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잠결에 줄거리도 제대로 이어지지 않고 잡다하게 꾸는 꿈을 개꿈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지난해 연말 즈음 함께 사는 언니가 꿈속에 진짜로 개가 나타난 개꿈을 꾸었다. 꿈에 언니는 초록빛이 펼쳐진 어느 정원에 서 있었다. 나지막한 정원수들이 가지런히 앞으로 늘어서 있는데 저 끝쪽에 죽은 나무 몇 그루를 사람들이 파내고 새로 묘목을 심었다. 그 장면을 보고 있는데 시커멓고 커다란 덩치의 개 서너 마리가 나타나서 주위를 에워쌌다. 이 꿈이야기를 듣고 나는 얼른 오만원권 지폐 한 장에 꿈을 샀다. 나무를 새로 심는 것도 상서롭거니와 마침 곧 다가올 새해가 개띠해라 틀림없이 길몽이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지난해는 정유년 닭띠해였고 나는 1957년생으로 환갑을 맞았다. 환갑은 과거엔 넘기기 쉽지 않은 삶과 죽음의 경계나이였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서울 시내에는 환갑잔치 전문 대형회관이 흥행했다. 지금은 100세시대를 넘본다 하지만, 몸으로 찾아오는 여러 증상들을 보면 환갑은 노년으로 진입하는 시점임이 틀림없다. 마음으로도 앞으로 남은 날들의 끝자락을 바라보게 했다. 이제 내게 한 단락의 시간이 남아있다고 생각했다. 지금 하는 일들만 잘 마무리하고, 죽기 전에 은거하는 기회를 갖고 삶을 정리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도 길몽에 기대를 거는 걸 보니, 살아있는 존재는 역시 매순간 희망하게 돼있나 보다.

남은 삶을 바라보며 꿈꾼다 한들, 태어나는 것도 죽는 것도 사람 맘대로 되는 게 아니다. 삶에 주어지는 조건과 환경도 천차만별하고 선택의 여지도 별로 없다. 요즘은 전 지구적 삶의 거대한 급류에 정신없이 휩쓸려가는 느낌이 든다. 그럼에도 주어진 삶을 살아내야 하고, 삶의 의미를 찾아 길을 만들어가야 한다. 삶을 살게 하는 것은 생명이 지닌 고유한 힘이고,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은 고유한 반성능력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삶은 무엇이 되는 데 있는 게 아니라, 가치를 실현하는 길에 놓여 있고, 꿈이 그 길을 안내하는 역할을 한다. 꿈의 설계가 잘못되거나, 꿈을 부서뜨리는 장애들에 부딪힐 때, 개인이나 공동체는 깊은 좌절과 혼란을 겪게 된다.

20대 때, 나는 헝가리 출신 미학자 게오르그 루카치(1885~1971)의 <소설의 이론> 속 첫 문단의 글을 무척 좋아했다.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 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그리고 별빛이 그 길을 훤히 밝혀주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이런 시대에 있어서 모든 것은 새로우면서도 친숙하며, 또 모험으로 가득 차 있으면서도 결국은 자신의 소유로 되는 것이다. 그리고 세계는 무한히 광대하지만 마치 자기 집에 있는 것처럼 아늑한데, 왜냐하면 영혼 속에서 타오르는 불꽃은 별들이 발하고 있는 빛과 본질적으로 동일하기 때문이다.”

이 글은 고대 그리스 시대를 완결된 문화로 묘사한 것이다. 이 글에서는 정신과 삶의 세계가 일치하고 창공에 빛나는 별을 품은 우주에까지 삶과 꿈의 일체감을 느끼는 존재의 가득찬 풍요로움이 느껴진다. 루카치는 고대 그리스 시대를 선험적 좌표가 있고 서사시적 총체성이 유지되던 세계라 하면서 인간 영혼이 안주할 수 있었던 때로 보았다. 이에 반해 근대 자본주의 시대는 선험적 좌표와 총체성이 무너진 세계라고 보았다. 그는 제1차 세계대전이 벌어진 1914년에 이 책을 구상했다고 한다. 당시 독일 사회민주당을 비롯한 좌파 지식인들도, 청년들도, 모두 전쟁을 지지하고 열광했다. 그러나 그는 전쟁이 ‘도덕적 가치가 완전히 타락한 세계상황’을 초래한 서구문명의 위기의 해법이 못된다는 이유로 적극 반대했다. 이런 절망적 상황 속에서 그는 유토피아적 희망을 품고 이 책을 썼다. 나중에는 1917년의 러시아 사회주의혁명을 해답으로 믿기도 했다. 그러나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소련)은 1991년에 해체됐다.

젊은 시절 좋아하던 이 글을 다시 들춰보니 한 세기 전의 사람이 절망하고 또 꿈꾸며 삶을 붙잡고 뒤척이던 모습이 그려진다. 꿈이 현실화된다 해서 유토피아가 도래하지는 않으며 그럼에도 의미를 찾아가는 삶의 길은 끝나지 않는다. 루카치가 당시 세계의 붕괴 앞에서 고민하고 희망을 찾던 그 시기로부터 한 세기가 지난 지금 세계는 어디쯤 와 있으며 지금 이 시기에 살고 있는 사람은 무슨 꿈을 꾸어야 하는 걸까.

그러고 보니 나는 한국전쟁 후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이다. 초등학교 시절에 라면과 커피, 식빵이 처음 생산됐다. 그 무렵부터 지금까지 50여년 동안 산업화과정과 함께 성장했다. 지금 우리 사회를 주도하고 있는 세대가 대체로 나와 같은 60대 전후라고 본다면, 이 세대는 삶의 서사적 총체성과 선험적 좌표를 갖추어 인간 영혼이 안주할 수 있는 정신적 고향으로서 전거가 될 만한 세계를 갖고 있지 않다. 이 세대는 한반도 분단 이전의 체험도 없다. 70년 넘게 지속되는 분단은 공간적·정신적 장애로 진정한 발전을 가로막고 있지만, 북핵 문제로 위기가 가속화되고 있는 암담한 상황이다. 이 세대는 꿈이 불명확하고 온전한 형태로 존재할 수 없었다. 우리는 지금의 청년세대에게 꿈을 전해주지 못했다. 정신과 삶의 세계의 일치, 나아가 별을 품는 우주에까지 일체감을 느끼는 존재의 행복감을 느낄 기회가 없었다. 또한 행복감의 원체험이 없기에 갈망이나, 상실의 절망감도 별로 없는 듯하다.

새로운 해를 맞는 지금, 우리는 근대화를 이끌었던 패러다임이 붕괴되는 과정을 겪고 있다. 이 시대에 ‘성장’만큼 꿈으로 군림한 단어가 또 있을까. 그러나 인간의 물질적 성장은 정확한 비례치로 지구를 파괴했고, 기후변화를 초래했고, 전 지구적 인구과잉을 초래했다. 이제는 가급적 빨리 에너지전환을 해서 기후변화시대에 대처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했다. 이로 인해 우리 삶과 문화가 성장시대로부터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해 예측할 능력이 부족해서 좀처럼 꿈을 그려내기가 어려워 뒤척인다. 우선은 ‘성장’이라는 단어 앞에 ‘정신적’이라는 말을 얹어본다. 우선은 아주 크게 성장의 방향선회를 해야 할 것 같아서이다.

<강금실 | 법무법인 원 변호사·포럼 지구와사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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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이 몸살을 앓고 있다. 최근 세종시 교육부 앞에는 대학 문제를 고발하거나 혁신을 요구하는 수많은 플래카드가 나부끼고 있다. 그러다보니 문재인 정부 출범 이래 대학 관련 뉴스도 하루가 멀다 하고 등장하고 있다.

최근 대학과 관련한 반가운 뉴스가 있다면, 폐교 대학 잔여재산의 국고 귀속 법안이 국회 상임위를 통과한 것이다. 이 법안이 본회의를 통과하게 되면, 소위 사학의 먹튀방지법으로 기대할 만하다.

이 법안은 대학의 공공성을 되찾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사학이 공공성을 잃고, 사유화된 배경에는 사립학교법이 있다. 해방 이래 대부분의 사립대학들은 설립자나 이사장, 그 일족의 것이었고, 그들이 ‘오너’로 통칭되었다. 최근 중앙대 사태의 원인 역시 박씨 일가의 오너라는 잘못된 의식에 기인하고 있다.

그러한 ‘오너’라는 사립대학의 사유화에 의해 대학의 공공성이 파괴된 환경에서, 이를 더욱 황폐화시킨 것은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대학구조개혁평가사업’이다. 이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는 데에는 다소 시간이 걸린다. 1995년 김영삼 정부의 ‘5·31 대학설립준칙주의’에 의해 사학이 우후죽순 설립되고 확대되었다. 그 결과로 학령인구 절벽시대에 폐교 대학 문제가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 초래됐다. 얼마 전에 확정된 서남대 폐교 등 최근 문을 닫게 된 곳은 4년제 대학 9곳, 대학원대학 2곳, 전문대 2곳이다.

정부는 대학 폐교를 치적처럼 얘기했지만, 대책 마련은 전혀 하지 않았다. 당장 시급한 것은 폐교 대학의 잔여재산 처리 문제이다. 그간 사립학교법 35조에 따라 ‘정관으로 지정한 자’, 즉 부정을 저지른 법인 이사 또는 설립자 등이 잔여재산을 편법적으로 사유할 수 있도록 정부 당국이 눈감아 줬다. 법 자체가 범법자들에게 회생의 길을 열어주는 모순을 낳았다.

이번 사립학교법 개정안인 폐교 대학 잔여재산의 국고 귀속 조치는 사립학교 교육 지원 비용의 재원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대학 폐교로 인해 발생하는 학생들의 등록금, 실직하게 된 교수와 교직원의 인건비, 명예퇴직 관련 비용, 폐교에 의한 면직 후 생계안정, 재취업 등을 지원할 수 있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하다. 나아가 1주기 대학구조개혁평가사업의 후속판인 ‘2018년 대학기본역량진단사업’으로 계속 발생하게 될 가능성이 있는 폐교 대학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게 되었다.

또한 이번 개정은 그간 사학의 자율성에 대한 오해를 불식시킬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해주고 있다. 대학의 자율성은 대학 구성원인 학생, 교수·연구자, 직원 등의 자율성에 기초하며, 그 자율성이 살아 있어야 대학의 민주성과 공공성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다.

혹자는 이번 개정안이 본회의를 통과하더라도 내년 2월 폐교를 앞둔 서남대에는 ‘불소급의 원칙’에 따라 적용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한다. 2월 말 본회의를 통과하면 별 문제이긴 하겠으나, 폐교 대학 문제는 대학적폐의 하나로, 70년간 유예된 사학의 문제를 바로잡는 것이므로 시효를 두어서는 안된다.

나아가 이번 개정안의 후속 조치가 강구되어야 한다. 일차적으로 비리사학 문제와 부실대학 문제를 분리해서 접근해야 한다. 또한 폐교 대학 문제는 잔여재산 문제로 환원할 수 없고, 학생·교수·직원 등 사람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폐교로 인한 지역 경제와 문화의 몰락에 대한 이해도 절실하다. 근본적으로는 빈약하기 짝이 없는 고등교육정책에 대한 혁신적 정책과 실천이 급박하다. 교육 백년대계 정신을 바로 세우지 않으면 지식기반사회는 점점 멀어질 것이다.

<김귀옥 | 한성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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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명의 작가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여성이 처한 현실을 이야기하는 <현남 오빠에게>(다산책방)의 표제작인 조남주의 ‘현남 오빠에게’는 주인공 여성이 10년을 만나며 사랑을 나눈 남자 친구인 현남 오빠의 청혼을 거절하는 편지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내내 존댓말로 이어지던 편지는 마지막에서 갑자기 어조가 바뀌며 “오빠가 나를 한 인간으로 존중하지 않았다는 것. 애정을 빙자해 나를 가두고 제한하고 무시해왔다는 것. 그래서 나를 무능하고 소심한 사람으로 만들었다는 것”을 질타합니다. 그 편지는 이렇게 끝납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오빠가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나를 돌봐줬던 게 아니라 나를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사람으로 만들었더라. 사람 하나 바보 만들어서 마음대로 휘두르니까 좋았니? 청혼해줘서 고마워. 덕분에 이제라도 깨달았거든, 강현남, 이 개자식아!”

저는 “이 개자식아!”가 2017년 최고의 ‘어록’이라고 생각합니다. 비슷한 말은 최근 시청률 1위를 달리고 있는 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에도 등장합니다. 34회의 마지막에서 흙수저 여자 서지안(신혜선 분)이 집에서 쫓겨나 자신의 주변에서 맴도는 금수저 남자 최도경(박시후 분)에게 당신이 신경 쓰이고 짜증 난다고 말을 하자 “그거 나 좋아한다는 말로 들린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서지안은 “어, 내가 너 좋아하는 거 몰라? 알잖아…. 그런데 어떻게 신경을 안 쓰냐. 이 거지 같은 자식아”라며 사실상 사랑을 고백합니다.

2017년에 <82년생 김지영>(조남주, 민음사)을 비롯한 페미니즘 소설들에서 여성 주인공들은 주어진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자신의 상처를 한껏 드러내면서 우리 사회에 일침을 가하기 시작했습니다. ‘놀이 같은 저항’이거나 ‘거리의 투쟁’이거나 ‘가차 없는 결별 선언’이거나 ‘분노의 감정 표출’을 주저하지 않습니다. 이런 용기를 어떻게 갖게 되었을까요. 더 이상 뒤로 물러설 수 없는 상황에 너나없이 몰려있었지만 서로의 마음을 솔직하게 나눠볼 기회가 없었지요. 그러다 2016년 말부터의 촛불광장에서 모든 세대가 여과 없이 분노를 맘껏 표출하면서 대안을 찾자고 목청껏 소리쳤습니다. 그러니 소설 속의 젊은 세대가 나태와 무기력에서 벗어나 인간적 자존감을 추구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는 것은 당연할 것입니다. 이 같은 자기표현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아존중’의 원초적 체험은 2018년에도 이어질 것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출판 트렌드는 10년을 주기로 반복되곤 합니다. ‘IMF 외환위기’라는 세계화의 원초적 체험을 했던 1997년 무렵에도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욕망의 수위가 최고 수위로 높아졌습니다. <나도 포르노그라피의 주인공이고 싶다>의 저자 서갑숙이 즐겼다는 ‘9시간의 정사’가 대표적입니다. 그즈음 <모순>(양귀자)의 주인공은 현실과 몽상 중에서 선택할 여유라도 있었습니다. 아니면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은희경)의 주인공처럼 애인은 적어도 세 명 정도는 두고 반칙의 사랑을 즐기면 그만이었습니다. 개인은 벤처열풍에 휩싸이면서 성공신화를 꿈꿨습니다. 하지만 자기계발서는 항우울증 치료제에 불과했습니다. 그야말로 일장춘몽이었습니다.

이후 자기계발을 통해 아무리 능력을 키워보아도 성공이 말처럼 다가오지 않으니 ‘88만원 세대’가 등장한 2007년 직전부터 ‘성공’을 포기하고 ‘나만의 행복’으로 말을 갈아탔습니다. 이후 글로벌 금융위기마저 엄습하자 개인은 군중에게 지혜를 얻는 개중(個衆)화의 원초적 체험에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공지영의 소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의 여주인공은 집안 오빠에게 강간당하고 가족의 도움마저 받지 못한 채 세 번이나 자살 시도를 합니다. 그녀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죽음을 기다리는 남자 사형수를 찾아갑니다. 두 사람은 매주 만나는 세 시간, 목요일 오전 10시~오후 1시까지의 제한된 시간을 가장 행복한 시간으로 여겼습니다. 이처럼 개인이 추구하는 행복의 범위를 축소하던 개인은 이명박근혜 정부 9년 동안 내내 ‘셀프힐링’의 깊은 늪에서 허우적거렸습니다.

1980년대에 태어난 세대는 단 한 번도 고성장의 경험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세상에서 일을 시작하면서부터는 대공황이나 다름없는 장기불황에 시달려야만 했습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불평등 구조이다 보니 저출산과 자살률은 세계 최고 수준이 되었습니다. 1000만 관객 돌파를 코앞에 두고 있는 영화 <신과 함께-죄와 벌>의 김자홍(차태현 분)은 처자식도 없이 과도한 노동에 시달리다가 지옥에 끌려갔습니다. 가난으로 저지른 치명적인 원죄 때문에 15년 동안 어머니를 그리워하면서도 찾아가 보지 못한 채 말입니다. 죽음의 수용소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은 축적의 경험이 전혀 없습니다. 컵밥과 라면을 먹으면서 돈을 모아 친구와 1박2일의 여행과 맛집 체험을 인생 최고의 행복으로 여길 뿐입니다. 김난도 교수팀은 <트렌드코리아 2018>(미래의창)에서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는 ‘소확행’을 2018년 최고의 트렌드로 꼽았습니다.

20년 전처럼 무엇을 고를 여유는 없습니다. 그저 온몸으로 달려들어 소리치며 현실을 돌파해야 합니다. ‘개자식’이나 ‘거지 같은 자식’이라는 분노의 욕쯤이야 늘 입에 달고 살아갈 것입니다. 20년 전에는 자신을 지키려는 마음에서 자신의 반쪽 모습이라도 드러냈지만 이제는 어떤 일에서라도 자신의 자리를 내주지 않으려 들 것입니다. 아니 그들이 다른 이에게 내줄 자리는 없습니다. 최소한의 자리에서나마 자신이 주인공이 되려 할 것입니다. 자신이 주인공이 되어 스스로 즐기면서 사회적 정의와 개인의 품위를 지켜갈 것입니다. 그렇게 자신을 온전히 지켜내려는 움직임이 바로 황금개띠해의 최고 트렌드가 될 것입니다.

<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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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 계획을 세우노라면 옆에서 초를 칩니다. “퍽이나!” 곁에서 늘 보아오던 사람이 나를 가장 잘 알기에 살짝 무안한 마음이 듭니다. 이번엔 다르다고 궁색한 항변을 해보지만 역시 돌아오는 말은 “그래, 해가 서쪽에서 뜨면”입니다. 12월31일까지 하지 못한 것이 해 바뀐다고 달라질 리 없다는 비웃음입니다.

실없는 소리, 실행 못할 장담을 많이 하고 또 지겹게 듣고 사는 우리입니다. ‘개가 콩엿 사 먹고 버드나무에 올라가겠다’ ‘태산이 바람에 쓰러지거든’ ‘솔방울에서 딸랑 소리 나거든’ ‘병풍에 그린 닭이 홰를 치거든’ ‘당나귀 뿔 날 때까지 기다려라’ 등등 절대로 못하거나 말도 안 되는 소리임을 뜻하는 속담은 그래서 참 많습니다.

살아오면서 여러 사람들의 숱한 결심을 봅니다. 좌우명처럼 딱 붙여놓기도 하고, 크게 공표하기도 하고, 지키지 못하면 성을 갈고 명동 한복판에서 팬티바람에 춤을 추겠다던 그 크고 많은 결심들이 옳게 지켜진 경우를, 우린 과연 몇 번이나 보았을까요. 그럼에도 우린 새해가 다가오면 ‘새해’라는 단어에 또다시 의미를 부여합니다. 뭔가 새로워질 수 있겠다는 주술적인 희망이겠지요. 한해에도 작심삼일만 골백번이었지만 그래도 이번만은 꼭 여태까지와 다른 내가 되고 싶다고 깊이 소망합니다. 그러나 사실 결심이 클수록 그만큼 의지가 약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각종 도구들을 장만해보지만 도구를 쓰는 건 역시 인간입니다. 도구를 사용할 ‘의지’가 없는데 그게 다 무슨 소용일까요.

수십 년을 어제처럼 산 오늘의 나입니다. 오늘의 나부터 바뀌지 않으면 미래는 늘 어제고, 해마다 되풀이되는 결심들은 땅속에 묻힐 때야 비로소 끝납니다. 그러니 신년 계획 아래 이 속담을 반어법으로 달고 매년의 흐지부지를 경계해보는 건 어떨까요.

‘~하겠다!’ ‘배꼽에 노송나무 나거든.’

<김승용 |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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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자체로서 나쁜 것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것이 나쁜 경우 대개 그것은 그것이 너무 적거나 많은 데서 비롯된다. 그 자체로서 나쁜 게 아니라 너무 과소하거나 과대해서 나쁠 뿐이다. 입시교육만 해도 그렇다. 그것도 사실 따지고 보면 너무 과도해서 문제인 것이지 적절하다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 심지어 주입식·암기식 교육도 너무 지나쳐서 문제인 것이지 적절하다면 오히려 좋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적절한 수준을 맞추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지루하고 고단한 과정을 거쳐야 겨우 그 근처에 다가갈 수 있다. 또한 적절함에 대한 탐색은 인간의 영혼을 매료시키지 않는다. 인간의 영혼을 자극하는 것은 대개 과소함이나 과대함으로의 편향이다.

최근 교사 사회에선 교사의 정치적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는 법률 조항들에 대한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국민이 훨씬 많을 것이다. 나는 그분들께 이런 질문을 드리고 싶다. 교사의 정치적 자유와 권리에 대한 제한은 과연 ‘적절한’ 정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가?

투표 행위 외에 교사의 정치적 활동은 사실상 모든 게 금지다. 정당 가입만 금지된 게 아니다. 일반 국민에게 문호가 개방된 국민경선 같은 정당 활동의 참여도 금지다. 심지어는 정치후원금을 내는 행위조차 금지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정치후원금에 대해 세상을 더 좋게 가꾸는 소금과 같은 돈이라 했다. 그러나 교사에게는 그러한 돈을 정당과 정치인에게 보낼 자유와 권리가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다.

교사는 교사직을 버리지 않고는 공직선거에 나설 수가 없는데, 국회의원이나 자치단체장이나 자치단체 의원 선거에만 그런 게 아니다. 초·중·고 학교교육을 관할하는 교육감 선거에도 나설 수 없다. 대학교육을 담당하는 교수는 교수직을 유지하며 교육감 선거에 나설 수 있지만, 초·중·고 교육을 담당하는 교사들은 교사직을 버려야만 그렇게 할 수 있다. 대학교수는 자신이 지지하는 교육감 후보를 위해 정치적 활동을 할 수 있지만, 교사는 지지하는 교육감 후보가 있어도 아무런 정치적 활동을 할 수가 없다. 다른 선거도 아닌 초·중·고 교육을 관할하는 교육감 선거인데 말이다.

이것을 적절한 수준의 제한으로 보긴 어렵다. 헌법에 보장된 권리인 종교의 자유에 비추어 생각해 보자. 종교의 자유가 있다 해도 교사들은 학교에서 특정 종교에 대한 신앙을 학생들에게 설교할 자유가 없다. 엄하게 금지됐다. 교사들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금지다. 그러나 교사들도 학교 밖에선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고 자신의 종교를 남에게 권유할 수 있다. 교사의 정치적 행위에 대한 제한도 이와 같아야 하지 않을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선진국에 비추어 생각해 보자. OECD 국가들은 교사의 정치적 자유와 권리를 우리보다 폭넓게 인정하고 있다. 제한을 해도 우리에 비해 그 정도가 훨씬 약하다.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모두 마찬가지다. 독일의 경우엔 교사의 정치적 활동을 오히려 적극 권장하는 듯한 느낌이다. 우리도 이들 나라와 같아야 하지 않을까?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일반 국민의 정치적 자유와 권리는 물론 교사의 정치적 자유와 권리 또한 온전히 보장되어야 한다. 설사 자유와 권리를 제한한다 하더라도 ‘적절한’ 정도에 그쳐야 한다. 적절함이 올바름이다.

<이기정 | 서울 미양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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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의 끝인 12월이 밋밋하게 30일로 끝나지 않고 혹처럼 하루 더 있는 게 얼마나 다행한가. 신년으로 연결된 등대처럼 그날이 있어 일년의 마무리를 할 수 있는 게 퍽 다행이다. 무언가 마음을 가다듬어야 할 디딤돌이 필요한 시기에 무엇을 할까. 거제 내도(內島)로 갔다. 구조라 선착장을 떠난 배는 10분 만에 ‘자연이 품은 섬, 내도’에 일행을 내려주었다. “시계방향으로 돌되 쓰레기는 남기지 마시고요. 동백나무, 후박나무, 구실잣밤나무 등 천연 원시림이 끝내줍니더.” 아직도 귓전에 남은 선장님의 구수한 입담.

산의 높이를 재는 기준인 해발(海拔)이 그대로 환히 드러나는 곳을 출발해서 시계바늘처럼 한 바퀴 돌기로 했다. 옹기종기 모인 집에 바닷물처럼 들락날락거리는 주민의 수. 내도에는 자동차가 없다. 당연히 아무런 석유냄새가 없었다. 깨끗한 공기 사이로 세 종류의 길이 있다. 주민이 주로 다니는 마을길과 관광객이 사용하는 해안길. 그리고 염소가 닦아놓은 희미한 산길. 이날도 보았다. 나를 물끄러미 구경하더니 후다닥 절벽으로 뛰어가는 어린 염소 세 마리.

내도 나무를 살피면서 세심전망대를 거쳐 신선전망대에 도착했다. 섬에는 무덤도 물론 있었다. 멀리 외도(外島)가 반짝거렸다. 외(外)에 주목하면서 이 세상 바깥에 대해서도 한번 생각을 해본다. 지금은 말보다는 마음을 관찰해야 하는 시기. 무술년을 가늠하며, 나이를 재보며, 세월의 둘레에 대해서 궁리해 보는 시간.

어느덧 한 바퀴를 다 돌아 희망전망대에 도착하니 이런 팻말이 있다. “시간이 갈수록 젊어지는 참식나무 이야기. 참식나무의 어린 잎을 보면 누런 털이 엄청 많은데 도무지 젊은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다. (…) 참식나무의 털은 시간이 가면 오히려 없어지고 맨질맨질해진다.” 조약돌처럼 흩어지는 나이를 걱정하는 이라면 거제 내도의 참식나무 아래로 올 일이다. 이곳에서 나무의 기운을 쬔다면 나이를 거꾸로 먹는다고 하지 않는가. 남부 해안에 흔하게 도열해 있는 참식나무. 한겨울에도 붉은 열매로 직박구리를 불러들이는 나무. 금으로 칠한 듯 잎 뒷면이 연하장처럼 빛나는 참식나무. 녹나무과의 낙엽교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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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신년사를 통해 “국민의 삶의 질 개선을 최우선 국정목표로 삼겠다”고 말했다. 무역 1조달러 시대 재진입, 3%대 성장률 등 경제가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경기 회복의 온기를 실물경제 전반으로 확산시켜 체감할 수 있는 성과를 만들어 내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지표 개선에도 불구하고 삶이 나아졌다고 느끼는 시민은 거의 없을 것이다. 여전히 소득은 제자리이고 제대로 된 일자리를 찾는 것은 지난한 일이다. 올해부터 시작된 최저임금 1만원 로드맵을 두고 기업들의 불만은 가라앉지 않는다. 민간 일자리 창출에 대해 정부는 혁신산업을 선정하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했지만 재계는 규제완화가 먼저라고 맞서고 있다. 이런 차원에서 보면 올해는 사람중심 경제의 착근 여부를 가늠하는 시금석의 해가 될 것이다.

원칙과 현실이 부딪히면서 현실론이 우세해질 경우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갈 수도 있다. 설상가상으로 여전히 많은 수의 경제전문가들은 문재인노믹스에 회의적이다. 경향신문 조사에 따르면 경제전문가들의 58.1%가 소득주도 성장은 성공하기 힘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최저임금 1만원 인상, 공무원 증원에도 부정적이었다. 소득주도 성장과 사람중심 경제는 대기업·수출의 낙수효과에 의존해온 기존 한국 경제의 틀을 바꾸는 작업이다. 문재인 정부 내내 노력해도 주춧돌을 올려놓는 수준에 그칠지도 모를 장기적인 과제다. 그렇다면 단기 성과에 조급해하기보다 새로운 경제 정책 방향의 중요성을 시민들에게 설득하면서 더 많은 공감을 이끌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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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들어 개헌을 거론하는 목소리가 높다.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개헌을 지지하는 응답이 70% 넘게 나왔다. 여야 정치권은 지난 연말 개헌특위와 정개특위를 통합, 6월까지 운용하기로 했다. 2월까지 개헌안을 내는 문제는 더 협의하기로 했다. 그러나 개헌을 둘러싼 정당 간, 시민 간 간극은 크다. 여론조사 결과 정부 형태는 대통령 4년 중임제, 개헌 시기는 올 6월이 30~40%로 다소 우세했지만 압도적으로 지지받지는 못했다. 개헌에 대한 찬성 의견은 높지만 각론은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개헌에 대한 높은 지지는 당장 개헌하라는 명령이라기보다는 정치의 수준을 높여달라는 주문으로 해석하는 게 합리적이다. 지금 개헌은 정치개혁의 동의어에 가깝다. 그렇다면 정치권이 할 일은 자명해진다. 개헌 취지를 벗어난 채 개헌 시기와 방법을 둘러싸고 정쟁을 할 게 아니라 실현 가능한 정치개혁에 집중하는 것이다. 중장기적으로 개헌을 추진하면서 단기적으로 선거구제 개편에 합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선거제도를 바꿔야 개헌의 핵심인 정부 형태에 대한 논의도 제대로 이뤄진다.

선거제도 개편은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것이어야 함은 물론이다. 정당의 득표수와 국회 의석수 간 비례성을 최대한 확보하자는 방향에 관해 공감대도 형성돼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이미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제안해놓고 있다. 이번 조사에서도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에 찬성하는 의견이 절반을 넘었다. 연말 여야 의원 26명이 선거구제 개편을 위해 ‘민심그대로 정치개혁연대’라는 초당적 모임을 결성했다. 그들의 활약을 기대한다. 각당은 서둘러 선거제도에 관한 당론을 모아야 한다. 자유한국당은 ‘문재인 정부 심판론’을 흐린다며 6월 개헌을 반대하고 있다. 그렇다면 선거구제 개편에라도 나서야 한다. 이마저 거부한다면 그것은 기득권을 지키겠다는 말밖에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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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1일 신년사를 통해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의사를 밝히고, 남북관계 개선에 나서겠다고 선언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평창 동계올림픽이 “민족의 위상을 과시하는 좋은 계기”라면서 “대표단 파견을 포함해 필요한 조치를 취할 용의가 있으며 이를 위해 북남(남북) 당국이 시급히 만날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또 “우리는 민족적 대사들을 성대히 치르고 민족의 존엄과 기상을 내외에 떨치기 위해서라도 동결상태에 있는 북남관계를 개선하여 뜻깊은 올해를 민족사의 특기할 사변적인 해로 빛내어야 한다”며 남북관계 개선을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남북 간 군사적 긴장상태의 완화를 위해 남북이 노력해야 한다며 지난해 7월 남측이 제안한 군사당국 간 회담에 응할 가능성도 비쳤다. 각계각층 단체들과 개별적 인사의 대화와 접촉, 왕래의 길을 열어놓겠다며 남북교류 재개 방침도 내놨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1일 평양 중앙위원회 청사에서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신년사의 남북관계 개선론이 원론적이었던 것에 비하면 올해 신년사는 구체적이다. 북한이 지난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인 ‘화성-15형’을 발사하고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뒤 올해부터 대화에 나설 것으로 예상됐지만 이처럼 남북대화 의지를 전면적으로 드러낸 것은 주목할 만하다. 김정은의 대화 의사는 핵·미사일 실험에 따른 국제사회의 강력한 대북 제재로 어려움을 겪는 현 상황을 타개하려는 구상일 수 있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압박기조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고 남북대화를 북·미대화의 지렛대로 활용하겠다는 것일 수도 있다.

일각에서는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미국 본토 전역이 우리의 핵 타격 사정권 안에 있다”면서 “핵 단추가 내 사무실 책상 위에 항상 놓여있다”고 말한 것으로 미루어 한·미 간 북핵공조를 흐트러뜨리려는 책략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자유한국당은 ‘화전양면식 신년사’라고 평가절하했다. 북한의 의도가 무엇이든 남북관계는 우리의 필요와 관점에서 판단해야 한다.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평창 동계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르고 북·미 간 긴장이 전쟁으로 치닫지 못하게 막는 것이 우리의 당면 과제이다. 남북대화가 이 과제를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마다할 이유가 전혀 없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6월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반도 문제에서 운전대를 잡겠다고 했지만, 그간의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핵·미사일 도발을 하는 북한에 대북 군사공격을 거론하는 트럼프 행정부 때문에 한국 정부의 운신 폭이 좁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11월 유엔총회에서 평창 동계올림픽 기간 중 일체의 적대적 행위를 중단하자는 휴전결의를 이끌어냈고, 북한에 올림픽 참가를 제안하면서 분위기를 다져왔다. 그런 노력에 북한이 화답한 셈이고, 이제야 문재인 정부가 운전석에 올라 실력을 보일 시기가 온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을 설득해 북·미대화로 이끌어낸다면 동북아에서 한국의 외교적 공간은 그만큼 넓어질 수 있다.

지난 10년간 동결된 남북관계를 복원하는 데는 여러가지 어려움이 따를 것이다. 국제사회의 북핵 공조에 균열이 발생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지 않도록 주변국과의 충분한 협의도 필요하다. ‘동맹’이냐, ‘민족’이냐는 식의 흑백논리가 부각되면서 남남갈등이 격화될 가능성도 경계해야 한다. 정부 당국은 보수정부 10년을 거치며 생긴 관성을 탈피해 남북관계 개선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디딤돌이 되도록 상상력과 지혜, 용기를 발휘해야 한다.

북한도 모처럼의 남북대화가 성과로 이어지도록 하기 위해 핵·미사일 실험을 중단하는 성의를 보일 필요가 있다. 한 달여 남은 평창 동계올림픽이 명실상부한 ‘평화의 제전’이 되도록 준비하려면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가급적 이른 시일 내에 남북 체육회담이 열려 남북이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지혜를 모으는 모습을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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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밝았다. 촛불시민혁명으로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2018년 중반에 집권 2년차를 맞이한다. 평등한 기회, 공정한 과정, 정의로운 결과라는 국정철학을 내세운 정부는 촛불시민의 뜻을 받들어 나라다운 나라,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나라로 다시 세우려 애쓰고 있다. 출범 7개월을 넘겨 새해를 맞으면서 국민이 체감하는 변화와 혁신의 성과를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감을 가질 것이다. 6월3일 치러질 지방선거가 중간평가의 성격을 띠면서 정부와 여당은 물론이고 야권도 승리가 절실하다. 새 정부는 적폐청산과 개혁에 드라이브를 걸 수 있고 국정과제 추진에 힘을 얻을 수 있으니 개혁의 속도를 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필승이 필요할 것이다. 보수야당도 지리멸렬한 보수층 결집을 위해 선방이 필요하다. 소수정당들은 살아남기 위해 이합집산의 정계개편을 꾀하고 있다.

여소야대의 입법지형에서 개혁은 대통령 뜻대로 되지 않는다. 국정과제 실현을 위한 중점 법안은 상당수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12월 임시국회 내내 헌법개정특별위원회 연장을 둘러싸고 정쟁으로 허송세월하다가 겨우 몇 건의 민생법안 처리로 밥값을 하긴 했다. 헌법개정특위와 정치개혁특위 활동 기한을 6월까지 연장하기로 했고, 입법권을 가진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안건도 통과되어 법원·법조·경찰개혁소위원회와 검찰개혁소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했다. 빈손국회의 위기에서 그래도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을 자격은 얻은 셈이다. 그러나 아직도 무수히 많은 법안이 쌓여 있다. 임시국회 마지막에 처리한 안건을 제외하더라도 20대 국회에 발의된 법안이 7000건이 넘는다고 한다. 국정원 개혁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법 등 핵심 개혁 법안은 논의조차 하지 못했다.

누구 탓일까. 입법의 홍수 속에서 시간이 없어서일까. 아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탓이다. 법안의 체계와 자구를 정비하여 위헌 소지도 없애고 법률다운 법률을 만들기 위한 최후 보루인 법사위가 붙잡아 놓고 있기 때문이다. 상원 역할을 부여받은 법사위가 상임위원회에서 여야가 깊이 논의하여 합의한 법안도 ‘체계·자구심사권’을 무기로 잠재우고 있기 때문이다. 국회법 제86조에 따라 법률안을 각 상임위에서 심사를 마치거나 입안할 때에는 법사위에 회부해 체계와 자구에 대한 심사를 거쳐야 한다.

1951년에 도입된 이 제도는 법안의 내용이 여러 상임위와 중복되어 있거나 방대한 예산을 필요로 하는 법안을 법사위에서 보다 심도 있게 논의하게 되면 법안의 완결성이 높아질 수 있다는 점에서는 거쳐야 할 절차다. 소급입법금지의 원칙, 명확성의 원칙, 과잉금지의 원칙 등 위헌소지를 걸러내는 입법절차이기도 하다. 그러나 쟁점법안의 경우 법안 통과의 마지막 관문인 법사위에서 여야가 이해관계 대립으로 정치적 공방을 벌이면 입법이 지연되거나 막혀버리게 된다. 다른 상임위에서 통과된 법안의 심의·의결을 마냥 미루거나 법안의 내용 자체를 바꾸기도 한다. 법사위에 모인 법안들을 여야가 협상에 이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법사위가 입법마비의 진앙이자 블랙홀이라 불리는 것이다. 다른 상임위에서 통과된 법안이 법사위에 몰리면서 업무과중으로 병목현상이 생기기도 하지만 정치적이고 정략적인 이유로 법사위 전체회의를 열지 않으면 본회의에 올라오지도 못한 채 입법권은 잠자게 된다.

국회법 제86조를 개정해야 한다. 이를 악용하는 법사위가 법안처리의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다. 국회 안의 갑질 횡포다. 국회에 법률전문가가 드문 시절에 도입된 이 제도는 입법의 비효율성을 낳기도 하지만 입법부가 법안심사를 빌미로 행정부를 괴롭히는 도구로 남용되고 있다. 법사위 법안 처리 과정에서 해당 법안과 관련이 있는 국무위원들이 모두 법사위에 출석 대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가 국회법 개정안을 조만간 발의하기로 했다. 민생·개혁 발목 잡기 수단으로 변질된 법사위의 체계·자구심사권을 그대로 둘 수 없다는 것이다. 제1야당이 맡고 있는 법사위원장의 몽니로 회기마다 반복되는 입법정체 현상을 막아야 한다. 정권이 교체되고 여야가 바뀔 때마다 발생하는 적폐다.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도 19대 국회에서 법사위의 월권적 심사 중단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추진한 바 있고, 2015년에는 국회 법사위의 기능을 제한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지금의 야당도 여당시절에, 지금의 여당도 야당시절에는 각각 발목 잡기의 주역이었기에 누구 탓만 할 것은 아니다. 여야가 공수 교대될 때마다 주장하는 바가 같다면 법 개정의 필요성은 증명된 것이나 다름없다. 언론에서 게이트키퍼가 사전검열로 기능하면 안되듯이 법안의 게이트키퍼인 법사위가 더 이상 거름망 이상의 월권을 행사하는 상임위가 되게 해서는 안된다.

<하태훈 |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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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

1951년 7월10일, 한국전쟁을 멈추기 위한 휴전 협상 첫 본회담이 개성 내봉장에서 열렸다. 회담장에 들어선 유엔군 대표단은 북한군 대표단의 앉은키가 커 보인다는 걸 알아챘다. 북측이 유엔군 대표단 자리에 4인치(10.16㎝) 정도 낮은 의자를 놓았던 것이다. 마치 승자가 패자를 내려다보는 것처럼 연출하기 위한 꼼수였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도 이 분야의 전문가다. 지난달 14일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도쿄 총리 관저를 찾았을 때, 아베가 앉은 의자는 홍 대표 의자보다 높았다. 아베는 앞서 지난해 6월 정세균 국회의장이 방일했을 때도 낮은 의자를 배치하려 했으나 무위로 돌아갔다. 정 의장 측이 미리 알고 ‘그렇게 하면 안 만나겠다’고 해서 같은 높이 의자로 교체했다고 한다.

헌법재판관 9명이 앉는 의자가 연갈색 가죽의자로 교체된 헌법재판소 대심판정 모습. 헌법재판소 제공

“학창 시절 공부도 잘하고/ 특별 활동에도 뛰어나던 그녀/ 여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입시에도 무난히/ 합격했는데 지금은 어디로 갔는가/ (중략) 다행히 취직해 큰 사무실 한켠에/ 의자를 두고 친절하게 전화를 받고/ 가끔 찻잔을 나르겠지(후략)”(문정희 ‘그 많던 여학생들은 어디로 갔는가’)

시인이 노래한 ‘큰 사무실 한켠에 놓인 의자’는 ‘공부 잘하고 특별 활동에도 뛰어나던 그녀’의 현 위치를 보여준다. 의자는 권력, 위계, 서열의 상징물이다. 평사원과 과장의 의자, 부장과 임원의 의자가 다르다. 회전의자는 그저 ‘앉는 자리를 좌우로 돌릴 수 있게 만든 의자’가 아니며, 흔들의자는 1970~1980년대 부잣집 하면 떠오르는 클리셰였다.

헌법재판소가 대심판정의 헌법재판관 의자를 모두 교체했다. 붉은색 등받이에 무궁화 문양의 휘장이 새겨지고 등받이 끝이 높이 올라온 목각 의자 9개는 헌재 창립 이후 30년간 대심판정을 지켜왔다. 이를 교체하게 된 데는 ‘탈권위’를 지향하는 헌법재판관들의 의지가 반영됐다고 한다. 별도로 주문 제작하지 않고 시중에서 구입해온 의자는 부드러운 느낌의 가죽 재질이다. 등받이 높이가 낮아졌고, 헌재 휘장도 새기지 않았다.

업무환경이 달라지면 그 속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마음가짐도 조금은 달라질 것이다. 2018년 새해, 더 낮은 자세와 열린 마음으로 일하는 공직자들이 많아졌으면 한다.

<김민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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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1일자 지면기사-

한류의 역사는 20년 정도다. 한류는 우리가 예상치 못할 정도로 큰 물결이 되었으나, 짧은 역사 속에서 한류를 바라보는 내부의 시선은 늘 불안하고 초조했던 것이 사실이다. 일본과 중국에서 반한감정이 고조될 때면 한류 위기설이 불거졌고, 정부는 이 같은 위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각종 위원회를 만들고 대책을 발표해왔다. 그러나 불안감이 고조된 상황에서도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의 성공과 같은 낭보가 들려오면 우리는 또다시 들떠 한류에 대한 낙관적인 기대감을 쏟아내왔다. 이처럼 한류의 낭보와 비보에 일희일비하는 일이 왜 계속될까. 한류가 체계적인 시스템과 정책하에 본궤도에 오르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방증 아닐까.

지난 20년 한류가 성장하는 동안 발생한 대내외적 문제점은 너무도 자명했다. 일본과 중국 내의 반한감정, 콘텐츠의 획일성, 빈곤한 콘텐츠 수익성, 제작을 둘러싼 열악한 조건, 콘텐츠 기업 간 또는 기업과 종사자 간에 이뤄진 부당한 계약 등이 문제점으로 거론돼왔다. 하지만 정책 당국이나 콘텐츠 제작사, 관련 기업들은 이 같은 문제들에 안이하게 대처했다.

한류가 성공적으로 나아가려면 기존의 문제점들을 직시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첫째, 정치·역사적 이해관계에서 발생하는 일본과 중국의 ‘한한령 리스크’에는 항시 대비해야 한다. 모든 계획을 세울 때는 두 국가에서 반한감정 문제가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해야 한다. 반한감정에도 불구하고 두 국가가 한류 콘텐츠 수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0% 이상이다. 이 때문에 한류 콘텐츠 업계에서는 “반한감정이 고조되면 당장 수익률이 낮아지긴 하지만 수요 자체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어서 한류는 점진적으로 다시 회복될 수밖에 없다”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반한류에 대한 대책으로 매번 제시되는 ‘문화교류 강화’ ‘신시장 개척’ 등은 좋은 해결책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근본적으로 일본과 중국의 한류 콘텐츠에 대한 필요성은 물론 한류가 양국에 어떤 방식과 유통경로로 판매되는지 등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 이러한 실태 파악과 분석이 선행되어야 비즈니스 관계 강화를 도울 수 있는 정책이 만들어질 수 있다.

둘째, 한류 시장을 새롭게 개척하려면 분산된 자원을 한류 유망 국가에 집중해야 한다. 정부는 한류 신시장 개척을 위해 매년 브라질, 중동, 동남아 등 대상 국가와 지역을 바꿔가며 콘텐츠 마켓 등의 지원 사업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일본과 중국에 필적할 만한 대체 시장이 될 곳을 정밀하게 검토해 선정하고, 한류가 성공적으로 뿌리내릴 때까지 지원 사업을 계속해야 한다. 그래야만 제2, 제3의 한류 신시장 개척이 가능하다.

셋째, 한류 해외팬들과의 관계 강화가  중요하다. 해외에서 한류가 자생력을 가지려면 각 국가의 한류팬들이 상시적으로 콘텐츠를 접할 수 있고 팬들 간에 활발한 문화공유 활동이 이뤄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각 국가 안에 분산된 해외문화원, 한국콘텐츠진흥원과 한국관광공사의 해외지사, 해외 세종학당 등 접점이 되는 공간들의 통합이 필요하다. 물론 이에 따른 예산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된다면 한류 공연 및 교육행사의 수준을 끌어올릴 수 있고 문화교류 장소로서의 가치도 높일 수 있다. 여기에 한국 수출기업들이 참여해 힘을 보탠다면 한국의 우수 제품을 체험하는 ‘복합전시장’ 기능까지 할 수 있을 것이다.

올해 한류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등의 문제로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유의미한 성과도 이뤘다. 2018년은 실질적인 정책과 시스템을 바탕으로 한류가 세계 속에서 만개하는 한 해가 되길 바란다.

<박성현 | 고려대 한류융복합연구소 겸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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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1일자 지면기사-

소상공인 다수를 ‘범법자’로 만든다며 비판받았던 ‘전기용품 및 생활용품 안전관리법’(전안법)이 지난달 29일 시행 사흘 전 가까스로 개정됐다. 영세 상인들과 중소기업들의 공분을 산 이 법안은 전기용품과 공산품에 따로 적용됐던 규정을 하나로 통합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생활용품, 의류, 가방 등의 품목까지 ‘공급자 적합성 확인서류’(KC인증서)가 의무화된 것이 문제가 됐다. 유행에 따라 디자인과 색깔이 바뀌는 제품들도 매번 최대 30만원에 달하는 비용을 부담해 인증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귀걸이와 목걸이, 반지 등 액세서리를 많이 구매하는 여성층과 만화, 아이돌 등의 캐릭터 상품을 만들고 소비하는 팬덤에서 전안법 반대 운동에 적극 나섰던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Yo***’는 “전안법이 통과되면 ‘천원샵’은 ‘만원샵’이 되는 것이냐”고 했다. ‘@ye***’는 “애니메이션의 2차 창작물을 법으로 막는 것도 모자라 해외 직구(직접구매)도 불법이 돼 여러 (애니메이션) 행사들이 폐지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kr***’는 “전안법이 시행되면 위안 받았던 작품들은 점점 나올 수 없어질 것”이라며 “그런 삶이 싫은 분들이 계시면 법안 폐지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말했다. 배지를 제작해 판매하는 ‘@Pa***’는 시제품을 올리며 “제작은 전안법 시행에 따라 취소될 수 있다”고 공지하기도 했다.

전안법에 독소조항이 있다는 점에 공감하는 누리꾼들이 많아지면서 청와대에 올라온 전안법 폐지 국민청원에는 20만명(청와대가 공식 답변하는 기준)을 넘어 25만명 이상의 동의가 이어졌다.

결국 국회가 ‘안전기준 준수 대상’으로 분류된 생활용품과 구매대행 제품업은 인증 의무를 면제하는 등의 전안법 개정안을 통과시키자 액세서리, 굿즈 등을 판매하는 상인들은 선착순이나 랜덤으로 자신의 제품을 무료 증정하는 축하 이벤트를 열었다. 그러나 개정안이 아닌 기존 ‘전안법’이 통과를 앞두고 있다고 잘못 전달되면서 혼선이 일기도 했고, ‘@Da***’처럼 “개정안이 통과됐다고 마음을 놓으면 안 된다. 더 관심 갖고 지켜봐야 한다”고 당부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김보미 기자 bomi8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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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1일자 지면기사-

환경운동을 업으로 삼는 필자에게 몇 가지 바람이 있다. 우울과 불면의 밤은 지나고 환한 빛 찬란한 아침이 오기를. 2018년 새해 첫날에 희망한다. 굴뚝에 오른 노동자와 모든 양심수의 가슴에도 꽃이 피기를, 70년 전 제주 4·3과 태평양전쟁의 희생자 이름이 사라지지 않기를 바란다. 사회적으로 정의롭지 못한 세상은 생태적으로 지속가능하지 않다. 정의와 생태의 두 축은 언제나 함께 발전하거나 퇴보한다고 믿는다. 환경 불평등으로 고통받는 삶이 없기를. 여성과 사회적 약자라서, 개발이 덜 된 야생이라서, 제3세계 착취를 위해서 그들의 삶과 생명을 마음대로 찢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지난 1년, 숱한 환경 불평등과 고통을 마주했다. 경제와 안보 논리, 개발의 명분 때문이었다. 환경과 생명은 늘 뒷전이었다. 과학기술의 맹신으로 사회 정의를 설명하는 천박함이 지배했다. 40년간 평균 1만2000개의 생리대를 사용하는 여성의 건강은 위협받았다. 일상에 노출된 화학물질의 위해성은 위험한 비밀이다. 매일 먹는 계란에서 살충제 성분이, 심지어 1962년 레이첼 카슨이 <침묵의 봄>에서 경고한 DDT가 검출되었다. 2016년 경주, 2017년 포항을 뒤흔든 지진의 진폭 속에도 핵발전소 안전 신화는 여전히 굳건하다. 평택기지로 이전할 예정인 용산과 부평 미군기지는 폭발 직전의 거대한 뇌관이다. 유해 독성물질과 폐기물의 취급, 오염 처리 기록, 오염원 정화 책임은 암흑 속이다.

기원전 350년,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기술과 탐구, 또 모든 행동과 추구는 어떤 선을 목표로 삼는 것” “최고선이나 인생의 목적은 행복”이라고 썼다. 우리는 과연 행복한지, 생태적으로 지속가능한지, 미래 세대에게 정의로운지 질문한다.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에 통합, 안정, 아름다움, 신보다 많은 사랑이 있는가. 이제라도 수문을 활짝 열고, 강의 흐름을 상상하며 재자연화하자.

몇 년 전, 한겨레신문 남종영 기자는 국내 최초 오랑우탄 거울실험을 통해 동물의 자의식을 확인하면서, “이제 비인간인격체라고 부릅시다”라고 제안했다. 그러나 지금 현재, 우리는 일본 다이지의 돌고래 집단 학살과 포획을 정당화하는 ‘아쿠아리움 돌고래쇼’를 즐긴다. 한국에서는 아직도 750마리의 반달가슴곰이 웅담을 목적으로 케이지에서 사육된다. 문득 생각난다. 제주 함덕바다에 방류된 포획 돌고래 ‘금등’과 ‘대포’는 어디를 헤매고 있을까. 올해는 꼭 친구들과 합류하길. 사육곰을 위한 보호센터가 만들어지길. 백령도 점박이물범도, 제주바다 연산호도 제 모습대로 살아가길.

2018년, 몇 가지는 단단히 매듭을 풀자. 단 3일의 활강경기를 위해 나무 10만그루를 베어낸 평창 동계올림픽 톱질의 야만, “빨랫줄 하나 치는 게 뭔 대수야”라고 말하던 설악산 케이블카 개발의 탐욕, 굽이굽이 흐르던 4대강을 16개의 댐으로 멈춘 위정자의 만행, 흑산도 공항과 제주 제2공항을 기어이 추진하려는 정치인의 망령. 이제 정의롭지 않은 문을 닫아야 하는 게 아닌가. 그 문을 닫아야 삶의 공존이 열리고 깊은 우울과 불면에서도 헤어날 수 있다. 영국의 한 극작가의 말처럼 모든 출구는 어딘가로 들어가는 입구다. 2018년 첫날을 열며 바란다. ‘해도 안 된다’는 절망을 주지 말자. ‘한 번쯤 살아볼 삶이다’라는 희망을 주자. 촛불로 선 정부는 생명의 뿌리를 단단히 내릴 때 비로소 완성된다.

<윤상훈 | 녹색연합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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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1일자 지면기사-

먼 곳에서, 높은 곳에서 들려오는 것 같았다. 한줄기 빛이 내리꽂히는 동굴 속 같기도 했다. 바싹 말랐지만, 그래서 소리의 윤곽이 부서지는 듯했지만 울림이 있었다. 단어와 단어 사이의 짧은 여백과 단호한 종결어미가 듣는 이를 긴장시켰다. 감정이 거의 실리지 않은 절제된 낭송이었는데도 흡인력이 있었다. 아마 다른 시인의 시였다면, 또 내가 모르는 분이 낭송했다면 사정은 달랐을 것이다.

며칠 전, 후배가 짧은 동영상을 보내왔다. 무심코 열어보았다가 얼굴이 벌게졌다. 대학 은사께서 내 시를 낭송하는 것이었다. 후배는 ‘벌써 몇 번 보셨겠지만’이라는 문자를 덧붙였다. 그런데 나는 처음이었다. 2016년 여름, 은사께서 내 시 <손의 백서>를 한 일간지에 소개한다고 연락한 적이 있다. 나는 그저 고마울 따름이었다. 얼마 후 신문에 실린 노인문학자의 에세이를 읽고 또 읽었다. 졸시를 다시 태어나게 하는 비평의 위력을 새삼 실감했다.

그러고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일 년 반 만에 듣는 은사의 육성은 무심하고 게으른 시인에 대한 질타로 들렸다. <손의 백서>는 제목이 말하는 것처럼 디지털 문명을 배경으로 ‘손의 생태’를 다양한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접근한다. 손을 주제로 한 시가 몇 편 더 있고, 다른 시에도 관련 이미지가 종종 출현해서 나로서는 이제 손과 작별해도 무방하다고 생각해왔는데 그게 아니었다. 뒤늦게 은사의 음성을 들으면서 척추를 곧추세웠다. 손은 여전한 미답지였다. 손은 우리의 과거이자 현재이고 또 미래였다.

내가 손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필기구였다. 막대기와 붓, 연필에서 출발해 볼펜, 샤프펜슬, 만년필을 거쳐 타자기, 워드프로세서, 노트북, 스마트폰과 가까워지는 동안 내 손이 하는 일은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만드는 손에서 조작하는 손으로 바뀌었다. 그사이 도구가 사라졌다. 직접성이 축소됐고 감성이 왜곡됐다. 나와 타인, 나와 대상 사이에 디지털 단말기가 끼어들었다. 문자가 전화 통화를 대신하고 자동주문기가 종업원을 내몰고 인터넷이 창구 직원을 없앴다.

아랍사회에 널리 알려진 우화가 있다. 할아버지는 낙타를 타고 아버지는 자동차를 타고 아들은 비행기를 탄다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사실의 진술이다. 그다음에 반전이 일어난다. 아들의 아들, 즉 할아버지의 증손자는 다시 낙타를 탈 것이라는 예언이다. 우스갯소리처럼 들리지만 지구적 차원에서 인류의 지속가능성을 염려하는 생태론에 비춰보면 한쪽 귀로 흘려버릴 농담이 아니다. 비관적 생태론은 과연 증손자가 탈 낙타가 살아있겠느냐고 안타까워한다.

미래세대가 다시 낙타 등에 오른다는 우화는 우리 산업문명에 그대로 적용된다. 우리 할아버지는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고 아버지는 도구를 만드는 기계를 만들어 팔고 아들은 기계가 만든 제품을 사서 쓰다가 버린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아들의 시대’는 자기가 선택한 제품, 이를테면 시계나 냉장고, 컴퓨터, 자동차를 고치지 못한다. 수리가 불가능하다. 부품을 교체하거나 새로 구입해야 한다. 여기에 일정 기간이 지나면 제품에 탈이 나게 하는 ‘노후화 기술’이 가세한다. 손의 거처가 바로 여기다. 제품을 사서 쓰다가 버리는 일상적 행위를 우리 손이 반복한다.

요즘 <손으로, 생각하기>(매튜 B. 크로포드, 윤영호 옮김, 사이 펴냄)를 읽고 있다. 정치철학을 전공하고 워싱턴의 싱크탱크에서 일하다가 모터사이클 정비사로 변신한 크로포드는 ‘손을 쓰며 사는 삶’의 풍요로움을 되찾자고 주장한다. 크로포드는 손을 제자리에 돌려놓아야 인간이 행위주체성과 자율성을 회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크로포드는 ‘인터넷만으로는 못을 박을 수 없다’는 경제학자 앨런 블라인더의 지적을 인용하면서, 손의 역할을 되찾아 ‘의존하는 인간’에서 벗어나자고 제안한다.

의존하는 삶이 일반화된 이유는 얼마든지 열거할 수 있다. 그중 하나가 ‘창의성의 역설’이다. 위 책에 따르면, 인간의 뛰어난 창의성이 그 창의성의 필요성을 제거하는 데 사용된다는 것이다. 특히 기업에서 지식, 기술, 의사결정의 주체를 직원에서 사업주로 바꾸는 데 창의성이 적극 활용된다는 것이다. 직업도 인공지능에 의해 양분된다. 인간의 개입 여부, 규칙의 존재 여부에 따라 일자리가 재편된다는 것이다. 위 책은 교육 현장에 대해서도 비판한다. 육체노동에 대한 교육을 외면하는 것은 반인간적일 뿐 아니라 실용적이지도 않다는 것이다. 손기술을 익히는 데 더 많은 지식과 경험, 공감, 협력이 필요하며, 그래서 손기술을 가진 청년들의 미래가 더 밝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손을 되찾는 일은 감성을 온전히 복원하는 일만큼 쉽지 않은 문명사적 기획이다. 결국 개인의 차원에서 전환을 도모해야 한다. 국가와 기업, 학교는 멀리 내다보려 하지 않고 또 인간을 중심에 올려놓으려 하지도 않는다. 우리가 먼저 삶의 의미와 가치를 설정하는, 다시 말해 스스로 법을 제정하고 그 법을 준수하는 ‘자유인’으로 거듭나야 한다. 우리가 바라는 자유인의 삶은 손을 통해 풍성해지고 손을 통해 사회적으로 확대된다. 손의 주요 역할이 다른 손, 다른 생명, 다른 사물과 연결하고 연대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앞에서 거론한 은사의 비평은 손이 다른 손을 붙잡을 때 기적이 일어난다며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린다. 손과 손의 만남이 “이 시대 삶의 곤경을 뚫고 나갈 궁극적인 힘과 희망의 기원이다”.

<이문재 | 시인·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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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1일자 지면기사-

지난 11월2일 교육부는 자사고·외고·국제고 입시를 일반고와 동시에 치르도록 하는 고입 동시 실시 방안을 발표했다. 일반계 고등학교의 교육을 정상화하고 초·중등교육의 왜곡을 바로잡는 첫 번째 조치로 평가하고 싶다.

이명박 정부에서 추진한 ‘고교 다양화 300 프로젝트’는 고교 교육을 다양화하고 학교 선택권을 확대하겠다는 명분으로 시작됐지만, 진정 다양한 교육 목표와 내용을 추구하는 학교가 만들어지진 않았다. 오히려 학교 다양화 정책은 학교 서열화 체제를 공고히 했다. 고교 체제 영향을 받는 중학교 교육은 말할 것도 없고 초등학교 교육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쳤다.

이들 학교는 독특한 목적을 추구하고자 설립됐으나, 실제 운영은 설립 목적과 한참 동떨어진 게 현실이다. 자사고의 경우 사립학교 고유의 교육 목적과 내용을 지향한다는 명분을 내걸었으나, 자사고의 63%는 국·영·수 교과를 권장 기준 이상으로 편성해 입시 중심으로 운영하고 있다. 또 20%에 가까운 외고·국제고 학생이 학교에서 배운 제2외국어가 아닌 외국어 과목으로 수능에 응시한다. 외고 졸업생 절반 이상이 어문계열이 아닌 계열로 대학에 진학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자사고와 외고·국제고는 입시 명문고교로 운영되고 있을 뿐이다. 이들 학교는 전체 고교 중 학교 수는 3.6%, 학생 수는 3.9%에 불과하지만, 2017년 서울대 입학생은 자사고 출신이 18.7%, 외고·국제고 출신이 15.7%를 차지했다. 현재와 같은 고교 체제를 계속 유지한다면, 조만간 고교 평준화 이전의 ‘일류 고등학교’ 체제로의 회귀가 이뤄질 것이다.

문제의 심각성은 고등학교에만 그치지 않는다. 초·중학생들이 자사고와 외고·국제고 진학을 위해 사교육 시장으로 내몰리고 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자사고 진학을 희망하는 중3 학생 중 월평균 100만원 이상 사교육비를 지출하는 비율은 일반고 진학 희망 학생의 5배에 달했고, 외고·국제고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의 37.1%가 초등학교 단계에서부터 고입 사교육을 시작한다.

고교 교육은 초등학교와 중학교 교육의 기초 위에서 어느 정도는 전문교육을 추구한다. 따라서 고교 운영의 다양화는 필요하며 바람직하다. 여기서 다양성은 교육 목적과 내용 면에서의 다양성을 의미한다. 일반계 고교보다 앞서 입학 단계에서 우수한 자원을 선발하고, 선별 효과로 학교의 다양성을 드러내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다. 자사고와 외고·국제고 등이 진정으로 학교교육의 다양화에 기여하고자 한다면, 일반계 고교와 동등한 조건에서 학생을 선발하고, 학교교육의 과정에서 다양한 재능을 지닌 인재를 길러낼 수 있는 교육 효과를 만들어내야 한다.

고입 동시 실시는 고교 체제 전체에 바람직한 변화를 실현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일반계 고교 진학생의 구성에 변화가 생길 것이며, 일반계 고교 교육의 정상화를 기대할 수 있다. 자사고와 외고 등은 이번 기회에 학생 선발 효과가 아니라 학교 설립 목적과 특색을 살릴 수 있는 교육으로의 전환을 준비해야 한다.

고입 동시 실시는 초·중등교육 변화의 출발점 조치다. 앞으로 정부가 발표한 ‘고교 체제 개편 3단계 로드맵’, 고교학점제 시행, 대학 입학 전형 제도 개편 등 초·중등교육을 근원적으로 혁신하기 위한 정책에 관한 논의를 활발히 진행하고 좋은 정책을 준비해야 한다.

<김용 | 청주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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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1일자 지면기사-

얼마 동안 연도를 잘못 적을 수도 있겠구나, 송년 모임에서 못 만난 그리운 사람을 위해 신년회를 해야겠구나. 출판사 한 해 출간 계획 회의를 하면서 몹시 긴장하겠구나. 새해라는 게 아직 실감 나지 않은 나는 한 해에 거는 기대와 각오보다는 일상생활을 옷매무새 다듬듯 더듬거리며 점검하는 심정이 앞섰다.

편집자라는 일정한 직업을 갖게 된 이후 한 해를 보내는 회한과 새해를 맞이하는 설렘보다 더욱 소중하게 여겨지는 건 하루의 평안과 안도감이었다. 이를테면 내게 성공적인 날이란 원고 계약을 했거나 중요한 책을 출간한 기록이 남는 날이 아니라, 그날 잠자리에 누웠을 때 하루 동안 책을 만들며 보고 겪었던 머릿속 영상이 빨리 멈추는 날이다.

편집 일이나 인간관계에서 꼬이고 엉긴 날에는 잠자리에 누웠는데도 그 상황의 영상이 지속적으로 돌아간다. 그때 하지 못한 말, 하지 말았어야 할 말들을 혼잣말로 내레이션해가면서 말이다. 그 반복된 영상은 잠자리에서 악몽을 불러오기 일쑤였다. 한편 출판 기획 아이디어가 넘치는 날의 잠자리도 문제였다. 느닷없이 일어나 메모지를 찾거나, 책장을 서성거리며 몽유병자처럼 굴었다. 직업병이 인생에 지나치게 간섭하는 상황이 계속되자 어느 때부터인가 잠자리에서 평안을 찾는 방법을 궁구했다.

그중 하나는 지금 출간 작업과 무관한 책 읽기에 몰두하는 것이다. 하필 또 책이냐 싶겠으나 책을 읽는다는 게 스스로 처방한 것 치고는 우스꽝스럽지만 꽤 효과가 있다. 잠자리에서는 고전이나 예술서를 주로 읽었다. 시공간을 넘어 내 일상과 먼 이야기들은, 지금 내가 고민하는 하루하루를 거대한 우주의 작은 퍼즐 조각 맞추기 정도로 그 무게를 가볍게 해주었다. 하루가 소중하지만 그 하루 때문에 인생 전체가 망한 것은 아니라는 낙관이 생기기에 좋은 독서법이었다. 하루하루의 퍼즐이 모여서 이루어진 인생이니, 잘못 맞춘 퍼즐은 수정하면 된다는 회복력도 늘어난 듯했다.

또 하나의 방법은 나에게 상처 준 사람을 상상 속에서 불러내어 반드시 이렇게 주문처럼 외우는 것이다. “당신은 나를 제대로 이해 못했다. 그런 당신은 나에게 뭐라 말할 자격이 없다. 그러니까 당신의 말은 무효.” 상처를 다독일 수 없으니 상처의 원인인 상대방의 말을 무효화해버리는 것이다. 잠자리에서 상대방의 말이 맞는지 틀리는지는 따져보지도 않는다. 나의 잠자리를 위해서 일단 무효를 선언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방법으로도 쉬 평온해지지 않는 잠자리는 속수무책이었다. 그러다가 최근에 새로운 방법을 깨쳤다. 90세 현역으로 아침 9시부터 저녁 5시까지 일하는 패션디자이너 노라노 선생을 뵈었을 때 들었던 살아 있는 조언이었다.

“안 좋은 생각이 들면, 또 뭔가 무기력해지면 벌떡 일어나서 움직여요. 곰곰이 그 생각에 붙들려 있지 말고 그 자리에서 일단 일어나는 거죠. 그 무슨 ‘5초의 법칙’이란 것 있잖아요. 잡념이 생기면 몸을 5초 안에 일으켜 세우라는 것.”

나는 생각을 너무 많이 하고 살았나 보다. 잠자리에서 각본, 감독, 주연배우까지 홀로 맡은 영상을 돌리고 있었으니. 그래서 요즘은 잠자리에 누워 영상이 멈추지 않으면 일단 일어선다. 그리고 몸을 가볍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요가 매트를 깔아놓고 호흡을 조절하면서 스트레칭을 하는 것이다. 달밤에 체조하는 것. 생각보다 괜찮은 방법이었다.

몸을 움직이면 나란 존재감이 물질적으로 확연하게 느껴진다. 일하고 먹고 걷고 자는 몸의 동력이 새록새록 되살아나면서 잠을 설치면서까지 당장 해결할 일이 있단 말인가 자문하게 된다. 자고 일어나면 내일은 뭐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긴다.

<라틴어 수업>으로 널리 알려진 한동일 교수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로마 유학 초기에 대중교통을 이용해 통학했는데, 한 선배가 자신이 타던 오토바이를 선물로 주었다고. 학교에 오가는 시간이 줄어드니 급하게 자료를 찾으러 도서관에 다녀올 수도 있고 최대한 공부에 집중할 수 있으리라 믿으며 처음엔 기뻐했단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체중이 불어나고 몸 컨디션이 나빠져서 공부를 못하는 시간이 늘어났다는 이야기. 꽤 많은 거리를 걸으며 자연히 운동했을 때의 몸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면서, 몸 관리를 꾸준히 하는, 삶의 중요한 미덕을 강조했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을 수도 있는 법. 오늘 하루 잘 안 풀렸다면 내일은 다를 수도 있겠지. 하루의 끝에 주어진 잠자리는 온전히 내 것이다. 잘 자자는 데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할까.

이제 새해다. 나 자신에게 말했다. “산뜻한 결심, 다 됐고, 무조건 하루치의 잠은 꾸준히 누리자!”

<정은숙 | 마음산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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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그 아이는 겨울방학 하자마자 베트남 갔어, 엄마하고. ○○이는 며칠 있다가 갔다 온다나 봐.” 큰아이가 다니는 학교, 같은 반에는 꽤 여러 명, 부모가 서로 다른 나라 사람이다. ‘다문화가정’이라고 불리는 집. 엄마가 베트남이나 필리핀에서 나고 자랐다. 서너 명 가운데 한 명꼴로 그렇다. 나라 전체로 보자면 초등학생 서른 명 가운데 한 명, 한 반에 한 명쯤 그런 친구가 있고, 점점 많아지고 있다.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두 나라 말을 익힐 가능성이 큰 아이들이 많이 늘고 있다는 얘기다. 이중언어라거나, 바이링구얼이라고 하는 경우. 모어가 둘인 사람. 물론 한 나라 말만 배울 수도 있고, 아마도 그런 아이들이 많을 것이다. 적어도 이 동네 아이들은 그렇다.

아이가 자라면서 처음으로 배워야 하는 것은 자기 뜻대로 몸을 놀리는 것과 말을 익히는 것이다. 말문이 트여야 생각도 정리할 수 있고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도 할 수 있다. 다른 사람과 같이 지내는 것이야 말할 필요도 없고. 우리는 오랫동안, 거의 모든 사람들이 한 가지 말만 써 왔기 때문에, 그만큼 아이들이 말을 배우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외국어를 배우는 건 어려웠지만.

다문화가정에서 자라는 아이들 가운데, 늦게까지 말문이 잘 트이지 않는 것 같은 아이들이 가끔 눈에 보일 때가 있다. 대화하는 것이 어렵지는 않지만, 쓰는 말이 단순해 보이는 아이들. 누가 한참 이런저런 얘기를 늘어놓고 있으면, 이야기 졸가리를 잘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은 아이들. 웅크리고 있다.

건너건너 아이들의 엄마가 시집에서 지내는 이야기를 듣게 되면, 이중언어 어쩌고 하는 이야기는 무슨 얼토당토않은 소리인지. 엄마가 자신의 언어로 아이와 편히 이야기한다는 집을 들어보지 못했다. 그러니까 바이링구얼로 자랄 가능성이 있었던, ‘다문화가정’의 아이들은 한 가지 말을 잘 익히는 것마저 어려워지는 형편에 빠진다. 엄마의 말이 무시당하는 만큼, 자신의 삶이 차별과 멸시와 외면에 맞닥뜨리기 쉬운 것처럼, 말도 마찬가지다. 물론 어른들 때문에 말문이 트이지 않아서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은 이들과는 전혀 다른 자리에도 있다. 이를테면 열심히 영어 유치원을 다녔다거나, 아주 어린 나이에 무리한 외국어 공부(모어로 익히는 것이 아닌!)를 한 덕분에 언어장애를 겪는 아이들. 어림잡기로는 이 아이들의 숫자 또한 ‘다문화가정’ 아이들만큼 된다고 한다.

다문화가정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점점 늘어날 테고, 어느 반이나 교실에서 이런 아이들을 보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다행인 것은 지난 한 해 세상은, 사람들 마음은 얼마나 달라졌나. 제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많은 사람들이 그나마 숨통이 트이는 광경은 새 정부가 들어서고 끊이지 않았다.

지난 연말에 책을 두 권 펴냈다. 책이 나올 무렵 <언젠가 새촙던 봄날>의 저자 박선미는 일이 바빠 며칠 밤을 새우고 있다 했다. 아이들 교과서를 매만지고 있다고. “선생님께서 교과서 교정을 보고 있어요? 정말?” “2018년에 쓸 거, 초등 3·4학년 아이들 보는 국어 교과서 하나예요. 이미 집필은 다 끝난 거를 받아서, 우리말 말법에 맞게 고치고 있어요.”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에서 갑작스럽게 이 일을 맡게 되었다고 했다. 지금껏 이오덕 선생님, 권정생 선생님한테 배우고, 그 뜻을 이어 온 단체에서 다른 어느 책도 아니고 교과서를 손보는 날이 올 줄이야. 단지 교정 교열만 보는 것이라고는 했지만, 아이들이 말글을 익히고 삶을 가꾸는 것에 온 힘을 다했던 선생들이니, 내년 아이들 교과서가 얼마나 달라졌는가 볼만할 것이다. 이렇게 하나씩, 학교에서도 달라지는 구석이 있겠지. 선생으로, 스승으로 아이들 기억에 남는 사람들도 더 많아지면 좋겠다. 그리고 아이들은 제 목소리를 내는 데에 어려워하지 않고, 조리 있게 말문이 터지는 한 해가 되기를.

<전광진 | 상추쌈 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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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1일자 지면기사-

지구엔

돋아난

산이 아름다웁다.

 

산은 한사코

높아서 아름다웁다.

 

산에는

아무 죄 없는 짐승과

에레나보다 어여쁜 꽃들이

모여서 살기에 더 아름다웁다.

언제나

나도 산이 되어 보나 하고

기린같이 목을 길게 늘이고 서서

멀리 바라보는

 

 - 신석정(1907∼1974)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신석정 시인은 이 시를 1953년 1월에 발표했다. 언제 보아도 산(山)은 또렷하게 솟아올라 있다. 하늘에 별이 하나둘 돋아나듯, 산은 지구의 표면으로부터 볼록하게 쑥 돌올하게 솟아 있다. 산은 굳세고 위엄스러운 기개로 섰다. 시인은 그 산의 높이를 정신의 높이로 읽는다. 산은 고결하고 신성한 정신의 높이로 섰다. 뿐만 아니라 산은 그 품에 생명을 화목하게 거느린다. 골짜기와 산등선에는 순한 눈망울의 산짐승이 깃들여 살고, 꽃의 꽃핌이 있고, 이 생명들은 모여 정답게 살아간다. 시인은 이러한 산이 좋아서 기린의 목처럼 길게 목을 빼어 자신도 산이 되기를 열망한다.

새해에는 산처럼 숭고한 큰 뜻을 품어보고, 산처럼 힘차고 튼튼할 것을 생각해볼 일이다. 산속 생명들처럼 사이좋게 살 일을 꿈꿔볼 일이다.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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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1일자 지면기사-

카나리아는 산소가 줄어들면 노래를 멈춘다. 이 때문에 광부들은 산소가 충분한지 확인하기 위해 카나리아를 새장에 넣어 갱도에 데리고 들어갔다. 표현의 자유라는 산소를 감지하는 예술가들은 우리 사회의 카나리아라 할 수 있다. 촛불이 켜지기 이전부터 예민한 카나리아들은 위험신호를 여러 차례 보냈다. 그들의 경계경보는 헌법을 유린한 정권을 심판하는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드러났다.

블랙리스트 사태는 단순히 지원금을 둘러싼 이념적 다툼이 아니며 예술계에만 한정된 사건은 더더욱 아니다. 블랙리스트 사건의 근원적 문제는 현 정부가 청산하고자 하는 적폐가 자기의 몸통에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데 있다. 블랙리스트의 실행은 참여와 협치를 무시한 행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참여정부 시기 도입된 공개성과 투명성을 바탕으로 한 시스템은 정부가 바뀔 때마다 관료 중심의 권위주의적 행정으로 되돌아갔다. 상명하복에 충실한 관료 시스템은 결국 원하는 목소리를 내는 카나리아에게만 숨쉴 공기를 부여했다. 적폐청산은 바로 이런 행정의 민낯을 드러내는 것을 의미한다.

문화정책을 수행한 공무원들은 문화권력들이 자신들을 흔든다고 하소연한다. 하지만 문화예술계에는 일사불란하게 조직화된 권력이 존재하기 어렵다. 이 카나리아들은 저마다 다른 소리로 노래하는 것으로 먹고사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권력을 체계적으로 생성하고 유지하기 쉬운 쪽은 관료집단이다. 폐쇄적 고시제도를 통해 공급되는 관료는 희소하며, 닫힌 조직은 동질성을 유지하기에 용이하기까지 하다. 공익의 수호자이자 공정한 세금의 관리인임을 자처하는 이들은 공익 수호와 감시의 권리를 가진 국민들의 참여를 배제함으로써 문화권력을 독단적으로 장악해왔다.

국민들의 감시의 시선을 피해 이들이 한 일은 성찰 없는 상명하복과 복지부동 그리고 부정부패였다. 국가나 조직의 수장이 바뀔 때마다 쏟아지는 소나기는 꽃보직과 한직을 순회하며 잠깐 피하면 그뿐이었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정치권 인사나 특수한 이익집단의 민원을 들어주면서 소나기가 지나가길 기다리면 됐다. 이 모든 일을 행했던 의사결정 책임자들 중에 눈에 띈 극소수에게만 책임을 묻는다고 문제가 해결될 것인가? 바뀌지 않은 시스템과 사람이 자신의 썩은 뿌리를 어떻게 스스로 뽑아낼 것이며,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으리라고 누가 장담하겠는가?

문화행정이 권력이 아닌 민주주의에 충실한 자리로 돌아오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첫째, 지금과 같이 정치적 민원이나 특수 이익집단의 요구에 취약한 조직 구조와 인사제도를 개편해야 한다. 정책의 효율성과 공공성을 달성할 수 있는 조직으로 바꾸고 인력 충원의 개방성을 높이는 것이다. 둘째, 정책과정의 공개성과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 국민의 참여와 민간 협치를 확대하는 것이다. 특히 평가와 같이 국정과제나 정책 성과를 확인하는 과정에는 더욱 그렇다. 투명성이 담보된 협치제도와 국민참여제도만이 ‘협치 코스프레’를 견제할 수 있다. 셋째, 문화예술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존중한다는 의지를 실천해야 한다. 문화예술위원회 스스로가 표현의 자유를 짓밟도록 제도적 원인을 제공한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의 개정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여타 산하기관 및 단체에 대한 자율성과 독립성도 실질적으로 보장해 이들을 블랙리스트의 집행도구로 전락시켰던 과오도 바로잡아야 한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표현의 자유를 가벼이 여긴 사람들이 책임있는 자리에서 새 술을 만드는 데 손을 담그고, 블랙리스트 실행의 수족이 되었던 술부대를 관리하던 사람들이 여전하다면 이것을 새 술이라 믿을 수 있을까. 문화관료라는 장막을 걷어내고 투명한 절차의 협치를 제도적으로 보장하지 못한다면 새 문화예술정책에 대한 신뢰는 생기기 어렵다. 정책운영의 모든 절차를 투명하게 하고 국민 참여와 민간 거버넌스를 실천할 때만 적폐청산 그 이후의 미래를 그려볼 수 있다.

<홍기원 | 숙명여대 정책대학원 문화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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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