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연휴가 지나갔다. 10월의 하루하루들, 날이면 날마다 햇살이 얼마나 좋고, 공기와 바람이 얼마나 좋은지 툭하면 밖으로 나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굳이 공원이나 산책로를 찾지 않더라도 그저 햇살 아래 잠깐 가만히 서있는 것만으로도 온몸이 노곤노곤해지고, 마음 속에 날이 서있던 어떤 것들이 가만가만 구워질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런 계절을 왜 독서의 계절이라고 했을까. 내 생각에 가을은 책을 읽기보다는 밖에 나가 노는 것이 더 좋은 계절이다. 연휴 중의 하루, 책을 들고 공원에 나갔으나 책을 펼치는 대신 그 위에 손을 얹은 채 햇살 구경에만 넋이 빠졌었다. 그런 풍경, 그런 바람, 그런 햇살과 그늘 속에서는 내가 책 속의 이야기, 책속의 풍경이 되는 기분이기도 했다. 그곳, 내가 앉아있던 공원의 벤치에서는 새로 신축 중인 도서관이 보였다. 숲속에 지어지고 있어 이름도 숲속도서관이다. 그 도서관이 얼마나 아름다울지, 가슴을 두근두근하며 문 여는 날을 기다리는 중이다.

도서관에 관한 내 추억은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에 시작된다. 나는 그때 독립문 근방에 살았는데,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에 사직공원이 있었고, 그 안에 어린이 도서관이 있었다. 시립어린이도서관이라니. 당시에 그런 곳이 얼마나 되었을까. 도서관도 귀하고, 물론 어린이 도서관은 더욱 귀했을 것이다. 책 한 권 사기 위해 아득바득 용돈을 모아야했던 시절, 도서관은 천국과 같았다. 책읽는 습관이 지금과는 비교도 안될만큼 칭찬을 받던 시절의 일이다.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고, 상도 받고 그랬었다. 무지 잘난 어린이가 된 기분이곤 했었다.

나중에 커서는, 그 도서관의 위층 열람실을 이용했다. 정독도서관, 사직도서관, 그런 곳을 책을 읽기 위해서가 아니라 일요일에 중간고사, 기말고사 공부를 하러 다녔다.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새벽부터 긴 줄을 서야 했고, 그러느라 새벽부터 지쳐 열람실에 들어가서는 엎드려 잠부터 자는 게 일이었다. 깨어나면 점심 때였고, 배가 고팠다. 도서관 지하에서는 값싼 우동을 팔았던 것 같다. 공부하러 왔으니 도서관 풍경 같은 건 아무 상관도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사직도서관 열람실에 앉아 있으면, 그 아래 일층 어린이도서관이 늘 그리웠다. 넓은 창과 넓은 책상, 수많은 책들. 그곳에 가만히 앉아있기만 해도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 같던 기분.

운이 좋아 어린이도서관 근처에서 유년시절을 보냈음에도, 도서관이 공부하는 곳이 아니라 책읽는 곳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아주 오랜 후의 일이었던 것 같다. 학창시절 내내 도서관을 공부하는 열람실로만 썼기 때문이다. 줄을 서고, 책상 위에 연습장과 책을 쌓아놓아 영역표시를 하고, 엎드려 자고, 값싼 라면과 우동을 먹기 위해 매점을 들락거리던 기억. 학교를 떠난 후에는 근처에서 도서관을 발견하기도 힘들었다. 동네에 도서관이 새로 생긴 후에도, 공부할 것도 없는데 저긴 뭐하러 가나, 했었다.

한동안 도서관을 책읽기 좋은 곳으로 만든다는 켐페인이 있었던 것도 같다. 편안한 의자를 놓고, 대출을 손쉽게 만들고, 장서 수를 늘이고, 도서관 수도 늘였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의 도서관에서는 일인당 일곱권의 책을 한 번에 빌릴 수 있고, 그 책을 연장기간까지 합쳐 3주까지 읽을 수 있다. 매달 한 주 동안은 14권까지도 빌려준다. 없는 책은 서점에서 살 수도 있고, 그 책값을 도서관이 내주기도 한다. 놀라운 서비스가 아닐 수 없다.

책이 귀했던 시절, 어린이 도서관이 있던 사직공원으로 걸어가던 길이 다시 떠오른다. 30분 이상을 걸어서 가야 했으니 어린아이에게는 그리 가까운 거리라고 할 수 없을 터였다. 그러나 그 길이 매일매일 두근두근했었다. 벽을 가득 채운 동화책들, 그리고 햇살이 은은히 스며들던 넓은 창들, 칸막이 없이 넓직넓직하던 책상들.

기억은 정확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어린 시절의 사직도서관을 빌려 지금 내가 꿈꾸는 도서관을 머리 속에 그리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넓은 창, 좋은 경치, 넓직한 자리, 그래서 책을 무슨 사명처럼 머리를 파묻고 읽는 게 아니라, 그저 읽다 말다, 읽다 쉬다 할 수 있는 곳. 독서가 너무 엄숙하지 않은 곳, 숨막히지 않는 곳.

어쩌다 해외에 나갈 일이 있을 때, 그 도시의 도서관을 찾아가보는 것은 글쓰는 사람으로서 일종의 습관같은 것일 터이다. 그곳의 언어를 모르니 그곳의 도서관에 간다고 해도 책을 읽으러 가는 게 아니라 구경하러 가는 것일 뿐이다. 아름다운 도서관은 책의 향기를 풍기고, 읽지도 않았는데 배를 불리운다. 우리나라에도 아름다운 도서관은 많다. 한옥으로 만들어진 청운문학도서관, 건물의 외관만으로도 유명한 은평구립도서관, 개인도서관인 이진아기념도서관, 사립도서관인 용인의 느티나무도서관. 책을 읽으러 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도서관은 구경할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다. 그래야만 한다. 책을 읽으러가지 않고 보러 간다한들, 그것 또한 괜찮은 일이 아니겠나.

‘존은 나이가 들면서 인간의 선함을 믿게 되었다.’

최근에 도서관에서 빌려다 본 책에서 읽은 한 구절이다. 나는 이런 평범한 문장들에 마음에 끌리는데, 이 단순하고 평범한 문장 속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들어 있을지 궁금해지기 때문이다. 도대체 존은 어쩌다가 인간의 선함을 믿게 되었을까. 존에게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였던 것일까. 그런 궁금함들. 마거릿 애트우드의 ‘고양이눈’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가을은 천천히, 부드럽게 나이가 들어가는 계절이다. 겨울이 오고, 꼼짝없이 다시 한 해를 넘겨보내야 할 때가 오겠지만, 그 직전 가을은 풍성하고 부드럽게 세월을 감싸고 피로를 위로한다. 이야기들이 그 속에서 과일이나 곡식처럼 익어간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나이가 들면서 무엇을 믿게 되었나, 궁금했다. 책을 읽지 않아도 했을 질문, 그러나 책을 읽으니 다시 한 번 깊어지는 질문이다.

그나저나, 가을에 독서를 가장 안 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단다. 더워서 꼼작도 하기 싫은 여름, 추워서 밖에 돌아다닐 엄두 안나는 겨울, 황사 때문에 외출을 삼가는 봄이 실은 책 읽기에 더 좋은 계절이라는 뜻일 터이다. 그러나, 더 좋은 계절이란 게 어디 있겠나. 책이 쓰여지고, 만들어지고, 손닿는 곳에 있는 한, 그 모든 나날들이 책읽기에 좋은 날들이다. 그러기를 소망해본다.

<김인숙 | 소설가>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한국국제협력단(KOICA)은 우리나라의 개도국에 대한 경제·사회 발전 지원, 즉 공적개발원조(ODA) 사업을 대표하는 공공기관이다. 올해 8500억원의 예산으로 국가별 협력, 글로벌 연수, 해외봉사단 파견, 재난 구호 및 복구, 민간단체의 해외원조사업 지원, 국제기구 협력 등의 사업을 한다. 예산은 대부분 정부 출연금과 보조금으로 이루어져 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은 김인식 전 이사장이 지난 4월 사직하면서 현재 신임 이사장 선임 절차를 진행 중이다. 차관급인 코이카 이사장은 임원추천위원회에서 이사장 후보를 추천한 후 외교부 장관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느닷없이 코이카 이사장에 더불어민주당의 이모 전 의원이 내정됐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지난 대선 때 민주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을 지냈다는 이유로 보은 인사를 하는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공공기관의 부실 원인은 무엇보다 낙하산 인사에 있다. 이야말로 청산해야 할 적폐이다.

국제사회는 2016년부터 향후 15년 동안 지속가능개발목표(SDG)를 달성하기로 합의했다. 코이카는 우리나라가 국제사회의 SDG 달성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하는 책임을 부여받고 있다. 따라서 코이카 이사장은 전 세계의 빈곤 문제와 SDG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야 한다. 이에 기초해서 ODA에 대한 높은 비전을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 아울러 “개발은 현장에 있다”는 말처럼 개발협력의 경험이 풍부한 사람이어야 한다.

코이카는 소중한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기관이다. 그럼에도 코이카는 경직된 사업방식과 일부 직원들의 도덕적 해이에 따른 비판을 받고 있다. 따라서 신임 이사장은 개혁적인 경영 마인드를 가지고 조직을 재정비하고, ODA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특히 우리의 국익과 개발협력 본연의 목표를 적절히 조화시킬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의 사업 시스템을 개발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또한 대내외 이해관계자들(stakeholders)과의 상생 파트너십을 구축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코이카 직원들은 선진국이 아닌 열악한 환경의 개도국에서 근무할 수밖에 없다. 코이카는 창립 당시에 비해 예산은 40배 확대되었지만 직원 수는 1.5배 정도만 늘었다. 이에 따라 직원들은 급증하고 있는 업무에 허덕이고 있다. 기왕이면 이들과 함께 고락을 함께하며 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신임 이사장이면 좋겠다.

그동안 코이카 이사장은 외교부 출신이 맡아 왔다. 김인식 전 이사장은 최초로 비외교관 출신이었지만 이 또한 낙하산 인사, 코드 인사였다는 비판을 받았다. 코이카 이사장 후보를 선임하는 임원추천위원회는 낙하산 인사와 코드 인사의 적폐를 청산해주길 바란다. 그럴 리 없기를 바라지만, 혹시 청와대에서, 정치권에서, 외교부에서 내정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리고 학연이나 그 밖의 여러 경로로 개인적인 추천이나 청탁을 하는 경우에는 임원추천위원회에서 이를 공개하고 이들을 철저하게 배제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청와대가 적폐청산의 결의를 분명히 하고 이를 공표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개도국 원조기관의 책임자를 뽑는 데 개도국에서나 볼 수 있는 정실인사가 반복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현훈 | 강원대 교수>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아프리카 대륙 자체가 생소한 우리나라 사람들 중 ‘말라위’라는 나라에 대해 들어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 말라위는 탄자니아, 잠비아, 모잠비크 등 큼직한 나라들에 둘러싸여 지도상으로 잘 보이지 않는 작은 나라이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로 국제통화기금(IMF)과 국제부흥개발은행(IBRD) 및 서구 국가의 원조 의존도가 높아 정부 예산의 40%가 해외 원조로 이루어진 나라이기도 하다. 또한 잦은 홍수와 가뭄, 기아, 질병에 노출되어 있으며 낙후되고 부족한 의료 서비스로 출산을 앞둔 여성의 건강도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는 실정이다.

말라위는 특히 조혼이 심각한 나라 중 하나이다. 이곳 국가통계청의 조사 결과(2012)를 보면 전체 여성 가운데 19세 이전에 결혼한 여성의 비율이 49.6%에 달한다. 정말 놀랍지 않은가? 한창 공부하고 미래를 설계해야 할 나이에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아 키워야 한다는 현실이…. 그렇지만 이곳에서는 이러한 사실들이 그다지 놀랍지도 않은 일반적인 이야기여서 안타까울 따름이다.

굿네이버스 말라위지부에서는 이러한 사회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굿시스터즈(Good sisters)’라는 아동 동아리 프로그램을 2012년부터 현재까지 5년 넘게 진행하고 있다. 초기에는 1개 마을 1개 학교에서 50여명의 여아들을 중심으로 조혼율을 낮추는 것을 목적으로 다양한 교육과 캠페인을 전개했다. 현재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권리의 주체인 여아들이 직접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역량을 강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굿시스터즈에 참여하는 여아들이 직접 권리 옹호의 일환으로 인형극 공연을 통해 조혼의 위험성을 알리고, 직접 만든 피켓을 들고 캠페인을 진행하기도 한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현재까지 총 7개 마을 8개 학교에서 400여명이 굿시스터즈에 참여하고 있으며 4개의 마을에서 작게는 7%, 크게는 21%까지 조혼으로 인한 학업 중단 사유가 감소했다. 분명 외적 변수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만 변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이곳에서도 조금씩 변화가 생기고 있다는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그동안 말라위에서 여아들은 이른 나이에 결혼과 출산을 경험하고 온전하지 않은 결혼 생활로 인해 이혼·조기 임신·가정폭력·교육 기회 단절을 겪었을 것이다. 결국 여아들은 자신의 꿈과 희망을 잃고 권리를 유린당한 채 소리 없는 눈물을 가슴에 품고 살아야 했을지 모른다.11일은 유엔이 정한 ‘세계 여아의날’이다. 아프리카 말라위에서 이룬 여아들의 권리와 관련한 다양한 변화가 전 세계 곳곳에 나비효과를 만들어 내길 바라며, 여아들이 권리를 존중받고 더 나은 미래를 꿈꿀 수 있는 그날이 오길 기대한다.

<이윤화 | 굿네이버스 말라위 장기 해외자원봉사자>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언어의 세계는 저수지를 닮지 않았다. 고여 있지 않다는 뜻이다. 새로 만들어져 등장하는 단어도 있고, 언제 사라졌는지도 모르게 슬그머니 퇴장한 단어도 있다. 가치관이 변했기에 쓸모없어진 단어도 있고, 새로운 가치관을 표현하기 위해 일부러 만들어진 단어도 있다.

시대가 바뀌거나 사람들이 지향하는 가치관이 달라지면 새로운 단어가 필요해진다. 새로 만들어진 단어 즉 ‘신조어’는 늘 양면적이다. 언어의 규칙을 파괴하는 ‘신조어’도 있지만 가치관과 세태의 변화를 반영하는 ‘신조어’도 있다. 신조어는 때로 미래에 만개할 혹은 만개하기를 바라는 징후를 담고 있기도 하다.

100여년 전의 일이다. 1920년에 <신여자>라는 ‘신조어’를 표제로 내세운 잡지가 창간됐다. ‘신여자’라는 ‘신조어’는 “사회를 개조하려면 먼저 사회의 원소인 가정을 개조하여야 하고 가정을 개조하려면 먼저 가정의 주인 될 여자를 해방하여야 할 것”이라는 징후를 반영한다. 급기야 <부인>이라는 잡지를 발간하던 개벽사도 1923년에 ‘신여성’이라는 신조어를 선택했고 <부인>을 폐간하고 <신여성>이라는 제호의 잡지로 재창간했다. ‘신여자’이든 ‘신여성’이든 배경 징후는 동일하다. 여자는 달라져야 한다는 메시지를 이 ‘신조어’는 담고 있다. 그리고 그 이후 100여년에 걸쳐 여자는 실제로 달라졌다. 미래 징후는 사실이 되었다.

2009년 대학에 진학하는 남자보다 여자가 더 많아지기 시작하더니, 2014년 기준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한 여자의 74.6%가 대학에 진학하지만 남자는 그에 훨씬 못미치는 67.6%만 대학에 진학한다. 한때 특별한 여자를 의미했던 ‘배운 여자’는 더 이상 특별한 경우에 속하지 않는다. 예전과는 달리 당대의 보통 여자도 ‘배운 여자’이다. 현기증이 날 속도로 여자는 변했다. 여자는 변화에 민감하다. ‘배운 여자’가 사회에 진출해 유리천장을 뚫기 위해서는 변해야만 한다. 변하지 않은 여자는 유리천장을 뚫을 수 없다. 절실한 사람이 더 빨리 변한다. 그래서 100여년 사이에 여자는 정말 빨리 변했다.

현존 질서에서 이득을 보고 있거나 적어도 손해를 보고 있지 않은 사람은 변화에 둔감하다. 변화를 두려워하거나 때로 적극적으로 변화에 반대하기도 한다. 여자에 비해 남자는 변화에 둔감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남자도 100여년 동안 변했지만, 남자가 변화하는 속도는 변화가 더 절실한 여자가 변화하는 속도에 미치지 못한다. 남자는 앨리스가 거울나라에서 처한 상황과 유사한 처지이다. 거울나라에서는 모든 게 뒤로 간다. 그렇기에 거울나라에서는 가만히 있으면 사실상 뒤로 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거울나라에서는 앞으로 가려면 뒤로 가는 속도의 힘을 이겨내야 한다. 그러니 전진하려면 거울나라에서는 뛰어야 한다. 가만히 있거나 천천히 걷는 속도로 변화하는 사람은 거울나라에서는 의도치 않아도 변화를 원하지 않는 보수주의자가 되는 셈이다.

한국이라는 거울나라에서 대부분의 남자가 천천히 걷고 있거나 아예 걷고 있지 않지만, 어떤 남자들은 변하기 위해서 뛰고 있다. 그들을 일단 ‘신남성(the new man)’이라 부르자. 

두 명의 ‘신남성’에게 그들이 거울나라에서 걷지 않고 뛰고 있는 이유를 물었다. 한 명의 ‘신남성’은 20대 미혼이며 또 다른 ‘신남성’은 30대의 기혼이다. 30대의 기혼 ‘신남성’은 ‘남자답다’는 정체불명의 규정에 자신을 맞추는 게 싫었다고 했다. 감정을 억제해야 남자답다는 소리를 듣는 성규범도 불편했다고 했다. 자신을 가부장에서 탈출한 남자에 가깝다고 묘사를 했으며, 탈출과 더불어 ‘남자답다’는 성규범에서 벗어나니 오히려 삶의 무게가 줄어들어 자유로워졌다고 했다. 20대의 미혼 남성은 “여자를 도구로 대하는” 남자들의 세계가 불편했고, 굳이 그 세계에서 ‘남자답다’는 평가를 받아 마초의 훈장을 가슴에 달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남자들의 설명질, 즉 맨스플레인을 싫어하는 이들은 당연히 다리를 쩍 벌리고 앉지도 않는다.

‘신남성’이 이들을 지칭할 수 있는 적절한 신조어인지는 알 수 없다. 이들 또한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단어를 찾아내고 있지 못했다. 이들과 여러 가지 후보 단어를 염두에 두고 이야기했지만 끝내 적절한 단어를 찾아내지는 못했다. 이들을 명명할 수 있는 단어는 아쉽게도 분명하지 않지만, 이들은 우리에게 익숙한 전형적인 남자의 틀에서 상당히 벗어난 남자라는 점만은 선명하니 마냥 낭패는 아니다.

신여성이라는 신조어가 사용되기 시작했을 때 신여성의 조건을 충족시키는 여성은 당연히 극소수였다. 신남성이 수적으로 얼마나 의미 있는 비중을 차지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신남성이라는 신조어는 현실이 아니라 미래의 징후를 지칭한다. 한국이라는 거울의 나라에서도 가만히 있거나 걷지 않고 뛰는 남자들도 출현하기 시작했다는 징후는 일단 희망적이다. 그래서 반갑게 이들에게 인사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신남성씨”라고. 그리고 첫인사말에 덧붙였다. “당신에 대해 더 알고 싶어요. 같이 뛰면서 알아봅시다”라고.

<노명우 | 아주대 교수·사회학>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본격적인 수확철을 앞둔 농촌이 이중고를 겪고 있다. 인구 감소와 고령화 때문이다. 들판에 벼가 노랗게 익어갈 때 농민들 속은 누렇게 타들어가고 있다. 이렇게 힘들 때 도시의 기업들이 농민들의 고통을 덜어주면 어떨까.

기업 임직원들이 근처 농촌에 가서 일손돕기를 하는 방법이 있다. 가을철 체육행사를 겸해 답답한 도시를 떠나 공기 좋은 농촌을 찾아 농사일을 함께 거들면, 임직원들은 봉사활동을 통해 보람을 느껴서 좋을 것이고, 농민들은 일손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기업 입장에서도 긍정적인 이미지와 좋은 평판을 얻을 수 있다. 상식 있는 소비자라면 당연히 착한 기업의 제품을 더 선호하게 될 것이고 이는 매출 증대로도 이어질 수 있다.

기업체에서 지역 농산물을 구매해주는 방법도 고려해 볼 수 있다. 수확하는 것도 힘이 드는데, 어렵게 수확한 농산물이 팔리지 않는다면 농민들이 얼마나 고통스럽겠는가. 인근 지역 농가에서 수확한 농산물을 기업 구내식당 급식용이나 임직원 가정식단용으로 활용해보자. 직거래 방식으로 구입하면 임직원들은 신뢰할 수 있는 농산물을 싸게 구입해서 좋고, 농민들은 안정적인 판로를 확보할 수 있어 지역경제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다.

기업이 이윤 추구 활동만 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이제는 사회적 책임(CSR)에도 주목해야 한다. 자칭 사회적기업이라고 하면서 생색내기용 봉사활동을 하고 그것을 미디어를 통해 홍보만 하는 기업, 이른바 착한 기업이 아니라 착한 척하는 기업을 이제는 소비자들도 구별할 수 있다. 농촌 일손돕기나 농산물 구매하기를 일회성으로 끝내지 말고, 마을과 기업체가 자매결연을 맺고 정기적으로 도와준다면 소비자들 마음속에는 자연스럽게 신뢰가 싹틀 것이다.

<안상준 | 농협창녕교육원 교수>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우리 주변에서 방학이나 하교 후, 휴일을 맞아 중·고생들이 사회 경험도 쌓고 용돈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하는 걸 종종 볼 수 있다. 부모에 의지하지 않고 자립심을 키우면서 용돈이나 학비를 벌겠다는 취지는 좋지만 우려스러운 부분도 없지 않다. 저임금·폭언·노동 착취에 시달려 마음의 상처를 입는 청소년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청소년 아르바이트는 편의점이나 음식점 배달업이 대부분이지만 일부 청소년들은 돈의 유혹에 못 이겨 학생 신분에 맞지 않는 호프집이나 유흥업소에서 일을 하는 경우도 있어 각종 범죄에 노출되어 있다. 현행 법규상 청소년이 아르바이트를 하려면 부모의 동의가 있어야 하지만 일부 청소년들이 부모의 동의 없이 몰래 일하거나 다른 직종보다 많은 임금을 받을 수 있다는 말에 현혹되어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업주 또한 청소년을 시간제로 고용할 경우 성년에 비해 낮은 비용으로 고용할 수 있어 선호하고 있고, 당초 계약 당시 약속한 임금과 대우가 다르더라도 아르바이트생들이 쉽사리 법에 호소하지 못하는 현실을 교묘히 이용하고 있어 문제가 심각하다. 

첫 사회생활을 하며 임금을 받는 학생들의 미숙한 법적 상식을 악용해 부당한 노동을 강요한다면 장차 이들 청소년들은 사회 전반에 대한 부정적 선입견을 갖는 계기가 되고 말 것이다.

자립심을 키우는 등 건전한 사회생활 경험에 활용돼야 할 노동력이 이처럼 악용되고 있는 현실을 더 이상 간과해서는 안된다. 청소년 자신부터 명품 구입, 유흥비 벌이 등을 위해 학업에 전념해야 할 귀중한 시간을 허비하지 않도록 스스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 기성세대 또한 세상살이가 다 그런 것이라며 지나치기보다는 청소년 아르바이트에 대한 올바른 직업관과 노동관을 심어주는 자세가 필요하다. 지금 이 순간 우리의 미래인 청소년들이 노동력을 착취당하지 않고 정당하게 보호받을 수 있도록 관계 당국의 철저한 지도와 단속이 요망된다.

<김덕형 | 장성경찰서 정보보안과>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21세기에 들어와 올해만큼 우리 사회에서 ‘민주화의 시간’과 ‘분단체제의 시간’이 극적으로 교차하는 나날은 없는 듯하다. 민주화의 시간에서 보면 지난해 가을에 일어난 촛불시민혁명은 문재인 정부라는 세 번째 진보적 정권을 출범시켰다. 분단체제의 시간에서 보면 올해 들어 북·미 간 갈등의 고조는 한반도 평화는 물론 동북아 정세를 크게 요동치게 하고 있다. 두 시간이 이렇게 충돌하면서 남북관계가 다른 모든 이슈들을 압도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국면에서 많은 국민의 의식에 저류(低流)하는 것은 무력감과 불안감이다. 외국 언론들은 태평한 우리 사회를 기이한 눈으로 바라보지만, 이는 외부의 피상적 관찰이다. ‘분노와 화염’ ‘사상 최고의 초강경 대응조치’ ‘단 하나의 수단’ ‘국가 핵무력 건설의 역사적 대업’ 등 도널드 트럼프와 김정은이 무시무시한 말폭탄들을 주고받고 있는데, 이 사실을 모르는 국민들은 거의 없다. 우발적 전쟁의 가능성이 높아지는데도 우리가 취할 수 있는 뾰족한 수가 없어 보이기 때문에 무력과 불안과 짜증의 심정으로 지켜보고 있을 뿐이다.

대안이 보이지 않는다고 상황을 이대로 놓아둘 순 없다. 안보 위기에 대한 해법을 찾기 위해선 상황에 대한 사실판단과 가치판단을 구별해야 한다. 사실판단의 관점에서 다음의 사항들은 분명한 것으로 보인다.

먼저 북한의 경우. 첫째, 북한은 핵무장을 포기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민주정부가 아닌 독재체제인 김정은 정권은 핵무력 건설만이 정권의 안전을 보장해 준다고 믿는 것으로 보인다. 둘째, 중국 역시 북한에 대한 지지를 포기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전후 동북아의 지정학적 차원에서 구조화된 ‘한·미·일 대 북·중·러’ 간의 대결 구도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중국에 북한은 대미관계에서 유효한 완충지대의 의미를 상실하지 않았다.

이어 미국의 경우. 첫째, 미국은 북핵 위기를 쿠바 미사일 사태 이후 최대의 사건으로 파악하는 것으로 보인다. 본토를 직접 공격할 수 있는 북한 장거리미사일의 완성이 미국으로선 레드 라인을 넘어서는 것이다. 둘째,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최종 결정을 내릴지는 예단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 미·중관계를 고려할 때 중국의 사실상의 ‘동북 제4성’인 북한 지역에 군사적 공격을 감행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전쟁이 또 다른 수단의 정치라는 클라우제비츠의 격언과 트럼프 정부가 처한 미국 국내 상황을 고려할 때 전쟁의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도 어렵다.

다음으로 우리의 경우. 첫째, 현재 갈등 구도가 북·미 간 대결인 만큼 우리에게 허용된 활동의 공간은 넓어 보이지 않는다. 김정은 정권은 통미봉남(通美封南)을 고수하고 있는 반면, 트럼프 정권은 우방인 우리의 안보 못지않게 방산기업 등 국내 이해관계의 구속을 받고 있다. 둘째, 북·미 간 긴장은 북한이 핵무력을 완성할 것으로 예상되는 앞으로 1년 내외 동안 계속되고, 때론 고조될 것으로 보인다. 정말 우려스러운 것은 이러한 국면에서 미국의 군사옵션이나 북한의 군사도발의 가능성이 지속될 것이라는 점이다.

점증해온 북·미 간 대결 구도에 대한 이러한 사실판단을 많은 국민은 이미 숙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문제가 복잡한 만큼 해법 역시 복합적일 수밖에 없다. 그 해법을 모색하는 데는 다음의 가치판단이 먼저 고려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첫째, 어떤 형태로든 한반도에서 전쟁이 다시 일어나선 안된다. 정부는 북한과 미국에 전쟁 불가의 메시지를 반복해서 강하고 분명하게 전달해야 한다. 둘째, 활동 공간이 협소하더라도 정부는 제재와 대화의 동시 병행을 계속해야 한다. 제재를 강화한다고 북한이 핵무력을 포기하지 않겠지만 제재와 고립 상태에서는 생존이 지속불가능하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시켜야 한다. 더불어, 북한이 핵무장을 이룬 다음 대화의 장으로 나올 가능성이 높은 만큼 그때의 ‘한국 주도권’을 위해서라도 특사 파견 등 대화를 꾸준히 시도해야 한다.

이러한 목표들이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대외 정책에 대한 정치세력 간의 협력과 합의다. 대북정책에서 정답은 없다. 당장 전술핵 도입 문제를 포함해 여론은 크게 갈라져 있다. 강압정책이든 관여정책이든 대외정책의 일차적 목표는 안보와 외교 역량을 제고해 국익을 극대화하고 한반도 평화를 성취하는 데 있다. 먼저 우리 내부의 의견을 모으고 단합된 목소리를 내야 한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와 같은 개인보다 집단을 우선시하는 어법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대외정책에서만은 이 말의 의미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김호기 | 연세대 교수·사회학>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호환(虎患)이 끊이지 않던 조선시대에도, 도성에 사는 일반인이 직접 호랑이를 보기란 흔한 일이 아니었다. 1741년 어느 날, 서울 정동의 민가에 호랑이 사체가 운반된다고 해서 구경꾼들이 운집하는 일이 있었다. 이용휴 집안에서 사냥꾼에게 후한 값을 치르고 가져오게 한 것이다. 그런데 마당에 눕혀놓은 호랑이를 이리저리 살펴본 이용휴는 적잖이 실망하고 만다. 맹수다운 이빨과 발톱을 지니고 있긴 했지만, 상상했던 것만큼 괴기스러운 모습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머릿속에 그리던 호랑이가 그렇게나 기이하고 공포스러운 모습이었던 것은, 책이나 그림을 통해 전해진 이미지 때문이었다. 이용휴는 말한다. “책에 실린 그 현명하고 뛰어나다는 인물들 중에도 이 호랑이 같은 경우가 많겠군.”

대단한 이미지로 신화화된 이들도 막상 한 꺼풀 벗겨보면 보통사람과 그리 다르지 않거나 오히려 심각한 허물이 드러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왜곡되거나 일부만 과장된 이미지로 인해 부정적으로 매도된 인물의 경우도 역으로 마찬가지다. 온갖 매체의 발달로 정보가 많아질수록 오히려 실상과 이미지의 격차는 더 커질 수 있다. 나아가 그 정보들이 누군가에 의해서 의도적으로 조작되고 널리 유포된다면, 게다가 거기에 국가권력이 개입할 때, 그렇게 만들어진 이미지는 사람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는 파괴력을 지닌다.

모든 것을 직접 보고 나서야 판단할 수는 없다. 정치는 물론 사회관계와 경제생활 곳곳에 넘쳐나는 이미지들에 눈을 감고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주어진 이미지가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실과 허는 어디에 있는지 늘 따져볼 필요가 있다.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지만, 이를 놓아버린다면 우리는 언제든지 그 이미지에 속수무책 속아 넘어가거나 심지어 그로 인한 폭력에 동참하게 될 수도 있다.

이미지의 진실성을 알아보는 데에 특별한 안목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단지 내 눈을 가리는 무언가가 없는지 돌아볼 일이다. 무시무시한 모습을 의도적으로 강조한 세속의 호랑이 그림을 보여줄 때는 아무렇지도 않던 개들이 호랑이의 본모습을 진솔하게 묘사한 낡은 그림을 보고는 벌벌 떨며 도망가더라는 일화를 소개하며, 이용휴는 묻는다. “저 개들도 속일 수 없거늘, 사람이 가짜 이미지에 현혹되어 그저 휩쓸려 떠들어대기만 하는 것은 어째서인가?”

<송혁기 |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일반 칼럼 > 송혁기의 책상물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미지에 속지 않으려면  (0) 2017.10.11
구할 것과 구하지 않을 것  (0) 2017.09.20
수레의 방향  (0) 2017.09.06
부끄러움의 권면  (0) 2017.08.23
애완과 공경의 갈림길  (0) 2017.08.09
좋은 뜻과 식견  (0) 2017.07.26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대통령은 입으로, 퍼스트레이디는 옷으로 말한다”는 얘기가 있다. 정치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대통령의 입을 쳐다보지만 대부분의 시민들은 퍼스트레이디의 의상에 눈을 돌린다는 것이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부인 미셸은 뛰어난 패션 감각으로 주목받았다. 2014년 초 미셸이 두 달 동안 공식석상에서 입은 드레스 세 벌 가격이 1만5000달러(약 1710만원)에 이른다는 언론보도가 나왔다. AP통신은 “미셸은 원칙적으로 옷을 직접 사 입지만 국빈 방문처럼 중요한 자리에 입고 나갈 옷은 디자이너에게 선물받기도 한다. 나중에 이 옷들은 국가기록원에 기증된다”고 보도했다.

미국 역대 퍼스트레이디들은 의상비를 마련하기 위해 갖가지 아이디어를 짜냈다.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 부인 메리 토드는 백악관이 사둔 비료를 내다 팔아 옷값을 마련하려 했다고 한다. 존 F 케네디 대통령 부인 재클린은 시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명품 옷을 샀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부인 낸시는 디자이너들로부터 고가 의상을 빌린 뒤 일부를 돌려주지 않아 입길에 오르기도 했다.

추석 연휴 동안 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의 옷값이 소셜미디어(SNS)의 ‘핫 키워드’로 떠올랐다. 평소 극우적 언사로 유명한 정미홍 더코칭그룹 대표가 지난 1일 페이스북에 김 여사의 옷값과 관련한 글을 올리면서다. 그는 “취임 넉 달도 안돼 (김 여사가) 옷값만 수억을 쓰는 사치로 국민의 원성을 사는 전형적인 갑질에 졸부 복부인 행태를 하고 있다”고 썼다. 정씨의 글이 언론에 보도되며 기정사실처럼 확산되자 청와대는 지난 9일 ‘카드뉴스’ 형식을 빌려 대응에 나섰다. 청와대는 “공식행사 때 (김 여사가) 입는 흰색 정장은 홈쇼핑에서 구매한 10만원대 제품이다. 한·미 정상회담 때 입었던 한복은 어머님이 물려주신 옷감을 염색해 만든 것이다. 낡은 구두는 깔창과 굽을 수선하고, 팔찌는 낡아서 변색한 것을 도금했다”고 소개했다.

청와대의 공식 해명에 정 대표는 침묵하고 있다. 악의적인 허위사실을 유포해서라도 남의 관심을 끌려하는 그의 유별난 심리 상태를 이해 못할 바 아니다. 하지만 말의 중요성을 알 만한 전직 아나운서다운 행태는 결코 아니다.

<박구재 논설위원>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임금을 체불하거나 최저임금법을 위반한 사용자는 3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이런 사유로 실제 처벌을 받는 경우는 드물다. 더불어민주당 정성호 의원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법원이 다룬 노동사건 4만8117건 가운데 1심에서 실형이 선고된 것은 5.2%에 불과했다. 일반 형사사건 실형 선고율(18.0%)의 3분의 1에도 못 미친다. 이 기간 최저임금법 위반으로 재판에 회부된 사건은 357건으로 이 중 7명만 실형을 받았고, 2심 실형은 한 건도 없다. 파견법과 노동조합법 위반도 각각 163건, 585건이 재판에 넘겨졌지만 2심에서 실형이 선고된 사례는 없다.

대표적인 근로기준법 위반 사항인 임금 체불은 대부분 벌금형이다. 벌금도 체불액의 10~20% 수준인 경우가 태반이다. 고통을 겪는 노동자들을 생각하면 처벌 수위가 지나치게 낮다. 고용노동부 조사 결과 올 들어 지난 8월까지 임금 체불 규모는 8910억원이고, 임금 체불 피해 노동자는 22만명에 이른다. 법원의 솜방망이 처벌이 임금 체불을 조장하고 있다고밖에 볼 수 없다.

법원은 노사가 첨예하게 다투는 민사사건에서도 사용자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리는 사례가 많다. 노동인권과 사회정의보다는 개인의 재산권 보호와 사적 자치의 원칙을 우선시한 결과다. 통상임금과 관련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쌍용자동차의 노동자 정리해고를 인정한 판결, KTX 여승무원 불법파견 사건에서 사측의 손을 들어준 판결 등이 대표적이다.

사법부의 이런 분위기 탓에 검찰의 노동사건 기소율도 낮다. 법무부 자료를 보면 지난 10년간 검찰에 접수된 근로기준법 위반 사건은 50만8639건이고, 이 중 검찰이 기소한 것은 22만8879건으로 37.6%였다. 일반 형사사건 기소율(47.3%)을 밑돈다. 특히 구속 기소는 0.03%(163명)에 불과했다. 고의성이 없고, 도주 가능성이 낮다는 이유 등으로 사용자에 대한 구속영장이 법원에서 자주 기각되기 때문이다.

노동법은 사회적 약자인 노동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탄생했다. 평등한 당사자 간의 분쟁을 다루는 민사법과는 다르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법원과 검찰이 노동법을 소극적으로 적용하면 백약이 무효다. 사법부는 노동자 피해 사건을 법과 원칙대로 처리하고, 근본적으로는 독일·프랑스처럼 특별법원으로 노동법원을 설립해 노동자들의 권익을 보호해야 한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국방부가 철원 육군 6사단에서 발생한 이모 상병의 총탄 사망 사고 원인을 도비탄이 아닌 유탄이라고 최종 발표했다. 사격장에서 발사된 총알이 순직한 이 상병 주변의 나무 등 물체에 튕긴 게 아니라 이 상병을 향해 곧바로 날아갔다는 것이다. 군은 사격훈련통제관인 중대장과 병력인솔부대 소대장 등 3명에 대해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사단장 등 16명을 징계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사건은 군 사격장 안전관리와 군기가 얼마나 허술하고 심각하게 무너졌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국방부 조사본부는 그제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사격장 구조상 200m 표적지를 기준으로 총구가 2.39도만 높게 조준돼도 총탄이 (방호벽의 두 배 높이로) 사고 지점까지 직선으로 날아갈 수 있었다”고 밝혔다. 더구나 사고 지점은 사선에서 340m밖에 떨어지지 않은, 유효 사거리 내 전술 도로상이었다. 당시 사수 12명이 20발씩 사격 중이었는데 전술 도로 좌우 끝의 경계병은 이 상병 등을 그냥 통과시켰다. 병력을 인솔하던 소대장은 병력 이동을 중지하거나 우회하기는커녕 무선 스피커로 음악을 들려주면서 그대로 이동하게 했다. 사고현장 주변 나무에서 70여개의 탄흔도 발견됐다. 유탄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었음에도 예방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것이다.

누가 봐도 유탄일 가능성이 높은데 군이 당초 도비탄에 의한 사고로 추정한 것도 의문이다. 군은 도비탄이나 유탄이나 차이가 없어 은폐할 이유가 없다고 하지만 양자는 그 책임의 강도가 다르다. 진상을 밝히기보다 책임을 면할 궁리만 했다는 의심이 나오는 게 당연하다. 유족의 요구와 문재인 대통령의 철저한 조사 지시가 없었으면 진상이 밝혀졌을까 의구심이 든다.

군의 기강해이와 안전불감증, 무능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이제 더 이상 봐줄 수 없을 지경이다. 최전방 부대에서 기초적인 사격통제 하나 제대로 못하면서 선진 군대를 외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4성장군 가족은 공관병에게 갑질을 일삼고, 북한의 해킹을 막으라는 사이버사령부는 정치에 개입해 댓글이나 달고 있었다. 최근 작성된 전면전, 국지전, 특수전 작전계획 등 극비자료가 대량 북한에 해킹당했는데도 전모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이건 나라 지키는 군대의 모습이 아니다. 이런 군대를 믿고 어떻게 자식을 보낼 것이며 안보를 맡길 수 있겠나.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조만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 임명될 것으로 전망된다. 아마도 특정 공공기관의 이사장 자격을 대선 공약에 담은 후보는 문재인 대통령이 유일할 듯하다. 공약집에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깨끗하고 개혁적인 인사로 임명”하겠다고 명시했다. 마침 지난달 연금공단이 설립 30주년을 맞았다. 국민연금이 어느새 한 세대의 역사를 지녔다. 이제는 노후가 막막한 서민들에게 믿음직한 의지처로 자리 잡았을까? 아마도 대답은 부정적일 듯하다.

현행 국민연금에서는 오래 가입할수록 순혜택이 크다. 고용이 안정된 사람일수록 가입기간이 길기에 불안정 노동자, 영세 자영자보다 혜택을 더 얻는다. 국민연금이 젊었을 때의 격차를 노후에 심화시키는 ‘역진성’을 띤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이다. 이에 정부와 국회가 불안정계층의 사각지대를 개선하는 여러 보완책을 마련해 왔으나 아직도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

새 이사장의 취임을 시작으로 연금공단의 혁신적 변화를 보고 싶다. 공공기관은 집행기관이라며 제도 관리에만 머무는 건 곤란하다. 지난 몇 년 국민건강보험공단의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혁 활동을 본받자. 고소득층에 유리하고 서민 지역가입자에게 불리한 부과체계의 개혁을 선도했다.

연금공단도 일선에서 현실의 문제를 가장 잘 아는 조직이다. 현행 제도가 지닌 틈새를 발견하고 해법을 적극 제안하는 활동에 나서야 한다. 물론 쉬운 과제는 아니다. 연금재정도 더 필요하고 의사 결정은 국회 몫이기도 하다. 그래도 사안을 파악하고 대안을 모색해 국민들과 공유하는 일은 가입자를 직접 접하는 연금공단의 소임이다.

예를 들어 사업주의 국민연금 보험료 체납 문제 해결에 발 벗고 나서라. 자신은 보험료를 원천 납부했음에도 사업주가 체납해 국민연금 가입기간을 인정받지 못하는 노동자가 한 해 무려 100만명이다. 건강보험, 고용보험, 산재보험은 사업주가 보험료를 체납할 경우 노동자에게 아무런 불이익을 주지 않는데 유독 국민연금만 체납의 피해를 노동자에게 전가한다. 이를 호소하는 민원에 연금공단은 어떻게 대응해 왔는가? ‘법이 그래서 어쩔 수 없다’는 무기력한 답변에 머물지 말자. 체납 실태, 유형별 특성, 해법 등을 알려나가야 한다.

도시 지역가입자의 체납에도 관심을 갖자. 현재 농어업인에게는 보험료가 일부 지원된다. 농어촌의 어려운 형편을 감안한 정책이다. 그런데 가입자의 작년 평균소득을 보면 농어촌은 월 108만원, 도시지역은 129만원으로 큰 차이가 없다. 도시 가입자도 대부분 영세 자영자여서 보험료를 전액 부담하기 어려운데 지원은 없다. 소득신고자 중 체납자 수가 농어업인은 10명 중 1명이나 도시지역은 4명인 까닭이다. 현재 도시지역 체납자가 약 160만명에 달한다. 노동자는 회사가 절반, 농어업인은 국가가 일부를 보조하듯이, 도시에 사는 영세 지역가입자에게도 지원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소득파악의 한계를 이유로 들었지만 앞으로 건강보험료가 소득 중심으로 부과되고 국세청의 과세인프라도 개선되는 흐름에 맞춰 방안을 찾아가야 한다.

사업장 가입자의 보험료 지원에도 틈새가 존재한다. 현재 월소득 140만원 미만의 저임금노동자의 경우 노사에 각각 본인부담 보험료의 약 절반이 지원되는데 대상이 10인 미만 사업장으로 한정된다. 그 결과 같은 저임금인데도 사업장 규모가 다르다는 이유로 보험료 지원에서 원천 배제당하는 노동자가 약 160만명이다. 국회에 관련 법안도 제안돼 있으므로 10인 이상 사업장의 저임금 가입자 실태를 꼼꼼히 진단해 입법의 근거를 제공하는 건 연금공단의 몫이다.

아예 가입에서 배제된 사각지대도 더 이상 방치하지 말자. 대표적으로 보험설계사, 학습지교사, 택배기사 등 특수고용노동자들이 사업장 가입 자격을 얻지 못한다. 현재는 법률적 제약이 존재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특수고용노동자의 권리를 강조하고 국회에서도 입법 논의가 진행되므로 연금공단도 현장의 목소리를 풍부히 전달해야 한다.

이렇게 찾다보면 크고 작은 제도의 틈새들이 많을 것이다. 사실 연금공단이 이미 알고 있는 문제들이다. 400만명에 달하는 납부예외자를 어찌할지, 일용노동자 가입을 둘러싼 사업주와의 다툼을 어떻게 풀지 등 무엇이든 어려움에 처한 사람의 눈으로 국민연금을 보자. 사업주 체납으로 불이익을 당한 노동자, 보험료 지원에서 제외된 저임금 노동자와 도시지역 가입자, 가입 자격을 얻지 못하는 특수고용노동자의 입장에 서면 연금공단이 나서야 할 일들이 분명해진다. 이제 서른 살이다. 대선 공약에도 특별히 명시된 이사장의 임명을 계기로, 연금공단이 서민들의 노후 벗으로 거듭나기 바란다.

<오건호 |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기나긴 추석 연휴를 보내다가 하릴없이 지난 달력을 들춰보니, 작년 10월29일 토요일이 광화문에서 제1차 촛불집회가 열린 날이다. 아직까지도 광장의 함성이 귀에 울리는 듯한데, 어느새 세월이 이렇게 흘러버렸다. 금년 5월 새 정부가 들어서고 우리는 한없이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북한 핵실험을 둘러싸고 한반도의 긴장은 날이 갈수록 고조되고 있고, 이곳 대학로는 매주 주말마다 태극기 집회로 떠들썩하며, 경제는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상상조차 하기 싫은 전쟁의 위협 속에서도 미래를 위해 생각하고 준비해야 할 것은 있다.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흔히 하는 말이지만 다급한 일이 많다고 해서 중요한 일을 내팽개치면 언젠가는 큰 후환을 맞을 것이기 때문이다. 미래를 위해 크게 준비해야 할 일은 바로 헌법 개정이다. 그런데 대선 전까지는 5개 정당 모두가 공약으로 내세웠던 헌법 개정이 국정현안, 한반도 주변 정세 등 다른 사안들에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

지난겨울의 촛불혁명은 우리 사회와 국가의 총체적 혁신을 바라는 강렬한 요구였다. 최순실 사태와 박근혜 퇴진, 적폐청산이 전면에 있었지만 광화문 거리 이곳저곳 모인 군중들의 외침은 다양하고 폭넓었다. 군중의 외침에 담긴 강력한 메시지는 ‘대통령제를 포함한 정치체제를 혁신하자’ ‘검찰과 사법부 등 권력기관을 개혁하자’ ‘기본권을 보장해 사람답게 살자’ ‘안전한 국가를 만들자’ ‘국민의 주권을 강화하자’ ‘독점 재벌을 개혁하자’ ‘분권과 협치가 가능한 정부를 만들자’는 것 등등이었다. 군중의 외침은 총체적 변혁의 방향을 제시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런 수준의 변혁은 나라의 근본적인 틀, 즉 헌법을 바꾸지 않고는 달성될 수 없다.

정치권 일각에선 개헌을 선거제도 정도에 국한하려는 움직임이 있는 것 같다. 국민이 달을 가리키니 달은 보지 않고 손가락만 바라보는 격이다.

촛불혁명은 변혁의 중대 과제들과 더불어 변혁에 대한 접근방법도 제시했다. 촛불혁명을 토대로 한 변혁은 밑으로부터, 국민이 주도하는 변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촛불혁명이 우리에게 던진 과제는 국민주도에 의한, 밑으로부터의 헌법 개정이다. 그러나 이런 움직임은 아직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고 있다. 개헌 장터 등이 거론되고 있지만, 그 규모나 움직임에서 매우 미흡해 보인다.

지금 헌법까지 개정할 필요가 있는가를 묻는 사람도 있다. 헌법은 국가사회를 작동시키는 근간으로 정치, 사회, 경제만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적인 삶을 규정한다. 지금 세상은 급변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새로운 동북아 국제관계의 형성 등 외부환경 변화만이 아니라, 전혀 다른 삶의 방식을 추구하는 신세대의 진출, 급속한 인구 고령화, 외국인 노동자 급증, 가치관의 급속한 변화 등 내부환경 변화도 만만치 않다. 87년 체제를 만들어낸 현재의 50~60대와 촛불혁명을 만들어낸 현재 30~40대의 세계관과 철학이 아주 많이 다르다는 점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국가체제가 외부, 내부 환경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사례는 흔히 볼 수 있다. 사회주의 국가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개발도상국에 가면, 낡은 국가체제와 국민이 추구하는 삶의 방식이 맞지 않아 조직이 잘 기능하지 못하고 삶이 왜곡되어 가는 것을 흔히 관찰할 수 있다. 국민은 시장경제체제로 한참 나아가 있는데, 시스템이 이를 따라가지 못해 사람과 시스템이 끊임없이 마찰음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새 헌법은 앞으로 30년 아니 50년을 내다보고 만들어야 한다.

정치권에 의하면 어떻게든 개헌은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촛불혁명이 제시한 중대 개혁과제들을 다루어내지 못하는 개헌이라면, 그것은 부질없는 국력 소모전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또한 그것은 촛불혁명이 모범적으로 제시한 것처럼 밑으로부터의, 국민주도에 의한 혁신이 되어야 한다. 신고리 원전 공론화위원회가 공정성, 전문성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고 해서, 국민주도적 접근 자체를 포기할 일은 아니다.

<신좌섭 | 서울대 의대 교수·의학교육학>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어쩌다 쌀국수를 먹을 때나 보는 고수가 밭에 졸졸 심어져 있었다. 한 평 남짓한 밭에 뿌리를 내린 고수는 새파랗게 잘 자라고 있었다. 그 옆에 다보록하게 자라고 있는 얼갈이배추 어린잎 같은 채소는 베트남 사람들이 즐겨 먹는 라우 무이 뚜이라고 했다.

집 뒤꼍 푸서리에 일군 손바닥만 한 밭을 보여준 아이는 좁은 두둑을 사분사분 걸었다. 아이는 네 살짜리 동생을 보느라 토요일마다 나오는 공부방을 빠졌다. 어쩌면 내내 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말하는 아이는 혼자 귀화시험 공부를 하고 있었다. 벽에 바짝 붙여 놓은 매트리스 위에는 귀화시험 대비 참고서가 펼쳐져 있었다. 베트남어와 한국어가 섞여 있는 참고서에는 여기저기 쪽지가 붙여져 있고, 밑줄도 그어져 있었다. 정말 열심히 공부하나 보다고 했더니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험 보려면 삼십만원을 내야 하는데, 두 번만 볼 수 있어요. 두 번 다 떨어지면 다시 돈을 내야 해요. 비싸요.”

한국에 온 지 일 년 좀 넘은 아이는 한글도, 한국말도 꽤 잘했다. 가장 어려운 게 한국 역사라는 아이는 한국의 맨 처음 나라 이름이 뭔지, 고려 다음에 어떤 나라가 세워졌는지도 척척 잘 맞혔다. 아이는 국민의 4대 의무에 빨간 펜으로 밑줄을 그어놓았다. 4대 의무를 묻자 어른들은 멋쩍게 웃기만 했다. 아이만 4대 의무를 정확하게 말했다.

“다 외워야 해요. 면접 보려면 애국가도 외워야 해요.”

한국 땅에서 몇십 년을 산 어른들은 애국가를 웅얼거렸지만, 가을 하늘 공활한데를 넘어서지 못했다. 귀화시험 보면 다 떨어질 판인 어른들은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구두덜댔다. 귀화시험비가 너무 비싼 거 아니냐고. 고등학교 다니는 애가 그런 시험을 굳이 봐야 하냐고. 그 말에 아이는 배시시 웃었다.

아이를 두고 골목길을 빠져나오면서 빌었다. 낯선 땅에 꿋꿋하게 뿌리를 내린 고수처럼, 라우 무이 뚜이처럼 아이도 이 땅에서 의연하게 잘 자라길. 그러려면 국민의 의무뿐만 아니라 국민의 권리도 제대로 알아야 할 텐데…. 참고서에 그게 있었나?

<김해원 | 동화작가>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 10월 10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가족 또는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가장 난감한 것은 다른 가족이나 공동체와 시비가 붙었을 때이다. 합리적 이성주의에 의하면 제3자의 입장에서 잘못한 쪽을 나무라는 것이 정상이다. 이럴 경우 잘못한 쪽이 상대방이면 별문제 없으나 우리 쪽이면 아주 곤란해진다. 잘못한 우리 쪽을 편들자니 양심이 찔리고 상대방을 편들자니 우리 쪽의 원성을 산다. 부부나 친구 사이처럼 범위가 좁아지면 어디 도망갈 데도 없다. 처세술에는 무조건 우리 쪽을 편들고 난 다음 나중에 흥분이 가라앉으면 차분히 잘잘못을 일러주는 것으로 나와 있다. 성격이 냉정하거나 판관 기질이 있는 사람은 이를 잘 못해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그러나 처세술대로 한다고 해서 만사가 늘 원만하게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잘못한 것이 없는 상대방이 완강하게 나올 경우 큰 창피를 당할 수 있다. 이런저런 경우를 다 겪고 보면 처세술이란 것이 특정한 조건에서만 유효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개인이나 가족 사이에 이런 일이 벌어지면 설사 잘못 대처하여 낭패를 보아도 그 피해가 개인이나 가족 주위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나 이런 일이 국가 사이에 벌어져서 잘못되면 국민 모두가 고통스러운 상황에 빠지기도 한다. 아직도 진행 중이지만 북한과 미국 사이에 핵미사일을 두고 벌이는 실랑이가 그렇다. 사소한 개인 간 다툼에도 나름 역사와 배경이 있거늘 국가 사이는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북·미 간에 다툼이 벌어졌다 하면 앞뒤 맥락과 상관없이 무조건 미국 편을 든다. 어느 정도냐 하면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마저 ‘빨갱이’로 매도될 지경이다. 동족상잔의 트라우마로 이해할 수도 있지만 그러기에는 사회적 또는 심리적 피해가 너무도 크다. 사회 전체가 어느 한쪽을 절대선과 절대악으로 규정해놓고 선택을 강요하다보니 제대로 된 외교전략이나 사회정책을 수립할 수가 없다. ‘사드 배치’ 사건이 대표적으로 그렇다. 미국의 필요에 의해 배치되는 것이라 미국의 가상 적인 중국과 러시아의 반발이 예상됨에도 한국 정부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거부했다가는 든든한 후견자인 미국으로부터 버림받음과 동시에 흑백논리에 길들여져 있는 자국민으로부터도 외면당할 것이 빤히 보인다. 덕분에 한국은 중국의 경제보복에 대해 변변히 항의도 못하는 가운데 미국으로부터는 고가의 새로운 무기들을 들여와야 하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국내 문제도 외교적 딜레마 못지않게 복잡하고 어렵다. ‘적폐청산’을 하는 과정에서 밝혀진 국정원의 치졸한 행위들은 극단적 이분법 논리를 고수하려는 자들의 심리 상태가 어떠한지를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다. 아날로그 시절에는 정부가 일방적으로 발표하면 국민들은 곧이곧대로 믿을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국정원 뺨치는 정보검색 능력을 가지고 있는 디지털시대의 국민들을 속이기 위해 이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짓들을 한다. 돈을 주고 관제데모를 조직하고 ‘키보드 워리어’들에게 가짜정보를 제공하여 인터넷 공간을 흑백논리의 각축장으로 만든다.

디지털 인프라로 보면 한국 사회는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지만 사회심리학적으로는 70년 전 좌우익 대결 상태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람들은 적어도 기성세대가 물리적으로 사라지지 않는 한 이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고 말하지만 인터넷 공간에서 젊은 세대의 발언을 검색해보면 그것이 얼마나 일방적인 바람인지 바로 확인할 수 있다. 디지털 세대인 이들은 ‘팩트’라는 정보를 앞세워 이전 세대보다 더욱 심한 흑백논리를 구사하고 있다. 예컨대 ‘세계 평화의 수호자’ 또는 ‘세계 경찰’로서의 미국의 역할과 위상을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설명하면서 그런 미국의 보호를 받는 것은 선량한 시민이 정의로운 경찰의 보호를 받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더 기가 막히는 것은 한국이 사드 배치를 두고 중국의 눈치를 보는 것은 ‘사대주의’이지만 미국의 뜻에 따르는 것은 ‘주권 행사’로 본다. 북한에 대한 인식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북한과 미국이 똑같은 핵무기를 갖고 으르렁대고 있는데 북한 것은 ‘악마의 독화살’로, 미국 것은 ‘근엄한 아버지가 드는 회초리’ 정도로 보고 있다. 트라우마가 육체의 소멸과 함께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대를 이어 내면화 또는 사회화되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는 교주의 발언을 절대 진리로 받아들이는 종교적 광신과 무척 닮았다. 절대 진리 앞에서 인간의 이성이나 합리적 판단은 힘을 쓸 수가 없다. 진실로 무섭고 두려운 상황이 펼쳐지고 있음에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 다루고 있는 주제가 이 민족과 땅을 하루아침에 재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 핵전쟁일지라도 절대선을 지키기 위해서는 미국 편을 들어야 한다. 이런 경우 다 지나고 난 뒤에 “실은 당신이 잘못했지만 사랑하는 당신이기에 편들어주었어. 다음부턴 이런 곤란한 상황 만들지 않았으면 해”라고 말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처세술은 개인의 사회화 과정을 도와주기 위한 일종의 충고이다. 어디까지나 개인적 충고이므로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얼마든지 변주가 가능하다. 그런데 그 많은 처세술의 목록을 훑어보면 대체로 인간의 감성을 고려한 충고가 많다.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상대방의 감정을 쓸데없이 건드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위가 국가 정도로 커지면 거꾸로 감성보다는 이성에 기초한 판단이 더 유효하다. 정치인이건 일반인이건 대중의 정서나 통념을 판단의 기준으로 삼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나 우리는 지난 역사에서 거대 집단의 감성이 통제할 수 없는 광기로 이어진 경우를 너무도 많이 보아왔다. 고집 세고 다혈질인 두 국가 지도자가 핏대를 올릴수록 우리는 더욱 이성적이고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황대권 | 생명평화마을 대표>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 10월 10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지난달 3일 북한이 단행한 6차 핵실험 여파로 핵무장에 대한 국내 여론이 또다시 높아지고 있다. 6차 핵실험 이후 한국갤럽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도 핵무기를 보유해야 한다’는 주장이 60%다. ‘핵에는 핵으로 대응한다’는 논리로 자유한국당이 핵무장을 촉구하는 1000만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핵무장에 부화뇌동하는 국내 원자력 전문가 몇몇과 보수언론들은 우리도 마음만 먹으면 수개월 내에 핵무기를 만들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들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독자 핵무장 능력을 훼손시켜 국가안보에 심각하게 해롭다고 질타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 남북한 자멸의 길을 걷게 만들 남북한 핵무장 주장은 위험하다. 그리고 탈원전 정책은 국내 핵무장 가능성 훼손과 아무런 상관이 없으며, 오히려 국가안보에 이롭다.

우리도 핵무장을 해야 한다는 주장에 반박한다. 북핵에 핵으로 대응한다는 것은 상호공멸을 의미한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장기적으로 북한을 비핵화시켜야 한다. 그사이 기존의 한·미 재래식 전력 및 미국의 핵우산으로 북핵 저지는 충분하다. 북한이 자살의 길을 택하지 않는 한 핵무기 선제공격은 없을 것이다.

북핵 억지 차원에서 만약 우리나라가 핵무장을 한다면 일본과 대만이 핵무장을 할 것이다. 동북아 지역이 핵경쟁에 돌입하게 된다. 냉전시대 미·소 간에는 핵미사일이 발사되어 상대국을 타격하기까지 30분 전후의 생각할 시간이 있었다. 동북아 지역에서는 그 시간이 5~10분 정도다. 날아오는 미사일이 핵미사일인지 재래식 미사일인지 구분할 능력도, 시간도 없다. 어디서 날아오는지 파악한 순간 나도 핵미사일을 그 국가로 발사해야 한다. 상호공멸로 이어진다.

또한 핵미사일 공격에 대한 경보시스템의 오동작 등에 의한 우발적인 핵전쟁 발생 가능성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한 예로, 1983년 구름에 반사된 햇빛을 미사일로 오인한 소련의 위성이 미군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5기를 소련을 향해 발사한 것으로 잘못 해석해 미·소 간 핵전쟁으로 비화할 수 있었던 위기를 슬기롭게 방지한 스타니슬로프 페트로프의 이야기는 국내 언론에도 잘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가 핵무기 개발에 나선다고 가정해 보자. 당장 국내 원전을 모두 정지하고, 신규 원전을 건설하지 않더라도 기존에 발생한 경수로 및 중수로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하면 핵무기에 사용 가능한 플루토늄을 확보할 수 있다. 현재 경수로 사용후핵연료 재고 약 8000t 내 플루토늄 양은 약 80t, 현재 중수로 사용후핵연료 재고 약 7000t 내 플루토늄 양은 약 20t이다. 플루토늄 8㎏을 핵무기 1기 분량으로 보는 국제원자력기구(IAEA) 기준에 근거하면, 1만2500기의 핵무기 생산이 가능하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은 2080년경까지 원전 가동을 허용하고 있다. 수십년 걸리는 원전 폐기 기간 등을 고려하면, 국내 원자력 기술 및 전문 인력의 필요성은 21세기가 끝날 때까지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탈원전 정책으로 핵무기 만드는 원료가 모자란다거나 관련 인력이 사라질 것이라는 걱정은 기우다.

그리고 사실, 핵물질 생산 이외의 핵무기 제조 분야는 원자력 전공과 아무 관련이 없다. 발파공학 등 화약을 다루는 전문가가 필요한 분야이다. 원전기술이 세계적이라고 핵무기 제조를 쉽고 빠르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더군다나 원전은 국가안보에 있어서 급소다. 과거 북한이 김정은의 미사일 발사 관련 배경 사진에서 보여주었듯이 남한 내의 원전들은 북한 미사일의 타깃이다. 국내의 원전은 북한의 미사일 공격을 막을 수 없다. 북한 미사일 공격 등에 의해 격납건물 내 원자로 용기 또는 원자로 냉각장치가 손상받거나, 격납건물 옆 일반 콘크리트 건물 속의 사용후핵연료 저장조 또는 저장조 냉각장치가 손상되면 핵연료에 포함된 고독성의 방사성물질이 누출되어 주변 환경으로 퍼져 나간다. 체르노빌, 후쿠시마보다 훨씬 대규모의 중대사고가 발생하게 된다. 그리고 대용량 발전의 다수 원전의 정지는 주변 지역 정전, 나아가 1주일 이상 지속되는 국가 정전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탈원전이야말로 국가안보에 이롭다고 말하는 이유이다.

<강정민 | 미국 자연자원방어위원회 선임연구위원>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 10월 10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재난현장에 자원봉사자 말고 꼭 나타나는 이들이 있습니다. 바로 정치인들입니다. 홍보용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서입니다. 화재현장에서 숨진 동료를 슬퍼하는 소방관들을 뒤에 세우고 표정 잘 나오게 사진 찍습니다. 참사현장에 가서도 실질적 도움은 주지 않고 ‘아무개 왔다가다’로 악수에 인증샷만 찍고 옵니다. 안전태세 점검을 구실로, 명절이라 병사들이 모처럼 쉬는 부대에 방문한 정치인이 예비역들의 공분을 사기도 합니다.

‘염불에는 관심 없고 잿밥에만 관심 있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같은 속담으로 ‘제사에는 관심 없고 젯밥에만 관심 있다’도 있지요. 정작 해야 할 일에는 신경 쓰지 않고 자기의 이익에만 쏟음을 이르는 말입니다. 재(齋)는 불교에서 망자의 극락왕생을 비는 천도의식으로 제사의 제(祭)와 자주 혼동합니다. 그래서 ‘49제’로 잘못 쓰기도 하고 불교 신앙이 아님에도 49재를 지내기도 합니다.

염불(念佛)은 마음을 다해 깊이 부처를 떠올리며 경을 외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천도의식 끝나고 먹을 저 공물들 생각에 입에 염불과 군침이 공존한다면 과연 그 승려의 공염불에 극락왕생의 기원이 깃들 수나 있을까요? 제사상 앞에서 절하는 머릿속에 조상님 대신 제사 음식만 그득하게 들었다면 허울 좋게 조아리는 헛제사지요.

신심(信心) 없이 입으로만 하는 염불을 공염불이라고 합니다. 실행 없이 말만 번지르르한 것도 공염불이라 합니다. 정치인의 존재 이유는 국민을 안전하고 잘 살게 하는 데 있습니다. 하지만 목적이 다른 데 있으면 정치행동은 않고 정치행보만 합니다.

결혼식은 맛있었다와 맛없었다로만 기억된다고 합니다. 축하가 아니라 얼굴도장 찍기 위해 온 거니 신랑·신부는 중요치 않지요. 몸은 그곳에 마음은 헛곳에 있으니 조문을 구실로 상갓집에서 명함 돌리며 영업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김승용 |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 10월 10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요즘 교사들의 가을 독서가 한창이다. 내년 신입생이 사용할 교과서 선정 때문이다. 교육당국은 9월22일에야 심사본을 배포하고서는 10월20일 이전에 심사, 선정, 학교운영위원회 통과, 주문의 모든 과정을 마치라고 엄포를 놓았다. 학교운영위원회를 감안하면 사실상 10월15일까지 선정을 마쳐야 하는 빡빡한 일정이다.

교과서 선정은 많은 서류 작업과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교사들은 교과별로 심사기준을 정하고 이를 교과협의록으로 작성하며, 이 기준에 따라 10종 내외인 심사본, 즉 최소한 1000쪽, 많으면 4000쪽을 검토해 작성한 평가표를 교과 대표 교사에게 제출해야 한다. 대표 교사는 집계표를 작성하고, 최고 득점 교과서 3종을 가린 뒤 추천의견서를 작성해 학교운영위원회에 제출하는데 1, 2, 3위의 순위는 정하지 않는다. 순위는 학부모가 과반인 학교운영위원회가 정한다. 그러면 학교장이 이 모든 문서들을 수합한 뒤 추천된 3종 중 하나를 최종적으로 선정하는데, 1순위로 추천된 교과서를 선정해야 할 의무는 없다.

이 복잡하기 짝이 없는 교과서 선정 절차에서 정작 수업을 직접 담당할 교과 교사는 일만 분주할 뿐, 그 역할은 의외로 미약하다. 수업과 무관한 학부모, 교장에게 더 결정적인 권한이 주어져 있다. 이 어이없는 절차는 교실에 큰 변화를 가져오는 교육정책을 결정할 때 정작 그 교실에서 수업하는 교사의 목소리를 배제해왔던 우리나라 교육 모순의 축소판이다. 한마디로 교사 패싱이다. 우리나라 공교육의 수많은 적폐의 근본 모순 중 이 교사 패싱은 세 손가락 안에 꼽힐 만한 것이다. 따라서 정권이 교체되고, 진보교육감의 원조 격인 김상곤 장관이 임명되었을 때 교육적폐의 청산을 희망하는 모든 사람들은 그가 적폐의 원인인 교사 패싱을 교사 참여로 바꾸고 학교를 진정한 민주시민 교육의 장으로 탈바꿈시킬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김상곤 장관 100일 동안 한 일이라고는 대학입시제도를 놓고 우왕좌왕 제자리걸음을 한 것, 학교를 교육이 아니라 노동의 논리로 접근해 역시 우왕좌왕하다 제자리걸음을 한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논란뿐이다. 더구나 이 두 요란한 제자리걸음들은 철저한 교사 패싱으로 일관했다. 입시 결정 과정에도, 비정규직 전환위에도, 심지어 국가교육회의 위원에도 교사는 철저하게 배제되었고, 회원수마저 불투명한 군소 시민운동단체, 학부모단체만도 못한 취급을 받았다.

이것이 이 정부의, 김상곤 장관의 본심은 아닐 것이라 믿고 싶다. 분명 교육부 고위 관료들 중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가며 교사 패싱의 길로 유혹하는 어둠의 세력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간곡히 부탁드린다. 교육부 장관, 나아가 대통령은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교사 패싱을 말하는 자가 바로 교육의 적폐이며 개혁의 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기 바란다. 이 나라의 적폐세력은 다른 무엇보다도 교사들의 각성과 단결, 그리고 교사들에 대한 통제력 상실을 두려워했음을 역사가 증명한다. 교사가 자주권을 얻게 되면 세대가 갈수록 민주적이고 깨어 있는 시민들이 늘어나게 되고, 또 이를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정부가, 장관이 이 적폐를 청산할 의지를 보여주지 않고, 여전히 교사 패싱을 계속한다면 교사들은 학생들의 정당한 교육권을 위해 기꺼이 직을 걸고 장관 패싱, 정부 패싱을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역사의 교훈이다. 깊이 명심하기 바란다. 기회가 얼마 남지 않았다.

<권재원 | 실천교육교사모임 고문>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 10월 10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긴 추석 연휴, 영화관을 가장 뜨겁게 달궜던 영화는 <남한산성>이다. <남한산성>은 청이 인조의 친명배금정책에 불만을 품고 공격해온 병자호란(1636년)이 배경이다. 강화도로 채 피란 가지 못한 인조는 혹한의 남한산성에서 버티지만 결국 47일 만에 청 태종 앞에 무릎을 꿇는다. 영화는 항복할 것이냐, 항전할 것이냐를 놓고 설전을 벌이는 주화파 최명길과 척화파 김상헌을 주목한다.

영화 <남한산성> 스틸 이미지

<남한산성>은 마음 편한 영화가 아니다. 승리의 역사가 아니라 패배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139분간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객석에 앉은 관객들의 마음은 다들 비슷했을 것이다. 선조들의 무능함이 안타깝다가도 화가 나고, 그랬다가 한탄이 나왔을지도 모른다. 저렇게 시대 흐름을 못 읽었느냐고. 저무는 명과 떠오르는 청이라면 당연히 청을 따랐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그깟 명분이 뭐가 그리 중요하냐고. 김상헌의 척화를 이해는 하지만, 최명길의 화친이 더 현명했다고.

이미 역사의 진행 결과를 알고 있는 후대로서는 이렇게 말하기 쉽다. 하지만 당대 그 자리에 있었더라도 똑같은 판단을 할 수 있었을까. 결과를 보고 앞선 선택을 평가하는 것을 행동경제학에서는 ‘사후확신편향’이라고 부른다. 이른바 ‘후견지명(後見之明)’이다.

그냥 역사 영화라면 킬링타임한 것으로 치부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게 지금 한반도 상황이 381년 전과 빼박도록 닮았기 때문이다. 당시가 명이 저물고, 청이 떠오르는 명청 교체기였다면 지금은 미국이 비틀거리고 중국이 무섭게 부상하는 미·중 교체기다.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100주년인 2045년 즈음에는 중국이 미국을 앞지를 것이라는 전망이 많이 나와 있다. 지금 20대가 40대 후반이 될 즈음이면 중국이 패권국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런데 선택이 쉽지 않다. 한국에 미국은 6·25전쟁 때 같이 피를 흘린 혈맹이다. 명분과 의리로 보자면 미국을 외면하기 힘들다. 언론과 사상, 집회결사의 자유를 보장하는 미국의 절차적 민주주의와 서구적 합리성은 중국을 앞선다. 중국의 공산당 전체주의는 앞선 모델이 아니다. 명과의 의리를 앞세우며 오랑캐국 청을 받들 수 없다고 하던 척화론자들의 고민과 절묘하게 들어맞는다.

문제는 선택의 시간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한반도 상황이 너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중국이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의 한반도 배치에 반발하고 있다. 한·미는 북한 미사일에 대응하기 위한 방어시스템이라고 주장하지만 중국은 미국이 중국 본토를 들여다보기 위해 사드를 설치했다고 믿는다. 중국의 경제보복은 이미 노골화됐다. 롯데가 쫓겨나오고 현대차도 어렵다. 중국인 관광객의 한국 방문은 끊긴 지 오래다. 미래권력 중국을 달래야 하는데, 그렇다고 혈맹 미국의 요구를 뿌리치기도 힘들다. 한·미동맹은 현실이다.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나.

다시 17세기 초로 되돌아가 보자. 역사가들은 명과 후금(청) 사이에서 실용외교를 편 광해군을 주목한다. 광해군은 명이 후금을 치기 위한 파병을 요청하자 고민 끝에 응한다. 하지만 조선군은 후금과의 전투에는 참여하지 않고, 조선의 부득이한 상황을 적극적으로 설명해 양해를 얻어낸다.

사드 문제도 큰 틀에서는 성격이 달라 보이지 않는다. 경제와 안보, 모두 중요한 한국으로서는 미국의 사드 배치에 응하면서도 중국을 자극하지 않는 실용적 묘책이 필요하다.

어렵더라도 균형외교를 펴면서 미·중 양국을 달래고 설득하고, 양해를 구해야 한다. 자칫 어느 한쪽 편을 과도하게 드는 순간 또 다른 국난에 봉착할 수 있다. 국난은 총칼이 아닌 경제적 수단만으로도 충분히 고통스러울 수 있다. 문재인 정부의 현명한 외교정책을 기대한다.

<경제부 | 박병률 기자>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 10월 10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시인에게는 ‘땅’이 있다. 시의 원적지이자 시인의 근거지로서의 땅. 예컨대 백석 시의 활동 무대는 평안북도와 만주 일대다. 시와 장소, 시인과 지역의 연관은 거의 숙명에 가깝다. 미당의 질마재, 용악의 ‘두고 온 북쪽’, 신동엽의 금강은 물론이려니와 김준태의 무등산, 이상국의 동해바다, 최승호의 탄광촌, 김용택의 섬진강…. 한국 현대시의 명편 대부분을 대한민국 전도 위에 배치할 수 있다.

지리산을 시적 재산권으로 등재한 시인들도 있다. 20년 전 지리산에 깃든 이원규 시인이 그중 하나다. 이 시인의 ‘땅’에 대한 애착은 도를 넘어선다. 그의 족적을 돌아보면 한반도 남쪽이 다 자기 영토다. 낙동강 줄기를 두 번, 지리산 둘레를 세 번 돌았다. 4대강 줄기를 다 걸었고 1년간 탁발순례를 하며 남도 땅을 밟았다. 그뿐 아니다. 새만금에서 서울까지 삼보일배, 지리산에서 임진각까지 오체투지를 했다. 가히 ‘걷기의 제왕’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걷는 시인은 라이더이기도 하다. 두 발로 걷는 사이사이 모터사이클을 타고 이 땅을 누빈다. 2010년 일간지에 연재를 할 때에는 6개월 반 동안 서울과 제주를 제외한 전국의 길을 달렸다. 총 주행거리 2만5000㎞. 지구 반 바퀴를 돈 셈이다. 그래서 그의 이름 앞뒤엔 여러 직함이 붙는다. 도보순례자, 라이더, 활동가, 유발승(有髮僧), 대학강사. 최근 하나 더 생겼다. 야생화 사진가.

지난 9월 중순, 이원규 시인 집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10여년 만에 ‘출장’을 다녀온 것이다. 사연인즉슨, 내가 전에 몸담았던 시사주간지가 창간 10주년을 맞아 현장을 떠난 ‘예비역’들에게 지면을 내줬다. 나는 ‘지리산 850리 도보순례’ 후일담을 쓰기로 했다. 2001년 5월 분단 이후 처음으로 7대 종단이 모여 ‘지리산 위령제’를 지냈다. 15일간 진행된 도보순례는 위령제의 일환이었다. 수경 스님과 이원규 시인이 순례단을 이끌었고 나는 취재기자로 따라나섰다. 지리산 기슭을 밟으며 6·25 전후 좌우 대립으로 스러져간 넋을 기리고 ‘생명 평화’를 염원했다.

그 후 서너 번 지리산을 다녀왔지만, 이원규 시인의 근황은 그때마다 풍편으로 전해 들었다. 몇년 전, 그가 카메라를 메고 다닌다는 소리를 들었다. 오토바이에서 카메라로? 하지만 도보순례자와 라이더 사이처럼 멀어 보이진 않았다. 시와 사진에는 공통분모가 있다. 그중 하나가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아내는 능력이다. 여기에 집중력과 인내심이 보태져야 한다.

이 시인과 지리산 둘레길을 둘러본 뒤 섬진강 건너 광양, 그의 집으로 향했다. 일곱 번 이사한 끝에 지난해 마련한 시인의 집은 작은 갤러리를 겸하고 있었다. 우리의 이야기는 지리산 생태계의 급격한 변화에 이어 사진으로 옮아갔다. 탁발순례 후유증이 그에게 카메라를 안겨줬다고 한다. 2009년 결핵성 늑막염에 걸려 1년간 치료를 받으면서 야생화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독학이었다. 사용설명서를 백 번 넘게 읽었고 하루에 만 컷 이상을 찍어댔다.

3년쯤 지나자 ‘감’이 잡혔다. 하지만 야생화 사진의 진입장벽은 높았다. 고수들이 수두룩했다. ‘이원규만의 사진’이 필요했다. 발상을 전환했다. “비가 오거나 안개가 끼면 사진가들은 산에서 내려온다. 나는 그때 산으로 올라갔다.” 안개 속에 피는 꽃을 찍는 일은 야영의 연속이었다. 혹독한 기다림의 나날이었다. 2015년 첫 개인전을 열었고 그의 ‘몽유운무화’를 찾는 이들이 생겨났다.

3년 전, 그의 역발상은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어둠을 찍기로 한 것이다. 그는 요즘 밤하늘의 별과 지상의 나무가 한 프레임에 들어가는 ‘별나무’ 시리즈에 집중하고 있다. 야생화보다 훨씬 까다롭다. 반경 40㎞ 이내에 도시가 없어야 한다. 달이 뜨거나 날이 흐리면 1년을 또 기다려야 한다. 한 나무를 3년 이상 지켜봐야 겨우 한 컷이 나온다. 그는 ‘별나무’를 발견하고 희귀 야생화에 등을 돌렸다. 그의 사진이 자연을 파괴하는 데 일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희귀 꽃 사진은 그 위치가 알려지기 마련이다. 한 번 알려지면 훼손된다. 촬영하고 나서 다른 사람이 찍지 못하게 꽃을 죽여버리는 이들도 있다.

이 시인은 ‘천생 사진가’가 될 운명이었는지 모른다. 전국을 걸으며 장소 헌팅을 해놓은 데다, 언제든 달려갈 수 있는 기동력이 있다. 게다가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이다. 50대에 접어들어 새로운 영토를 개척한 그가 한층 미더워 보였다. 어둠을 찍는 사진가와 헤어지면서 ‘시는 밥이 안되지만 사진은 밥이 되니까 참 다행’이라고 말하려다 말았다. 대신 앞으로 나올 그의 시와 글, 사진이 우리에게 축복일 것이라고 말했다. 모처럼 ‘출장’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 가뿐했다.

<이문재 | 시인·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