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남자야, 이게. 이 XXXX야! 이게 한국남자라고. 너 뒤질 준비해.”

BJ ‘갓건배’ 살해협박 사건 당시 갓건배 추격 방송을 시작하면서 BJ ‘이병욱’이 한 말이다. 그는 화를 참지 못하고 욕설을 퍼부으며 정의구현을 위해 길을 나선다. 무엇보다 갓건배가 “한국전쟁 참전용사를 욕보였기 때문”이었다. 그와 동행했던 ‘BJ특수반’은 갓건배를 처치하는 것이 “대한민국을 일제강점기에서 해방시키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문득 궁금해졌다. 그가 생각하는 한국남자란 도대체 무엇일까?

흥미롭게도 그들은 혼자가 아니라 자신들이 속해 있는 BJ 네트워크 안에서 집단으로 움직였다. 그 네트워크의 이름이 ‘느금마 엔터테인먼트’다. 느금마 엔터는 명확한 실체는 없지만 느슨한 동아리라 할 만한 집단이다. 여기서 ‘느금마’(느그 엄마)는 상대방의 어머니를 비하하는 말이다. 느금마 엔터는 ‘신태일 패밀리’라고도 불린다. 유명 BJ ‘신태일’이 중심이기 때문이다. 신태일은 자동차로 자기 다리를 깔아뭉개거나 형광등을 씹어 먹고, 지하철 객차 한가운데서 부탄가스레인지로 라면을 끓이는 등 엽기적인 행각으로 인터넷에서 인기를 끌었다. 그는 한 공중파에 출연해 이런 콘텐츠로 한 달에 1000만원 이상의 수입을 벌어들인다고 밝혔다.

느금마 엔터에는 갓건배 사건 때 벌금 5만원으로 훈방 조치된 ‘김윤태’, 갓건배 추격에 나섰던 이병욱, 신태일이 이 사건으로 계정정지를 당한 후 1인자로 부상하고 있다는 ‘푸워’ 등이 소속되어 있다. 이들은 “형-동생” “회장-사장” 하는 사이로 서로의 유튜브 방송에 출연하기도 하고, SNS에 사생활을 흘려 자신들을 둘러싼 가십을 만들기도 한다. 느금마 엔터가 갓건배 추격에 나섰던 결정적인 계기는 갓건배와 신태일이 방송을 통해 싸움이 붙었기 때문이다. 느금마 엔터는 이처럼 서클을 구성해서 영향력을 행사하며 적지 않은 돈을 번다. 그러다보니 이너서클이 되려고 주변을 배회하는 (그들 표현으로) ‘찌끄레기’들도 생긴다. “대한민국 해방” 운운했던 BJ특수반은 그런 주변인 중 하나다. 그는 갓건배 추격 방송에서 자신이 “신태일 따까리”가 되고 싶었지만 거부당했고, 이제 독립적으로 유튜브 방송을 시작하려 한다고 말했다. 그는 갓건배 건에 합류하여 스스로의 존재감을 드러내면서 ‘그들 중 하나’가 되려고 했다.

여기까지 오면 “이게 한국남자야”라는 선언의 의미를 해석할 수 있게 된다. 그들은 역사의 고통을 이해하는 보편 주체로 터프한 한국남자를 내세우고, ‘잘나가는 놈’ 중심으로 위계를 세워 남성연대를 구축한다. 그리고 그것을 사업으로 연결시킨 뒤, 대한민국을 위한 일이라고 포장한다. “한국남자-형제애-패밀리-엔터테인먼트-대한민국”으로 이어지는 확장은 낯설지 않다. 한국사회의 남성연대가 작동하는 방식의 축소판인 것이다.

다만 이 연쇄의 연결고리를 이어주는 ‘남자다움’의 성격은 완전히 달라졌다. 예전처럼 나라와 가족을 지킨다거나 가부장으로서의 책임을 다하는 등의 전통적인 가치로는 그 성격이 규정되지 않는 것이다. 당연하다. 그로부터 아무런 자원을 얻을 수 없는 현실 아닌가.

이 파국의 세계에서는 오히려 “나는 잃을 것이 없다”는 완전히 허무주의적인 태도와 “고로 나는 막 나간다”는 기이한 열정이 버무려진 기행이 남자다운 것이며, 그로부터 뽑혀 나오는 현금이야말로 최고의 가치다. 이 시대의 남자다움이란, 다른 한편으로는, 시계나 차처럼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에 부착되어 있기 때문이다.

10대 남성들의 장래희망 1위가 BJ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남겨진 자원이 없다는 박탈감을 느끼는 10대 남성들은 느금마 엔터를 하나의 삶의 모델로 삼는다. 실제로 신태일 역시 그렇게 ‘가진 것 없는 10대’에 활동을 시작해서 ‘아우디를 타고 여자친구에게 100만원씩 용돈을 주는 한국남자’가 되었다. ‘남자다움’의 중층적인 의미망을 분쇄하지 않고 유튜브 탓만 해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한국남자란 무엇인가? 이제 그 대답을 다시 써야 할 때다.

<손희정 | 문화평론가>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일반 칼럼 > 청춘직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코토의 가르침  (0) 2017.11.07
대학원생도 ‘연구자’다  (0) 2017.11.02
‘느금마 엔터테인먼트’와 ‘한국남자’  (0) 2017.10.31
아무튼, 책이다  (0) 2017.10.24
김치 온고지신  (0) 2017.10.19
우리 할머니가 살고 있는 나라  (0) 2017.10.12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거리에 은행나무가 노랗게 물들기 시작했다. 내가 일하는 국립수목원은 서울보다 좀 더 북쪽인지라 이미 은행나무 빛깔이 더할 수 없이 곱다. 수목원의 많은 나무들이 만들어내는 최고의 가을 단풍빛깔들이 있는데 은행나무가 가지는 노란단풍의 의미는 언제나 조금 다른 각별함으로 다가선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시간이 주는 경외감이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은행나무에게는 언제나 시간이 묶여져 있다.

은행나무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풍경은, 시간을 한참 거슬러 고등학교로 돌아간다. 교정에는 여러 친구들이 팔을 벌려 감싸야 할 만큼 굵게 자란 은행나무가 있었다. 이 나무가 노랗게 물드는 가을이 되면 짧은 단발머리에 허리를 졸라맨 교복을 입고 있던 열일곱 살 여고생들은 교정에 나와, 단짝과 손을 잡고 사진을 찍고, 은행잎을 주워 책 갈피 갈피 끼워 놓으며 이어령 선생님의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라는 수필집을 읽곤 하였다.

강원 원주시 문막읍 반계리의 은행나무.

다음으로 내 마음에 남는, 매년 늦은 가을이면 찾아가고 싶은 단풍나무는 천연기념물 제167호인 강원 원주시 문막읍 반계리의 은행나무이다. 천연기념물에 대한 책을 쓰느라 전국의 오래되고 큰 나무들을 모두 찾아다닌 경험이 있는데 그 많은 나무들 가운데 나이도, 키도, 사연도 최고인 나무가 (은행나무로 치면 천황목이라는 별명을 가진) 용문사 은행나무다. 이상하게도 내게는 이 나무가 마음에 깊게 심겨졌다. 수백 년을 한자리에 살면서 웅장하고 아름답게 가지를 펼쳐내 드리운 큰 그늘 아래 서면, 세상사에 잡다한 번뇌 정도는 내려놓아도 좋다 싶을 만큼 그 존재 자체로 위안이 된다.

은행나무에게는 언제나 따라다니는 질문이 있다. ‘은행나무는 침엽수인가?’ 겉씨식물이니 침엽수이며, 은행나무의 잎맥을 잘 살펴보면 두 갈래씩 갈라진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이 붙은 것이라는 설명을 들은 적이 있다. 침엽수냐 활엽수냐는 인위적 분류라고 생각하고 구태여 넓은 잎을 가졌는데 왜 침엽수로 구분해야 하는가 의문을 가진 적도 있다.

최근 국립수목원에서는 ‘침엽수(Conifer)’란 주제로 국제 심포지엄이 열렸다. 기후변화에 가장 취약한 구상나무, 소나무와 같은 침엽수에 관한 모든 것을 논의하기 위해 전 세계 18개국의 학자들이 모인 이 자리에서 기조강연을 한 영국 큐(Kew) 왕립식물원의 침엽수 최고 대가는 “은행나무는 침엽수가 아니다”라고 했다. 침엽수들은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솔방울 대신 붉은 열매를 가지는 주목 등 다양한 형태로 모습이 변했지만, 유전분석을 해보면 침엽수만의 공동 조상을 가지는 DNA가 있다는 것이며(은행나무는 예외이고) 정충이 발견되는 등의 다른 특징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은행나무를 따라다니는 또 하나의 질문이 있는데 ‘은행나무는 자생식물인가?’이다. 우리나라엔 전국에 은행나무가 자라고 있지만 사실 모두 심은 나무들이고, 절로 자라는 자생지는 없다. 공룡이 살던 시대부터 살았던, 그래서 살아 있는 화석이라고 부르는 은행나무의 유일한 자생지는 중국 저장성의 양쯔강 하류 천목산이라고 알려지고 있다. 그래서 자생식물이 아니라는 견해이다. 하지만 한 번 더 생각해보면 자생식물을 오래전부터 이 땅에 살았던 식물이라고 정의한다면, 현재는 자생지가 없어도 한반도에서 은행나무의 화석이 발견되니 아주 먼먼 옛날에는 은행나무가 이 땅에 살았다고 할 것이다. 시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어떤 일을 정의(定意)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과학적인 용어에도 새로 밝혀지는 과학적인 사실 등으로 인해 범주가 달라지기도 하고, 그 용어를 한국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인식의 차이점으로 오류가 생기기도 한다. 하물며 세상사 수많은 일들에 대해 우리가 정의 내린 일에는 얼마나 많은 착오가 있을까 생각해본다. 우리는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이 세상에서 스스로의 선입견에 갇혀,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편들고 비난하는 일을 너무 쉽게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진실과 조금 차이가 나는 일에 매몰되어 수많은 갈등을 야기하는 것은 아닐까.

‘조금 길고 조금 넓게 생각해보면, 이해하고 함께할 수 있는 부분은 많아진다’고 은행나무는 가을마다 밝고 아름답게 물들어가며 말하고 있는 듯싶다. 혹시 풀어내지 못한 마음의 문제들이, 마음의 짐들이 있다면, 가을이 가기 전에 은행나무와의 만남을 권한다.

<이유미 | 국립수목원장>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지난 주말의 경향신문 ‘커버스토리’를 흥미롭게 읽었다. 반세기 역사를 뒤로하고 문을 닫게 된 태릉선수촌을 여러 각도에서 조명했다. 선수촌에서 오랫동안 일한 사람들의 기억까지 부분적이나마 복원했기 때문에 읽을 만했다.

문화재청은 2009년 조선 왕릉을 세계유산에 등재하면서 능역 안에 있는 부적합 시설을 모두 철거하겠다고 밝혔고 그 대상으로 서삼릉의 젖소개량사업소와 의릉의 옛 국가정보원 건물 그리고 중종의 계비 문정왕후가 묻힌 태릉과 문정왕후의 아들인 명종과 인순왕후가 잠든 강릉 사이에 있는 태릉선수촌이 지목되었다. 문화계에서는 상징적으로 한두 건물을 남길 수는 있지만 조선 왕릉의 원형 복원이 가장 우선적인 일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체육계는 올림픽 금메달 116개로 상징되는 선수촌의 초창기 공간들, 즉 승리관이나 월계관 등 8개 건물은 보존 가치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 관점에서 2015년 7월 문화재 등록을 추진했으나 아직까지 결론이 나지 않았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두 개의 문화유산이 충돌하고 있는 셈이다. 명분에서나 현실에서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라는 조선 왕릉의 역사적 권위가 더 압도적인 듯 보인다. 등재 여부를 떠나서라도, 근세 이래 쇠락한 왕조의 왕릉은 마구잡이 개발의 대상이었던 바, 그 복원은 중요하다. 일제강점기에 효창원의 효창원골프장(1921년), 의릉의 청량리골프장(1924년), 유릉 터의 군자리골프장(1929년) 등이 들어섰고 5·16 쿠데타 이후에는 서삼릉의 한양골프장(1964년)과 뉴코리아골프장(1966년), 태강릉의 태릉골프장(1966년)이 들어섰다. 특히 서삼릉 지역은 당초 123만평에서 7만5000평으로 급격히 줄어들면서 그 자리를 농협, 한양골프장, 뉴코리아골프장, 한국보이스카우트연맹 등이 차지한 바 있다. 이렇게 서삼릉 부지가 함부로 매각되던 1961년부터 1969년 사이의 문화재관리국장 4명 모두 육사 출신이었고 군사정권 초기에 문화유산이 정권 마음대로 매각되거나 함부로 용도 변경되어 쓰였다. 1966년에 설립된 태릉선수촌도 이런 맥락의 강점이었다.

그러나 근대 문화유산으로서 태릉선수촌의 가치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고전적인 문화유산에 비해 아직은 근대 문화유산이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게 사실이지만 국내외의 여러 도시들에서 그들이 살아낸 20세기의 기억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일은 상당히 중요한 문화적 업무로 대두되고 있다. 비단 정치사회적인 유산만이 아니라 일상 문화 전반의 건물, 조형, 공간 등은 물리적 보존을 넘어 한 시대의 집합적 감수성의 온전한 보전과 그 의미의 풍부한 해석을 위해 체계적으로 관리되고 있다.

사실 나는 작년 5월 이 지면에서 태릉선수촌에 대해 쓴 바 있다. 그때의 관점은, 물리적 보존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이 선수촌에 응결된 각종 기억의 1차적인 수집과 전면적인 해석이었다. ‘국위선양’ 일변도의 기억만으로는 근대 문화유산이라는 지평에 이르지 못할 뿐만 아니라 폭넓은 공감대를 얻기도 어렵다는 취지였다. 게다가 이번 가을에 새로 문을 연 충북 진천의 선수촌은 거의 모든 종목에 걸쳐 최고의 시설로 완비되었기 때문에 태릉선수촌의 실질적 기능은 사실상 종지부를 찍었다고 봐야 한다.

지난 주말 경향신문의 커버스토리가 매우 시의적절했지만 한편 아쉬운 점이 많았던 것도 이 때문이다. 1966년에 왜 국가는 엘리트 선수들을 집중적으로 훈련시키기 위한 공간을 만들었는지, 그 공간의 구성 요소는 어떠한지, 전반적으로 군 병영의 축소판이며 생활수칙 또한 사관학교 이상의 엄격함을 요구했던 그 정신적 지향의 의미는 무엇인지 좀 더 탐사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해당 기사에서 어느 선수는 “태릉에 있는 동안은 1년 열두 달을 거기서 보냈어요. 고등학교·대학교 졸업식도 못 갔어요. 명절 때도 집에 못 갈 때가 허다했죠”라고 회상했다. 물론 고된 훈련에도 불구하고 올림픽 금메달의 꿈을 이룬 곳이며 돌아보면 그때만큼 절실하면서도 즐거웠던 적은 없다는 회고다. 많은 엘리트 선수들이 태릉선수촌을 그렇게 기억한다.

그럼에도 그의 말처럼 “한창 나이에 갇혀서 운동만” 했던 선수촌의 기억이 국위선양의 좋았던 추억으로만 확정해도 좋은지에 대해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것을 통해 우리는 태릉선수촌의 과거 기억을 총체적으로 돌아볼 뿐만 아니라 진천선수촌의 미래에 대해서도 더 많은 논의를 할 수 있으며, 이는 단지 엘리트 선수들의 생활수칙 문제를 넘어 앞으로 한국 사회에서 스포츠가 어떤 의미를 갖느냐 하는 의미 있는 질문으로까지 이어진다.

이렇게 생각하다 보니 나는 1년 전의 생각을 조금은 수정하게 되었다. 선수촌의 주요 시설을 완전 보존하는 것은 여러 모로 무리지만, 봉건 왕조의 유산을 위해 20세기의 현대사가 녹아있는 문화유산을 완전히 없애야 한다는 데 대해서는 반대한다.

반드시 원형 전체일 필요는 없다. 물리적 공간(Space)의 기억이란, 불가피한 경우, 원형 전체나 부지 전부를 보존하지 않고서도 그 장소성(Placeness)을 기억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이를테면 조명탑이나 전광판으로 최고 수준의 기억 상징물을 만들 수 있는 예술적 기법을 구사할 수도 있다. 특히 세계문화유산이라는 압도적인 가치와 충돌할 경우에는 완전 철거라는 극단의 사태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예술적 상징성의 극대화를 통한 기억의 보존’을 차선책으로 구사해야 한다.

체육계는, 이를 위하여 근대 문화유산 보존에 관한 문화사적 원칙을 다시금 분명히 하되 그 실사구시를 위해 이 분야에 경험이 많은 건축가, 예술가, 문화기획자 등을 만나야 한다. 태릉선수촌의 문화사적 가치를 보다 세밀하게 확정하고 이를 ‘기억 상징물’로 보존해낼 수 있는 예술적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체육인의 땀이 배인’이라는 감성적인 접근은 더 이상 방법이 아니다.

<정윤수 | 스포츠 평론가·성공회대교수>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아버지 산소를 오갈 때마다 풍광 좋은 어느 모텔 바로 앞을 막아선, 짓다 만 다른 모텔을 10년 가까이 지나칩니다. 조망권 문제로 법정다툼이 이어지고 있으리란 건 안 봐도 뻔한 일이겠죠. 누가 봐도 염치없는 짓을 하고도 뒷집에서 뭐라 하니 자기 불편한 심기를 풍광 가린 흉물로 헤살부린 것입니다.

이와는 거꾸로, 속담에 ‘뒷집 짓고 앞집 뜯어내란다’는 말이 있습니다. 예전부터 있던 집 뒤에 자기 집을 짓고는 앞집이 가려 해와 바람이 안 드니 앞집더러 일부나 전체를 헐라고 한다는 말입니다(지금도 돈 많은 사람 중에 이런 짓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적반하장(賊反荷杖)이 이런 경우입니다. 잘못된 짓을 하다 들켜도 부끄러워하거나 손가락질을 두려워하긴커녕 오히려 매를 들고 내가 뭘 그리 잘못했냐 위세당당 위협하는 모양이지요. ‘도둑이 매를 든다’ ‘도둑이 달릴까 했더니 우뚝 선다’는 속담에 해당할 것입니다.

요즘 카페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이 꽤 늘었습니다. 도서관이나 독서실처럼 너무 조용한 곳보다 적당한 소음이 있는 곳이 오히려 집중하기 더 좋아서 그런 듯합니다. 하루 종일 교재 펴고 자리 차지한 사람들 때문에 매장에선 골머리를 앓지만 ‘그래도 공부한다는데’ 하며 눈감아줍니다. 하지만 간혹 어이없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매장에서 공부하는 사람이 환담을 나누는 사람들에게 조용히 해 달라 주의를 준다고 합니다. 카페는 차 마시며 대화하는 곳인데 자기 공부에 방해되니 조용히 하라고 눈치를 준답니다. 허허.

사람들은 대개 남 탓을 하면서 자신이 문제란 걸 모릅니다. 뭐든 자기 위주, 자기 입장에서만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행여 얘기라도 하면 무안당했다는 마음에 외려 발끈합니다. 잘못을 인정하려 들지 않으니 이렇게 된 상황도 남 탓이라며 성냅니다. 이러니 자신을 돌아보고 지적을 받아들일 줄만 알아도 능히 군자라 할 세상입니다.

<김승용 |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영화 <남한산성>으로 우리 사회는 지난 고통과 치욕을 되새길 시간을 가졌다. 나 역시 최근 소설을 읽으며 착잡한 심경을 아는 사람들과 학생들에게 토로했던 기억을 자주 떠올렸다. 그 역사는 오금동, 천호동이라는 지명이나, ‘○○녀’처럼 욕설로도 남은 채 현재를 떠돌고 있다. 이민족에 군왕이 머리를 조아린 수치는 한국사에서 영원히 회자될 것이다. 그럼에도 부끄러운 과거에서 현재를 살아갈 교훈을 얻는 부분에서 다른 시각도 요구된다. 항복을 해도 인간은 살아가며, 오히려 굴욕으로 미래를 열어갈 수 있다. 특히 떳떳한 과정에도 불가피한 패배를 맛봤다면 그게 거름이 되어 더욱 큰 결실을 얻을 것이다.

영화 <남한산성> 스틸 이미지

수능을 앞둔 시점에서 많은 학생들은 심리적 고통에 휩싸인다. 수시 전형에 지원했다 이미 불합격 통지를 받은 학생도 있고, 수시 원서를 낸 뒤 치른 모의고사에서 낮은 성적이 나와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 학생도 있다. 사고력 발휘가 중요한 수능이 코앞인데, 감기 등으로 컨디션이 회복되지 않아 몸과 마음이 모두 아픈 학생도 있다. 큰 시험이 다가오면 잡념을 잊고 집중해야 하는데 그게 잘 안된다. 시험결과에 대한 공포와 불안이 원인이다.

오랜 기간 준비한 시험인 만큼 마무리가 중요하다. 시험 직전 집중력은 합격이나 고득점에 큰 영향을 끼친다는 연구결과는 여러 번 있었다. 최선의 결과를 얻으려면 충실한 준비가 있어야 한다. 성실이 성공을 보장하기는 어려우나 성실하지 않으면 성공은 없다. 그런데 결과만 보는 현실에서 수험생의 과도한 불안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남한산성>의 교훈을 패배라는 결과로만 받아들이는 데에는 결과지상주의적인 한국 사회 특유의 문화가 작용한다. 강대국에 수모를 당한다는 점만 부각하면 오히려 과거에서 얻을 교훈은 제한된다.

우리에게 수모를 가한 여진족은 어디 있나? 지구상 어디에도 없다. 그들은 위안스카이에게 굴욕을 당하고 쑨원에게 멸시받았으며, 일본에 이용당하다 소멸했다. 격투기 선수가 나를 때렸다고 내가 힘이 없어서라고 탓하지 않는다. 강대국 역시 공존의 질서와 국가 윤리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에도 비도덕적 폭력을 일삼은 자들에게 책임을 묻기보다 패배라는 결과만 부각시켜서는 안된다. 이는 우리의 정치적, 외교적 도덕성조차 소멸시킬 우려가 있다. 약소민족만 수모를 당하는 것도 아니다. 중국은 비한족이 주도한 진의 통일, 당의 제국화 과정을 거쳤고, 원과 청조에는 이민족 지배하에 놓였다. 프랑스는 스당의 전투에서 독일에 참패한 뒤 통일 독일의 대관식 장소까지 대여하는 수모를 당했다. 이 전승을 수도 베를린에 거창한 기념물로 남긴 독일 역시 2차대전 말기 밀려오는 소비에트 군대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모든 고비에서 승리할 수 없다. 그럼에도 매순간 최선을 다해야 하는 이유는 과정에 충실해야 좋은 결과를 얻게 될 뿐 아니라, 실망스러운 결과를 얻어도 더 큰 고비를 넘길 힘을 얻는 데 있다. 죽음의 공포와 멸족의 위기에서 김상헌과 최명길은 정면으로 맞섰고 왕 또한 백성을 위해 운명적 선택을 했다. 우리가 우리말과 글, 영화로 이들을 회고하는 것으로 미루어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고통 속에서 인생은 성장한다. 수능이 홍타이지의 군대처럼 밀려와도 온몸을 불살라 맞서기 바란다.

<정주현 | 논술강사>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TAG 수능

나이 들수록 왜 시간은 빨리 가는 것일까. 달아나는 정유년을 압침으로 눌러 마무리하는 기분으로 집어든 묵직한 책이 <비글호 항해기>였다. 감히 비교할 수조차 없지만 최근 주말마다 오르는 산에서 마주치는 풍경의 한 자락을 집으로 운반해 온 탓인가. 낯선 동식물이 자주 출몰하는 가운데 이런 유의 문장들에 마음이 축축해졌다. “2월29일 브라질에 도착해 난생처음 열대 숲을 거니는 자연사학자는 우아한 초원, 진기한 기생식물, 아름다운 꽃, 반짝이는 초록 잎, 그러나 무엇보다도 무성하게 우거진 숲 전체에 흠뻑 매료된다.”

어쨌든 오늘의 하루도 그때의 하루와 꼭 같은 분량의 시간이다. 비글호가 갈라파고스를 향해 나아가듯 팔 저어 거인의 어깨 같은 태백의 덕항산을 오를 때 저자의 저런 느낌에 나를 포개기도 하였다. 꽃은 꽃이고 나무는 나무인 곳. 그곳에서 그것들의 너머를 힐끗 보려고 한다만 그게 마냥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저 삐딱한 경사에서 상태가 환한 꽃이거나 묘한 처지에 놓인 나무의 사연을 줍느라 두리번거릴 뿐이었다. 그러다가 오늘 나에게 걸려든 것은 초원도, 기생식물도, 꽃도, 잎도, 숲도 아니었다. 그것은 그림자였다.

좀 더 생각을 전개해 본다. 흔히 자연은 곡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라는 말을 한다. 하지만 이는 일면의 진실일 뿐 완전히 옳은 말은 아니다. 눈앞의 세계는 보여주는 빛과 보여지는 사물이 팽팽하게 만나서 빚어내는 현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물체가 모두 곡선으로 이루어졌다면 직진하는 빛은 모조리 직선이라서 저 그림자를 만들어낸다. 그러니 세상의 절반은 직선이 아닐까.

지금 내가 빠져드는 곳은 접시처럼 매끈한 참싸리의 잎에 얹힌 꽃 그림자 속이다. 태양이 만드는 그림자는 바람에 따라 춤을 추기도 했지만 내 동작에 따라 없어지기도 하였다. 그래도 어쨌든 그림자의 주인은 기름나물. 산형과의 식물로 잘게 갈라지는 잎과 가느다란 가지가 곧고 길게 뻗는다. 그리고 그 끝에 우산처럼 모여서 달리는 자잘한 흰 꽃잎들. 평행한 햇살이 만드는 정교한 기름나물의 그림자 속으로 오늘의 내 그림자도 감쪽같이 흘러나가는 듯! 기름나물, 산형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일반 칼럼 > 이굴기의 꽃산 꽃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갈대  (0) 2017.11.14
산오이풀  (0) 2017.11.07
기름나물  (0) 2017.10.31
겨우살이  (0) 2017.10.24
참회나무  (0) 2017.10.17
연꽃  (0) 2017.10.11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2004년 등장한 아케이드게임 ‘바다이야기’는 독특한 중독성에 힘입어 날개 돋친 듯이 팔려나갔다. ‘바다이야기’나 그 아류 게임기가 늘어선 성인오락실이 주택가 곳곳으로 파고들었고, 어느새 넥타이 차림의 직장인들이 오락실에서 밤을 지새우는 풍경이 낯설지 않게 됐다. 상품으로 주어지던 문화상품권이 현금으로 곧장 환금된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비난 여론이 빗발치자 정부는 뒤늦게 단속에 착수했다. 사전 심의를 받았음에도 사행성이 걸러지지 못한 점은 특혜 의혹으로 번졌고, 고 노무현 대통령의 친·인척까지 거론된 이른바 ‘바다이야기 게이트’로 일파만파 확산됐다.

벌써 10년도 더 된 바다이야기를 새삼스럽게 꺼내는 이유는 최근 국정감사장에서 바다이야기라는 단어가 다시 들려왔기 때문이다.

발언의 주인공은 여명숙 게임물관리위원장이었다. 여 위원장은 최근 게임업체들이 앞다퉈 내놓는 모바일게임의 ‘확률형 아이템’을 두고 “예고된 바다이야기”라고 했다. 그만큼 도박성과 중독성이 짙고, 만만치 않은 부작용을 예고하고 있다는 얘기다.

여 위원장의 표현을 빌리자면 ‘확률형 아이템’은 “노력 없이 (좋은 상품이) 나올 때까지 계속 돈을 투입하는 뽑기”다. 무엇이 들어 있는지 모르는 러키박스 같은 상품을 구입해 게임 내 자신의 캐릭터를 강하게 만들어줄 아이템이 나올 때까지 상자를 반복해서 구입하는 게 기본적인 ‘확률형 아이템’의 구조다. 여 위원장은 이를 “완벽한 도박”이라고 했다. 일례로 국감장에서 공개된 모바일게임 ‘리니지M’의 고급 무기 ‘커츠의 검’ 획득 확률은 0.0001%다. 이는 경마 삼쌍승식(말 10마리가 출전하는 경주에서 1~3등을 한 번에 맞히는 방식) 적중확률 0.139%, 카지노 슬롯머신 잭팟 적중확률 0.0003%보다도 낮은 수준이자 로또 2등에 당첨될 확률과 같다고 한다.

문제는 최근 유행하는 모바일게임의 경우 이 뽑기에 한도가 없다는 점이다. 좋은 아이템이 나올 때까지 수백만~수천만원을 써도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는다. PC게임의 경우 결제한도가 50만원으로 정해져 있고, 유명무실하다고는 해도 로또와 경마도 게임당 10만원의 구매 상한선이 정해져 있다.

무엇보다 모바일게임의 주 소비층은 청소년이다. 현실에서 미성년자는 복권도 마권도 살 수 없다. “어린아이들이 확률형 게임을 통해서 도박을 경험한다. 언론에 보도된 1500만원, 4000만원을 날린 초등학생, 중학생처럼 (어린아이들이) 도박에 빠지고 있다”(더불어민주당 손혜원 의원)는 지적을 지나치기가 어려운 이유다.

게임업체들은 억울해하고 있지만, 인기 있는 모바일게임의 경우 거래전문 사이트에서 캐릭터나 아이템이 현금으로 거래되는 환금성까지 갖췄다. 사정이 이렇지만 정부는 ‘진흥’을 이유로 ‘확률형 아이템’을 자율 규제라는 규제 사각지대로 밀어넣었다. 업계 자율로 게임 내 판매되는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을 공개하고, 이를 공개하지 않을 경우 미준수 게임에 대해 명단을 공개하는 정도다. 강제성도 없고, 명확한 가이드라인도 없다. 미준수 업체 리스트는 아직까지 한 번도 공개되지 않았다.

확률형 아이템의 판매 호조에 힘입어 넥슨과 엔씨소프트, 넷마블 등 국내 대표 게임업체들은 전례 없는 황금기를 구가하고 있다. 하지만 ‘대안을 고민하자’는 요청에는 묵묵부답이다. 국회의 자료제출 요구에는 불응하고, 증인 출석요구도 거부하고 있다.

확률형 아이템 규제가 이뤄지지 않는 이유를 묻자 여 위원장은 “확률형 아이템 규제 논의를 할 때마다 공회전이 된다”며 “게임판의 농단이 심각하다”고 했다. 규제를 막으려는 구체적인 움직임과 세력이 있다는 주장이다. 업계의 배를 불리기 위해 청소년을 사행성 중독으로 내모는 세력이라니…. 순간 귀를 의심했다. 부디 그의 착각이었기를 바랄 뿐이다.

<산업부 | 이호준 기자>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과거 공무원 월급 앞에 붙는 수식어는 ‘쥐꼬리’였다. 1965년 공무원 평균 월급은 6000원으로 광부(6400원)와 비슷했다. 1977년에는 정부가 공무원 월급을 전년도보다 27% 올려 공무원의 85%가 최저생계비 수준에 도달했다고 자랑스럽게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올해 공무원의 평균 월급은 510만원으로 대한민국 직장인 평균 월급(270만원·국세청 연말정산 기준)의 2배 수준이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공무원은 민간기업 취업자보다 퇴직 때까지 7억8058만원을 더 버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무원에겐 연금도 있다. 그래서 부부가 공무원이면 웬만한 중소기업 사장보다 노후가 풍요롭다.

공무원은 철밥통이다. 실직이나 해직 공포도 없고, 회사 매출 걱정을 할 이유도 없으며, 직원들 월급 줄 돈을 마련하기 위해 동분서주할 필요도 없다. 정시 퇴근과 자유로운 연차 사용, 법으로 보장된 육아휴직 등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혜택이 엄청나다. 민간에 대한 통제권도 여전하다. 이러니 공무원 시험에 젊은이들이 몰려드는 것은 당연하다. 올해 치러진 국가직·지방직 9급 공무원시험에 응시한 인원은 70만명에 육박한다. 경쟁률은 일반행정직 171.5 대 1, 교육행정직 225.7 대 1이다. 연줄이 작용하고 집안 배경이 영향을 미치는 일반 기업체 입사 시험에 비하면 공무원 선발 과정은 투명하고 공정하다. 흙수저들로서는 공시 합격이 거의 유일한 신분 상승 기회인 것이다.

그러나 공무원이라고 근무 여건이나 삶의 질이 모두 같은 것은 아니다.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이 공무원연금공단에서 제출받은 ‘2012∼2016년 공무원연금 수령자 자료’를 보니 퇴직 소방관들의 사망 연령은 평균 69세였다. 반면 장차관 등 고위 관료는 82세, 교사 77세, 법관·검사 74세 등이었다. 재직 중 사망한 소방관들의 나이도 평균 44세로 다른 직종에 비해 2~5세 낮았다. 위험을 무릅쓰지 않고는 타인의 생명을 구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연금 수령액은 소방관이 다른 직종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적었다.

인재들의 공직 쏠림을 막고, 힘들고 위험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상응하는 대가를 받을 수 있도록 사회의 보상 체계에 전면적인 손질이 필요한 시점이다.

<오창민 논설위원>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TAG 공무원

한·미 양국 국방부가 지난 주말 서울에서 안보협의회(SCM)를 열어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문제를 논의한 끝에 한미연합사령부를 대체할 ‘미래연합군사령부’ 창설안 승인을 유보했다. 국방부가 최근 국정감사에서 양국군이 미래사 창설안 승인을 장담한 것과 다른 결과다.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은 미 당국자의 말을 빌려 “미국이 전작권을 포기할 뜻이 없다”며 전작권 환수 문제가 양국 간 갈등을 일으킬 소지가 있다고 보도했다. 양측이 공식 확인하지는 않았지만 전작권 환수가 또다시 늦춰질 가능성이 커졌다.

송영무 국방부 장관과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부 장관이 28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열린 제49차 한미 연례 안보협의회(SCM) 공식 기자회견에서 악수한 뒤 각자 자리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한반도 상황은 전작권을 보유하지 못한 한국 정부의 처지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한반도 긴장의 출발점이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인 것이 사실이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전쟁 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는 점 또한 부인할 수 없다. 트럼프가 ‘북한 파괴’를 공언하며 “전쟁이 일어나도 미국이 아니라 한반도에서 일어난다”고 남 말 하듯 해도 한국 정부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보다 못해 미 상·하원 의원 60여명이 트럼프의 대북 선제공격을 봉쇄하는 법안을 제출하고, 한 시민단체는 대통령의 전쟁을 막는 소송을 제기했다. 한반도 평화를 주도하려면 전작권을 조기 환수해야 한다. 한국 정부가 한국인의 운명을 남의 정부에 맡기는 것은 책임을 방기하는 것이다. 동북아 군비경쟁에 대응하기 위해서도 전작권 환수는 서둘러야 한다. 최근 중국과 일본의 군사력 강화는 종전의 안보 위협 수준을 넘어섰다. 자주국방은 단순히 명분이 아니라 사활이 걸린 문제가 된 것이다.

문민정부 이후 역대 모든 대통령이 후보 때 전작권 환수를 공약하고도 집권하면 환수를 미뤘다. 한반도 위기 상황에서 전작권 전환은 시기상조라는 이유 때문이다. 특히 보수세력은 전작권 환수 추진을 미국과 갈등하는 의제로 몰아가며 제동을 걸었다. 자주적 안보역량을 갖춘 후 전작권을 되가져오자는 말이 일견 현실적인 것처럼 들린다. 하지만 이 현실론이 의지 부족을 포장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 또한 간과해서는 안된다.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을 자부하면서 유독 전작권 환수에서만 소극적인 것은 비정상이다. 전작권 환수에는 능력과 함께 의지도 중요하다. 조기 환수를 당면 목표로 정하면 방법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주한미군 철수론이 나올 때마다 전전긍긍해야 하는 상황을 한국민들의 자존심이 더 이상 허락하지 않는다는 점을 미국도 알아야 한다. 정부와 군은 적극적인 자세와 효율적인 준비로 전작권 환수 시기를 최대한 당겨야 한다. 북한 핵 문제가 초래하는 평화의 위기는 전작권 환수를 늦출 이유가 아니라 하루빨리 앞당겨야 할 이유를 웅변해준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촛불혁명 1주년을 맞은 요즈음 민주주의 논쟁이 한창이다. 그 혁명에 참여해서 새로운 대한민국을 외쳤던 시민들의 열망을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처럼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요구로 이해하는 것이 옳은지가 쟁점이다. 최장집 교수와 박상훈 박사의 비판은 아주 신랄하다. 그런 식의 이해는 대의제를 본성으로 하는 현대 민주주의에 대한 근본적 오해에서 비롯되었단다. 심지어 의회를 우회하려는 문 대통령 식의 정치는 군주정의 행태일 뿐이라고 극언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이런 비판이야말로 오히려 촛불혁명이 열어 놓은 한국 민주주의의 새로운 지평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결과가 아닌가 한다.

임채원 교수가 적절하게 지적했듯이, 촛불혁명은 전형적인 ‘마키아벨리언 모멘트’에서 일어났다. 이것은 포칵의 개념으로, 시민들이 위기 상황에서 자신들이 속한 공화국의 불안정성을 확인하고 충만한 시민의식을 갖고 해법을 찾아 나서는 계기를 가리킨다. 우리 시민들이 딱 그랬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요구하며 지난해 10월29일부터 시작된 촛불집회 1주년을 맞아 지난 28일 서울 광화문광장 등 전국에서 이를 기념하는 촛불집회가 열렸다. 시민들이 광화문광장에 나란히 놓아둔 종이컵들에서 촛불이 타오르는 가운데 한 시민이 ‘촛불은 계속된다’고 적힌 종이컵을 놓고 있다. 이준헌 기자

우리나라가 민주공화국이라고는 하지만 주권자 시민들이 언제나 이 나라의 일을 자신의 일로 여기며 살아가지는 않는다. 그러나 시민들은 국정농단 사태에 직면해서 우리의 민주공화국이 심각하게 고장 나 있음을 깨닫고 “이게 나라냐?”고 물으며 광장으로 모여들었다. 그리고 놀라운 시민적 덕성을 발휘하면서 “새로운 민주공화국”을 외쳤다.

우리 시민들은 무엇보다도 우리의 민주공화국이 일부 특권 세력의 사익 추구를 위한 도구로 전락한 데 대해 분노했다. 그리고 그 세력의 충실한 하인들이었던 일부 ‘정치계급’에 대해서도 깊은 실망을 드러냈다. 본디 민주공화국은 ‘데모스’, 곧 인민들이 전적으로 지배를 행사하는 좁은 의미의 민주정의 요소와 함께 엘리트들의 일정한 지위와 역할을 인정하는 귀족정의 계기도 가진 ‘혼합정체’이기는 하다. 실제로 대의민주주의는 그런 엘리트들의 정당한 통치를 보장하는 기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허울뿐인 민주공화국에서는 지금까지 과두 특권 세력과 그 세력을 대변하는 정치계급이 전체 정치를 자신들의 부패를 은폐하고 사익을 추구하기 위한 도구로 이용해 왔다.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현행 선거제도를 악용하고 공론장의 민주적 정당화 과정을 악랄하게 왜곡한 덕분이다. 지난 촛불혁명에서 시민들은 그 불편한 진실을 깨닫고 스스로가 나서 그런 상황을 바로잡고자 했던 것이다. 시민들의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요구는 이런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시민들이 새삼 주권자임을 확인하고 스스로 정치 과정의 중심에 서겠다는 선언을 했을 때, 그것은 대의민주주의 자체를 부정하겠다는 것이 아니었다. 제대로 된 민주공화국은 당연히 대의민주주의를 근간으로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시민들이 의회와 정당들을 불신하는 것은 그것들이 정작 가장 본질적인 책무, 곧 시민들을 대의하는 데서 근본적으로 실패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민들의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요구는 국민들이 모든 사안을 직접 결정하는 무슨 ‘국민투표정치’ 같은 걸로 의회정치를 대체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 요구의 핵심은 정치가 시민들의 요구에 더 잘 반응하게끔 정치의 행태와 양식을 근본적으로 바꾸라는 것이다. 또 그렇게 하기 위해 시민들이 더 많이 참여하고 감시하며 견제할 수 있는 기회와 공간을 갖겠다는 것이다. 요점은 현재의 사실상의 과두정을 혁파하고 참된 ‘민주적’ 공화정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자유한국당이 추구하는 과두 특권 세력의 ‘귀족정치’에 대한 거부와 경계를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부정이나 정치혐오라 해서는 안된다.

정당정치가 제자리를 잡아야 한다는 요구도 그 자체로는 옳다. 그러나 그런 요구는 우리 정당정치가 왜 아직도 제대로 성숙하지 못했는지에 대한 성찰과 함께할 때라야 의미가 있을 것이다. 아직도 진행 중인 촛불혁명의 가장 중요한 성취 가운데 하나는 우리 정당들, 특히 민주당과 같은 개혁적 진보를 자임하는 정당의 발전 동력이 어디에 있는지를 확인시켜준 것이다. 그것은 곧 민주당이 ‘힘 없는 사람들의 힘’, 곧 ‘시민적 권력’을 위한 정치적 기구로서 자기 정립을 제대로 하는 것이다. 우리는 지난겨울 시민정치와 의회정치가 서로 호응했을 때 어떤 정치적 성취를 이루어낼 수 있는지를 생생하게 목격했다. 민주당은 바로 그 역사적 교훈을 그 정체성의 중핵에 새겨둘 수 있어야 한다.

이념과 핵심 가치는 물론이고, 조직 형태와 정치적 의사결정 과정을 주권자 시민의 합리적 이해관계와 요구라는 기반 위에 세워야 한다. 지금 민주당이 이런 일을 아직 제대로 못하고 있어서 걱정이지 너무 많이 해서 문제는 아니다.

<장은주 | 와이즈유(영산대) 교수·철학>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편집기획자란 남들 앞에서 자신이 생각한 바를 직접 드러내는 사람이 아니라 다른 이들, 필자, 독자, 출판 관계자들과의 협업을 통해 이를 구현해내는 사람이다. 그런 의미에서 편집기획자는 음지에서 일하지만, 양지를 지향한다. 아무리 좋은 기획도 그것을 구체적으로 실현해줄 필자가 없으면 소용없다는 것을 절감하게 될 때가 있다. 얼마 전 편집회의에서 여러 안건을 두고 이야기하다가 너무나 멋진 기획을 만났지만, 실무를 책임지고 있는 나는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하신 말씀의 의도를 정확하게 반영해서 글을 쓸 수 있는 필자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요즘 지식인 중에는 자기 분야를 벗어나서 종합적으로 살필 수 있는 연구자들이 정말 드물어요. 또 할 수 있다고 해도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하거나 그럴 여력 자체가 없습니다.” 전문가(specialist)의 시대지만, 공적 지식인(public intellectual)이라 부를 만한 이들은 더욱 희소한 존재가 되어 가고 있다.

1980년 한 해 동안 배출된 국내 박사 학위 소지자는 528명에 불과했지만, 2009년 1만명을 넘어섰고, 2015년에는 1만3077명에 이른다. 올해 태어날 신생아 수가 최초로 40만명 미만이 될 것이라 하니 인구는 줄어도 박사 학위 소지자들은 꾸준히 증가하는 셈이다. 인구 1만명당 박사 학위 취득자도 2명이 넘는다. 읽고 쓸 줄 모르는 사람은 전체 인구의 1.7%에 불과하며 고졸자의 대학 진학률은 80%에 육박한다. 수치와 통계가 보여주는 우리 사회는 지식 선진사회, 바야흐로 대중지식인의 시대다. 그런데도 지식인 사회, 대학의 위기를 넘어 우리 사회가 반지성주의 사회가 되어간다는 우려가 들려온다.

역사학자이자 미국의 대표적인 공적 지식인 리처드 호프스태터가 1963년에 펴낸 <미국의 반지성주의>는 현대 지성사의 고전으로 손꼽힌다. 그는 미국 건국 초기부터 시작된 ‘복음주의’가 매카시즘이라는 ‘극우-반공주의’와 결합하면서 오늘날 미국 사회에서 지식인, 특히 공적 지식인들을 어떻게 몰락시켰는지 치밀하게 분석하고 있다. 그런데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복음주의, 극우-반공주의와 더불어 실용주의를 반지성주의의 핵심으로 지목했다는 것이다. ‘지적 능력(intelligence)’과 ‘지성(intellect)’의 핵심적 차이는 실용성이 아니라 비판 능력에 있다. 지적 능력이 어떤 사안을 파악하고 처리하는 능력이라면, 지성은 의문을 품고, 이를 비판하고 이론화한다. 지적 능력은 어느 시대, 어떤 상황에서도 높은 자질로 평가되지만, 지성은 때로 비판의 대상이 된다. 그 이유에 대해 호프스태터는 “지식인이란 해답을 질문으로 바꾸는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지식인은 사회적 통념과 상식에 의문을 던지는 불편한 존재란 뜻이다.

촛불항쟁을 통해 우리 사회는 대중의 참여에 의한 민주주의를 경험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은 국가권력의 정상화란 우리 시대의 중요한 과제 중 하나를 달성한 결과이지만, 이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 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에 대한 비판을 외면하고, 분단이라는 지속적인 위기 상황에 대한 대처 없이 그것이 가능한 일인지 우리는 스스로 정직해져야 한다. 그러나 지금 이런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은 한가롭게 ‘선비질’이나 하는 존재로 비치기에 십상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의 반지성주의를 염려하게 된 이유의 상당 부분은 과거 권위주의 정권을 살아오면서 권력과 야합하고, 금력에 굴복했던 지식인 자신에게 있다. 대통령 탄핵으로 귀결된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의 뚜껑을 연 것이 이화여대의 미래라이프 사태와 정유라의 부정입학 사건이었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오늘날 한국의 대학과 지식인 사회가 처한 위기를 보여준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여러 영역에서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고, 좀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싸우는 지식인이 없다면 적폐는 해결될 수 없을 것이다. 권위주의 정권과 싸울 때보다 민주정부가 들어섰을 때 스스로 더욱 외로운 소수라고 느끼는 이들에게 박수를 보내야 한다. 그들의 비판과 의문이 우리 사회를 더욱 건강하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전성원 | 황해문화 편집장>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청년은 복지나 정책 대상으로서 다뤄진 역사가 극히 드물다. 청년 세대의 어려움을 풍자하는 신조어는 매년 수십 개씩 만들어지지만 이를 해소할 법안은 하나조차 만들어지지 않는다. 20대 국회에는 청년기본법을 비롯한 42건의 청년과 관련한 법안이 계류되어 있음에도 그중 유일하게 통과된 것이라곤 공공기관에 청년을 3% 의무고용하는 ‘청년고용촉진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뿐이다. 이마저도 본래 5% 고용을 목표로 했던 것이지만 당장의 3% 고용도 지키지 않는 현실 앞에서 좌절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국정연설에서 32번씩 ‘청년’을 언급했다. 그러나 청년을 그럴듯한 수식어로 사용하며 자행한 것은 불안정한 첫 일자리로 내모는 노동개악이었고 청년 주거빈곤 해결과는 거리가 먼 기업형 임대주택이었다. 정부가 바뀌었다고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국정연설에서 33번씩 ‘청년’을 부르면서도 청년위원회를 폐지하고 일자리위원회로 대체했다.

당장의 청년 실업 해결이 시급한 것은 사실이지만 고용 문제에만 집중하는 것은 하나만 알고 열은 모르는 주먹구구식 대처에 불과하다. 청년문제는 더 이상 미취업자로 한정되는 일시적 실업 상태 등의 어려움이 아니다. 학교에서 일자리로, 가족과의 집에서 나만의 집으로, 원래의 가족에서 새로운 가족으로 이행할 때 겪는 실업과 주거빈곤 그리고 연애, 출산, 결혼을 포기하는 ‘3포 세대’가 되는 청년 일반의 구조적 문제가 존재한다. 청년의 삶이 안정적인 토대 위에서 연속성을 가질 수 있도록 국가적 차원에서 이를 책임지고 종합적으로 지원할 청년기본법이 필요한 이유다.

청년기본조례를 만드는 지자체가 늘고 있지만 청년기본법이 없는 상태에서는 지자체의 역량에 기댈 수밖에 없는 문제를 낳는다. 

청년기본조례 제정 후 이와 관련한 예산 증대와 다양한 정책을 시도하는 지자체가 있는 반면 그러한 의지가 없어 조례를 제정하고도 속 빈 강정처럼 내버려두는 지자체가 있기도 하다. 청년기본법을 제정해 중앙정부에서 5년마다 중·장기 계획을 마련하고 각 지자체, 지역 청년과 지속적으로 협업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몸에 난 상처는 환부가 어디인지 눈으로 분명히 확인할 수 있어 아픔을 금방 깨달을 수 있다. 역시 모양과 깊이에 따른 적절한 치료법도 재빨리 처방할 수 있다. 그러나 사회사가 삶에 낸 상처는 경우가 다르다. 눈에 보이지 않아 통증을 깨닫기 힘든 데다 개인의 불행과 같은 일로 취급하곤 홀로 아픔을 삼키기 일쑤다. 아프다고 우는 순간 이는 노력의 부족으로 치부되어 무능력자로 낙인찍히기 때문이다. 지금의 청년이 딱 그런 모습이다.

이러한 고통에 지치고 무뎌져서는 안된다. 우리네 삶의 정답이 더 이상 ‘탈조선’이 될 순 없다. 어쩔 수 없게 되면 죽지 뭐, 하는 섬뜩한 농담을 진담 섞어 나누는 일은 그만두고 싶다. 지금이 아니라 나중으로 미뤄졌던 청년에게 필요한 것은 삶을 넓게 조망할 권리와 이를 풀어낼 공간이다. 스스로의 삶을 꾸미기보다 다른 무언가를 위해 그럴듯한 수식어로 낭비되던 일들을 끝마치고 청년의 삶에서 주어 자리를 되찾는 과정, 그 첫번째에 청년의 목소리가 함께하는 청년기본법 제정이 있다.

<민선영 | 청년참여연대 공동운영위원장>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이 이제 100여일밖에 남지 않았다. 그리스에서 채화된 평화와 화합의 상징, 올림픽 성화가 11월1일 우리 땅에 도착한다. 성화 봉송의 슬로건인 ‘모두를 빛나게 하는 불꽃(Let Everyone Shine)’처럼 101일 동안 전국 2018㎞를 순회하며 우리 모두를 빛나게 할 올림픽의 불꽃이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이 동서 대립과 갈등을 허무는 ‘벽을 넘어서’의 비전을 실현했다면 30년 만에 다시 한국에서 개최되는 평창 동계올림픽은 동북아 지역 올림픽 릴레이의 시발점이 된다. 평창에서 시작된 올림픽의 아시아 시대가 2020년 도쿄와 2022년 베이징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박지성이 24일 고대 올림픽 발상지인 그리스 올림피아 헤라 신전에서 채화된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성화를 첫 번째 주자인 그리스 크로스컨트리 대표 아포스톨로스 앙겔리스로부터 전달받은 뒤 밝은 표정으로 봉송하고 있다. 올림피아 _ AFP연합뉴스

3번의 도전 끝에 대회 유치에 성공한 만큼 평창 올림픽에 대한 국제사회의 기대가 크다. 일부 국가에서 안전 문제 등을 이유로 평창 동계올림픽에 불참하겠다고 했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으나 이는 왜곡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미 다수 국가에서 정상 참석을 알려오는 등 평창 올림픽에 대한 국제사회의 열기는 날이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 성공적인 대회 준비와 운영을 위한 우리의 어깨가 무겁다.

올림픽의 핵심 가치는 평화와 화합이다. 이를 위해 2년마다 올림픽 개최 전년도에 유엔에서는 휴전 결의안이 채택되는데, 올림픽 기간 전후 일체의 적대행위를 중단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이다. 금년에도 우리나라의 제안으로 11월13일 유엔 총회 본회의에서 올림픽 휴전 결의안이 채택될 예정이다. 올림픽 기간만큼은 한반도를 비롯한 세계 각지에서 서로를 향한 총구를 내려놓고 인류애의 가치를 생각해 봤으면 한다. 나아가 그간 어려운 정치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남북 스포츠 교류가 성사된 만큼 이번 평창 올림픽에서도 남북이 함께하는 가슴 벅찬 모습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스포츠는 국력, 특히 소프트파워의 상징이자 중요한 외교자산이 된다. 평창 동계올림픽의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는 김연아 선수나 박지성 선수가 우리나라의 브랜드 가치를 얼마나 높이고 있는지는 우리 모두 공감하는 일이다. ‘지성 팍’ ‘유나 킴’을 외치는 해외 팬들의 한국 사랑은 스포츠에서 시작되어 우리의 언어와 문화, 나아가 한국 방문으로 이어진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우리는 동·하계 올림픽을 모두 개최한 국가(캐나다,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일본, 러시아, 미국  등 7개국) 명단에 오르게 된다. 월드컵과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이미 개최한 우리로서는 스포츠 분야 그랜드슬램을 달성하게 되는 것이다.

세계인의 축제로서 성공적인 평창 올림픽 개최를 위해서는 국제사회의 지지와 협력이 필수적이다. 현재 40명의 홍보대사가 활동하고 있지만 가장 큰 힘이 되는 홍보대사는 바로 우리 국민들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된 열정(Passion Connected)’이라는 대회 슬로건처럼 국민 모두 한마음으로 성공적인 올림픽 개최를 응원하자. 내년 2월, 한국의 알프스라 불리는 평창에서 어쩌면 일생에 한 번뿐인 올림픽 관람의 기회를 잡을 수 있다. 모 TV 방송 예능 프로 평창편에 소개된 봅슬레이와 아이스하키는 물론, 우리에게 인기있는 피겨스케이팅과 쇼트트랙,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루지와 바이애슬론 등 15개 종목을 즐길 수 있다. 나아가 평창 동계올림픽에 이어 3월9일부터 18일까지 개최되는 패럴림픽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과 지지를 당부한다. 우리와 전 세계인이 함께하는 진정한 축제의 장은 장애와 비장애, 차별과 편견을 초월할 때 가능하기 때문이다.

2018년 2월9일 평창에서 펼쳐질 환희와 감동, 열정의 무대를 시작으로 금번 올림픽의 비전인 새 지평(new horizon)이 열리기를 고대한다.

<조현 | 외교부 2차관>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과학 전문 브랜드를 만들 거야!”

어느 날 갑자기 편집장이 말했다. 그러면서 작명한 타이틀까지 들고 오는 것이 아닌가. 뜬금없이 과학 브랜드라기에 좀 놀랐다. 지난 10년간 글항아리 이름으로 많은 책을 내면서 과학책도 조금씩 펴내긴 냈다. <청소년을 위한 과학 고전 읽기> <정치사회 현상을 읽는 창으로서의 물리학> <시인이 읽어주는 물리학 원리> <생물학을 둘러싼 전쟁> 등 주로 인문학과 접촉면을 갖고 과학을 흘금거리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한두 권씩 내는 것과 전문 브랜드를 만들어서 본격적으로 내는 것은 차원이 다른데 어쩌려고 저러는 걸까? 한다면 하는 성격이니 할 것 같긴 한데 걱정이 앞서지 않을 수 없었다. 참고로 편집장은 우리 출판사 창업 동지이자 나랑 같이 사는 사이다. 그런데 어떤 주제나 분야에 대해 주도적으로 ‘출판’을 해보겠다고 선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상황을 좀 더 알아보니 이렇게 된 것이었다. 먼저 영향을 미친 사람이 세 명 있었다.    

온라인 북클럽을 운영하고 있는 대표님이 첫 번째다. 그는 “글항아리는 역사 분야에만 관심이 많은 것 같아요. 역사는 과거를 다루잖아요. 저는 미래에 더 관심이 많은데….” 대략 왜 과학책을 내지 않느냐는 이런 뜻인데, 그가 흘린 말꼬리가 그녀를 자극했다. 다른 한 명은 조선시대 성리학을 연구하는 학자다. 인(仁)이라든지 심(心)이라든지 하는 용어들과 씨름하는 게 그의 일인데, 뜻밖에도 그는 최근 과학책을 읽는 모임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인문학 특히 철학으로는 한계를 느낀다”는 게 이유였다. 마지막 한 분은 출판사 대표다. 그는 한 자리에서 그녀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나는 문학엔 별로 관심이 없어. 크게 매력을 못 느끼겠거든.” 문학에 한창 빠져 있던 그녀는 과학책에 좀 더 초점을 두는 그로부터 제법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 출판사 대표님에게 자기가 좋아하는 소설책을 한 권 선물하기도 했다.

이렇게 밑밥이 뿌려진 상태에서 결정적인 계기가 생겼다. <경계에 선 생명(Life on the Edge)>이라는 책의 번역원고를 맡아서 교정을 보게 된 것이었다. 이 책은 분자 단위가 아닌 양자 단위에서 벌어지는 생명 현상을 연구하는 ‘양자생물학’을 대중적으로 풀어낸 ‘과학교양서’다. 3년 전 에이전시 직원이 소개했고 좋은 책이라고 판단해 계약했다. 번역이 끝난 상태에서 묵혀두다가 더 늦으면 안 되겠다 싶어 교정을 보기 시작한 건데, 여기서 문제가 생겼다. 내용이 잘 이해되지 않는 것이었다. 용어들이 낯설고 개념 장악이 안 되니 문장마다 미끄러져 넘어졌다. 지적 호기심이 강하고 성격도 급한 사람은 이럴 때 초조함과 좌절감을 느끼게 마련이리라. 이렇게 만학(晩學)이 시작되었다.

그 뒤로 약 한 달간 우리 집 서가에 새롭게 입주한 과학책들이 100권은 족히 되지 않을까 한다.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책이 거실을 돌아다녔다. 책 좀 그만 사라고 잔소리도 했다. 그랬더니 아주 대형 사고를 쳤다. 그녀가 최신 과학책 트렌드를 읽고 좋은 책을 찾아오겠다며 편집부 직원 한 명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으로 출장을 떠난 다음 날이었다. 혼자 퇴근해서 집에 왔는데 인터넷 서점에서 배달된 책 박스 일곱 덩이가 현관문을 막고 있었다. 아, 이 스펙터클이라니, 어처구니가 없어서 낑낑대며 박스를 나르기 전에 사진을 찍어뒀다.

왜 도서관이라는 좋은 제도를 이용하지 않느냐고!

정말 놀라운 건 이 책들을 ‘실제로’ 읽는다는 것이다. 용어 정리까지 해가면서 말이다. 그렇게 끝없이 과학의 광활한 세계로 빠져들고 있다. 헌책방에 가서 고등학교 때 보던 수학책까지 사와서 공부하는 걸 보고 나는 상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출판이라는 게 이처럼 자연스러운 내재적 동력에 의해 그 지평을 넓혀가는 모습이 아름답지 않으냐고 말이다.

사실 나도 지난 몇 년간 과학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건 아니다. 특히 국내에서 나온 논문들을 간간이 읽곤 했는데 태양열 전지의 기술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현장의 이야기들을 읽는 와중에 맥박이 뛰는 게 느껴지기도 했다. 과학책 시장이 좁다고 하지만 인문학보다 좁으랴. 그래, 한번 해보자. 사실 남모르게 계약해둔 책들도 좀 있다. 그것들만 순차적으로 펴내도 1년치는 될 것이다. 그동안 공부 열심히 하거라.

한편, 브랜드명으로 ‘글항아리’의 작법 원리를 따라 ‘사이언스항아리’는 어떠냐고 제안했다가 무참히 잘렸다. 새로운 브랜드명은 아마 ‘글항아리 사이언스’가 될 것 같다.

<강성민 | 글항아리 대표>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어둠이 깃든다.

수만의 푸른 고기 떼 두근대는 나무에, 나무가 열어놓은 낯선 꽃들에, 꽃 속 수런대는 비밀스런 우물에

하루가 저문다.

 

꽃에서 꽃으로 이동하는 것들의 길이 저문다.

다만 사랑의 기억만이 잉태를 꿈꾸는 시간.

이미 누기진 숲 저 안에선 어둠이 알을 낳아 굴리는 소리.

바람이 부화를 돕자 달빛도 흔들리며 무늬져숲 전체가 푸른 산고로 흔들린다.

 

불모의 숲 밖은 갖은 불빛들로 밝게 저문다.

나는 숲으로 드는 바람길을 타 넘지 못하고, 도시에서 나와 저무는 길의 이정표에 기대어서 밤을 맞는다.

이미 알고 있는 것들에 대한 무지로 뒤척이는 밤.

숲 안의 어둠이 부화한 새들

날아올라

달 켜든 하늘 덮는 게 보인다.

 - 이하석(1948~ )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나뭇잎이 일으키는 바람소리를 들으면, 바람 무늬를 온몸으로 그리는 나뭇잎들을 보면 종종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기쁨이 느껴진다. 알 수 없는 것들에서 무한한 호기심과 설렘이 일어난다.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 설렘도 기쁨도 일어나지 않는다. 알고 있다는 생각이 사물과 우리 몸 사이를 차단시킨다. 귀를 기울이면 사물과 자연에는 자기도 모르게 행복해지는 말, 저절로 가슴이 뛰는 말, 마음 세포가 깨어나는 말들이 가득하다. 우리가 경험한 적도 말한 적도 없는 생생한 이름들이 가득하다. 작가는 ‘이름 지어지지 않은 것 혹은 감히 이름 지을 수 없는 것에 이름을 붙이는 사람’(사르트르)이다. “이미 알고 있는 것들에 대한 무지”를 느낄 때 모르는 것들 속에서 생동하는 신비를 즐길 수 있다.

<김기택 |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일반 칼럼 > 경향시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유령들  (0) 2017.11.13
허기  (0) 2017.11.06
이미 알고 있는 것들에 대한 무지  (0) 2017.10.30
저녁 일곱 시 이십 분쯤  (0) 2017.10.23
붉은 스웨터  (0) 2017.10.16
까자끼 자장가를 들으며  (0) 2017.10.11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10월에는 마을공동체 관련 행사들이 많이 열린다. 청명한 날씨가 이어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느덧 올해의 마을살이를 정리하고 내년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라서 그렇기도 하다. 행사들이 겹쳐서 모두 둘러보지 못해 아쉬운데, 올해는 안산의 ‘2017 전국 마을박람회’ 화성의 ‘마을공동체 한마당’에 다녀왔다.

안산의 행사에서는 18일부터 20일까지 3일 동안 화랑유원지, 경기도미술관, 단원구청 등에서 다양한 마을정책콘퍼런스와 주민들의 야외포럼이 열렸다. 이 중 기억에 남는 것은 ‘곶안: 곶 안의 이야기’라는 제목의 고잔동 문화마을 교과서를 펴낸 디자인 전문팀 ‘강장공장’의 강진영·장재욱 공장장과 마을공간 ‘소금버스 협동조합’의 노승연 대표가 함께한 토크콘서트였다. 안산에서 나고 자랐다는 세 사람이 주민들과 얘기 나누며 풀어낸 글과 주민이 직접 기록한 사진으로 꾸며진 책에는 고잔의 역사, 지리, 사람, 마을 이야기가 예쁘게 정리되어 있다.

이처럼 멋진 작품이 나올 수 있었던 원동력이 궁금했다. “좀 걱정스럽긴 했지만, 알아서 하라고 믿고 맡겼어요. 시작할 때 한 번 보고 다 끝났다고 연락 와서 두 번 보니, 예쁜 결과물이 만들어져 있더군요”라는 시청 담당자의 자랑에 “주문자의 요구에 맞춰줘야 하는 외주작업과 달리 우리가 자유롭게 작업할 수 있어서 더 많은 노력을 들일 수 있었고 애착이 가는 책이 나온 거 같아요”라고 화답했다. “네 모든 사소한 행동까지 이제 다 떨려. 네가 너무 빛나서….” 주민들과 그들의 일상은 그 자체로도 빛이 난다. 그 빛이 드러나도록 자연스럽게 도움을 주면 공공도 같이 빛날 수 있겠다는 생각이 축하공연을 온 ‘그루잠’의 ‘좋아서 빛나서’의 가사와 자연스레 포개졌다.

화성의 마을공동체 한마당에서는 19일부터 21일까지 3일 동안 ‘마을에서 마을을 배우다’라는 주제의 ‘마을로 찾아가는 작은 콘퍼런스’와 ‘화성, 마을의 미래를 이야기하다’라는 주제의 기획콘퍼런스, 주민들이 준비한 한마당 공연 등이 펼쳐졌다. 기획콘퍼런스에서 다룬 것은 수개월 동안 화성주민들이 모여서 스스로 수립한 ‘화성시 마을공동체 기본계획’의 수립과정과 내용이었다.

서울에서 주민주도 마을계획이 수립되는 과정을 지켜볼 기회가 있었는데 바쁜 일상을 보내는 주민들이 함께 모인다는 것 자체가 참 어려웠던 기억이 난다. 화성시의 마을공동체 기본계획은 4월13일부터 10월11일까지 총 15회에 걸친 주민모임을 거쳐 수립되었다. 2주에 한 번꼴인데 숨 가쁜 일정이었을 것이다. 수많은 주민들이 참여하여 만든 기본계획에는 마을만들기비전, 중점과제, 세부과제, 단계별 추진체계, 주체별 역할, 제도개선방안, 연차별 예산계획이 빼곡하게 채워져 있다. 전문기관에 맡겼다면 수억원이 소요되었을 작업이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와 노력으로 달성된 것이다. 하지만 예산을 절감하였다는 것보다 더 소중한 결과는 주민들 스스로 낸 의제와 계획이라는 점이다. 외부 전문가들이 중심이 되어 수립된 계획과 달리 실제 마을현장의 고민이 담긴 것이기에 단순한 페이퍼플랜에 머물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게 한다.

콘퍼런스에 참여한 몇몇 활동가들과 얘기를 나누다 보니 소위 ‘높은 분’의 간섭이 적었던 것이 마을계획이 ‘잘’ 만들어질 수 있었던 이유였던 것 같았다. 자율적으로 현장의 주무관과 주민들이 자유롭게 소통하며 내용을 채워갈 수 있었고, 그 결과 훌륭한 기본계획과 더불어 “우리 팀장님 멋져요!”라는 공공에 대한 주민들의 신뢰까지 얻을 수 있었다.

최근 여러 지자체에서 거버넌스를 통한 행정혁신에 관심을 쏟고 있다. 이를 잘 풀어나가는 곳도 있지만 민관 갈등이 빚어져 풀기 힘든 과제라고 관계자들이 고개를 젓기도 하는데, ‘주민들이 스스로 빛나도록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간단한 방법이 성공적인 거버넌스를 이루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강세진 | 새로운사회를여는 연구원>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일반 칼럼 > 별별시선'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주혁, 그리고 우리의 일상  (0) 2017.11.10
묻습니다, 농산물의 제값  (0) 2017.11.06
자율을 이끌어내는 공공지원  (0) 2017.10.30
동네 창피한 일  (0) 2017.10.23
피부색이 다르다고  (0) 2017.10.16
다시 조용해진 고향 마을  (0) 2017.10.11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소비자 불안과 공포의 시대다. 일회용 생리대와 계란, 용혈성요독증후군(HUS·햄버거병) 의혹을 받고 있는 맥도날드의 안전성 문제는 국정감사에서도 이슈가 되었다. 소비자 수난의 시대가 아닐 수 없다.

제품의 안전 불감증 문제는 최근에 나타난 일시적인 문제가 아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산하 한국식품안전관리인증원이 부여하는 HACCP 인증은 제품의 안전을 보장하므로 소비자들은 좀 더 비싸더라도 HACCP 인증 제품을 구매한다. 하지만 최근 국회에서 HACCP 인증 업체 중 식품위생법을 어겨 적발된 업체가 계속 증가해 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2011년 4월부터 수면 위로 드러나기 시작한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폐 손상 및 사망 사건은 제품안전 불감증의 대표적이며 가장 심각한 사례이다. 제품안전은 소비자가 보장받아야 하는 기본적인 권리이다. 아무리 음모론이 들끓어도 제품의 안전성에 대한 문제제기는 사회적 권리로 인정받아 마땅하다.

살충제 계란 파장이 전국으로 확산되며 출하되는 계란에 대한 전수 조사가 진행중인 8월 16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는 판매중지 안내문을 게시하고 다른 제품으로 계란 매대를 채워놨다. 김기남 기자

소비자권리는 아이러니하게도 소비자시민단체가 아니라 미국 대통령이었던 존 F 케네디에 의해 주창되었다. 1962년 3월15일 케네디 대통령은 소비자 이익 보호를 위한 특별보고서에서 네 가지 소비자 기본권리를 제시했다. ‘안전보호 권리’, 정확한 정보를 제공받을 ‘알 권리’, 다양한 제품과 서비스 간에 선택할 수 있는 ‘선택의 권리’, 소비자의 이익이 정부정책에 충분히 고려되고 행정법원에서 공정하고 신속히 처리되도록 하는 ‘의결을 반영시킬 권리’가 네 가지 권리이다. 이 네 가지 권리는 유엔의 소비자 보호 가이드라인이 되었다. 이후에 보상, 교육, 건강한 환경과 생필품에 대한 권리들이 추가되었다. 이 권리들은 소비자를 시민으로 규정한 ‘소비자 시민주의(consumer citizenship)’에서 소비자가 누려야 하는 기본적인 권리이다.

사실 소비자 시민주의는 권리보다는 의무를 강조해왔다. 시민으로서 소비자는 윤리적, 사회적, 환경적, 경제적 고려를 한 소비를 해야 하며, 소비행위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요즘은 지구환경을 보호하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지향하는 소비가 의무로 강조되는 추세이다. 그런데 갑질 논란이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시민으로서 소비자의 의무는 갑질과 무관한가?

마트에서는 반 이상을 먹다 남은 고기를 가져와서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를 들어 반품해달라는 진상 소비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TV홈쇼핑 업계에서는 빈 박스나 다른 제품, 심지어 쓰레기를 넣어 반품한 뒤 환불을 요구하는 경우가 매월 수천건에 이른다는 기사가 나왔다. 이들은 ‘블랙컨슈머’이다. 블랙컨슈머들은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경우 악의적인 입소문을 내거나 부정적인 글을 온라인에 유포하겠다고 협박하기 때문에 기업이 이들을 상대하는 것은 조심스럽고 불편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블랙컨슈머의 요구를 받아들이게 되면, 그에 따른 비용이 발생하게 된다. 그리고 그 비용은 고스란히 일반 소비자에게 전가된다.

요즘 소비자는 호갱이라고 일컬어지는 호구고객과 진상고객인 블랙컨슈머로 양분되는 것 같다. 많은 소비자는 호갱이 되어버렸고 소수의 블랙컨슈머는 소비자들을 갑질쟁이로 손가락질 받게 했다. 건강한 시장을 만들기 위해 소비자의 권리와 의무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소비자를 보호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와 같은 법적·제도적인 보완이 필요하다.

일회용 생리대와 계란의 안전성 문제는 소비자의 안전보장 권리가 핵심이다. 하지만 일회용품 사용이 신체와 환경에 부작용을 초래할 수밖에 없으며 살충제 계란의 원인은 공장식 가축사육방식에서 비롯됐다고 볼 때, 미래의 일회용 생리대와 계란의 안전성은 단순한 안전 관리 감독의 차원을 넘어서는 문제이다.

결국 생산과 소비의 과정이 환경에 한 갑질 때문에 우리의 건강에 해를 받는 역습을 당한 꼴이다.

우리 모두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황금주 | 중앙대 교수·경영학부>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와 서청원 의원 간 이전투구가 점입가경이다. 5일간의 방미일정을 마치고 귀국한 홍 대표는 28일 “어떻게 그리 유치한 짓을 하는지 이런 사람과는 정치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을 했다. 녹취록이 있다면 공개해보라”고 했다. 이 말을 들은 서 의원은 기자들에게 문자메시지로 “홍 대표가 자신에게 유리한 것만 이야기하고 있다. 곧 진실이 밝혀질 날이 올 것”이라고 전했다. 서 의원은 고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정치자금 1억원을 받은 혐의로 검찰 수사 대상에 올랐던 홍준표 당시 경남지사가 자신에게 구명을 요청했다고 폭로한 바 있다. 홍 대표는 방미 중엔 서 의원에 대해 “깜냥도 안되면서 덤비고 있다. 정치를 더럽게 배워 수 낮은 협박이나 한다”며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이런 추태가 없다. 전·현직 당 대표가 금품비리 내막을 놓고 물고 뜯는 이런 진흙탕 싸움의 끝이 어디일지 알 수 없다.  

[김용민의 그림마당] 2017년10월30일 (출처: 경향신문DB)

한국당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친박계 핵심인 서청원·최경환 의원의 출당을 놓고 극심한 내분을 겪고 있다. 박 전 대통령 출당을 위해선 최고위원회의 의결 절차가 필요하지만 찬반이 팽팽하다고 한다. 두 의원을 제명하려면 의원총회에서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지금으로선 어느 쪽도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결국 양측의 세 대결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애초 박 전 대통령 등의 출당 조치는 진정한 보수의 혁신을 위한 것이라기보다 바른정당 의원들과의 통합을 노린 정치적 술수에 의한 것이었다. 홍 대표는 어쩌면 이도저도 뜻을 이루지 못한 채 당내 분란만 격화될 수 있다.   

홍 대표는 취임 이후 내부 혁신과 인적청산을 다짐해왔다. 하지만 낡은 이념과 노선을 뛰어넘는 합리적 대안을 제시하기는커녕 특유의 독설과 막말로 정치판을 시끄럽게만 할 뿐, 어떤 정치적 역량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는 미국에 가서는 한반도 전술핵 재배치를 요구했다가 미국의 조야(朝野) 인사들로부터 퇴짜를 맞고 돌아왔다. 주말에 열린 한·미 안보협의회에서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부 장관도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한마디로 국제적 망신을 당한 것이다. 제1야당인 한국당은 현재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선임을 이유로 국감을 보이콧하고 있다. 하지만 당 대표는 산적한 문제를 풀기는커녕 되레 국내외에서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한심하기 이를 데 없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문재인 대통령이 공석 중인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에 이진성 헌재 재판관을 지명했다. 청와대는 이 재판관이 시민의 권리를 보호하고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등 국민 기본권을 보호하고 헌법을 수호하는 역할에 충실했다고 설명했다. 이 재판관은 탄핵심판 사건 선고 때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대응이 불성실했다고 보충 의견을 내기도 했다. 양승태 전임 대법원장의 지명으로 재판관에 임명된 그는 온건 보수 성향으로 이변이 없는 한 국회 임명 동의 절차를 무난하게 통과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로써 박한철 전 소장 퇴임 이후 9개월 만에 헌재 수장 공석 사태가 해소될 가능성이 커졌다.

이진성 신임 헌법재파소장 후보자가 27일 저녁 서울 헌법재판소를 나서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지난 9월 김이수 소장 임명동의안이 국회에서 부결되자 청와대는 헌재 소장 임기 문제와 관련해 국회에 입법 보완을 요구하며 후보자 지명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김이수 재판관의 소장 대행 체제도 계속됐다. 그러자 야당이 헌재 국감을 거부하고, 헌재 재판관들도 소장과 재판관을 조속히 임명해 달라고 대통령에 집단적으로 요청하는 초유의 사태가 빚어졌다. 헌법에 헌재 재판관 임기는 6년으로 명시돼 있지만 소장 임기는 따로 정해지지 않았다. 이 때문에 현직 재판관이 소장으로 임명되면 임기 논란이 불가피하다.

헌법 제111조 제4항은 “헌법재판소의 장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 재판관 중에서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제112조 제1항은 “헌법재판소 재판관의 임기는 6년으로 하며,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연임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를 엄격하게 해석하면 헌재 소장의 임기는 그 자격의 전제로 규정돼 있는 헌재재판관의 임기와 같다. 그러나 이 경우 대통령이 재임 동안 헌재 소장을 2번 이상 임명하는 일이 발생하고, 헌재 소장의 임기도 짧게는 1일부터 길게는 6년까지 제각각이 될 수 있다.

이 재판관이 소장으로 취임해도 임기는 내년 9월까지로 1년이 안된다. 내년 여름엔 신임 소장 지명 및 임기 문제가 또다시 불거질 수밖에 없다. 현재 국회에는 헌재 소장 임기 규정과 관련한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이 10여건 발의돼 있다. 여야가 당장 심의에 나서 이번에 헌재 소장 임기 문제를 매듭지어야 한다. 아울러 이 지명자 임명 동의 절차와 유남석 신임 재판관 지명자 인사 청문회도 조속히 진행해 헌재를 하루빨리 정상화해야 한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중국계 혼혈 배우 클로이 베넷은 헐리우드에서 아시아계가 겪는 캐스팅 불이익 때문에 아버지의 성을 버렸다. 본명은 클로이 왕이다. 미국에서 아시아계 연기자가 따낸 주연급 배역은 1%에 불과하다. 명백한 인종차별로 보이지만 이런 반론도 있다. 주관객층이 백인인 헐리우드 영화의 주인공 가운데 백인이 많은 것일뿐, 돈으로 움직이는 헐리우드에서 우수한 배우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는 것.

그 변명은 검증 실험을 통과하지 못했다. 중국의 액션배우 이연걸과 미국의 팝스타 알리야가 주연을 맡은 영화 <로미오 머스트 다이>에는 남녀 주인공의 키스 장면이 들어있었다. 시사회에서 야유를 받은 탓에 키스 장면을 잘라낸 새로운 편집본이 전세계 극장에 걸렸다. 관객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아시아계 남성 로미오’를 제거해 버린 것이다. 영화 제목 그대로! 관객들이야 “없는 편이 영화적으로 더 나았다”라고 말하면 그만이다. 편견은 부정과 함께 완성된다.

영화 <엑스맨>의 한 장면. 돌연변이들은 주류 사회에서 끊임없이 배척당한다.

한국에선 어떨까? 방송 프로그램에서 여성 출연자의 비율은 30%대에 머문다. 인기 예능은 출연자 대부분이 남성이다. 성차별 캐스팅 탓이 아니라, 남성이 많이 나오면 시청률이 높아지는 것이라는 반박도 있다. 그게 사실이라면 차별의 책임은 방송국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지게 된다. 미국의 인종차별은 심각하지만 한국에는 성차별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로 인해 한가지는 분명해진다. 감정이입의 차이는 세계관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마법이다.

공무원시험의 여성합격률이 70%에 육박한 뒤로 시행된 공무원 양성평등 할당 제도의 수혜자는 남성이다. 지난 6년간 정원외 합격자 616명중 458명이 남성이었다. 남성 ‘역차별’을 막기 위해선 불가피한 제도였을까? 판사의 약 70퍼센트, 국회의원의 83퍼센트, 400대 부자의 92.5퍼센트가 남성이라는 사실을 지운다면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 반론은 다시 자리를 옮겨 미국에서 받으려 한다.

미국의 아시아계 인구 비율은 5.6퍼센트이지만 지방법원 판사의 3퍼센트, 의원의 2.6퍼센트만이 아시아인이다. 아시아계 학생들은 아이비 리그 명문대학에 합격하기 위해 SAT에서 백인보다 무려 평균 140점을 더 받아야만 한다. 성적이 너무 높아 명문대학들이 사실상의 ‘인종 할당제도’를 적용해 합격권 아시아계 학생들을 탈락시키기 때문이다. 약자들이 불평등한 권력차를 피해 몰려간 곳에서는 평등의 이름으로 능력차를 보정해 버리고 있는 것이다. 아시아계 미국인들은 이를 두고‘대나무 천장’이라고 부른다. 사회적 약자를 짓누르는‘유리 천장’이 우리 사회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아시아인을 짓누르는‘대나무 천장’도 미국 사회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해야 한다. 비록 우리가 차별이 만연한 세상에 살고 있지만, 각각의 차별마저 차별하는 세상에 살 수는 없다.

영화 <엑스맨>에는 돌연변이를 차별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한 상원의원이 고준위 방사선에 노출된 뒤 돌연변이로 변하는 장면이 나온다. 상원의원은 스스로 엑스맨이 된 뒤에야 혐오가 몰이해의 다른 이름임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타인이 되어보려고 방사선까지 쬘 필요는 없다. 상상력이라는 더 효과적인 수단이 있기 때문이다. 상상력은 우리가 언제든지 타인이 되어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 간편한 교차성의 다리를 막는 유일한 장애물은 이기심이다.

엘리자는 이탈리아 요리사였다. 태국의 정글에서 만난 그녀로부터 달이 기운 밤 동안 조국의 이야기를 들었다. 성희롱이 일상인 직장, 남편에게 두들겨 맞는 아내들, 응답없는 길거리 시위. 조국을 떠나 백인 히피 공동체에 합류한 뒤에야 자기가 살던 세계의 문제를 똑바로 직시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그 풍부한 언어와 상상력, 눈앞에 그려지는 과거와의 전쟁에 완전히 매료당했다. 그녀가 반쯤 감은 눈꺼풀을 굳이 손가락으로 찢어가며 이렇게 말하기 전까지. “너무 졸려. 더 있다가는 아시아인이 되어버리겠어!” 나를 홀린 상상력은 거기까지였다.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현명한 눈을 얻은 사람조차 스스로를 극복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엑스맨이 되어보기’가 그토록 어렵다.

<손아람(소설가)>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