는 구조적 강제로부터 자유롭기 어려웠다.

둘째는 중산층의 쇠퇴다. 중산층이란 평균소득의 70~150%에 달하는 중간층과 50~70%에 머무는 중하층을 말한다. 외환위기가 발생한 지 10년이 지난 시점에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위기 발생 직전인 1996년 중산층의 규모는 전체 인구의 68.73%를 차지했지만, 위기 직후 2000년에는 61.11%로 줄어들었고, 2006년 상반기엔 54.61%로 더욱 감소했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를 경유하면서 중산층 쇠퇴에 따른 양극화는 구조화됐고, 그 결과 불평등 해소는 시대적 과제로 부상했다. 이런 중산층 쇠퇴가 공동체 구성원의 자존감을 훼손시키고 상대적 박탈감을 증대시키며, 나아가 사회통합을 약화시켰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셋째는 불안사회의 도래다. 무한경쟁의 경제체제와 중산층 쇠퇴의 계층구조는 시민사회의 불안을 확산시켰다. 일상화된 고용의 구조조정, 자녀의 경쟁력을 위한 사교육비 증가, 변화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무엇이든 배워야 한다는 적응 압박의 강화는 국민 다수에게 불안감과 열패감을 안겨줬다. 밤 10시가 넘어야 학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아이들, 갈 직장이 없어도 빼곡히 스펙을 늘리는 청년세대, 입사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퇴출의 공포에 시달리는 30대, 마흔이 넘어서도 외국어학원 문턱을 서성이는 장년세대, 그리고 빠른 사회변동으로부터 소외된 채 빈곤 상태에서 살아가는 노년세대는 외환위기 이후 우리 사회의 민낯들이었다.

97년체제가 낳은 그늘에서 벗어나 새로운 경제와 사회를 열어야 하는 것은 외환위기 20년을 맞이한 우리 사회의 시대적 과제다. 97년체제의 그늘은 20년 동안 구조화돼온 것이기 때문에 단기간에 극복하기 쉽지 않다. 더욱이, 북핵 위기, 세계경제의 불확실성, 포퓰리즘의 지구적 확산이란 구조적 강제가 97년체제에서 새로운 체제로의 전환을 어렵게 하고 있다는 점 또한 주목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내건 대내적 국정목표는 소득주도 성장, 포용적 복지국가, 국민주권 정부의 구현이다. 특히 소득주도 성장은 97년체제의 그늘을 넘어서려는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이다. 외환위기 20년을 돌아볼 때 분명한 것은 97년체제가 불평등을 구조화하고 불안을 증대시켜온 발전전략이라는 점이다. 97년체제 극복의 필요성에 동의한다면, 이제 우리 사회는 부채주도 성장 전략과 낙수 효과에만 의존하는 성장 전략과는 다른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 포스트-발전국가 이후의 새로운 발전전략을 추진하는 게 중대한 국가적 과제라는 점을 고려할 때, 성장·고용·복지의 선순환을 추구하는 소득주도 성장에 대해 지식사회는 물론 정치사회에서 활기찬 토론이 이뤄져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외환위기 20년을 맞이하는 사회학 연구자로서의 바람은 하나다. 97년체제는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도 않고, 국민적 관점에서 소망스럽지도 않다. 이번 가을에는 97년체제 이후의 우리 사회 미래에 대한 생산적인 토론을 기대한다.

<김호기 | 연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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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여중생 폭행 사건을 두고 소년법 개정 논란이 갑론을박을 다투던 무렵 SNS에서 인상 깊은 글을 읽었다. 사건이 일어난 지역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이가 가난과 좌절이 어떻게 아이들을 일탈시키는가에 대해 개인적인 경험을 토대로 쓴 글이었다. 가난과 소외 속에 풀 데 없는 울분을 폭력으로 터트리는 것밖에 배우지 못한 아이들에게 엄격한 처벌만이 과연 옳은 답인가에 대한 질문이 있었고 그보다는 내재된 울분과 에너지가 폭력이 아닌 다른 것으로 발산될 수 있도록 문화적, 예술적, 교육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더 타당하지 않느냐는 제안도 들어 있었다.

대부분이 공감했으나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가난한 애들은 그래도 된다는 말이냐는 오독도 있었고, 어쨌거나 지은 죄는 나이에 상관없이 처벌을 받는 게 옳다는 정의파도 있었고, 그 동네 그렇지 않다고 왜 없는 이야기를 지어내서 멀쩡한 동네를 흠 있는 동네로 만드느냐며 지역 이미지를 우선 걱정하는 이들도 있었다.

나는 조금 엉뚱한 생각을 했다. 처벌 규정이 약한 소년법이 청소년 범죄를 가중시키고 있다면 그보다 강력한 처벌규정이 적용되는 성인들의 사회는 현재 어떤 상황일까. 처벌이 보다 강력하고 엄격한 만큼 안전하고 평화로워야 마땅할 텐데 딱히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물론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납득할 수 없는 판결도 더러 있고, 그런 이유로 성인들의 범죄에 대한 처벌 규정도 더욱 엄격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많고 어떤 판결에는 나 또한 흥분해서 더욱 강한 처벌을 원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의구심이 생긴다.

어느 정도의 강력한 처벌이라야 사회가 안전해지는 걸까. 처벌의 수위와 사회의 안전이 정비례하는 거라면 역사상 가장 강력한 처벌 조항이라고 할 수 있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방식의 함무라비 법전이 존재하던 시대는 그렇다면 역사상 가장 태평성대여야 했던 것 아닐까. 딱히 그랬던 것 같지는 않다. 수위를 높인 형벌이, 비할 바 없이 가혹한 징계가 있다면 그로 인한 두려움으로 범죄를 축소시킬 수도 있지만, 역으로 그 어떤 가혹한 형벌도 두려워하지 않는 무소불위의 범죄 집단을 만들어낼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유명무실한 처벌 규정이 범죄에 대한 담대함을 기르고 있는 것도 문제지만 강력한 처벌만으로 문제의 싹을 자를 수 있다는 믿음에도 선뜻 동의하게 되지는 않는다.

공이 어디로 튈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교화는 그래서 필요한 장치고 제도일 것이다.

누군가의 죄를 벌하는 데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죄, 그 자체에 대한 벌이 있을 것이고, 다른 하나는 죄를 지은 자가 어떤 벌을 받는지를 공공연하게 알림으로써 유사 범죄를 예방하는 효과를 기대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소년법이 개정되어야 한다면 처벌의 경중에만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그 처벌이 교화 혹은 예방에 어느 정도의 현실성과 실효성을 가지고 있는지도 동시에 검토해봐야 할 것이다.

가해자를 선처하자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가해자를 만들어내는가에 대해 고민하고 또한 무엇으로 잠재적 범죄 가해자를 예방할 수 있는지도 함께 고민해봤으면 좋겠다. 따지고 보면 함무라비 법전은 내가 당한 피해만큼의 보복을 허락하는 법전인 동시에 내가 입은 손해 이상의 가해는 할 수 없도록 하는 법이기도 했다.

법질서는 다수의 공분을 가라앉히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의 안녕과 안전을 위해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피해자들을 위한 구제 대책도 법적으로 검토되고 보완되었으면 좋겠다. 피해자들의 입장에서 가해자에 대한 응당하고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며 분노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원하는 만큼의 처벌이 이들의 범죄 피해 상황을 바로 구제해주지는 않는다. 이들을 위한 치유와 재활 프로그램도 함께 고민했으면 좋겠다. 안전한 사회란 상처받지 않는 사회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상처가 회복 가능하도록 도와주는 사회이기도 하다고 믿는다.

<한지혜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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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1학년 때 일이다. 어느날 서클(동아리)룸에 들렀는데 지금은 유명 정치인이 된 여자 선배가 내 손을 딱 잡더니 어딜 가자고 했다. 순간 심상치 않은 느낌이 들면서 겁이 났지만 손을 뺄 수가 없었다.

선배 손에 이끌려 중앙도서관을 지나는데 저 멀리서 서클 4학년 남자 선배가 꽹과리를 두드리며 뭐라고 소리치면서 달려오는 것이었다. ‘어? 왜 저러지?’라는 생각조차 끝나기 전, 잠바 차림의 건장한 두 남자(사복경찰)가 번개처럼 달려와 선배의 어깨 죽지를 꺾고 끌고 가는 것이었다. 어디에 그리 많은 사람들이 있었던지. “우리들은 ○○대다 훌라, 훌라~~”라는 ‘훌라송’을 부르며 순간 사방에서 학생들이 몰려들었다. 내가 처음으로 경험한 집회·시위의 모습이다.

경찰이 최근 “평화적 집회·시위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라”는 경찰개혁위원회의 권고를 전격 수용했다. 경찰개혁위원으로 권고안 작성에 참여했는데 작업 중에 대학 시절이 자꾸 떠올랐다.

무서운 기억 때문이었는지, 나이가 든 뒤에도 가끔 집회·시위에 참가할 때면 항상 불안했다. 경찰과 마주치면 본능적으로 피하거나 얼굴을 감추었다. 불안감과 소심함은 2008년 광우병 소고기 수입반대 집회 초기에서야 비로소 떨쳐버릴 수 있었다. 가로막는 경찰도, 차벽도 없는 광화문광장을 늦은 시각까지 가족·지인들과 함께 걸으며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만끽하고 나라의 주인임을 절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해부터 올 초까지 이어진 촛불집회에서 그 느낌은 정점을 찍었다.

경찰개혁위의 권고는 경찰이 평화적인 집회와 시위를 보장하고 옹호할 책무가 있다는 점을 천명하고 있다. 헌법 제10조에 명시된 “국가는 국민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가 있다”는 점을 재확인한 것이다. 당연한 상식을 왜 권고의 첫 문장으로 넣었을까?

경찰이 집회·시위의 자유를 ‘보장’하는 국가기관이라고 동의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권고문 작성 중에 집회현장의 경찰관을 여럿 만났는데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경찰에게 집회와 시위는 전략과 전술을 잘 구사해 통제하고 관리하고 억제하는 것이지, 존중하고 옹호해야 하는 것으로 인식되어 있지 않았다. 권위주의 시대의 경찰은 집회·시위에 참가한 국민을 툭하면 연행하고, 가두고, 폭력적으로 진압했다. 집회·시위를 경험한 이들에게 경찰은 공포스러운 공권력의 얼굴로 각인돼 있다. 옛이야기라고 손사래를 치는 경찰도 있지만 백남기 농민이 경찰의 직사살수에 맞아 쓰러지고 결국 사망한 것도 불과 2년 전이다.

권고는 집회신고를 간소화하고, 집회금지를 최소화하며, 집회 및 시위 과정상의 사소한 흠결에 대해서는 경찰권 행사를 절제할 것을 제시했다. 일부에서 경찰권 약화를 우려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국민의 기본권 보장이 경찰 본연의 역할이자 의무일진대 이제야 비로소 경찰이 제 모습을 찾아가는 게 아닐까. 물론 안보와 공공질서를 위해 기본권이 제한될 수 있다. 그 경우에도 법률유보의 원칙 및 과잉금지의 원칙에 따라 법률에 의해 엄격하게 제한돼야 한다. 최상위법인 헌법에 기본권을 명시한 것은 기본권 보장이 우선이라는 뜻이다.

집회·시위는 본질적 속성상 시민의 불편이나 업무 공백을 낳는다. 헌재의 결정에서 보듯 집회·시위의 자유는 표현의 자유와 더불어 민주적 공동체에 불가결한 요소다. 더구나 정치적 소수집단에 정치참여를 보장하는 기본권이란 점에서 집회·시위로 인한 교통체증 등은 민주공동체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시민이라면 일정 정도 감내할 수밖에 없다.

집회·시위가 더 증가할 것이라고 걱정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대부분의 집회·시위는 정치권이 갈등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해 생겨난다. 경찰이 평화적 집회·시위를 보장한다고 이유 없이 집회·시위를 벌일 국민이 있겠는가.

경찰도 할 말이 많다. 중요한 결정은 청와대, 법무부, 국정원 등 힘센 기관이 결정하고 경찰에겐 진압하는 악역만 맡겼다는 것이다. 일리가 없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 인권을 보장하는 데 충실한 인권 경찰로 거듭날 때, 경찰의 목소리는 존중받을 수 있을 것이다.

집회·시위 권고문은 무려 A4 용지 13쪽에 이를 정도로 종합적이고 세밀하다. 경찰 수뇌부는 일단 많은 권한을 내려놓았다. 현장의 경찰은 촛불집회에서 나름 인내하면서 평화시위의 동반자가 되는 소중한 경험을 했다.

이러한 경험을 살리고, 권고문을 숙지하며, 여기에 이를 지켜보는 주권자 국민의 애정과 감시가 보태진다면 인권경찰로의 재탄생도 가능하지 않을까. 희망이 현실로 구현되길 기원해본다.

<문경란 | 인권정책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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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사립유치원들이 예고한 집단휴업이 다가오면서 보육대란 우려 등 사회적 파장이 커지고 있다. 지난 8일 한국유치원총연합회는 오는 18일과 25~29일 휴업을 강행하겠다고 예고했다. 이들은 정부가 향후 5년 내 전체 유치원의 25%인 국공립유치원 비율을 40%로 확대한다는 공약을 그대로 시행할 경우 사립유치원의 생존 기반이 위협받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정부가 국공립유치원 확대 정책을 접고 사립유치원에 대한 지원금을 확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사립유치원들의 문제의식은 이해하지만 그들의 요구와 해결방식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앞에서 한국유치원총연합회가 연 '유아교육 평등권 확보와 사립유치원 생존권을 위한 유아교육자 대회'에 참가한 시립유치원 원장들이 '유아학비 공ㆍ사립 차별없이 지원, 사립유치원 운영의 자율성 보장' 등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한국유치원총연합회는 오는 18일과 25∼29일 두 차례에 걸쳐 휴업을 강행할 예정이다. 연합뉴스

국공립유치원을 늘리면 사립유치원들의 경영이 어려워질 것은 불문가지다. 사립유치원이 보육에 기여해온 점을 감안하면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는 있다. 국공립만으로 보육이 불가능한 현실도 무시할 수 없다. 전국 사립유치원의 90%인 3700여곳이 휴업 참여 의사를 밝힌 것을 보면 이들의 위기의식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그럼에도 국공립유치원 증설을 반대하는 의견은 수용하기 어렵다. 보육시설 부족으로 수많은 학부모들이 고통을 겪는 현실을 모를 리 없는 유치원들이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은 결코 이해할 수 없다. 저출산 고착화 등 사회 현실을 감안하면 보육의 국가 책임은 시대적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사립유치원 경영 문제가 있다면 국공립유치원 증설과 별도로 추진해야 할 사안이다.

사립유치원은 학부모들이 이례적으로 강력 반발하는 상황을 무겁게 봐야 한다. 학부모들은 집단휴업 방침 발표 직후 반대 청와대 청원사이트를 만들어 일주일 새 8000명 이상으로부터 서명을 받았다. 이는 사립유치원들이 일방적으로 집단휴업을 결정·통보하고, 국공립유치원 확대정책 반대 탄원서를 학부모들에게 강요한 데 대해 분노하고 있다는 뜻이다. 더구나 휴가를 내기 어려운 추석 연휴 직전을 휴업시점으로 잡았다. 학부모들의 입장은 아랑곳하지 않는 이기주의적 행태가 아닐 수 없다.

유치원의 집단휴업은 법적 근거도 부족하다. 유아교육법 시행령은 개별 유치원 사정상 휴원이 가능하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집단휴업에 대한 규정은 없다. 교육당국은 집단휴업이 유아들의 학습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불법 행동이라며 휴업 강행 시 강력한 행정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립유치원들은 명분도 실리도 약한 불법 휴업을 재고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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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가 12일 시작됐다. 청문회는 시민의 사법부 통제를 위한 민주주의 절차이자 향후 6년간 사법부를 이끌어갈 인물의 능력과 자질을 검증하는 장치이다. 김 후보자는 모두발언에서 “사법 불신을 조장하는 전관예우를 원천적으로 근절하고, 공정한 재판에 대한 법관의 책임성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국민은 약자에게 편안하고 강자에게 준엄한 사법부를 원한다”면서 “국민이 원하는 바를 하나하나 실천해 나가는 것이 이 시대의 대법원장이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가 12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청문회 시작 전 안경을 고쳐 쓰고 있다. 권호욱 기자

김 후보자 발언에는 돈과 권력이 없어 재판에서 억울하게 지는 일을 없애고,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 등으로 추락한 사법부 신뢰를 회복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사법개혁의 핵심 과제이자 시민들이 새 대법원장에게 바라는 바다. 문제는 김 후보자가 이처럼 중요한 임무를 수행할 능력과 자질을 갖추었는가 하는 것이지만 청문회는 보수야당의 인신공격성 질의로 시민의 궁금증을 해소하지 못했다. 이채익 자유한국당 의원은 “김 후보자가 대법원장이 되면 사법 숙청, 피의 숙청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당 장제원 의원 등은 김 후보자가 진보 성향 판사들이 만든 연구단체인 우리법연구회와 그의 후신격인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장을 지냈다는 것을 문제 삼아 ‘색깔론’을 꺼내들었다. 그러나 이들 단체는 가입과 탈퇴가 자유로운 대중적인 판사 연구모임이다. 야당 논리대로라면 보수 성향에 서울대 법대 엘리트 법관들이 회원인 민사판례연구회 소속 판사들도 앞으로 중용될 수 없다.

김 후보자가 대법관을 거치지 않고 바로 대법원장으로 지명됐다는 점을 문제 삼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한국과 법제가 비슷한 일본에서도 대법관 출신 아닌 대법원장이 임명된 전례가 있다. 미국에서는 50세 연방대법원장이 임명됐다. 김 후보자는 58세이다. 김 후보자가 대법관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사법개혁에 적임일 수 있다. 기존 대법관 상당수가 김 후보자의 선배이므로 김 후보자가 대법원장이 되더라도 제왕적인 권한 행사가 어렵다.

흔히 판사는 판결로 말한다고 한다. 김 후보자는 환경미화원이 옷에서 나는 냄새 때문에 버스를 타지 못해 오토바이로 출퇴근하다 사고를 당한 것이 산업재해에 해당한다고 판결하는 등 사회적 소수자나 약자를 보호해왔다. 시민들은 정권에 휘둘리지 않는 사법부, 대법원장에 의해 통제당하지 않는 법관을 원한다. 오늘도 청문회가 있다. 이에 대한 김 후보자의 명확한 입장과 사법개혁 청사진을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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