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한국의 미래인가? 한국의 현재 상태가 이웃 나라인 일본의 20년 혹은 30년 전과 유사하다는 진단이 다시 유행하고 있다. 1980년대의 버블경제 붕괴 이후 이어진 저성장, 고령화의 진전과 출산율 저하에 따른 인구 문제, 갈수록 심해지는 양극화 등 지난 30여 년 동안 일본이 겪어온 문제들이 현재 한국 사회가 마주하고 있는 문제들과 닮아 있는 듯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 ‘에스콰이어 코리아’ 지는 “일본이 한국의 미래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일본의 부동산 시장 변동을 면밀하게 살펴보면 “한국 부동산 시장을 예측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일본의 과거 혹은 현재를 통해 한국의 미래를 예측하려는 시도는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일본은 조선에 비해 일찍 서구식 근대화 과정을 경험했으며,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여러 근대식 문물과 제도를 한반도에 이식했다. 해방 이후 대한민국의 지도자들은 일본인들이 남겨놓은 기반을 그대로 활용하는 한편, 새로운 발전을 꾀하면서도 일본의 사례를 참조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이렇게 보면 한국과 일본이 20~30년의 격차를 두고 유사한 경로를 따라가고 있다고 보는 시차론(時差論)이 지속적으로 힘을 발휘하는 것은 일견 당연해 보이기까지 한다.

‘한·일 시차론’은 한국의 경제발전 과정에서 실질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1972년부터 10개년 계획으로 수립된 ‘제1차 국토종합개발계획’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하나의 예를 찾아볼 수 있다. 이미 1969년에 건설부 관료들은 한국의 첫 국토계획을 수립하기 위한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이들은 한편으로 미국과 일본으로부터 도입한 ‘지역과학’을 중심으로 한 계획이론을 학습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 이론적 틀을 한국의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했다. 문제는 믿을 만한 데이터의 부족에 있었다. 경제개발계획이 5년 단위로 수행되는 상황에서 10년 후인 1981년에 해당하는 경제 현황을 예상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1969년의 시점에서 1981년의 미래를 어떻게 상상할 것인가? 당시 건설부 관료들은 데이터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일 시차론’을 들고 나왔다. 일본의 과거가 한국의 현재이자 미래라는 논리였다. 건설부는 한국의 산업 발전 과정이 일본의 그것과 닮았다는 점을 근거로 삼았다. 이 논리에 따라 한국의 국토계획은 일본의 1960년 당시 산업 구조에 해당하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작성됐다. 1960년이 선택된 이유는 1981년 한국의 1인당 GNP는 413달러로 예상되었는데, 이 값이 1960년 일본의 그것과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즉 1972년부터 10년 동안 한국이 국토계획을 통해 이루어야 할 미래의 모습은 그로부터 10여 년 전 일본의 모습으로 상정된 것이다. (이주영, <한국의 1차 국토종합개발계획을 통해서 본 발전국가론 ‘계획 합리성’ 비판> 참조)

한 나라의 경험에 비추어 다른 나라의 미래를 상상하는 일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행한 발전이론의 영향이 컸다. 전후 탈식민의 흐름 속에서 수많은 신생독립국들이 생겨났고, 이들은 모두 ‘저개발국’에서 ‘개발도상국’을 거치는 동일한 경로를 통해 서구 선진국과 유사한 형태로 발전해 나갈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팽배한 시기였다. 발전이론을 주창한 대표적인 인물이 미국 경제학자 W. W. 로스토였다. 그는 <경제 성장의 제단계>(1960)라는 책을 통해 모든 나라가 다섯 단계를 거쳐 발전하며 그 종착지는 당시의 미국과 같은 “고도화된 대량 소비 시대”라고 주장했다. 로스토 식의 발전 모델은 ‘한·일 시차론’을 뒷받침하는 강력한 이론적 배경이 되었다. 이 모델에 따라 1969년의 한국은 개발도상국으로서 일본에 비해 20여 년 뒤처져 있었고, 아시아·아프리카의 다른 저개발국들에 비해서는 10여 년 앞서 있었다고 여겨졌다.

1960년대의 단선적 발전이론은 1980년대 이후 수많은 비판에 직면해 폐기되다시피 했다. 이제는 세계 각국이 ‘발전’을 거듭하면 언젠가 미국과 같은 고도 소비 사회에 도달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단선적 모델의 유혹은 여전히 남아 있다. 여러 나라들의 복잡한 발전 경로를 단순화시키는 ‘선택적 망각’을 통해 다양한 발전 경험을 이해 가능한 것으로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한국과 일본은 명백히 상이한 역사적 경험을 바탕으로 현재 상태에 이르렀지만, ‘한·일 시차론’이라는 렌즈는 복잡다단한 경험의 총합을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단순하게 만들어 준다. 일종의 유용한 착각이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하듯, 미래에 대한 상상은 단순한 공상(空想)이 아닌 현실의 문제와 필연적으로 맞닿아 있다. 특히 국가 기구가 상상하는 미래는 지금 현재 희소한 자원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와 긴밀하게 엮여 있을 수밖에 없다. 일본은 한국의 미래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보다 중요한 문제는 일본을 한국의 미래로 상정하는 것이 우리의 현재에 미치는 함의를 예민하게 인식하는 것이다.

1969년 한국의 국토계획 과정에서 한국의 미래를 일본의 모습으로 등치시킨 건설부 관료들의 선택은 지나친 지역 불균형과 몇몇 전략 산업군에 대한 자원의 집중으로 이어졌고, 그 결과는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렇다면 ‘4차 산업혁명’이라는 달콤한 미래를 필연으로 받아들이는 우리의 선택은 미래에 어떤 결과를 낳을 것인가. 한국의 과거에 대한 서사와 미래에 대한 담론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형섭 과학잡지 ‘에피’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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콧구멍에 겨울이 가득해. 해솟음달 새해가 반갑다. 근혜신년이었다가 근하신년이 된 것이 불과 한 해 남짓. 국정교과서에 깃발을 함께 들었던 나모씨 교육부 기획관께옵서 개돼지라고 우리 국민들에게 거시기한 별명을 붙여주심도 그 어느 참. 드디어 올해가 개띠. 개자유에 개사이다의 새해렷다. 거기다 올핸 눈 많은 평창군에서 올림픽도 열린다지. 핵미사일 놀이로 한바탕 세계를 들었다 놨다 했던 북쪽 동포들도 겨레의 큰잔치엔 함께하겠다니 반갑고 감사해. 어떻게든 단군할아버지 핏줄의 끈을 놓지 말아야지. 우리는 어쩌다가 잠깐 으르렁거리며 살고 있지만 후손들은 평화롭고 행복한 통일나라에서 살아야지 않겠어. 적개심을 키우고 불화를 조장하는 외세와 남북의 매파들에게 ‘개사이다’ 엿을 먹이는 평화의 잔치를 열어내야 해. 애먼 이들에게 간첩 딱지를 붙이고 육자배기 빨갱이 타령. 지긋지긋해. 평화통일을 기원하는 아이들의 그림에까지 국가보안법 운운하는 자들의 입술이 부끄럽게. 위기를 잘 관리하고 평화를 가슴마다 꽃피어내야 하리라.

올림픽이 있으면 내림픽도 있겠지. “더 높이. 더 빨리. 더 힘차게.” 올림픽 3대 표어가 있다면 내림픽은 “더 낮게. 더 느리게. 더 여리게”. 주변을 돌아보고 낮은 사람들과 손잡으며 걸었던 촛불광장은 놀라웠다. 보고만 있어도 온누리가 따뜻해졌지. 정신없이 숨차게 살지 말고 조금씩 발걸음을 늦춰서 느리게 천천히 살아가고 싶어. 주머니에 손 같이 넣고서 골목마다 구경하고 싶어라. 자전거를 타고 극장에도 가고 새 시집이 나왔다는 책방에도 같이 가고파. 힘자랑보다는 여리고 섬세한 마음으로 살았으면 좋겠어. 남북이, 그리고 세계가 강하고 센 무기보다 안부를 나누는 대화를 귀히 여겼으면. 통일이란 낱말을 내버리지 말기를.

올림픽에 찾아온 세계 친구들이 우리를 보고 미소 짓는 추억 하나 생기길 바란다. “저녁별과 눈보라와 기나긴 밤 속에, 먼 따뜻한 햇빛 비추는 나라의 추억이 그래서 그의 마음속 믿음을 다시 미소 짓게 하겠지.” D H 로런스의 시 ‘아몬드’를 아삭아삭 씹으며 미소 짓는 정초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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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1987>. 몇 번을 망설였다. 끝까지 볼 배짱도, 울지 않을 자신도 도무지 없었다. 1987년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상임집행위원이었던 유시춘 선생 손을 잡고 영화관에 들어서기 전까진. 유 선생은 시사회를 봤지만 후배를 위해 기꺼이 동행했다. 숨소리까지 고문당하던 그때와 두 번이나 마주하게 해 미안했다. “괜찮아, 뜨거웠던 한 계절이 내 인생의 정수였어. 살아서 이런 시절 봤으면 된 거지.”

몇 겹의 장면이 숨가쁘게 이어졌다. 박종철의 죽음과 49재, “종철아 아비는 할 말 없대이”, 이한열의 죽음,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김승훈 신부의 폭로, 열사 26인을 호명했던 문익환 목사의 절규, 전국적 추모 투쟁을 관통하던 ‘그날이 오면’. ‘타이거 운동화 한 짝’은 군사정권에 맞선 청춘들의 사랑과 투쟁이었다. 눈물을 들키지 않으려 유 선생은 화장실을 찾았고 난 돌아서서 포스터만 쳐다봤다.

세밑 주말 저녁, 눈송이가 흩날렸다. 한참을 걷다 발길 머문 커피숍에 앉았다. “<1987>은 보통사람들의 서사네요. 선과 악의 순간순간이 일궈낸 변혁 그 자체가 역사겠지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린 고개를 끄덕였다. 유 선생은 6·10항쟁 당일 아침 연행됐다. 구로경찰서에서 장안동 대공분실을 거쳐 강동경찰서로 끌려갔다. 부채꼴 모양 유치장 앞에 붙은 유 선생 죄목은 ‘집시법 위반’. 반대쪽 유치장에 갇힌 여성들이 유 선생 죄명을 보더니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그 여성들의 박수를 들으니 ‘매운 계절의 채찍을 딛고 북방에 선’ 것처럼 울컥했다고 한다. 신민당사 점거 농성으로 일찌감치 서대문구치소에 있던 YH노조 사무장 박태연도 그립다고 했다. 유 선생은 여사 21사동 통풍구 위에 올라서서 6월항쟁을 들려줬다. 서울구치소 여사 ‘소지’(일본어로 ‘청소’)는 지금 살아 있을까. 구치소 목욕은 일주일에 한 번뿐이었다. 그나마 정치범은 마지막 순서였다. 목욕물이 남았을 리 없었다. 한 ‘소지’가 유 선생에게 물 양동이를 건네며 몸을 돌려세우더니 “마, 세상 안 디비지겠나. 함 바까 보자”며 등을 밀어주는 게 아닌가.

눈발이 잦아들 무렵에야 우린 눈 얘기를 꺼냈다. “민주주의가 어느 날 갑자기 눈송이처럼 떨어진 게 아니란 걸 젊은 친구들이 알았으면 좋겠어.” “그럼요, 알 거예요. 알아차렸을 거예요.” 그새 커피잔은 세 번 정도 비워지고 채워졌다. 정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걸 유 선생이 눈치채길 바랐다. ‘그로부터’ 1년 후를 묻고 싶었다. <1987>의 1년 후 말이다.

혁명은 유토피아를 만들지만 혁명 스스로의 유토피아도 있다. 반동이 없어야 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항쟁의 반동은 너무도 잔인했다. 정치의 책임이 크다. 시민들이 열어준 민주주의를 오로지 권력게임의 도구로 활용한 탓이다. 1987년 대선의 노태우 후보 당선, 1988년 13대 총선의 지역주의 부활은 혹독한 대가다. 반면 노동자들은 생존권조차 보장받지 못했다. 1987년 박종철, 이한열의 죽음은 직선제 쟁취로 수렴됐지만 그해 7·8·9월 노동자대투쟁은 생존권조차 보장받지 못한 노동의 현실을 드러냈다. 노태우 정권에서 분신한 노동자 규모만 전체 정권의 84%를 차지한다(임미리 <열사, 분노와 슬픔의 정치학> 중).

87년 함성에서 2017년 촛불항쟁을 떠올리게 된다. 시민들에게 총구를 겨눴던 군사정권, 총구는 겨누지 않았지만 시민을 버렸던 이명박·박근혜 정권. 30년 전 촛불을 끄고 집으로 돌아갔던 우리는 30년 후 지금은 촛불을 끄지 않고 그대로 광장에 서 있다. 적폐청산, 비정규직 문제 등 시민들이 직접 제기한 사회 문제는 정치 의제가 됐다. 문재인 대통령의 70%대 지지율은 다신 맘 편히 집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우리의 다짐일 테다. “그래,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아직 감옥에 있는 촛불항쟁 1년은 참 안타깝지.” “맞아요. 성장하지 않는 민주주의는 달빛에 바랜 신화일 뿐이죠.”

<정치부ㅣ 구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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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산답사기>라는 책이 있다. 1997년에 초판이 발행된, 아주 오래된 책이다. 적어도 내가 갖고 있는 책은 그렇다. 그 책의 내용은 더욱 오래되었다. 실은 ‘더욱’이라는 말이 무색할 터인데, 국내의 명산들을 답사한 기행문이 실린 이 책의 저자들이 고려시대의 이곡부터 한말의 최익현까지, 그야말로 수백년의 역사를 오고 가기 때문이다. 새해의 첫날에 내 오래된 책장에서 이 책을 꺼내든 것은 한 해를 시작하는 날에 산에 오르지는 못하더라도 산을 바라보는 마음이라도 되었으면 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한 해가 바뀐다는 건 하루가 바뀌는 것에 지나지 않는 거라고 생각해도, 그 하루가 지나 또 역사가 된다. 기왕이면 새해 첫날에 오래된 시간들과 만나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여기기도 했을 것이다. 게다가 산이야기가 아닌가. 산을 높이 올라본 적은 없지만, 산을 오르는 느낌은 어렴풋이 알 것도 같다고 생각한다. 아니, 알고 싶다고 생각한다.

민족문화추진회 편찬으로 되어있는 이 책에는 15편의 기행문이 실려있다. 백두산부터 북악산 관악산까지. 두류산부터 가야산 한라산까지. 조선시대, 혹은 고려시대 사람들에게 여행이라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을 거라는 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교통수단의 불편뿐만 아니라 제도상의 문제도 그러했을 것이다. 일반 백성들에게 경계를 벗어나는 일은 법적인 문제였다. 조선시대에 자신의 전 재산을 풀어 기근에 빠진 사람들을 구호했던, 제주의 여자 상인 만덕은 그 보상을 묻는 왕에게 금강산을 보고 싶다고 했다고 한다. 당시 제주도민은 관의 허락 없이는 섬을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만덕은 여자였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섬 전체를 구원할 정도로 대단한 여인이었다 하더라도 여행은 또 다른 문제였다. 좋은 곳을 구경하고, 삶의 여유를 즐기는 일을 넘어서서 그건 경계를 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 경계에 서서 세상을 바라보고 자신을 돌아보는 일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바로 그 찰나의 순간이 세상을 변혁하고 자신을 바꾸는 순간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책에 실린 몇 구절들을 가감 없이 소개한다. 영조 시대에 대제학을 지냈던 서명응의 백두산 기행문 중 일부다.

“나항을 거쳐 긴 골짜기를 지났다. 15리 사이에 수목이 하늘 높이 솟아 햇빛이 들지 않는다. 그밖에도 꺾여 누운 나무와 불에 타 넘어진 나무들이 길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으며, 드러난 뿌리들이 엉켜 마치 병풍을 두른 것 같고 용이 서린 듯하다. 사람을 시켜 도끼로 나무를 베어 길을 내게 한 후, 몸을 움츠리면서 나아가는데도 말이 자빠지고 넘어지는가 하면 사람의 발도 푹푹 빠진다.”

백두산을 차를 타고 가본 적은 있지만 내 발로 그 산을 헤쳐 올라가본 적은 없다. 그래서 이 생생한 묘사에 가슴이 뛴다. 이 글은 또 이렇게 이어진다.

“여기서부터는 새가 보이지 않고 이따금 꾀꼬리가 관목 위에서 우는데 남방의 새와 비슷하게 촉박한 소리를 낸다. 범이나 표범 같은 짐승은 없고, 다만 곰, 사슴들이 여름을 만나 더위를 피해 백두산 아래로 왔다가 겨울이 되면 다시 남쪽으로 간다. 담비와 박쥐는 어느 때나 있다. 그래서 담비 잡는 사람이 나무에다 구멍을 뚫어 물에다 띄워놓으면 담비란 놈이 물을 먹으러 그 나무를 타고 오르내리다가 구멍에 빠지면 잡는다.”

이렇게 풍성한 자연의 묘사는 사실 그 풍경보다 그 한가운데에 있는 사람, 그 인물의 자연에 대한 경외로 이어진다. 이 사람은 이 깊은 산속, 이 위대한 자연의 한복판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서명응이 이때 백두산 기행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백두산이 그의 유배지 근방에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그는 유배 도중에 잠시 짬을 내 백두산을 올랐다는 얘기다. 오늘날의 상식으로는 잘 이해가 안되는 일이기는 하지만, 서명응의 남달랐을 감회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짐작이 가기도 한다. 신성한 산이 그의 소원을 들어주었는지, 산에서 내려오자마자 그는 유배가 풀렸다는 소식을 듣는다.

두류산 기행문을 쓴 세조와 성종 시대의 성학자 김종직은 산을 오른 일행 중에 누가 원님인가를 묻는 승려에게 이렇게 답을 한다.

“내가 불을 쬐려 하면 다른 사람도 아궁이를 다투고, 내가 앉으려 하면 다른 사람도 자리를 다툰다는 말과 같이 친숙하게 지내고 싶네. 이제 그대가 한 늙은이를 만났으니 누가 원님인 줄을 어찌 알겠나.”

장자에 나오는 한 구절을 인용한 말이라고 한다. 수백년의 세월을 거치면서 산도 어느 정도는 모습을 달리하였을 것이고, 사람의 흔적도 달라졌겠지만, 그 산속에 머물렀던 어떤 순간들은 역사 속에 남아 뒷사람들에게까지 이렇게 전해진다. 물론 이와는 다른 일화도 있다. 어떤 태수는 하도 찾아오는 손님들이 성가신 나머지 사람들이 보고 싶어하는 명문이 적힌 바위를 깨부숴버렸다는. 그런데도 그 흔적은 산과 바위에 남아 그 일화를 적은 남효온은 말한다.

“그러나 그 글씨 획은 마멸되지 않아 읽을 수 있다.”

책장에 오래 꽂혀있던 책을 펼쳐보니 밑줄을 그은 부분들이 여러 군데 보인다. 그 책을 처음 읽었던 20년 전에 그었던 것도 있고, 그 후에 그은 것도 있을 터이다. 원래 책에 밑줄을 긋는 습관이 거의 없는데, 이 책에만 유독 그리하였던 건지 모르겠다. 신기한 내용 때문에 그어놓은 것 같은 밑줄도 보인다.

북한산 기행문 중에 나오는 구절인데, 보광사의 승려들이 모두 무예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으며 방 안에 창, 칼, 화살들을 모두 간직하고 있더라는. 이덕무의 기행문에 나오는 글이다.

오늘날과는 다른 이야기들, 그러나 산은 여전히 거기에 있다. 지나간 해와는 다른 새해의 하루하루, 그러나 변하지 않는 것들은 여전히 변하지 않은 채 교훈을 일깨운다. 새로운 계획들을 세우고, 작심삼일이 될지 작심세시간이 될지 모를 각오들을 다지다가 다시 책 속의 밑줄 그은 부분들을 본다. 오래된 책 속에 오래된 내가 있고, 그보다 더 오래된 역사 이야기가 있다. 오래되었으나 오늘날에도 변함없이 되새겨야 할 이야기들이다. 새로운 각오도 각오겠으나, 늘 거기에 있으나 성심껏 이루지 못했던 일들에 대해 생각해본다.

<김인숙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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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볼 빨간 사춘기의 고향이자 부석사로 널리 알려진 지역이다. 전주 한옥마을보다 훨씬 자연스럽고 고풍스러운 무섬마을, 이 마을 앞의 외나무 다리 등이 참 좋다. 시내에서 한참 벗어나 소백산 자락 입구에 무쇠달마을이라는 곳이 있다. 초겨울 시골 마을의 풍경은 고즈넉했다. 옷을 벗은 나무들이 즐비했고 많지 않은 주택은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머금고 있었다. 이 마을에는 간이역인 희방사역이 있다. 곧 폐역을 앞두고 있지만 일제시대에는 제법 번성했던 역이라고 한다. 마을 이름 자체가 역이 생기고 돈이 모여들면서 생긴, 철교에서 따왔으니 평범한 농촌이 번성하기 시작한 시점을 대략 짐작할 수 있다.

마을은 근대화의 흔적을 나이테처럼 두르고 있었다. 일제시대 역무원들이 묵었던 건물이 폐가로 남아 존재한다. 외국 영화에서나 보던 아치형의 큰 터널도 마찬가지로 일제시대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일제시대의 건축물을 가까이서 보는 게 그리 흔한 경험은 아니다. 사진을 찍으니 그대로 그림이었다. 새마을운동의 상징인 슬레이트 지붕도 곳곳에서 보였다. 김대중 정부 시절 농촌진흥사업의 일환으로 조성된 여러 시설들까지, 20세기의 풍경이 이곳저곳에 쌓였다. 새로운 흐름이 생기면 지난 시간의 잔재들을 싹 밀어버리는 대도시의 생태와는 완연히 다른 모습이 낯설었다. 내용에 대한 고민 없이 토건 사업으로 정책의 흔적을 남겨온 지난 시간의 증거 같기도 했다.

시골 마을을 방문하기 좋은 때는 역시 초목에 색이 도는 봄부터 가을이다. 그럼에도 겨울의 초입에 이 마을을 찾은 건 캐러밴에서 숙박하기 위해서다. 난방도 잘되고 화장실도 깨끗하다. 수압도 좋다. 무엇보다 철로변에 있다는 게 마음에 들었다. 가끔 지나다니는 기차 소리는 비록 ‘칙칙폭폭’ 소리를 내지 않아도 운치가 있으니까. 숙소에 짐을 풀고 부석사에 올랐다. 108계단을 오르려니 절로 번뇌가 찾아왔다. 부처님께 절을 올리고 약수 한 바가지를 마셨다. 어느 새 내린 석양이 그저 아름답기만 했다. 때마침 약하게 깔린 안개에 수묵화가 따로 없었다.

저녁 식사를 한 후 영주의 명물이라는 랜드로바 떡볶이를 사들고 숙소로 돌아갔다. 여길 누가 올까 싶었는데 텐트를 치고 고기를 굽는 여행객들이 보였다. 바비큐, 하면 으레 떠들썩한 풍경을 연상하지만 마을을 닮아 조용했다. 별다른 대화도 없이 숯불을 바라보는 그들에게선 고기 구워지는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우리 차로 들어가 떡볶이와 어묵을 안주 삼아 술을 마셨다. 차창 밖으로 간혹 기차가 지나갔다. 덜컹덜컹, 무심하게 어디론가 향하는 완행열차와 함께 밤도 깊어갔다.

여행을 갈 때는 명승지나 빼어난 풍광이 있는 곳으로 간다. 사진을 찍고 맛집을 찾는다. 호텔이나 모텔 등에서 잠을 청한다. 일상화된 여행의 풍경이다. 빼곡한 계획으로 시간이 채워진다. 나 또한 그리 다르지 않다. 다만 좀 더 게으를 뿐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제법 배치한다. 아니, 의도하지 않아도 그렇게 된다. 이번 여행도 마찬가지였다. 보다 최적이었다. 일반적인 도시나 관광지였다면 식사시간 외에 카페에서 차라도 한잔하고 그랬을 것이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다. 아니 불가능했다. 무쇠달마을이 아무것도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 마을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내가 앞서 썼던 문장들 외에 그리 덧붙일 게 없다. 다만 민박이나 여관 대신 캐러밴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여느 여행과는 달랐던 이유다. 볼 것도, 할 것도 딱히 없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나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일상의 틈에서 빠져나와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내면의 소리와 감정이 만드는 파동을 섬세하게 관찰하게 된다.

어떤 이들은 자아를 찾기 위해 굳이 갠지스강까지 간다지만, 거기 자아 자판기가 있는 것도 아닐 텐데 조용히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하루 편히 묵을 수 있는 시설이 있는 곳에, 침묵과 어둠만이 존재하는 주변 환경이 있다는 건 오히려 색다른 경험이었다. 아무것도 없기에, 많은 것을 할 수 있었다. 나는 이를 쾌적한 결핍이라 이름 지었다.

<김작가 대중음악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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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민 바른정당 대표는 3일 ‘건국 100년을 준비하겠다’고 밝힌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외눈박이 역사 인식으로 쓸데없는 역사 논쟁만 부추기고 있다”고 비난했다. 평창 올림픽을 한반도 평화의 전기로 만들자고 한 신년인사회 연설을 놓고서는 “심각한 문제를 후손에 떠넘기려는 친북좌파의 얄팍한 위선”이라며 현 정부를 친북좌파로 규정하기도 했다. 케케묵은 안보관과 저급한 색깔론 공세는 한때 그가 몸담았던 자유한국당 인사들과 오십보백보다. 홍준표 한국당 대표는 엊그제 초등학생이 평화 통일을 주제로 그린 그림으로 만든 달력을 놓고 “인공기가 은행 달력에 등장하는 세상이 됐다”고 해 장안의 웃음거리가 된 바 있다. 안보정당을 자임하는 보수정당의 대표가 초등학생보다 못한 대북관과 통일 비전을 갖고 있다는 게 부끄러울 뿐이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1948년 8월15일을 건국 시점으로 정하자는 보수 일각의 주장은 독립운동의 역사적 정통성을 부정하려는 얄팍한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는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헌법 전문을 무시하는 해괴한 발상이기도 하다. 유 대표는 지난해 11월 당 대표로 취임하며 “낡고 부패한 기득권 보수, 철학도 정책도 없는 무능한 보수의 과거를 반성하고 진정한 보수의 길을 열겠다”고 했다. 그가 말한 새로운 보수의 길이 헌법 부정을 뜻한 건 아닐 것이다.

바른정당은 이제껏 정책이나 정강에서 한국당과 차별성을 보여주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안보 현안에 대한 바른정당의 정부 비판은 색깔 공세였다. 사안별 정책공조로 존재감을 나타내려 했지만 오히려 대안 없이 정부·여당의 발목 잡는 데 한국당 2중대 역할만 했을 뿐이다. 그 결과 20석이었던 당은 현재 11석으로 교섭단체 지위를 잃었다. 창당 전 17%에 달했던 지지율은 5%대까지 떨어졌다.

바른정당이 국민의당과의 통합에 나선 것은 이런 현실에서 지방선거를 준비해야 하는 고민의 산물일 것이다. 양당의 통합을 논의하기 위한 통합추진협의체는 2월 내에 신설 합당 방식으로 통합하는 데 노력하기로 합의했다고 한다. 이들은 정치변화와 개혁을 열망하는 ‘제3세력의 대통합’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하지만 두 당의 정체성 차이는 여전히 크다. 유 대표는 정치공학적 결합을 넘어 공통의 가치로 뭉치려면 좀 더 현실적인 안보정책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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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평창 동계올림픽 대표단 파견과 남북회담 개최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3일 오후 판문점 연락채널을 다시 개통했다. 연락채널은 북측 연락관이 먼저 남북직통 전화를 걸어오면서 복구됐다. 한반도를 둘러싼 긴장이 한껏 고조되고 있는데도 비상 연락망마저 2년 가까이 끊긴 ‘비정상’이 해소된 것이다.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리선권 위원장은 이날 조선중앙TV에 나와 판문점 연락채널 개통방침을 전하면서 “진지한 입장과 성실한 자세”로 동계올림픽 대표단 파견과 관련한 실무 문제를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리 위원장을 통해 발표한 입장문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두 차례 거명했고, 문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북한의 신년사에 대해 직접 지지의사를 표명한 것에 환영의사를 나타냈다. 또 대화에 나설 북측 기관으로 노동당 통일전선부, 조평통, 국가체육지도위원회를 지정했다.

이는 문 대통령이 전날 국무회의에서 통일부와 문화체육관광부에 남북대화 복원과 북한의 올림픽 참가방침에 대한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한 것에 조응한 것으로 보인다. 양측 최고지도자들이 직접 나서서 지휘하는 모습은 이번 남북대화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한국 정부의 회담제의에 대한 응답을 기관명의의 성명 발표와 같은 예전 방식과 달리 조평통 위원장이 직접 방송을 통해 발표한 점도 주목된다. 북한이 입장문에서 “북남관계 개선 문제가 온 민족의 기대와 염원에 맞게 해결되는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북남당국이 어떻게 다뤄나가는가에 달려 있다”고 한 것도 ‘남측 정부가 하기에 달렸다’며 책임을 떠넘기곤 하던 종전과 다르다.

북한이 1일 신년사에 이어 3일 입장문 발표, 판문점 연락채널 개통 및 통화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보면 남북관계 복원에 이례적으로 적극성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대화를 앞두고 기싸움을 하려 들거나 불투명한 태도로 일관하던 과거 행태가 사라진 것도 긍정적이다. 새해 들어 노동신문과 조선중앙방송 등 북한 매체들이 대남비난을 중단한 것도 좋은 신호다.

물론 며칠간의 태도만으로 대화의 성패를 예단하기는 어렵지만, 관계개선의 첫 단추가 순조롭게 끼워지는 흐름인 것은 확실해 보인다. 모처럼 마련된 대화 모멘텀을 살려 남북이 성의 있는 자세로 관계복원에 적극 나서줄 것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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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이 어느 날 주방을 들여다보니 자기를 보필하는 여인이 자신에게 올릴 홍시 감을 혀로 핥아가며 하나하나 닦고 있는 것 아닌가. 이를 본 임금은 “그만두지 못할꼬, 내가 먹을 것에 침을 바르다니”. 이때 옆에 있던 황희 정승이 간언하기를 “전하, 송서에 보면 농사일은 머슴에게 묻고, 베를 짜는 일은 여종에게 물어라 하였나이다. 전하께서 부엌일까지 챙기시면 나랏일은 언제 보겠나이까”. 이 충고에 깨달은 임금은 그 후로 신하의 일에 불필요한 간섭을 삼가고 임금의 본분에 더욱 충실하여 대업을 이룰 수 있었다는 야화가 있다. 이는 ‘역할 분담과 효율’의 중요성을 전하는 말이다.

이러한 ‘분업과 전문화’의 효율성을 강조한 것으로 ‘딱새와 찍새’의 얘기도 있다. ‘딱새’는 ‘찍새’들이 모아온 구두를 단 몇 분 만에 윤이 번쩍이는 구두로 만드는 재주를 지녔다. ‘찍새’들도 한번에 10~20켤레, 하루에 수백 켤레를 찍어나르지만 구두가 바뀌어 돌아오는 일은 거의 없다. 이들의 전문성은 ‘역할 분담이 낳은 놀라운 성취’라 아니할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의 수사권 조정과 공인탐정제도 도입 공약도 이러한 ‘분업과 전문화’라는 맥락에서 해결의 접점을 찾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60년간 한국 검찰의 상징이 되어온 독점적 수사권을 조금이라도 놓치고 싶지 않은 검찰의 입장이나, (가칭)공인탐정(민간조사원) 탄생으로 변호사의 직역(職域)에 불리하게 미칠 영향에 대한 우려도 이해하지 못하는 바 아니다. 하지만 현재 사실상 대부분의 수사를 도맡아 처리하고 있는 경찰에 이제라도 ‘명시적 수사권’을 주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것일 뿐이라는 지적이 비등하고 있다. 또 공인탐정법 제정으로 탐정에 의한 자료수집 기능이 활성화되면 변호사의 송무(訟務)에 신선한 활력으로 작용해 변호사도 결코 불리하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적지 않다.

어떤 측면에서 보든 수사권 조정과 탐정업(민간조사업) 공인은 모두 세계적 추세요, 시대상을 반영한 국민적 요구라는 엄연한 사실을 외면해선 안된다. 개혁이나 새로운 제도의 도입은 쌍방 간의 눈높이가 아닌 국민의 눈높이에서 결정되어야 함이 마땅할 것이다.

<김종식 | 한국민간조사학술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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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에서는 키릴 문자가 사용된다. 키릴 문자를 읽지 못하면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사람이다. 나는 키릴 문자 ‘문맹’이었기에 여행지였던 모스크바에서 지하철 탈 때도 음식 주문할 때도 불편했다. 낫 놓고 기역자를 모르는 ‘까막눈’의 답답함과 무기력을 러시아에서 실감했다.

한국은 ‘까막눈’ 즉 문맹의 상태에 처한 사람이 매우 드문 사회라 알려졌다. 통계에 따르면 사실이다. 1945년 한국인 중 78%가 문맹이었는데, 1958년 조사에서 문맹률은 4.1%로 급감했다. 그 1958년 이후 우리는 ‘한국은 사실상 문맹률이 제로에 가깝기에 문맹률 조사 자체가 의미 없는 나라’라고 알고 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이런 믿음이 통념이 되어 세상을 떠돌면 배움의 기회가 없었기에 글을 읽고 쓸 수 없는 사람은 주눅 든다. 자신이 문맹률 제로라는 한국의 신화를 파괴하는 존재라는 생각에 미안한 마음을 떨칠 수 없다. ‘까막눈’임을 숨기고 살아야 했던 사람들이 용기를 내어 글을 배우고자 한글학교를 찾아간다. 용기가 작은 기적을 만든다. 이들은 자신의 인생을 글로 표현한다. 글을 깨친 후에야 비로소 기록되기 시작한 인생의 심정이 담긴 책 <보고 시픈 당신에게>를 펼쳤다. 그리고 이 책에 실린, 이제는 ‘까막눈’이 아닌 사람들의 인생 이야기에 귀 기울여본다.

글을 몰라서 기록하지 못했던 심정이 서툰 글씨로 쓰여 있다. 평생 표현하지 못했던 마음이 침묵을 뚫고 쏟아져 문장이 된다. 부천시 원미구에 살고 있는 75살 하채영씨는 배우지 못한 평생의 한을 이렇게 표현했다. “죽을똥 살똥 일을 해도 펴지지 않는 살림살이 아침마다 학교가는 옆집 순덕이 숨어서 보며 살았다. 동생 업고 교실 밖 창문 너머로 순덕이 얼굴 선생님 얼굴 몰래 훔쳐보고 돌야 오는 길에 애꿎은 동생 엉덩이만 꼬집었다. 우는 동생 엉덩이를 더 때려주고 언제나 눈물 찔끔. 교실 안에서 공부하는 나. 이제 구경꾼이 아니라 학생이다. 어릴 적 순덕이 처럼 나도 공부하는 학생이다.” 맞춤법이 틀렸다고 탓할 수 없는 문장이다. 문장의 힘은 문법적 완성도가 아니라 많은 경우 글쓴이의 절실함이 만드니까.

부천시 오정구에 사는 78살 조점순씨는 글을 몰랐기에 겪었던 무기력한 세월을 이렇게 표현했다. “이걸 못 배워 멀쩡한 내 두 눈 멀게 하고 멀쩡한 내손 묶어 놓고 멀쩡한 내 입 벙어리인양 가슴 아프게 살아온 세 월, 나의 눈, 손, 입 치료하기 위해 한글교실 입학하여 공부하니 씻은 듯이 말끔히 나았습니다.” 자기의 심정을 글로 기록하게 되자, 문맹에서 벗어난 사람들은 글쓰기로 인생의 한을 치유한다. 글은 무지에서 비롯된 무기력으로부터 이들을 구원한다.

경솔한 믿음은 섣부른 판단을 부른다. 이제야 한글을 배우는 ‘문맹’의 처지에 있던 사람들이 아주 희귀하다는 믿음은 사실 직시를 방해한다. ‘한강의 기적’을 통해 가난에서 벗어났다는 믿음은 한국은 OECD 국가에서 노인빈곤율이 가장 높은 나라임을 알지 못하게 한다. 한글은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인 문자이며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다는 자부심은 불편한 진실을 감추기도 한다.

단순히 문맹 여부가 아니라 글로 쓰인 내용을 실제로 이해하고 있는지를 측정하는 문해율을 따져보면 우리의 자부심은 산산조각 난다. 문해율 나라 간 비교 조사(1994~1998) 결과는 충격적이다. 한국은 학력과 문해율 사이의 상관관계가 높지 않은 나라이다. 대학을 졸업했다고 해서 중학교를 졸업한 사람보다 월등하게 문해 능력이 높지 않다. 통계상의 학력 수준과 문해율 상승 사이에 연관성이 약하다면 1960년도에 도달한 의무교육 취학률 98%, 현재의 대학 진학률 70%라는 통계 숫자는 뭔가 어색하다. 문해율의 세대별 격차도 매우 크다. 2002년에 발표된 OECD 조사에서 16~24세 연령대의 실질문해율은 22개국 중 3위이지만, 55세에서 65세 사이 한국인의 실질문해율은 조사대상 22개 나라 중 최하위권인 20위이다. ‘까막눈’은 아니지만 문서화된 정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상당수의 성인이 있다는 뜻이다.

문해력은 체력과 유사하다.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규칙적인 운동이 필수적이다. 문맹이 사실상 제로인 나라이고, 의무교육 취학률이 100퍼센트에 가깝고 대학 진학률이 70%를 넘는 나라여도 규칙적인 독서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문해력은 시간이 지나면 뒷걸음질 칠 수밖에 없다.

2015년 ‘국민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학생의 연평균 독서율이 94.9%인데 성인의 독서율은 65.3%에 불과하다. “공부 좀 하라!”고 닦달받을 사람은 사실 학생이 아닌 셈이다. 학생들만 공부하라고 다그치는 누워서 침 뱉는 행동을 그만두려면 사실상 ‘문맹’이 없는 나라라는 믿음부터 버려야 한다. 

용기 내어 ‘까막눈’에서 벗어나고자 한글학교를 찾아간 사람뿐만 아니라, 이들을 측은하다 여기며 자신은 공부와 관계없다고 간주하는 사람도 문해력 향상이 필요한 대상자인데, 정작 당사자들은 그 불편한 진실을 모르고 있다. 까막눈 탈출은 시작일 뿐 최종 목적지가 아니다. 단지 우리가 아주 오랜 기간 문맹 탈출이 목적인 줄 알고 살아왔을 뿐이다.

<노명우 | 아주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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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국제공항은 언제나 외국여행을 나가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지난해 해외여행을 떠난 국민이 2400만명을 돌파했다. 사상 최대라고 한다. 매년 관광수지 적자 행진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적자는 무려 120억달러로, 사상 최대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유커의 급격한 감소와 젊은층을 중심으로 해외여행 수요가 확대됐고, 원화 강세와 엔화 약세로 일본 여행객이 가파르게 증가한 것이 주요 원인으로 보인다. 해외 여행객이 방한 외국인의 두 배에 달하면서 관광수지도 눈덩이처럼 불어나 최악을 기록한 사실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정부는 지금까지 외국 관광객 국내 유치 확대나 내국인의 국내여행 활성화 방안 등 수많은 대책을 수립·시행했다. 

그러나 그중 현실과 괴리되고 실효성이 없는 대책은 없는지 다시 한번 면밀히 살펴 관광수지 적자 만회대책을 세워야 한다.

외국 관광객의 서울이나 제주의 쏠림현상, 쇼핑 위주의 관광루트 극복 방안, 1인 관광통역사 등록기준 완화 등에 대한 문제점도 시급히 개선해야 할 문제다. 만족도 낮은 숙박시설, 쇼핑 강요, 바가지 상혼, 가격 덤핑 등으로 한국을 다시 찾는 관광객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외에도 고질적인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해외에서의 무분별한 소비를 억제하기 위한 대책도 시급하다. 이제는 해외여행 중 한번에 600달러 넘게 결제하거나 인출한 경우 관세청 감시망에 포착된다고 한다. 늦었지만 환영할 만한 조치다. 고가의 물품을 산 뒤 세관에 제대로 신고하지 않고 반입하는 사람은 철저히 가려내고, 일정 금액 이상 해외에서의 카드 사용액을 과세 근거로 활용하는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 

정부는 관광수지 적자를 최소화할 수 있는 모든 방안을 하루속히 실행해 주기 바란다.

<김은경 | 주부·서울 동대문구 답십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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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술년 새해가 밝았다. 새해가 되면 사람들은 국립공원을 비롯한 전국의 해맞이 명소를 찾아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면서 각자의 새해 소망을 염원한다. 해맞이 산행을 하는 사람들은 산 정상에 있는 정상 표지석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고 그것을 추억에 담아가는 경우가 많다.

산행을 하는 사람들은 전국의 주요 산봉우리에 있는 정상 표지석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국립공원만 하더라도 300개가 넘는 정상 표지석들이 전국의 주요 국립공원 봉우리마다 설치되어 있다. 말 그대로 정상 표지석은 해당 국립공원의 명칭, 봉우리명과 해발고도를 표기함으로써 그곳을 찾는 이들에게 지리적 위치 표시를 제공해 주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소백산국립공원을 대표하는 비로봉 정상에도 정상임을 알리는 표지석이 설치되어 있다. 현재 설치되어 있는 정상 표지석은 25년 전에 지역의 한 산악단체에서 후원하여 기증한 자연석 형태의 표지석이다. 그런데 최근 이를 두고 소백산국립공원의 주능선을 경계로 하는 양 지역 간의 이견으로 갈등이 빚어졌다. 최초 정상 표지석 설치 당시에는 없었던 특정 지역임을 알 수 있는 지자체 표기가 설치 이후 누군가에 의해 지금의 정상 표지석에 석각(石刻)되면서 양 지역 간의 불협화음이 발생했는데 최근 이를 두고 다시 갈등이 재점화되었다.

무릇, 자연에는 주인도 없으며 인간은 잠시 머물다 이를 향유하고 갈 뿐이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그 가치는 그 어느 특권계층이 독점적으로 전유할 수 없는 대상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정상 표지석이 상식과 정상적인 의미에서 해석되기를 바라고 나아가 지역 화합의 표징이 되어 갈등과 대립으로 양립되는 지자체들에 단합과 결속을 다지는 매개체가 되었으면 한다. 정상 표지석은 서로 나눠 가질 수 없지만, 그것을 배경으로 한 추억은 얼마든지 서로 나눠 가질 수 있다.

<이경수 | 국립공원관리공단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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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우리 사회에서 가장 큰 관심을 모았던 말의 하나는 적폐청산이다. 적폐청산은 대선 과정에서 뜨거운 쟁점을 이뤘다. 5월10일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이를 100대 국정과제의 첫 번째로 삼았다. 적폐청산에 담긴 사전적 의미는 누적된 폐단을 깨끗이 씻어버리겠다는 것이다. 적폐의 동의어는 앙시앵 레짐, 즉 낡은 체제다. 낡은 체제를 청산하라는 것은 박근혜 정부를 조기 퇴진시킨 촛불시민혁명의 가장 중요한 요구의 하나였다. 문재인 정부가 촛불 시민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출범한 정부인 만큼 낡은 질서를 혁파하는 적폐청산은 새 정부의 당연한 과제였다.

정부의 적폐청산에 국민 다수는 호응했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던 것으로 보인다. 첫째, 적폐에 담긴 다의성(多義性)이다. 국민들이 파악하는 적폐의 대상은 제도·관행·가치·문화·인물 등 다양하다. 예컨대, 천민자본주의(제도), 갑질(관행), 권위주의(가치), 가부장주의(문화), 최순실(인물) 등이 그 목록을 이뤘다. 좀 더 넓게 보면 청소년에겐 가혹한 입시경쟁이, 청년세대에겐 씁쓸한 열정페이가, 중년세대에겐 무자비한 구조조정이 적폐로 지목됐다. 이렇듯 적폐에 담긴 의미가 다양하기에 이를 청산하려는 정부의 정책에 국민 다수는 공감했던 것으로 보인다.

둘째, 역사가 주는 교훈이다. 역사를 돌아보면 낡은 체제를 해체하지 않고 새로운 체제를 구축하기 어렵다. 개혁의 출발점은 과거 폐단을 바로잡는 데 있다. 구습을 쇄신해야 새로운 제도와 관행을 도입할 수 있다. 보수적 개혁이든 진보적 개혁이든 역사는 이러한 청산과 개혁의 과정에서 기성 제도를 옹호하는 세력과 새 제도를 지지하는 세력 간의 갈등이 일어났음을 보여준다. 분명한 것은, 헌 부대에 새 술을 담을 수 없듯, 낡은 질서를 놓아둔 채 새로운 질서를 일구긴 어렵다는 점이다.

정부의 적폐청산이 절대적 지지를 얻은 것은 아니었다. 일각에선 적폐청산을 정치 보복으로 파악하고 비판했다. 이들의 논리는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 진행되는 적폐청산이 인적 청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주장이다. 앞서 말했듯 적폐의 대상은 다양하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대상은 제도와 인물이다. 문제는 제도와 인물을 구분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제도를 잘못 운영했거나 범죄를 저지른 이들에게 법적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고, 이 과정에서 적폐청산이냐 정치 보복이냐의 논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일련의 적폐청산 과정에 대한 국민의 동의 여부다. 이제까지 정치 보복 논리보다는 적폐청산 논리에 대한 국민 지지가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둘째, 적폐청산이 국민통합을 약화시킨다는 주장이다. 적폐청산이 적과 동지의 이분법에 입각해 추진되는 것이라면, 이러한 시도는 국민통합을 점점 고갈시킬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그 청산이 옳음과 그름의 이분법에 기반을 두고 추진되는 것이라면, 그러한 시도는 외려 국민통합에 적잖게 기여할 수 있다. 분명한 것은 국민통합이 단순한 봉합 이상을 의미한다는 점이다. 국민통합이란 자기 나라에 대한 구성원들의 소속감과 타인에 대한 개인의 연대의식이 높아지는 것을 말한다. 드러난 범죄를 벌하고 그릇된 제도를 바꾸고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아 정의로운 국가가 될 때 국민통합은 더욱 제고될 수 있을 것이다.

한 걸음 물러서 볼 때 적폐청산은 고색창연한 개념이다. 내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일각의 비판과 개념의 진부함에도 불구하고 적폐청산에 대한 국민의 지지가 왜 높은지에 대한 성찰이다. 적폐청산에 대한 적극적 지지의 원인은 앞서 말한 적폐의 다의성에 있다. 구조화된 불평등은 물론이거니와 불공정과 각종 차별, 인권과 민주주의의 후퇴 등은 적폐의 포괄적 목록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다의성은 우리 사회에 부여된 전반적 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낡은 제도·관행·문화에 대한 포괄적 구조개혁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적폐청산은 유효한 개혁 담론으로 생명력을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자, 결론을 맺자. 적폐청산이 낡은 질서를 해체하는 과정이라면, 이는 새로운 국가와 사회로 나아가는 출발점을 이룬다. 적폐청산의 궁극적 목표는 정의가 올바로 구현되는 새로운 질서 구축에 있다. 이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적폐청산은 3단계 과정을 요구한다. 첫째 정확한 원인 규명, 둘째 그에 따른 책임 부과, 셋째 새로운 제도·관행·문화의 정착이 그것이다. 이 가운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제도의 설계다. 적폐가 반복하지 않도록 제도를 정밀하게 설계하고 이를 온전하게 정착시킬 때 적폐청산은 완성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김호기 | 연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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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스러운 이야기가 아니었다. 학교 기숙사에서 지낸다는 그는 급식실에 비빔 코너가 생긴 첫날, 밥을 간장에 비벼 먹어보고, 고추장에도 비벼 먹어보고, 주먹밥도 만들어 먹었다는 얘기를 사뭇 진지하게 했다. 생활하면서 겪은 우스운 이야기 공모에 응모한 글 중 하나였다. 비빔밥을 먹는 데 몰두한 그는 자신이 흔히 말하는 ‘급식충’이 된 것은 아닌가 자문하면서 글을 맺었다. 아마도 우스운 생활 글을 쓰려고 보니 밥을 비비는 데 심혈을 기울인 자신의 모습이 퍼뜩 떠올랐나 보다. 또 다른 응모 글 중 하나는 모의고사 볼 때 답안지를 작성하고 깜박 졸았는데, 가위에 눌려 손 하나 까딱할 수 없는 상황에서 혹여 답을 작성하지 않은 건 아닌지 두려웠다는 얘기였다. 글을 쓴 이는 시험 시간에 가위에 눌릴 정도로 잠에 취한 게 우스웠다고 적었다. 200여 편의 글들이 대개 이렇게 쓰는 이들은 생각할수록 우스웠을지 모르지만, 보는 이들은 그다지 우습지 않을 얘기들이었다.

“사실 아이들이 웃을 일이 별로 없을 거예요. 저는 오히려 응모한 글들을 보고 나름대로 재미있게 사는 애들이 있어서 위로가 되었어요.”

응모한 글을 함께 심사한 중학교 선생님은 학교에서 점점 따뜻한 웃음이 사라져 간다고 말했다. 자신이 교직 생활을 시작했을 무렵만 해도 온종일 떠들어서 목이 아파 기침을 하면 얼른 물 한 컵을 내주는 학생들이 있었는데, 요즘은 도리어 아이들이 낄낄 웃는다며 씁쓸해했다.

“요즘 아이들 웃음 코드는 남을 놀리는 거예요. 남을 깎아내리고 곤란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웃는데, 그걸 그냥 내버려두는 선생님들도 많지요.”

선생님은 아이들이 공감 능력이 없다고 말한다. 학교에는 다른 이 때문에 진심으로 웃지도 울지도 않는 아이들, 그런 아이들을 무심하게 바라보는 어른들만 있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공감’은 사람들을 만나 어울리고 부딪치고 서로 마음을 교류하면서 훈련되는 감정이다. 무엇이든지 가르치려고만 드는 어른들과 어떻게든 이겨야 하는 경쟁자들만 만나야 하는 아이들이 ‘공감’을 잃은 것은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요즘 공부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서 아무리 생각해 봐도 웃긴 추억이 하나도 없다는, 그래서 글을 쓰려고 웃긴 얘기를 찾아본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웃겼다는 한 학생의 글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김해원 |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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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소화 20년(1945년) 9월21일 밤, 나는 죽었다’로 시작한다. 일본의 한 기차역에서 죽은 소년의 손에서 양철 사탕통이 툭 떨어진다. 역무원이 사탕통을 집어 멀리 던지자 덮개가 열리고 주변에 반딧불이가 피어오른다. 그리고 회상 장면. 제2차 세계대전 중 비행기가 한 마을을 공습한다. 난리통에 14살 소년과 4살 여동생은 어머니를 잃고 친척집에 더부살이로 들어간다. 전쟁은 심장도 차갑게 만드는가. 친척의 냉대는 도를 넘고 소년은 동생을 업고 방공호로 들어간다. 동생을 먹이기 위해 소년은 도둑질한다. 그러나 미수에 그치고 흠씬 얻어맞는다. 방공호에 남은 동생은 하루하루 야위어 간다. 소년도 배고프기는 마찬가지다.

소년은 천신만고 끝에 먹을 것을 사서 돌아온다. 그러나 늦었다. 소년은 동생의 입에 수박 한 조각을 밀어넣지만 반응이 없다. 소년은 화장한 동생의 뼛조각 몇 개를 사탕통에 담는다. 영화는 눈처럼 날리는 반딧불이를 배경으로 유령이 된 남매의 뒷모습이 멀어지며 끝난다.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반딧불이의 묘>다. 영화는 1988년 만들어졌으나 한국에서는 2014년에서야 개봉됐다. 개봉 때 논란도 있었다. 반전영화라는 평가와 일본의 ‘피해자 코스프레’라는 주장이 맞섰다. 작금의 대일감정은 더 좋지 않다. 하지만 반전 메시지는 분명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신년 연하장에 1945년 원자폭탄이 투하된 나가사키의 한 소년의 사진을 담았다. 설명도 있다. 숨진 동생을 등에 업고 화장터에서 순서를 기다리는 소년. 원자폭탄이 투하된 뒤 조셉 로저 오도넬이 촬영했다. 입술을 꽉 깨물어 피가 흐르는 모습으로 아이의 슬픔이 표현된다. 교황은 자신의 서명과 함께 ‘전쟁의 결과’라는 문구를 넣었다. 교황은 지난해 12월31일 송년 저녁 미사 강론에서 “전쟁은 회개하지 않음과 부조리한 오만함의 가장 명백한 신호”라고 말했다.

손자는 전쟁을 직접 치른 경험을 바탕으로 병법을 썼다. 그 병법의 첫머리에 “전쟁은 국민의 생사를 가르고, 국가의 존망을 나누는 길이다. 신중해야 한다”고 적었다. 전쟁경계론이다. 전쟁을 아는 사람은 전쟁을 무서워한다. 전쟁이 뭔지도 모르는 이들이 전쟁을 용기의 표상으로 떠받든다.

<박종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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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생 시절 외국에서 몇 학기 공부하던 무렵이었다. 추운 저녁, 서점에서 약속을 기다리던 중 진열대에 놓인 <Stoner(스토너)>라는 생경한 제목의 소설을 보았다. 농대에 입학한 청년이 교양수업에서 접한 셰익스피어 소네트에 이끌려 영문학자의 길을 택하여, 평생 교단에서 가르치는 이야기라는 소개말이 적혀있던 것으로 기억한다. 배우도 정치인도 아닌 시골 대학교수의 일생이라니, 호기심이 일어 한 권 구입했다. 그리고 절반쯤 읽었을까. 재미없던 것은 아니었으나 진도가 더 나가지 않았다. 과민하고 변덕스러운 아내와 숙적 동료교수의 괴롭힘으로 점차 빛을 잃어가던 주인공이 답답했다. 당시 그 이야기는 악역들의 훼방으로 꿈이 좌절된 자의 실패기로 읽혔다.

한참 지나 교편을 잡은 첫 해 겨울, 상경하여 서점에 들렀다가 동일한 소설의 번역본을 발견했다. 사들고 와서 두 번째 읽으며 이번에는 답답한 마음이 들지 않았다. 작중 악역들이 일부러 주인공을 괴롭힌 것은 아니었음도 이해되었다. 국가와 정의를 말하면서 일상에선 부조리한 자들을 스토너가 용납 못하였듯 맞은편에서 볼 때는 정치 문제에 무심하고 사소한 데만 깐깐한 그가 한심했을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그가 빛을 발하지 못한 것이 타인의 훼방 때문만은 아님이 이제 보였다.

스토너는 셰익스피어 소네트를 읽고 세상이 다른 빛깔로 반짝이는 강렬한 경험을 하였으며, 그 경험은 삶을 결정지었다. 하지만 그의 사랑은 냉정히 말해 일방적이었다. “이 소네트의 의미가 뭐지?”라는 교수의 질문에 변변히 답하지 못했고, 감동을 어떻게 언어화할지도 몰랐다. 이렇듯 그가 사랑하였던 공부는 일평생 새침한 옆모습을 보여주었다. 힘겹게 달려가 어깨를 잡아 돌리면 견고한 등을 내어보였다. 아울러 그는 대단한 교육자도 못 되었고, 스스로 이를 알고 있었다. 능력이 부족하다는 자각으로 고민한 나머지 그 고민이 구부정한 어깨만큼이나 일부가 된 채, 그는 삶의 자리에서 매일의 일들을 해간다. 이 소설의 392페이지에 달하는 이야기는 바로 그러한 일상의 연속이다. 큰 결실은 맺지 못한 노력들의 누적으로서의 삶은 형언하기 어려운 감동을 주었다. 말하자면 그것은 천재의 실패기가 아닌 삶이라는 투쟁담이었다.

지구 저편에서 소설을 처음 펴들던 무렵의 나는 “학위를 위한 유학은 신식민지적이라 생각해요”라 말하던 되바라진 초학이었다. 더 새로운 것을 찾으며 자신의 연구가 남들과 다르다 여겼다. 그 초학은 공부의 여정에서 엎어지고 깨어지면서 깨닫게 되었다. 조금이라도 다른 주장을 하려면 얼마나 조심스럽고 엄정해야 하는지 말이다. 새침한 옆모습을 보여주는 연구대상 앞에서, 지금은 한 문장씩 잇기가 고되다. 온전히 이해 못한 이론을 모호한 서술로 눙치려는 유혹과 싸우고, 치밀하게 파고들어야 할 지점에서 붕 날아오르려는 논지를 끌어내려 감상적인 문체를 다듬는 작업은 그야말로 전쟁이다. 그 난리를 치르며 써낸 문장들이 타전되지 못한 채 식을 수 있음도 안다.

그럼에도 이따금 글을 쓰다 떨려올 때가 있다. 말하고픈 바가 있고, 그걸 좀 잘 전하려는 갈망에 부들부들 떨릴 때가 있다. 수업하다가 ‘이해한 눈빛’들을 마주하면, 커리큘럼 장악도 덜 된 채 다음 학기에는 이걸 하고 저것도 해야지 마음이 부푼다. ‘책으로 완성된 자신의 원고가 생각보다 뛰어나지도 나쁘지도 않다는 사실에 조금 놀라’기도 하고 ‘학생들의 과제물에 조심스러운 애정과 상상력이 드러나기 시작하자 기운을 얻어 한 번도 배운 적 없는 일을 해보기’도 한 스토너처럼, 그렇게 삶의 자리에서 매일의 발걸음을 떼는 것이다.

지휘자 사이먼 래틀은 말러의 교향곡 제2번 ‘부활’을 두고 이렇게 해석했다. 여기서 부활이란, 이름 없는 한 사람이 고통과 환희를 겪으며 생으로써 투쟁해온 자신만의 무언가를 껴안고 마침내 저 너머로 가는 여정을 의미하리라고 말이다. 불안정하고 불확실한 채 그럼에도 매일의 일을 하는 자의 이야기. 나와 그대, 그리고 세상의 수많은 스토너들이 떼어놓는 작은 발걸음들 또한 저마다의 세상 끝날, 이 소설처럼 남겨질 것을 상상해본다.

<이소영 | 제주대 교수·사회교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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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복지정책에서 가장 주목하는 하나를 꼽으라면 문재인케어이다. 아직도 어린아이의 병원비를 모금해야 하고, 큰 병에 걸리면 절대 빈곤으로 추락하며, 10가구 중 8가구가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하는 현실이다. 아무쪼록 문재인케어가 국민건강보험만으로 모든 병원비를 해결하는 밑바탕이 되길 간절히 바란다.

여기에 더해 문재인케어를 특히 주목하는 이유는 향후 진로가 험난하기 때문이다. 의료정책은 정부의 계획만으로, 국회의 입법만으로 완결되지 않는다. 중요한 행위자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의료계가 존재한다. 지금 이들이 반대한다. 현재 낮은 의료수가로 인해 병원 경영이 어려운데 문재인케어가 시행되면 더 힘들어진다는 게 의료계의 설명이다. 솔직히 일반 시민의 눈에선 수긍하기 어려운 주장이다. 우리나라 의사 수입은 지금도 상당한 수준이지 않은가? 정말 의료계가 문재인케어 반대를 통해 얻으려는 궁극의 목표는 무얼까?

우선 문재인케어로 병원 경영이 어려워진다는 논리를 살펴보자. 문재인케어의 핵심은 ‘비급여의 급여화’이다. 의학적 진료임에도 국민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를 모두 급여로 전환한다. 비급여 진료에 따른 과중한 비용을 감당해왔던 환자의 입장에서 반가운 정책이다. 거꾸로 비급여 진료에서 상당한 수익을 올려온 의사들에겐 전체 수입이 감소할 수 있다. 원가 이하의 급여 진료 수가로 발생한 적자를 비급여 진료로 보전해왔다는 게 의료계의 설명인데, 지금까지 비급여에 거품이 있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문재인케어는 의료계의 주장을 반영해 현행 급여 진료의 수가를 올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총량에서 의료계 수입이 유지된다는 의미이다.

그런데도 저항이 거세다. 이는 갈등의 뿌리가 더 깊은 곳에 있음을 시사한다. 바로 ‘진료행위 관리권’이다. 의료서비스는 구매자(환자)와 판매자(의사) 사이 정보 비대칭성이 매우 큰 영역이다. 의사 선택은 환자의 몫이라 해도 일단 만나면 의사의 처방대로 구매한다. 문재인케어에선 비급여의 급여화를 통해 모든 의학적 진료행위가 공적 관리체계로 들어온다. 환자와 의사 사이 직거래로 종료되던 비급여 진료가 국민건강보험 체계로 편입되는 획기적인 변화이다. 의사 입장에선, 아무런 간섭을 받지 않았던 비급여의 진료비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청구해야 하는 게, 또한 같은 전문가가 심사평가를 위해 진료내역을 들여다보는 게 불편할 수 있다.

하지만 의학적 성격의 진료라면 모두 국민건강보험 체계로 들어오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다. 비급여에 존재하던 거품도 당연히 사라져야 한다. 대신 진료 내역에 대한 심사평가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내년 상반기부터 진료를 평가한 상근심사위원을 공개하는 심사실명제가 시행된다. 상황이 이러하다면 명분과 현실에서 의료계가 비급여의 급여화를 거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렇다면 의료계는 공연히 반대하고 있는 걸까? 아니다. 의료계는 반대 정치를 통해 자신의 요구를 이뤄가고 있다. 여전히 비급여의 급여화 자체를 규탄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이를 발판으로 삼아 최대한 실리를 얻어가는 모양새다. 우선 의료수가 인상이다. 지난달 대규모 집회 다음날, 대통령은 “의사들의 염려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라며 사실상 수가 인상을 약속했다. 이어 복지부와 의료계가 적정수가 보장 방안, 심사평가체계, 건강보험공단 개혁 등을 다루는 실무협의체를 구성했고 어제 첫 회의를 가졌다. 향후 제도개혁에서 의료계의 뜻이 계속 담길 것으로 전망된다.

유감이다. 과연 이 주제가 의사들만의 일인가? 정부와 의료계만으로 테이블을 구성해 문재인케어의 실행 방안을 논의하는 건 부당하다. 수가는 의료계의 수입뿐만 아니라 가입자의 보험료에도 영향을 준다. 실제로 진료 표준화, 병의원 체계 정립 등 국민건강보험의 모든 영역이 시민들과 엮여 있다. 사실 시민단체도 문재인케어에 만족하는 건 아니다. 현행 국민건강보험 보장률 63.4%가 70%로 올라가는 수준이다. 박근혜 정부도 임기 말 목표를 68%대로 제시했었다. 그럼에도 시민단체는 문재인케어가 우리나라 보건의료체계를 혁신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기에 비판하고 또 협력해 왔다.

모두가 함께 논의하자. 시민, 의료계, 정부가 참여하는 ‘문재인케어위원회’가 필요하다. 이 자리에서 의료수가의 적정 수준과 진료 심사체계의 개혁 방안을 다루고, 동네의원에서 대학병원까지 의료전달체계도 바로잡자. 나아가 국민건강보험 보장성을 선진국 수준으로 상향하는 중장기 비전도 마련하자. 시민들이 언젠가 민간의료보험을 해약할 기대를 가지도록 말이다. 그래야 이름에 어울리는 ‘문재인케어’이다.

<오건호 |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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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수 대법원장이 2일 시무식에서 “좋은 재판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법관의 독립’이 확고히 보장되어야 한다”면서 “이를 위해 법원 내부 입장뿐 아니라 외부의 객관적 시각도 충분히 반영할 수 있는 중립적 기구를 설치하는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사법제도 개혁을 위한 실무준비단’에서 구성을 건의한 ‘좋은 재판을 위한 사법혁신위원회’(가칭)도 설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관예우 문제와 관련해서는 “실태와 해결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구체적 논의를 시작할 계획”이라며 “폐쇄적 태도에서 벗어나 외부 의견도 경청할 수 있어야 한다. 외부감사관제 도입도 추진하겠다”고 했다. 김 대법원장이 사법개혁 의지를 분명히 재천명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특히 법원 외부의 견해에도 귀를 기울이겠다고 한 점을 긍정 평가한다.

앞서 김 대법원장은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을 재조사토록 했고, 대법관 후보 추천에 개입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인사를 통한 법관 통제 수단이라는 비판을 받아온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 제도도 폐지하기로 했다. 모두 의미 있는 조처들이다. 그럼에도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사그라들지 않는 까닭은 “구체적 재판에서 시민의 법 감정과 동떨어진 판단을 하는 예가 자주 보인다”(김선수 변호사·한겨레신문 기고)는 지적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헌법 제103조가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명시한 것은 시민이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최근 일부 판결과 결정은 법관의 독립이 무엇을 위한 것인가 하는 의문을 낳는다. 진경준 전 검사장이 넥슨 측에서 받은 공짜 주식과 고급 승용차 등을 뇌물이 아니라고 판단한 대법원 판결이 대표적 사례라 하겠다.

법관의 윤리에 대한 법원 내·외부의 시각차도 문제다. 사법부는 그동안 전관예우의 존재 자체를 부인해왔지만 시민은 좀처럼 믿지 않는다. 지하철에서 여성의 신체를 휴대전화로 몰래 찍은 혐의로 체포된 판사는 감봉 4개월의 징계에 그쳤다. 일반 공무원의 경우 ‘몰카’ 범죄는 중징계 대상이다.

법원의 판단은 존중받아야 하지만, 그렇다고 성역이 될 수는 없다. 법관의 윤리 문제도 마찬가지다. 법관 중심의 시각과 이해관계에서 탈피해 시민의 눈높이에 맞출 때만 사법부의 진정한 변화와 신뢰 회복이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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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2일 “청와대와 정부가 김정은의 신년사에 반색하면서 대북 대화의 길을 열었다는 식으로 환영하는 것은 북한의 책략에 놀아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역사의 죄인이 될 것”이라고 했다. 북한의 평창 올림픽 참가는 인류 평화의 제전이라는 올림픽의 정신을 살리고 나아가 ‘평창 성공’의 핵심이 될 수 있다. 보수세력도 평화올림픽이 되어야 한다는 데 아무런 이견이 없다. 그런데 정작 그런 전기가 마련되니까 남남갈등을 부추기는 정쟁의 도구로 삼는 격이다.

신보수를 자처하는 유승민 바른정당 대표도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 신년사에 대해 “국제사회의 제재와 압박을 무력화하고 핵무기를 완성하기 위한 시간끌기용 제스처”라고 비판했다. 바른정당은 현재 국민의당과 설 전에 통합을 마무리한다는 목표 아래 한창 실무 작업을 진행 중이다. 통합 파트너인 국민의당은 “경색되었던 남북관계의 터닝포인트가 되길 바란다”고 환영했다. 유 대표는 햇볕정책에 부정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쟁점에 대해 정반대 입장을 보이는 두 당이 한솥밥을 먹겠다고 하는 모순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남북 문제는 대결이 아닌 대화와 협상을 통해 해결할 수밖에 없다. 평소엔 남북관계의 안정적 관리가 되지 않아 한반도가 위기 상황으로 치닫는다고 주장해온 보수 야당이 대화가 시작되려고 하니 이를 비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각계를 대표하는 인사 246명을 초청해 신년인사회를 열었다. 그러나 홍·유 대표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등 제1, 2, 3 야당 대표가 약속이나 한 듯 모두 불참했다. 저마다 이런저런 핑계를 댔지만 공감하기 어렵다. 야당은 그동안 불통과 편가르기가 나라를 망친다며 청와대의 소통 부족을 비난한 바 있다. 그렇다면 더더욱 대통령과 야당 대표가 얼굴을 자주 대해야 한다. 야당 대표들이 그런 자리를 스스로 차버린 것은 협량의 정치라고밖에 할 수 없다.

신년인사회에서 한 시민은 “모두가 행복하고 싸우지 않는 나라가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2018년 새해는 여야가 불통을 버리고 소통과 타협의 정치로 나아가는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기를 시민들은 바라고 있다. 야당이 새해 벽두부터 이런 시민의 여망과는 달리 구태를 반복하고 있는 것은 실망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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