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통화에 투자해서 몇 년치 연봉에 육박하는 수익을 얻었다는 지인들의 얘기를 들을 때마다 조바심을 느꼈다. 내가 혹시 일생일대의 기회를 놓쳐버린 것은 아닐까?

수년간 저축하면 집을 살 수 있다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팽배했고, 매입한 주택 가격은 나날이 올라 소유주의 자산 증식에 크게 기여했던 시기가 멀지 않은 과거에 있었다고 한다. 나는 그런 시대에 살아본 적 없으므로 구전설화처럼 느껴질 뿐이다. 현재 젊은 세대는 밥 먹고 월세 내고 학자금 대출 갚고 남은, 그 한 줌의 돈을 다달이 저축해도 삶이 나아질 것이라는 보장을 얻기 어렵다.

나아지기는커녕, 2년 동안 저축해도 집주인이 올려달라는 보증금이나 임대료를 충당하지 못해 더 열악한 조건의 공간으로 밀려날 가능성도 크다.

물론 부모가 재력가라면 얘기가 다르다. 그리고 한국 재력가 대다수는 매입한 부동산 가격 상승 덕을 봤다. 고통스러운 일상을 사는 청년에게 ‘왜 내 부모는 그 시대에 그 아파트 안 샀을까…’와 같은 원망의 마음이 생길 수 있는 이유다. 이런 현실인식은 내게 (만에 하나 자식을 낳는다면) 머리 굵어진 자식이 ‘왜 엄마는 그때 비트코인 안 샀어?’라고 원망하는 모습을 상상하게끔 하는데….

목돈을 마련할 수 있는, 일생일대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인식과 조바심. 가상통화 투자자 300만명 중 절반이 20~30대 청년층으로 집계된 배경일 것이다. 나 역시 그 정서를 공유했고, 많은 유혹과 번뇌에 휩싸였다. 그러나 나는 ‘존버(X나 버티기)’하지 못할 인간이라는 걸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발을 담그는 순간 느낄 더 큰 번뇌와 고통, 불안이 뻔히 예상되기에 가상통화 거래에 대한 마음을 접었다. 왜 그때 가상통화 안 샀냐고 원망할 자식을 안 낳으면 될 것 아닌가!

가끔 스스로를 돌아본다. 재테크에 무심한 내가 너무 대책 없이, 바보같이 사는 걸까? 그러나 좀 바보여도 애가 착하면… 아니, 부단히 새로운 시도를 하고, 스스로의 몸을 움직이며 우직하게 살면, 적어도 먹고사는 데 큰 어려움과 불안을 겪지 않아야 좋은 사회일 거라 믿는다. 내가 ‘재테크의 귀재’로 변모하는 것보다 한국 사회가 바뀌는 게 옳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구성원이 불안과 고통의 굴레 속에서 개인 자산을 증식하려 애쓰지 않아도, ‘일생일대의 기회’를 쟁취하지 않더라도 그럭저럭 먹고살 수 있고, 꼬박꼬박 공공보험과 세금을 납부하면 사회안전망에 충분히 보호받을 수 있는 사회로.

다행히 이번 정부의 기조는 내 바람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다만 신년사에 부동산 정책이 강조되지 않은 점은 아쉬웠다. 젊은 세대가 가진 희망의 불씨를 꺼뜨리는 것은 무엇보다 부동산을 통한 착취 구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형편없는 시공 마감과 불법개조 및 증축의 결과인 좁고 허접한 집에 살면서 다달이 집주인에게 적지 않은 돈을 바치는 경험은 굴욕감과 함께 영혼 깊숙이 상처를 남긴다. 일터에서 보람을 찾기 어려운 현실과 폭력적인 상사의 존재는 돈만 있으면 직장 그만둘 거라 이 갈게 만드는데, 때려치우고 영세 자영업자가 되어도 부동산이 문제다.

건물 가치를 높이는 데에는 공간을 가꾸며 실질적으로 활동한 이들의 역할이 결정적인데, 그동안 법체계는 소유자의 권익 보호를 우선시해왔다. 세입자의 노동가치는 건물주의 자본소득으로 환원되며, 한 번 세입자는 영원한 세입자로 건물주의 배를 불리는데 봉사하는 현실을 공고히 하는 구조.

가상통화 거래에 과몰입하는 청년이 많은 것은 분명 사회적으로 우려되는 일이고, 나 역시 적절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다만 가상통화 거래에 몰입하는 청년들을 그저 한심하게 여기며 비난만 하는 기성세대를 보면 실소가 나오는 것이다.

‘코인충’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무언가를 비난하는 그 뜨거운 마음은 착취 구조 및 희망 없는 현실을 향하도록 하자. 문재인 정부와 여당에 기대를 걸고 있다. 특히 다주택자 보유세 인상과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의 조속한 입법을 기대하고, 지지한다.

높은 지지율의 정권이니만큼 개혁의 보폭을 넓히기를 ‘희망’한다.

최서윤 <불만의 품격>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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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흥미롭게 본 광고가 있다. 프로강사이자 프로자취생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LG유플러스의 사물인터넷 광고이다. 누군가의 사연을 바탕으로 했다는 이 광고가 특히 나의 관심을 끈 것은 자취생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이야기 구성 때문만이 아니다.

광고에서 사물인터넷은 타인과의 관계 단절로 사람이 경험하는 쓸쓸함과 허전함, 보살핌의 욕구를 채워주는 기술로 등장한다. 등장인물은 “남들보다 훨씬 일찍 시작해서 모두가 잠든 후에 끝”나는 하루를 보낸 후 어둡고 추운 집으로 들어간다. 몸이 아프지만 딱히 도움을 요청할 사람은 없다. 냉기가 싸늘하고 “쉴 곳이 못” 되는 집을 바꿔준 것은 다름 아닌 사물인터넷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집에 오는 시간에 맞춰 전등과 보일러를 켜고 “나를 맞이할 준비”를 하는 집은 비로소 “밝고 따뜻”한 곳이 된다. 일상적이고 친밀한 대화의 대상 또한 사람이 아닌 인공지능 스피커다. 광고 속 주인공이 “보살핌을 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선택한 것은 가족도, 애인도, 친구도 아닌 기계였던 것이다.

사람 대신 기계를 선택한 것은 광고 속 인물이 간절히 바라던 바는 아닐 것이다. 병원에 갈 시간도 없이 직장 생활을 하는 이에게, 혹은 그런 일자리라도 얻고 싶은 이에게 사람과 깊은 관계를 맺는 것은 애초에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이 광고가 씁쓸한 뒷맛을 남기는 것은 사람이 필요한 자리를 기계라는 차선책이 대신하기 때문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산 광고가 건네는, 사람이 없어도 괜찮을 것이라는 조용한 위로가 따뜻하게만 들리지는 않는 까닭이다.

우리는 사람 없는 미래를 꿈꾸는 것일까?

2040년을 예측한 사람들은 미래에는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 사라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운전하는 사람’이 그중 하나다. 2012년 국제전기전자공학회(IEEE)의 전문가들은 2040년이 되면 사람들은 더 이상 운전면허가 필요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도로 위를 다니는 차량의 75%는 운전자 없이 스스로 운행하는 자율주행차량이 차지할 것이다.

“도로 위를 달리는 모든 차에 사람이 없어지는 때에” 차량의 센서, 교차로의 신호등, 도로 위 카메라는 서로 효과적으로 의사소통을 할 것이다. 사람 없는 도로에 교통사고와 교통체증은 더 이상 없을 것이다. 이때 기계는 사람의 차선책이 아니다.

운전자 없는(driverless) 자동차가 있다면 ‘운전하는 사람’은 없어져야 하는 것이다.

사람 없는 미래가 언제나 희망적으로 그려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꿈꾸지 않는 미래 속 2040년에는 정말 ‘사람’이 없을 것이라는 냉철한 예측도 있다. 2018년 새해 첫날 농민신문은 기획기사에서 ‘사람 없는’ 2040년의 어느 농촌마을의 모습을 묘사했다. “태어나는 아기는 없고, 젊은이는 도시로 떠나고, 노인은 세상을 떠나 인구가 채워질 여력이 없는” 기초지방자치단체 10곳 중 4곳은 사람이 없어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 “읍내 유일한 병원이 문을 닫고 농협들은 군 소재지에 있는 큰 농협으로 통합”된 마을에는 파출소도, 소방서지구대도, 면사무소도, 그리고 “읍내 내 유일한 자장면집도” 결국 문을 닫고 만다. “사람 소리가 사라지고 밥 냄새가 자취를 감췄으니 마을이 온전할 리 없다.” 한 마디로 “폐허다”.

하나 둘 죽거나 떠난 사람들 대신 노인들 곁을 지키는 것은 다름 아닌 기계였다. 바보상자 텔레비전만큼은 왁자지껄하게 켜진 채로 남겨진 노인들에게 “낙이고 벗”이 되어 주었다. 그러니 눈을 맞추고 목소리에 반응하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인공지능 기계만이 사람들에게 타인의 빈자리를 채워주는 것은 아닐 것이다.

“휴지 한 뭉치, 생선 한 토막이라도 사려면 차로 한 시간은 나가야” 하는 노인들의 마을에 사물인터넷이나 자율주행차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인가? 사람 없는 곳에 기계를 보내려는 시도는 종종 있어 왔다. 원격의료가 대표적인 예다. 섬이나 산간 오지, 군부대, 원양 선박, 교정시설 등 의사들이 가지 않으려는 의료 사각지대는 기계들이 대신 가기에 적합한 곳으로 여겨졌다.

2014년 시작한 원격의료 시범사업은 사람 없는 마을의 환자들에게 혈압계나 혈당계, 그리고 전송 장치를 쥐여주고 원격 모니터링 시스템을 앞에 둔 도시의 의사들과 닿게 하려는 시도였다.

그러나 사람 없는 곳으로 보내진 기계들은 사람 없이는 수월하게 작동할 수 없는 기계의 숙명 앞에 모순에 빠진다. 사람을 대신할 기계가 그것을 설치하고 작동하고 고치는 사람을 필요로 한다는 것은 블랙코미디 같은 사실이다. 원격의료를 위해서는 환자가 측정하여 전송한 데이터를 저장하고 관리하는 동시에 현장에서 원격 시스템의 작동을 도와줄 인력이 필요했다.

사람이 갈 수 없는 재난 환경을 대비한 최첨단 로봇도 예외는 아니다. 사람들의 것으로 여겨진 성화 봉송의 영광스러운 역할을 맡은 재난로봇 ‘휴보’가 잠시 균형을 잃고 뒤로 넘어졌을 때 그 등을 받쳐 다시 일으켜세운 것은 로봇을 작동하고 곁에서 지켜보던 엔지니어들이었다. 그러니 사람 없는 마을로 간 똑똑한 기계들이 어떤 모습으로 남게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광고 속 세상에서 나와 돌아본 우리 사회에는 기계보다 환영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물가 상승의 주범이 되어 자판기로 대체되어 버린 최저임금 받는 사람들, 고속 기차를 향해 고개 숙여 인사하는 청소하는 사람들이 그들이다.

자취생의 가족이 된 사물인터넷과 노인의 가족이 된 텔레비전은 사람 없는 미래를 꿈꾸는 것인가? 우리가 꿈꾸는 사람 없는 미래에 ‘사람’은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있는가?

<강연실 과학잡지 에피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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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이에게서 내 꿈을 꾸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세초에 전해듣는 꿈 이야기는 무언가 예지몽의 기운이 느껴진다. 그래서 묻기가 조심스러워진다. 무언가 불길하거나 경고를 내포하는 꿈이었을까봐. 그런 꿈이었다면 소식을 전하지도 않았으려나? 그런 꿈이어서 대비를 하라고 알려주려는 것일까? 차마 묻지 못하는 심정을 알았는지 그쪽에서 먼저 알려준다. 좋은 꿈이었다고. 기분 좋은 꿈. 아주 밝고 활기차고 화사한 꿈. 꿈을 깨고 나서도 한참을 행복한 기운이었다고 했다. 듣는 나도 덩달아 따뜻해졌다. 행복한 공기 속에 더 머물고 싶어 더 자세히, 꿈의 세부를 청하고 또 청했다. 그가 꾼 내 꿈이 꼭, 내가 꾼 내 꿈 같았다. 그 꿈을 사겠노라 했다. 꿈을 꾼 건 당신이지만, 꿈의 주인공은 나였으니, 그 꿈에 내 지분도 좀 있지 않겠느냐, 그러니 나에게 넘겨라 그 꿈. 거절당했다. 꿈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꿈대로 이루어진 날 자신의 역할을 그대로 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래서 기분 좋게 그 꿈을 도로 넘겼다. 꿈에서처럼 내가 화사하게 행복해지는 날 너도 끼워줄게 하면서. 애초에 내 것이었던 양, 선심 쓰듯 호탕하게.

그런데 왜 요즘의 내 잠엔 기분 좋은 꿈이 도통 들어오지 않는지 궁금해졌다. 요즘엔 거의 꿈을 꾸지 않는, 기절과도 같은 잠을 잔다. 한밤의 지친 몸이 원하는 것은 오로지 잠. 기분 좋은 꿈 같은 건 염두에 없는 듯하다. 꿈을 꾸지 않는 것인지 기억을 못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개중에 기억에 남는 꿈이라고는 기분이 썩 좋지 않은 꿈뿐이다. 예를 들면 여전히 앞치마를 두르고 주방에서 종종거리고 있거나, 갑오징어나 문어를 구한다고 어느 항구를 헤매고 다니다가 결국 구하지 못하는 꿈 같은 것. 그런 꿈은 왜 또 기억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지. 정말이지 기분이 나쁘다. 꿈에서까지 앞치마라니. 꿈이라도 다른 걸 꾸고 싶단 말이다. 아무래도 베개를 바꿔야 할 모양이야, 하며 애먼 메밀베개를 집어던진다. 이참에 목 디스크 방지용 베개를 사야겠어, 하면서.

꿈이 현실의 연장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예전엔 꿈에서 주로 소설을 썼다. 쓰다 멈춘 부분에서 다시 시작되는 꿈. 내가 소설의 주인공이 되어서 이야기를 이어가기도 하고, 소설 쓰는 내가 이어서 계속 소설을 쓰기도 한다. 그래 바로 이거야. 이러면 될 것을 왜 그리 애를 태웠나. 막힌 부분이 펑 뚫리고 짙은 안개가 확 사라지고. 깨어나 그대로 옮겨 적기만 하면 대작이 나올 것이 분명해. 단어 하나 문장 한 줄이 너무나 위대한 꿈의 소설. 꿈에서조차 꿈인 걸 알고,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고 되뇌고 되뇌던. 그러나 깨어나 노트북을 열면 내가 썼던 문장들은 어김없이 사라져 있고, 기억하기로 했던 것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 엄혹한 현실. 그런 꿈을 꾸었다는 사실조차 기억에서 아예 지워버릴 것이지. 기억해내려 할수록 점점 더 멀어지는 헛꿈. 꿈속의 문장을 기억해낼 능력만 있었다면 지금쯤 나는. 허망하고 애달프지만 또 아주 싫지만은 않은 꿈들이었다.

진짜 기분이 좋아져서 자꾸 꾸고 싶은 꿈도 있다. 하늘을 나는 꿈 같은 것. 먼저 밝히자면 그 꿈은 아침마다 수영을 하던 때에 많이 꾸었다. 손을 뻗는 대로 발을 구르는 대로, 접영으로 배영으로 하늘을 날았다. 가만히 누워 내려다보는 세상이 포근하게 자유로웠다. 꿈에서 실컷 날고 난 다음이면 몸이 참 개운했다. 다시 수영을 시작하면 그 기분 좋은 꿈을 다시 꿀 확률이 높아질 텐데, 꿈의 유영을 위해 잠을 줄이고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뭐, 다시 수영을 시작하면 하늘을 나는 꿈은 꿀 수 있을 테니, 그 꿈이 그리운 날엔 언제든지. 꺼내 먹기만 하면 될 비장의 꿀단지, 잠시 다락방에 숨겨둬도 될 일이다.

한때 꿈을 조절할 수 있다 꿈꾸던 때도 있었다. 쌍꺼풀을 만들기 위해 눈꺼풀에 스카치테이프를 붙이는 어린애처럼. 손금의 운명을 바꾸겠다고 샤프로 손바닥에 선을 내내 긋고 앉은 어떤 사람처럼. 잠들기 전에 내내 똥을 생각했더랬다. 마지막으로 화장실에 가서 똥을 싸보려고 애를 써보거나, 똥이 마려운 걸 일부러 참고 잠을 자거나. 들어차지도 않은 똥을 싸려고 애를 쓴다고 똥이 만들어질 일은 없지만, 그렇게 애타게 똥을 생각하다보면 그 애절함이 꿈으로 이어질 테니까. 똥꿈을 꾸면 꼭 좋은 일이 생겼으니까. 좋은 일이 생길 때마다 꼭 똥꿈이 먼저 있었으니까. 다시 한번 똥꿈의 요행을 누려보자는 심산이었다.

이왕에 나온 꿈 얘기, 그 똥꿈 얘기를 해 보자. 방 안에서 엉덩이를 까고 앉아 똥을 쌌다. 개운한 느낌도 느낌이었지만 돌아서 본 그 모양이 참으로 예뻤다. 만화풍의 똥덩어리. 하도 예뻐서 손을 댔다. 만지는 느낌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반가운 소식이 들려올 것 같았다. 그때 나는 모 신문사에 소설을 투고했던 참이었다. 당선을 예감했다. 예감의 근거라는 게 투고작에 대한 자신감이 아니라 꿈에 나온 똥이라니 싶겠지만, 사실 그만한 꿈이 없다 싶었다. 돼지든 용이든 뭐든, 길몽의 범주에 들어갈 만한 그 모든 것들이 총출동했더라도 그런 예감은 없었을 것이다. 소설이란 것은 세상에 토해놓는 토사물이 아니라, 세상을 먹고 제 몸에서 소화시킨 다음 가까스로 싸놓은 똥덩어리여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똥을 투고하고 똥꿈을 꾸었으니 그보다 좋은 꿈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 믿음이 있었다.

어쨌거나 그 후로 나는 소설가로 살기 시작했고, 두어 번 더 똥꿈을 꾸었고, 이제는 똥꿈이 아니라 다른 어떤 꿈도 잘 꾸지 않는다. 애써 똥을 참고 잠든 날, 결국 자다 깨서 화장실을 가느라 곤한 잠을 망쳐버린 이후, 꿈을 설계하겠다는 허망한 시도 따위도 하지 않게 되었다. 그래도 가끔 꿈을 위한 꿈을 꾼다. 꿈에서라도 그리운 이가 찾아주기를, 내 꿈을 꾸었다던 그 사람처럼 내가 대신 그이의 행복한 일상을 꿈꿔주기를. 꿈인 줄 알면서도 함께 화사해지기를. 꿈에서 깬 다음, 그 다디단 기운을 온몸에 감은 채, 오랜만에 기별을 넣을 수 있기를. 네 꿈을 꾸었어, 정말 좋은 꿈이었어, 너에게 좋은 일이 생길 거 같아, 하지만 그 꿈을 팔지는 않을 거야, 그 꿈의 주인은 나니까, 말할 수 있기를.

<천운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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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내륙이나 러시아만 가도 평생 바다를 보지 못하고 죽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감사하게도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고, 마음먹으면 달려서라도 찾아가 바다를 껴안을 수 있다. 갯벌이 짓무른 눈시울 같은 남해와 서해, 망망대해 거치른 동해가 생김이 달라 신기한 지점이다. 나는 남녘 어촌에서 나고 자라 남해에 익숙해진 사람이다. 동해는 사철 깊고 사나운데 남해는 폭풍우 말고는 온순한 편이다. 이태준의 단편소설 <바다>는 북쪽 사람들의 어촌 풍경이 담겨 있다. 사투리가 생경하고도 재미지다. “야! 과연” “무스게라능야?” “멀기(함북 방언 물결. 아주 크고 거친 파도)말이오, 멀기. 과연 기차당이.” “무시거?” “멀기 말임둥. 과연 무섭지 앙이오?” 추위가 예사 추위가 아니고 바람도 곱빼기로 으르렁거릴 북녘에선 바다의 사나움이 대단할 것 같기도 하다.

어촌마을은 흩어져 지내는 산촌과는 사뭇 다른 모양새다. 옹기종기 모여 사는 동네의 촌장이 마을은 물론이고 폭풍우까지 다스린다. 용왕의 화를 재우고 바치는 쌀이나 목각 음경은 무조건 돈을 바치라는 서양신 신앙보다 관대하고 너그럽다. “무엇하러 당신들은 사제들을 임명하는가? 이미 당신들 가운데 사제들이 있는데.” 장 그르니에의 글을 읽다 밑줄을 친 부분이 맞는 소리렷다. 바람이 불어 횟감이 좋다는 어디로 따라갔는데, 오도독 씹은 회 한 점에 멀리서 오는 봄맛을 느꼈다. 동네의 촌장으로 보이는 횟집 주인은 일행과 알고 지내는 사이였는데, 담뿍담뿍 밑반찬들을 내다 주었다. 일본의 쩨쩨한 구두쇠 영감 ‘겐자히 아끼네’와는 ‘굉장히’ 다른 인심이었다. 아베 총리 또한 하는 말마다 아니꼽살스럽고 짠내가 진동한다. 입맛을 위해 그만 다른 생각을 하기로 하고, “가즈아~”·

갈무리를 하려는데 눈이 퍽퍽 내리기 시작했다. 바다에 갔던 배들이 뒷거둠질도 다 못하고 부두로 돌아오는 순간이었다. 여복도 많고 어복도 많은 촌장은 ‘멀기’를 뚫고 배를 모는 아들을 기다렸다. 부디 몸집만 한 방어를 잡아다주기를. 여들없는 아비와 달리 번개 같고 싹싹하던 그 아들을 나도 덩달아 기다리고 있었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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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북대화가 복원됐지만 한반도의 평화는 북·미 협상이 최종 보증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올 들어 남북대화를 지지하고 북·미 대화에도 전향적인 듯하지만 낙관은 금물이다. 미국은 지난 25년간 북핵협상 실패의 책임을 북한으로 돌린다. 북한이 최근 몇 년간 핵능력 고도화에 집착하면서 국제사회도 이런 인식이 굳어졌다.

북핵사태의 가장 큰 책임은 물론 북한에 있다. 하지만 지난 25년을 돌이켜보면 과연 북한에만 책임을 물어야 하는지 의문이 들게 하는 장면들이 적지 않다. 적어도 북한의 1차 핵실험이 있던 2006년 이전만 놓고 본다면 미국의 책임이 크다. 이 시기에 ‘제네바 합의’와 ‘9·19 합의’ 같은 북핵해법의 ‘완결판’이 등장했지만 그때마다 신뢰를 깨면서 파국을 유발한 건 미국 쪽이었다.

북한과 미국 간의 핵대화는 1988년 미국의 정찰위성이 북한 영변 원자로 부근에 건설 중인 재처리 시설을 확인하면서 시작됐다. 핵무기 제조를 서두를 것이라는 관측과 달리 북한은 1991년부터 3년간 핵 재처리를 중단했고, 핵원료량과 핵시설 리스트를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요구수준 이상으로 제출했다. 핵문제를 북·미협상의 지렛대로 쓰기 위해서였다. 이 기간 중 김용순 노동당 국제비서는 미국에 “미군이 통일 후에도 한반도에 주둔할 수 있다”며 관계 정상화를 제안했다.

미국은 제의를 수용하는 대신 IAEA의 특별사찰 수용을 요구하며 압박했다.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선언으로 맞서면서 긴장이 고조되자 북·미 간 협상의 문이 열렸다. 1993년 말 고위급회담에서 미국이 팀스피리트 훈련을 중단하고, 북한은 핵사찰을 수용하는 ‘동시행동’에 합의했지만 미국은 얼마 안 가 ‘사찰이 완료돼야 훈련을 중단한다’고 말을 바꿨다. 이에 북한은 1994년 5월 영변 원자로에서 핵연료봉을 반출하는 ‘벼랑 끝 전술’로 대응했다. 극대화된 위기는 전 미국 대통령 지미 카터가 6월 방북해 김일성 주석과 만나면서 진정됐고, 그해 10월 북한 핵동결과 북·미관계 정상화를 맞바꾸는 북핵해법의 마그나카르타(대헌장) ‘제네바 합의’가 체결됐다. 뉴욕타임스 논설위원을 지낸 한반도 전문가 레온 시걸이 북핵 초기국면을 지켜보면서 내린 평가는 눈여겨볼 만하다. “(미 행정부의 다수가) 북한의 폭탄제조를 종식시키기 위해서는 강압이 필요하다고 믿었다. 그러나 북한은 강압정책이 시행되지 않을 때만 핵무장을 포기하는 조치를 취했다.”(저서 <미국은 협력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김일성 사후 북한붕괴론이 유포되자 미국은 합의 이행에 늑장을 부렸다. 빌 클린턴 행정부의 뒤를 이은 조지 부시 행정부는 북한을 ‘악의 축’이라 부르고, 북한이 ‘고농축우라늄(HEU)’ 핵무기를 개발한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제네바 합의를 파국으로 몰고 갔다. 이후 북핵문제는 ‘6자 회담’ 테이블로 옮겨갔고, 2년여간의 협상 끝에 2005년 9월19일 북한의 핵포기 및 북·미관계 정상화 합의가 이뤄졌다. 그러나 합의 직후 미국 재무부가 북한의 달러위조 증거를 찾는다며 방코델타아시아 은행의 북한계좌를 동결하면서 합의는 잉크도 마르기 전에 좌초했고, 북한은 1년 뒤 핵실험을 강행한다.

1차 핵실험을 분석한 결과 핵폭탄 재료는 고농축우라늄이 아닌 플루토늄이었다. 제네바 합의가 파기되자 동결된 원자로를 다시 돌려 생산한 것으로 추정된다. ‘고농축우라늄 핵개발’ 주장은 슬그머니 사라졌다. 달러위조 의혹도 1년 넘게 증거를 찾지 못하자 미국은 북한 자금을 돌려줬다. 미국의 불충분한 의혹제기가 한반도 평화정착의 금쪽같은 기회를 두 번이나 날려버렸다.

핵실험을 분수령으로 북핵사태는 더 복잡해졌다. 이번엔 북한이 신뢰를 깼고, 한국 보수정권도 걸림돌이 됐다. 북·미 평화협정과 비핵화를 맞바꾸자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 초기의 구상은 이명박 정부의 반대로 좌절됐고, 북한은 2012년 2·29 합의를 얼마 안 가 깨버렸다. 이후 오바마는 북핵을 방관했다.

김정은 시대의 북한은 핵무력에 더 집착하고 있다. 트럼프의 미국도 북한에 불신이 커 접점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핵과 안전보장을 맞바꾸는 북핵해법의 기본틀은 25년 전과 동일하다.

북·미 협상에서 동맹국이자 당사국인 한국의 입장과 역할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하다. 한국 여론도 협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대북 유화정책이 핵능력을 키웠다’는 팩트 없는 담론이 여전히 횡행하는 것은 유감스럽다. 북핵을 감싸고 있는 오해의 껍질을 벗겨내기 위해 ‘팩트체크’를 제대로 해봐야 할 시점이 됐다.


<서의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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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국가대표>는 2009년 여름에 개봉했다. 주인공 밥(하정우 분)은 어릴 때 미국으로 입양됐다. 엄마를 찾기 위해 한국에 와 국가대표가 됐다. 태극마크를 단 건, 아파트가 필요해서다. 금메달을 따면 아파트가 생긴다고 믿었다. 귀화해 차헌태로 이름을 바꾼 밥은 “그러니깐 엄마, 조금만 기다려. 내가 올림픽 나가서 내가 메달 따가지고 내가 아파트 사가지고 내가 갈 테니깐, 무조건 기다리고 있어”라고 목놓아 외쳤다. 소년 가장 강칠구(김지석 분)는 할머니와 동생을 돌봐야 했다. 금메달을 따면 군대를 안 가도 된다. 1차 시기에서 다리를 다쳤다. 대신 경기에 나선 동생 봉구(이재응 분)가 주저하자 뺨을 때리며 외쳤다. “뛰어, 이 새끼야. 니가 뛰어야 내가 군대를 안 갈 거 아냐!”

영화 <국가대표>

영화의 배경은 스키점프다. 건물 20층 높이에서 출발해 아무런 도구 없이, 양발에 신은 스키에 의지해 하늘을 난다. 스키점프 센터에 따라 나는 길이는 달라지지만 남자 라지 힐 종목 세계 최고 기록은 250m를 넘는다. 하늘을 나는 시간은 8초에 육박한다. 라이트 형제가 자신들의 첫 비행기로 난 시간은 12초, 거리는 36m였다.

글라이더의 날개 역할을 하는 스키는 크고 길수록 유리하다. 중력에 반하는 종목이기 때문에 몸무게는 가벼워야 유리하다. 1998년 일본 나가노 동계올림픽 때 일본 대표팀은 가벼운 체중과 긴 스키로 금메달 2개, 은메달, 동메달 1개씩을 땄다. 선수들은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몸무게를 줄였다. 국제보건기구(WHO)가 규정한 건강한 체질량지수(BMI)에 한참 모자라는 선수들이 속출했다. 스키점프는 멀리 나는 정도를 겨루는 종목이지만, 점점 줄어드는 몸무게는 선수들의 건강을 위협했다. 국제스키연맹은 몸무게를 제한하는 규정을 만들었다. 선수가 사용할 수 있는 스키의 최대 길이는 신장의 145%다. 대신 최대 길이 스키를 사용하려면 BMI(몸무게/키의 제곱) 지수가 21 이상이어야 한다. BMI가 0.125 모자랄 때마다 사용 가능한 최대 스키 길이가 0.5%포인트씩 줄어든다.

20층 높이에서 뛰어내리는 종목이기 때문에 안전을 위해서는 착지자세가 중요하다. 다리를 살짝 벌리고 한쪽 무릎을 구부리면서 착지하는 자세가 가장 충격을 덜 받는다. 오스트리아의 지역 이름을 따서 ‘텔레마크 착지자세’라고 부른다. 착지자세를 아예 규칙으로 정했다. 다리를 지나치게 넓게 벌리거나 무릎을 제대로 구부리지 않으면 감점 대상이다. BMI에 따른 스키 길이 제한과 마찬가지로 선수의 안전을 앞세운 규칙이다.

스포츠의 규칙은 대개 해당 기술을 장려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피겨는 고난도 점프에 높은 점수를 부여한다. 야구가 투수의 어깨·팔꿈치를 보호하기 위해 최대 구속을 제한할 수 있을까. 스키점프는 누가 멀리 나느냐를 겨루는 종목이지만,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규칙으로 만들어 제한했다. 더 나은 결과를 위해 안전은 스스로 지키라고 내버려두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경쟁은 제한이 없다. 욕망은 미덕이고, 노력은 의무다. 건강과 안전은 스스로 극복해야 할 대상이다. 최저임금 인상의 취지를 위협하는 것은 법이 눈감고 있는 무시무시한 재산권과 그에 따른 임대료다. 비트코인 열풍 속에 “위험은 각자가 책임질 몫이니 내버려두라”는 목소리는 더욱 섬찟하다.

영화 <국가대표>에서 주인공들은 이렇게 말했다. “나한테 기대하지 마요. 나도 대한민국한테 기대하는 거 없으니까”라고. “말했잖아요, 찢어버리고 싶다고. 대한민국”이라고. 희뿌연 하늘 아래 살고 있는 많은 이들의 마음이 크게 다르지 않다.

머지않은 올림픽을 통해, 금메달의 환호가 아니라, 건강과 안전이 더 중요하다고 여기는 스포츠 정신이 조금 더 큰 울림을 갖길 바라는 건 지나친 기대일까.

<이용균 ㅣ 스포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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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는 종종 다쳐서 돌아왔다. 첫날부터 야산으로 나들이를 갔다가 밤송이에 손바닥을 찔려 돌아왔는데 이런 일에 능숙한 어린이집 선생님이 핀셋과 바늘로 가시 대부분을 뽑아주었다. 그렇다 해도 눈으로 보기 어려운 작은 가시 두어 개는 피부과에서 처치를 받아야 했다. 덩굴에 쓸려 자잘한 상처를 안고 돌아오는 날도 있었고 때로는 우리 아이가 다른 아이를 넘어뜨려 그 아이의 치료에 필요한 소소한 약품들을 사주어야 하는 날도 있었다.

다행히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만큼 크게 다친 적은 없지만 지난가을의 일은 아직도 생생하다. 가족들과 어울려 야외음악회에 간 날이었다. 잔디밭에 자리를 깔고 앉아 음악회를 관람하는데 아이는 신이 나서 내 등과 머리에 올라타고 박수를 치고 노래를 따라 불렀다. 두 손목을 잡고 얼러주는데 아이가 갑자기 팔이 아프다며 얼굴을 찌푸렸다. 아이는 왼손으로 오른손목을 살짝 붙잡고 있었다. 아무래도 오른쪽 손목에 문제가 생긴 듯했다. 하필이면 그 자리를 모기에 물려 손목이 부은 건지 모기 물린 자국이란 그런 건지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건드리면 아프다고는 했으나 울거나 떼를 쓰지는 않아서 괜찮으려니 했으나 처형네에 도착해 두어 시간이 지나도 똑같은 자세로 손목을 어루만지기에 안되겠다 싶어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을 옮겨 다니는 우여곡절 끝에 아이가 손목을 다친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오른쪽 팔꿈치가 탈골한 거였다. 의사는 아이의 팔을 붙잡고 간단하게 팔꿈치뼈를 맞춰주었다. 아이에게 물으니 괜찮다고 했다. 이제 아프지 않다고 했다. 인대 손상이나 골절과 같은 심각한 상태가 아니어서 마음이 놓였고 방금까지도 얼굴을 찌푸렸던 아이가 환하게 웃어 안심이 되었다.

그러나 그날 이후로 나는 아이의 그 손 모양이 눈에 어른거렸다. 오른쪽 손을 달래기 위해 왼손을 살풋 얹은 듯한 모양새였고 아이에게는 그것이야말로 다른 무엇보다 위로가 되어주는 것 같았다. 오른손을 달래는 왼손. 스스로를 달래는 아이. 거기에는 비장하다고도 할 법한 무언가가 있었는데 이처럼 우리는 오래전부터 결국 자신을 위로할 수 있는 최선의 혹은 최소의 방법은 자신에게 기대는 것임을, 우리가 살아가며 겪는 고통과 불안을 견디는 일이 우리 자신에게 속한다는 걸, 설령 부모라 해도 그다음일 수밖에 없다는 걸 보여주는 듯했다. 돌아보니 나도 어린 시절에 무던히도 다쳐서 집에 돌아갔다. 손바닥, 무릎, 정강이가 까져서 돌아오기 일쑤였고 십여마리 벌에 쏘여 돌아와 부모를 깜짝 놀라게 한 적도 있었다. 나이를 먹을수록 그런 일은 드물어졌고 어른이 되어서는 그런 일은 거의 없게 되었다. 그리고 대신 마음을 다쳐 돌아오는 일이 잦아졌다. 다리를 다쳐 절뚝거리며 돌아오지 않게 되었으나 마음을 다쳐 마음을 절뚝거리며 집으로 돌아오는 저녁이면 몸은 멀쩡하지만 나처럼 마음을 다친 채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눈에 보인다. 퇴근 시간 무렵의 길거리에서 귀가를 서두르는 사람들,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피곤한 얼굴로 차창에 비친 자기 얼굴을 보거나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는 사람들. 오른쪽 손을 달래기 위해 왼손을 살풋 얹을 힘조차 없어 보이는 사람들.

아이 역시 나이를 먹을수록 몸을 다쳐 집으로 돌아오는 일은 점점 드물어질 테고 대신 마음을 다쳐 돌아오는 저녁이 많아지리라. 몸이 멀쩡해도 마음이 아프다는 걸 짐작은 할 수 있겠지만 마음을 어떻게 다쳤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을 것이므로 결국 마음을 치유하는 일도 전적으로 아이에게 속하고 말 것이다. 아이는 혼자 고통과 불안을 감내해야 하고 이 모든 걸 홀로 감당해야 할 것이다. 그러다 보면 아이도 알게 되겠지. 같은 방향으로 걷거나 스쳐지나가는 사람들을 비롯해 같은 지하철이나 버스를 탄 사람들 모두 저마다의 고통과 불안을 안고 견디는 중임을. 타인의 오른손에 나의 왼손을 살풋 얹어 서로에게 기대는 일의 아름다움도.

<손홍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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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가 미세먼지 농도 때문에 대중교통 무료운행과 공공기관 차량 2부제를 시행한 것을 두고 비판여론이 만만치 않다. 예보의 정확도가 떨어지는데 섣부른 정책으로 하루 평균 50억원의 공짜요금을 날리고 있다는 것이다. 전형적인 박원순표 포퓰리즘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물론 비상저감조치 발령요건이 지나치게 까다롭고, 경기도와 인천 등과의 충분한 협의 없이 시행함에 따라 다소간 혼란을 빚은 것도 사실이다. 이 조치들이 실제 유의미한 미세먼지 저감수치로 연결될지도 역시 미지수다.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 농도가 나쁨 수준을 보인 17일 서울 송파구 잠실 일대가 뿌옇게 보이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하지만 미세먼지 문제는 ‘남의 일’이 아닌 ‘나의 위험’으로 다가왔다. 최근 발표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야외 초미세먼지 노출도는 41개국 중 가장 나빴다. 또 한국의 대기오염 조기사망률이 2060년 OECD 회원국 중 유일하게 100만명당 1000명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됐다. 미세먼지는 세계보건기구가 지정한 1급 발암물질이다. 부지불식간에 체내에 쌓여 호흡기 질환을 악화시키고, 각종 암과 조산, 치매 등을 유발하므로 ‘침묵의 암살자’로 통한다. 그러나 공기가 나쁘다고 숨을 멈출 수는 없다. 미세먼지 문제를 ‘국가재난’으로 여겨야 하는 이유다. 정부와 지자체의 최우선 가치가 시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것이라면 다소간 비용이 들고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선제조치를 취하는 게 맞다.

시민도 방관자의 입장에만 머물러서는 곤란하다. 약간의 불편과 희생은 쾌적한 환경을 위해 아낌없이 지불해야 하는 대가로 여기는 시민의식이 필요하다. 다른 사람도 아닌 자기 자신의 호흡권을 지키는 일이다. 하루이틀쯤은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미세먼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고조된 지금을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민간차량 2부제의 시행을 논의하는 기회로 삼을 수도 있다. 미세먼지 대책을 ‘공짜소동’으로 치부하지 말고 시민의 생명을 지키는 건강보험쯤으로 여기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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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은 17일 고위급 실무회담을 열어 평창 동계올림픽에 참가할 북한 선수단과 대표단 규모를 확정했다. 남북은 개회식에서 한반도기를 들고 공동입장하는 데 합의했다. 북측은 회담에서 패럴림픽에도 대표단을 보내겠다고 알려왔다. 이로써 북한의 평창 올림픽 참가를 위한 협의가 모두 마무리됐다. 지난 17일간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신년사를 시작으로 남북 고위급회담-실무접촉-고위급 실무회담의 숨가쁜 일정을 진행하면서 평창 올림픽을 평화올림픽으로 치르기 위한 계획을 마련한 셈이다.

문제는 남쪽 내부다. 냉전 보수세력의 트집 잡기가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이들은 한반도기 사용에서부터 남북 단일팀 구성, 예술단 공연, 북한 선수단 체류비용 부담 등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있다. 한국의 정체성을 이유로 한반도기 사용을 문제 삼고, 예술단 공연을 두고는 북한의 체제 선전장이 될 수 있다고 선동하고 있다. 하나같이 사실과 다르거나 냉전시대의 대결논리를 따르는 것들이다. 예컨대 한반도기는 국제체육행사에서 10차례 넘게 사용돼 남북화해의 상징이 된 지 오래다. 평창 올림픽에서 사용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뿐더러 오히려 평화올림픽의 의미를 살려줄 것이다. 특히 남북이 공동입장하는 데 모두 태극기를 들어야 한다는 주장은 억지나 다름없다. 북한 예술단의 남한 내 공연도 이번이 처음이 아닌 만큼 과거 경험을 활용하면 문제될 게 없다.

보수세력은 북한의 평창 올림픽 참가의 의미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단절됐던 남북교류와 관계개선의 출발점이 될 수 있을 뿐 아니라 북핵 대화로 발전할 수도 있다. 정말로 북핵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면 어깃장을 놓는 대신 환영하고 협력하는 게 맞는 행동일 것이다. 그런데 보수세력은 한반도 평화의 행사를 대결과 반목의 무대로 만들려 하고 있다. 엄중히 묻지 않을 수 없다. 역사에 반평화, 반통일 집단을 넘어 북핵 해결 반대 집단으로 기록되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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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전 대통령이 검찰의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상납·다스 의혹 수사 등을 ‘정치공작’이자 ‘정치보복’으로 규정했다. 이 전 대통령은 17일 입장문을 발표하고 “적폐청산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검찰 수사에 대하여, 많은 국민들이 보수 궤멸을 겨냥한 정치공작이자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정치보복이라 보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제 재임 중 일어난 모든 일의 최종 책임은 저에게 있다. 더 이상 국가를 위해 헌신한 공직자들을 짜맞추기식 수사로 괴롭힐 것이 아니라 나에게 (책임을) 물어달라”고 말했다. 이 전 대통령은 “최근 역사 뒤집기와 보복정치로 대한민국의 근간이 흔들리는 데 대해 참담함을 느낀다”고도 했다. 하지만 참담한 것은 그가 아니다. 한마디 유감표명도 없이 ‘보수결집’을 선동하고, 정치보복 운운하며 진흙탕 정쟁으로 몰고가려는 그를 봐야 하는 시민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17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자신과 관련된 검찰의 수사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권도현 기자

이 전 대통령은 각종 의혹에 대해 구체적인 해명은 한마디도 내놓지 않았다. 실체적 진실로는 검찰 수사에 맞설 길이 없다고 판단해서일 것이다. 실제 ‘MB의 집사’로 불려온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은 국가정보원으로부터 수억원대 불법 자금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 수감됐다. 나란히 구속된 김진모 전 청와대 민정2비서관은 민간인 불법사찰과 관련해 양심선언을 한 장진수 전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에게 입막음용으로 국정원 돈 5000만원을 줬다고 시인했다. 이들을 ‘국가를 위해 헌신한 공직자’로 포장한들 누가 믿겠는가.

이 전 대통령이 직접 관여한 정황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2008년 김주성 전 국정원 기획조정실장은 청와대에서 이 전 대통령과 독대하고 “국정원 돈이 이런 식으로 청와대로 가면 사고 날 수 있다”고 보고했다고 한다. 독대 시기는 국정원이 김 전 기획관 요청으로 현금 2억원을 전달한 이후다. 김 전 기획관이 국정원에 특활비를 추가로 요구하자 김 전 실장이 면담을 신청해 우려를 전달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경고 이후인 2010년에도 김 전 기획관은 국정원 돈 2억원을 받았다. 상식적으로 이 전 대통령의 지시나 묵인 없이 김 전 기획관 단독으로 이런 일을 벌였으리라고 믿기는 어렵다. “국정원 돈을 받아 이 전 대통령 부인 김윤옥 여사를 보좌하던 행정관에게 전달했다”는 진술(김희중 전 대통령 제1부속실장)까지 나왔다. 이 전 대통령이 국정원 돈이 상납된다는 사실을 알았고 ‘위법성’에 대한 인식까지 있었다면 뇌물수수의 공범을 면하기 어렵다.

10년 넘게 ‘미제’였던 다스 실소유주 의혹 수사도 급진전되고 있다. 다스의 김성우 전 사장과 권모 전 전무가 ‘이 전 대통령이 다스의 전신인 대부기공 설립에 직접 관여했다’는 취지의 자수서를 제출하면서다. 김 전 사장은 2007~2008년 검찰과 특검 조사에선 다스가 이 전 대통령과 무관한 회사라고 일관되게 진술했다. 따라서 그의 진술 변화는 사실상 ‘스모킹 건’(결정적 단서)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모든 정황이 이 전 대통령을 비리의 ‘몸통’으로 지목하고 있다. 이 전 대통령은 이제라도 시민 앞에 진실을 털어놓고 검찰 수사에 성실히 임해야 한다. 그것이 전직 대통령으로서 최소한의 도리다. 검찰은 성역 없는 수사를 통해 이 전 대통령을 둘러싼 모든 의혹을 낱낱이 규명하기 바란다. 권력에 굴종했던 과거를 반성하는 차원에서라도 철저한 수사를 해야 할 것이다.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는 반칙과 불의로 점철된 과거를 청산하고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피할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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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이자 교사로서 한국 교육의 문제를 바라보는 마음은 복잡하다. 지난주, 교육혁명을 위해 마을교육공동체가 필요하다고 제안한 도성훈 교장의 글에 공감하며 몇 가지 덧붙인다.

집단지성의 구현이라는 측면에서 ‘마을교육공동체’가 매우 큰 역할을 할 수 있고, 마을활동가 등 민간과 교육기관 간의 관계 맺음(소통)을 바탕으로 하는 ‘교육혁명’을 제안한 아이디어가 새롭다. 특히 ‘학벌사회라는 교육불평등을 어떻게 완화할지에 대한 다양한 대안들을 마련할 수 있다’는 대목이 눈에 들어왔다.

‘과거 제도’ 등 학문을 출세의 수단으로 삼는 것이 어제오늘의 일만은 아니지만, 사회는 그로 인해 이분화된 계층의 차별을 완화하는 방식으로 발전해야 한다. 가령 현 정부의 최저임금제에 대한 강력한 의지는 언뜻 교육과 분리된 정책인 듯하지만, 학교 현장에서 그리고 학부모로서 어린아이들이 막연하게 학습 노동에 시달리는 모습을 볼 때 교육이야말로 ‘생존’과 매우 긴밀한 영역이다.

영화 <1987>이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다. 그 시기에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를 외치며 죽어갔던 학생의 자살에 전 사회가 경악했던 적이 있다. 여전히 성적 비관 자살이 이어지고 있지만 이제는 이슈조차 되지 않고 있다. 이 비정한 교육 문화를 끝내달라는 시민들의 요구가, 4년 전 교육감 선거에서 진보교육감의 대거 당선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당선된 교육감들이 근본적 해결을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가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상당수 교육감들이 박근혜 정부의 탄압에 대응하느라 역량을 소진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간과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따라서 전임 교육감들의 한계와 노력을 복기하면서, 올해 당선될 교육감들은 학벌사회의 타파와 입시경쟁의 해소를 교육 개혁의 최우선 목표로 삼아야 한다. 이를 위해 각 시·도교육감 간의 연대와 정부와의 협력을 바탕으로 국·공립대 통합 네트워크 구축, 자사고·특목고 등 특권 학교 폐지, 실질적 최저임금의 정착, 노동인권교육 및 특성화고 지원, 반강제적 보충수업 및 야간학습 폐지 등을 추진해야 한다.

대안학교가 학생부종합전형(학종)에 유리하다는 이유로, 개교 취지와 달리 대입을 위해 이들 학교에 입학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수능, 논술, 학종, 면접, 절대평가, 고교학점제, 입시전형의 다양화, 자유학기제, 자율동아리 강화 등 아무리 좋은 교육철학과 방법이 도입되어도 학벌사회라는 근본적 모순을 함께 해결하려 하지 않고는 그 취지가 변질될 수밖에 없음을 십수년간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추진되었던 숱한 교육정책들을 통해 우리는 뼈저리게 느껴왔다.

마을교육공동체는 이러한 구조적 모순을 지방분권의 취지에 맞게 각 지역, 더 나아가 작은 마을을 중심으로 대안을 마련한다는 점에서 참신하다. 그 여러 대안들이 모아질 것이고, 각 지역 교육감들과 교육부의 거버넌스(협치)를 통해 단위 학교의 학생, 학부모, 교사, 지역주민 등 교육 구성원들의 목소리를 반영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올해 당선될 신임 교육감과 교육부는 마을교육공동체의 정착과 입시경쟁의 해소, 나아가 학벌사회의 타파를 위해, 우리 교육이 향해야 할 근본 가치를 염두에 두면서 현실적으로 가능하고도 필요한 정책들을 섬세하고도 추진력 있게 실행해야 한다.

<이광국 | 산곡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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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한국전쟁 때 혈혈단신 남으로 내려와 피붙이 한 명 없는 땅에서 팔십 평생을 꿋꿋하게 살아왔다. 결혼하고 나서 세운 공장이 꽤 잘 되어서 자식들 남부러울 것 없이 먹이고 입혔다. 부인은 다락방에 네 딸 결혼시킬 때 싸줄 그릇이며 냄비를 착실하게 모았다. 혼자 부초처럼 떠돌던 젊은 시절을 생각하면 출세한 거였다. 그래도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일했다.

하지만 암에 걸린 부인은 다락방에 차곡차곡 쌓아 놓은 그릇과 결혼하지 않은 딸들을 남겨놓은 채 세상을 떴다. 그는 아무런 꿈 없이 공장과 집을 오갔다. 그는 변하지 않는데, 하던 일도 그대로인데 세상은 빠르게 변했다. 머리 굵은 자식들은 그가 말만 꺼내면 세상 물정 모르는 소리라고 퉁바리를 줬다.

그의 세상과 아이들의 세상이 다른 것 같았다. 아이들이 뭐라 하든 그는 자신의 세상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않았다. 아니 그럴 틈이 없었다. 공장 기계는 쉬지 않고 돌아갔으니까. 어느 날 거울을 보니 백발이 성성하고, 어깨 굽은 이가 서 있었다. 마음은 세월에 부대끼면서도 악착같이 버텼는데, 육신은 세월을 어겨내지 못했다. 그는 공장 경영을 자식에게 맡기고 공장 안을 기웃거리면서 일손을 도왔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 물정 잘 아는 자식은 공장을 팔아버렸다.

자식들은 일도 할 만큼 했고, 땀도 흘릴 만큼 흘렸으니 느긋하게 쉬시라고 했다. 그도 그리 해보려고 했다. 하지만 몸이 예전 같지 않았다. 허리가 아프다 싶으면 무릎 관절이 쑤셔댔고, 몸이 괜찮다 싶으면 자꾸 기억이 흐릿해졌다. 그는 멈춘 기계가 얼마나 빠르게 녹스는지 알고 있었다. 그의 몸도 하루하루 녹슬어 가고 있었다.

아침저녁으로 음식을 해서 찾아오는 막내딸은 아버지 몸의 흘게가 풀리는 것처럼 보였다. 저러다 영영 못 일어나시겠구나. 딸은 눈시울을 붉히다가 퍼뜩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저리 힘든 몸으로 오래 사시면 어쩌나.

“그런 생각을 한 내가 정말 밉더라고요.” 그의 말을 들으면서 가슴이 아렸다. 그들의 이야기는 곧 내 부모와 내 이야기가 될 테고, 또 오래지 않아 나와 내 딸이 겪을 것이다.

<김해원 |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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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차례의 끊어짐도 없는 생명의 연속성 덕에 지금 내가 여기 존재한다고 자못 호기를 부리면서 칼럼을 시작한 지가 벌써 일 년이 지났다. 여기서 ‘나’를 미생물을 포함하여 살아 있는 생명체 그 무엇으로 치환해도 모두 참일 것이기에 그 명제는 곧바로 법칙의 반열에 오른다. 또한 어떤 생명체라도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입으로 뭔가가 끊임없이 들어오고 또 밖으로 나가야 한다. 흔히 물질대사라 일컫는 과정이다. 인간에 국한해서 ‘먹는 얘기’를 좀 더 진척시켜 보자. 우리가 먹는 동물성 음식물 중 영양소 측면에서 가장 단순한 것은 아마도 선지가 아닐까 생각한다. 혈소판 때문에 푸딩처럼 굳은, 붉은 선지를 삶으면 갈색으로 변하거나 간혹 초록빛을 띠기도 한다. 우리는 선지가 듬뿍 들어간 해장국을 즐겨 먹는 몇 안 되는 민족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저간의 사정을 이해하기 쉽게 적혈구 하나로부터 실마리를 풀어보자. 세포라 부르기도 궁색할 만큼 핵도 미토콘드리아도 없는 도넛 모양의 적혈구는 대부분 한 종류의 단백질인 글로빈으로 채워져 있다. 산소를 최대한 싣고 폐를 떠나기 위해 적혈구가 그런 형태로 진화했다고 한다. 하여튼 세포 한 개당 약 2억 개가 넘는 헤모글로빈이 채워져 있으므로 적혈구의 글로빈은 8억 개 정도가 된다. 글로빈 하나당 한 개씩 배당되며 색상을 띠는 헴도 8억 개이다. 그러므로 다른 영양소가 없지는 않겠지만 적혈구는 고단백 식품으로 더할 나위가 없다.         

그런 까닭에 말라리아를 일으키는 플라스모듐 열원충도 일찌감치 글로빈을 먹잇감으로 삼아 성세를 누려온 터이다. 적혈구와 혈소판이 세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성인의 혈액은 그 부피가 5ℓ이다. 그 안에 적혈구는 30조 개, 혈소판은 5조 개 정도가 들어 있다. 이 두 세포를 합치면 우리 인간 세포 전체의 70%를 훌쩍 넘는다.

하지만 단백질로만 이루어진 적혈구는 영양학적으로 균형 잡힌 식단이 아니다. 그러므로 선지만 먹는 것은 영양 면에서 그리 달가운 선택이 되지 못한다. 적혈구와 달리 일반 동물 세포 하나에는 평균적으로 단백질이 50%, 지방이 약 30% 그리고 탄수화물이 3% 정도 들어 있다. 이런 생물학적 수치를 감안하면 우리가 고기를 먹을 때 그 무게의 절반 정도가 단백질이고 그다음은 지방이 차지한다고 볼 수 있다. 재미있는 점은 유전 정보를 보관하거나 전달하는 유전자와 그 동류 유전물질의 양이 생각보다 많아서 전체 생체 고분자 물질의 10%에 이른다는 사실이다. 그저 무시하기에는 상당히 많은 양이다.

인간의 소화기관은 본성상 환원주의적이다. 이 말은 우리 입으로 들어온 거대 영양소를 기본 단위로 잘게 쪼개야만 비로소 조직 안으로 흡수할 수 있다는 뜻이다. 식물이 여투어 놓은 감자 알갱이 안의 전분은 모두 포도당 복합체이다. 감자를 먹는 일은 곧 전분을 낱낱이 쪼개 포도당을 만든 후 혈액으로 흡수하는 과정이다. 단백질 분해 효소는 스테이크 안의 단백질을 쪼개 아미노산으로 최종 분해한다. 중성 지방도 지방산과 글리세롤로 분해되어야 한다. 그런 연후에야 비로소 이들 영양소가 에너지원으로 쓰이든지 아니면 새로운 세포를 만들거나 고치는 데 사용된다. 이렇게 교과서적으로 소화와 흡수 과정을 설명하면서 나는 ‘정보의 해체와 재조립’이라는 표현을 즐겨 쓴다. 하지만 여기서 뭔가 빠진 것 같지 않은가?

맞다, 유전물질이 어느 순간 얘기의 원줄기에서 빠져나갔다. 사실 그동안 유전물질 중합체는 소장에서 핵산 분해 효소에 의해 분해된 다음 소량 흡수되거나 아니면 그냥 배설된다고 가볍게 치부되어 왔다. 유전물질의 소화와 흡수에 관한 논문을 찾아보아도 반추 동물의 장내 미생물의 총체성을 확인하기 위해 RNA를 사용했다는 실험 논문 몇 편을 구할 수 있을 뿐이다. 1953년 DNA의 이중 나선 구조가 밝혀지고 분자 생물학이 만개하면서 유전물질은 한동안 구름 위의 정담 거리였다. 한데 2011년 중국의 한 연구진이 유전자를 영양소의 현장으로 끌어 내렸다. 쌀밥에서 유래한 자그마한 크기의 RNA가 체내로 흡수되어 유전자 발현을 조절한다는 논문을 발표한 것이다. 바다 건너온 이런 풍문은 내 뒤통수를 강타했다. 아, 나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유전물질 비슷한 뭔가가 음식물 속에 들어 있다가 흡수될 수 있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못했던 것이다. 열을 가한 전분 덩어리인 쌀밥 안에 RNA 유전물질이 숨어 있으리라 그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로부터 4년이 지난 2015년 우리가 먹은 유전물질이 소장이 아니라 위에서, 펩신이라는 단백질 분해 효소에 의해 잘려나간다는 연구 결과가 네이처 자매지에 발표되었다. 역시 놀라운 일이다.

사실 과학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바탕으로 상상하는 데서 시작된다. 우리가 선지를 먹으면 곧 적혈구를 먹는 것이고 거기 있는 헴과 글로빈을 쪼개는 소화가 시작될 것이라 상상할 수 있다. 이제 고기를 먹으면 단백질과 지방뿐만 아니라 유전물질을 분해하는 모습을 그려야 한다. 상추쌈을 먹으면 우리는 상추 잎맥의 섬유를 먹겠지만 광합성 공장인 엽록체와 엽록체가 지니고 있는 유전자도 함께 먹으리라 유추할 수 있다. 환원론적인 우리의 소화 기관이 상대해왔던 영양소의 목록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제 우리는 그들에게 합당한 대접을 해주어야 한다. 과학은 놀라움이자 깨달음이어야 한다는 그런 당연한 대접 말이다.

<김홍표 |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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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쓸모가 없는 토지나 주택 등을 고수익 상품이라고 속여 비싸게 팔아넘기는 기획부동산이 전국적으로 기승을 부리고 있다고 한다. 최근 보도를 보면 개발이 불가능한 제주도 땅을 분양해 200억원대 기획부동산 사기 행각을 벌인 일당이 검거됐다.

이들은 철저한 준비과정이나 대책 없이 단기에 높은 수익을 얻겠다고 뛰어드는 투자자를 노렸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부동산 투자를 잘 모르는 사람에게 홍보를 하거나 부동산 투자정보를 알려주는 설명회까지 개최한다면 일단 의심해봐야 한다고 조언한다. 전문가들은 정말로 좋은 투자정보가 있으면 소수가 극비리에 움직이지 소문을 내거나 권유하는 법이 절대 없다고 말한다.

(출처: 연합뉴스)

사기 피해자 중 상당수는 별 준비 없이 노후자금으로 쓸 퇴직금이나 대출받아 투자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자칫 장밋빛 환상에 사로잡힌 채 단기투자로 높은 수익을 내겠다고 덤벼들었다가는 소중한 자산을 모두 잃게 될 수도 있다.

기획부동산 사기는 땅값 상승을 부추겨 실수요자의 부동산 구입을 어렵게 만들고, 정부 지원 지역개발비 부담 가중 등 수많은 후속 피해를 불러일으킨다. 정부는 그동안 기획부동산 투기억제 정책을 수차례 발표했지만, 지금까지 큰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는 평소 토지거래 실태 등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상시 특별단속을 통해 미등기 전매 등 위법 여부를 철저히 가려내 기획부동산의 폐해를 뿌리 뽑아야 한다. 또 법을 어긴 것으로 확인된 사람들은 엄중하게 사법처리함으로써 기획부동산 사기를 근절해야 한다.

시민들 스스로도 사기를 당하지 않으려면 기획부동산에서 얘기하는 개발계획 등을 직접 확인하고, 개별적으로 해당 지역이나 현장에 있는 토지를 직접 답사해봐야 한다. 하루속히 불건전한 부동산 거래가 없어지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김은경 | 주부·서울 동대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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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의 해가 다가왔다. 십이지에 속하는 가축 가운데 소나 돼지, 닭 등은 도시인의 일상에서 보기 어렵지만, 개는 여전히 우리 가까이에 있다. 주로 평생을 함께하는 부부 사이를 뜻하던 반려(伴侶)라는 말이 요즘은 개에게 더 많이 사용되는 듯하다. 오늘날 개는 이처럼 접촉과 교감의 대상으로 사랑받고 있지만, 주거문화가 바뀌기 전까지 개의 역할은 주로 마당에서 집을 지키는 일이었다. 다른 동물과 달리 개는 낯선 이를 보면 짖어대는 능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중국 고대의 철학자 양주에게 양포라는 동생이 있었다. 하루는 양포가 하얀 옷을 입고 집을 나섰다가 비에 흠뻑 젖는 바람에 검은 옷으로 갈아입고 돌아왔다. 그런데 그 집 개가 주인을 몰라보고 짖어대는 것이었다. 양포가 화가 나서 개를 때리자 양주가 말했다. “때리지 마라. 너 같아도 흰 개가 검은 개가 되어 돌아오면 낯설어서 몰라볼 수 있지 않겠니?” 겉모습이 바뀐다고 속까지 바뀐 줄 아는 사람들을 경계하는 이야기이지만, 그만큼 일찍부터 개는 낯선 것을 보면 어김없이 짖어대는 동물로 알려졌다.

촉견폐일(蜀犬吠日)이라는 말이 있다. 촉 지역은 흐리고 비 오는 날이 워낙 많아서 이곳의 개들은 어쩌다 날이 개면 해를 보고 마구 짖어댄다고 한다. 구름에 가린 것일 뿐 하늘 아래 해가 없는 곳은 없는데, 해를 보고 짖어대다니 참으로 멍청한 개들이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의 인식 역시 늘 경험하는 익숙한 것들에 길들어 있다. 자신이 본 것이 다인 줄 알고 낯선 것을 보면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심지어 다르다는 이유로 비난부터 하는 일도 적지 않다. 문제는 소인은 많지만 군자는 드물며, 부조리가 일상인 세상에서 개혁은 낯설고 불편한 일이 되어 버렸다는 점이다. 만세의 사표 공자가 동시대 사람들에게 비방과 곤욕을 당한 것도 그 때문이다.

천하의 악당 도척이 키우는 개는 훌륭한 요임금을 보면 짖어댈 수밖에 없다. 주인과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다. 낯선 이를 보고 짖는 것이 책무인 개에게는 그것이 오히려 미덕이다. 그러나 사람이 자신의 경험에만 갇혀서 가치 분별을 하지 못한 채 비방을 일삼는다면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고 낯선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은, 성찰과 독서를 할 줄 아는 인간에게만 가능한 일이다.

<송혁기 |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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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먼지는 지구촌의 문제다. 그래서 각국이 미세먼지와의 싸움에 나서고 있다. 대기오염 도시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 베이징이 가장 적극적이다. 미세먼지 적색경보가 발령되면 각종 규제에 나선다. 적색경보가 발령된 2015년 10월에는 전기자동차를 제외한 모든 차량에 홀짝제를 적용했다. 건축물폐기물 운반차량 운행도 금지했다. 도로청소 횟수를 늘렸고 폭죽이나 길거리 구이가 금지되기도 했다. 파리는 2015년 3월 미세먼지 오염이 심각해지자 차량2부제를 실시해 차량의 통행을 규제했다. 대신 대중교통을 무료로 했다. 런던은 2016년 시내 전역의 대기오염 상태를 알려주는 경보시스템을 구축했으며, 암스테르담은 대기오염 현황을 시각화한 ‘나무 와이파이’를 세워 오염수준을 시민들이 알 수 있도록 했다.

서울시 초미세먼지 농도가 이틀 연속 ‘나쁨’을 보이면서 ‘미세먼지 비상저감’ 조치로 출퇴근 시간 버스·지하철 요금이 면제된 15일 시민들이 서울 광화문역 개찰구를 통과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미세먼지는 황산염, 암모니아 등의 이온 성분과 금속화합물, 탄소화합물 등 유해물질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초미세먼지는 미세먼지의 4분의 1크기밖에 되지 않는다. 기도에서 걸러지지 않고 대부분 폐포까지 침투해 심장질환과 호흡기 질병은 물론 사망에도 이르게 할 수 있다.

서울시는 15일 처음으로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를 발령했다. 시민참여형 차량2부제, 출퇴근시간 대중교통 무료운행, 공공주차장 폐쇄 등의 조치를 취했다. 지난해 5월 광화문광장에서 시민들이 논의한 내용을 정책으로 반영해 이날 시행한 것이다. 그러나 첫 시행은 매끄럽지 못했다. 서울시는 대중교통 이용객이 20%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지하철과 버스 승객은 미미하게 느는 데 그쳤다. 차량2부제도 미흡했다. 무료 지하철·무료 버스에 따른 서울시 비용부담은 50억~60억원 정도다. 이를 두고 ‘돈낭비’가 아니냐는 의견이 적지 않다.

하지만 긍정적인 면도 있다. 시민건강은 금전으로 따질 수 없는 가치를 가지고 있다. 이번 조치로 시민들에게 미세먼지의 심각성에 대해 새롭게 인식할 기회를 제공했다면 정책적 효과를 발휘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미세먼지를 줄이는 데 소요되는 엄청난 예산에 비하면 이 정도의 학습비용은 지불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문제는 학습비용을 줄이면서 정책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느냐이다.

<박종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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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7월 일본에서 김수용 김일성종합대 교수를 만난 적이 있다. 나진·선봉 지대 투자유치단의 일원인 그는 겸손하고 예의바른 신사였다. 처음 말을 걸었을 때의 긴장감이 곧 사라진 것도 그런 성품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는 대화할수록 편안함을 느끼게 해주는 그런 종류의 사람 같았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경계심을 완전히 풀어 버린 어느 순간,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쳤다. 그가 느닷없이 호통을 친 것이다. 그리고 나를 한참 닦아세웠다. 갑작스러운 분노의 격발, 착해 보이는 얼굴에 뚜렷이 새겨진 살기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다음부터는 말을 붙일 엄두도 내지 못했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왼쪽)과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이 9일 판문점 남측 평화의집에서 고위급회담 종료를 앞두고 공동보도문을 교환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남북 고위급회담에서 리선권 북측 대표가 버럭 했다는 소식에 22년 전 기억이 되살아났다. 회담은 화기애애하게 진행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회담을 마치고 공개 발언을 하는 자리에서 리선권은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게 불쑥 목청을 높여 남측을 비판했다. 김수용의 뇌관을 건드린 것이 있었던 것처럼 리선권에게도 그게 있었다. 바로 비핵화다.

남북대화가 시작되자 국내 보수세력과 미국은 한목소리로 비핵화하지 않으면 대화는 소용없는 일이라며 비핵화부터 하라고 몰아붙였다. 비핵화가 북한에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그러는지 모르겠다. 비핵화는 핵보유국이라고 명시한 북한 헌법, 경제·핵 병진을 당의 새로운 전략적 노선으로 채택한 당규약, 핵보유를 최대 성과라고 한 7차 당대회 결의를 폐기하는 일이다. 할아버지·아버지도 해내지 못한 김정은의 역사적 대업이 사기였다고 고백하는 일이다. 60년 만에 이룬 염원을 저버리고, 체제 안전을 포기하는 일이다. 그런데도 핵을 포기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건 북한이 핵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모르고 하는 소리다.

김정은이 지난해 8월 당중앙위원회에서 보고한 내용을 북한은 이렇게 전했다. “우리의 핵무기가 우리 인민의 피어린 투쟁이 안아온 고귀한 결실이며… 조선민족의 자주권과 생존권, 발전권을 믿음직하게 담보하는 위력한 억제력으로, 인류에게 참혹한 재앙을 들씌우려는 폭제의 핵구름을 몰아내고 인민들이 맑고 푸른 하늘 아래에서 자주적인 행복한 삶을 누려갈 수 있게 하는 정의의 보검이라는 데 대하여 엄숙히 천명하시였다.” 핵이 가져올 미래를 이토록 아름답게 묘사한 나라를 들어본 적이 없다. 묻지마 비핵화? 지금이라도 깨끗이 포기하는 게 좋다.

묻지마 비핵화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자기표현으로서의 비핵화다. 현실을 반영하지도 바꾸지도 못하지만 자신의 가치를 과시하기 위해 비핵화를 주장하는 것이다. 비핵화 이데올로기다. 다른 하나는 정치 공세로서의 비핵화다. 평화를 위해서가 아니라 정적을 골탕 먹이기 위해 비핵화를 다그치는 것이다. 비핵화 실용주의다. 어느 것이든 비핵화에 도움 되지 않는다.

북한을 남북대화로 나오게 만든 직접 요인이 무엇일 것 같은가? 한·미 연합군사훈련 연기다. 북한은 군사훈련에 관한 신호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북한의 관점에서 훈련을 연기할 2~3월과 훈련을 재개할 4~5월은 완전히 다른 시공간이다. 이 차이는 하나의 세상을 닫고 다른 세상을 여는 것만큼 결정적이다. 4월 훈련을 재개하는 순간 2~3월의 대화 국면은 찰나의 불꽃처럼 사라질 것이다. 그걸 바라지 않는다면 2~3월의 공간을 확장해야 한다. 김정은은 신년사에서 적어도 9월까지 훈련이 중단되기를 바란다는 뜻을 내비쳤다. 훈련을 중단하면 핵 실험·미사일 발사 유예는 물론 핵동결 합의도 가능할지 모른다.

비핵화의 문턱을 넘는 것은 다른 문제다. 북한은 자기만의 한계선을 그어놓고 누구든 선을 넘으면 예고 없이 물어버린다. 남북대화가 진행 중인데도 “비핵화는 양보할 수 없다”고 말했다는 이유로 문재인 대통령에게 “가을뻐꾸기 같은 수작”을 한다고 험담했다. 북한 사람의 버럭 성질은 개인적 성격이라기보다 북한 체제의 특질이다. 북측을 만나게 됐으니 비핵화를 우선 따지라는 건 망치를 손에 쥐게 되었으니 불발탄을 두드려 보라고 재촉하는 것과 같다. 막대사탕을 문 아이를 보고 충치 생긴다며 사탕을 갑자기 뺏어보라. 감당할 부모가 없을 것이다. 현명한 부모라면 사탕을 뺏기 전에 입에 물릴 다른 것을 준비한다. 사탕만큼 아이가 좋아할 만한 것을 줄 것이다.

진정 비핵화를 원한다면 북한 핵무장의 근거인 정치군사적 대결 상태를 해소해야 한다. 그러려면 평화체제로 전환해야 하고, 이를 위해 연합훈련 전면 중단은 물론 군축, 동맹의 변화, 주한미군 역할 전환, 북·미수교를 해야 한다. 이걸 준비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으면 비핵화, 함부로 말하지 마라.

<이대근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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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살된 유대인을 기리기 위해 미국 워싱턴 DC에 세워진 홀로코스트 박물관은 일 년에 딱 이틀, 유대교가 정한 속죄일인 욤 키푸르와 기독교의 축일인 크리스마스에만 문을 닫는다.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이 유난히 깊은 침묵에 빠져 걸음을 옮기지 못하는 공간이 있다. 4000켤레의 낡은 신발이 뒤죽박죽으로 켜켜이 쌓여 벽을 이룬 곳. 성인 남자의 출근용 구두, 젊은 여성이 신었을 법한 펌프스, 소년의 운동화, 아장아장 걸음마를 뗄 아이가 신었을 법한 꼬까신…. 폴란드 마자넥 강제수용소에 끌려간 유대인들이 도착하자마자 벗어 나치 군인에게 압수당했던 것들이다. 신발 더미에서는 신발 주인의 체취 같기도 한 고무냄새가 스며 나와 관람객을 몸서리치게 만든다. 멍해진 관람객들을 돕는 것은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노년의 자원봉사자들이다. 그들은 신발의 주인들이 어떻게 하루아침에 세상에서 사라져 갔으며 어떻게 자신들은 살아남았는지를 담담하게 증언한다.

이철성 청장을 비롯한 경찰 지휘부가 박종철 열사 31주기를 하루 앞둔 13일 오전 서울 용산구 옛 남영동 대공분실(현 경찰청 인권센터)을 찾아 박 열사가 숨진 인권센터 509호에 헌화와 묵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2일부터 청와대 국민 청원 페이지에는 ‘경찰이 운용하는 옛 남영동 대공분실을 시민사회가 운영하는 인권기념관으로 바꿔달라’(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78392)는 국민 청원이 진행 중이다. 1987년 스물두 살 청년 박종철이 경찰의 물고문 도중에 살해당한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은 ‘남영동 인권센터’로 이름이 바뀌었을 뿐 여전히 경찰이 운영하는 기관이다. 박종철기념사업회 등 인권단체들이 시민들을 위한 탐방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이곳을 찾는 시민들 대다수는 경찰의 안내를 받는다. 시민들이 찾을 수 있는 주말에는 문을 열지 않다가 그나마 2017년 7월부터 토요일 개방이 이뤄지고 있다.

인권경찰로 거듭나겠다는 경찰의 다짐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가해자가 자신이 저지른 죄를 온전히 실토할 수 없다는 것을 지금의 ‘남영동 인권센터’는 여실히 보여준다. 경찰 스스로 ‘인권의 메카’로 부르는 인권센터의 1층 홍보 전시물은 1985년 이곳으로 끌려와 물고문, 전기고문을 당했던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을 이렇게 소개한다. “1985년 민청련 김근태 의장이 서울대 민주화추진위 배후조종 혐의로 23일 동안 조사(고문)받은 것이 세계 언론에 알려져 큰 파문을 일으켰다. 2011.12.30 타계 소식이 있자 추모하기 위해 그가 고문을 당했던 5층 515호실 앞에 인권센터 소속 경찰관들이 올려놓은 조화가 화제가 된 바 있다.”

23일간의 고문과 경찰이 사후에 올려놓은 조화를 등가로 연결하는 이 두 문장 속에서 “이런 잔인한 고문이 아니라면 정말 죽음에 처넣어지는 것, 고문 없이 살해되는 것조차 받아들이겠다”(김근태 저 <남영동> 중)는 피해자 김근태의 비명은 말끔히 소거된다.

박종철 열사가 죽어간 509호실은 그나마 원형에 가깝게 보존되었다고 하지만, 깔끔하게 정돈된 침대와 세면대, 변기가 놓여 고시원 방 한 칸을 연상시키는 이런 방으로 끌려왔던 사람들이 ‘칠성판’이라고 불리는 고문대 위에 올랐다는 사실을 관람객들은 알 수 없다. 누우면 세면대 위로 얼굴이 바로 떨어지도록 설계된 이 칠성판 위에서, 두들겨 맞아도 맞은 흔적이 남지 않도록 담요로 꽁꽁 묶인 사람들이 얼굴에 수건이 덮인 채 샤워기로 쏟아지는 물이 입과 코를 막는 물고문을 당했다.

고문은 은유가 아니다. 피해자의 고통도 은유가 아니다. 워싱턴 DC 홀로코스트 박물관의 신발 무덤과 그 역겨운 고무냄새가 관람객들로 하여금 범죄의 잔혹함에 토할 것 같은 실감을 갖게 만드는 것처럼, 한국의 공권력이 독재 권력의 손발이 되어 저지른 잔혹한 고문도 피해자의 시선으로 세세하게 기록되고 보존되어야 한다. 경찰의 안내가 아닌 살아남은 고문 피해자들의 증언을 통해 지난 시대 한국 땅 곳곳에 존재했던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어떤 폭력이 저질러졌는지 지금의 관람객들에게 증언되어야 한다.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간 사람들이 머리조차 들지 못하고 5층의 조사실로 끌려 올라갔을 때 밟았던 좁은 나선 계단은 72개다. 악은 구체적으로 기억되어야 한다.

<정은령 | 언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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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1987>은 어떤 관객들에겐 다른 중요한 효용이 있다. 이른바 586세대로 하여금 ‘그날’로부터 지금까지 삶의 의미를 심문·성찰하게 하는 것이다. 필자도 그 세대의 일원이지만 그 광경은 자못 흥미롭고 문제적이다. 약간 슬프고 우스꽝스럽기도 하다. 죄책감과 회한에 젖어 눈물을 흘리고, 후배와 아이들에게 뻐기며 자랑스러워한다. 이 집합적 ‘증상’은 한 사람에게 동시에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TV프로그램에 출연한 이한열의 선배 우상호 의원이 박종철의 선배 박종운씨를 꾸짖은(?) 일도 그중 하나였다. 그는 “박종운, 우상호 같은 사람들은 죽음을 안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선택의 자유가 없다”며 ‘종운이’는 ‘정치를 안 했으면 좋겠다’는 충고를 했다. 근래 박씨는 ‘박종철이 죽음으로써 지켜주려 했으나 배신자가 된 사람’으로 새삼 세간의 조명을 받고 있다.

영화 <1987>은 전두환 정권에 항거해 민주주의를 쟁취하려는 사람들의 열망을 담았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이에 대해 어떤 누리꾼들은 우 의원의 그간의 어떤 실책들을 들며 ‘도긴개긴’이라는 식으로 냉정하게 말한다. 일리가 없지 않겠지만 그리 간단한 문제도 아닌 듯하다. 이런 장면은 꽤 깊게 철학적이고 또 정치적이다. 30년 시간은 무엇이며, 87년체제에서의 사람됨이란 무엇인가? 6월항쟁의 주역들을 갈라지게 하고 그중 어떤 이들을 ‘배신자’ ‘변절자’ 같은 무서운 말을 듣게끔 만든 벡터는 무엇인가?

1980년대는 험악한 시대였다. 그러나 무려 30년이란 시간이 쌓였으니 20대 때 누가 무엇을 어쨌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인지도 모르겠다. 6월의 군중이 하나가 아니었고 세계사의 물줄기도 바뀌었으니, 누군가가 ‘괴물’이 되건 자유한국당이 되건 다 가능한 일 아닌가?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드는 방법론도 하나가 아니니 큰길에서 우리는 모두 하나인가? 현실정치와 속인의 삶은 사실 다 ‘그렇고 그런’ 상대성의 세계에 있지 않은가?

그러나 이상하게 우리는 어떤 국면에서, 삶과 인간을 전혀 그런 방법으로 인식하지 않는 것이다. 박종철·이한열의 삶·죽음 같은 것이 준거라는 것이다. 젊은 의기와 희생이, 또 어떤 이념이 절대적인 진리 같은 걸 담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어떤 사람들을 ‘변절자’나 ‘인간도 아닌’ 자라는 식으로 비판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결국 한 존재가 ‘계속 사람’일 조건은 정치 또는 정파와 깊은 관계를 갖고 있다 봐야겠다.

하지만 ‘계속 사람’인 문제는 죽는 날까지 완결되지 않아서 또 문제다. 그래서 <1987>은 무섭고도 무겁다. 그것은 과거·현재는 물론 미래마저 심문한다.

그 시절 아마 그들·우리는 일면 매우 정말 순수했고, 또 일면 생경한 이념에 들떴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행동과 이념이 세계에 대해서나, 자기 생에 대해서나 어떤 의미를 가진 것인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그러면 이제는 50·60쯤 먹었으니 ‘객관적으로’ 평가할 만한 어떤 확고한 입각점과 세상을 통달한 경륜을 갖게 됐는가? 전혀 아니기 때문에 영화 하나에 울고불고 뻐기고, 위로받고 그랬을 것이다. 인생은 계속 ‘진행 중’이고, ‘박종철·이한열 정신’도 유효할 것이다. 이 점 ‘배신자’나 누구에게나 동등하다. 구원과 멸망의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 있어, 끝없는 성찰과 다른 실행이 필요할 뿐이다.

엊그제 열린 ‘1987 박종철거리 선포식’에서도 눈을 붙잡는 장면이 있었다. 박종철과 같은 운동 서클(패밀리·대학문화연구회) 선배였던 김민석 민주당 민주연구원장은 “박종철이 살아 있다면 촛불도 같이 나가고, 세상이 바뀌는 것도 함께 봤을 것”이라고 했다.

이제껏 그런 상상의 어려움에 대해 말해왔는데, 팩트만 말하면 이렇다. 박종철이 살해된 것은 개헌 문제를 둘러싼 공방이 치열하던 정국에서였다. 청계피복 노동자들과의 연대투쟁 때문에 이미 구속된 적이 있는 박종철은 CA(제헌의회)라 불린 정파 계열 학생조직의 일원이었다. 박종철 개인이 얼마나 그 노선에 깊이 동의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 그룹은 ‘호헌 철폐 독재 타도’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들은 정파들 중에서 가장 급진적이어서 관념적이라 비판도 받은 ‘제헌의회 소집’을 주장했다. 6월항쟁이 불완전한 승리를 거둔 뒤에도 계속 ‘파쇼하의 개헌 반대’를 외쳤다. 민중의 변혁을 통해 내용에서나 절차에서나 근본적으로 민주적인 헌법을 만들자는 것이었겠다. 실제로 1987년 가을의 헌법 개정은 시민 참여가 제한된 가운데 양김과 군부 간의 타협을 배경으로 ‘8인 정치회담’이라는 정당 엘리트의 손으로 급하게 이뤄졌다.(‘역사비평’ 2017년 여름호 참조)

그의 기일에 생각한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고문·용공조작 없는 나라를 확고하게 하고, 또 어떤 헌법을 어떻게 가져야 할 것인지? 30년 묵어 너덜너덜한 이 헌법과 체제를 고치자는 데 반대하는 세력도 여전히 크다.

<천정환 | 성균관대 교수·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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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중 법원행정처가 판사회의 의장 선출에 개입하려 했다는 정황이 나왔다.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을 조사 중인 대법원 추가조사위원회가 이러한 내용이 담긴 문서를 확보했다는 것이다. 정당은 물론 민간단체 선거에서도 외부의 개입은 용납되지 않는 부정행위에 속한다. 하물며 사법부에서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이다. 추가조사위는 의혹의 진상을 명명백백히 규명해야 할 것이다.

양승태 대법원장이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퇴임식을 마치고 차량에 오르기 전 직원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있다. 이상훈 기자

경향신문 보도를 보면, 추가조사위는 행정처 컴퓨터에서 2016년 서울중앙지법 단독판사회의 의장 선출 관련 대책을 담은 문건을 찾아냈다고 한다. 문건에는 당시 유력 후보이던 특정 판사의 성향과 활동을 분석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이른바 ‘대항마’를 내세운다는 부분이다. 해당 판사는 2015년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의 국회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수사검사로서 국가안전기획부·경찰의 은폐·축소 기도를 묵인 또는 방조했다”는 취지의 글을 법원 내부게시판에 올린 인물이다. 당시 양 대법원장은 자신이 임명 제청한 박 후보자가 법원 안팎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면서 비판의 표적이 됐다. 결국 대법원장의 수족과 같은 행정처가 나서 ‘눈엣가시’ 판사의 의장 선출을 저지하려 했을 가능성이 있다. 의장으로 해당 판사가 선출되긴 했으나, 경선 과정에 ‘의외의 인물’이 나섰던 것도 이 같은 의혹을 뒷받침한다.

문제의 행정처 문건 중 일부를 작성한 전 행정처 심의관(판사)은 “행정처 고위관계자의 지시로 문서를 만든 것”이라고 추가조사위에 진술했다고 한다. 이 판사의 진술이 아니더라도, 이런 엄청난 문건을 실무자 단독으로 만들 수 없다는 것은 상식이다. 자율적 기구의 선거에 행정처가 개입하려 했다면, 이는 법관의 독립을 규정한 헌법을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다. 추가조사위는 양 전 대법원장이 문건 작성 사실이나 내용을 알고 있었는지, ‘대항마’ 계획이 실행됐는지 등을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 법원 내부게시판에서 일부 판사들이 ‘행정처 컴퓨터 강제 조사’ 등에 반발하는 데 휘말려서도 곤란하다. 법관의 독립은 주권자가 공정한 재판을 받도록 하기 위한 것이지, 법원 기득권세력을 위한 것이 아니다. 추가조사위는 이를 명심하고 블랙리스트 사건의 전모를 낱낱이 파헤쳐 시민 앞에 드러내야 한다. 양 전 대법원장도 조사 대상에서 예외가 될 수 없음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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