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오는 2월4일로 예정됐던 금강산 남북 합동문화공연을 취소한다고 그제 일방적으로 통보해왔다. 이런 일방적 행동은 평창 동계올림픽 관련 사안으로만 벌써 두번째다. 앞서 지난 19일에도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 단장이 이끄는 예술단 공연을 위한 사전 점검단을 남측에 파견키로 했다가 밤늦게 아무런 설명 없이 이를 “중지한다”고 일방 통보한 바 있다. 국제규범에 어긋나는 행태가 아닐 수 없다. 북한이 언제 또 합의 사항을 뒤집을지 불안하다.

북한은 금강산 합동공연 취소에 대해 “남측 언론들이 우리의 진정 어린 조치들을 모독하는 여론을 계속 확산시키고 내부의 경축행사까지 시비해 나선 만큼 합의된 행사를 취소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고 한다. 그러나 이유도, 조치도 이치에 맞지 않는다. 북한 입장에서 이른바 ‘건군절 열병식’ 등에 대한 남한 언론 보도가 불만스러울 수 있겠지만 남한의 언론 자유를 모를 리 없는데도 이 같은 주장을 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남북의 제도와 문화, 사상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남북관계 개선은 기대하기 어렵다. 민간 영역인 언론 보도를 이유로 당국 간 합의 사항을 취소한다는 것도 말이 안된다. 어제 남한 정부가 북측에 유감을 표명한 것은 당연한 처사다. 바람직한 남북관계 설정을 위해서라도 신뢰를 깨는 행동에 대해 경각심을 일깨울 필요가 있다.

남북관계는 10년 가까이 단절됐다가 이제 막 개선의 첫발을 뗀 상태여서 남북대화를 바라보는 국내외의 시선이 호의적이지만은 않다. 남북이 상호 존중과 이해의 정신을 바탕으로 신뢰를 쌓아나가지 않으면 안된다. 무엇보다 채 열흘도 남지 않은 평창 동계올림픽을 평화올림픽으로 치르는 것이 중요하다. 금강산 합동공연이 무산되더라도 평창 올림픽과 패럴림픽의 대표단 파견과 공동입장 등은 원래 합의대로 차질 없이 진행돼야 한다. 북쪽의 각별한 협력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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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여성 검사가 검찰 고위간부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사실을 폭로했다. 창원지검 통영지청 서지현 검사는 “2010년 한 장례식장에서 법무부 장관을 수행하고 온 당시 법무부 간부 안모 검사로부터 강제추행을 당했다”고 말했다. 서 검사는 이를 검찰 내부망에 실명으로 올린 데 이어 TV 뉴스에 직접 출연해서 공개했다. 서 검사는 이후 소속 검찰청 간부를 통해 사과를 받기로 하는 선에서 정리됐지만, 어떤 사과도 연락도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오히려 2014년 사무감사에서 검찰총장 경고를 받고, 2015년에는 원치 않는 지방발령을 받았다고 했다. 서 검사는 “성추행 사실을 당시 최교일 법무부 검찰국장(현 자유한국당 의원)이 앞장서 덮었다”고도 했다. 시민의 인권과 권리를 보호하고 정의 구현을 사명으로 하는 검찰 내에서 성범죄가 자행되고, 이를 덮기 위해 인사권까지 부당하게 행사했다면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당사자인 안 전 국장은 “오래전 일이고 문상 전에 술을 마신 상태라 기억이 없지만, 그런 일이 있었다면 사과드린다”고 했다. ‘술에 취해 기억이 안 난다’는 건 케케묵은 변명 수법이다. 더욱이 ‘그런 일이 있었다면 미안하다’는 식의 사과가 지금 가당키나 한 태도인가. 최교일 의원은 “성추행 사건 자체를 알지 못했고, 덮었다는 주장도 사실이 아니다”라고 했다. 과연 그런지 두고 볼 일이다. 파문이 커지자 법무부와 검찰은 30일 “철저히 진상을 조사해 엄정히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상하 권력관계에서 일어난 명백한 권력형 성범죄다. 철저한 진상규명과 일벌백계가 필요하다.

검찰 내 성추행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8월 서울서부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후배 여성검사를 성추행한 혐의로 면직처분됐고, 2015년 서울북부지검에서도 부장검사가 회식 자리에서 후배 여검사를 껴안았다가 징계를 받았다. 2014년에는 목포지청 검사가 동료 여검사에게 강제로 입을 맞추는 등의 성추행으로, 2011년에는 현장 실무교육 중이던 여성 사법연수생을 성추행한 검사들이 대거 징계를 받았다.

검찰에 이런 일이 반복되는 것은 폐쇄적이고 위계질서가 엄격한 조직 문화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검사 신분이 곧 권력이라는 그릇된 인식에다 과거 접대관행에서 비롯된 술자리 문화가 남아 있는 것도 주요인이다.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검찰은 적격심사와 감찰을 강화하겠다거나 무슨 개혁조치를 도입하겠다고 했지만 달라진 것은 별로 없다. 검찰개혁을 요구하며 검찰 내부 비판을 계속해온 임은정 검사는 “괴물 잡겠다고 검사가 됐는데, 우리(검찰)가 괴물이더라”고 말한 바 있다.

지난해 말 성폭력 피해자의 연대를 뜻하는 ‘미투(Me too)’ 캠페인이 전 세계로 번져갔다. 강력한 남성 중심 권력구조 탓에 숨죽여왔던 이들이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며 잇따라 나선 것은 성폭력 문제는 공론화해야만 해결할 수 있다는 인식이 커져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서 검사는 검사라는 직업을 가졌음에도 성폭력 피해를 당하고 8년간 침묵을 지켜야 했다. 다른 여성은 더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서 검사는 “우리 스스로 더 이상 침묵하지 않고, 내부로부터의 개혁을 이룰 수 있는 아주 작은 발걸음이라도 된다면 하는 소망으로 글을 쓴다”고 했다. 그의 용기에 찬사와 응원이 쏟아지고 있다. 그의 용기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직장 내 성폭력과 성희롱을 뿌리 뽑는 데 큰 발걸음으로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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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우체국에서 지갑을 잃어버린 적이 있다. 선물소포를 포장하여 부칠 때만 해도 있었는데 포장봉투를 버린 다음 한참 걷다 보니 아뿔싸, 수중에 지갑이 없었다. 그렇다면 가능성은 두 가지였다. 선반에 두었던 지갑을 누가 훔쳐갔거나 봉투를 버리며 딸려 들어갔거나. 사실 후자의 가능성은 낮았다. 아무려면 쓰레기통에 지갑을 넣을 만큼 정신을 놓고 살진 않을 테니 말이다. 그렇지만 그나마 되찾을 희망이 있는 경우 또한 후자였다.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커다란 쓰레기통으로 머리를 넣어보니 텅 비어 있었다. 쓰레기통 뚜껑 열고 고개를 들이미는 고객을 본 우체국 직원분이 달려오셨다. 자초지종을 들으신 그분은 십여분 전에 비워진 쓰레기가 이미 지하처리장으로 내려갔다 하셨다. “그럼 어쩔 수 없네요” 하며 돌아서는데 “뭐가 어쩔 수 없어요? 가보면 되지”라며 나더러 따라오라셨다. 지하층으로 내려가니 아까 버린 종이봉투가 저편에 얼핏 보이는 듯했다. 저쪽 같다고 하자 그분은 쓰레기더미 안으로 그야말로 불도저처럼 돌진하셨다. “지갑 무슨 색이에요?” 하시면서. 괜찮다고, 정말 괜찮다며 팔을 잡아끌어 나왔다. 지갑 같은 것은 아무렇지 않아졌다. 비닐 재질로 된 저렴한 물건이었고, 안에 든 돈은 일만 몇 천원이었을 것이다. 요즘처럼 현금을 안 들고 다니는 세태에 남의 지갑 훔칠 만큼 어려운 이라면 내가 작은 도움을 드렸다 치자. 그런 호기로운 마음마저 솟았다.

세상에서 제일 친절한 사람들이 일하는 공간 가운데 하나가 내겐 우체국 같다. 여러 해 전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서점에 들렀다 충동적으로 카드를 한 세트 산 나는 선배선생님들께 보낼 연하장을 작성하여 부치러 갔다. 연말이라 우체국에는 사람이 아주 많았다. 직원분 말씀이, 물량이 밀려 일반엽서는 4~5일가량 소요될 거라 하셨다. 그러면 새해일 텐데, “메리 크리스마스”라 쓰인 카드를 연초에 받으면 얼마나 김이 새겠는가? 더 빠른 방법은 없는지 물었더니 특급등기인가 있기는 하다셨다. 무심코 “그걸로 해주시겠어요?” 하자 그분은 손에 쥔 봉투들과 내 얼굴을 번갈아 살피더니 “이거 연하장 아닌가요?” 물으셨다.

특급은 직접전달이 원칙이라 수령인에게 전화가 간단다. 수령지로 기재된 대학들은 현재 방학일 테고 수령인들은 손윗사람일 듯한데, 오히려 받는 분을 번거롭게 해드리는 결례를 범하지 않겠냐 하셨다. 연하장은 본디 늦게 받아도 기분 좋은 법이라며 일반우편으로 보낼 것을 권하셨다. “네? 네…” 하며 엉겁결에 그렇게 했다. 그리고 두고두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사실 그분이야 안에 든 것이 연하장이든 업무서류든 알 바 아니었을 것이다. 사람들이 밀려들어 정신없던 와중에 수령지와 고객의 표정에서 그것이 ‘긴급하지 않음’을 유추하셨던 따스한 관심과, 우편매너에 무지한 사회초년생이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도록 조언해준 배려에 감사했다.

왜 우체국에서는 항상 좋은 분들을 만날까. 문득 궁금해졌다. 한국우정사업본부는 구글처럼 꿈의 기업이란 말인가. 그런데 떠올려보면 해외에 있을 때도 그랬다. 지구 건너편에서 공부할 무렵, 지인에게 부칠 소포꾸러미를 품에 안고 있었더니 할아버지 직원분께서 “왜, 너도 그 소포와 함께 바다 건너 날아가려고?” 농담을 던지셨다. 그리고 이어서 “너의 그 웃음이 참 좋다. 넌 앞으로도 항상 그렇게 웃으며 살아라, 알았지?” 하셨다. 웃음이 예쁘다는 칭찬은 그때 처음 들었다.

내가 우체국에서 ‘먹어주는’ 얼굴인 건가 하며 친구들과 농담을 주고받다 생각하니, 그곳에 갈 때면 나는 언제나 웃고 있었던 듯하다. 내 엽서나 선물꾸러미를 받게 될 상대방의 놀라움과 즐거움을 상상하며 표정이 아이스크림을 갓 꺼내든 아이처럼 환했을 것이다. 우체국에서 상냥한 이들만 만났던 것은 그분들이 실제로 친절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한편으로는 선물 보내는 순간의 설렘이 그분들께 전해져서일지도 모르겠다.

새해 우리 앞에 놓일 하루하루를 우체국 찾아갈 때의 얼굴로 맞이하면, 연말 즈음 우리는 저마다 ‘웃음이 예쁜 얼굴’에 조금 더 가까워져 있지 않을까.

<이소영 | 제주대 사회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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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노사정대표자회의가 열린다. 우여곡절 끝에 민주노총이 참여하면서 성사된 자리이다. 내 주변의, 다소 진보적인 사람들에게 민주노총은 참 독특한 존재이다. 어쩌다 이야기 소재로 떠오르면 비판과 한탄으로 동네북이 된다. 그러다가 마무리에선 ‘제발 민주노총이 잘해야 한다’며 또 기대를 건다. 그냥 단념해버리면 될 걸, 왜 이 사람들은 이리 미련을 갖는 걸까?

1980, 90년대를 거친 사람들에게 민주노총은 ‘노동조합’ 그 이상으로 기억된다. 영화 <1987>은 6월로 끝을 맺지만 그해 여름부터 노동자들이 나섰다. 노동조합 자체가 불온시되던 상황에서 민주노조를 만들고, 권력을 연장한 권위주의 정부와 싸웠다. 그 기세로 1995년 민주노총을 건설하고 이후 IMF 구조조정에 저항했다. ‘전투적’이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당시 민주노총이 외치는 평등 세상은 격차와 차별을 넘어서고픈 일반 시민들의 바람이기도 했다. 비슷한 시대정신을 공유하는 하나의 통로였던 셈이다. 그러기에 오늘은 ‘노동자의 5%만이 조합원이고, 그 다수가 정규직’인 조직이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민주노총의 역사성을 존중하고, 새로운 민주노총을 갈망한다.

혹 부질없는 과거 회고일까? 솔직히 반복되는 실망에 익숙해져 있다. 그럼에도 새삼 민주노총 주제를 꺼내는 건 최근 민주노총과 산하 산별조직의 전향적인 움직임 때문이다. 우선 신임 민주노총 위원장의 조직 진단이 대담하다. 그는 지난달 선거에서 핵심 슬로건으로 “고립, 분열, 무능을 뛰어넘어”를 제시했다. 사람들이 민주노총을 향해 내던지는 단어들을 고스란히 받아들였다. 조합원들의 표를 얻어야 하는 후보로서 쉽지 않은 자기 고백이다. 특히 사회연대전략을 공약했다. 약 10년 전에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에서 비정규, 불안정 노동자의 국민연금 보험료를 정부·기업·중심권 노동자가 함께 지원하자는 사업 제안이 거센 논란을 일으켰다. 당시 ‘정규직 양보론’이라는 역공을 받아 좌절되었던 이 사업의 이름이 사회연대전략이다. 우연히도, 이 사업에 총력을 기울였던 민주노동당 대표는 지금 노사정위원장이다. 그는 모든 공중파가 생중계한 당대표 연두기자회견의 전체 시간을 ‘사회연대전략’으로 할애했었다.

내가 이해하기에, 사회연대전략의 핵심은 ‘양보’가 아니라 불안정노동자를 위한 ‘연대’이고, 노동자의 균열을 극복하려는 주체 형성운동이었다. 결국 이 사업은 무산되었고 지금은 ‘두루누리 사회보험료 지원’이라는 다른 설계도로 정부에 의해 시행되고 있다. 만약 민주노총이 추진했다면 사회적 논의를 주도하며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의 연대 고리도 생겼을 거라는 아쉬움이 컸는데, 이번에 민주노총 집행부가 ‘사회연대전략’을 공언하고 나선 것이다.

민주노총이 여러 의제를 고심하고 있겠지만 과감했으면 좋겠다. 예를 들어, ‘모든 실업자에게 실업급여’ 제안은 어떨까. 고용보험 안에서는 중심권 노사가 고용보험료를 더 내 실업급여를 튼튼히 하고, 고용보험 밖 취업자는 정부가 재정을 책임지는 실업자 대응책이다. 스웨덴 연대임금제를 참고해 임금격차를 개선하는 한국형 연대임금도 기획될 수만 있다면 위력적일 듯하다. 보육, 교육, 고용, 주거, 노후, 의료, 빈곤 등 7대 민생을 해결하는 복지국가 건설에 나서겠다는데, 세금도 누진적으로 더 내는 운동까지 벌이면 어떨까. 우리 노동자도 내겠다고 천명하면서. 물론 쉬운 일이 아니다. 또 구호에 그칠지도 모른다. 그래도 지난 몇 년 민주노총의 변화를 주목하고 싶다.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지만 민주노총의 비정규 노동자 권리 활동은 꾸준히 강화돼 왔다. 근래 늘어나는 조합원 상당수가 서비스, 학교, 건설 업종에서 일하는 비정규직·불안정 노동자들이다. 작년에 최저임금 인상을 이끌었던 민주노총 총파업의 주역도 이들이다.

또한 이런 기회가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최근 주요 산별노조에 사회연대를 주창하는 집행부가 들어섰다. 공공운수노조는 사회연대위원회를 설치해 “시민들에게 한 걸음 다가가는” 노동조합이 되겠단다. 금속노조 위원장은 ‘임금 인상’이 아니라 “노동자들 사이의 임금 차이를 줄이는 것이 산별노조의 원리”라고 주창해 온 노동자이다. 보건의료노조는 오래전부터 암부터 무상의료, 보호자 없는 병원 등 ‘돈보다 생명을!’ 운동에 앞장서온 조직이다.

사회연대운동에선 노동자 참여가 관건이다. 그만큼 어려운 일이고 내부 논쟁도 생기겠지만 진솔하게 나선다면, 조합원들은 자부심을 느끼고 시민들은 응원하지 않을까.

우리나라 민주노조운동의 역사적 자산인 ‘민주노총’, 이제는 내부 격차를 넘어서고 평등사회를 만드는 ‘사회연대노총’으로 거듭나기 바란다.

<오건호 |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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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 4월23일 오후, 자신에 대한 사형 선고문이 십여 분에 걸쳐 낭독되는 것을 다 듣고 난 뒤에 전봉준은 천천히 말한다. “정부의 명령이라면 목숨을 바친다 해도 아까울 것 없다. 다만 나는 바른길을 걷고 죽는 자인데 역적의 죄를 적용한다니 그것이 천고에 유감이다.” 바로 이튿날 서둘러 교수형이 진행되었다. 그가 죽음을 앞두고 읊은 시는 다음과 같다. “때가 이름에 천지가 모두 힘을 합하더니, 운이 다함에 영웅도 어찌할 수 없구나. 백성 아끼고 정의 세움에 나 잘못 없건만, 나라 위한 붉은 마음 알아줄 이 그 누구랴.”

모진 고문으로 인해 혼자 걸을 수조차 없는 상태로 끌려나온 전봉준이 의연함을 잃지 않고 또렷한 정신으로 최후진술에 임하는 모습은 참관했던 일본 기자들마저 경탄하게 만들었다. 이 당당함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추호의 사심도 없이 정의로운 길을 걸어왔다는 내적 성찰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걸어온 삶이 법에 저촉된다면 죽음은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으나, 그 죽음 역시 부끄러움 없이 당당해야 한다는 마음가짐이다.

지난 29일 자신에 대한 검찰의 구형이 이루어진 자리에서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 행한 최후진술에서도, ‘당당함’을 본다. 정치 입장이나 개인 성향은 차치하고, 그의 이 당당함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생각하게 된다. “청와대 관행에 따라 합법적인 방법으로 수행했다. 법조인으로 일했던 제가 불법을 동원할 이유는 없었다”는 진술에 드러나듯, 온갖 의혹과 혐의들이 제기되어도 법적으로 문제없음을 입증할 수만 있으면 그는 당당할 것이다. 마지막에 판사에게 당부한 “법치주의가 살아 있다는 것을 보여주시기 바란다”는 말 역시, 무섭게 다가온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읽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의와 부끄러움이 전제되지 않는 당당함이라는 것, 그 무게가 얼마나 될까.

전봉준은 교수형을 당하기 직전에 “종로 네거리에서 목을 베어 오가는 사람에게 내 피를 뿌릴 일이지, 어찌 이리 아무도 안 보는 곳에서 죽이느냐”라고 말했다 한다. 그 말은 123년 만에 이루어지게 되었다. 올해 봄 종로1가 거리에 녹두장군의 동상이 세워지게 된 것이다. 이제 그 당당함의 무게를 겸허한 마음으로 만나볼 일이다.

<송혁기 |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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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 들어서 적폐청산 작업이 한창이다. 헌법과 법률을 위반하고, 민주주의를 유린한 권력기관의 적폐청산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권력기관의 적폐청산만으로는 우리 경제와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가 나아지지 않는다. 진정한 적폐, 과거 민주정부까지를 포함해 역대 정부를 거쳐서도 강고하게 유지되고 있는 우리 사회 최대 적폐는 각 분야에, 모든 영역에 존재하는 기득권이다.

최근 최저임금 인상과 관련해 자영업자 대책으로 신용카드 수수료 인하가 거론된다. 문재인 대통령의 중국 방문 시 조찬 후 위챗 결제가 화제가 되었다. 일종의 모바일 직불카드다. 직불카드가 보편화되면 자영업자의 카드 수수료 부담이 자동적으로 대폭 경감된다. 그런데 인터넷 강국이라면서 국내에서는 왜 아직도 안될까.

김대중 정부는 소비 진작과 함께, 거래투명성을 높여 공평과세를 실현하기 위한 세정개혁방안으로 신용카드 확대 정책을 추진하면서 2단계로 직불카드 보편화를 계획한 바 있다. 그러나 직불카드 확대 계획은 이후 흐지부지되었다. 재벌 계열의 전업 신용카드사는 물론이고, 은행계열 금융지주사조차 계열사인 신한카드, 국민카드 등 신용카드회사를 통해 매년 수천억원씩 영업이익을 얻고 있는 상황에서 직불카드 확대는 이들의 이익에 반한다. 정부당국은 업계의 반발과 당장의 경영수지 악화에 대한 우려 때문에 정책추진을 주저해왔다. 업계의 기득권 때문에 혁신이 가로막혀 있는 것이다.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재계는 늘 규제개혁을 요구하지만 기존 규제를 통해 누리고 있는 기득권은 포기하거나 양보할 생각이 없다.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를 어렵게 하는 ‘갑질’은 재벌 등 ‘갑’의 기득권에서 비롯된 것이다. 겔포스 등 편의점에서 판매 가능한 일반의약품을 일부 확대하는 문제로 약사회의 반발이 거세다. 안전성 문제를 거론하지만 많은 국민들이 해외에서 경험했듯이 선진국에서는 일반의약품의 상당 품목을 마트에서 구매할 수 있다. 이들 선진국이 안전성을 무시한다는 말인가. 약사회의 기득권에 국민 편익이 침해되고 있는 것이다.

바이오산업은 한국이 잘할 수 있는 성장산업이다. 국내 의약품시장만 2016년 20조원을 넘어섰다. 그러나 판매관리비 비중이 30%가 넘는 비정상적인 영업행태로 1000개가 넘는 제약회사가 복제약을 생산하며 난립해 있는 상황에서 신약 하나당 수천억원의 R&D 투자가 필요한 바이오산업의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바이오산업 발전을 위해 의약품 유통구조를 개혁해야 하지만 기득권 앞에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육아와 관련해 가장 어려운 시기가 초등학교 입학할 때라고 한다. 오후 5~6시까지 어린이집을 다니던 아이가 오후 1시면 하교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초등학교 수업시간은 OECD 평균보다 적다. 그래서 최근 초등학교 수업시간을 연장하는 방안을 추진했으나 교육부가 교사들이 싫어한다는 이유로 반대했다고 한다. 대통령의 국공립 어린이집 및 초등학교 병설 유치원 확대, 사회서비스공단 신설 공약이 흔들리고 있다. 민간보육시설과 유치원들의 반발 때문이라 한다.

규제개혁이 화두다. 그러나 관료들은 자신들의 사전규제 권한을 일시적으로 유보할지언정 포기할 의사가 없다. 개방직의 확대 등 관료조직의 혁신은 행시 출신들의 기득권 앞에 늘 무력화되어왔다. 지역주의 정치구조의 기득권, 현역의원의 기득권 등 정치영역에서의 기득권은 철옹성 같다.

무엇보다 필자를 포함한 기성세대의 기득권은 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강력하다. 40대 중반의 안희정, 송영길 등이 시·도지사에 당선된 때가 2010년이다. 8년이 지난 지금 후보군을 보면 세월이 거꾸로 가는 느낌이다. 기관장 인선이 한창일 때 ‘언제 적 장관이냐’는 탄식이 관료들 사이에서 나오고, 참여정부 시절 30대 비서관, 40대 수석이 한때의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1987년 노동자대투쟁의 주역들이 이제 정년을 앞두고 정년 연장을 위해 싸우면서도 자식세대의 일자리를 만들기 위한 일자리 나누기에는 소극적이다.

기득권의 혁파 없이 변화와 혁신이 성공한 사례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없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기득권 혁파는 매우 위험하고, 성공하기 어려운 일이다. 기득권 혁파로 인해 잃을 이익은 직접적이고 분명해서 반대는 세력화되고 격렬한 반면, 이로 인해 새로운 기회와 이익을 얻을 국민은 잠재적이고, 지지는 심정적이기 때문이다. 다수의 국민이 지지하고, 기득권 혁파의 효과를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일부터 전략적으로 해야 한다. 분명한 것은 새로운 대한민국은 기득권 혁파 없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김기식 | 더미래연구소장·전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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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3 전국동시지방선거가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 지방선거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근간이자 동네민주주의를 실현시킬 축제다. 그리고 축제의 주인공은 유권자이다. 벌써부터 일선 선관위에서는 투표소·투표함 등을 점검하며 축제를 맞이할 준비가 한창이다.

하지만 과거를 돌아보면 지방선거는 축제라기보다는 전쟁에 가까웠다. 한 예로 2007년 경북 청도군수 재선거 당시, 후보자의 금품 살포 혐의로 52명이 구속되고, 1000여명이 불구속 입건됐다. 결국 이로 인해 주민 두 사람이 목숨을 끊었다. 이외에도 과열된 선거운동이 불러온 비극은 많다. 물론 유권자의 의식은 2007년 그 당시에 비해 높아졌다. 후보자와 유권자 간 금품을 주고받으면 안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단순히 돈을 주고받지 않는다고 해서 품격 있는 선거라고 볼 수 없다. 바람직한 선거는 우리의 삶을 성실히 대변할 대표자를 뽑는 것이다.

그런 후보자를 선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후보자의 ‘공약’을 바로 아는 것이다. 후보자의 이미지, 출신지역, 소속 정당 등이 아예 불필요하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역의 일꾼을 뽑는 선거에서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은 ‘공약’이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작은 참여에서 시작된다.

2월부터 선관위 홈페이지 등을 통해 유권자들이 후보자에게 공약을 제안하는 ‘우리동네 희망공약’을 운영할 예정이다. 또한 언론보도 등을 통해 모은 자료를 분석해 ‘공약지도’로 만들어 후보자와 유권자에게 제공할 계획이다.

까다로운 유권자가 품격 있는 정치를 만든다. 또한 품격 있는 정치가 우리 사회를 바꾼다. 공약을 꼼꼼히 따져보는 작은 과정이, 그리고 지역을 위해 정책을 제안하는 소소한 과정이 함께 모여 위대한 변화를 이끌어 낼 것이다. 오는 6월, 지방선거가 총성 없는 전쟁에서 함께 즐기는 축제가 되길 기대한다.

<윤석현 | 경북 칠곡군선관위 관리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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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정부가 비트코인으로 대표되는 가상통화에 대해 여러 규제책을 내놓고 있다. 최대 거래소 폐쇄까지 가는 강경책이다. 이에 대해 여러 인터넷 커뮤니티에선 정부가 검토하겠다고 한 방안이 적절한가에 대한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아직까지 검토 수준의 대책으로 확정된 바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놀라울 정도의 광풍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러 뉴스에서, 그리고 시사프로그램에서 다룰 정도로 가상통화는 이미 사람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다. 그리고 여러 유행어에 가까운 말들을 만들어 낼 정도로 젊은이들에겐 유행과 같은 양상이다. 큰돈을 벌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너도나도 투자하게 만들었다. 그 때문에 한국에서 같은 코인이 더 비싸게 팔리는 ‘김치 프리미엄’이라는 말이 생겼고, 이런 결과로 미국의 한 거래소는 가상통화 시황을 전할 때 한국의 데이터를 제외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투자와 투기는 구별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번 가상통화의 경우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도덕적 잣대만을 들이밀기는 힘들 수 있다. 하지만 거품이 꺼진 후를, 그리고 그 이후의 사회적 문제를 생각해야 한다. 정부가 극단적 방법까지 거론하지만, 규제가 현실적인 수준이 된다면, 오히려 투자에 대해서는 호재 아닐까.

분명 정상이 아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나도 큰돈을 벌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틀린 말이 아닐 수 있다. 다만, 이런 광풍은 경계해야 한다. 같다고 볼 수 없을지 모르지만 많은 사람들이 옆나라 일본의 버블 역시 영원히 꺼지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내 붕괴했고, 잃어버린 20년을 몰고 왔다. 정부 역시 그 부분을 우려하고 있다. 광풍 차단 시도는 옳은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문찬우 | 경기 하남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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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그마치 2400만명이 넘는다. 2017년 한 해에 해외여행을 떠난 한국인의 숫자이다. 해외여행을 할 만한 경제적 여유가 없는 사람도 적지 않고, 비행기를 탈 수 없는 영·유아나 노인 인구도 감안하면 2400만명은 인구 대비 엄청난 규모이다. 해외여행을 하는 사람 숫자로만 따진다면, 한때 국가의 요란한 구호였던 ‘세계화’라는 목표는 이미 초과 달성한 셈이다.

최초로 대서양과 태평양을 횡단했다는 마젤란은 길을 떠나기 전 비장한 유서를 남기기도 했다. 그럴 법도 하다. 항로를 개척하러 떠났던 배 5척 중 1척이 돌아오지 못하던 시절이다. 배 1척에 수백명의 선원이 올랐다면, 육지에 남아 있는 선원의 가족은 수천명에 이를 수도 있다. 떠나는 배의 숫자가 많아질수록 돌아오지 못한 사람과 떠난 사람을 기다리는 사람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돌아오지 않은 사람이 그 어느 도시보다 많았을 리스본에서 애조 깃든 창법이 특징인 파두가 등장한 건 우연은 아니다.

인천공항의 분위기는 대부분 밝다. 인천공항은 파두가 울려 퍼지기에 적당하지 않은 곳이다. 여행 가는 사람 특유의 명랑함이 있다. 여행객이 명랑하면 여행객으로 가득 찬 공항도 덩달아 명랑해진다.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는 운명이 지배하는 마젤란 시대의 항구는 다르다. 대체 돌아올 보장이 없음에도 마젤란 시대 때 사람들은 왜 배를 타고 떠났던 것일까? 비록 5척 중 1척이 돌아오지 못하는 위험한 여행이었지만, 만약 돌아오기만 한다면 배를 타고 떠난 사람들은 카지노의 잭팟에 버금갈 일확천금을 노릴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항해를 후원했던 스페인 왕궁과 마젤란이 맺은 계약서를 살펴보면 그가 유서까지 쓰고 항해를 떠난 이유를 알 수 있다. 마젤란은 귀환한다면 발견한 나라에서 얻어질 수입의 20분의 1을 자기 몫으로 챙길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6개 이상의 섬을 발견하면 그 섬의 3분의 1인 2개의 섬에 대해 마젤란은 특별권을 갖게 된다. 발견한 모든 육지와 섬에서 마젤란은 귀족 신분과 총독의 지위를 얻을 수 있고, 그 지위를 자녀에게도 상속할 수 있다. 그래서 마젤란은 유서까지 쓰고 항해를 떠났던 것이다. 마젤란은 그런 셈을 하며 위험을 무릅쓰고 바다 저 멀리로 떠났다지만, 대체 한 해 2400만명에 달하는 한국인이 해외여행을 떠나는 까닭은 무엇일까? 아마 그 이유는 여행객들이 들고온 가방의 크기와 색만큼이나 제각각일 것이다.

어떤 이에게 해외여행이란 한국에 대한 불만이 우회되어 ‘헬조선’으로부터의 일시적 탈출로 표현되는 중산층 징후일 수 있고, 어떤 이에겐 자식이 보내주는 생애 첫 호강 효도여행일 수도 있다. 가사노동에 지친 어떤 전업주부에게 해외여행은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는 “남이 해준 밥”을 삼시 세끼 먹을 수 있는 기회일 것이다. 퇴근 이후에도 심지어 주말에도 각종 업무 독촉과 지시에 시달리는 직장인에게 해외여행은 전화를 받지 않아도 되는 합당한 구실을 제공해 주는 소중한 기회일지도 모른다. 해외시찰을 구실 삼아 남의 돈으로 편안하게 여행을 떠나는 사람에게 해외여행은 자기 지위를 확인하고 헛기침할 수 있는 순간일 것이며, 1년을 꼬박 아르바이트하며 모은 청춘에게 해외여행은 남들 블로그를 보며 키워왔던 꿈이 실현되는 순간일 것이다. 어떤 이에게 해외여행은 텔레비전에서만 구경했던 리얼리티 쇼와 드라마의 현장을 내 눈으로 확인하는 기회일 것이며, 인생사진을 남겨 인스타그램의 스타가 될 수 있는 기회일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은 파워 여행 블로거의 글에서 읽은 맛집을 반드시 순례하겠다는 투지로 떠날 수도 있고, 어떤 이는 너도나도 다 가는 여행지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덜 알려진 장소를 혼자 보며 좋아하고 싶은 비밀스러운 묘미를 만끽하는 게 목적일 수 있다. 어떤 이에겐 해외여행의 참맛은 다름 아닌 면세품 쇼핑일 수 있고, 어떤 이는 이런 사람들을 경멸할 수도 있다.

지리적으로는 반도이지만, 대륙으로 가는 육로가 막혀 있는 한국은 사실상 섬이나 마찬가지다. 게다가 그 섬에서 해외로 나갈 수 있는 자유는 1989년 이전까지는 없었으니, 우리는 아주 오랜 기간 동안 우물 안 개구리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 이유가 무엇이든 좋다. 어쨌든 한 해에 24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각자의 이유로 한국이라는 섬에서 잠시 벗어나 해외여행을 떠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시인 김기림은 “세계는/나의 학교/여행이라는 과정에서/나는 수없는 신기로운 일을 배우는/유쾌한 소학생”이라고 했다. 김기림 시를 빌려 표현하자면 한 해 2400만명의 사람들이 지불하는 여행비용은 ‘세계라는 학교’에서 ‘신기로운 일’을 배우기 위해 치르는 수업료라 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오히려 해외여행을 통해 자국중심주의를 강화시키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우물 안 개구리를 벗어나는 혜안을 얻기도 한다.

때로 수업료는 돈가치를 하기도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어떤 수업료는 괜한 비용일 수도 있다. 한 해 2400만명이 넘는 사람이 치르는 수업료는 어떤 종류일까? 그리고 나의 수업료는?

<노명우 | 아주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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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황학동 도깨비시장을 돌아다니다가 헌책을 부려놓은 곳에서 누렇게 빛바랜 일기장을 찾아냈다. 1977년에 발간된 한 어린이 잡지의 2월호 특별 부록인 ‘학습일기장’에는 연필로 꾹꾹 눌러쓴 글씨가 빼곡했다. 겉표지는 떨어져 나가고, 떡제본 된 책등은 벌어져 나달대는 일기장이 어떻게 세상을 돌고 돌아 헌책 사이에 버젓이 끼어들어갔는지 알 수 없었다. 본래 이런 일기장의 숙명은 땅속에 파묻는 김장김치처럼 책상 서랍에서 묵혀졌다가 골마지 낀 묵은 김치 퍼버리듯 버려져 어느 고물상 한 구석에서 불리고 갈아져 사라지기 마련이다. 그리하여 아이는 어린 시절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왕년의 삶은 꽤 괜찮았다고 믿는 어른이 되는 것이다.

쪼그리고 앉아 건성으로 일기장을 들춰 보자 어디선가 달려온 가게 주인이 일기장 값을 두툼한 헌책보다 훨씬 비싸게 부르면서 말했다. 그런 건 어디서도 구할 수 없다고. 본래 남의 일기장을 구할 생각 따위는 없었던 나는 일기장 값을 치르고는 재빠르게 가방에 욱여넣었다. 주운 일기장을 판다는 것은 명백하게 불법 거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0여년 전 내 또래였을 아이의 일기장을 훔쳐보고 싶은 호기심을 털어버리긴 어려웠다. 그의 일기는 담임선생님이 서울로 새마을 강습을 받으러 가서 교무 선생님이 체육 수업을 했다는 4월 봄날부터 시작된다. 그는 수업 시간에 떠들어 혼난 일이며, 피리를 사달라고 했더니 “네 할 일에 충실하지도 않은 녀석이 뭘 사달라고 하냐?”며 퉁바리를 준 아버지 얘기를 솔직하게 적었다. 그러면서 그는 일기의 끝을 늘 반성과 다짐으로 마무리했다.

앞으로는 담임선생님이 없어도 공부를 잘하겠다거나 다음부터는 몸을 깨끗하게 하겠다거나, 보다 명랑한 생활을 하겠다던 아이는 어떻게 자랐을까? 그 아이는 자신의 다짐대로 성실하고 부지런하고 게다가 명랑한 어른이 되어서 지금도 밤마다 하루를 되돌아보면서 반성하는 걸까? 그러고 보니 나는 일기를 쓰지 않을뿐더러 내 잘못은 반성하지도 않으면서 남한테는 ‘네 할 일을 충실히 하라’는 잔소리를 쉽게 하는 뻔뻔한 어른이 되어 버렸다.

<김해원 |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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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기 시작 이틀째였다. 몇년 전, 미국 미주리 대학으로 언론 연수를 갔던 나는 오랜만의 캠퍼스 생활에 들떠 있었다. 점심을 먹고 강의실로 돌아가는 길에 어디에선가 함성 소리가 들려왔다. 콘서트라도 열리고 있는 건가 싶어 신이 나 뛰어갔는데, 학내 집회 현장이었다.

본관 앞 광장에 모인 대학원생 수백 명이 학교 당국을 향해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었다. 피켓에는 “학교 당국은 부끄러운 줄 알라” “대학원생을 위한 교수는 어디에 있는가”라고 쓰여 있었다. 특히 눈길을 끈 것은 집회 참석자 중 교직원 혹은 교수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는 점이었다. 그들은 진지하게 학생들의 발언을 경청했고, 구호에 맞춰 함께 함성을 지르기도 했다.

그날 저녁 지역 일간지 홈페이지에 톱으로 걸린 뉴스는 낮에 내가 목격했던 그 집회에 관한 소식이었다. 자세히 읽어보니 대학 당국이 대학원생들의 의료비 지원을 새 학기부터 갑작스럽게, 일방적으로 삭감한 것이 사태의 발단이었다. 기사에는 월세 등에 비해 학교의 지원금이 턱없이 부족해서 배우자가 투잡, 스리잡을 뛰며 겨우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석·박사생들의 사연이 소개됐다.

그러나 그 기사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날 집회에 동참했던 한 교수의 멘트였다. “내 연구실은 이들 덕에 굴러가고 있고, 내 강의실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것도 이들이다. 그리고 나는 이들 덕분에 정부로부터 (충분한) 의료비 혜택을 받고 있다. 그런데 정작 이들에 대한 학교 당국의 지원은 부족하다 못해 너무 모욕적이다.”

대학원생에 대한 착취는 한국에서나 미국에서나 똑같이 문제가 되고 있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역시 한국보다는 미국의 상황이 낫다고 생각했다. 과연 한국에서 학생들의 집회에 동참해 실명으로 신랄한 인터뷰를 해줄 교수가 얼마나 될까 생각해보면 말이다. 대학이 언제부턴가 이윤을 내기 위한 기관으로 전락하고, 학내 구성원 누구도 제대로 문제제기를 하지 못하는 한국의 대학 사회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모습이었다. 그런데 나를 더욱 놀라게 한 일은 그 후에 일어났다.

저널리즘 스쿨에서 청강을 하고 있던 취재 실습 시간이었다. 그날 수업의 주제는 ‘당국자가 대답을 회피할 때 어떻게 진실에 접근해야 하는가’였다. 수업을 듣는 학생 중에는 의료비 삭감 사태를 취재하기 위해 며칠 전 대학 총장을 직접 인터뷰한 대학 신문 기자가 있었다. 교수는 그와 총장의 인터뷰 녹취 파일을 강의실에 앉아있는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크게 틀었다. “의료비 지원 삭감 방침을 누가 주도적으로 결정한 것이냐”는 학생 기자의 질문에, 총장은 계속해서 애매모호한 대답을 하며 어물쩍 대화 주제를 바꾸려 했다.

그러니까 그 교수는 ‘책임을 회피하는 능구렁이 같은 당국자’의 실례를 보여주기 위해, 자신이 재직 중인 대학 총장을 살아있는 교재로 삼은 것이다. 그는 수업을 마치기 전, “총장의 이메일을 정보공개 청구해 그가 의료비 지원 삭감 정책을 누구와 사전에 상의했는지 알아내는 것도 좋은 접근 방법”이라며 “혹시 다른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언제라도 나에게 메일을 보내달라”고 당부했다. (미국에서는 공립대 총장 이메일도 정보공개 대상이 된다.)

집단행동이 계속 확대될 조짐을 보이자 결국 미주리대 총장은 의료비 삭감 정책을 전면 백지화하고, 자신의 소통 노력이 부족했던 데 대해 공식 사과했다. 교수가 학생들의 편에서 함께 행동하고, 자신의 전문성과 지식을 보태 학생들의 권리 보장에 힘을 실어주는 모습. 어찌 보면 그 당연한 일이 놀라움을 넘어 신선한 문화적 충격으로까지 다가왔던 것은 내가 ‘갑질 논란’으로 얼룩진 한국의 대학사회에 너무 익숙해진 탓인 듯했다.

최근 한국에 대학원생 노동조합이 처음으로 결성됐다. “정해진 근무시간 없이 수시로 호출당하고, 각종 폭언과 성희롱 등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그러면서도 ‘학생’이라는 이유로 정당한 노동대가를 받지 못하는 착취의 구조”를 타파하기 위해서다. 다음달 24일 공식 출범하는 대학원생 노조는 앞으로 대학원생들의 연구·노동환경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한편,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각 대학 대학원총학생회와 공동대응에 나설 방침이라고 한다.

용기있게 첫발을 뗀 이들의 싸움이 외롭지 않길 바라고, 이들의 목소리가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로 끝나지 않길 바란다. 다행히 노조 설립 소식이 알려진 뒤 이메일, 페이스북 등에서 가입 문의가 잇따르고, 졸업생·교수의 응원 메시지도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구슬아 대학원생 노조위원장이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던 것처럼 이 문제는 “‘대학원생 대 교수’라는 단순한 프레임으로 설명할 수 없는 구조적 문제”이다. 대학원생 노조 출범이 학생과 교수, 그리고 학교 당국이 평등한 주체로서 서로를 존중하는 대학 ‘민주주의’의 새로운 시작이 됐으면 한다.

<정유진 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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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세종병원에서 29일 현재 39명의 인명이 희생된 ‘도돌이표 참사’의 근본원인을 더듬어갈수록 가슴이 답답해진다. 이런 대형화재가 나면 책임소재를 철저히 따져야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경찰은 일단 불법증축이 거듭됐고, 스프링클러가 없었으며, 불이 난 1층에는 방화문이 없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하지만 현단계에서는 일반~요양병동 사이의 연결통로 가림막 정도가 화재에 영향을 끼친 ‘불법행위’인 것으로 파악했을 뿐이다.

예컨대 바닥면적 224.69㎡인 세종병원은 소방법상 스프링클러를 의무설치해야 할 시설이 아니었다. 또 화재 때 자동으로 창문이 열리는 배연창과 유독가스를 뽑아내고 신선한 공기를 넣어주는 제연설비도 설치할 의무가 없었다. 현행법상 ‘6층 이상이거나 바닥면적 1000㎡ 이상’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 1인당 4.3㎡의 면적만 확보하면 되므로 세종병원이 20인실 병실을 둔 것이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쉽게 불이 붙는 성질 때문에 화재를 키운 드라이비트 외장재를 금지하는 규정도 1992년 신축된 세종병원에는 적용할 수 없다. 불에 잘 타지 않는 소재로 시공해야 한다는 규정이 도입된 것은 2015년이다.

거동이 불편한 환자가 있는 병원의 경우 더욱 엄격한 기준이 필요하다. 그러나 현행법은 건물특성과 용도를 고려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층·면적만 기준으로 삼아왔다. 사고 때마다 호들갑을 떨며 대책을 마련하고 개정법을 만들었지만 한결같이 ‘땜질’ 처방이었다. 2010년 노인 10명이 사망한 경북 포항 인덕 노인요양원 화재 이후 노인·장애인 요양시설 등에 스프링클러 설치가 의무화됐다. 그러나 치료 목적의 요양병원은 빠졌다. 2014년 전남 장성의 요양병원 화재로 24명이 사망한 뒤 부랴부랴 요양병원에까지 소급 적용됐다. 그러나 그때도 역시 세종병원과 같은 1000여곳의 중소 일반병원은 대상에서 제외됐다.

그때그때 땜질 처방만 내리다가 이번 참사를 겪게 된 것이다. 반복된 비극에서 보듯 화재는 크기와 층수에 좌우되지 않는다. 도리어 낡고 오래된 건물에서 주로 일어난다. 병원만이 아니다. 더 이상 면적 몇 ㎡ 이상이니, 몇 층 이상이니 하는 잣대로 시민의 생명을 저울질하는 어리석음을 되풀이해서는 안된다. 비용을 핑계로 안전의 빗장을 풀어주고, 문제가 날 때마다 찔금찔끔 보수한 대가가 끔찍한 참사로 이어질 수 있다는 교훈을 가슴 깊이 새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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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동계올림픽이 임박한 최근 미국의 대북태도가 심상치 않다.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은 지난 23일 “올림픽 대화만으론 대단히 중요한 문제들을 다 다루지 못한다는 사실을 외면해선 안된다”고 했고, 허버트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도 26일 “북한의 술책에 속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미국은 24일 북한 원유공업성 등을 새롭게 제재 리스트에 올렸다. 삼지연관현악단 단장 현송월이 1박2일간 방남하면서 뉴스의 중심이 되자 백악관의 고위 관료가 “김정은이 평창 올림픽의 메시지를 납치(hijack)하는 것을 심각하게 우려한다”고 말했다는 외신 보도도 있었다.

남북이 2년여 만에 대화의 문을 열어 평창 올림픽의 평화적 개최에 힘을 모으려는 상황에서 미국이 보이고 있는 태도는 당혹스럽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평창 올림픽 개막 하루 전인 2월8일 예정된 건군절 70주년 열병식을 미국의 대북 불신의 근거로 든다. 물론 올림픽 전날 북한이 대대적인 군사 퍼레이드를 벌이며 핵무력을 과시하려 한다면 비판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열병식과 핵실험·미사일 발사는 성격이 다르다. 국제사회는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북한의 도발로 간주해왔다. 지난해 11월29일 ‘화성-15형’ 발사 이후 북한은 일체의 도발을 중단한 상태다. 이 점에 주목하지 않은 채 열병식 자체만을 놓고 도발로 간주하는 것은 과한 일이다. 미국이 올림픽 개회 전후로 핵추진 항공모함 칼빈슨함 등 주요 전략자산을 한반도 지역에 순환배치하는 것에 북한이 반발하고 있는 점도 함께 놓고 생각해봐야 한다.

올림픽 대화만으론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는 매티스의 발언은 지극히 당연한 말이다. 누구보다도 문재인 정부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 한·미 훈련 재개 전까지 북·미대화를 유도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미국의 대북 불신이 크다는 점은 이해하지만 지금은 인내를 보여줄 시기다. 올림픽을 고리로 북핵 문제 해결을 모색해 보려고 한국 정부가 노심초사하고 있는 상황에서 ‘어차피 북한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식으로 위협발언을 쏟아내는 것은 동맹국을 존중하지 않는 처사다.

북한도 올림픽 기간 중 한·미 연합훈련을 연기하기로 한 결정에 성의를 보여야 한다. 대대적인 열병식이 가져올 파장을 깊이 고려해야 한다. 북핵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인내가 임계치에 육박해 있음을 인식하고 현명하게 처신할 것을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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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29일 공공기관의 채용비리 특별점검 결과와 제도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지난해 11월 범정부 공공기관 채용비리 특별대책본부와 채용비리 신고센터를 설치해 운영한 결과다. 정부는 점검 결과 1190개 공공기관·기타공직유관단체 중 946곳에서 모두 4788건의 지적사항을 적발했다고 밝혔다. 이 중 중앙정부 산하 공공기관 275곳 가운데 257곳이 채용비리에 연루됐다. 비리에 엮이지 않은 공공기관을 찾기 힘들 정도다.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정부는 채용비리에 연루된 공공기관 임직원 197명을 업무에서 배제하고, 기관장 8명을 즉각 해임했다고 밝혔다. 또 부정청탁이나 지시, 서류조작, 금품수수 등 심각한 수준의 비리 109건은 수사 의뢰하고, 255건은 징계 또는 문책을 요구하기로 했다.

공정성이 생명인 공공기관이 채용비리의 온상이었다. 이런 결과는 공공기관의 채용비리가 뿌리 깊은 적폐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비리 관련자들은 청탁받은 인물의 채용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돈·백·연줄이 있으면 공공기관 합격증을 받았다. 공공기관에서 후안무치의 작태가 버젓이 벌어진 것이다. 한국수출입은행은 청탁받은 지원자에게 유리하도록 추천 배수를 자의적으로 조작해 특정인을 채용했다. 동남권 원자력의학원은 업무 관련 자격증이 없는 직원자녀를 채용했으며, 한국원자력의학원은 인사위원회에서 특정인의 채용이 부결되자 위원회를 다시 열어 합격시켰다.

또 한국석유관리원은 합격자를 사전에 내정하고 면접점수를 합격권에 들도록 조작했고, 근로복지공단은 지역 유력인사의 자녀를 채용하기 위해 가점 대상자에게 가점을 주지 않고 탈락시켰다. 이뿐이 아니다. 특정인을 합격자로 정해놓고 나머지를 들러리로 세우는가 하면, 서류도 내지 않은 고위인사의 자녀를 특별채용하는 등 비리는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이런 비리가 관행이 돼 아무런 죄의식 없이 자행됐다고 하니 말문이 막힌다.

공공기관은 취업준비생들에게 ‘신의 직장’으로 불리는 좋은 일자리다. 청년들이 공공기관에 매달리는 이유는 배경이 없어도 공정한 경쟁을 통해 취업의 높은 문을 넘을 수 있다는 희망과 기대 때문이다. 그런 이들에게 공공기관의 채용비리는 국가의 배신이 아닐 수 없다. 정부는 부정합격자는 퇴출하고 합격이 뒤바뀐 경우는 구제하겠다고 한다. 또 투명한 채용문화 정착을 위해 ‘원 스트라이크 아웃’의 무관용 원칙을 적용하겠다고 했다. 정부는 여기에서 그칠 것이 아니다. 특혜와 반칙, 편법이 발붙이지 못하도록 채용시스템의 제도적인 보완에도 나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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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일 신년사에서 한반도 비핵화에 대해 언급했다. 26년 전 남북이 공동으로 선언한 한반도 비핵화는 결코 양보할 수 없는 대한민국의 기본입장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의 북한 비핵화 언급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인 작년 4월에 우리가 주도하여 핵이 없는 한반도를 만들겠다고 천명했다. 대통령 취임 후 7월에 발표한 ‘문재인 정부 국정 5개년 계획’에도 비핵화 관련한 내용들이 기술되어 있다. 제재와 대화 등 모든 수단을 활용하여 2020년까지 완전한 핵폐기 합의를 이끌어 내겠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이러한 속사정을 북한이 모를 리가 없다. 남북 고위급회담 종결회의(1·9)에서 북측 대표는 “남측 언론에서 지금 북남 고위급회담에서 비핵화 문제를 가지고 회담을 진행하고 있다는 얼토당토않은 여론이 확산하고 있다”고 어깃장을 놓았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북측이) 상호존중과 이해의 정신에서 잘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하다”고 비껴갔다. 비핵화는 핵이라는 김정은 정권의 악성 종양을 제거하려는 고난도 작업이지 정권 자체를 없애는 일은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역시 북핵을 그냥 둘 리가 만무하다. 남북 고위급회담이 끝나자마자 백악관은 “(남북 회담) 다음 단계로 우리가 보고 싶은 건 최우선 목표인 한반도 비핵화”라고 강조했다. 렉스 틸러슨 국무부 장관도 북한 핵·미사일 프로그램을 논의하기 위해 16일 캐나다 밴쿠버에서 개최된 20개국 외교장관 회의에서 ‘동결 대 동결’ 방식에는 반대임을 분명히 했다. 틸러슨과 함께 참석한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은 북한과의 전쟁 계획도 있다고 했다. 비핵화를 목표로 북한을 최대한 압박하겠다는 것이다. 비핵화를 두고 처리해야 할 문제들의 선후, 경중, 완급을 정하는 데 한·미 양국은 여전히 화음을 조율 중이다.

사실 북한 비핵화를 누가, 언제, 어떤 방식으로 달성하느냐는 ‘비핵화 알고리즘’을 짜기란 쉽지 않다. 먼저, 비핵화 회담 주체와 관련하여 북한은 ‘남한은 빠져 있어라’라는 입장이다. 비핵화와 연계되는 북·미 간 평화협정과 수교 문제 등에서 남한이 무슨 결정권이 있느냐는 태도다. 북은 핵무기를 가진 미국과 직접 담판을 통해 이를 해결하겠다는 호기를 부리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반대로 한국이 주도권을 쥐되 미·중·일·러가 모두 참여하는 평화협정을 체결하자는 것이다. 문 대통령의 ‘한반도 운전자론’이다. 한국이 운전대를 제대로 잡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엎어진 냄비처럼 놓여있는 북·미대화가 제대로 작동되어야 함에도 ‘화염과 분노’의 트럼프는 북한에 최대의 압박을 견지하고 있다. 평창 이후가 우려되는 이유다.

둘째, 비핵화 시점이다. 한국과 미국이 계획하고 있는 북한 비핵화 시간표가 일치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문재인 정부는 완전한 북핵 폐기를 목표로 북한이 비핵화의 길로 나오도록 다각적으로 노력하겠다는 것이다. 남북대화와 교류협력 등 여건 조성이 불가피하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이다. 반면에 트럼프는 북핵이 실질적으로 미국 안보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되면 제거를 지체하지 않겠다는 강경한 태도다. 따라서 트럼프와 문 대통령이 서로 비핵화 시계를 맞추는 것이 급선무이다.

마지막으로, 비핵화 방식이다. 한·미 모두 현재까지는 외교적 해법을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외교적 셈법이 다르다. 어떠한 이유로도 한반도에서 또 다른 전쟁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문 대통령의 확고한 입장과는 달리 외교적 방법이 무위로 끝날 경우 군사적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핵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 트럼프의 계산이다. 트럼프는 자신의 핵 위협이 결국은 통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는 듯하다.

평창 ‘겨울잔치’는 끝나게 되어있다. 봄에는 미뤄졌던 한·미 군사훈련도 재개될 것이다. 남은 숙제는 오랜 시간 주머니 속에 있던 영수증처럼 구겨진 남북관계와 북·미관계를 어떻게 펴느냐이다. 때론 후퇴와 우회(迂廻)가 필요하겠지만 최종 목표는 핵이 없는 한반도 만들기다. 쉽다고는 말하지 않겠다. 한·미 양국이 평창 너머의 시간과 공간을 읽는 비핵화 알고리즘을 정교하게 다듬어야 할 때다.

<이병철 | 평화협력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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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제7대 대법원장에 취임한 이영섭 대법원장은 퇴임사에서 ‘회한과 오욕의 나날’이라는 말을 남기면서 사법부(司法府)를 사법부(司法部)라고 썼다. 그는 짧은 민주화 뒤 들어선 신군부의 압력에 견디다 못해 취임 2년 만에 사임하면서 사법부를 행정부의 일개 부처로 취급한 것에 대한 수모와 굴욕을 자조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40여년이 지난 지금 그 사법부는 어떠한가. 그때는 정권의 외풍에 휘둘려 사법부와 법관의 독립이 침해되었다면 지금은 사법부 내부로부터의 독립이 훼손되었다는 점이 다를 뿐 여전히 독립성이 확고하지 못함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인다.

믿고 싶지 않지만 청와대의 수석비서관과 통화했다는 보도가 사실이라면 대법원장이 아니라 스스로 사법부 장관으로 처신한 것이다. 엄선된 엘리트들이 근무하는 법원행정처에서 법관은 관료적 위계질서 속에서 상관의 지시를 따르고 충성하는 사법행정 공무원이었다. 위법한 지시를 내린 상사나 그의 명령이니 어쩔 수 없다며 받아들인 이들은 스스로 법관이기를 포기한 직권남용의 공범자들이었다. 소위 ‘사법부 블랙리스트’와 사법행정권 남용에 대한 조사보고서 속의 법원행정처는 상명하복으로 움직이는 행정부처와 같았다.

법원 내 특정 연구모임에 가입해 활동하거나 대법원장의 사법정책을 비판한 판사의 성향과 동향을 기록한 문건은 지난 정부에서 작성한 문화예술계 인사의 블랙리스트와 다를 바 없다. 일부 보수언론은 진보적이거나 반행정처적 법관목록을 보고도 블랙리스트 의혹의 실체가 없다고 주장한다. 추가조사위원회의 조사결과 대다수 사법부 구성원들이 상상하기 힘든 문건들이 드러나자 대법원장은 대국민 사과를 하면서 “사법행정이라는 이름으로 권한 없이 법관들의 동향을 파악하고 성향에 따라 분류하거나, 재판이 재판 외의 요소에 의하여 영향을 받는 것으로 오해받을 만한 일”이라고 정의했다. 법관 개인을 감시하고 그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여 자신들이 원하는 유형이나 부류로 분류하는 것 자체가 차별이고 인권침해이자 불법행위다. 사법행정이라는 이름으로 대법원장이나 법원행정처의 방침에 거스르는 법관들에 대한 성향과 행적을 조사하고 이를 바탕으로 대응방안을 마련하도록 지시한 행위는 분명 직권남용이다.

대법원장의 대국민 사과와 셀프조사·개혁 약속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여러 건의 고발로 검찰수사가 불가피한 가운데 초유의 사태가 벌어질지도 모른다. 1995년 인천지법 집달관 비리사건을 시작으로 대법원장은 2006년과 2016년 현직 판사 금품수수 의혹에 국민 앞에 머리 숙여 사과했었다. 거의 10년 주기인데 지금은 그때와는 다르다. 법원공무원과 법관 개인의 비리였지만 지금은 사법부 내의 조직적 사법행정권 남용이다. 그래서 더 철저한 진상조사가 필요한 것이다.

아직 열어보지 못한 파일이 수백개에 달한다. 파일명만으로도 의심이 가는 것들이다. 법원행정처 심의관의 컴퓨터는 공용물이자 국가소유다. 공적 업무수행에 제공되는 컴퓨터다. 그 컴퓨터에 작성·저장된 파일은 모두 공적 문서다. 그래서 조사에 작성자의 동의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판사 개인이 작성했으므로 개인정보라는 주장은 공과 사의 구별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사용자가 사적으로 작성한 파일이 있다면 반납할 때 삭제했어야 하고 혹시 남아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제외하고 조사하는 것이므로 사생활 침해는 발생하지 않는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권한남용이 구체적으로 의심되는 상황에서 긴급히 대처할 필요가 있는 경우 업무용 컴퓨터 조사를 상당한 범위로 한정한다면 적법한 조사다. 강제개봉도 아니고 강제조사도 아니다.

단언컨대 고질의 뿌리는 관료화된 법원행정처와 제왕적 대법원장에게 있다. 법원행정처는 법원의 인사·예산·사법정책을 다룬다. 고등법원 부장판사제도를 폐지하고 고법판사와 지법판사로 법관인사를 이원화하면 인사업무는 최소화된다. 사법정책은 대법원 산하 사법정책연구원의 일이다. 예산은 현직 법관이 아니라 전문가가 담당해야 한다. 그러면 법원행정처는 할 일이 대폭 줄게 된다. 인사가 축소되면 대법원장 권한도 줄어든다. 대법원장을 대통령이 임명하지 않고 대법관회의에서 호선하면 대통령 눈치를 살피지 않아도 된다. 법원장도 각급 법원의 법관회의에서 호선해서 사법행정을 맡기면 법원장 승진인사에 목맬 이유도 사라진다. 이처럼 특단의 개혁방안이어야 거꾸로 가는 사법을 되돌려 바로 세울 수 있다. 대법원장이 국민 앞에 머리 숙여 사과하는 일이 반복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태훈 |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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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들어 첫 손님이 사무실에 오시어 책 한 권을 주셨다. 봉투에서 나오는 순간 그 책의 표지가 빵끗 인사를 했다. 거개의 표지들이 저를 좀 보아달라고 요란하게 비명을 지르기가 십상인데, 그저 최소한의 정보만을 담은 날씬한 책이었다. 김지연 사진 산문, <감자꽃>, 열화당. 오십에 사진을 시작해서 일흔에 책을 묶는다는 저자의 글과 작품은 여기에 함부로 옮기기가 저어할 만큼 애잔하고 솔깃했다. 표제작인 ‘감자꽃’의 이런 대목에서는 고개가 지면으로 구부러지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진안에서 계남정미소를 공동체박물관으로 운영하면서 사귄 마을 친구를 한 명 대 보라고 한다면 나는 서슴없이 장금숙 할머니를 들고 나온다. 당시 팔십대 중반인 그이는 이빨이 다 빠지고 허리가 기역 자로 구부러져 있어 휴우- 가락을 몇 번이나 쳐야 빤히 건너다보이는 자기 밭에서 우리 수돗가까지 올 수 있었다.”

표지 사진이 자꾸 눈에 밟혔다. 지하의 뿌리를 실하게 하느라 따 버리는 꽃이 하도 예뻐서 부케처럼 만들어 드렸다는 감자꽃. 꽃도 꽃이지만 꽃을 들고 있는 니은 자처럼 구부러진 할머니의 손이 오래된 생각 하나를 촉발시켰다. 서강대학교에서 도교철학을 가르치는 친구가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고향의 어머니를 생각하면 늘 목이 멘다. 평생 농사일을 하신 당신의 손은 호미처럼 구부러져 있다.” 그 말은 금방 전염이 되어 목구멍 너머에서 짠한 마음이 불어나오도록 풍구질을 했었다. 오늘은 수제비 반죽을 해놓고 닳은 숟가락으로 감자껍질을 벗기던 어릴 적 내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리게도 하였다.

편안하다는 말은 참으로 편안하다. 이는 등받이 의자처럼 바닥에 앉아 있는 두 개의 니은 받침 덕분이 아닐까.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른다는 말이 있다지만 나는 그동안 감자 앞에서 꽃을 몰랐다. 막걸리에 감자전만 좋아했지 이쁘고 고운 감자꽃을 제대로 알아주지 못했다. 안간힘을 다해 사라지는 것의 흔적을 붙드는 <감자꽃> 앞에서 우리 어머니들의 팔 끝에 평생 달려 있다가 이제야 겨우 조금 편안해진 그 호미 같은 손이 그리는 풍경에 대하여 오래오래 생각했다. 감자, 가지과의 여러해살이풀. (사진ⓒ 김지연)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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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올림픽의 목표는 전쟁 중지였다. 기원전 776년에 열린 첫번째 올림픽도 늘 전쟁 상태였던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들의 휴전이 목적이었다. 이들은 올림피아 지역을 중립 및 불가침 지역으로 규정했고, 올림픽 기간 동안 적대행위 중지를 선포했다. 스포츠라는 ‘유사 전쟁’을 통해 진짜 전쟁을 피한 셈이다. 열흘 뒤 개막하는 평창 동계올림픽도 유사한 과정을 밟았다. 한국과 미국이 연합군사훈련을 중지했고, 북한은 핵·미사일 도발을 두 달 가까이 멈췄다. 유엔도 올림픽휴전을 결의해 힘을 보탰다.

그런데 정작 한국 내부에서는 격렬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자유한국당과 보수 언론 등 보수 세력이 북한 참가와 관련해 사사건건 트집을 잡고 있다. 이들은 평창 올림픽 개회식 남북 공동입장과 한반도기 사용, 여자 하키 남북단일팀 구성을 문제 삼는다. 남한이 어렵게 유치한 평창 올림픽이 북한 체제 선전장이 되게 됐다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평창 올림픽을 나치의 히틀러가 정치 선전을 위해 개최한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 비유한 한국당 의원도 있다. 북한의 평창 올림픽 참가를 전면 재검토하라는 요구도 나왔다. 건전한 비판은커녕 악담과 저주에 가깝다. 보수 야권의 공세는 문재인 정부를 겨냥한 것이지만 평창 역시 상처받는 것을 피할 수 없다. 정부를 공격할 수만 있다면 평창 올림픽이 망해도 괜찮다는 불순한 심리가 깔려 있다.

국제체육대회의 남북 공동입장과 한반도기 사용, 단일팀은 모두 보수 정권이 시작했다. 첫번째 단일팀인 남북탁구팀이 구성된 것도 노태우 정권 시절인 1991년 일본 지바 세계수권대회에서다. 당시 단일팀이 ‘만리장성’ 중국을 꺾고 우승하자 보수 언론은 “남북단일팀이 전 세계에 큰 감동을 안겼다”고 대서특필했다. 사실 평창 올림픽 여자 하키 단일팀을 가능케 한 평창올림픽특별법도 한국당의 전신인 새누리당이 주도했다. 이 밖에 박근혜 정권 시절 열린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한반도기를 흔들며 북한 여자축구를 응원한 것이나 북한이 인천 아시안게임에 응원단을 보내는 데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자 전세기를 북한에 보내자고 한 것도 새누리당이었다. 그랬던 보수 세력이 지금 와서 평창 올림픽의 북한 참가에 대해 마치 한국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단일팀이 북한의 지령을 받는 것처럼 몰아가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영화 <나는 네가 지난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를 떠올리게 한다. 집단기억상실증에라도 걸린 것 같다.

하지만 보수 세력의 이런 증세는 기억상실증과 거리가 있다. 기억상실증은 어떤 이유로 인간의 뇌가 기억을 인출해 내지 못하는 상태를 말한다. 그런데 보수 세력은 과거를 기억하지 못한다기보다 의도적으로 부정하고 있다. 기억을 인출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정치 도의를 인출하지 않는 셈이다. 이는 단순한 자기기만을 넘어 평창 올림픽을 망치고 한반도 평화마저 흔드는 위험한 행태다. 이런 정치, 이런 정치가는 국가의 발목을 잡고 퇴행시킬 수밖에 없다.

소집단의 논리에 매몰돼 평창 올림픽 북한 참가의 본질을 놓쳐서는 안된다. 청와대는 어제 평창 올림픽 엔트리 마감 결과 92개국에서 2900여명이 참가할 것이라며 이는 동계올림픽 사상 최대 규모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만일 북한이 불참하고 핵·미사일 위협을 계속했다면 이런 성황을 이루기는커녕 세계가 참가를 꺼리는 올림픽으로 전락했을 가능성이 크다. 북핵 위기로 참가를 주저하던 유럽 국가들이 북한 참가가 확정되자 참가 쪽으로 돌아선 사실도 잘 알려져 있다. 니키 헤일리 유엔주재 미국대사조차 한때 안전을 문제 삼아 참가 유보방침을 거론한 것을 기억할 것이다. 평창 올림픽의 평화올림픽 개최 목표는 이미 절반 이상 성공한 셈이다.

북핵 사태가 전쟁위기로 치닫고 있는 지금 대북 대응이 과거와 달라져야 한다는 보수 세력의 주장은 일리 있다. 하지만 그것이 북한의 평창 올림픽 참가에 어깃장을 놓는 것이라면 동의할 수 없다. 보수 세력은 한반도 전쟁 위기란 말을 입에 달고 살지만 정작 언행은 그런 인식과 거리가 있다. 현송월 국빈대접 논란만 해도 그렇다. 세상에 버스와 열차에 태워 이동시키는 국빈도 있는가. 본질을 외면하고 지엽말단에 목숨을 걸면 문제제기 의도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김정은의 선의를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를 통하지 않고는 북핵 해결 논의를 한 발자국도 진전시킬 수 없는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김정은을 증오하고 거부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고대 그리스 국가들은 끊임없이 서로를 의심했다. 그런 그들을 협상장으로 끌어낸 것은 전쟁으로 인해 공멸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절박감이었다. 역사의 교훈은 아직도 유효하다.

<조호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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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부터 내 페이스북 타임라인에서 자주 보이던 게시물이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아니, 그런 것 같다. 사실 그게 뭐였는지 금방 떠오르지 않는다. 엄지손가락으로 쉴 새 없이, 무심결에, 의미 없이 밀어 넘기던 것들이기 때문이다.

몇 개를 곰곰이 꼽아보니 ‘테이스티’라는 ‘먹방’ 영상이 대표적이다. 테이스티는 온라인 매체 버즈피드가 2015년 7월에 만든 요리·음식 채널이다. 재료를 손질해 조리하고 떠먹기 직전까지 과정을 빠르게 편집해 영상으로 보여준다. 먹음직스럽고 화려하다. 요리를 좋아하는 내 취향을 페이스북의 섬세한 알고리즘은 틀림없이 잡아냈을 것이다. 지하철에서, 잠시 일하다 말고, 자기 전 누워서 먹방 영상만 하루에 수십개를 소비했다.

2년 전쯤 집수리를 해야 해 인테리어를 집중적으로 검색했던 기록도 페이스북에 포착됐을 것이다. 인테리어가 예쁜 남의 집 사진을 모아서 보여주는 게시물도 내 뉴스피드의 단골이었다. 그리고 하는 일 때문에 ‘좋아요’와 ‘팔로우’를 해둔 미디어의 수많은 뉴스들.

그런 게시물들이 내 타임라인에서 대거 자취를 감췄다. 페이스북이 게시물 정책을 바꾼 결과다. 지난 11일 페이스북은 “친구와 가족들이 올린 게시물이 더 우선적으로 보이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마크 저커버그 최고경영자(CEO)는 페이스북에 “기업, 미디어의 게시물이 개인적인 공간에 넘쳐나고 있다는 피드백을 받고 있다”며 “정책이 바뀌면 사람들이 페이스북에서 보내는 시간은 줄어들지 몰라도 시간을 더 값지게 쓰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페이스북 사용자는 지난해 20억명을 넘어섰다. 전 세계 인터넷을 쓰는 사람 3명 중 2명은 페이스북을 쓴다. ‘지구인 플랫폼’이 된 만큼 문제도 많아지고 책임도 무거워졌다. 페이스북은 가짜뉴스와 확증편향의 논란 한복판에 선 지 오래다. 지난해에는 러시아의 미국 대선개입이 수많은 페이스북 가짜계정을 통해 이뤄진 것으로 드러나 트위터, 구글과 함께 의회 청문회에 불려 나오는 홍역을 치렀다.

페이스북 라이브가 자살이나 살인을 생중계하는 도구로 쓰이면서 콘텐츠를 어떻게 잘 걸러낼지도 페이스북의 책임이 됐다. 광고와 영상, 기사 말고 볼 게 없다는 비판도 많아졌다. 페이스북 내부의 표현을 빌려 “3초마다 가슴 뛰는” 대신 무의미하고 수동적인 엄지 스크롤만 거듭되는 현상이 생겼다. 페이스북의 전직 임원이었던 차마스 팔리하피티야는 지난해 12월 CNBC와의 인터뷰에서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가 “사회가 작동하는 구조를 망가뜨리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페이스북의 이번 선언은 친구들과 ‘연결’되는 재미가 신선하고 쏠쏠하던 그때로, 사용자들의 참여가 활발하던 그때로 되돌리겠다는 얘기다. 이미 거대한 공적 플랫폼으로 자리잡은 듯한 공간이 바뀔지는 알 수 없다.

지난해 8월 퓨리서치 조사를 보면 미국인의 67%가 페이스북으로 뉴스를 본다. 비슷한 시기 국내에서 소셜미디어 이용 현황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소셜미디어 중 개인의 일상이나 관심사를 공유하는 데 초점을 맞춘 인스타그램만 성장세를 보였다.

고객과 독자들에게 노출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기업과 미디어는 비상이 걸렸다. 어떻게 해야 하나라도 더 많이 잘 보이게 할 것인지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관련 분석과 주문도 넘쳐난다.

미디어 종사자로 발등에 불이 떨어졌지만 대책을 생각할수록 계속 본질에 질문을 던지게 된다. 우리는 지금 왜 소셜미디어를 하는가. 내가 소셜미디어에서 보고 싶고, 하고 싶은 것은 뭘까. 소통과 연결, 정보 민주화와 집단지성의 표상이었던 소셜미디어는 지금도 그러한가. 소셜미디어의 본질이 바뀌었다면 그건 무엇이고 무엇이어야 하나.

<이인숙 뉴콘텐츠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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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의 우리말 중 하나가 비망록(備忘錄)입니다. 말 그대로 잊어버렸을 때를 대비한 기록이죠. 기억이란 한계가 있고 시간이 흐를수록 뭉텅뭉텅 잊어버리며, 심지어 다른 정보들과 섞여 전혀 엉뚱한 기억을 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만큼 기억은 믿을 바 못 되고 왜곡되기 십상입니다. 더불어 누구나 가끔 기발한 착상을 하지만 떠오른 것을 바로 적어두는 이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나중에 ‘아, 뭐였더라’ 머리 움켜쥐고 이마 찧어도 기억에서 퇴색된 아이디어는 오리무중 어딘가에서 끝내 찾지 못합니다.

하지만 잊어버렸다고 완전히 잊은 건 또 아닙니다. 끄적여 놓은 메모를 들여다보면 ‘아! 그랬지!’ 바로 당시처럼 기억나니까요. 이렇듯 메모는 기억의 타래를 풀어주는 소중한 실마리입니다. 기억은 과거를 배신해도 기록은 배신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메모를 참 안합니다. 온갖 자기계발서에서 메모의 힘이 성공의 열쇠라고 강조해도 메모하는 습관을 기르지 못합니다. 게다가 뭔가 또박또박 순서대로 논리정연하게 적어 놓으려는 강박이 있어서, 단정히 메모하려는 사이 당시의 생생한 느낌은 어느덧 두루뭉술하게 현장에서 멀어집니다.

메모는 데생이 아니라 크로키입니다. 휘갈겨야 메모입니다. 괴발개발이라도 나만 알아보면 충분합니다. 굳이 다이어리가 아니더라도 주머니에 꾸겨 둔 전단지도 좋고 손바닥도 좋고 스마트폰 녹음도 좋습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야 메모가 됩니다.

이렇게까지 말씀드려도 끄적임의 가치를 또 잊어버리시겠지요. 그래서 옛날에도 이를 강조했던 속담을 일러드립니다. -기억하지 말고 메모하세요. “똑똑한 머리보다 얼떨떨한 문서가 낫다.”

역사의 승자는 기록을 남긴 쪽이고 삶의 승기는 꾸준히 메모하는 사람이 움켜쥡니다. 적자생존. 적는 자가 살아남습니다.

<김승용 |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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