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 교육계에 큰 파장을 일으킨 발표가 있었다. 미국의 100대 명문 사립고등학교가 성적증명서에 기존의 과목명과 성적을 빼고 핵심 역량 성취도를 중심으로 표기하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는 것이다. 미국 내 아이비리그를 포함한 명문 대학 신입생의 대부분이 이들 100대 명문 사립고등학교 출신이기 때문에 미국 고등학교에서 새로운 역량 중심 성적증명서가 도입되면 곧 대학의 입학 사정 방식에도 변화가 생길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교육 전문지 ‘인사이드 하이어 에드(Inside Higher Ed)’가 지난해 5월 보도한 바에 따르면, 새로운 역량 중심 성적증명서에는 분석적·창의적 사고능력, 복합적 의사소통, 리더십과 팀워크, 디지털·양적 리터러시, 세계적 시각, 적응력·진취성·모험정신, 진실성과 윤리적 의사 결정, 마음의 습관 등 8대 핵심 역량을 바탕으로 학생들을 평가한 내용이 기록된다. 영어·수학·과학 등 수업에서 받은 성적을 표기하는 정량적 평가 방식은 지양하고 각 핵심 역량별로 개별 학생들의 성취도와 숙련도를 표기하는 정성적 평가 방식을 적용한다는 것으로, 다가오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적합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변화다.

미국의 공립고등학교들도 학생 개개인의 핵심 역량을 강화해 21세기형 인재로 양성하기 위한 계획을 앞다퉈 발표하고 있다. 미국 내에서도 전통적으로 교육 수준이 높은 버지니아주의 고등학교 3곳은 지난해 2월, 2018년도 신입생부터 ‘하이스쿨 2022’ 프로그램을 신설해 적용한다고 발표했다. 이 프로그램의 주목적은 고등학교에서 개인 맞춤형 학습을 실현하는 것이다. 학생들은 자신의 학습 목표에 맞춰 수강할 과목과 과외활동을 정하고 개별 일정에 맞춰 등교와 하교를 하게 된다. 또한 영어와 과학, 수학과 사회 등 몇 개 과목을 연계해 융합한 학제 간 수업들도 들을 수 있게 된다.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주의 한 고등학교는 이미 2년 전부터 150여명의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개인 맞춤형 학습 프로그램을 시범 운영해 왔으며 지난해 9월부터는 전체 신입생을 대상으로 개인 맞춤형 학습 프로그램을 확대 실시하고 있다. 신입생을 맡은 교사들은 학생 개개인의 장점과 선호에 따라 개인 맞춤형 학습을 진행할 수 있도록 교육을 받았고 커리큘럼도 학생들이 개인의 관심과 흥미를 찾고 추구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 새롭게 구성됐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런 미국 고등학교의 다양한 변화의 중심은 바로 학생이라는 점이다. 이들의 변화는 대학입시 정책의 변화에 맞추기 위한 것도 아니고 더 좋은 대학에 보다 많은 학생들을 입학시키기 위한 것도 아니다. 학생 개개인이 새로운 시대에 잘 적응하고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개인의 역량을 강화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

한국에서도 얼마 전 교육계에 큰 파장을 일으킨 발표가 있었다. 2021학년도 수능 절대평가 도입안과 학생부종합전형 평가요소 가운데 자기소개서와 교사추천서를 축소·폐지할 계획이란 교육부의 발표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두 가지 계획 어디에도 학생이 중심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교육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연계해 한 국가와 그 구성원들의 미래를 준비하는 복합적이고 중대한 사안이기 때문에 어떤 정책이나 제안도 완벽할 수는 없다. 앞에 소개한 미국 고등학교의 변화도 현실적으로 실행되고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성적평가 제도나 학사운영 방식 변화에 앞서 여러 과제들을 해결해야 한다.

하지만, 교육의 중심에 학생이 있고 아이들의 보다 나은 미래를 논의하고 고민하는 과정 속에 나온 이런 변화와 시도는 분명 의미있는 움직임이 될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의 도래를 처음 세상에 알린 세계경제포럼이 지난해 발표한 ‘일자리의 미래(The Future of Jobs)’ 보고서에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인재들에게 요구되는 10대 핵심 역량이 나와 있다. 

순위로 보면, 복합문제 해결능력, 비판적 사고능력, 창의력, 인적자원 관리능력, 협업능력, 감성능력, 판단 및 의사결정 능력, 서비스 지향성, 협상능력, 인지적 유연력 등이다. 

우리나라와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 교육계가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4차 산업혁명이란 새로운 시대는 점점 빠른 속도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지금 우리가 무엇에 중점을 두고 어떤 변화와 시도를 할 것인지 정하는 바에 따라 우리의 미래는 크게 달라질 것이다.

<류태호 미국 버지니아주립대 평생교육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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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일본은 울릉도와 독도 사이에 굵은 선을 쭉 그어놓고 초·중·고 학생들에게 이 선을 한·일 간의 국경선이라 가르치고 있다. 학교 교육은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지므로 이제 얼마 있지 않아 일본 열도는 ‘다케시마 탈환’의 함성으로 가득 찰 터이다. 한·미 방위조약이 있지만 미국과 일본 사이에도 상호방위조약이 있는 데다 한·일 간의 영토분쟁에는 관여하지 않는다는 미국의 입장으로 볼 때 일본과의 영토분쟁이 일어나면 우리는 미군의 도움 없이 일본 해군과 싸워야 한다. 하지만 이미 1940년대에 미국과 태평양 해전을 벌였던 일본을 이기고 우리가 독도를 안전하게 건사한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전쟁을 경제학으로 설명하자면 짧은 시간 안에 최대의 돈을 쏟아붓는 행위인데 사실 돈이 없어 전쟁을 치르기 힘든 북한에 비해 일본과의 무력충돌 가능성은 훨씬 크기만 하다. 그렇다고 해서 일본을 상대로 죽기 살기로 해군력을 키울 수 없는 일이고 보면 우리는 독도 방어를 위한 외교적·문화적 대응에 치밀해야 하고, 이에 무엇보다도 시급한 건 우리가 자신도 모르게 독도를 영토문제라 생각하고 있는 의식의 오류를 바로잡는 일이다. 독도는 영토분쟁이 아닌 과거사 문제이다.

일본은 1895년 경복궁에 난입해 국모 명성황후를 폭행하고 기름을 부어 불태워 죽였다. 이때 우리는 이미 항거불능 상태에 빠져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했고 10년 후인 1905년 일본은 독도를 자국 영토로 편입했으며 그로부터 5년 후인 1910년 나라를 병탄했다. 그러므로 독도 문제는 일본의 주장대로 국제사법재판소 판단을 구해야 할 쟁송 사건이 아니라 명성황후 폭행소살, 한일병탄과 더불어 ‘일본 제국주의 침략 3대 사건’ 중 하나인 것이다.

이처럼 독도 침탈은 본질적으로 식민지 한국 여성을 전쟁터의 성노예로 끌고 나간 일본의 반인륜적 제국주의 만행과 궤를 같이하기 때문에 우리는 세계인들이 보편적으로 공감하는 위안부 문제를 지속적으로 고발하면서 자연스럽게 독도 분쟁의 실체를 알리고, 이 문제에 있어 일본 편을 드는 건 바로 제국주의적 침략과 반인류적 만행을 옹호하는 행위라는 사실을 분명히 해야 한다. 유대인들을 보라. 그들은 끊임없이 아우슈비츠를 고발하는 문학과 영화 등으로 독일의 만행을 전 세계에 알리고 있지 않은가. 게르만 민족주의로부터 안전을 도모하는 유대인들의 이러한 방법론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우리 외교부 관리들이 거꾸로 소녀상 은폐를 포괄적으로 내포한 합의서를 공동으로 작성했다는 사실은 귀를 의심케 한다.

외교의 기본은 국익이라 우리 외교관들 중에는 위안부는 지나간 과거이고 일본과의 안보 및 경제 협력은 당금의 현안이니 이것이 훨씬 중요하다는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아마 이런 합의가 이루어진 것도 국익을 염두에 둔 외교관들의 실용적 시각이 반영된 결과일 터이다.

그러나 위안부 합의는 결코 지나간 과거의 일이 아닌 미래의 문제, 아니 이제 곧 우리를 덮칠 독도 무력분쟁과 연계된 문제라는 걸 명심해야 한다. 그러므로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일본과의 위안부 합의에 중대한 흠결이 있으며 이 합의를 가지고는 위안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소회를 밝힌 건 너무도 잘한 일이다.

이에 대해 아베 총리는 평창 올림픽 불참과 대사 소환을 운위하고 일본 언론과 심지어는 일부 국내 인사들까지 국제사회에서의 신의를 깨는 행위라고 몰아붙이고 있지만 이것은 언어도단이다.

2015년의 위안부 합의를 파기하고 반드시 재협상을 해야 할 이유를 세 가지로 정리해 두고자 한다. 

첫째, 한·일 외무관리들 간의 이 합의는 노출을 꺼려한 데다 역사적 책임을 의식했을 박근혜 대통령 또한 비준을 하지 않아 국가원수의 직인이 들어간 정식 문서로 작성되지 못했다. 국가 간의 조약이나 협정을 규정한 빈 협약은 준수할 의무가 있는 국가 간 협약은 반드시 국가 의사 최고결정권자의 승인(endorsement)을 받아 정식의 문서로 작성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떳떳하지 못한 이 합의는 이 규정을 피해갔으므로 대한민국은 이러한 비정상적인 합의의 내용을 지킬 의무가 없고 지켜서도 안 된다.

둘째, 성노예라는 표현을 숨기고 소녀상 이전을 위해 노력한다는 등 이 합의는 역사의 진실을 숨기고 자국민에게 가해진 만행을 은폐하려는 의도가 들어가 있는 비인도적 굴욕 문서인 만큼 당연히 즉각 파기되어야 한다. 약속의 파기에 따른 국가 신인도 하락을 걱정하는 인사들이 있는데 실상은 오히려 그 반대이다. 세계인들은 이미 소녀상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일본 정부는 세계 곳곳에 설치되는 소녀상을 가로막아 과거사를 숨기려 혼신의 힘을 다하지만 번번이 지구적 공감대에 가로막혀 좌절하는 걸 우리는 분명히 목도하고 있다.

반인류적 범죄 은폐의 시도를 내몰고 정의로운 협약을 이끌어내고자 하는 대한민국을 향해 세계가 박수를 칠지언정 비난을 할 거라는 주장은 당치도 않다.

셋째, 무엇보다도 위에서 살펴본 대로 위안부는 다만 지난 과거의 일이 아니라 다가오는 독도전쟁을 막을 수 있는 우리의 유력한 외교적·문화적 무기이다. 위안부와 독도를 한 묶음으로 묶어 반제국주의의 세계적 연대를 결성하는 것이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오는 일본의 독도 침공을 사전에 무산시켜 전쟁을 막는 우리의 책략이 되어야 하고 그 첫걸음은 잘못된 위안부 협정의 파기이다.

역사의 시간이 흘러 눈앞을 가린 아베의 안대가 벗겨지면 일본인들도 우리의 이 결정을 평가하고 고마워할 것이다. 한국이든 일본이든 전쟁을 막는 것 이상의 국익은 없기 때문에.

<김진명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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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의 최전선을 다루는 패션잡지에서 일하며 아이템이 떨어질 때마다 마치 구세주를 찾듯 종종 찾아가는 사람이 있었다. 내가 ‘마선생’이라고 부르는 사람으로 업계에서는 선수권대회에 나가도 좋을 만큼 ‘촉’이 빠르고 ‘입담’마저 ‘메달감’으로 통하는 인테리어 디자이너 마영범이었다. 패션 피플 1세대답게 그의 정치적 성향은 사뭇 ‘조선일보’스러운 데가 있었고 잘 모르고 보면 그냥 ‘잘 늙지 않는 날라리’ 분위기였지만 내가 아는 그는 보기보다 훨씬 더 지성적인 동시에 인간적으로 순수하고 깊이라든가 진정성마저 있는 사람이라 나는 그를 기꺼이 ‘선생’으로 생각했다.

마일스 데이비스의 LP판. 중고 판매 사이트 갈무리

그런 그가 몇 해 전에 매우 신선한 ‘새해 결심’을 했던 걸로 안다. 내가 패션지 기자 신분으로 맞은 거의 마지막 새해였던 것 같은데 오랜만에 만난 그가 이렇게 말했다.

“친구 최시영이랑 ‘새해부터는 아날로그를 하자’고 다짐했어. 그래서 새해 첫날 아침부터 의자 위에 눌어붙어서 그동안 못 들었던 LP를 실컷 들었다니까. 그중 가장 좋았던 게 마일스 데이비스의 <Bags Groove>였는데 그걸 듣고 있으니까 너무 좋아서 심지어 눈물이 나는 거야. 어느새 나도 속절없이 늙어버렸지만 내 앞에 이렇게 느긋한 방식으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시간들이 점점 더 많아질 거라고 생각하니 늙는 게 나쁘지 않게 느껴지더라고. 그러다 죽어도 괜찮을 것 같고.”

생각해 보니 내게 이른바 ‘차 한 잔으로 부릴 수 있는 여백의 힘’을 알려준 것도 마선생이었다. 자동판매기에서 인스턴트 커피 나오는 시간도 지루해 좀이 쑤시는 종류의 인간이 바로 나였는데 그런 내가 어느 순간부터 잎녹차를 우려 마시고 있었다.

“난 말이야. 우리가 고요히 기다리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도 직접 차를 우려 마셔야 한다고 생각해. 특히 이렇게 미친 듯이 바쁘게 사는 우리한텐 그런 게 꼭 필요해. 예컨대 티백이나 가루녹차 같은 것 말고 잎녹차를 끓여 마신다는 행위는 어쩔 수 없이 시간과 정성을 필요로 하는 거잖아. 그리고 그 시간과 정성을 들이는 과정을 통해 결국 자기 자신과 ‘관계’하는 거고.” 그의 얘기는 그것이 자기 자신과 관계하는 ‘순간’이기에 기꺼이 정성과 시간을 들여야 하고 마음에 드는 다완도 사고 기분 좋고 바스락거리는 좋은 찻잎도 사고 물도 끓이고 차 마시기 좋은 온도가 되기를 참을성 있게 기다리는 법도 배워야 한다는 걸 의미하는 것 같았다.

“청담동이나 압구정동의 온갖 화려하고 세련된 곳들 있잖니. 그런 곳들에 내가 손댄 곳이 많으니까. 하지만 오히려 그 중심에 있어 보았기 때문에 아는 거지. 그 중심에 있는, 그런 기분 같은 것의 공허함이랄까 뭐 그런 것들을. 그래서 나는 이제 엄청나게 크고 화려한 일들, 그런 것에 마음이 끌리지 않아. 오히려 손으로 만져서 그 감촉을 느낄 수 있는 일들, 그래서 요즘 공예라든가 핸드메이드라든가 하는 보다 아날로그적인 것에 관심을 가지게 돼. 그게 직접적인 교류의 문제인 거잖니? 크건 작건 상관없이 일일이 내 손으로 직접 만져서 더 밀접해지고, 깊은 관계를 가지는 게 중요하단 생각이 들어.”

이제와 생각해 보면 정말이지 얼마나 놀랍도록 촉이 빠른 동시에 본질을 꿰뚫는 진실된 얘기가 아닌가 싶다. 누가 알았을까? 그렇게 하나둘 사라지다가 결국 공룡처럼 멸종하고 말 거라고 예상하던 소규모 동네서점이나 음반가게들이 다시 문을 열고 있다는 희소식을 전할 줄이야. 얼마나 가슴 뛰는 멋진 트렌드인가 싶다. 온 세상 음악을 클릭 한 번으로 들을 수 있는 시대에 음악을 손으로 고르고 구매하는 육체적 즐거움에 눈뜬 젊은이들이 새삼 비닐 레코드이거나 CD, 심지어 카세트테이프로 된 음반을 기꺼이 구매하고 있다는 뉴스를 전하는 기쁨을 누리게 될 줄이야. 야호!

아마존이 뉴욕 맨해튼에 오프라인 서점을 열었다는 소식이 먼저였지만 그보다 더 반가웠던 건 내 대학시절의 우상이었던 최인아 카피라이터가 강남에 동네서점을 열었다는 소식이었다. 기쁜 마음에 그 최인아 서점에 갔다가 발견한 책 <아날로그의 반격>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디지털에 둘러싸인 우리는 이제 좀 더 촉각적이고 인간 중심적인 경험을 갈망한다. 우리는 모든 감각을 동원하여 제품이나 서비스와 소통하기를 원하며, 많은 사람들이 그런 경험을 위해 기꺼이 웃돈을 지불할 용의가 있다.”

그리하여 세계는 지금 비트코인 광풍에 휩싸여 다양한 연령대의 폐인들을 양산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새해엔 아날로그를 하자’고 결심하는 이들이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나는 후자다. 이미 수고롭게도 LP는 물론 CD와 카세트테이프로 음악을 듣고 동네서점에 가서 마음에 드는 책을 발견하는 즐거움을 누리고 있으며 날이면 날마다 핸드드립 커피와 잎녹차를 마시고 있는 나는 새해엔 더 아날로그적인 인간이 되자 결심하며 다시금 필름 카메라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어떻게 하면 암실에서 현상하는 육체적 즐거움까지 누려볼 수 있을까 상상도 해 본다. 그런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뛰는 나는 어쩔 수 없는 아날로그형 인간이다. 오감을 통해 세상을 경험하는 육체적인 존재라는 점에서 인간은 사실상 누구나 다 아날로그다. 그 사실이 난 기쁘다. 당신은 어느 쪽인가?

<김경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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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발전은 민주주의와 양립하기 어렵고, 원자력을 평화를 위해서만 이용하는 것도 불가능에 가깝다. 대통령의 최측근이 먼 나라에 ‘몰래’ 특사로 다녀오고 그 이유를 비밀에 부치는 것은 민주주의가 단단히 뿌리내린 국가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그 나라와 큰 돈벌이가 되는 계약을 맺었다는 단 하나의 이유만으로 헌법에 명시된 절차도 무시하면서 군대를 파견하고 각종 군사지원을 해주는 일도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원자력발전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을 현실로 만들었다.

대통령 비서실장의 특사파견으로 불거진 아랍에미리트연합과의 각종 비밀협약(설)들은 어느 누가 잘못한 결과가 아니다. 민주주의를 하찮게 여겼던 반민주 정부가 민주주의를 모르는 왕정국가에 민주주의와 양립하기 어려운 원자력발전을 넘겨주었기 때문에 거의 필연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지금 특사파견을 둘러싸고 극심한 논란이 벌어지는 이유는 촛불혁명으로 민주주의가 회복되었기 때문이다. 촛불혁명 없이 반민주 정부가 지속되었다면 이런 논란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촛불혁명으로 들어선 민주주의 정부도 원자력발전 앞에서는 주눅들어 있는 것 같다. 특사파견 이유도 제시 못하고, 밝히면 야권이 감당할 수 있겠냐고 우회적으로 반격하고, 원전수출이라는 국익을 위해 숨길 수밖에 없다는 변명이 모두 그런 까닭일 것이다. 그중에서 정부를 가장 움츠러들게 만드는 것이 ‘원전수출은 국익’이라는 구호인 것 같다. 특사파견 이유를 밝히면 사우디, 터키, 요르단, 영국 등지의 원전 수출길이 막힌다는 두려움이 있는 것이다.

원전수출은 국익을 위하는 것일까? 오히려 국익을 해치는 일은 아닐까? 더 나아가서 민주주의를 억누르고 인권 침해를 돕고 지구환경을 파괴하는 일은 아닐까? 대다수 아랍에미리트연합 국민들은 원자력발전소 건설에 관심이 없다. 전기요금 거의 제로라는 국왕의 시혜를 누리며 사는 데 익숙해져 있을 뿐이다. 핵폐기물과 사고위험에 대한 우려는 극히 일부에서만 나오고, 이들도 공개적으로 목소리 내기를 꺼린다. 우리나라의 박정희 정권에서 고리 1호기가 세워질 때와 비슷한 상황이다. 하지만 40년이 지난 지금 상황은 완전히 바뀌었다. 원전의 위험은 전 국민의 관심사가 되었고, 촛불시민들은 원전을 포기하는 방향을 선택했다. 아랍에미리트연합에서도 언젠가 그렇게 될 수 있다. 그때가 되면 그 나라에 원전을 수출한 한국은 자기가 포기한 원전을 돈벌이가 된다는 이유로 떠넘겼다는 비난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중동의 다른 나라에서 비난은 이미 시작됐다. 2012년 요르단 시민들은 한국의 연구용 원자로 건설을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고, 한국대사관에 건설을 멈추라는 항의서한을 보냈다.

일년 전 아랍에미리트연합에서는 2050에너지계획을 발표했다. 주된 내용은 전체 에너지의 절반가량을 재생가능에너지로 충당하고, 이를 위해 170조원에 달하는 돈을 투자하겠다는 것이다. 이 계획에서 원자력이 차지하는 비중은 6%밖에 안된다. 원자력발전은 현재 건설 중인 4기로 묶어 두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들도 미래는 태양광과 풍력에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왜 그들은 원자력발전소를 가지려 했을까? 답은 아마 군사적 활용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원자력발전소 보유가 아니라 이를 당근 삼아 한국의 군사력을 가져오는 것이 이면의 목표였으리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랍에미리트연합은 원자력이 핵무기가 아니라 이런 방식으로도 군사용으로 활용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고, 한국은 영리한 그들에게 이용당한 셈이다. 그런데도 한국은 원전수출에 매달리고 있다. 하지만 170조원과 22조원을 비교하면 우리가 어디로 눈을 돌려야 하는지 분명해진다. 그래야 떳떳하게 돈도 벌면서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민주주의 국가로 우뚝 설 수 있다.

<이필렬 방송대 교수 문화교양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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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 영화나 드라마는 오래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워킹데드(Walking Dead)>라는 티브이 드라마는 지난 몇 년간 미국에서 선풍적 인기를 누리고 있죠. 한국에서는 <부산행>이라는 놀라운 걸작이 나왔습니다. 이런 작품은 보통 좀비의 무서움을 묘사하며 시작하지만, 곧 좀비보다 무서운 게 사람이란 걸 보여주죠. 혼란 속에서 그 어떤 괴물보다 무자비한 인간의 얼굴을 그립니다.

그런 무자비함은 무정부 상태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습니다. (좀비, 핵전쟁, 외계인 침입 등에서 시작한) 무정부 상태가 숨겨졌던 본성을 깨우는 것은 아닙니다. 본성은 그대로죠. 무정부 상태에서는 다만 서로서로 믿을 수 없을 뿐입니다. 보통 때는 분쟁이 있으면 법원을 갑니다. 공권력은 범죄자를 잡아 격리해 죗값을 묻게 하죠. 내 멋대로 살고 싶지만, 나의 안전을 위해 자유를 어느 정도 포기하고 그 질서를 따릅니다. 덕분에 사람들은 지나가는 저 사람이 갑자기 나를 때리지 않으리라는 안심을 합니다. 계약하면 지켜지리라 믿죠.

정부가 없으면 이 모든 안전장치와 이에 따른 사회적 신뢰와 질서가 사라집니다. 당장 내 몸을 지키기 위해 작은 막대기라도 잡아야죠. 옆 사람은 자연스레 불안해집니다. 내 몸을 지키기 위한 것일 뿐이라고 아무리 말해도 소용없습니다. 무법천지에서 그 사람도 별수 없습니다. 슬며시 막대기 하나를 집습니다. 혹시 모르니 칼 한 자루도 챙깁니다. 그리고 날 보며 웃습니다. 걱정 마. 널 해치려는 것은 아니야. 나는 총을 찾고, 그 사람은 탱크를 찾고. 끝이 없죠.

내 안보가 증가한 만큼 옆 사람 안보가 줄어드는 딜레마에 빠진 겁니다. 사람이 나빠서가 아닙니다. 서로 미워해서도 아니죠. 말이 안 통해서도 아닙니다. 말을 보증해줄 정부가 없어서죠. 영화나 드라마뿐만이 아닙니다. 현실에선 국제정치가 그렇죠. 국제연맹과 여러 기구가 있고 국제법, 규약, 도덕 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국가 행동을 규제하고 강제할 법과 처벌장치는 많이 모자랍니다. 특히 국가 안보에서 더욱 그렇죠. 우방이니 친구니 말은 많지만 결국 안보를 책임지는 것은 온전히 자기 몫임은 국제정치에서 잘 드러납니다. 이라크가 한때 우방이었던 미국의 손에 파괴된 게 2003년이었죠.

이런 국제정치의 태생적 원리를 이해한다면 북한의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 개발이 위협만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왜 아무리 대화를 종용해도 번번이 핵무기에 매달리는지도 알 수 있죠. 핵무기 개발에 환호하는 북한 인민의 심정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은 신년사에서 평창 올림픽에 대표를 보낼 수 있다고 했고 이를 위해 남북 당국이 시급히 만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갑작스러운 대화 공세에 의아해하고 의심의 눈길을 보내는 이도 있습니다. 당장 서방 외신은 한·미동맹을 약화하기 위한 정치공세라는 해석을 보도했고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도 신년사 환영을 북한 책략에 놀아나는 것이라 일축했죠. 하지만 이는 북한이 마침내 안보 딜레마를 해소하면서 비로소 자신감이 생긴, 국제정치의 원리를 간과하는 겁니다.

무법천지인 세계정치에서 자신을 지킬, 김정은 위원장 표현에 따르면 ‘평화수호의 강력한 보검’을 얻고서야 남북대화의 기회가 온 겁니다. 역설적이죠. 사실 북핵 개발로 한국 안보 상황이 크게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북한의 위협은 지금도 예전과 마찬가지로 재래식 무기와 휴전선~서울의 짧은 거리에서 오죠. 계산이 크게 바뀐 쪽은 미국입니다. 한국으로서는 오히려 기회입니다. 차분하게 미국, 북한과 대화를 이어가며 평화의 공간을 늘려야 합니다.

문재인 정부는 당장 대화를 시작하자고 화답했습니다. 환영할 일입니다. 이를 기회로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을 되살려야 합니다. 종북이네, 이간질에 속네 하는 소음도 작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지체할 시간이 없습니다. 서두르지 않으면 한국은 미국, 중국, 북한, 러시아 등 핵무장 국가 사이에서 아무 목소리도 낼 수 없게 될 테니까요.

좀비 영화나 드라마는 보통 질서의 회복으로 끝납니다. 한반도에서 그 질서는 상호교류와 신뢰 회복입니다. 2018년은 그 회복을 시작한 해로 역사에 남기를 기원합니다.

<남태현 미국 솔즈베리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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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대한민국에서 근래 보기 드문 매우 독특한 현상이 하나 나타나고 있다. 그건 바로 반미 데모나 반미 여론이 매우 약화되었다는 점이다. 특히 진보계열의 움직임이 그러하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의 11월 방한 기간 중 반미 시위가 있었고 아직도 반미 여론이 존재하나 그의 자국중심적 발언이나 정책, 그리고 우익적인 가치관과 철학을 보건대 우리 진보세력이 이 정도로 조용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반면 미국 내부나 서유럽에서는 반트럼프 여론이 심각하고, 선진국 중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찰떡궁합을 자랑하는 나라는 일본 정도밖에 없다.

왜 이런 현상이 대한민국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일까? 아마도 트럼프 대통령이 주로 국내 문제에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고, 또 미국이 한국에 노골적이고 강압적으로 뭘 요구하기 이전에 우리 정부가 선제적으로 대미 외교를 잘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아이로니컬하게도 트럼프 대통령은 가장 오른쪽에 위치한 정치인임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다른 어떤 대통령에 비해 아직까지 진보세력의 비난을 가장 덜 받는 미국 대통령으로 기록될 것 같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놓쳐서는 안되는 또 하나의 특이한 점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상당수 진보세력이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정책과 비핵화 정책을 역시 지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을 압박하고 제재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정책과 비핵화 정책은 기존의 한국 보수세력이 주장해 온 정책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고 있고, 오히려 과거 어떤 미국 정부보다도 더 한국 보수세력의 주장에 가까운 정책임에도 불구하고 왜 상당수 진보세력이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지지하고, 반미 데모나 시위를 벌이지 않는 것일까? 미국의 대북 압박이 정권 생존에 위협을 가해 북한이 핵을 가지려 한 것이라고 생각했던 진보세력이 왜 이제는 대북 압박만이 비핵화의 길이라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일까? 정말 급반전이 아닐 수 없다. 이에 대한 필자의 가설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이들은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을 지지하기 때문이다. 즉 대북정책이 무엇이냐보다도 누가 대북정책을 추진하느냐가 더욱 중요하다. 전형적인 정체성 정치이다. 현재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은 한·미 공조에 방점을 찍고 있고, 기조에 있어서 미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정권교체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이전 보수 정부와도 큰 차이가 없다. 물론 그 배경에는 한국이 한·미 공조노선에서 이탈하면 미국이 한반도에서 전쟁을 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있고, 그 사실은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다. 정부 지지세력은 이렇게 애를 쓰는 문재인 정부를 지지하지 않을 수 없으며 전쟁방지를 위해서라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즉 비판적 미국 지지다.

둘째, 가설은 북한 김정은 정권에 대한 혐오와 죄와 벌을 기준으로 하는 징벌적 사고이다. 사실 보수세력은 두말할 것도 없고, 진보세력의 입장에서 볼 때도 북한의 왕조정치, 인권유린, 그리고 반인륜적인 핵개발, 갓 30대의 독재자 등이 좋게 받아들여질 리 만무하다. 진보의 가치관에 다 역행하는 일이다. 그리고 국제사회의 규범을 어기고 일방적으로 독주하는 북한에 대해 징벌을 가해야 하는 것도 진보적인 가치관에 부합한다. 이 점에서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은 지지할 만한 정책이다.

아마도 해답은 위 두 개 가설의 교집합쯤에 있을 것으로 생각되나 이러한 대북정책과 세계관은 ‘안보 진보세력’이라는 묘한 정치세력의 탄생을 예고하게 된다. 즉 안보정책은 기존 ‘안보 보수세력’과 크게 다르지 않고 경제정책은 진보적으로 가는 정치세력이다.

그들의 비중이 얼마나 되는지는 정확히 조사해 보아야겠지만 주로 젊은층에 포진한 이 정치세력은 그 세계관으로 인하여 북한과의 협상이나 대화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고, 북한에 유화적인 중국에 대해서도 매우 부정적이다. 잘못하면 총체적으로 반북, 반중, 반러라는 매우 냉전적인 세계관으로 흐를 위험도 있다. 더구나 압박만으로는 북핵 문제를 풀 수 없다는 기존 진보의 사고와는 달리 최대 압박과 항복으로 비핵화가 가능하다는 생각을 견지하여 냉전적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킬 가능성도 있다.

문제는 현실이다. 압박으로 인하여 전운이 감돌고 동북아에 한·미·중·일·북의 군비경쟁이 시작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핵은 그대로 존재할 때 이들은 더욱더 강한 압박을 요구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타개책을 지지할 것인가?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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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4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8명을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을 함께했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청와대에 초청되는 건 고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으로 위안부 문제가 국제사회 현안으로 떠오르기 시작한 1991년 이후 27년 만이다. 문 대통령은 오찬에서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와 관련해 “할머니들의 의견도 듣지 않고 할머니들의 뜻에 어긋나는 합의를 한 것에 대해 대통령으로서 사과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오찬에 앞서 신촌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해 있는 김복동 할머니를 문병했다. 노환으로 오찬 참석이 어렵게 되자 직접 병원을 찾아가 인사를 하고 의견을 들은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4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함께 오찬을 한 뒤 이용수·안점순(앞줄 왼쪽부터) 할머니를 배웅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문 대통령과 할머니들의 만남은 한·일 정부 간 위안부 합의로는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없음을 천명한 지난달 28일 입장발표 이후 꼭 일주일 만이다. 하루 전 발표된 ‘위안부 합의 검토 태스크포스(TF) 보고서’는 한·일 합의 과정에서 피해자 의견을 수렴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다고 지적했고, 문 대통령 역시 “피해 당사자와 국민이 배제된 정치적 합의였다는 점에서 매우 뼈아프다”고 했다. 이런 점에서 문 대통령의 위안부 피해자 초청은 피해자 의사가 반영되지 않을 경우 사안의 근본해결이 어렵다는 ‘피해자 중심주의’ 철학에 서서 문제해결을 위한 첫걸음을 뗀 것으로 볼 수 있다. 지난해 8월 세월호 피해자 유족을 청와대 영빈관에 초청했을 때와 같이 대통령이 피해 당사자를 직접 만나 국가가 시민의 생명과 권익을 지키지 못한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한 것이다. 국가의 지도자로서 응당 해야 할 일이다.

위안부 문제는 한·일 국교정상화 과정에서 매듭을 풀어야 했던 과제였다. 일본 시민단체인 ‘일·한협정문서 전면공개를 요구하는 모임’이 공개한 자료를 보면 1953년 수교협상 과정에서 한국 측 대표가 위안부 문제를 거론하는 장면이 등장하지만, 전시하 여성인권에 대한 인식 부족 등 시대적 한계로 인해 묻혀 버렸다. 민주화 이후인 1991년에야 김학순 할머니가 자신이 위안부였다는 역사적 증언을 하면서 진상규명 움직임이 본격화됐지만 2018년을 맞아서도 미완으로 남아 있다. 문제가 불거졌을 때부터 한국 정부가 ‘피해자 중심주의’에서 적극적인 외교노력을 했더라면 이처럼 역사적 정의가 미뤄지는 일은 없었을지 모른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청와대 방문이 진정한 문제해결의 출발점이 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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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농단 사건으로 재판받고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국가정보원으로부터 특수활동비 36억여원을 받은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 등)로 추가 기소됐다. 박 전 대통령이 상납을 지시하면 국정원이 갖다바치고 ‘비선 실세’ 최순실씨가 돈 관리에 개입했다는 게 검찰이 파악한 사건의 얼개다. 박 전 대통령은 이 돈을 의상비와 ‘비선 치료’ 비용, ‘문고리 3인방’ 격려금 등으로 쓴 것으로 조사됐다. 국가안보에 사용하라고 지출증빙 제출의무까지 면해준 예산을 착복한 것만으로도 중범죄인데, 그 돈을 업무와 무관한 사적 용도에 썼다니 기막힐 따름이다.

검찰 수사 결과를 보면, 박 전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2013년 5월부터 국회의 탄핵소추 석 달 전인 2016년 9월까지 남재준·이병기·이병호 전 국정원장에게서 총 35억원을 상납받았다고 한다. 이원종 전 대통령비서실장을 통해 받은 1억5000만원까지 합치면 뇌물액수는 총 36억5000만원에 이른다. 이 중 3억6500만원은 최순실씨 등과의 연락을 위해 사용한 차명 휴대전화 51대 구입 및 통신요금, 기치료·운동치료·주사 비용, 서울 삼성동 자택 관리 비용 등으로 쓰였다. 9억7600만원은 이재만·안봉근·정호성 전 비서관 등 최측근들에게 휴가비·명절비 명목으로 흘러갔다. 이들에게 돈을 건네는 과정에 최순실씨가 개입한 정황을 보여주는 최씨의 자필 메모도 발견됐다. 나머지 돈 가운데 일부는 최씨가 운영하던 ‘박근혜 전용’ 의상실 운영비로 전달됐다고 한다.

국정원 특활비 사건이 터졌을 때부터 이런 사태를 예상 못한 것은 아니었다. 국정농단 수사·재판 과정에서 이미 박 전 대통령이 권력을 사유화한 흔적이 적나라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갖가지 주사 비용에서 삼성동 집의 보일러 기름값까지 아우르는 ‘깨알 같은’ 사용내역을 접하고 보니 다시 한번 충격을 금할 수 없다. 국가와 개인을 구분하지 못한 지도자의 후과가 추하고 참담하다.

박 전 대통령이 추가 기소된 날, 친박계 핵심인사인 자유한국당 최경환 의원도 국정원으로부터 특활비 1억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 수감됐다. 최 의원은 “돈 받은 게 사실이라면 동대구역에서 할복하겠다”며 의혹을 부인해왔지만 법원은 “혐의가 소명되고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검찰은 국정원 특활비가 박 전 대통령과 최 의원 외에 다른 친박계 실세 의원·장관들에게 전달됐는지도 철저히 수사해야 한다. 특활비를 사적으로 착복한 경우 모두 엄중히 책임을 물어야 마땅하다. 관행으로 치부하고 어물쩍 넘어간다면 ‘예산 농단’은 뿌리 뽑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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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류인플루엔자(AI) 확산 추세가 심상치 않다.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을 한 달여 앞두고 강원 철원 지역과 인접한 경기 포천의 산란계(알 낳는 닭) 농장에서 AI 바이러스가 검출돼 방역당국에 비상이 걸렸다. 전남과 전북 지역을 중심으로 번지던 AI가 수도권 지역으로 북상한 것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4일 경기 포천시 영북면에 있는 산란계 농가의 시료를 채취해 정밀조사한 결과 고병원성 H5N6형 AI 바이러스가 검출됐다고 밝혔다. 전남(영암·고흥·나주) 7곳과 전북(고창·정읍) 2곳 등 오리농장 9곳에서 나온 AI 바이러스와 같은 유형이다. 올겨울 들어 산란계 농가에서 AI가 발생한 것은 처음이다. 농식품부는 전국 모든 농장의 계란 반출을 주 2회로 제한하고, AI 발생지역의 가금류 반입을 전면 금지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백신주 사용도 검토키로 했다.

닭은 오리보다 AI 바이러스에 취약한 데다 전염력도 강하다. 게다가 경기 포천 지역 산란계 농장을 출입했던 축산 차량이 경기 남부와 강원 원주·횡성, 세종시, 전북과 충남 지역의 농가 44곳을 드나든 것으로 확인돼 AI가 전국으로 번질 가능성이 커졌다. 포천 지역은 전국 최대의 닭 산지여서 AI가 확산되면 ‘계란 대란’이 빚어질 수도 있다. 지난해 AI가 전국을 휩쓸어 가금류 3800만마리가 살처분됐고, 계란 가격은 사상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경제적 피해 규모는 1조원을 넘었다.

무엇보다 경기 포천 지역은 강원 철원군과 인접해 있는 데다 평창 동계올림픽 경기장과도 멀지 않다. 포천과 달리 철원에는 대규모 사육단지가 없다는 점은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겨울 철새나 축산 차량 등에 의해 AI가 강원 지역으로 퍼질 가능성이 높다. 평창 동계올림픽 기간에는 전 세계 80여개국에서 선수와 취재진, 관광객 등 40여만명이 한국을 찾을 예정이다. 올림픽이 열리면 AI 확산 방지에 효과적인 ‘일시 이동중지 명령’을 내리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럴 때 AI가 창궐하면 대회 진행에 차질을 빚어 올림픽 개최국의 이미지를 실추시킬 수 있다.

정부와 지자체는 평창 동계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서라도 AI 추가 확산을 막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축산 농가들도 출입자 이동 제한과 축사 소독 등 필요한 조처에 적극 협조해야 할 것이다. AI 방역망이 뚫리면 재앙 수준으로 걷잡을 수 없이 번진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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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나에게 생긴 첫 번째 변화는 지금 독자들이 보고 있는 이 글이다. 나와 경향신문의 인연은 2009년 겨울 ‘2030콘서트’라는 코너에서 시작됐다.

30대가 되고 난 후 얼마 전까지는 ‘별별시선’에 글을 실었다. 그런데 살아온 세월 중 가장 많은 나이인 35세에 나는 2030 같은 애매한 명칭도 아닌 ‘청춘’이라는 수식어가 붙던 코너에서 ‘직설’을 날릴 임무를 부여받게 되었다.

꽤 오랜 기간 나는 ‘청년필자’ 혹은 ‘청년논객’으로 소개되곤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이 수식어가 불편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2030을 넘어 ‘영포티’와 후기 청년(4050)까지 등장한 마당에 고작 30대가 청년이 아니라고 말하기는 어려운 노릇이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청년은 두 개의 상이한 존재를 지칭하는 개념이고, 내가 느끼는 불편함은 이 둘 사이의 괴리로부터 온다.

첫 번째 청년들은 오늘날의 20대와 30대에 속하며, 사전적 의미의 청년에 가깝다. 2000년대 이후에 성인이 된 이들을 설명하는 가장 구속력 있는 단어는 ‘88만원세대’나 ‘n포세대’다. 이 ‘청년’들은 지난 10여년간 한국 사회가 쌓아왔던 구조적 불행의 당사자로 호명되었으나, 그다지 많은 도움을 받지는 못했다. 선거 때마다 이 청년들의 불행이 화제가 되었지만 보수 세력에서는 어차피 도움이 안될 것이기 때문에, 리버럴 세력에서는 자신들을 열과 성을 다해 지지하지 않기 때문에 번번이 잊혀졌다. 이들은 돈 없는 소비자이자, 표가 적은 유권자이고, 경쟁을 유일한 존재양식으로 주입받았지만 승리가 허락되지 않는 조건 속에 놓여 있다. 분노와 좌절, 불신과 불관용, 자기연민과 자존감 없음이라는 독소들이 내면을 장악해가는 가운데, 2016년을 기준으로 이들은 88만원도 아닌 78만원의 월평균 소득을 겨우 버는 처지가 되었다.

두 번째 청년들은 오늘날 40대와 50대 초반 즈음에 속하며, 2000년대 이후에 사회의 주류로 자리 잡게 된 이들이다. 3/4/586, 영포티, 후기청년과 같은 단어들로 정의되는 이들은 어쨌거나 ‘희망찬’ 한국 사회를 실시간으로 경험했던 이들이다. 경제는 성장했고, 독재는 타도되었다. 위기나 어려움을 겪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극복해냈다. 이들이 스스로를 청년이라고 칭할 때 그것은 일종의 사회적 불로불사 선언 같은 것이다. 이들은 정치, 사회, 문화, 경제 모든 면에 있어서 자신이 서 있는 곳을 언제나 사회의 최전선이라고 여기며, 그렇기 때문에 자신은 결코 고루한 꼰대가 될 수 없다고 굳게 믿는다.

청년필자의 청년은 당연히 전자다. 궁핍으로부터 시작된 담론은 선거 때마다 불거지는 ‘20대 개새끼론’과 ‘노오력’ 타령 앞에서 점점 더 수세적이고 지리멸렬해졌다.

애초에 누구로부터도 대표성을 인정받은 바 없었던 청년필자들이 뜬금없는 등장과 퇴장을 반복하는 동안 청년담론장의 승리는 ‘멘토’들에게 돌아갔다.

하지만 그들의 위로와 조언이 얼마나 도움이 되었든, 한국 사회에서 전자의 청년들의 입지는 지나치게 좁아졌다고 생각했던 때보다도 더 좁아지고 있다. 과거에는 인재 유출이라며 호들갑을 떨었을 (외화벌이와는 다른 성격의) 해외취업을 국가가 장려하고, 고위관료와 정치인들이 자기 자식의 그다지 엄청나지도 않은 취직처를 만들어주기 위해 청탁비리를 저지르고, 공무원 아니면 탈조선이 모범답안이 되어버린 최근의 트렌드가 증명하는 바다.

게다가 후자의 위풍당당해 보이는 ‘청년들’에게서도 불안이 읽힌다. 이들은 전례 없이 길어진 평균수명과 그다지 체계적이지는 못한 노후준비, 자녀의 부양을 바랄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발버둥을 치는 중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어른이 되는 대신에 경박해지기로 한 데는, 역사의 흐름이 허락해준 자신만만함만이 아닌 나름의 절박함도 있는 것이다.

과거의 세대론은 전자의 청년들이 후자의 청년들을 비난하는 것으로 상황을 바꾸고자 했다. 하지만 이는 전략(별다른 타격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으로도 또 이론(세대라는 분석단위가 갖는 한계 때문에)으로도 실패했다. 그렇다고 후자의 관대한 양보를 바라는 것도 어려워 보인다. 그사이 ‘두 청년’의 미스매치는 4차 산업혁명으로도 해결할 수 없을 만큼 한국 사회의 미래를 열심히 좀먹고 있다. 방법이 있을까? 결국은 또 원론이다. 청춘은 청년에게, 책임과 존경은 어른에게, 그리고 미래는 후속세대에게.

<최태섭 문화비평가 <잉여사회>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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