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원자력연구원은 정부에서 만든 연구소 중에서 전자통신연구원에 이어서 두 번째로 큰 규모의 연구소이다. 그러나 정부에서 지원받는 돈의 액수로 따지면 단연 최고 규모이다. 전자통신연구원은 정부 지원금이 1000억원도 안되지만, 원자력연구원은 거의 5000억원에 달한다. 6000억원 남짓한 전체 예산의 80%가 정부지원금으로 충당되니, 연구원에서 쓰이는 거의 모든 돈이 국민의 세금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에 비해 전자통신연구원의 지원금 비중은 15%이다.

원자력연구원에서는 이렇게 막대한 예산을 가지고 원자력과 관련된 연구는 거의 모두 손대는 것 같다. 소듐냉각고속로, 소형 스마트원자로, 수소생산용 초고온가스로, 파이로프로세싱 방식 재처리, 양성자가속기, 신개념 사고저항성 핵연료 같이 일반인에게는 생소한 연구를 많은 돈을 들여서 수행하고 있다. 단일 연구소로는 아마 전 세계 어떤 나라의 원자력연구소보다 더 다양한 연구를 하고 있을 것이다.

원자력연구원이 이렇게 막대한 세금을 사용하면서 하고 싶은 연구를 할 수 있게 된 배경에는 정부의 원자력 ‘우대정책’이 있다. 특히 이명박 정부 때 녹색성장이란 이름아래 원자력관련 연구들을 대대적으로 지원한 탓에 원자력연구원의 예산은 급속하게 증가하여 2017년에는 전자통신연구원과 거의 맞먹는 수준까지 올라갔다. 이러한 우대정책 때문인지 원자력연구원은 보통 사람에게는 오만하게 보이는 행동도 종종 보여왔다. 올해 초의 방사성 폐기물 무단폐기, 감시기록 조작과 누락도 이러한 오만의 결과라 할 수 있다.

이런 범법행위에 대해 원자력안전위원회가 20억원 가량의 과태료와 과징금을 부과했는데, 원자력연구원은 이에 대해서도 반발하여 대형 로펌 김앤장을 앞세워 처분취소 소송을 위한 행정심판을 제기했다. 국가 기관에서 범법을 저질렀으면 달게 벌을 받고 잘못을 고쳐야 할텐데, 이렇게 적반하장인 것은 정부에서 지금까지 원자력을 최고의 에너지로 대우했고, 따라서 잘못을 저질러도 벌받는 일 없이 항상 대접을 받아온 원자력 연구원들에게 깃들어 있는 우월의식에 기인할 것이다.

사실 우리사회가 탈원전 에너지전환으로 나아가는 마당에 자세히 따져보면, 원자력연구원에서 수행하는 연구는 대부분 불필요한 것이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차세대 원자로로 선전했던 소듐냉각고속로와 수소생산고온로 같은 것은 원자력발전소를 더는 건설하지 않기로 한 지금 개발해봐야 세금만 잔뜩 삼킨 고철덩어리가 될 뿐이다. 파이로프로세싱 재처리도 마찬가지다. 이 과정에서 얻어지는 불순물 섞인 플루토늄이 연료로 투입될 고속로가 건설되지 않으면, 파이로프로세싱은 순도높은 고준위 방사성 물질만 만들어낼 뿐이다.

이렇게 불필요한 연구를, 그것도 국민들의 세금으로 수행한다면 감사의 마음을 가져도 모자랄 터인데, 잘못을 지적한 국가기관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이유는 오만하기 때문 아닌 다른 것에서 찾기는 어려울 것 같다. 상식적으로 보면 이런 오만한 기관에 세금을 지원하는 것은 세금 낭비이다. 그리고 이런 기관을 국가소속 연구기관으로 둘 필요가 없다. 그렇다고 없애기는 어려우니 세금을 가능한 한 적게 지원하거나 조금도 지원하지 않는 방안을 찾을 필요가 있다. 고속로, 파이로프로세싱, 수소생산 고온로, 신개념 핵연료 등의 연구비를 지원하지 않고 탈원전 시대에도 필요한 연구만 세금으로 지원하는 것이 세금을 적게 쓰는 한가지 방법일 것이다. 세금을 조금도 쓰지 않는 방법은 원자력연구원을 민간에 매각하여 스스로 연구비를 수주해서 운영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 경우 연구원은 법에 저촉되지 않고 연구비만 얻을 수 있으면 어떤 연구든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된다.

국가에서 만든 기관이 잘못을 지적한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것을 국가가 방관하는 것은 국가의 책무를 방기하는 것이다. 정부는 이참에 원자력연구원의 민간 매각을 고려해보기 바란다.

<이필렬 | 방송대 교수·문화교양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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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연휴의 마지막 날이었던 지난 월요일에 나는 부모님과 함께 요양원에 계신 할머니를 만나러 갔다. 할머니는 시골에서 지내시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는 서울에서 큰삼촌이나 막내 이모와 번갈아가며 같이 사셨다. 그러다가 한 3년 전부터 부쩍 아파지신 할머니를 이런저런 방법으로 자식들이 함께 돌보다가, 할머니에게 치매증상이 나타나자 몇달 전부터는 요양원으로 모시게 되었다.

시래기같이 바싹 마르고 늘어진 몸으로 휠체어를 타고 있는 할머니를 뵈니 갑자기 눈물이 차올라 얼른 “할머니, 저 왔어요!” 하고 손을 덥석 잡았다. 보고 싶었던 할머니와 준비해온 과일도 같이 먹으며 한참을 정답게 얘기하고 있는데 할머니가 대뜸 엄마 보고 “승윤이는?” 하며 내가 어디 있는지 묻는다. 그 말에 엄마가 깔깔 웃으며 “승윤이 여기 있잖아”라고 말씀하시고는 할머니 손 위를 문지르는데, 문득 엄마 손을 물끄러미 보게 된다. 나에게 있어 할머니는 늘 의존적이거나 조금 엉뚱하셨는데, 그래도 나는 어쩐지 할머니가 항상 좋았다. 이제 와 생각해보니 할머니를 언제나 걱정하고 때론 다그치다 울고 웃기도 하셨던 우리 엄마의 모습을 내가 무척 사랑하고 있던 것 같다. 그런 엄마가 할머니를 요양원으로 모시기로 결정했을 때, 나에게 “사실 나도 내 노후를 생각 안 할 수가 없어”라고 가늘게 말씀하셨다. 생각해보면 아흔 인생을 살아온 할머니를 뵈러 온 우리 부모님도 곧 칠순이 되는 노인이시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고령화가 가장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나라 중 하나다. 1990년 5% 정도였던 65세 이상 노인 인구 비율이 앞으로 8년 후인 2025년에는 다섯 명 중 한 명으로 늘어난다. 살아계신 노인을 부양하는 세대도 빠르게 노인으로 채워지고 있다. 노인들의 성인 자녀도 노인이고, 요양시설 등에서 노인을 돌보는 사람들도 중고령자들로 채워지고 있다.

이런 한국 노인층의 특징 중 하나는 일하는 노인들이 많다는 것, 다른 하나는 가난한 노인들이 많다는 것이다. 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심각한 수준인데, 전체 노인의 절반 정도가 빈곤하다. 경제활동에 참가하는 노인의 비율도 세 명 중 한 명 정도로 이 또한 회원국 중에서 가장 높다. 유럽의 노인들은 연금을 받으며 제2의 인생을 설계해 보기도 한다지만 한국의 공적연금제도는 시행시기도 훨씬 늦어 국민연금에 포괄되는 노인의 수가 아직 충분하지 않다. 게다가 급여수준도 낮아 노인들은 자신의 노후를 위해, 그러니깐 벌이를 위해 계속해서 일하고 싶어 한다. 실제 조사결과를 보면, 경제활동 참가 노인 10명 중 8명이 생계비 마련을 위해 일을 한다고 응답하였고, 또한 노인들의 소득원천에서 근로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63% 수준으로 OECD 국가 평균 24%에 비해 훨씬 높다.

빈곤하고 연로한 노인을, 자기 소득보장도 충분히 안되어 노인 된 자식들이 돌봐야 하니 돌봄에도 공백이 생기게 된다. 과거에는 젊은 자식 세대가 가족 내 노인을 부양했다. 그러나 가족 구조가 변화하고 경제 성장도 둔화되면서 노인 부양과 돌봄은 성인 자식세대에도 큰 부담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게다가 성인 자녀들도 이제 같이 고령화되고 있는 것이다. 급격히 증가하는 노인들의 돌봄 공백을 돌봄 서비스 확대로 해결해보려 해도 충분하지 않은 것 같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지난 10년간 돌봄 없이 사는 독거노인의 비율도 급격히 증가해서 네 명 중 한 명의 노인은 혼자 살고 있다. 이들에게 돌봄은 둘째 치고 소득도 넉넉지 않다. 어디서든 볼 수 있는 폐휴지 줍는 노인들,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노인 자살률은 우리 할머니가 살고 있는 나라가 어떤 곳인지 보여준다. 나이 든 부모세대와 노인 된 우리 세대가 같이 살게 될 초고령사회에서는, 노인들의 먹고사는 문제와 돌봄은 좀 나아지기나 할지, 그 모습이 참 요원하기만 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옆으로 요양원들이 곳곳에 참 많이도 보인다. 차 안에서 올려다본 가을하늘 위에 몽실몽실 떠가는 구름을 보고 있으니, 언젠가 시골에서 우리 할머니가 하얗게 뿜어내던 담배 구름이 생각난다. 어린 시절 그 구름을 재미있어 하니 “뭘 그리 쳐다보냐” 하며 씨익 웃으셨던 우리 할머니의 천진난만한 얼굴이 저 하늘 구름 사이로 빠끔히 보인다.

<이승윤 이화여대 교수 사회복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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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미래 예측은 밝아야 한다. 불행한 미래를 미리 듣고 싶어하는 사람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각종 미래 예측 보고서에서 종종 보이는 과도한 긍정성도 이렇게 보면 이해할 수 있다.

밝고 희망적인 미래를 제시하고 설득해야 사람들을 움직일 수 있다.

역사학자가 미래를 예측하기 꺼리는 것은 그가 밝고 희망적인 얘기를 하는 일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역사학자들은 반복되는 불행을 설명하고 성급한 희망을 품지 않도록 주의하는 일에 더 익숙하다. 그래서 역사학자가 미래를 말하겠다고 나선다면 우리는 그 미래가 항상 밝지는 않으리라고 짐작할 수 있다. 문제는 과연 독자가 이 불행한 미래를 끝까지 참고 읽겠느냐 하는 것이다. 역사학자가 불행한 미래를 말하려면 세심한 전략이 필요하다.

기후변화로 인한 불행한 미래를 알리려고 나선 과학사학자인 나오미 오레스케스와 에릭 콘웨이는 <다가올 역사, 서양 문명의 몰락>이라는 책에서 과학과 픽션을 활용하여 미래를 역사로 변환했다. 2393년의 역사가가 등장해서 20세기와 21세기에 일어난 일들을 서술하는 식이다. 역사학자가 섣부르게 미래를 예측한다는 비판을 피하는 동시에, 지금 하지 않으면 안되는 얘기를 풀어놓기 위해 먼 미래에 사는 역사가의 입을 빌린 것이다.

현재의 지식을 다 끌어모은 다음 2393년이라는 안전한 발언 시점을 찾아간 역사가는 우리의 현재와 미래에서 서양 문명의 몰락을 가져온 제2의 암흑기, 혹은 반암흑기를 발견한다. 이 반암흑기는 1988년부터 2093년까지였다. 2017년의 서구 사회는 반암흑기의 긴장이 고조되고 문제가 심화되는 지점에 있는 셈이다. 최근 겪은 폭염이나 허리케인도 그런 과정의 일부로 볼 수 있다. 

2393년의 역사가가 담담하게 서술하는 21세기 중반의 일들은 섬뜩하다. “2040년에는 혹서와 가뭄이 더 이상 이변이 아니었다. 식수와 식량을 배급하고 맬서스주의에 따라 아이를 하나만 낳도록 하는 인구 정책을 실시하는 등 통제 조치가 취해졌다. … 그러다가 2041년 여름 북반구에 전례 없는 폭염이 닥쳐 지구를 달구고 곡물을 말려 죽였다. 사람들은 공포에 휩싸였고 거의 모든 도시에서 식량을 요구하는 폭동이 일어났다. … 2050년대에 들어서자 사회 질서가 무너지고 정부가 전복되었다. … 2060년 여름이 되자 북극지방의 만년설이 사라졌다. 수십 종의 생물이 멸종했다. 21세기의 도도새와 같은 상징이었던 북극곰도 사라졌다.”

2073~2093년에는 대붕괴와 대이동이 있었다. 남극과 그린란드의 빙하가 붕괴하면서 해수면이 급격하게 상승했다. 빙하와 함께 사회도 붕괴했다. 해수면 상승의 영향으로 15억명가량이 이동해야 했고, 인구 이동과 함께 중세의 흑사병에 버금가는 2차 흑사병이 퍼졌다. 네덜란드와 뉴욕과 플로리다는 물에 잠겼고, 호주와 아프리카에는 사람이 살지 않게 되었고, 제2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새로운 국가가 등장했다. 인간은 멸종하지 않았지만 전혀 다른 세상을 살게 되었다.

2093년의 몰락은 인류의 뒤통수를 치듯이 오지 않았다.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있는 상황에서 보란 듯이 벌어졌다. 미래의 역사가는 자랑인지 조롱인지 모를 평가를 내린다. “서양 문명은 스스로 종말을 예측할 능력이 있었을 뿐 아니라 실제로 예측했다는 점에서 이전의 문명과는 다르다.” 안타깝게도 미래를 예측하는 지식과 기술은 미래 세계의 몰락을 막아주지 못했다. “사실 가장 놀라운 점은 이들의 지식이 무척 방대했다는 점, 그런데도 지식에 따라 행동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아는 것이 힘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미래의 역사가가 우리의 시대를 반암흑기라고 부르는 것은 이 모든 변화의 핵심에 지식의 문제, 특히 “아는 것이 힘이 되지 않았던 것”의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2393년의 관점에서 반암흑기는 이렇게 정의된다. “계몽을 이루었다는 서양의 기술과학 국가들에 20세기 후반부에 드리운 반지성주의의 그림자. 이 때문에 과학적 지식에 따라 행동하지 못했고 21세기 후반과 22세기에 침수와 사막화라는 재앙을 초래했다.” 반암흑기의 시작을 1988년으로 보는 것은 그 해에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IPCC)이 설립되었기 때문이다. 즉 닥칠 일을 알면서도 움직이지 않는 문제가 시작된 때였다.

미래의 역사가는 21세기의 인류가 많이 알면서도 행동하지 못했던 이유를 설명하려 노력한다. 우선 과학자들이 각자의 영역에서 깊은 지식을 쌓았지만, 전문 분야들을 넘나들며 종합적인 그림을 그리고 이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일은 무척 어려웠다. 또 지식을 만드는 사람들이 행동과 정책을 바꿀 힘을 가지지 못했고, 화석연료를 더 많이 사용할수록 이득을 보는 ‘탄소연소 복합체’에 정치적, 경제적 권력이 있었다. 무엇보다 ‘시장근본주의’라는 이데올로기 체계가 기후변화에 대한 과학을 배척하는 데에 영향을 미쳤다. “환경 연구를 통해 인류와 자연환경을 보호하려면 정부가 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탄소연소 복합체에서는 과학을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싸워야 할 적으로 취급했다”는 것이다.

굳이 2393년으로 가서 돌아보지 않아도 우리의 미래는 과학 지식을 둘러싼 갈등으로 가득하다. 미래를 예측하는 지식이 있어도 그에 따라 미래를 바꾸려는 시도는 새로운 미래를 반대하는 강력한 힘에 가로막히기 일쑤다. 어떤 과학은 미래 과학으로 칭송받지만, 어떤 과학은 미래를 논할 자격도 얻지 못한다. 2093년의 대붕괴 같은 불행한 미래 얘기는 멋진 미래에 대한 선전에 가려 잘 들리지 않는다. 2030년에는 인공지능이 우리 생활을 확 바꾸어 놓고, 2045년에는 우리 몸의 한계를 넘어 죽음도 통제하는 특이점이 오리라는 얘기들 속에서 2093년의 몰락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불행한 미래는 인기가 없지만, 그렇다고 무시하면 곤란하다.

<전치형 과학잡지 ‘에피’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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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선 고등학교에서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를 수정하는 일이 급증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유은혜 의원이 교육부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지난해 전국 고교의 학생부 정정은 18만2405건에 이른다. 2012년(5만6678건)과 비교해 4년 새 3배 이상 늘었다. 올해는 1학기에만 10만7760건이 고쳐졌다. 학생부 수정은 불법이 아니다. 해당 학년도 이전에 입력된 학생부 자료는 원칙적으로 수정할 수 없지만 동아리·봉사 활동이나 수상실적 등이 누락됐다는 증빙 자료가 있으면 교내 학업성적관리위원회 심의를 거쳐 고칠 수 있다. 그러나 특정 교과의 학업 능력 등을 적는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 항목이나 학생의 인성 및 관심사항을 기록하는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 항목도 지난해 각각 3만여건 수정이 이뤄졌다.

학생부는 대입의 핵심 전형 자료다. 입시에서 학생부를 고쳐 한 줄이라도 내용을 추가한 학생은 합격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지고, 학생부를 수정하지 못한 학생은 그 반대다. 그렇잖아도 학생부는 교사와 학생·학부모 간 짬짜미 우려가 있고, 금수저 전형이라는 인식이 퍼져 있는데 학생부 수정이 이렇게 다반사로 이뤄지고 있다면 신뢰성에 의심을 품지 않을 수 없다. 내신 성적 조작 등 교육청 감사에 적발된 학생부 관련 비리가 지난 3년간 300건이 넘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학생부 수정 과정에서 사실 왜곡이나 조작, 학부모의 부당한 개입이 없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학생부 관리가 이런 식이면 문재인 정부의 공약인 수능 절대평가 도입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수능 절대평가는 입시에서 수능의 비중을 줄이고 학생부의 영향력을 키우는 것이 핵심이다. 그러나 학생부와 자기소개서, 추천서 등으로 학생을 선발하는 학생부종합전형(학종)에 대한 불신 때문에 지난 8월 교육부는 수능 개편을 1년 뒤로 미뤘다. 당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시민의 75.1%는 학종이 상류층에게 유리하고, 74.8%는 부모나 학교·담임교사 등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전형이라고 응답했다. 당장 2018학년도 대입에서 학생부를 반영해 뽑는 인원은 22만여명으로 전체의 64%에 이른다. 학생부는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하고, 학생들에게 진로 탐색 기회를 부여하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지금의 학생부 체제로는 안된다. 대입의 공정성과 형평성은 한국 사회를 지탱하는 최후의 보루다. 학생부의 신뢰도를 높이는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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잎사귀마다 붉은 분칠. 담장 넝쿨도 발개져서 멀리서 보면 마치 집이 불난 듯 보여. 북쪽으로 삼십분쯤 가면 내장산 단풍 숲. 예까지 길게 늘어선 단풍나무들은 집성촌에 모여사는 친척들 같아.

여긴 동물원이 아닌 식물원. 기린처럼 목을 길게 늘이 뺀 나무들. 잎들 떨어지면 나무들은 추워 솜눈 이불을 뒤집어쓰겠지. 첫눈이 나리면 세상은 검거나 희거나 모노톤 흑백의 산천. 불바다 불산이 타고 나면 잿가루 같은 눈이 내릴 테고, 단풍잎들 낙엽이 되어 층층 묻히면 어디라도 무덤산.

산불조심 깃발을 앞세운 국유림 관리소 직원들의 홍보 차량이 동네를 한 바퀴 돌고 간다. 개들도 알았다고 컹컹. 야옹이도 알았다고 용용. 건조한 날씨에 바람이라도 거칠면 산불이 번질까 덜컥 겁부터 생긴다. 서울도 평양도 해마다 단풍으로 불바다. 단풍 들면 어디나 불바다.

그런 불바다 말고는 무서운 불소식. 불벼락 전쟁놀음도 한심한 소란 소동. 프랑스 투르 지방의 성자 마틴은 그랬다네. “나는 그리스도의 병사라네. 그러니 무기를 들고 싸울 수 없지.” 전쟁과 불화의 십자군 기독교만 있는 게 아니라네.

정의와 평화가 수놓는 폭죽 가을 잎사귀들. 펑펑 터지는 가을밤 유성우. 오줌으로 따발총을 갈기면서 아이들은 이 강산에서 즐거웁게 자라나야지. 불바다 불산 가을단풍도 한 시절이렷다.

우리 인생 눈 깜짝하면 흰 머리칼. 겨울 되면 펭귄만 좋은 일. 펭귄도 겨울 추위가 좋아 극지방에 모인 게 아니라지. 싸우기 싫어 멀리멀리 도망친 거라지. 천적 원수가 없는 곳. 얼음바다 얼음산.

감나무마다 불처럼 번진 붉은 홍시. 별 폭죽 팡팡 터진 홍시에 불새들과 날벌레가 달라붙어 주린 배를 채운다. 산밭에 단감이 제법 많이 열려 일삼아 따야 하는데, 날마다 내일로 미루는 게으름. 새들과 싸우지 않고 살 수 있는 건 나나 저나 욕심부리지 않기 때문이네. 새들은 주머니도 창고도 없지. 나도 태풍 없는 풍작, 과하다 싶은 축복에 데면데면 엉거주춤 그러고 있는 중.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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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1. 2008년 2월 노무현 대통령은 퇴임했다. KTX를 타고 봉하마을로 내려갔다. 귀향 초기엔 화포천을 둘러보고,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방문객을 맞았다. 친환경 벼농사에 관심을 쏟으면서 지역주민들과 논두렁에서 막걸리 잔을 주고받는 일이 잦았다. 건배사는 “봉하마을 친환경 오리농법을 위하여!”였다. 짬이 나면 손녀를 태운 자전거의 페달을 밟았다. 그렇게 ‘바보 노무현’은 ‘농부 노무현’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해 7월30일.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 직원들이 45인승 전세버스에 올랐다. 버스는 4시간 넘게 달려 경남 김해에 있는 태광실업에 닿았다. 조사4국 직원들은 태광실업에 들이닥쳐 회계장부와 재무 관련 자료를 압수했다. 회사 관할은 부산지방국세청인데 서울에서 특별 세무조사를 전담하는 조사4국 직원들이 내려와 재계 서열 600위권의 지방 신발업체를 샅샅이 뒤진 데는 불순한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었다. 넉 달간 진행된 먼지털이식 고강도 세무조사의 타깃은 마당발 인맥과 통 큰 로비로 유명했던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이 아니었다. 박 회장이 후원했다고 알려진 전직 대통령 노무현이었다.

#장면 2. 2008년 봄. 취임 첫해를 맞은 이명박에겐 ‘시련의 계절’이었다. 그해 4월 이명박은 굴욕적인 한·미 쇠고기 협상 타결을 선언했다. 민심은 들끓었다. 광장을 메운 촛불시민들은 “MB 즉각 하야” “이명박 OUT” 등의 구호를 외쳤다. 경찰은 ‘명박산성’을 쌓으며 촛불집회를 원천봉쇄하려 했지만 허사였다. 이명박 지지율은 10%대로 떨어졌다. 청와대 뒷산에 올라가 ‘아침 이슬’을 읊조렸지만 성난 민심은 가라앉지 않았다.

당시 이명박은 사이버 세상의 뒷공간을 이른바 ‘노빠’들이 장악하고 있다고 여겼다. 노무현 후원자들이 운영하는 업체에 대한 세무조사를 지시한 것도 그런 배경에서다. 우리들병원, 토속촌, 제피로스 등이 세무조사를 받았지만 의심할 만한 자금의 흐름이 포착되지 않았다. 그러자 불똥이 태광실업으로 튀었다. ‘보복성 표적 세무조사’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하지만  이명박은 물불을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삼지 않으면 자신이 몰락할 판이었다.

#장면 3. 노무현 정부의 마지막 국세청장이었던 한상률은 2008년에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정권이 바뀌면 국세청장도 교체되는 게 관례다. 하지만 이명박은 신임 국세청장을 임명하지 않았다. 자신의 아킬레스건인 서울 도곡동 땅의 실체와 BBK 관련 의혹을 파악하고 있던 한상률을 내치면 뒷감당을 할 수 없을 것이란 얘기가 파다했다. 그런 연유에서인지 한상률은 정권이 바뀌었는데도 유임된 최초의 국세청장이 됐다. 하지만 충남 서산 출신인 한상률은 이명박 정권과 ‘끈’이 닿지 않았다. 그는 안원구 서울청 세원관리국장을 불러 “이명박 정권과 지연, 학연, 혈연이 닿지 않는다. TK 출신인 안 국장이 MB 쪽에 아는 사람이 많을 테니 도와달라”(안원구·구영식, <국세청은 정의로운가>)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과의 연결고리를 찾는 데 실패했다. 그러자 자신을 국세청장으로 임명한 노무현을 타깃으로 한 세무조사에 나선 것이다. 당시 한상률은 태광실업 세무조사 결과를 이명박에게 직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8년 벌어진 세 개 장면은 이듬해 5월 노무현의 죽음이라는 비극으로 마무리됐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이명박과 한상률만큼은 헌정사상 초유의 비극이 왜 빚어졌는지를 짐작하고 있을 터이다. 하지만 두 사람은 입을 닫고 있다. 시간에 묻히고, 세인들의 기억에서 멀어지길 바라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자유한국당은 노무현을 현실정치에 끊임없이 소환하고 있다. 정진석 의원은 노무현의 죽음을 “부부싸움 끝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홍준표 대표는 “노 전 대통령의 유족들도 (뇌물사건의) 공범”이라고 했고, 강효상 대변인은 “뇌물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재수사가 필요하다”고 했다. 적폐청산의 칼끝이 이명박에게 겨눠지자 고인이 된 전직 대통령을 끌어들여 물타기하려는 저열한 행태다. 최소한의 인간적 예의조차 갖추지 못한 한국당 의원들의 막말과 추태에 진저리가 쳐진다.

인간 삶이 제각기 다르듯 죽음도 천차만별이다. 사마천은 ‘보임안서(報任安書)’에서 “어떤 죽음은 태산보다 무겁고, 어떤 죽음은 새털처럼 가볍다”고 했다. 노무현이 태산보다 무거운 죽음을 선택한 지 8년5개월이 흘렀다. 2008년 배신과 음모로 점철된 세 장면을 목격했던 시민들은 안다. 노무현을 죽음으로 내몬 것도 모자라 ‘새털처럼 가벼운 죽음’으로 폄훼하려는 ‘미필적 고의범’이 누구인지를…. 시민들은 ‘바보’가 아니다.

<박구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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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부 기자의 숙명이겠지만 늘 거대담론에 둘러싸여 산다. 명절은 이 팍팍한 늪에서 잠시라도 벗어나 일상의 소박한 결을 느끼게 해 준다. 그러나 이번 추석은 예외였다. 이명박(MB) 정부의 ‘적폐’라는 거대담론에 단단히 포위된 채 보내야 했다.

군까지 동원된 정치개입, 문화연예계 블랙리스트, 전직 대통령 비하 청부…. 끝도 없이 터져나오는 비리도 모자라 국가기관이 보수단체와 김대중 전 대통령 노벨 평화상 수상 취소를 모의했다는 정황마저 불거졌다. 권력이란 게 아무리 자기 극대화와 영속성이 본질이라지만, 그래서 적과도 거래하는 진흙탕 싸움도 불사한다지만 정치적 부관참시까지 하다니. <징비록>과 <난중일기>가 시사하듯 왕조·식민지 지배세력들도 품격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게 우리 역사였다. 서슬 퍼런 군사정권 때도 반북 이데올로기에 맞서는 대항 이데올로기가 힘을 잃지 않았고 독재의 실체적 진실이라도 알 수 있었다. 박근혜 정부는 국정 역사교과서, 테러방지법 등을 동원해 체제를 바꾸려 했던 신념 보수이기라도 했다.

그렇다면 온갖 적폐로 통칭되는 ‘MB의 시간’은 누구를 위해 존재한 것인가. ‘MB의 시간’은 도대체 무엇이었나.

그 시절, 우리는 국가를 잃었다. ‘님을 위한 행진곡’ 중단으로 광주를 뺏겼고 5월 정신을 뺏겼다. 건국절 논란은 뿌리 없는 국가 만들기 시도였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 일해야 할 공무원들을 민간인 사찰, 댓글 공작이라는 사적 이익에 동원하면서 공권력을 무너뜨렸다. MB 정권의 ‘국가 무용론’은 인수위 시절, 임기 말 노무현 정부와 ‘큰 정부, 작은 정부’ 싸움을 벌였을 때부터 예견됐던 건지도 모르겠다. 한 소설가는 “국가는 국민의 마음을 닮게 마련이다. 이토록 국민의 마음을 배반하고 국가를 무력하게 한 지도자가 있었던가 절망했던 때”라고 돌아봤다.

시민의 가치가 송두리째 짓밟힌 세월이었다. 미국산 쇠고기 반대를 외쳤던 시민들은 생명권과 검역주권을 박탈당했다. 공영방송 시스템을 흔들고 수많은 언론인을 해고하고 마스크 금지법, 댓글 처벌법으로 표현의 자유를 가뒀다. 균형발전의 싹을 잘라 분권을 향해 나아가던 지역의 발걸음을 막았다. 한 지인은 “가슴 밑바닥까지 온통 불신밖에 없었다. 사회의 진보가 쉽지 않겠지만 그럼에도 진보를 믿어야 할지조차 의심했던 때”라고 했다.

천민자본주의가 지배했던 5년이었다. 부실 자원외교는 에너지 공기업에 조 단위가 넘는 부채를 안겼다. 경제 살리기 명목으로 시작한 4대강 사업은 투기세력의 배만 불렸다. 덤핑 낙찰과 납품 비리에 얼룩진 원전 비리는 막대한 손실로 되돌아왔다. 국가 운영을 이익 중심의 비즈니스로 인식한 ‘장사치 보수’였다. 이로인한 상실감은 미국 사회학자 로버트 퍼트넘의 말로 대신한다. “대규모 부패는 청렴 가능성에 대한 신뢰를 파괴한다. 신뢰가 파괴되면 이기적으로 행동하고 냉소와 체념으로 힘겨운 삶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MB의 시간’을 기억하는 방법이 온통 괴물의 악행을 성토하는 것뿐이면 안된다는 자성도 든다. 이런 세월을 지나고도 진보개혁 진영은 2012년 대선에서 패배했다. 정치권이 성찰하고 혁신하지 않는 동안 촛불이 세상을 일으켜 세웠다. 한편에선, 보수 지지층 결집 징후를 전하는 추석 민심도 적지 않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모든 짐을 지고 인당수에 빠진만큼(구속) 보수 정치권에 대한 실망을 거두자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 역할을 불신하는 미국에서도 ‘정부는 국민을 섬긴다’는 공민학 제1의 원칙에 누구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보수층이 앞장서 ‘MB의 시간’을 성찰해야 하는 이유일 테다.

적국(미국)조차 ‘위대한 혁명가’로 인정했던 체 게바라의 50주기에, 전 대통령의 노벨 평화상 수상 취소를 모의했던 ‘MB의 시간’을 돌아봐야 하는 지금. 참으로 부끄럽고 괴로운 계절을 지나고 있다.

<정치부 구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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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과 가상세계가 현실세상을 밀어내면서 우리는 긴밀히 연결된 네트워크 속에 내던져진 채 살아가고 있다. 원하지 않아도 그것은 이제 숙명이다. 문제는 글로벌 정보망이 취약하다는 것이다. 미래문명을 만들어갈 기술기반이 언제라도 붕괴될 위험이 있다.

각국에서 사이버사령부를 만들고 미래를 준비하는 이유는 국가기반시설은 물론 자국민의 안전을 지켜줘야 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해킹활동으로 정부, 기업, 군사정보와 관련된 재산권을 침범,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부의 이전을 이룩한 해킹국가(?)다. 여전히 전 세계 사이버 공격 근원지의 40% 이상은 중국이다. 미국 보안업체 맨디언트의 보고서에 따르면 상하이에 위치한 3500평 규모 12층짜리 빌딩에 있는 61398부대 본부에는 매일 수천명의 직원이 출근해 전 세계 정부, 기업, 개인들을 해킹한다.

이 부대가 중국 사이버사령부 직할부대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이 모든 정보가 어디로 흘러가는지 짐작할 수 있다.

미국은 중동의 골칫거리였던 이란의 핵시설을 목표로 했다. 나탄즈 원전 관제시스템에 스턱스라는 악성코드를 침투시켜, 오동작을 유도해 원전에 치명적 타격을 가했다. 스턱스넷은 부시 대통령하에서 만들어졌고, 물리적인 공격 없이 이란의 핵시설을 통제하려는 목적으로 제작됐다.

한 나라의 사이버사령부의 역할은 사실 이런 것이다. 사이버전을 수행하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한편으로는 정보전쟁에서 자국의 이익을 위해 사이버상에서 방어는 물론 공격, 기밀정보 수집 등의 역할까지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동시에 전광석화처럼 적국을 녹다운시킬 수 있는 능력도 갖추어야 한다. 전쟁이 시작되면 교통, 금융, 전력망 그리고 군지휘망까지 한순간에 무력화시킬 수 있는 사이버 역량이 그것이다.

이란 등 중동 국가들의 컴퓨터에 침투해 사이버 스파이활동을 해온 플레임 같은 악성코드는 이를 수행했던 대표적인 사이버 무기다. 스턱스넷의 20배 용량에 수많은 기능과 그 정교함은 실질적인 사이버전의 서막을 알려주는 무기로 정평이 나 있다. 플레임의 존재를 파악하는 데만 5년이 걸렸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해준다.

이처럼 각국은 사이버사령부들을 중심으로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그들은 직면할 다음번 진주만 공습이 사이버 공격이라는 사실에 이의를 달지 않는다. 10여년 전부터 각국이 사이버전을 준비했고, 러시아, 중국, 이스라엘 등은 그때부터 사이버 무기를 개발해왔다. 미국, 영국, 프랑스 등도 이미 정교한 첨단 사이버 공격무기를 보유하고 있다.

미국은 사이버사령부는 물론 국가안보국 등이 나서 도·감청 프로그램을 통해 전 세계 정상들의 통화 내용을 가로챘고, 이를 기반으로 자국민의 안위와 이익을 위해 움직였다. 미국민이 이 같은 불법적인 사실을 알고도 모른 척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 전 세계를 제집처럼 드나들며 정보를 수집하고 현 정세를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 이처럼 숨막히는 경쟁 속에서 우리의 사이버사령부는 어땠는가.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었다. 우리는 가장 중요한 시기에 뒷걸음질을 치고 있었던 것이다. 정권의 이익을 위해 댓글조작을 통한 여론조작을 한 일 등이 그것이다.

스턱스넷 출현 이후 사이버사령부는 2014년 국회에서 한국형 스턱스넷 개발 계획에 동의했다. 북한의 극도로 고립된 통신네트워크 때문에 우리 실정에 맞는 스턱스넷을 만들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 북한의 핵시설들에 치명적 타격을 줄 수 있는 한국형 스턱스넷 개발이 진행되고 있기는 한가. 사이버사령부를 댓글부대로 전락시킨 책임자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여전히 한반도전쟁을 운운하는 트럼프나 김정은의 말 한마디에 언제까지 움찔해야 하는가.

물론 사이버사령부 전체가 이 일에 전적으로 매달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편에서는 사이버 테러와 사이버 전쟁 수행을 위해 묵묵히 준비를 하는 사이버 전사들도 있었으리라. 사이버사령부의 주업무는 사이버 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주객이 전도된 사령부에서는 댓글부대를 관할하고, 여론조작을 해서 정권유지와 정권의 이익을 위하는 게 우선순위였다.

지난 10여년간 사이버사령부를 댓글부대로 전락시킨 관련자는 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국민에게 씻을 수 없는 참담함을 가져다주었다. 21세기 각국이 사이버사령부를 통해 스파이활동을 하고 기밀정보 수집을 하는 동안 댓글부대 운영과 여론조작을 해왔다는 사실은 자괴감을 느끼게 한다. 과연 그런 과거를 물려받은 우리 아이들이 21세기 4차혁명시대에 우수한 경쟁력으로 살아남을 수 있겠는가.

폭풍이 몰려오면서 재앙을 알리는 조짐이 감지되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사이버사령부의 문제가 아니라 사이버시대 난민으로 전락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최희원 인터넷진흥원 수석연구위원 | '해커묵시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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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연휴가 지나갔다. 10월의 하루하루들, 날이면 날마다 햇살이 얼마나 좋고, 공기와 바람이 얼마나 좋은지 툭하면 밖으로 나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굳이 공원이나 산책로를 찾지 않더라도 그저 햇살 아래 잠깐 가만히 서있는 것만으로도 온몸이 노곤노곤해지고, 마음속에 날이 서있던 어떤 것들이 가만가만 구워질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런 계절을 왜 독서의 계절이라고 했을까. 내 생각에 가을은 책을 읽기보다는 밖에 나가 노는 것이 더 좋은 계절이다. 연휴 중의 하루, 책을 들고 공원에 나갔으나 책을 펼치는 대신 그 위에 손을 얹은 채 햇살 구경에만 넋이 빠졌었다. 그런 풍경, 그런 바람, 그런 햇살과 그늘 속에서는 내가 책 속의 이야기, 책 속의 풍경이 되는 기분이기도 했다. 그곳, 내가 앉아있던 공원의 벤치에서는 새로 신축 중인 도서관이 보였다. 숲속에 지어지고 있어 이름도 숲속도서관이다. 그 도서관이 얼마나 아름다울지, 가슴을 두근두근하며 문 여는 날을 기다리는 중이다.

도서관에 관한 내 추억은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에 시작된다. 나는 그때 독립문 근방에 살았는데,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에 사직공원이 있었고, 그 안에 어린이도서관이 있었다. 시립어린이도서관이라니. 당시에 그런 곳이 얼마나 되었을까. 도서관도 귀하고, 물론 어린이도서관은 더욱 귀했을 것이다. 책 한 권 사기 위해 아득바득 용돈을 모아야 했던 시절, 도서관은 천국과 같았다. 책 읽는 습관이 지금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칭찬을 받던 시절의 일이다.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고, 상도 받고 그랬었다. 무지 잘난 어린이가 된 기분이곤 했었다.

나중에 커서는, 그 도서관의 위층 열람실을 이용했다. 정독도서관, 사직도서관, 그런 곳을 책을 읽기 위해서가 아니라 일요일에 중간고사, 기말고사 공부를 하러 다녔다.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새벽부터 긴 줄을 서야 했고, 그러느라 새벽부터 지쳐 열람실에 들어가서는 엎드려 잠부터 자는 게 일이었다. 깨어나면 점심 때였고, 배가 고팠다. 도서관 지하에서는 값싼 우동을 팔았던 것 같다. 공부하러 왔으니 도서관 풍경 같은 건 아무 상관도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사직도서관 열람실에 앉아 있으면, 그 아래 일층 어린이도서관이 늘 그리웠다. 넓은 창과 넓은 책상, 수많은 책들. 그곳에 가만히 앉아있기만 해도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 같던 기분.

운이 좋아 어린이도서관 근처에서 유년시절을 보냈음에도, 도서관이 공부하는 곳이 아니라 책읽는 곳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아주 오랜 후의 일이었던 것 같다. 학창시절 내내 도서관을 공부하는 열람실로만 썼기 때문이다. 줄을 서고, 책상 위에 연습장과 책을 쌓아놓아 영역표시를 하고, 엎드려 자고, 값싼 라면과 우동을 먹기 위해 매점을 들락거리던 기억. 학교를 떠난 후에는 근처에서 도서관을 발견하기도 힘들었다. 동네에 도서관이 새로 생긴 후에도, 공부할 것도 없는데 저긴 뭐하러 가나, 했었다.

한동안 도서관을 책 읽기 좋은 곳으로 만든다는 캠페인이 있었던 것도 같다. 편안한 의자를 놓고, 대출을 손쉽게 만들고, 장서 수를 늘리고, 도서관 수도 늘렸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의 도서관에서는 일인당 일곱권의 책을 한 번에 빌릴 수 있고, 그 책을 연장기간까지 합쳐 3주까지 읽을 수 있다. 매달 한 주 동안은 14권까지도 빌려준다. 없는 책은 서점에서 살 수도 있고, 그 책값을 도서관이 내주기도 한다. 놀라운 서비스가 아닐 수 없다.

책이 귀했던 시절, 어린이도서관이 있는 사직공원으로 걸어가던 길이 다시 떠오른다. 30분 이상을 걸어서 가야 했으니 어린아이에게는 그리 가까운 거리라고 할 수 없을 터였다. 그러나 그 길이 매일매일 두근두근했었다. 벽을 가득 채운 동화책들, 그리고 햇살이 은은히 스며들던 넓은 창들, 칸막이 없이 널찍널찍하던 책상들.

기억은 정확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어린 시절의 사직도서관을 빌려 지금 내가 꿈꾸는 도서관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넓은 창, 좋은 경치, 널찍한 자리, 그래서 책을 무슨 사명처럼 머리를 파묻고 읽는 게 아니라, 그저 읽다 말다, 읽다 쉬다 할 수 있는 곳. 독서가 너무 엄숙하지 않은 곳, 숨막히지 않는 곳.

어쩌다 해외에 나갈 일이 있을 때, 그 도시의 도서관을 찾아가보는 것은 글 쓰는 사람으로서 일종의 습관 같은 것일 터이다. 그곳의 언어를 모르니 그곳의 도서관에 간다고 해도 책을 읽으러 가는 게 아니라 구경하러 가는 것일 뿐이다. 아름다운 도서관은 책의 향기를 풍기고, 읽지도 않았는데 배를 불린다. 우리나라에도 아름다운 도서관은 많다. 한옥으로 만들어진 청운문학도서관, 건물의 외관만으로도 유명한 은평구립도서관, 개인도서관인 이진아기념도서관, 사립도서관인 용인의 느티나무도서관. 책을 읽으러 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도서관은 구경할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다. 그래야만 한다. 책을 읽으러 가지 않고 보러 간다한들, 그것 또한 괜찮은 일이 아니겠나.

“존은 나이가 들면서 인간의 선함을 믿게 되었다.”

최근에 도서관에서 빌려다 본 책에서 읽은 한 구절이다. 나는 이런 평범한 문장들에 마음이 끌리는데, 이 단순하고 평범한 문장 속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들어 있을지 궁금해지기 때문이다. 도대체 존은 어쩌다가 인간의 선함을 믿게 되었을까. 존에게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였던 것일까. 그런 궁금함들. 마거릿 애투드의 <고양이눈>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가을은 천천히, 부드럽게 나이가 들어가는 계절이다. 겨울이 오고, 꼼짝없이 다시 한 해를 넘겨보내야 할 때가 오겠지만, 그 직전 가을은 풍성하고 부드럽게 세월을 감싸고 피로를 위로한다. 이야기들이 그 속에서 과일이나 곡식처럼 익어간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나이가 들면서 무엇을 믿게 되었나, 궁금했다. 책을 읽지 않아도 했을 질문, 그러나 책을 읽으니 다시 한번 깊어지는 질문이다.

그나저나, 가을에 독서를 가장 안 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단다. 더워서 꼼작도 하기 싫은 여름, 추워서 밖에 돌아다닐 엄두 안 나는 겨울, 황사 때문에 외출을 삼가는 봄이 실은 책 읽기에 더 좋은 계절이라는 뜻일 터이다. 그러나, 더 좋은 계절이란 게 어디 있겠나. 책이 쓰이고, 만들어지고, 손 닿는 곳에 있는 한, 그 모든 나날들이 책 읽기에 좋은 날들이다. 그러기를 소망해본다.

<김인숙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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